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47화 (247/517)

00247  영국으로.  =========================================================================

박사라서 머리도 좋고 배운 것도, 알고 있을 것도 많을 드와이트는 내 이야기에 반박도 못하고 줄곧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소, 소피를 찾으면 어쩌실 생각이시오.”

이봐요, 아저씨. 그년에 대한 호칭이 바꼈잖아. 관계없다며. 근데 그 상냥하고 친밀해 보이는 애칭은 뭐야?

“그년은 스파이니까 영국 정부도 보호해주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무국적자겠네요. 일반인이 아닌 능력자니까 조지려 한다고 해서 능력자 연합에서 개입하지 않을 테고 무국적자니까 법의 보호도 못 받을 테고, 고문하고 죽인다면 제 도덕적인 부분이 지탄받겠지만 뭐 일본도 박살 낸 상황에 그런걸 따지는 것도 웃기겠네요.”

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에델베르그 부부는 침착하게 가만히 있질 못하는 게 과연 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반응을 보일 만큼 아끼는 딸래미를 스파이로 일본에 넘긴 걸까 궁금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년을 찾으면 속이 풀릴 때까지 화풀이할 거에요. 그년이 우리한테 해코지했으니 명분도 이쪽에 있고…. 반 죽여놓고 치료해주고 다시 반 죽여 놓고 치료해주고, 거지들을 모아서 윤간하게 하고 고문하고 혀를 뽑고 눈을 파내고 손톱을 하나씩 뽑으면 속이 풀리겠네요.”

그리고 미친놈처럼 보이게끔 상큼하게 웃으면서 대답해주니 드와이트 역시 얼굴색이 꺼멓게 죽어간다.

“아, 일본에서는 남자용 자위 기구를 오나홀이라고 한다죠? 이치카 씨도 일본인이니까 알겠네.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살아있는 오나 홀로 만들어버리면 재밌겠는데요. 아무튼, 화가 풀릴 만큼 풀리면 그다음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카트라즈에 처박아버릴 겁니다.”

부부가 쌍으로 까맣게 죽은 표정을 보다가 씩 웃어주고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니 이치카 에델베르그가 황급히 다가와서 내 팔을 잡는다.

“그랜드 마스터! 그 일은 저 때문에!”

“부인!!”

자기 때문이라…. 빙고인 거 같지?

이치카 에델베르그가 다가와 내 팔을 잡으니 프랑이 벼락을 쏘아내려 했지만 내 제지에 벼락을 두 손에 가득 담기만 하고 쏘아내진 않았다.

프랑의 온몸에 흐르는 벼락 줄기에 드와이트 부부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드와이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와 이치카를 번갈아 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고 이치카는 눈물을 흘릴 거 같은 표정이 된 채 프랑의 노기 어린 시선에 내 손을 놓았다.

이치카에게 잡힌 부분을 툭툭 털어내며 돌아서서 두 사람을 보고 냉정하게 말했다.

“뭔가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본데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요.”

“그건….”

망설이는 드와이트의 모습에 눈에 다시 마나 비전을 키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칼자루는 제가 쥐고 있다는걸 잊지 마시죠. 당신들의 이야기와 태도에 따라 소피아의 목이 붙어있느냐 떨어지느냐가 결정된다는 걸 알아두세요. 제 변덕이 사라지기 전에 전부 사실대로 부는 게 좋을 거에요.”

내 냉정한 말에 드와이트는 두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을 쉬었다가 수십 일간 잠을 못 잔 사람 같은 표정으로 고뇌에 찬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이치카는 그런 남편의 옆에 앉아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그의 손을 어루만진다. 그런 부부의 그 모습을 보며 영상 기록을 켰다.

사건의 발단은 10년 전, 일본이 이치카를 되돌려받으려 든 데서 시작되었다.

일본이 세계 각국의 레어 타입 능력자를 빼돌리려 든 데서 일어난 일본 능력자 사태는 해당 나라에 능력자를 되돌려주고, 피해를 본 곳에 일본의 능력자를 60년간 파견하고 막대한 양의 배상금을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말이 60년이지 그 당시 보내어진 대부분의 능력자의 나이가 30대 중후반이라고 들었으니까 그쯤 되면 오랜 시간 젊음과 긴 수명을 가진 육체 강화 능력자가 아닌 이상 60년이라는 시간은 능력자 대부분이 파견된 나라에서 삶을 마감할 긴 시간이다.

에쿠레아 이치카, 지금의 이치카 에델베르그는 당시 20대 초반의 D 클래스 초입의 신체 강화 능력자였다.

당시 에델베르그 가문에서는 G클래스 감지 능력자 한 명을 빼앗겼었는데 감지 능력자가 되돌아오며 그녀 역시 팔려오듯이 에델베르그 가문으로 넘어왔지만 에델베르그 가문의 사람들은 화도 안 나는지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며 가문에 녹아들게끔 보살펴주었다.

능력자 사태는 일본이 잘못한 거지 개인인 그녀가 잘못한 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완전 대인배들 아냐? 나 같았으면 그냥….

그런 에델베르그 가문 사람들의 모습에 감화된 이치카는 마음으로 당시의 가주를 섬기며 오랜 시간 에델베르그 가문의 능력자로 활동했단다.

그렇게 신체 강화 능력자로 활동하던 중 당시 가주의 슬하에 외동아들이 태어난다.

그 아들의 이름은 드와이트.

물오른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농익은 몸매를 자랑하며 동양의 이색적인 매력을 가진 이치카는 일본에서 손해 배상으로 넘어왔다는 이유로 깔보며 물건 취급하려는 다른 능력자들에게서 자신의 능력으로 몸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육체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들의 손길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며 에델베르그 가문에서 점점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이치카는 드와이트가 10살이 될 무렵 C 클래스에 올라서게 됐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던 그녀의 외모가 20대 초반으로 되돌아가고 학자 가문이던 에델베르그 가문에서 유일한 C 클래스가 된 이후 보란 듯이 에델베르그 가문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봐오던 드와이트가 젊고 아름답고 강하고 몸가짐도 바른 이치카에게 반하는 건 필연적인 거였겠지.

어린 시절부터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이치카에게 열렬히 구애를 펼치던 드와이트는, 이치카가 에델베르그 가문에 애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살 거라고, 에델베르그 가문은 자신의 대에서 끝날 거라는 협박과 애원으로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드와이트 나이 30살. 이치카가 51살일 때의 일이다.

십수년간 드와이트의 격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도달한 둘은 가문 사람들의 축복 속에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며 이듬해 첫 아이를 출산한다. 그 뒤로 격년으로 네 명의 자식을 두는데 소피아는 그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소피아가 17살이 되던 해, 206년에 일본 능력자 사태로 맺은 60년의 계약이 끝나 일본 능력자관리본부에서 에델베르그 가문을 찾아왔다.

아직 살아있는 데다 C 클래스가 된 신체 강화 능력자. 거기에 실전 경험도 많고 영국 내에서 60년간의 생활로 수많은 정보까지 가진 이치카는 일본의 관점에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보석이나 마찬가지였겠지.

이치카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챈 드와이트는 필사적으로 그간 쌓아온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이치카가 일본으로 가는걸 막아보려 했고 이치카도 영국에 남기 위해 귀화와 망명 신청을 해보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봤지만….

정당하게 맺은 계약이 만료되어 일본으로 되돌아야 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일단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부는 절망했다.

그러는 와중에 우국 신민회 소속의 고위 공직자가 드와이트와 이치카를 찾아온다.

“…소피아를, 간첩으로 키우게 넘기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대에겐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이 더 있지 않소. 부인과 세 아이를, 가정을 지키는 비용이 한 아이의 희생이라니, 적당한 비용이라 생각하지 않으시오?”

“적당한 비용이라니! 당신네는 생명을, 자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많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몇 가지 정보와 함께 당신들의 차녀인 소피아만 우리에게 넘겨주면 더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그 일본놈의 제안에 수일간 잠도 못 자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고뇌하던 부부는 자신들의 고뇌를 소피아에게 들키고 만다.

“제가 갈게요.”

“소피야!”

“안된다! 차라리 이 어미가 가마. 돌아간다 해도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니잖니…!”

“그거야말로 안 돼요. 어머니가 일본에 가게 되면 현재 일본의 능력자 상태를 봤을 때 어머니가 일본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워요. 우리 집에는 아직 어머니가 필요해요.”

“보나 마나 좋지 않은 일에 휘둘릴 거다. 절대 안 된다. 너는 내 소중한 자식이야….”

“아버지.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제가 가지 않으면 어머니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실 거에요. 하지만 제가 가면 그나마 연락이라도 가능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 절 버린 자식인 셈 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스파이인게 들통났을 때 가문에도 피해가 갈 거예요.”

그리고 소피아는 영국 사교계의 상류층 파티에서 일부러 나이 든 약혼자를 정해준 아버지, 드와이트의 뺨을 후려치고 절연을 선언한 뒤 뛰쳐나왔다.

그 고위 공직자란 놈은 소피아의 대인 친화력을 알아본 게 틀림없었던 거겠지. 실제로도 소피아는 10살 때 사교계에 데뷔한 이후로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교계의 공주로 발돋움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스파이 교육을 받던 소피아는 도중 위상 세계에 강제 소환이 된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원거리 회복 능력을 각성하고 생환하는 데 성공한다.

생환 후 더욱 보물 취급받으며 스파이 교육을 받은 소피아는, 한 자루의 비수가 되어 옆 나라 서 오랜 시간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여자의 자식을 테러해서 죽이기 위해 능력자 연합의 버디 시스템을 이용해 그 여자의 자식에게 접근했다.

그게 화연이었다.

드와이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명치에 한대 쎄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원래 계획은 화연이의 옆에서 화연이의 정보를 캐내다가 화연이를 죽이려 한 거였어?

화연이가 화랑을 나와서 타임리버를 세우려 할 때 얼씨구나 하고 따라 나온 게 그런 이유라고?

돌겠구먼…. 이걸 화연이가 알면 더 상처 입을 텐데.

“그걸 당신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그 아이가 틈틈이 자기의 임무를 암호로 된 편지를 보내준 걸로 알게 되었어요.”

“아니, 그럼 12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년…. 소피아가 스파이질 하는걸 두고 봤단 거에요?”

“그럴 리가 있겠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근처에 일본의 앞잡이가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그자를 찾아내 처리한 게 얼마 전의 일이오. 그대가 일본을 뒤집어엎지 않았다면 절대 못 찾았겠지. 우리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간 소피아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나서지 못했던 것 뿐이었소!”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거야?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 일본이 그딴 수작질을 벌이면 능력자 연합이든 영국 정부든 손을 벌려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었을 거 아냐?

바보 아니냐고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니 발끈한 드와이트가 버럭 하고 소리친다.

“그 첩자가 우리 곁에만 있었을 거라 생각하시오?! 소피아의 옆에도 당연히 있을 게 아니오! 우리의 섣부른 행동이 들통나면 당장에 소피아의 목숨이 위험해질 텐데 어찌 함부로 행동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의 허튼 행동에 당신의 약혼녀의 목숨이 사라진다고 하면 당신은 어쩔 수 있을 거 같으시오?!”

씩씩하면서 벌게진 얼굴로 울분을 토하는 드와이트를 보니 나름 수긍이 가긴 한다.

양 방간에 감시인을 심어놓고 허튼수작 부리면 한쪽이 죽는다고 협박하다니, 진짜 일본놈들 저질이네.

“그러니까 소피아가 뒤통수를 치고 소식없이 잠적했고, 일본이 나서서 소피아를 찾기도 전에 내가 일본을 만신창이로 두드려 패놓고 혼을 빼놓자 그 덕분에 소피아는 수월하게 숨어버렸고 당신들도 연락 체계가 흐트러져 흔적을 드러낸 첩자를 찾아내 조졌단 거네요?”

그래서 나름 딸의 안전도 확보됐겠다, 근심을 덜었다고 생각해서 부부끼리 찐한 모닝 섹스를 즐기고 있었다 이거구만.

“소피아가 지금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고 있죠?”

“…….”

남편의 손을 잡고 있던 이치카는 날 간절히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말해요.”

“말…하면, 그 아이를 용서해줄 생각이 있으신가.”

“일단은 제 연인 앞에 끌고 간 뒤에 그녀에게 처분을 맡길 거에요.”

말이 없어지는 부부를 보고 눈썹을 찌푸리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하든 말든 결과는 똑같다는걸 이 사람들이 모르네. 내가 마음먹으면 그 일본놈보다 더 악독해질 수 있다는 걸 실제로 보고 피눈물을 쏟아야 정신 차리겠군.

순순히 내게 협조하면서 내 동정심에 호소를 해야 그나마 자식 살리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알려드리겠어요!”

“부인….”

이치카는 이대로 말없이 있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는걸 눈치챈 거 같다.

“알려드리겠어요. 그러니 제발…. 그 아이의 목숨만은….”

결국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 이치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소피아가 숨어있다는 곳을 듣고 저택을 나온 나는 회색 구름이 가득 찬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니 절로 마음이 답답해진다.

“아오 씨발.”

“서하….”

100명의 죄인이 있으면 100가지 사연이 있다고 한다. 소피아의 밝은 모습을 떠올렸을 때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저런 일이 있을 줄은….

솔직히 지금은 알카트라즈에 들어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우국 신민회 우두머리 다섯 놈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대부분 맞아떨어져서 저 부부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에델베르그 가문의 저택을 감싼 공간의 벽을 치우고 하늘 높이 뛰어올라 공간의 벽에 벌렁 드러누웠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프랑이 보기에 저 이치카라는 여자는 어때 보였어?”

“전부 진심으로밖에 안보였어요.”

“그치? 나도 그렇게 보였어.”

내 공간 지각 범위의 끄트머리 머리에 걸쳐진 에델베르그 가문 저택에서 드와이트와 이치카가 보이는 반응을 살펴보는데 남편의 위로를 받는 이치카는 계속 흐느껴 울고 있었다.

만약 저게 전부 연기라면 진짜 개 소름이다. 하철수 그 새끼와는 다른 의미로 절대 살려둬선 안될 거 같은 인간이다.

프랑도 한숨을 살짝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인증기를 켜서 혜령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스터? 영국 여행은 괜찮으신가요?]

혜령이 이모는 씻고 나왔는지 목욕가운을 입고 촉촉이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아서 말리고 있었다.

“네에 뭐…. 이모,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소피아가 배신했다고 했을 때 이모는 에델베르그 가주와 결혼한 여자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모두 일본의 첩자로 키웠다고 했잖아요. 그거 여사님한테서 들은 거에요?”

[여사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국정원의 조사결과를 자료로 받아본거였어요.]

국정원의 조사 결과에는 조사한 사람의 사적인 의견이 가득 들어있었던 거구만.

“이모가 생각하기에 그 이야기에 신빙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 자료의 신빙성 같은 건 생각 안 했어요. 중요한 건 그들의 자식이 마스터를 해할 흉계를 꾸몄다는 거고 그건 누구도 부정 못할 팩트니까요.]

…그건 그러네.

혜령이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니 흐려졌던 논점이 바로잡히는 기분이다. 사연이 있다지만 소피아와 에델베르그 부부는 가해자고 나와 화연이, 우리는 피해자다.

내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본 혜령이 이모는 방긋 웃으면서 물었다.

[고민은 해결되셨나요?]

“덕분에요. 역시 혜령이 이모는 우리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후훗. 제가 도움이 된다니 기쁘네요.]

“그럼 끊을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스터도 영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전화를 끊고 프랑을 보니 그녀도 마음을 다잡았는지 날 조용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지 좋은 방법이 생각나셨나요?”

“응. 잘하면 내가 지을 연구소에 평생 연구원도 하나 추가할 수 있을 거 같아. 덩달아 C 클래스 회복능력자 노예도 구할 수 있겠는걸.”

연구소에 갈아 넣을 공돌이 명단을 머릿속에 만들고 있었는데 거기에 한 명 더 추가해야지. 소피아가 어디론가 튈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저 부부의 마음이 바껴서 소피아를 도망치게 만들지 모르니까 미리 정리해야겠다.

근데 진짜 일본은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아오.

소피아가 숨어있다는 곳은 웨스트서식스 서쪽에 있는 윌트셔 주의 네더에이본이라는 곳이라고 이치카가 알려줬다.

“스톤헨지가 있는 근방이네요?”

“스톤헨지가 거기 있어?”

스톤헨지…. 소피아를 붙잡고 잠시 들러서 보고 갈까나.

프랑의 휴대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켜서 네더에이본이라는 곳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소피아 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후딱 처리하자!

그리고 수십 분을 달려 네더에이본에 도착했더니 이치카의말대로 공간 지각 끝에 소피아의 익숙한 위상력이 감지된다!

위상력 342만의 C 클래스 최상급에 회복 타입!

찾았다!!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한쪽으로 밀어두고 소피아가 있는 집의 상공에서 주변 상황을 차근히 살펴봤다.

소피아가 숨어있는 집은 빨간색 2층 벽돌집에 작은 정원과 텃밭이 있는 조금 오래된 집이었다.

회색 벽돌로 둘러진 담장에는 담쟁이덩굴이 자라있었고 담의 모서리마다 나무가 몇 그루씩 심겨 있어 담장 밖에서 집 안이 잘 안 보이게끔 가리고 있었다.

텃밭이 있긴 하지만 쓰진 않았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차고에는 연식이 오래된 소형 승용차가 주차되어있다.

그냥 봐서는 전~혀 이상 없는 시골의 평범한 집이다. 다만 그 집 안에 소피아가 혼자 있다는 게 여타의 집과 다른 점이지.

집 안을 살펴보니 여기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가구도 별로 없고 휑뎅그렁하다.

소피아는 좁은 거실의 낡은 소파에 앉아 무릎담요를 하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통통했던 살이 많이 빠져서 초췌해 보였다. 공간지각으로 몸을 살펴보니 몸무게가 10kg은 빠진 거 같다.

안 그래도 슬랜더 타입인데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더니 뼈랑 가죽만 남은 거 같다. 프랑도 소피아의 몸을 살펴봤는지 얼굴을 찡그리면서 입을 열었다.

“굉장히 말랐네요.”

“저번 달 25일에 튀었고 오늘이 15일이니까 20일 동안 도망 다니느라 제대로 못 먹었을 수도 있겠지. 뒤통수치고 숨었으면 잘 처먹고 살이나 뒤룩뒤룩 찌울 것이지 저게 뭐야.”

잡힐 때를 대비한 동정심 호소작전이냐?

투덜거리면서 다시 집을 살펴 소피아가 무기로 쓸법한 것들이 있나 찾아본다.

무기라고 해서 소피아가 그걸 들고 날 공격하는데 쓸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접근전을 못한다고 해도 일반인과 신체 능력이 비슷한 회복 능력자인 소피아가 무기를 들고 덤빈다고 무서워할까 보냐.

그러니까 무기를 찾는 이유는 만약의 사태에 소피아가 자살할까 봐 찾는 거다. 집안을 비롯해 지하실과 벽 속까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무기로 쓸법한 건 안 보인다.

있었어도 공간의 벽으로 다 지워버렸을테니까. 아무튼 잠시 집안이랑 집 밖이랑 마을 전체를 돌아봤지만, 수상한 점은 안 보였다.

“내려가자.”

“네.”

소피아가 숨어있는 빨간 벽돌집에 내려서서 나무문에 달린 사자 머리 모양 문고리를 보다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문을 몇 번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지만, 소피아는 눈을 감은 채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조용히 가슴 부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걸 보면 잠이 든 거 같다.

“자고 있나 보네요.”

문 손잡이를 돌려보니 잠겨서 안 열린다. 그렇다고 못 들어갈 이유가 없지. 공간의 벽으로 잠금쇠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나무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지나 작은 거실로 들어갔지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는 소피아는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야윈 얼굴에 벌꿀 색 머리카락은 잔뜩 빛이 바랜 듯 푸석푸석해져 있고 공간 지각으로 살펴본 소피아의 몸은 말라서 갈비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한여름인데도 조금 쌀쌀한 집안 온도를 못 견뎠는지 색이 바랜 갈색 가디건을 걸치고 조금 두꺼운 무릎 담요를 펼쳐 다리를 덮고 있었다.

…나 참. 이런 꼬라지가 되도록 뭘 한 거야. 뒤통수를 쳤으면 잘 먹고 잘살기라도 해야지.

어쩐지 답답한 마음에 소피아가 앉아있는 의자의 맞은편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심정은 프랑도 마찬가지였는지 찌푸려진 얼굴을 풀지 못하고 소피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잠들어있는 소피아의 얼굴을 보다가 인증기를 매너 모드로 전환하고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 : 소피아를 찾았어.]

[pres.Yuu : 정말?]

[유화연 : 어디지?]

[당신: 영국 윌트셔의 네더에이본이야.]

[pres.Yuu : 잘했어! 당장 요원들을 보낼 테니까 꼭 잡고 있으렴!]

[당신이 사진을 전송합니다. file name = 좀비녀.jpg]

[pres.Yuu : 뭐니 이게?]

[유화연 : 이게 소피아라고?]

놀란 듯한 영은이와 화연이에게 조용히 에델베르그 부부와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주니 채팅창이 침묵에 잠겼다.

[당신 : 일단은 우리를 배신한 년이니까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도 지금 상태에서는 어떻게 손을 썼다간 숨넘어갈 모습이야. 그러니 살 좀 찌운 다음에 두들겨 패거나 밟아주자.]

[pres.Yuu : 음. 뭐, 자기의 말이라면 따라야지.]

[pres.Yuu : 화연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pres.Yuu : 연아~?]

[pres.Yuu : 연아?]

[pres.Yuu : 손가락에 꿀 발라놨니?! 왜 말이 없어!]

[유화연 : 서하. 그녀의 처분은 나에게 맡겨준다고 했었지?]

[당신 : 응.]

[pres.Yuu : 어? 뭐야! 용서해줄 생각인 거니?!]

[유화연 : 용서해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 보이니 처벌에 약간의 손 속을 둘 수는 있겠지요.]

[pres.Yuu : ;;; 뭐니 그게. 우리 자기를 죽이려고 작당한 것들이라구? 그런데 봐주자는 거니?]

[유화연 : 모르겠습니다.]

[pres.Yuu : 모르면 처분은 나한테 맡기렴.]

[당신 : 영은이한테 맡겼다간 소피아가 죽어버릴 거 같으니까 안돼. 일단은 에델베르그 부부에게도 소피아를 봐준다는 식의 이야길 해놨으니 죽이는 일은 절대 안 돼. 알카트라즈에 처넣는 것도 안돼.]

[pres.Yuu : 아이잉~! 고문 풀코스를 준비해놨는데…. 칫.]

고문을 준비했다는 말에 프랑이 한숨을 폭 쉰다. 만약 평범한 스파이였으면 나도 실황 고문을 시청했을테지만…. 일단 상황 좀 보고.

[당신 : 일단 처분은 화연이한테 맡긴다고 했으니까 한국으로 보낼게.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그때까지 잘 먹여놔. 안 먹으려 들면 억지로 먹여서라도 살찌워놓고.]

[pres.Yuu : 알았어.]

[유화연 : 알았다.]

[당신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은이는 소피아한테 손대면 안 돼!]

[pres.Yuu : 알았다구 ヽ(`Д´)ノ

[pres.Yuu : 자기 나빠! 나만 나쁜 년으로 보구!!]

[pres.Yuu : 。゚・(>Д<)・゚。]

[당신 : 솔직히 말해봐. 내가 말 안했으면 손대려고 했지?]

[pres.Yuu : Σ(=ω= ;)]

[당신 : …소피아를 끌고 갈 요원들을 바로 보내. 알았지?]

[pres.Yuu : 응….;-( ]

그때 소피아가 일어나려는지 살짝 신음을 흘리면서 얼굴이 찡그려진다.

============================ 작품 후기 ============================

어제 후기에 올린글에 약간 오해가 있었던거 같아서;;

지금 쓰고 있는 방식은 안바꿀거에요. 습작하거나 프리미엄란으로도 안보낼거에요!

이대로 쭉~ 완결 내고 그 다음에 출판할때 제가 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물론 노블레스에 있는건 그대로 둘거구요.

이른바 전연령…은 아니고 15금 버전?

오해 ㄴㄴ해!

그리고 제가 말한 악의가 느껴지는 코멘트는 150화 이전에 근래에 새로 달리는 코멘트들을 이야기한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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