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8 영국으로. =========================================================================
화연이에게 소피아의 목표는 너였다고 알려줄까 했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싶어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영은이의 반응이 정상적인 거겠지.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한다며 채팅을 종료하고 자세를 잡은 뒤 마나 비전을 켰다. 그 후 잠에서 깨어나는 소피아를 바라본다.
“으음….”
미약한 신음을 흘리던 소피아는 미간을 좁히며 깊은숨을 내쉬더니 살며시 눈을 뜨고서는 앞에 앉아있는 나와 프랑을 흐릿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
두 손을 올려 눈을 부비부비하다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주더니 야윈 얼굴로 옅게 미소를 짓는 모습에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잠은 잘 잤어?”
“네에. 달링이 제 목숨을 직접 거두러 오신 거예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모습으로 놀람이나 당황은 전혀 보이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에 속에서 울컥하고 짜증 나는 느낌이 올라왔다.
“안 거둘 건데?”
내 말에 어째서? 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야윈 모습에서 예전 같았으면 안쓰러움을 느껴버렸을 테지만, 애정이 쌓이다가 비뚤어지면 고스란히 증오가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그 상태다. 물론 사랑이 쌓였다는 건 아니지만 한참 친구이자 연인의 언니라고 해서 호감을 주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뙇! 하고 맞아버렸잖아.
반전 스위치를 넣은 것처럼 호감이 증오가 되긴 충분하지.
그렇지만 솔직히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미워할 이유는 한가득이고 실제로도 분노와 검은 욕망을 뒤집어씌워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리고 싶다. 내 시커먼 분노와 욕망을 저 몸뚱이에다 해소하고 싶다.
하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고 소피아도 자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 때문에 봐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까지나 시작은 일본이 했고 에델베르그 가문이나 소피아는 거기에 휩쓸린 거 뿐이니까.
프랑은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듯이 내 뒤에 서서 조용히 있었고 소피아는 내 눈에서 흘러넘치는 푸른 빛을 죽음을 각오했다는 조용한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우릴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떠안아 20일을 넘도록 마음고생을 해서 이렇게 야윈 건가?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했지만, 이렇게 직접 바라보니 마음이 다 잡힌다.
원죄를 지은 일본의 고위 공직자 대부분은 인생은 실전이라는 교훈을 받고 무국적자 비렁뱅이로 평생을 방황할 테고 주범인 다섯 놈은 알카트라즈에서 이미 죽었을 거다.
그러니 소피아는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난 속 좁은 급식충이라 에델베르그 가문처럼 대인의 풍모를 보여주며 간단하게 용서해줄 수 없다.
대신 곁에 두고 평생 괴롭히면서 부려먹을 생각이다. C 클래스 회복 능력자에 외모도 반반하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TP를 먹여 B 클래스 회복 능력자로 만들면 유용성이야 어마 무지하겠지.
거기에 에델베르그 가문도 마찬가지다. 드와이트와 이치카 둘도 어쨌든 날 죽이는데 간접적으로나마 한쪽 팔 거든 상태니까.
자기 가족을 사랑해서 이치카 대신 일본으로 건너가 스파이 교육을 받은 소피아. 그런 소피아를 끔찍하게 소중히 여기는 드와이트와 이치카.
“넌 죽이진 않을 거야. 대신이랄까 네 가족이 대가를 치르게 할거거든?”
“…!”
흡 하고 숨을 삼키며 눈을 크게 뜨는 소피아. 역시 소피아는 자기 대신 가족들이 대가를 치른다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며 당황하고 당혹한 표정을 짓는다.
“네 부모님은 참 사이가 좋으시고 가족애도 큰 사람들이더라?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의 발단은 애초에 그 사람들이잖아. 물론 직접적인 잘못은 네가 저질렀지만 말야.”
“다, 달링….”
“닥쳐.”
습관이라도 된 양 날 달링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리듯이 내뱉으니 소피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움찔해버린다.
인증기를 켜서 드와이트 에델베르그를 검색해보니 물리학과 위상력을 결합시키는 분야에서는 꽤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고 나와 있었다. 거기다 자식들도 드와이트의 뒤를 따라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드와이트 에델베르그는 영국은 물론 위상 물리학에서 뛰어난 학자이자 연구자. 동생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석학사. 그런 아내이자 엄마인 이치카 에델베르그는 C 클래스의 신체 강화 능력자. 와우, 대단한 집안이야.”
짝짝짝.
미약하게 살기를 일으키면서 살짝 박수를 치며 소피아의 두 눈을 노려봤다.
“현대법상 연좌제로 죄를 물을 수야 없겠지만 내가 영국에 정식으로 항의하게 되면 꽤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아? 날 죽이려 했다는 이유로 일본 고위 공직자 태반의 목이 날아갔다고?”
가족을 대상으로 협박하면 상당한 정신적인 괴로움을 받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소피아는 괴로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난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으며 소피아의 반응을 차갑게 노려보던 프랑은 허튼수작 부렸다간 바로 번개를 날려버리겠다는 듯이 손을 뻗어 번개를 모은다.
그에 소피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으면서 날 올려다본다.
“달…. 아니, 마스터의 노예가 되어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게요. 제 가족은 죄가 없어요. 그러니 제발….”
“왜 죄가 없어? 여기 오기 전에 이야기를 다 듣고 왔는데 네 의사가 포함되긴 했지만 널 일본에 팔아버리듯이 넘긴 건 그 사람들이잖아. 그것만으로도 죄는 충분한데?”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소피아를 보면서 피식 웃으면서 말하니 소피아의 마르고 야윈 얼굴에서 점점 다급함이 번져간다.
“그리고 넌 애초에 변명이나 선택권이 없어. 일본도 박살 낸 마당에 네게 남은 가치는 분풀이용 샌드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건 이치카 에델베르그도 마찬가지고.”
“아니예요! 어머니는 일본과 관계없는 평범한 분이세요!”
내 말에 고개를 격하게 젓다가 어질하고 머리를 잡고 비틀거렸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고 그런 게 아니라는 듯이 간절히 말하지만, 난 못 믿겠다는 모습을 보이며 소파에 일어나서 엎드린 채 고개만 든 소피아의 뒷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려찍었다.
쾅!
“꺄…윽.”
“그걸 어떻게 알아. 영국에 넘어오기 직전 그 당시에는 일본 비밀정보부에 있었다며. 네가 아는 이치카 에델베르그의 모습이 그게 전부라는 걸 확신 할 수 있어?”
“…!!”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마룻바닥에 이마를 박은 소피아는 머리를 들 생각도 못 하고 파르르 떤다.
“사람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지. 네가 화연이에게 있어서 친언니와 마찬가지라는 존재라고 해서 나도 널 믿고 있었는데 되돌아온 건 뒤통수네? 네가 배신자…라는 말은 안 맞겠군. 니가 스파이라는 말에 화연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한 지 알아? 누나가, 혜령이 이모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아냐고.”
말하다 보니 점점 화가 난다. 뒤통수를 친 소피아에 대한 분노와 하철수에 대한 증오가 겹쳐져 뱃속에 똬리를 트는 기분이다.
발을 들어 소피아의 뒷 머리를 구두 굽으로 지그시 누르는데 반항도 하지 않고 억눌린 소피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죄…송….”
“내가 하늘 섬에서 B 클래스가 되어 돌아왔을 때 넌 도망이 아니라 나나 화연이에게 솔직하게 말을 하고 용서를 비는 쪽을 선택해야 했었어.”
퍽!
“아악.”
소피아의 머리에서 발을 떼고 분노를 담아 어깨를 걷어차니 뒤로 발랑 넘어지며 비명을 지른다. 내 발길질에 얻어맞은 왼쪽 어깨뼈가 부러지며 늘어지고 덜렁거린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소피아를 보며 힐링 웨이브 1단계를 발사했다. 저러다 쇼크사라도 하면 곤란하지.
“아윽….”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그녀의 어깨를 보다가 어깨뼈가 박살 나는 고통의 후유증에 몸을 버둥거리는 소피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슴을 다시 걷어차 넘어트리니 마른 나뭇바닥이 삐걱거리며 굉음을 토해낸다.
넘어진 소피아의 가슴 위에 발을 올려 지긋이 힘을 준다.
“카…흑.”
우두둑….
명치에 올려진 내 발아래 희미하게 뼈가 어긋나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랬어?”
“끄극. 자, 잘…못…. 흐, 용서해…주….”
“니가 지금 용서를 구할 처지라고 생각해?”
“아, 니…. 모두, 제…잘…못…!”
“…….”
…배신하고 도망간 소피아는, 처음에는 마나 비전의 효과가 사라져서 일본의 명령을 받아 날 배신하고 튀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마나 비전의 호감도 효과는 여전히 남아있는 거 같다.
소피아는 가슴이 압박당하면서 뼈가 뒤틀리는 고통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옅게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다.
“서하. 이러다 죽겠어요.”
점점 안색이 파래지는 소피아의 야윈 얼굴을 내려보다가 가슴에서 발을 뗐다.
“쿨럭! 하악, 하악!”
내게 호감이 있다면 어째서 배신하고 도망간 거지?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며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는 소피아를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
“왜 도망간 거지? 그때 나와 화연이를 찾아와서 사실대로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약간의 벌은 받았을지 몰라도 쉽게 용서를 받았을 거라는걸 너라면 알았을 거 아냐.”
“그…. 콜록. 제 가족…의 곁에 일본에서 심은 첩자가 있. 하악. 하악. 첩자가 있었어요. 그, 그리고 제 곁에도…! 제가 마스터께, 화연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면 그 첩자들, 콜록! 첩자들은 부모님과 언니 동생들에게 테러를 가하도록 이야기가 되어있어서 말씀드릴…수가, 없었어요….”
소피아의 마당발에 친화력이라면 자기 주변에 심어진 첩자 따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겠지.
일본에서도 소피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고 했었지? 그럼 한국에서 도망칠 때 그 첩자를 처리하고 그 뒤에 비밀리에 영국에 들어와서 자기 집에 붙어있는 첩자를 처리했었나 보다.
거기에 한국 정부에서 누군가 찾아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드와이트 부부와 입도 맞췄을 테고.
드와이트가 말했었지, 나랑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찌했겠냐고.
그래.
맞다. 나도 소피아와 같은 행동을 했을 거다.
“하악. 제가, 스파이 짓을 계속하는 와중에 마스터께서 B 클래스에 올라서고 점점 강해지고 계셨었어요. 거기다 일본과의 사이가 벌어지고 사태가 점점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이어진 소피아의 이야기로는 그와 동시에 영은이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니 이대로 가다가 자기가 잡히면 입막음을 위해 자신의 가족이 테러를 당할 판이고, 그렇다고 나에게 투항해봤자 첩자에 의해 부모님과 가족이 죽게 되는 결과는 똑같이 나올 테니 결국 근처에 있던 첩자를 처분하고 그대로 몸을 빼내 영국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누워서 가슴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린 채 계속 콜록거리는 소피아를 보다가 힐링 터치를 한번 걸어줬더니 비틀거리면서 다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한결 편해진 표정의 소피아는 파리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습격자들이 마스터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알린 것까지는 제가 한 짓이예요…. 하지만 단시간에 말도 되지 않게 강해지시는 마스터의 모습을 보며 이대로 계속 성장하신다면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으시고, 누구의 발아래에 계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C 클래스에 올라서신 이후로 일본에 아무런 정보도 넘기지 않았었고, 그건 정보 부족에 의해 마스터에게 도발하는 것으로 나타난 거에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모로 주저앉아 날 올려다보는 소피아의 두 눈에는 습기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저도…. 화연을 제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화연과 사귀는 마스터도….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요.”
애처롭게 웃은 소피아는 시선을 내리깔면서 계속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안위도 중요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리시겠지요. 절 마스터의 마음대로 처분하셔도 기꺼이 따를게요. 그러니 부모님의 죄도 전부 제게 물어주세요. 두 분은 제 억지에 넘어간 것뿐이에요…! 제가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대신 일본으로 가셨을 거에요. 그리고 평범한 레이더가 되셨을 거구요!”
숨이 차서 할딱이는 모습을 무표정으로 내려보고 있으니 계속해서 입을 연다.
“제가 어머니 대신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스파이가 된 거예요. 그렇게 화연의 근처에 잠입한 거였어요! 마스터의 정보를 빼내서 일본으로 넘긴 것도 제 의지예요! 그러니 제발 저 하나만으로…!”
결국 참지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소피아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프랑을 돌아보니 프랑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일단 처분은 뒤로 미루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내 발 앞에 다시 무릎 꿇고 연신 절을 한다. 그런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잡고 천천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끄극.”
목이 잡혀 공중에 들어 올려진 소피아는 두 손으로 내 팔을 잡고 두 다리를 힘겹게 버둥거린다.
이마에 핏줄이 생기고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소피아를 눈과 목에 마나 시브를 최대한 모으고 살기까지 뿌리면서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건 네 자유지만, 아직 처벌은 하나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둬. 너에 대한 처분이 결정 나기 전에 또다시 허튼수작 부리다가 걸리면 너 혼자만이 아니라 네 가족들에게도 현상수배를 내릴꺼야.]”
목이 잡힌 소피아는 대답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데 내 손으로 그 떨림이 전해져온다.
“[현상금은 고위급 위상석으로, 살아만 있으면 OK를 조건으로. 그게 뭘 뜻하는지 알겠지?]”
얼굴이 붉게 충혈되며 입을 뻐끔거리고 지진 난 듯 마구 떨리는 벽옥색 눈동자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에는 너 혼자 가 아니라 네 가족 전부도 지옥 같은 현실에 떨어질 거라는걸 기억해두도록 해.]”
“끄르륵!”
눈이 튀어나올 듯이 충혈되고 입가에 거품을 내기 시작하는 소피아를 좁은 거실 나무 바닥에 내팽개치니 쿠당탕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지는데,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이라 그 충격에 몸의 몇 군데 뼈가 부러진 게 감지됐다.
“아으윽!! 하…악. 학. 네…에!”
자빠진 채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벌벌 떠는 소피아는, 냉정한 내 모습에 스스로 회복도 걸지 못하고 공포와 슬픔과 아픔이 혼돈을 이루는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
그 모습에 말없이 힐링 웨이브를 쏴버렸다.
제길, 분노와 증오 때문에 폭력을 썼지만,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최악이 돼버렸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밉고 죄가 많은 악당은 한없이 미워서 폭력을 쓰고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여버려도 죄책감은커녕 통쾌함만 느껴질 텐데.
분명히 잘못을 저질러 경호원 형 누나들을 죽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수많은 사람이 다치게 만들었는데도 사정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에 이렇게 찜찜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게 하다니, 진짜 최악이다.
“서하….”
내 신경 안정제인 프랑이 아니었으면…. 후우.
소피아를 이대로 내버려두기는 뭣해서 어쩔 수 없이 등에 업어서 사보이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소피아를 등에 업고 하늘을 달려서 런던으로 되돌아가고 있으니 등을 통해서 맞닿은 소피아의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오는 도중에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무언가 웅얼거리는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딱히 내게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그 이후에 훌쩍이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묻더니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고 고른 숨소리를 봐서는 잠이 든 거 같다. 아니, 기절했나?
호텔에 도착했을 땐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빠와 경호팀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갔나 했더니 거실 테이블 위에 쪽지가 한 장 올려져 있었다. 프랑은 그 쪽지를 집어서 보더니 내게 쪽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버님은 런던 대학교에 가셔서 밤늦게 오신대요.”
[런던 대학교에 다녀오마. 늦을지도 모르니 저녁은 먼저 먹어라 -아빠.]
진짜 꼭 필요한 말만 적어놨네. 쪽지를 보고서 정신을 잃은 소피아를 소파에 눕혀놨다.
…잠시 밧줄로 묶어놓을까 생각했지만, 그냥 이대로 두기로 했다. 아까 소피아가 숨어있던 집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가족의 목숨을 위험하게 할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객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말해두는 걸로 충분하겠지.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더니 인증기에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싶어 확인해보니 누나다.
[서하야?]
“응.”
홀로그램 창에 뜬 누나 뒤로 집무실의 하늘이 보인다. 슬슬 해가 지고는 거 같다. 토요일인데도 저렇게 죽어라 일하고 있다니, 못 말릴 워커홀릭 누나네.
[별일은 없지? 리디아는 잘 만났니? 아침은 챙겨먹었구? 아빠는 뭐하셔? 영국의 날씨는 변덕스러우니까 옷 여러 장 입고 더울 때마다 한 장씩 벗고 있지?]
“…하나만 물어봐 좀. 영국 여왕이 나랑 밥 먹고 싶어서 공주를 미끼로 세운 일 빼면 별일 없고 저녁은 좀 있다 먹을 거야. 아빤 런던 대학교에 가시더니 아직 안 돌아오셨고. 그보다!”
내 말이 끝나려 하니 또 입을 열려고 하길래 잽싸게 말을 막았다.
“위상 세계 관련 연구소 하나 지을 건데 누나가 그거 좀 본격적으로 알아봐 줘. 그리고 예전에 내 싱크탱크 이야기는 어떻게 됐어?”
[아 응. 싱크 탱크는 지금 국내 저명한 석학들을 알아보는 중이야.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고집이 세져서 유연한 사고방식이 힘들 수가 있으니까 30살에서 50살 사이로. 그리고 연구소는 어느 정도 크기로 지을 건데?]
“작게 지었다가 증축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크게 짓는 게 좋겠지?”
[응…. 너라면 자금 문제는 없을 테니 초기 자본은 10조로 시작할까?]
…10조? 10,000,000,000,000원?
멍한 표정으로 누날 보고 있으니 누나는 피식 웃더니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너, 지금 한 번에 10조 전부 다 쏟아붓는다고 생각하구 있지?]
“어? 아냐?”
[바보야. 대지 확보하고 건물 올리는데 최소 1년은 잡아야 해. 그동안 남은 돈은 다 놀릴 거니? 몇 단계로 나눠서 투입하면 돼. 그러면서 필수 연구설비를 도입하고 그러다 연구 결과로 이윤을 내기 시작할…. 그래그래. 이런 이야기 해봤자 넌 한 귀로 흘려버릴 테니 나한테 맡겨둬. 돈은 네 계좌에서 빼 쓰면 되지?]
“응…. 어? 신촌동에 집도 지을 건데!”
[알아알아 넌 이 누나한테 다~ 맡겨두면 돼. 오키?]
“어 오키.”
그 뒤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날 괴롭히길래 할 일 없으면 그만 쉬러 가라고 버럭 소리쳤더니 [흥!] 하고 삐진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하아. 가장 큰 문제였던 소피아를 잡았으니까 나머지 일은 적당히 해결해나갈까.
아침도 걸러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보이 호텔의 식당으로 내려갈까 했지만…. 아까부터 객실 계단 쪽에 누군가가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보나 마나 다른 나라에서 보낸 에이전트나 뭐 그런 사람들이겠지. 나가기가 급 귀찮아져서 프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프라앙. 나가기 귀찮은데 그냥 프랑이 밥 해주면 안 돼?”
“후훗.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먹고 싶은 거 전부 이야기하면 내가 배 터져 죽을 거야. 그러니까 프랑이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줘.”
“킥킥.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다가 거실의 소파에 앉아 프랑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걸 보고 있는데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 위상력 5,128만의 능력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뭐야. 위상력이 …5,128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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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