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6 영국으로. =========================================================================
한국에 있을 때 소피아를 찾으려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해봤었다.
쉽게 가려면 적당히 사람들을 풀어서 소피아가 도망갔을 법한 장소를 산출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숨어있을 법한 나라에 협박하는 거지.
“너희 나라에 내 뒤통수를 치고 튄 년이 숨어있으니까 걔 찾아내. 안그럼 그 년이 숨어있을 만한 곳에 싱크홀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그냥 땅속 깊은 곳에 원형으로 공간의 벽을 만들어버리면 그 위에 있는 흙은 죄다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 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테니까.
그렇게 하면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나 뭐 높으신 분들이 어떻게든 찾아내서 바치지 않을까 생각해봤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무지막지한 현상금을 걸어서 생포를 조건으로 내거는 것도 있다. 대충 고위급 위상석 하나를 현상금으로 내걸면 온갖 국가들이 나서서 찾아내 주지 않을까? 현상금 사냥꾼들도 뛰어드는 건 덤이고.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생각해봤다가 곧장 폐기했다. 대놓고 협박하는 방법을 썼다간 여러 나라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을 받을 게 뻔하고 나도 딱히 나한테 잘못도 안 했는데 시민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개트롤 짓을 하고 싶진 않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협박을 일삼으면 되레 내 목을 내가 조르는 셈이 될 거 같지 않아?
옆 나라 열혈 만화를 보면 보통 착한 놈들은 지켜야 할 사람이 많을수록 강해진다!'라고 하고 나쁜 놈들은 지켜야 할 존재가 많을수록 약해진다!'라고 하는데 나는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으니까 그들이 위험해질까 봐 반발을 일으킬법한 막장 짓을 할 수 없게 되니 약해지는 게 맞고,
반대로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으니까 반발도 무시하고 막 나갈 수가 있는 거니 강해지는 게 맞다.
그러니까 여러 나라를 협박하다 보면 협박받는 놈들도 "아씹…. 저 새낀 그냥 놔뒀다간 내 목숨도 위험해질 거야.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해!" 하면서 수단을 찾을 테고 그 수단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러 버리고 본보기 삼아 몇몇 나라를 마포로 지워버리면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겠지. 하지만 어떤 만화에서도 그러잖아. 마음에 안 드는 놈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자기 혼자만 남게 된다고.
그런 식의 독재자의 끝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짓을 하면 내 연인들이나 부모님이랑 누나도 슬퍼하면 슬퍼했지 좋아할 거 같진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그년이 숨어있을 법한 곳에 마포를 쏴서 고통 없이 죽여버리는 짓은 할 수 없다. 소피아는 산 채로 잡아서 끓어오르는 이 분노를 직접 풀고 싶으니까.
그래서 영은이도 소피아의 흔적을 남모르게 추적 중인 거고 나도 내 나름의 수단으로 그년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거다.
두 번째 방법은 현상금을 걸어 소피아를 대신 잡아오게 하는건데, 이건 좀 고민중이다.
고위급 위상석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예로 들면 미국이나 중국 영국처럼 자기네 국가의 레이드 팀에서 가끔 나오는 고위급 위상석은 전부 전략 물자로 취급해서 자기네 나라에서 쓰지 딴 나라에 팔지 않는다.
내가 고위급 위상석 10개를 경매로 판다고 했을 때 홀로그램 창 너머에서 그걸 전부 정부에서 사야 한다고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한 거였다. 물론 그땐 내가 기분이 나빠서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런 거다 보니 위상석을 현상금으로 내걸면 개나 소나 나서서 소피아를 찾아내 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내 손에 멀쩡한 모습으로 떨어질 거란 생각이 안 들거든.
강간은 기본일테고 도망 못 가게 막느라 사지가 잘린 채 오는 건 옵션이겠지. 그런 상처쯤이야 숨만 붙어 있으면 회복 능력자가 깨끗하게 고쳐줄 수 있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놈들이 먼저 그년한테 손대는 건 싫다.
아무튼, 저런 생각을 하면서 몇 가지 일을 정리하기 위해 영국에 온 건데 영국 땅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선 순간, 영국에 온 내 선택이 정답이었다는걸 알았다.
이 땅에 소피아 그 년이 숨어있다는 걸 내 예감이 알려왔거든. 그래서 그 예감에 기대서 에델베르그 가문이 있다는 웨스트서식스 지방의 크롤리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니 그년의 본가에 쳐들어가서 들쑤시면 뭐라도 단서가 튀어나올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뭐 영국 왕실에 찾아가서 소피아 찾아내라고 생떼를 부리던가 해보지 뭐.
영국에도 MI6라는 비밀 정보부가 있잖아? 막 갈구면서 당근으로 위상석 몇 개 던져주면 괜찮지 않을까!
아, 저번에 일본 임시 총리가 사과하러 왔을 때 붙잡고 찾아내라고 갈굴 걸 그랬나…. 쩝.
런던에서 웨스트서식스의 중심부에 있는 크롤리까지는 서울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의 거리였다.
지상 200m 정도의 높이에서 이동 중인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웨스트 서식스 주에는 산이라고 할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전부 평지인걸.”
“한국의 산맥과 비교하면 서하한테는 영국 국토의 90%가 평지로 보일 거에요. 영국의 산은 대부분 이런 식의 구릉지나 평지거든요.”
런던을 나와 발아래 펼쳐진 평야를 지나는데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크롤리에 도착했다. 잠시 크롤리 북쪽에 있는 공항을 쭉 살펴보다가 도시 중심 부분으로 이동하니 공간 지각 범위에 크롤리가 전부 들어온다.
하지만…. 자주 봐서 익숙한 소피아 그년의 위상력은 안 보인다.
“없군.”
“저도 시야 분석으로 살펴보는데 역시 시야 분석은 이렇게 건물이나 시야를 가리는 곳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괜찮아. 그 능력은 현실보단 위상 세계에서 통하는 능력이니까.
살짝 풀죽은 프랑의 엉덩이를 쓰다듬어주며 웃으니 날 곱게 흘겨보며 내 손등을 약하게 꼬집는다.
도시의 북쪽에는 공항이 있었는데 저길 통해서 딴 곳으로 튄 건 아니겠지?
공간지각으로 다시 한 번 크롤리를 살펴보는데 휴대폰으로 에델베르그 저택을 검색하던 프랑이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동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에델베르그 가문의 저택은 여기서 동쪽으로 7km 거리에 있는 크롤리 다운에 있대요.”
“저긴가 보네.”
좀 더 하늘로 올라가서 눈에 힘을 주고 프랑이 가르킨 방향을 살펴보니 고급스러운 저택들이 모여있는 곳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방배동의 영은이 저택보다 5배는 큰 집이 크롤리 다운의 중심부에 있었다.
힘껏 공간의 벽을 박차 그 커다란 집을 향해 몸을 날렸더니 목표로 한 큰 집이 순식간에 다가와서 몸을 비틀어 그 저택의 커다란 정원에 사뿐히 내려섰다.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커다랗고 넓은 정원에 내려섰더니 잔디 깎는 기계로 정원을 다듬던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 네 명이 멍하니 날 바라본다.
저택의 고용인인가 보군.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싹 훑어보니 주변에 고급 저택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데 저택마다 능력자가 한둘씩 살고 있다. 능력자를 전부 다 하면 200명은 넘는걸.
여기가 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부잣집 동네인가보다. 아니면 에델베르그 가문에 고용된 레이드 팀원들이라거나.
하지만 대부분 E클래스 중급부터 D 클래스 중급 사이고 C클래스는 한 명뿐이다. 그 C 클래스는 여자였는데 바로 앞의 저택에 있어서 살짝 설렜지만 아쉽게도 소피아가 아니군.
그때 멍하니 있던 풀물이 든 체크무늬 셔츠와 멜빵바지를 입은 나이 들어 보이는 정원사가 주춤거리면서 내게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한국에서 온 정서하에요. 누굴 찾아 왔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이 집의 정원사신가요?”
“아, 이런 실례를. 에델베르그 가문의 집사를 맡은 제임스 허클리입니다.”
집사였어? 다시 그 아저씨를 살펴보니, 영은이네 집사 할아버지, 지금은 재단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주한 할아버지랑 약간 비슷한 절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제가 찾아온 사람은 소피아 에델베르그인데, 안보이네요. 그러니 그녀의 부모랑 만나고 싶은데 안내해주시죠.”
집사 아저씨는 내 옷차림을 살펴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주인어른과 약속을 하셨는지요. 주인어른을 만나 뵈시려면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 합니다.”
흰색 반소매 셔츠에 검은색 면바지에 캐주얼 구두를 신은 편한 옷차림이라 그런가? 그래도 나랑 프랑이 보여준 능력 때문인지 무례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넓은 잔디밭 저 너머 입구를 바라보는데 그쪽에서 E클래스 최상급 신체 강화 두 명이 날듯이 다가온다.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봐서 날 손님으로 봐주진 않는 거 같다. 하긴, 나라도 내 정원에 허락 없이 뛰어내리는 놈이 있으면 일단 경계부터 하겠다.
슬금슬금 도망가는 나머지 정원사들을 힐끔 보고 눈앞의 집사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리니 조금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에델베르그 가문의 땅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으면 당장 데려오는 게 좋을 겁니다. 전 좋은 뜻으로 찾아온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보란 듯이 에델베르그 저택 위에 거대한 호박색의 벽을 넓게 쳤다.
“헉! 파, 파괴신!”
“…파괴가 뭔지 보여드릴까요?”
이 아저씨가 사람 앞에 대놓고…. 기분 나쁘게!
인상을 쓰면서 집사라는 사람을 노려보니 내 사나운 눈빛에 겁먹고 황급히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달려오던 E 클래스 능력자들은 저택 위에 생겨난 거대한 평면의 공간의 벽과 날 번갈아 보더니 주춤거리면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품에 손바닥만 한 무언가를 꺼내더니…. 무전기인가? 무전기로 "긴급상황 A, 긴급상황 A 발생! 저택에 침입자가…!" 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프랑. 조금이라도 공격해오는 모습이 보이면 벼락으로 다 구워버려.”
“네!”
내 마탄이나 마나 탄은 위력이 너무 살벌해서 사람 상대로 적당하란 걸 못하니까.
헐레벌떡 뛰어간 에델베르그 가문 집사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집 안을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영화배우같이 잘생긴 중년의 사내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고 예쁜 여자와 침실에서 2세 생산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치는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가득 보여서 중년 사내가 젊고 예쁜 여자를 불러다 난잡한 생활을 즐기는 걸로는 안 보인다.
20대 후반의 여자는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C 클래스 중급의 동양인으로, 저 여자가 지금 에델베르그 안주인이 됐다는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 출신의 그 여자겠지?
계산해보면 최소 80살일 텐데 역시 C 클래스의 신체 강화 능력자인지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와 탄탄하고 잘빠진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에델베르그 가주일걸로 예상되는 남자도 열심히 운동하는지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몸이다.
“어머!”
…프랑도 공간 지각으로 그 장면을 봤는지 얼굴이 약간 붉어져서 날 흘끔거리면서 본다.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침실 쪽은 신경끄고 저택을 부지를 쓱 훑어보니 가로세로 200m 정도 되어 보이는 게 대충 1만 평은 되어 보인다.
그중 절반의 공간을 저택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6층의 중세시대풍의 고급스러운 저택의 외관에 비해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져있어서 신구의 조화가 무척이나 멋들어진 집이다.
“잘살긴 잘 사는 거 같네. 집안 여기저기에 위상석에 귀금속이랑 보석도 숨겨놨고.”
“영은의 저택보다 더 큰 거 같아요….”
그리고 부지 밖으로 D 클래스 능력자들이 우르르 저택의 입구로 달려오는 게 보여서 저대로 두면 귀찮게 굴 거 같아 공간의 벽으로 저택을 감싸버렸다.
저택 내부에 열댓 명의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하녀나 시종으로 보이니 나한테 위협이 될만한 짓은 못 할 거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서 집사가 향한 3층을 공간지각으로 살펴보니, 두 남녀가 생식행위 중인 방문을 계속해서 두드린다.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니 중년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가 일어나서 가운을 챙겨입고 여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새하얀 이불 속에 나신을 숨겼다.
침실을 나선 중년 남자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가 새파랗게 굳은 집사의 얼굴을 보고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파괴 신이 다짜고짜 들어와 주인님을 보길 원하고 있습니다!"라는 집사의 이야기를 듣더니 흠칫하고 굳어버린다.
이불 속에 숨어있던 여자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허튼수작 부리면 저택을 맨틀까지 가라앉혀버릴 테니 일단 내려와서 이야기 하시죠.]”
능력자도 아니면서 인증기를 가지고 있는 중년 남자는 전화를 하려는지 팔을 만지고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려 하고 여자도 옷을 빠르게 입으면서 고풍스러운 장검을 챙기길래 마나 시브를 목에 한껏 집중해 마나 보이스를 쏟아냈다.
남자도 여자도 저택 내부를 울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 흠칫하고 놀라며 하던 행동을 멈춘다. 그때 프랑은 저택 입구에서 공간의 벽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능력자들을 보며 궁금해했다.
“저 밖의 능력자들은 전부 사병화시킨 능력자들인 걸까요.”
“그렇지 않을까? 3층에 있는 여자가 C클래스 중급이니까 저들을 이끌고 위상 세계에 보내서 돈도 벌고 그럴 거 같아.”
그제야 호박색 투명한 벽이 담벼락을 따라 쳐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두 남녀는 창가에 선 채 넋을 잃고 있었고 밖에 있는 능력자들은 저택 부지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무기를 들어 공간의 벽을 공격했다가 무기가 통째로 증발해버리는 모습에 기겁한다.
속성 능력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속성 탄을 쏘아내 보지만 공간의 벽은 부딪치는 족족 전부 삼켜버리고 있었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무기도 능력도 통하지 않는 모습에 난감하고 곤혹스러워했다.
저택 3층에서 잔뜩 굳은 얼굴로 서로 마주 보던 두 남녀는, 이내 여자는 남자가 입을 옷을 가져와서 옷을 입혀주고 남자도 몸가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응접실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고급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두 남녀, 에델베르그 부부가 집사의 안내를 받아 평범하지만 고급스러운 옷차림으로 3층에서 내려오더니 날 보고 흠칫 놀란다.
놀라라고 눈에 마나 시브를 잔뜩 집중한 채 기다리고 있었거든.
“…기별도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 것만 해도 한국 정부에 항의할 일이거늘 대체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란 말이오.”
“됐고요. 제 눈을 똑바로 보고 말씀하세요. 소피아 에델베르그는 어디에 숨겨뒀죠?”
다짜고짜 본론으로 찌르고 들어가는 내 추궁에 약간 날카로운 눈매에 네츄럴 웨이브 스타일의 동양인 여성이 남자 앞을 막아서며 날 노려본다.
눈싸움하자고? 그럼 해줘야지.
나도 얼마 전부터 쓸 수 있게 된 살기를 눈에 담아 여자를 향해 마나 비전을 켜서 노려봐주니 잠시 버티던 여자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내 눈빛을 피하기 시작했다.
C 클래스 신체 강화 능력자도 마주 못하는 시선이라니, 처음 써본 거지만 위력이 마음에 든다.
“그만두시오! 내 아내에게 해코지를 하려 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소!”
역시 부부인가. 뭐 예상은 했지만…. 근데 당신네 딸은 이미 나한테 해코지했거든?
그래도 난 신사니까 일단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중년 남자의 말에 눈에 살기를 거두고 마나 비전도 거둔 다음 중년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댁들 따님이 저한테 한 짓 때문에 저도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거든요? 제가 누군지 알고 또 일본에 했던 짓을 생각해보시면 지금 얼마나 매너있게 나오고 있는 건지 아실 텐데요.”
내 말에 남자는 침중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았는데 여자는 그런 남자의 옆에 섰다. 그러다가 내 뒤에 서 있는 프랑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이 되어간다.
설마 프랑을 기억하는 건가? 에델베르그 가문에서도 프랑에게 청혼까지 했었다고 하니 프랑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
근데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바로 날 주시하기 시작한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제 이름은….”
“알고 있소. 동양의 파괴 신을 모른다면 이 바닥 사람이 아니지. 내 이름은 드와이트 에델베르그요. 이쪽은 내 아내인 이치카 에델베르그.”
또 파괴신…. 난 드와이트의 말에 썩소를 날려주며 입을 열었다.
“저에 대해서 잘 아신다니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드와이트 씨에게 부인이 소중한가 본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당신들의 자식인 소피아 에델베르그가 저랑 제 예비 신부한테 해코지하고 도망가버렸고, 그걸 찾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거거든요. 그래서….”
“관계없다고 하지 않았소! 얼마 전에는 당신네 나라의 정부에서도 찾아와 행패를 부리더니 이제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직접 행패를 부리기 위해 행차하신 거요?! 몇 번이나 아비를 때리고 뛰쳐나간 패륜아와는 관계없다고 이야기했거늘!!”
내 말을 자르며 얼굴을 크게 붉히고 소리치는 드와이트를 보다가 그 옆에 서 있는 이치카라는 여자를 바라본다.
혜령이 이모가, 저 여자가 자기 자식들을 일본의 첩자로 키웠다고 했잖아. 그 이야기는 우리 정부에서 알려준 이야기였을 텐데…. 저 남편은 그걸 모르나?
그런데 암만 봐도 자기 자식을 이용할 거 같은 여자 같진 않다. 아까 남편과 성교를 할 때 남편을 바라보던 눈빛이나 몸짓은 암만 봐도 깊게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였는데 그런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을 딴 나라의 스파이로 만들어?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이치카 에델베르그를 공간 지각을 집중해서 신체와 표정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식을 걱정하는 모습이라 좀 헷갈린다.
…저 여자 나이도 영은이랑 비슷한 수준일 테고 정보부 출신일 테니 자기 마음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데도 일가견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일본에서 반 노예처럼 팔려온 주제에 성도 남편을 따라가는 정식 부인이 된 걸 보면 수완이 어지간히 좋아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도 누나한테서 얻어맞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사람의 표정 읽는 법을 배웠고 근래에 들어 프랑과 화연이와 영은이와 함께 지내면서 표정 읽는 법을 단련해왔다.
특히 영은이 덕분에 숙련도가 많이 올랐는데 암만 봐도 저 여자의 표정은 거짓이 섞이지 않은 진짜란 말이야.
…시험해보자.
“그럼 소피아 에델베르그를, 아니 의절했다고 들었으니 성도 없겠군요. 소피아를 찾으면 사지를 찢고 뒷골목에 집어 던져서 윤간당하게 한 다음 잔인하게 죽여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죠?”
말을 끊어서 나도 화난다는 듯이 안색을 굳히고 무표정한 얼굴로 슬쩍 살기를 뿜으며 입을 여니 이치카 에델베르그가 사색이 된다. 그리고 드와이트의 화난 얼굴에도 금이 간다.
“여, 여보….”
“…….”
“그년이 제 곁을 돌아다니며 저에 대한 정보를 일본 우국 신민회에 넘겼었어요. 그걸 바탕으로 두 번이나 제 목숨을 노렸고, 그대로 놔뒀다면 제 주변 인물들에게까지 손을 뻗쳤겠죠. 덕분에 소피아를 친언니처럼 생각하던 제 연인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어요. 제 심정, 부인을 끔찍이 아끼는 거 같은 드와이트 씨라면 이해할 거 같은데요.”
“…크흠.”
음.... 지금 반응으로는 긴가민가한데 현상금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봐야겠다.
“일본의 능력자 습격 사태 때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절 죽이려 한데 손을 거든 자들은 모두 저의 공격 대상이에요. 그러니 돌아가면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 올릴 겁니다. 소피아 에델베르그의 사진을 퍼트리고 저 개인적으로 현상수배를 건다는 내용으로요.”
이어서 그녀를 숨겨두는 사람, 장소, 나라는 저와 척을 질 생각하고 마포를 선물로 받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드와이트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데, 나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만든 누군가에 대한 불편함인 거 같다.
“살아 있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조건으로 소피아를 잡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고위급 위상석을, 그다음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상위급 위상석과 중상위급 위상석을 차등 지급할 거라는 이야기도 할 겁니다. 살아있기만 하면 상관없다…. 그 결과는 그로키스 연구소 부소장이라는 드와이트 씨라면 충분히 예상하시겠죠.”
고위급 위상석이라는 이야기에 드와이트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고 살아있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이야기에 이치카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치카 에델베르그의 안색이 이제는 하얗게 질리는 걸 보니까 혜령이 이모가 말한 정보는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나라로 보내 스파이로 만든다니, 말이 안 되잖아.
뭔가 뒷사정이 있나 본 데.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히 묻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드와이트 부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 모습을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내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드와이트 씨는 그녀와 관계없다는 입장이신 건 확실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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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