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51화 (251/517)

00251  영국으로.  =========================================================================

“에델베르그 가문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흐음. 역시 이건가.

“뭐 여쭐 것까지야…. 알아보니 에델베르그 부부도 저한테 죄를 지었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고민이에요. 일본에 했던 경고처럼 마포를 날릴 수도 없고….”

일부러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더니 여왕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흐르는 거 같다.

“미스터 블루가 크롤리에 마포를 날리면 그 범위를 보아서는 런던까지 소멸하게 될 거에요. 부디 마포의 사용은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건 걱정 마세요. 범위를 조절해서 크롤리만 날려버릴 수 있거든요. 거기다 약간의 지형 변화로도 자연은 대격변을 일으킨다잖아요. 저도 되도록 마포를 지상에 쏘아내고 싶지 않아요.”

“그리 생각하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저희 영국도 가능한 미스터 블루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앞으로 동반자적 위치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미스터 블루에게 위해를 끼친 에델베르그 가문과 관련된 일에는 최대한 협력해드리겠어요.”

“그래 주신다니 감사하네요. 거기다 리디아한테 육탄돌격 명령도 더이상 내리지 말아 주시면 더 좋을 거에요.”

“네…? 육탄….”

응? 여왕은 그런 명령은 처음 듣는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리디아를 돌아본다. 나도 여왕의 모습에 의아해져서 리디아를 돌아보고 아론도 "오오?" 하면서 돌아본다. 거기에 프랑의 차가운 눈빛까지.

졸지에 방 안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은 리디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더니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설마 자작극이었냐?!

“후후훗. 확실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전언을 보낸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 이야기는 정확히 "블루 지니어스와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다면 과감한 스킨십도 좋을 것 같구나." 였지요.”

“…그러니까 리디아는 사욕 가득한 마음으로 온 몸을 던져 공략하라는 걸로 왜곡했다는 뜻이네요?”

“아 아으 아으아으!”

벌떡 일어선 리디아는 얼굴을 확 붉히며 두 손을 파닥파닥 젓는다. 그러다 결국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했다.

뭐…. 틀린 말도 없고 잘못된 명령도 아니니 뭐라 하기도 그러네.

하지만 프랑은 살짝 맘에 안 드는지 리디아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 뒤로 별거 없는 한담을 나누다가는 데 만찬 준비가 끝났다며 찾아온 시종장의 뒤를 따라 이동하니 잘 꾸며진 30평가량의 다이닝 룸에 적당한 크기의 원형 테이블이 있고 그곳에 의자가 다섯 개 놓여있었다.

만찬이라길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1자로 길게 뻗은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풀코스 요리를 대접받을 줄 알았는데 다이닝 룸도 굉장히 편안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다.

거기다 테이블에 프랑의 자리까지 준비된게 프랑을 업신여기지 않는 모습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럭저럭 맛있고 나쁘지 않은 저녁을 함께한 뒤 접견실에서 티 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여왕은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의 영상을 보여주는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다.

어떤 부탁일지 짐작은 가지만 시종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 한 여왕과 리디아의 모습에 듣지도 않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어 무슨 부탁이냐고 물어봤더니, 역시나 프랑을 조사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프랑을 연구해보고 싶다고요?”

“미스터 블루가 그녀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복잡하거나 해가 될 연구도 아니에요. 단지 영국의 체류 기간 동안 그로키스 연구소에서 그녀의 구조와 능력 발현에 대한 정보를 기존의 정령과 대조해보며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프랑을 조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무척이나 불쾌한 이야기에요. 그 이야기는 리디아의 빛 속성 능력을 확인해보겠다고 연구소에 데려가 몸을 낱낱이 조사하고 분석하겠다는 이야기와 똑같아요.”

굳은 표정으로 거절했더니 리디아는 자신을 예로 들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지만 거절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던 거 같다.

여왕 역시 공주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는 거에 약간 눈썹을 좁혔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 안 되는 건가요?”

여왕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지 재차 물어왔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내 연인을, 아내가 될 여자의 몸을 연구 거리로 제공하다니,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절대 들어주지 않을 요구다.

차라리 프랑의 정체를 알려버릴까?

프랑의 정체를 안다고 해도, 내 위상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날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귀찮은 짓거리를 막으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영혼석에 대한 것만 비밀에 부치면 될 텐데…. 이건 호텔로 돌아가면 프랑과 둘이서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눠야겠다.

내 옆에 앉은 프랑을 바라보니 프랑도 날 돌아본다. 날 돌아볼 때 백금색 긴 머리카락이 찰랑이고 빛을 받아 새하얀 피부가 반짝이듯이 자체발광하는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절대 안 돼요. 다만 프랑을 만날 수 있었던 상황과 번개를 쓸 수 있게 된 이유 정도라면 알려줄 수 있어요.”

그게 싫다면 나도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에 대한 이야기는 잊어버릴 거다. 그 뒤에는 영국을 그다지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겠지.

내 눈을 마주 바라보던 여왕은 단호한 결심을 읽기라도 했는지 눈을 감더니 생각에 잠긴다.

“알겠습니다. 정령 아가씨에 대한 연구는 불가능하다 하시니 차선책이라도 구해보아야겠지요. 알라스토의 성에 대한 영상은 낮 동안 리디아를 대동하는 것을 조건으로 궁전 자료 열람실의 출입 허가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오해하지 말라는 듯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참고로 궁전의 자료 열람실은 특정 관계자 외에는 출입 불가능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공주인 리디아의 일행으로서 입장 허가를 내어드리는 것임을 이해해주세요.”

“네. 그럼 이야기는 언제쯤 해드릴까요.”

“원하시는 자료를 확인한 다음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에델베르그 가문에 대한 일이나 알라스토르의 영상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는 듯한 모습이라 아무래도 그냥 쓱 입 닦고 넘어가긴 거시기할거 같다.

그냥 조건 없이 보여줬다면 나도 화연이한테 말해서 고위급 위상석을 하나 팔아주든가 했을 텐데 이렇게 조건을 걸어버리니 그냥 없던 일로 해야겠다.

하지만 또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가급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끔 기름칠할 필요는 있을 거 같아 빈말이지만 칭찬 삼아 입을 열었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영국에 좋은 인상이 많이 남을 거 같네요.”

“에델베르그 가문의 일로 걱정했습니다만 좋은 인상을 많이 받으셨다니, 다행이군요.”

“세 분이서 이렇게 절 환대해주셨는데 나쁜 감정은 품을래야 품을 수가 없죠.”

남은 차를 입에 털어 넣고 프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왕님의 시간을 너무 오래 뺏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미스터 블루의 방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부담 없이 들러주세요.”

여왕의 배웅은 사양했지만, 리디아와 아론 템페스트의 배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론 템페스트 공작님의 성은 직접 지으신 건가요?”

“그렇다네. 내가 템페스트 가문의 시조인 셈이지.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네와 꼭 한번 대련을 해보고싶구만.”

“아까도 말했지만 전 대련은 안 해요. 제 능력은 대련에 적합하지 않고 죽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요.”

“으음. 그래도 꼭 한번 겨뤄보고 싶은데.”

“이건 어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 펫과 겨루게 해드릴게요. 그 녀석도 빛 속성이긴 하지만 저랑은 다르게 싸울 맛이 날거에요.”

“오! 플라비우스라는 고위 이형종 말인가? 꼭 좀 부탁하겠네!”

신난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마구 흔드는 아론을 보며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궁전 입구에 나왔더니 올 때 탔던 하얀색 리무진이 앞에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리무진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내 다리로 걸어서 이동하기로 하니 리디아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리디아와 아론의 배웅을 받으며 공간의 벽을 박차고 사보이 호텔 쪽으로 몸을 날리니 공간 지각으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감지된다.

-저렇게나 뛰어난 능력자가 나타나다니, 한국은 좋겠군.-

-정말이에요. 저만한 능력자가 우리 영국에도 있다면 템페스트 공작님과 함께 대영제국이 오롯한 세계 제일이 되었을 텐데….-

-…돌아가자꾸나. 우리의 사나운 여왕님께서 기다리시겠다.-

-네.-

두 사람의 대화를 독순술로 훔쳐 읽으며 사보이 호텔의 로얄 스위트 룸에 돌아왔을 때는 오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아직도 해가 저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영국은 원래 여름에 낮이 길어?”

“네에. 보통 밤 10시가 넘어야 어두워져요. 그만큼 아침도 일찍 와서 새벽 4시 정도면 해가 뜨기 시작하지요.”

낮이 길고 밤이 짧고, 거기다 날씨도 크게 덥지도 않아서 8월인데도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안 넘으니 영국의 여름은 놀기 좋은 계절이군.

공간 지각으로 확인해보니 아빠가 경호원들과 함께 호텔에 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소피아는 아빠 앞에 고개를 숙인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고 그 주변으로 경호팀원들이….

아차, 말 안 했구나.

아빠도 런던 대학교에서 돌아와 거실에서 안내책자 같은 걸 보고 있었는데 나와 프랑이 객실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책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늦을지도 모른다더니, 볼일은 다 끝난 거냐.”

“아니, 가려보려다가 다른 일 때문에 못 갔어. 다시 나갈 거야. 그보다….”

내 시선이 아빠 앞의 양탄자에 무릎 꿇고 앉은 소피아를 향하니 아빠도 잠시 소피아를 내려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호텔에 돌아왔더니 한수희 양이 빈 침실에 있던 저 아이를 데려왔다. 네가 찾아온 거냐.”

음. 말 없이 침실에 넣어놨더니 침입자로 오해했었나보다.

“응.”

“그래.”

그러고 끝.

참…. 뭔가 물어보기라도 하란말야.

한수희 경호 팀장이 고개만 숙여 인사하는 걸 받아주고 주변을 살펴보니 경호팀의 경호원 형과 누나들은 객실 입구에 두 명, 객실 내부에 다섯 명이 각각 자리를 잡고 대기 중이었다.

나머지 3명과 백업 팀은 아래층 특실에서 수많은 종이를 쌓아놓고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여사님한테 전화해서 소피아를 끌고 갈 인원을 보내라고 했어. 내일이면 도착할 거 같아. 아빤 내일부터 일정이 어떻게 돼?”

“특별한 일 없으면 회의와 세미나를 반복하면서 21일 금요일까지 런던 대학교와 호텔을 오갈 거다.”

“알았어. 뭔가 일이 생기면 문자 보내.”

아빠는 다시 책자를 들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지만 날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이야기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내 귀에 들어왔다.

“혹여 좋지 못한 일에 휩쓸리지 않게끔 몸조심해라.”

“응.”

침실로 돌아와 옷 가방을 뒤져보니 긴 팔 셔츠도 있고 조금 두꺼운 옷도 있고…. 옷 가방은 프랑이랑 영은이가 싸줬는데 한낮이래도 날씨가 그리 덥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검은색 긴팔 옷이 없어서 그냥 대충 갈색 체크무늬 긴 팔을 찾아 입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거실 양탄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소피아를 보다가 계속 소피아를 주시하는 한수희 팀장을 보며 말했다.

“한수희 2 팀장님. 소피아는 도망치지 않으니 따로 감시 안 해도 돼요. 아니, 도망가도 상관없지만.”

내 말에 눈썹끝을 늘어트리는 소피아를 한수희 팀장은 조금 안쓰럽다는…. 한수희 팀장도 소피아를 알아?

“그런 표정 짓지 마시죠. 소피아는 일본의 스파이고 절 죽이려 한 범죄잡니다.”

굳고 경직된 내 목소리에 한수희 2팀장은 그제야 실수를 눈치채고 사색이 돼서 허리를 급히 숙인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소피아는 방 안으로 돌아가.”

“네….”

새삼 소피아의 친화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한수희 팀장은 그랑 블루가 만들어지면서 고용한 사람인걸로 아는데 그 짧은 시간에 저렇게나 사이를 좁혀놓은건가?

어떤 방식으로 벌을 줘야 할까 감도 못잡고 있었는데, 한수희 팀장의 반응을 보니 소피아가 범죄자이자 스파이라고 지금까지 한 일을 전부 공개적으로 밝혀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쪽으로 처리해야겠다.

어차피 내 옆에 두고 평생 괴롭히고 굴릴 생각이니 사회적으로 매장되든 어쩌든 상관없지. 그러지 않으면 저 한수희 팀장과 같은 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거 같다.

기자회견이든 뭐든 열어서 여태껏 있었던 일을 모두 밝혀버리는 걸 주요 골자로 해서….

머릿속에 대충 계획의 골자만 만들어두고 나머진 화연이랑 영은이한테 넘겨주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 소피아를 뒤로하고 룸서비스를 시켜서 소피아의 방에 넣어주라고 지시한 다음 나가려는데 D 클래스 최상급 능력자 일곱 명이 사보이 호텔을 중심으로 700m ~ 1,000m 정도 거리를 두고 빙 둘러싸는 게 보인다.

“뭐지? 수트를 입은 능력자들이 여길 중심으로 700m 정도 거리에서 감시하기 시작하는 거 같은데.”

“…영국에서 요인 보호를 위해 보낸 건 아닐까요?”

그자들은 템즈 강 건너편에서도 자리를 잡고 이쪽을 주시하는 게 보인다. 그때 인증기로 리디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하 경, 혹시 주무시고 계셨던 건 아니지요?]

“어, 아니야.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서하 경과 서하 경의 부친께서는 저희 영국의 중요한 귀빈이세요. 특히 닥터 정의 경우에는 서하 경보다 더 중요인물이시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호위팀을 데려온 것을 알고 있지만 혹시 몰라 저희 영국 정보부에서도 서하 경의 부친을 지키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기로 결정이 났어요. 그걸 알려드리기 위해 전화를 한거에요.]

홀로그램창 너머에서 나와 프랑을 보며 살풋 웃은 리디아는 곧 호위 끼리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오길래 거실 밖으로 나가 한수희 2팀장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마스터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들과 연계해 정수훈 님의 호위를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수희 팀장은 아까의 실수 때문에 잔뜩 경직되고 긴장한 모습으로 빠릿빠릿하게 대답한다.

“들었지? 자세한 건 한수희 2팀장 님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지휘권은 한수희 2팀장님한테 주는 걸로 해줘.”

[그럴게요. 지금쯤이면 7명의 요원이 포인트를 잡아서 경계와 감시를 시작했을 거에요. 혹시 그들을 발견하시더라도 오해하고 공격하시는 일은 없게 부탁드려요]

“알았어. 한수희 2 팀장님. 부탁드릴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짧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한수희 팀장을 보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한테 나갔다 오겠다고 이야기한 뒤 나와 프랑의 방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서쪽으로 270km 정도 떨어진 이스트레드핀으로 향하니 프랑의 표정에서 감회가 서리기 시작한다.

영국의 땅은 우리나라랑은 전혀 다른 거 같다. 런던 주변은 산이 안 보이는 평원 지대고 그건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산이 아니라 구릉지 같은데 다 사람들의 침입을 거부하듯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있는 모습이 마치….

“아숨프레 호수 근처의 북방 수림 같은 걸?”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오대호보다 위도가 높으니까요. 그러니 주변 풍경이 조금은 비슷한 거겠지요.”

확실히 미국과 캐나다의 오대호보다 영국의 위도가 더 높군.

“그런데말야. 프랑이 저번에 이야기해준 시노미야 미레이라는 사람은 가문의 둘째 부인이라고 하지 않았었어? 근데 성은 알디온을 쓰지 않고 시노미야라는 이름을 왜 쓴 거야?”

“정부인이 아니라 첩의 대우를 받으셨으니까요…. 실제로 본부인께서는 첩으로는 용납하지만, 정실로 들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시고는….”

“하시고?”

“시노미야님께 강제로 불임 시술을 받게 하셨어요.”

컥.

내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걸 본 프랑은 애써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외에는 무척이나 관대하신 분이셨어요. 시노미야님이 기거하실 아름다운 저택도 지어주셨고 시종들과 하녀들도 넣어주시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더라도 무시하거나 괴롭히지도 않으셨거든요.”

“그야말로 정실 부인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어?”

“푸훗. 네에. 아무튼 일본에서 넘어온 능력자들은 대부분 법적인 계약에 묶여 레이드를 제외하고 그 어떤 사회적 활동도 불가능했었어요. 제약도 끝이 없어서 단순히 능력자라는 쓸모 있는 부속품 취급만 받은 곳이 대다수라고 알고 있어요.”

“아, 하긴. 배상의 의미로 데려온 능력자가 국내 활동을 통해서 고위직에 올라가면 그것만큼 웃긴 일이 없을테니까.”

“그런 점에서 에델베르그 가문은 대단한 거지요. 일본 출신의 여성 능력자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면서 그 자식들까지 고급 교육을 받아 60년이라는 배상 기간이 끝난 뒤 가문을 이으려 노력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약과 법적인 계약 때문에 손도 못 뻗고 있다가 딱 배상 기간이 끝난 10년 전에 수작질을 부리기 시작했다는거네?”

“그렇겠지요?”

아무튼 시노미야 미레이는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것 외에는 아무런 제약도, 제제도 없이 원하는 취미생활과 함께, 다른 일본 출신 능력자와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놀고먹는 편한 생활을 했단다.

어쨌든 프랑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스트레드핀이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노미야 미레이는 이미 죽었을 거 같다. 그리고 프랑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겠지. 날 신경 써서 표현하진 않겠지만 슬퍼하거나 우울해 할 건 확실하다.

그걸 생각하니 나도 기분이 가라앉는 거고.

프랑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시노미야 미레이가 살아있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30분가량 달려서 도착한 이스트레드핀은 크롤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도시였다. 다만….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본 이스트레드핀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라 무척이나 황량해 보이는 게 꼭 망해가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크기는 크롤리의 절반인데 인구수는 그 반의반도 안된다. 주변에 구릉지가 넓게 펼쳐진 게 마치 길이 막혀 고립된 산골 오지의 시골 마을 같다.

이스트레드핀의 특징은 북쪽에 강처럼 갈라진 호수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작된 강줄기가 이스트레드핀에서 형성된 마을을 관통하고 있었다.

프랑은 하늘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내 시선을 눈치채고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연다.

“…아, 후후후. 생각 이상으로 알디온 레이드 팀이 괴멸당한 게 타격이 컸었나 봐요. 린 호수에서 시작된 도시는 산의 사이사이 평지에 집과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프랑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발아래 펼쳐진 마을을 내려다본다. 프랑의 말대로라면 굉장히 컸을 도시인데 지금은 프랑이 이야기한 부분에서 1/4도 되지 않았다.

다만 호수 인근에는 언덕 위쪽까지 도심이 형성되어있는 걸 보면 나무뿌리처럼 뻗어져 나간 마을이 한곳으로 모여든 모습이다.

“가문의 저택은 저기, 호수의 인근에 세워진 큰 집이에요.”

프랑은 시선을 돌려 내 팔을 잡아당기며 호수 아래쪽에 있는 저택을 가리켰는데 저택의 크기가 크롤리의 에델베르그 저택보다 훨씬 더 크다.

바로 저택에 뛰어 내려가기보단 프랑과 함께 거리를 걸으며 저택으로 다가가기로 하고 인적이 없는 언덕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수많은 조언과 지적과 격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로카다님. 지금 주인공의 심정은

"아ㅠㅠ 사정이 있었구나, 불쌍하니까 너 봐줄래."

이게 아닙니다.

"아 진짜 이 썅X 내 뒤통수 친 걸 생각하면 확 그냥 XX서 XXX해버리고싶은데...! 하지만 고의로 주동자에게 동조해서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협박을 받아서 본의 아니게 한건데.... 아오 진짜, 확 그냥...!"

이런거에요.

소피아가 주인공의 XXX가 되어서 엉망진창 당하고 합법적으로 세상 하직하는걸 원하셨나요?

만약 일본을 치기 전에 소피아를 만났다면 사정이고 나발이고 분노게이지가 가득 찬 상황이라 아마도 로카다님이 원하는 장면이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어, 너 잘 만났다. 프랑, 영혼석 목걸이 걸고 저 멀리 가 있어. 네 정신은 소중하니까."

이런식으로 심리적인 브레이크 장치를 치워버리고 이후에는 그런 장면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일본을 조져놔서 분노가 조금 감소한 상태인데다 소피아와 그 가족들에게 (주인공의 인성으로 생각하기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에

완전히 조진다 vs 사정을 감안해서 적당히 조진다.

이런 구도를 만들고 싶었던겁니다. 그런데 필력이 부족해 아쉽게 된거같네요....

ps. 조아라 서버 관리 안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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