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50화 (250/517)

00250  영국으로.  =========================================================================

어디 보자, 알디온 가문은 어디에 있나…. 커머덴셔의 이스트레드핀? 웨일스 지방이면 서쪽 끝이네. 직접 찾아가긴 좀 껄끄럽고 밤에 몰래 가서 살펴보고 올까?

주방에서 접시와 컵을 씻는 반인반령의 공주님 같은 프랑을 보다가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슬그머니 설거지하는 프랑을 뒤에서 껴안으니 프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날 돌아본다.

“프랑의 가문을 찾아갈 생각인데 지금 바로 찾아가 볼까, 아니면 밤중에 몰래 살펴보고 올까. 프랑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지금 가서 하늘에서 살펴보고 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직접방문이 아니라 그냥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고만 오자고?

“음…. 프랑은 알디온 가문에 감정이 남아 있어?”

어쩐지 직접 방문하기 싫어하는 모습이라 조심스레 물었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뇨. 다만 미레이 님이 잘 계신지, 제가 사라진 뒤로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것만 궁금할 따름이에요.”

손을 멈춘 프랑은 수도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수도꼭지를 잠그고 날 돌아보며 말했다.

“알디온 가문을 서하가 찾아가면 가문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서하와 인연을 만들려 할거에요. 거기에 제 정체가 드러나면 그건 더 심해지겠죠.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잠시간 몸담았던 가문이 몰락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건가….

“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오자. 거리를 보니 270km가 조금 넘는 거 같은데 좀 빠르게 가면 20분이면 될 거야.”

그렇게 프랑과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는데 객실의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빠라면 문을 열고 들어왔지 노크를 하진 않을 텐데?

누가 찾아온 것인지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새벽에 우릴 맞이한 호텔 지배인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실크 정장을 입은 서양인 남녀와 함께 서 있는 게 보였다.

프랑도 찾아온 손님들을 공간 지각으로 확인했는지 객실 입구로 날아가고 나도 그 뒤를 따라가려니 나오지 말라는 듯이 내 등을 밀어 거실로 돌려보낸다.

“보나 마나 레이드 팀이나 어느 나라의 에이전트일 거에요. 서하가 직접 상대해줄 필요 없어요.”

수행원 역할을 자청하는 프랑은 날 거실로 되돌려보낸 다음 객실의 입구 문을 열었다.

50대 중반의 잘 가꿔진 외모를 가진 호텔 지배인은 프랑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그랑 블루 마스터께서 계신지요.”

“계시지만 방금 돌아오셔서 손님을 맞이하실 상황이 아닙니다. 돌아가 주세요.”

컨시어지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남녀를 본 프랑은 냉랭한 표정으로 차갑게 대꾸하니 뒤에 비단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한발 나서며 입을 연다.

“잠시, 저희는 세계 랭킹 1위이자 미국 정부의 공식 레이드 팀 G.S의 서브 매니저입니다. 레이디의 마스터께 드릴 말씀이….”

“마스터께서는 레이드 팀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으실 겁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세요.”

“앗, 잠…!”

G.S의 매니저라는 사람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자기 할 말만 한 프랑은 가차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세계 랭킹 1위면, 미국의 A 클래스 능력자가 보스로 있는 레이드 팀이잖아?

쾅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브 매니저 남자와 지배인은 서로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보다 미간을 좁히더니 짜증 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개인이 가진 힘이 있어 그런지 그 아래 있는 정령도 무척이나 오만방자하군요.-

-하하….-

-미국 국무부의 부차관보께서 직접 오셨는데 이런 대응이라니, 미국과 한국의 돈독한 우호 관계에 마찰이 빚어질 거란 생각도 못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총지배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웃음만 짓고 있는데 서브 매니저라는 인간은 그걸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연신 "나이가 어리다 보니 세상을 볼 줄 모르나 봅니다.", "가져온 조건은커녕 직접 얼굴도 보이지 않다니, 미국을 얕보는 게 틀림없지 않습니까."라며 연신 불만을 터트리며 되돌아갔다.

하지만 물이 오른 여성의 풍만한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금발 여성은 그냥 살포시 웃으면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저 금발 숏컷의 여자가 부차관보야? 부차관보는 우리나라 계급으로 몇 급이지?

얇은 드레스 너머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차관보의 엉덩이 계곡을 공간 지각으로 보면서 인증기를 켜서 미국 국무부 조직도를 살펴보니 장관 부장관 차관 부차관 차관보 부차관보 과장 부 과장으로 쭉 내려간다고 되어있었다.

어디, 차관보는 우리나라 국장급인가? 우리나라 국장은 공무원 몇 급이지? 국장 아래 직급이 뭐가 있더라.

문을 닫고 잠깐 가만히 서 있던 프랑은 세 남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가니 날 향해 걸어왔다.

“영은 말대로 이제 귀찮은 이들이 몰려올 건가 봐요. 게다가 고작 서브 매니저에 부차관보를 보내다니, 서하를 어떻게 보고…!”

분노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뜬 프랑은 정말 화난다는 듯이 다시 세 남녀를 되돌아보며 찌릿하고 노려본다.

“새벽에 총지배인이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방문객은 받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제가 가서 전화하고 올게요.”

객실에 비치된 유선 전화를 잡고 통화하는 프랑을 보면서 나도 아빠한테 다시 나간다며 밤에 늦게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문자를 보냈다.

호텔 입구를 통해 나가려다가 문득 공간 지각으로 로비를 살펴보니 아무리 봐도 평범한 투숙객 같지 않은 인간들이 우글우글하다.

…저 인간들이 전부 날 만나러 온 거야?

그중 몇몇은 데스크에서 날 만나러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방금 프랑이 이야기한 덕분에 호텔 직원들이 모든 면회 요청을 웃는 표정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나가자. 로비에 날 만나러 온 건지 사람들이 득실득실해.”

“네에.”

그런데 버킹엄 궁전에서 출발한 리디아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공간 지각에 들어왔다.

세쌍둥이도 없이 홀로 리무진을 타고 오는 모습에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아닐까 했지만 리무진이 이동하는 방향이 정확히 사보이 호텔을 가르키고 있었다.

“…….”

표정이 왜 어두운 걸까. 여왕을 만나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은 건가?

만약 리디아가 정말 날 보러 오는 거라면 잠시 만났다가 가도 되겠지.

“그녀가 쌍둥이들의 호위도 없이 홀로 온다면 어떤 이야기든 중요한 것일 테니 듣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출발하자.”

“네.”

아무래도 정말로 혼자 날 만나러 왔는지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리디아가 챙이 넓은 흰 모자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새하얀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녀가 리무진에서 내리는 순간 사보이 호텔의 지붕에서 지켜보다 그녀를 납치하듯이 허리를 끌어안고 지붕으로 데려왔다.

“꺄…! 노, 놀랐어요.”

지나가던 행인들도 놀랐는지 지붕 끄트머리에 서 있는 우리를 올려다보다가 가던 길을 가버리고 호텔 안에서 뛰쳐나온 직원들도 지붕 위에 서 있는 게 나라는 걸 보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흰 실크 장갑을 낀 두 손을 포개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해주고 사교회에 나가려는 모습의 리디아를 보며 물었다.

“쌍둥이 호위들도 떼놓고 혼자서 찾아온 이유가 뭐야?”

놀란 모습을 추스른 리디아는 곧 시무룩한 표정이 되더니 허리를 숙이며 사과해온다.

“쌍둥이 릴리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여왕님께서 아랫사람들을 시켜 서하 경의 동태를 파악하려 한 것을 사과드릴 겸 저녁 만찬에 초대하셨답니다. 그 저녁 식사에는 다른 사람 없이 여왕님과 다른 한 분, 그리고 저까지해서 세 명만 참석할 예정이에요….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른 한 명이라는 사람이 혹시 남자에 검은 머리야?”

“아? 어떻게 아셨어요?”

다른 한 명이 아론 템페스트인가보다.

어쩌지…. 여왕이 직접 사과한다고 하지만 그 부분은 진정성을 못 느끼겠다. 영국의 여왕쯤 되는 위치라면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머릴 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프랑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얼굴을 펴며 내 손을 잡는다.

식사 초대에 승낙하라고?

네, 승낙하세요.

눈빛으로 프랑과 대화를 주고받고 리디아를 보니 이번에도 거절하면 어떡하나 마음을 졸이며 자신의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좋아. 몇 시부터 하는데?”

“아…! 서하 경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이동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지금? 이제 오후 2시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중천이다. 이런 시간에 초대해서 저녁 먹을 때까지 뭐하려고?

자신의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얼굴이 밝아진 리디아를 보고 물었더니 자기 실수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더듬거리듯이 말을 꺼낸다.

“오, 오셔서 티타임도 하시고….”

마음이 앞서서 무작정 말을 꺼낸 것인지 살짝 얼굴이 붉어진 리디아를 보다가 내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흰색 반소매 셔츠에 검은색 면바지에 검은색 캐주얼 구두.

정장은 안 챙겨왔는데. 비공식인데 뭐 어떠랴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리디아의 허리를 잡고 사보이 호텔 앞으로 내려오니 리디아가 왼쪽 팔뚝의 인증기를 켜서 가버린 리무진을 호출한다.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길다란 실크 장갑을 보다가 공간 지각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버킹엄 궁을 살펴보니 여왕과 아론 템페스트는 여전히 여왕의 집무실에서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타고 온 흰색 리무진이 금방 달려왔고 거기에 올라타면서 리디아에게 물었다.

“아론 템페스트라는 사람은 유명해?”

“네, 네?”

표정 숨기는 법 좀 배워야겠네. 표정을 감출 줄 몰라서 속내가 다 드러나잖아.

내가 갑자기 그 사람 이름을 꺼내니까 눈동자가 떨리고 내가 아론 템페스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물었다.

“어, 유…명 하다면 유명하신 분이세요. 왕실 직계 손이시면서 B 클래스 시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헐, 왕실 직계 손이라고?

“영국에 온 김에 영국의 능력자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는데 B 클래스 신체 강화 능력자면서 나처럼 평범하게 생긴 게 신기해서.”

그나저나 리디아도 아론 템페스트가 A 클래스인 줄 알고 있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내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 남자의 이름에 저리 동요하는 모습을 보일 리가 없으니까.

여왕이 정말 리디아를 키워주고 있긴 한가 보다.

“아론 템페스트 경은….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째서?”

왜 그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더니 리디아도 안정을 되찾은건지 살풋 웃으며 대답해준다.

“저녁 식사에 모일 다른 한 분이 바로 그 아론 템페스트 공작이시거든요.”

“헤에. 여왕님이랑 같이 식사까지 한다는 걸 보면 직계 손이라 지위가 높은가 보네.”

이미 공작이라는 거랑 A 클래스에 여왕과 이야기까지 나누는 걸 다 봤지만 모르는 척 시치미떼고 물으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템페스트 공작께서는 여왕 폐하를 위해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의무만을 행하시는, 여왕 폐하께서 가장 신임하는 분이시거든요. 더군다나 여왕 폐하보다 손 윗분이시기도 하구요. 거기에 B 클래스에 오르셔서 여왕님께서 직접 공작에 임명하신 분이세요.”

그래서 여왕 앞에서 아론 템페스트가 그렇게 편한 모습이었고 여왕도 자신의 속내를 보였었구나.

버킹엄 궁전에 도착해 딱딱하게 보이는 70줄의 시종장 할아버지 뒤를 따라 나와 프랑, 리디아 셋이 이동하고 있으려니 한명 두명 정장을 입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리디아를 보며 허리를 숙인다.

리디아도 손을 들어 응대해주는 걸 지켜보다가 지나가니 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뒤돌아서 날 훔쳐보며 "저 사람이 한국의 파괴 신인가?", "생각보다 별거 없어 보이는군."이라며 숙덕거렸다.

별거 없어보여서 미안하구만!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돌리니 나보다 더 인상을 찌푸린 프랑이 보인다.

나랑 프랑의 표정이 어떤지는 우리 앞에 가는 리디아는 전혀 모른 채 우릴 안내해 여왕과 아론 템페스트가 있는 밝은 황갈색의 화사한 집무실에 들어섰다.

집무실에는 여러 장의 그림과 초상화가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인물 사진이 들어있는 작은 액자가 무수히 늘어서 있었다.

한쪽 벽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벽난로가 있고 집무실의 구석에는 갈색의 구식 피아노가 장식되어있었다.

스탠드 형식의 수많은 전등이 밝은 빛을 뿌리는 집무실의 한쪽에 응접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앞에 앉아있던 여왕과 아론 템페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다가온다.

“드디어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에요. 미스터 블루.”

꼬마 파괴 신이라고 부르지 그래요?'라고 말해주고 반응을 보고 싶지만 내 숨겨진 밥줄을 노출하는 바보 행동을 할 수는 없지.

실쭉 웃으면서 살짝 묵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젊으셨을 적에 굉장한 미인이셨을 거 같네요. 그랑 블루의 마스터인 정서하에요.”

“어머나. 늙은이를 놀리면 못쓴답니다.”

“하하하. 확실히 아르세이어 5세께서 젊었을 땐 구혼에 골머리를 싸매실 정도셨지. 만나서 반갑네 꼬마 파괴신. 아론 템페스트일세. 미흡하지만 공작의 위를 가지고 있지.”

역시 이 사람은 표리일체 타입인 거 같다. 진짜 옆집 형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데 꼬마 파괴 신이라는 표현에 나도 씩 웃으면서 손을 마주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영국에 A 클래스가 존재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영국 왕실 소속인 줄은 몰랐네요.”

내 이야기에 여왕과 아론은 눈썹을 꿈틀한다. 뭐지? 내가 위상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론은 으쓱하더니 마주 잡은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접촉해서 내가 A 클래스라는걸 감지한 건가? 확실히 블루 지니어스는 위상력을 감지할 수 있다고는 들었네만.”

“맞춰보시죠?”

내 능청스런 반응에 아론 역시 능글능글한 반응을 보이며 굳은 얼굴의 여왕을 돌아보며 익살스럽게 물었다.

“이런~ 나는 영국의 숨겨진 검인데…. 여왕님. 이거 어떻게 하죠?”

“템페스트 공작….”

한숨은 체면 없는 짓이라 생각하는지 실크 망사 장갑을 낀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 영국 여왕을 보니 골치가 아파보인다.

“아무튼 언제 시간 나면 나와 대련한 번 벌여주겠나? 제랄 페커드 사후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능력자와 꼭 한번 붙어보고 싶군!”

어? 제랄 페커드가 죽었어?

“그가 죽었나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허허. 그 남자가 행방불명이 된 지 수십 년일세. 나이를 봐도 그렇고 실종된 년수를 따져도 이미 죽어서 백골이 되지 않았겠나.”

이야…. 저 이야기, 연합에 들어가면 제랄 패커드를 우상화하는 능력자 연합에서 가만 안 있을 텐데.

“템페스트 공작!”

여왕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촐랑이는 아론에게 화난 표정으로 소리치니 찔끔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린다.

“…지금 이야기가 능력자 연합에 들어가면 좀 화낼 사람이 많을 거 같은데요?”

“미스터 블루. 방금 이야기는 뒷방 늙은이가 노망나서 내뱉은 헛소리라 여겨주세요.”

“헉. 여왕님! 뒷방 늙은이라니, 너무하십니다!”

“제발…. 입 좀 다물어주세요. 공작.”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는 저 아저씨의 생각일 뿐이란 거군. 아론은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리는데 중간중간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면서…. 이래서 여자들 히스테리는…." 라고 중얼거리는데 점점 여왕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어쨌든 나랑 한판 뜨고 싶어 하는 아론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랑 붙고 싶은 기분은 알겠지만 거절할게요. 제 능력은 '적당히'를 모르는 살상 위주라서 대련이라고 하지만 그랬다간 영국이 절 증오하게 될 결과가 나올 테니 안 되겠어요.”

“허허. 그래도 A 클래스인데…. 이 내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긴가?”

호승심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날 뚫어지게 보는 아론 템페스트는 내 이야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빤히 바라본다. 그걸 여왕과 리디아도 관심이 많은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제 손끝을 보세요.”

나는 간단하게 검지를 천장으로 향한 다음 손톱 굵기의 자그마한 공간의 벽을 쳤다. 그러자 내 손끝을 집중하던 세 명은 큐브 모양의 공간의 벽이 나타나자 움찔하고 놀라버렸다.

“공간의 벽이 나타나는 징조가 보이셨나요?”

“…안보였네.”

“이 공간의 벽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시죠? 이게 몸 안에 생성되면 어떻게 될까요?”

“…….”

간단한 무력시위였지만 세 사람은 내 행동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손끝에 나타난 공간의 벽을 바라본다.

“그걸 수십 킬로미터 수준의 정방형까지 만들 수 있다는 건가….”

내 능력의 위용에 살짝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 리디아는 난감한 듯이 웃으면서 나섰다.

“저기…. 여왕 폐하, 손님을 이렇게 세워 두는 것은….”

“아, 이런 실례를. 이리 앉으시지요, 미스터 블루.”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여왕은 날 빈 소파에 안내하고 자신도 자리에 앉고 리디아와 아론도 빈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아론은 자신이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토라진 표정을 짓는데 그걸 보니 역시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리디아가 직접 타오는 차로 식사 전 티 타임을 즐기면서 한담을 나누는데 슬슬 본론에 들어가려는지 여왕이 살짝 눈을 빛내며 내 뒤에 떠 있는 프랑을 바라본다.

프랑의 입장에서 영국 여왕의 집무실에 들어온 건 무척이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몸을 살짝 띄우고 집무실 내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

“소문대로 무척이나 아름답고 정숙한 정령이군요. 저런 정령을 얻은 것만 봐도 미스터 블루가 얼마나 뛰어난 사내인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 아직 철없는 꼬맹이에요. 그래서 에델베르그 가문을 찾아가서 행패까지 부렸죠.”

“그건 행패가 아니라 당연히 행사해야 할 자네의 권리지. 오히려 좋게 끝내서 나로서는 무척이나….”

“조용히 하세요, 공작.”

여왕의 화난 기색의 핀잔에 아론은 장난기가 어린 기색으로 "네네~"하면서 입을 다물더니 소파에 등을 기대며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인다.

킥킥거리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리디아와 공작을 번갈아 보던 여왕은 결국 작게 한숨을 쉬며 내게 머리를 숙인다.

“에델베르그 가문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점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시켜 미스터 블루의 동향을 전하라 명령을 내린 것에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에델베르그 가문에 대한 문제는 아직 끝난 일이 아니라 감사를 받기에는 이른듯하네요. 절 감시하려 한데 대한 사과는 받아들일게요.”

내 대응을 본 아론은 원숭이처럼 입을 불쑥 내밀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데 그 얼굴이 또 웃겨서 리디아는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가려버리고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여왕 앞에서도 주눅이 든 기색 없이 내 할 말을 다 하는 모습에 여왕은 살짝 쓴웃음을 짓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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