00252 영국으로. =========================================================================
알디온 가문의 저택은 7층 높이의 성처럼 생긴 대저택과 고풍스런 저택 하나, 그리고 요즘 트렌드에 맞춘 신식 저택 2채까지 총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택만 봐서는 몰락한 레이드 팀의 가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졸부의 돈 자랑이 아닌 중후한 세월과 역사가 있는 고위 귀족의 저택 같은 곳이다.
“가운데 위치한 성이 가주님과 식솔분들께서 기거하시는 라운드 캐슬이에요. 그리고 오른쪽 언덕 입구에 따로 서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이 시노미야님이 기거하시던 곳이에요!”
저택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네 개의 저택에 환히 불이 들어와 있는 모습이 보이면서 도시에서 점차 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높게 떠 있었던데다 감정적으로 가라앉은 상태여서 도시가 황량하게 느껴졌었나보다.
그건 프랑도 마찬가지였는지 활발한 이스트레드핀의 거리에 착지해서 걸음을 옮기는데 활발한 거리 풍경에 표정이 밝아졌다.
밤 10시가 넘어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넘어갔는데도 산책하는 시민들이나 운동하며 노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같으면 최소 5층 이상의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을 텐데 땅이 넓어서 그런지 3층 이상을 넘어가는 건물이 안 보였다.
한쪽 야외 주점에서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흥겹게 떠들고 마시는 광경도 보이고 기사 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잡담을 나누며 밝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프랑은 기사들을 보며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정기사단, 하이 나이트 high knight에요….”
“F 클래스 능력자네?”
“네! 레이드 팀에는 F 클래스 이상이 되어야 소속될 수 있었어요. 그 이전에는 포터, 생활 보조 능력자와 함께 레이드 팀의 후위에서 보조하는 게 정기사단의 임무였답니다.”
프랑은 평기사 소속에 호위 기사였었다고 했었지? 약간은 선망의 눈빛을 지나가는 기사들에게 보내는 프랑은 정기사단에 환상 같은걸 가지고 있었나 보다.
“레이드 팀이 궤멸하면서 정기사단도 해체됐다고 들었는데….”
그러다 살짝 목이 잠긴듯한 목소리로 지나쳐가는 기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길래 손을 뻗어 프랑의 꼭 쥔 손을 잡아주니 움찔하고 놀랐다가 날 보며 화사하게 웃어준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과 시민들이 휙휙 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지른다.
“분위기가 밝네. 사람들 표정에서 어두움이 안느껴져.”
“네에. 기사들도 전부 밝은 표정이에요.”
지금 알디온 가주가 꽤 능력이 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망해버린 레이드 팀을 가지고 이렇게나 부흥시키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저택에 프랑이 찾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아까부터 공간 지각으로 알디온의 네 저택을 샅샅이 살펴보지만, 여자에 나이가 100살이 넘어가는 동양인인 능력자는 한 명도 안 보인다.
하지만 몸이 오랜 시간 젊음을 유지하는 신체 강화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요양원이나 병원에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럼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야 하려나?
그런데 저택에 다가갈수록 프랑의 얼굴에서 표정이 차츰차츰 사라져 간다.
그리고 저택에서 가까워져 프랑의 공간 지각 범위인 500m 안에 저택이 모두 들어오고, 내가 생각하기에 프랑이 저택을 모두 살펴보고도 남았을 무렵에는 프랑의 얼굴에서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
이윽고 프랑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바라만 보기 시작했다.
…넋이 나간 모습으로 서 있는 프랑을 보다가 바로 옆 가로수 아래에 있는 벤치에 프랑의 손을 잡고 데려 가니 힘없이 이끌려왔다.
“…뭔가 본 거야?.”
벤치에 프랑을 앉히고 나도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니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점점 물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있어?”
“네…. 있어요.”
어? 있어? 난 안보였는데. 그런데 프랑의 얼굴에 점점 슬픔이 번져간다. 있는데 왜 이러지?
막 질문을 던지려는데 이어진 프랑의 이야기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문의…. 묘지에. 묘비에 시노미야님의…. 이름이, 있…. 흑.”
아까 저택을 살펴본 기억을 떠올려보니 성같이 생긴 저택의 뒤편에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묘지가 있었다.
빠르게 묘지를 살펴보며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프랑을 끌어안았다. 손을 뻗어 프랑의 어깨를 잡아당기니 힘없이 내게 기대온 프랑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낌을 억누른다.
“흑…. 흐윽….”
그곳에 있는 37개의 묘비를 빠르게 훑어보다가, 문득 묘지의 외곽에 외따로 떨어진 하나의 묘비에 시선이 갔다.
- 시노미야 미레이, 신기력 108년~215년 12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영면에 들다.
…그리고, 묘비의 뒷면에는, 음각으로 하나의 문장이 새겨 져 있었다.
- 사랑하는 나의 딸, 플랑드르 에반스. 천국의 꽃밭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215년 12월…. 내가 위상 세계에 강제 소환되기 3개월 전의 일이다.
이걸 본 거구나….
끅끅거리면서 억지로 울음을 참던 프랑은…. 내가 등을 토닥여 주기 시작하니 결국 목놓아 크게 울기 시작했다.
“흐아아앙. 흐아아아아…! ”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프랑을 꼭 안아주고 묘비의 뒤에 적혀있는 문장을 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지.
그럼 적어도 프랑의 얼굴은 보고 갈 수 있었을 텐데….
프랑의 마음속 깊은 생각을 내가 알 도리는 없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프랑은 시노미야 미레이의 생사에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었다.
생환 직후에 프랑의 과거 이야기를 들은 뒤에 물어봤었다. 시노미야 미레이가 보고 싶지 않으냐고.
그때에는 만날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만날 것이고 만나지 못할 인연이라면 아무리 빨리 가더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지.
그때 보여주었던 담담한 모습은 이런 상황을 애써 머릿속에 떠올리려 하지 않아서 담담할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이미 볼 수 없으리라 여기고 애써 머릿속에서 떠올리지 않은건지….
그리고 프랑의 이야기대로 그녀는 내가 위상 세계에 입장하기 3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시노미야 미레이는 숨을 거두는 그 날까지 프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묘비의 뒤에 저런 글을 새겨놓았을 리가 없겠지.
프랑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내 품에서 가늘게 떨며 연신 "미안해요, 죄송해요."라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묘비를 보고 가슴속에 묻어뒀던 슬픔이 터져나온건지, 아니면 시노미야 미레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자신이 밉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딸로 여기며 담아뒀던 그녀,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이렇게 슬피 우는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프랑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목이 메고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난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하고 다만 손을 뻗어 프랑의 머리를 쓸어내려 주고 등을 어루만져줄 뿐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사람들도 한명 두명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프랑의 흐느낌이 멈췄다. 하지만 약간씩 떨림이 계속되는 걸 보면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는 거 같았다.
“울어. 눈물이 나면 멈출 때까지 계속 울어야 마음에 멍울이 생기지 않는대.”
“죄송해서…. 흑….”
“…내 생각에 그분은 오히려 기뻐하고 계실 거 같아.”
“…?”
눈물로 엉망인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수건을 꺼내 프랑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딸이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잘 지내고 있으니까 하늘나라에서 보고 기뻐하고 계시지 않을까?”
“…….”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고서 날 올려다보던 프랑은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 고서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날 끌어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이 원한다면 그랑 블루와 알디온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생각도 있다. 하지만 프랑은 딱히 알디온 가문에 관심이 없는 거 같던데….
알디온 가문은 고위 이형종 레이드의 실패로 가문의 주력 집단이 궤멸하는 바람에 세계 랭킹 순위가 1,000위권 밖으로 확 밀려나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본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꾸준한 노력으로 점점 살아나고 있는 분위기다. 이대로 몇십 년이 지나면 예전의 위세를 되찾을 확률도 높아 보이고.
도시는 물론이고 알디온 가문 저택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분주한 게 활력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
한번 망해버린 마을을, 도시를 이만 한 분위기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분위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가주든 가신이든 간에 알디온 가문의 미래는 밝을것이다.
프랑을 어루만져주며 저택 네 곳을 전부 살펴보고 있지만 내부 장식에서부터 저택의 외관까지 절대 낡아 보이지 않게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한번 궤멸당한 레이드 팀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게끔 노력 중인 걸 거다.
거기다 저만한 노력을 유지하면서도 지하의 비밀 금고로 보이는 곳에는 귀금속과 위상력이 흘러나오지 않게끔 봉인해둔 중위~중상위 위상석들이 꽤 쌓여있는 걸 보면 가문의 재력도 상당히 부유한 걸 알 수 있다.
“서하. 돌아가요.”
“…괜찮겠어?”
“네. 굳이 서하가 손을 내밀만큼 어려워 보이진 않으니까요. 거기다….”
“아니, 그분의 묘를 안 보고 가도 괜찮겠냐는 거야.”
내 말에 프랑의 물기를 머금은 눈이 알디온 가문으로 향한다. 저 방향은…. 저택의 본채처럼 보이는 성을 향하는건지 그 뒤에 있을 알디온 가문의 묘지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다.
“…….”
“…기왕 왔으니까 그분의 묘는 한번 들렀다 가자.”
답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프랑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나라처럼 성묘하는 문화는 없겠지만 찾아가서 묵념은 올려주고 와야지.
저택의 담장을 따라 돌아가니 알디온 가문의 묘지가 가까워졌다. 공간 지각으로 방범 시스템은 없나 찾아봤더니 감시카메라는 저택 인근과 담장 근처에만 있을 뿐이고 묘지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있지 않았다.
특히 외따로 떨어져 있는 시노미야 미레이의 묘비는 더더욱 적막이 넘치고 쓸쓸한 모습이다.
소리 없이 감시카메라를 피해 담장을 넘어 묘비에 다가가니 프랑의 큰 눈망울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넘친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프랑은 그녀의 묘비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달빛이 옅게 내린 밤, 프랑이 태어난 이스트레드핀에서 그녀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보며 살겠다며 내 몸을 꼭 껴안아왔다.
“서하.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프랑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줘야지. 뭔데?”
“뭐든 들어주실 필요는 없구요. 그냥…. 알디온 가문이 위태로울 때 한 번만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그럴게.”
이스트레드핀을 떠나올 때 마지막으로 알디온 가문 저택에 시선을 한번 준 프랑은 돌아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저대로 상념을 정리하게 두는 게 좋겠지.
호텔로 돌아왔더니 내가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침실의 창문이 열려있어 그쪽으로 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가는 순간 거실에 있던 여자 기감 능력자가 움찔하면서 침실을 향해 손가락을 가르키고 경호원 두 명이 뒤이어 들이닥친다.
“수고 많으시네요.”
“아…. 실례했습니다!”
나와 프랑의 모습을 본 경호원들은 황급히 허릴 숙이고 되돌아나가서는 "넌 마스터도 못 알아보냐!", "어휴. 이 허당덩어리같으니." 하면서 여자 기감 능력자를 구박하는 게 들려왔다.
먼 길을 달려 갔다 왔더니 몸에 먼지가 묻고 땀이 나서 엉망이다. 이대로 잘 수는 없으니 씻고 자야지. 침실에 붙은 욕실로 들어가니 대리석 같은 질감에 안은 새하얀 색의 넓고 비싸 보이는 욕조가 보였다.
뜨거운 물을 받고 프랑이랑 둘이서 들어가니 물이 출렁거리면서 욕조에서 쏟아진다.
손을 뻗어 프랑의 커다랗고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가슴을 어루만지니 오늘 쌓인 정신적 피로가 모두 풀리는 거 같다.
프랑도 내 가슴에 등을 기대며 욕조에 잠겨 들어간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프랑의 백금색 머리카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에 대해서만 알아보면 끝인가….”
“으응…. 그거에 대해 다른 예감은 들지 않으세요?”
내 손에 잡힌 자기 가슴을 내려다본 프랑은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욕조 안을 유영하는 프랑의 기다란 머리카락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버킹엄 성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집중해봤지만 예감 같은 건 없다.
“응.”
“만약 좋지 못한 예감이 들면 미리 말씀해주셔야 해요?”
“응. 그리고 예감이 없어도 너한테 이상한 짓을 할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멀리 도망쳐. 그 틈에 나머진 내가 다 날려버릴 테니까.”
“아앗. 그게 아니구요!”
내 입에서 버킹엄 성을 날려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프랑은 화들짝 놀라면서 몸을 뒤집어 내 가슴에 올라타며 입을 연다.
“여왕 폐하와 템페스트 공작은 서하에게 호의적인 모습이었잖아요? 거기다 서하의 강함과 지혜로움을 알아냈으니 싸움을 거는 일 없이 화평책을 쭉 유지할 거에요. 그러니 만약, 정말루 만약의 일이에요!”
“알아알아. 만약, 정말로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다 부셔버린다는 이야기야.”
자신의 말을 따라 하면서 낄낄거리는 내 모습을 본 프랑읜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흘겨보더니 이윽고 풀썩 웃어버리며 내 뺨을 잡고 입을 맞춰주고 입을 열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 되면, 서하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가 날려버리겠어요.”
진지한 눈빛의 프랑은 정말로 그럴 생각인 거 같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여는 프랑을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춰주었다.
자신은 멀쩡하다는 듯이 일부러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프랑을 품에 안고 그녀의 슬픔을 묻어주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아왔다. 하지만 마나 시브로 피로는 쉽게 풀어지니까 딱히 안 자도 상관은 없다.
곤히 잠든 프랑을 두고 객실을 공간지각으로 살펴보니 아빠는 먼저 나가고 없었다.
“이제 아침 6신데 빨리도 나갔네.”
색색거리며 잠든 프랑을 보다가 의자에 걸린 옷을 대강 입고 거실로 나가 인증기를 켰다. 서울은 이제 오후 2시일 테니 전화해도 괜찮겠지.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소피아를 잡은 뒤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흐음~ 아론 템페스트가 A 클래스였다니. 신체 강화와 회복 두 가지 능력을 가진 하이브리드라고 했지? 미국의 앨버트 그라나도를 만나면 2가지 능력을 갖추는 게 A 클래스로 가는 건지 확신할 수 있겠네.]
“아론 템페스트를 알고 있었어?”
[왕족이면서 왕족의 권리는 모두 아르세이어 5세한테 양도하고 자신은 의무만을 행하던 남자였으니까. 왕가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성이 좋은 남자였는 데다 B 클래스 최상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가.
[어떤 식으로 두 번째 능력을 얻은 것인지 궁금하군요. 그보다 여왕의 계산적인 행동은 적당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듯합니다.]
[걔는 자기 자리에 맞는 판단을 한 거지만 그 상대가 서하였다는 게 문제가 되겠네? 후훗.]
“저쪽은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하니까 일부러 까칠한 반응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
[응. 적당히 하는 걸 보면서 가까이 지내줄지 적당히 거리를 벌려둘지 정하면 돼. 그리고 잠적했다는 알티나 멜디오스를 찾아서 우리 쪽에서 보호하고 있어.]
“오, 잘했어. 멜디오스 씨는 왜 도망친건지는 물어봤어?”
[그게, 자신은 이형종의 생식에 관해서 연구하고 싶고 IWO에서도 그 부분에 관해 연구하게 해주겠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연구소에 들어갔는데 막상 하는 일은 전부 이형종의 활동과 세포 연구뿐이라서 스트레스가 무지무지 쌓였나 봐. 게다가 계약서도 연구 관련 분야가 체세포 연구에 이형종 행동반경연구 같은 것들 뿐이라 이번에 서하가 데려온 미호나 히아리드를 보고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거였대.]
천재 연구자라는 족속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쉰 영은이는 날 보며 다시 물었다.
[명동의 pc방에서 살고있는걸 찾았아서 우선 데려오긴 했는데, 걔는 어떻게 할 거니?]
“계약서로 내 뒤통수를 때리려고 한 게 괘씸하긴 하지만 그 여자를 우리가 지을 연구소로 데려와서 죽도록 맷돌로 갈아버리는 걸로 복수하는 셈 치지 뭐. 그러니 영은이가 잘 설득해서 지부장 형한테 스스로 가게끔 해줘. 그 뒤에 우리가 끌고 오던가 해야지, 지금처럼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 일부러 확정 지을만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잖아.”
계약서로 내 뒤통수를 치려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연이와 영은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사납게 빛났지만 말 그대로 순간적이었다.
알티나 멜디오스가 잠적한 뒤로 그녀에 관해서 조사해보라고 했었는데 생식 연구 쪽으로 상당히 뛰어난 연구자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굳이 미호와 히아리드의 난자를 실험체로 제공할 게 아니고 그 여자는 이형종이라면 다 좋아할 듯 하니 위상 세계에서 적당한 이형종을 잡아다가 생식 연구를 시키다 보면 뭔가 발견해내긴 하겠지.
“그리고 에델베르그 가문의 정황도 정리해서 일본이 능력자 사태 때 파견한 능력자들을 대상으로 수작 부린 것도 전 세계에 퍼트려버리자. 일본의 신용등급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끔.”
눈빛이 바뀐 내 모습에 영은이는 미간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에델베르그 가문도 나한테 저지른 죄가 없다고는 못해. 가주도 뛰어난 연구원이고 자식 사랑이 지극한 거 같으니 한국으로 데려와서 똑같이 맷돌에 갈아 넣을 생각이야. 알지?”
[흐흐흐. 알지잉~!]
“연구소 설립 쪽은 누나가 맡는다고 했으니까 누나랑 이야기해 보면 될 거야. 그리고 화연이는 영국의 알디온 가문에 대해 눈여겨봐 줘. 도움 주거나 그럴 필요는 없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정도만 기록해두는 걸로 충분해.”
[…? 알았다.]
갑자기 알디온 이야기를 꺼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은 화연이는 프랑의 과거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를 끌고 올 요원 10명을 전원 능력자로 구성해서 보냈어. 보낸 지 6시간이 지났으니까 앞으로 6시간 뒤에 도착할거야.]
6시라면 점심때 온다는 건가.
[사보이 호텔로 가라고 이야기해뒀으니 도착하면 바로 인계해주렴.]
“응.”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에 잠에서 깬 프랑이 몸에 침대 시트만 둘둘 감은 채 내 등 뒤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화연이와 영은이는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프랑이 도발하듯이 응근하게 미소지으며 내 뺨에 키스를 하고 내 무릎 위에 앉으니 화연이와 영은이는 꺅꺅거리면서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남은건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에 대한 것 뿐이군.
[프라앙~! 우릴 도발하고도 멀쩡할 줄 아니?!]
[아무리 프랑이라도 2대 1로는 불리할거라 생각합니다만!]
...돌아가면 둘한테 좀 시달리는것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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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