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45화 (245/517)

00245  영국으로.  =========================================================================

십수 분을 달리다 7층 높이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건축 양식의 건물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거리로 들어왔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사보이 호텔인가…. 리디아의 리무진에서 내려서 객실 안내원을 따라 들어가니 흑백의 타일로 꾸며진 바닥과 고급스러운 흑갈색의 원목으로 이루어진 홀 로비가 나타났다.

보통은 체크인 시간이 정해져 있을 텐데 예약을 해두고 호위팀이 미리 체크인을 해놨는지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있어도 일행에 공주가 있는데 막을 리가 없나?

리디아와 함께 호텔에 들어서니 호텔 총지배인이라는 중년의 신사가 다가와 리디아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사보이에 어서 오십시오. 호텔 총지배인인 알렉스 리츠먼입니다.”

“앗. 그러니까…!”

총지배인이 내가 아니라 자신에게 인사해오니 리디아는 당황해서 총지배인에게 눈치를 주면서 날 힐끔거린다.

“…!”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총지배인은 안색이 살짝 굳어서 내 쪽으로 다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려 하길래 피식 웃으면서 말을 막았다.

“아빠가 피곤한 거 같으니까 빨리 예약해둔 객실로 안내해주면 좋겠는데요.”

“난 괜찮다.”

“거짓말하지 마. 비행기에서도 잘 못 자서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 주제에.”

“크흠.”

자신의 실책에 살짝 안색이 흐려진 총지배인은 다시 한 번 사과와 함께 최상층의 호화롭고 커다란 객실로 우릴 안내해줬다.

“저희 호텔은 19세기 말 사보이 극장으로 시작해 1889년 런던 최초의 근대화된 호텔로써 수많은 명사와 인사들이 방문하며 사교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총지배인은 말없이 객실로 이동하는 사이 호텔의 역사를 조용히 이야기해주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자주 묶었고 영국의 로열 패밀리들과도 인연이 깊다나?

그런 호텔에서 2개밖에 없는 로열 스위트 룸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말로는 로열 스위트 룸이라지만 우리 집보다 작은데…. 하룻밤에 얼마인지 들으면 어쩐지 얼굴을 찌푸릴 거 같아서 일부러 묻지 않았다.

실내 장식에서부터 간단한 소품까지 싸구려로 보이는 건 하나도 없고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로열 스위트 룸의 내부는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거 같다.

침실이 3개에 거실 하나와 다이닝 룸 하나, 주방 하나, 욕실 3개에 화장실 4개 응접실 하나가 붙어있는데 내 집처럼 넓고 큼직한 게 아니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느낌이다.

호텔 객실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리디아가 총지배인에게 몰래 신호를 준다.

“…조금 전, 저의 무지로 인해 일어난 무례를 용서하시길.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즉시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분은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그랜드 마스터세요. 모쪼록 결례되는 일이 없도록 잘 모시길 바래요.”

“물론입니다. 공주님.”

리디아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은 총지배인은 나에게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템스 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살짝 한숨을 쉬고 물러난다.

근데 리디아는 왜 자꾸 날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는 거야? 날 뭐라 부르든 블루 지니어스라고만 안 부르면 상관 없긴 한데 그랜드 마스터라니, 그것도 나름 부담스러운 칭혼데.

객실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침실 하나를 차지한 채 기절하듯이 잠들어 버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한국이라면 오후 9시인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자는 아빠한테 힐링 터치를 걸어준 뒤 침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각 잡고 서 있는 다섯 명의 경호 팀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책임자죠?”

“경호팀의 제2팀장인 한수희입니다. 마스터!”

남자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친선이 가는 미청년 같은 한수희가 앞으로 나서며 씩씩하게 입을 연다. 잠시 경호 팀원들의 복장을 살펴보니 네 명이 입고 있는 검은색 정장 안으로 얇은 전신 타이즈를 입고 있었는데 저것도 이형종 부산물로 만든 갑옷인 거 같다.

그 외에 작달막한 막대기나 손에 특수 소재의 장갑이나 얇은 다리 보호대 같은 걸 장비하고 있는 걸 보면 경호 쪽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준비한 거 같다.

“아빠가 영국에 있는 동안 경호는 어떻게 돼요?”

“현재 사보이 호텔 일반 객실에 이곳에 있는 저희 다섯을 제외하고 10명이 더 투숙하고 있습니다. 정수훈 님께서 영국에 계실 동안은 저희가 24시간 밀착 경호를 실행하게 됩니다. 경호에는 신체 강화 6명 바람 속성 2명 회복 2명으로 이루어지며 남은 5명은 경호팀의 백업을 책임집니다.”

물어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보이 쉬 컷의 한수희 경호 2팀장은 C 클래스의 신체 강화다. 나머지 사람들도 D 클래스 초급부터 중급까지 다양하니 이 정도면 능력자 대비 경호도 충분하겠군.

“그럼 뒷일을 부탁드릴게요. 아빠가 일어나서 찾으면 볼일 보러 나갔다고 전해주세요.”

“네!”

“아, 그리고 연락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인증기 메일 주소도 알려주세요.”

“넵!”

프랑과 리디아와 세쌍둥이를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서려니 호텔 유니폼으로 보이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녀가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어왔다.

필요한 게 있었으면 누나가 앵앵거리던 수행원을 데려왔겠지.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시길.”

누구길래 도와준다고 하는 걸까 호텔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더니 옆에 있던 리디아가 나서서 설명해줬다.

“사보이 호텔의 컨시어지 분들이에요. 호텔의 투숙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분들이세요”

“아, 컨시어지.”

딱히 도움받을 일이라고 해봤자 에델베르그 가문 위치 정도인가. 뭐 그건 지도를 보면 되니까. 우리 프랑이 태어났다는 알디온 가문은 프랑한테 물어서 찾아가면 되고.

옆에 서서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을, 아니 뭘 기대하길래 기대감을 보이는 건데? 리디아도 보면 볼수록 희한한 아가씨라니까.

일단 인터넷에 검색해서 에델베르그 가문을 찾아가야지. 그다음은 알디온 가문을 찾아가 볼까.

“자, 그럼 나중에 봐. 난 가볼 데가 있어서.”

“네?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해주시면 리무진으로 모셔다드릴게요.”

“에델베르그 가문을 찾아가서 뒤집어엎을 생각인데 왕실 공주인 리디아가 바래다줘도 괜찮아?”

“…!”

“그 집 딸래미가 내 뒤통수를 쳤잖아. 들은 이야기로는 집 나간 년이라서 자기들이랑 관계없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

“그으…. 저기, 에델베르그 가문의 현 가주는 그로키스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계시는 분이세요. 그로키스 연구소는 능력자 연합과 IWO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뭐 어쩌라고. 제일 유명한 위상 관련 연구소니까 당연히 밀접 한 관계일텐, 데!”

이야기하면서 세쌍둥이 중 하나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길래 공간 지각으로 주시하고 있었는데 내 뒤에 서 있던 셋 중 가운데 녀석이 조용한 움직임으로 슬그머니 물러서서 인증기를 켜려고 한다.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순식간에 다가가 팔을 붙잡았더니 녀석의 눈이 놀람으로 한껏 커진다. 이 녀석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눈앞에 순간이동으로 나타난 거나 마찬가지겠지.

“누구한테 보고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네 행동을 보니까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경고해두는데 에델베르그 가문에 이야기해서 대비하려 한다거나 하는 생각 따윈 하지 말길 바래. 대처할 생각 말고 순리대로 가자고, 순리대로. OK?”

위협하듯이 으르렁거리며 손가락 끝에 작은 공간의 벽을 치니 내 손에 잡힌 쌍둥이가 움찔하고 굳어버린다.

손을 들어 뺨을 톡톡 건드려주고 리디아를 돌아보니 세 쌍둥이 중 하나의 행동에 한껏 경악한 표정이었다.

…리디아는 모르고 있었던 일인가?

어쨌든 만약을 대비해서 TP 부분으로 쓰려고 1,000만 TP를 채워놓은 고위급 위상석 5개를 가져왔는데, 저 쌍둥이와 리디아의 반응을 보니 챙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TP와 위상석의 TP를 다 합치면 5,600만 TP다. 이 정도만 있으면 어지간한 상황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리디아에게 일부러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실망이야. 에델베르그 가문이 일본에 협력하고 그런 에델베르그 가문을 그로키스 연구소가 묵인하고 그걸 또 영국 왕실 묵인하고 있었던 거야? 영국은 나랑 싸울 생각이야?”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릴리,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서하 경이 말씀하신 대로 서하 경을 감시하는 게 목적이었어?!”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국무총리께서 마찰이 생길법한 일이 일어날 낌새를 느낀다면 연락해달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럼, 여왕 폐하께서도 그 일을 허락하셨던 거야…?”

“…….”

쟤 이름이 릴리인가? 진짜 똑같이 생긴 데다 위상력도 똑같아서 비교할 수가 없네. 아무튼, 릴리라고 불린 쌍둥이는 계속되는 리디아의 질문에 할 말을 잃고 살짝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만, 침묵도 긍정이라던가.

“내가 일본을 뒤집은 건 일본이 날 죽이려고 공격해서였어. 영국은 그런 일이 없길 바래.”

충격받고 실의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이던 리디아는 멍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더니 힘없이 입을 열었다.

“네에….”

인증기를 켜서 에델베르그 가문 저택 위치를 검색해보니 여기서 남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공간의 벽으로 공중을 뛰어서 가면 2~3분 정도 걸리겠군.

해가 뜨고는 있지만, 새벽 5시라 이른 시간에 찾아가긴 좀 그런가?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가면 되겠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대충 시간 계산을 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린 리디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소맷자락을 잡으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하 경. 이건 틀림없이 여왕 폐하의 뜻과는 다른 일이에요.”

의아한 표정으로 리디아를 돌아보니 한숨을 폭 쉬다가 입을 앙다물더니 자신의 인증기를 조작한다.

“여왕 폐하께서는 절 믿으시고 장관을 보내 서하 경을 대대적으로 맞이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뒤로 다른 명령을 내리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리고 잠깐의 통화 연결음 직후에 홀로그램 창이 떠오르며 곱게 늙은 할머니가 화면에 떠오른다.

나도 인터넷에서 몇 번 봐서 안다.

영국의 여왕. 퀸 오브 클로버로 불리우는 엘리자베스 에리시아 멜른 윈저다.

…그런데.

[우리의 귀여운 빛의 공주께서 이런 이른 시간에 연락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구나.]

실제로 보는 순간 눈치챘다.

“여왕 폐하께 긴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중식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방해하게 되었어요. 죄송해요.”

저 할머니는 영은이의 마이너 그레이드라고.

“…이게 사실인가요?”

리디아에게서 아까 있었던 일을 모두 들은 영국 여왕은, 아니 그보다 시선이 너무 몰린다.

“리디아, 미안.”

“어째, 앗?!”

막무가내로 리디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공간의 벽을 박차 사보이 호텔의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사보이 호텔 입구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나는 둘째치고 공주가 시선을 너무 받아.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다가 멈춰 서서 아예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대충 33m 정도 뛰어올라 지붕 위에 내려서서 깜짝 놀란 리디아를 내려놓으니 당황해서 날 본다.

그 뒤로 세쌍둥이도 벽을 가볍게 박차고 뛰어올라 내려서는 걸 보고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영국 여왕의 노안을 바라보니 영국 여왕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대한민국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마스터인 정서하입니다.”

[이런 식이라도 반가운 건 반가운 것이죠. 아르세이어 에시리아 멜른 윈저에요.]

곱게 늙은 할머니가 곱게 웃으니까 활짝 핀 할미꽃의 잎줄기 같은 새하얌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 눈을 봐라. 리디아가 전화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눈빛이다.

장관을 보내려다가 내 성격을 들은 여왕이 리디아만 보낸 것. 그리고 총리를 시켜 리디아를 호위하는 세쌍둥이에게 날 감시하란 명령을 내린 것, 내가 있는 근처에서 전화하는 척해서 나한테 걸리게끔 하란 명령과 리디아가 이렇게 저 할머니한테 전화하게 되는 거까지.

그러니까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게 영국 여왕 할머니라는 거겠지?

딱 보니까 영은이랑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눈빛을 보내는걸. 만약 영은이를 몰랐다면 나도 눈치 못 챘겠지만, 영은이랑 같이 붙어 지내면서 이미 영은이의 반응이나 행동 같은 건 눈에 익숙하단 말이야.

비스름진 지붕 위에서 중심을 못 잡고 "아앗, 아우." 하면서 비틀거리는 리디아를 세쌍둥이가 다가와서 손을 잡아 지지해주자 그제야 살짝 한숨을 쉬고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영국 여왕을 바라본다.

물론 여왕은 내가 더 말을 해오길 바라겠지만,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내가 말릴 가능성이 커. 그러니 차라리 말을 안 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게 낫지. 한다면 직선적으로 내 할 말만 해야겠다.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문 내 모습을 여왕이 이채를 띄고 바라본다.

“총리께서 서하 경의 일거투 일수족을 감시하란 명령을 릴리에게 내린 것, 여왕 폐하께서는 알고 계셨나요?”

아니라고 대답해 달라는 듯이 간절히 바라보지만, 여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랜드 마스터의 감각이 그렇게 뛰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영국 연방을 이끄는 자로서 그랜드 마스터의 행보에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총리의 간청을 허락했답니다.]

되게 부드럽고 강한 목소리다. 억양과 울림에서 힘이 느껴지는 게, 여왕이 젊어지면 영은이랑 비슷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영국 여왕 나이가 70대라던가. 영은이보다 30살 적으니까 조금만 더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정말로 영은이처럼 되겠지.

“…….”

리디아는 여왕의 대답에 정말 실망해버린 모습이다. 아까 공항에서 나왔을 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자신을 믿어주는 여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려 했겠지.

[리디아.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오면 하기로 하지요. 그보다 그랜드 마스터 서하?]

“미스터 블루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영국 여왕이 저렇게 부르는 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조금은 있겠지? 내 입으로 블루 지니어스를 인정한다는 식의 말을 꺼내게 하다니, 과연 영은이의 마이너 그레이드다.

[후후. 리디아에게 미움 사게 만들어버린 미스터 블루에게 조식 만찬을 대접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마치 '네가 스포라이트 받는 걸 싫어하는 건 알지만, 영국 여왕인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거절할셈이냐.' 하는 모습이다.

할거거든요?

“죄송하지만 먼저 찾아가서 뒤집어버려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 일이 언제 끝날지 몰라 확답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어머. 설마 영국에서 이미 미스터 블루의 심기를 건드린 곳이 있단 말씀이신가요?]

“하하. 알고 있으시면서 물어보시는 건 너무 심술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영국 여왕 할머니의 표정은 그대로지만 눈동자. 홍채가 약간 커졌다. 이야기로 들리는 것 보다 내 대응이 너무 의외라는 걸까.

역시 돌직구를 던지는 게 정답이군.

리디아는 여전히 시무룩해져서 발밑의 지붕 기와만 내려보고 있다.

[그건…. 제 입장에서 들어 넘기기 곤란한 이유군요.]

“저도 이미 제 입으로 내뱉은 이야기라 지키지 않을 수 없어요. 이미 일본도 뒤집었는데요.”

일본을 조질 때 했던 말, 날 죽이려는데 한 손이라도 거든 것들을 모두 넘겨라. 이걸 떠올렸는지 여왕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저는 절 직접 공격한 사람보다 제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히는 자들을 더 용서 못 해요. 제 아내가 될 여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거기다 절 죽이려는데 큰 기여를 한 소피아 에델베르급니다.”

뒤에 이어질 말은 직접 예상해보라는 듯이 끊어버리고 슬쩍 웃어줬다.

날 막으려 들거나 협박하려 든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듯이 여왕을 빤히 바라본다. 내 이야기를 듣던 리디아는 잠시 뒤에서야 내 말의 뜻을 알아챘는지 경악하면서 움직이려다 휘청하고 넘어지려 했다.

“서, 서하 경! 그건, 꺄아!”

황급히 쌍둥이들의 손을 잡고 떨어지지 않게 몸을 버티는 리디아를 힐끔 보고서 발아래 공간의 벽을 치면서 공중을 걸어 올라가다 뒤돌아보며 말 없는 여왕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졌다.

“그로키스 연구소의 부소장을 지키고 저와 척을 질지, 그냥 모른 척 넘어가시고 제 인사를 받으실지는 여왕님께서 선택하실 일이에요.”

여왕의 하얀 눈썹이 살짝 찡그려지는 걸 보고서 몸을 돌려 마나 모드 - 가속을 켜고 공중으로 힘껏 뛰어올랐다.

프랑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지만 일단 한수희 2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호위에 한층 더 신경 쓰라고 전해줬다.

여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내 직접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아버질 건드리리란 생각은 안 하지만 만약이란게 있으니까.

그리고 영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하야~ 잘 도착해쪙?]

활짝 웃으면서 혀짧은 소리를 내는 영은이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응. 근데 도착하자마자 영국 여왕이랑 신경전 한번 벌여버렸는데 이걸 어쩌나.”

[…걔가 뭐래?]

영국 여왕도 영은이 입장에서는 "걔" 인가보다. 조금 웃겨서 피식 웃고 인증기를 조작해서 영은이에게 호텔 앞에서 리디아와 대화를 기록한 영상을 보내줬다.

“자세한 건 지금 보낸걸 확인해. 그리고 지금 에델베르그 가문을 찾아가는 길이야. 원래 생각은 일단 에델베르그 가문의 집 일부를 확 가라앉혀버리고 이야기를 할 생각인데 영은이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내가 보낸 영상을 받은 영은이는 2배속으로 살펴보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걔는 어차피 막 나가지 못해. 막 나가는 건 우리 서하가 해야 할 행동이니까!]

그러더니 영상을 마저 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응. 서하가 대처를 잘했어. 여왕은 결국 서하가 말한 후자를 선택할 거야. 뭐 대가로 고위급 위상석을 위상석 거래소 시세만 쳐서 하나 팔아주면 되겠지. 에델베르그 가문은 지지든 볶든 울 자기 맘대로 행~.]

슬금슬금 영은이 뒤로 다가온 화연이가 날 향해 살짝 손을 흔들어주는 걸 보고 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줬다.

“알았어. 뒤에 외교적인 협상이나 그런 걸 부탁해.”

[응! 아, 그리고 영국에 있는 동안 여러 나라에서 울 자기한테 집적거릴 애들을 보낼 거야. 만나기 싫으면 사보이 호텔 총지배인한테 모든 면회 면담 사절이라고 이야기해두고 만나기 싫다고 해버려. 알았지?]

“알았어, 그럴게.”

[볼 일 잘 해결하구 와~?]

“그래. 한국은 밤도 늦었을 텐데 그만 자. 화연이도.”

[응. [그래.]]

“잘자.”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영은이와 화연이의 모습을 보고서 인증기를 끄며 옆에 떠 있는 프랑을 보니 뒷짐을 지고 개를 살짝 끄덕이고 있었다.

“프랑은 할 말 있어?”

“있었지만 없어졌어요. 서하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멋져지는 거 같아요.”

예쁘게 웃으면서 내 등에 매달리는 프랑을 돌아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프랑의 뺨에 키스해주고 히아리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آسمان د څلورو.]

…뭐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히아리드?”

[آسمان د څلورو.]

“무슨말 하는지 못알아 듣겠네…. 어쩌지?”

[هیڅ مطلب نشته.]

마치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 프랑을 돌아보니 프랑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네, 라고 해.”

[네.]

“그건 다행이네. 공간의 벽이 멀쩡하면 네, 라고 대답해.”

[네.]

“좋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도 공간의 벽에는 이상이 없는 거군. 그럼 돌아가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공간의 벽을 확인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엄마 근처에서 미호랑 함께 엄마를 지켜. 이상이 생기면 언제나 하던 대로 하고.”

[네.]

“그래. 끊는다.”

[네.]

전화를 끊으며 신기한 기분에 프랑을 보며 말했다.

“신기하네. 어떤 방식으로 내가 하는 말은 알아듣는 걸까?”

“그걸 알아내면 언어학계에 획기적인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거 같아요.”

“…그러네. 연구소 지으면 그 부분도 연구하라고 해봐야지. 전 세계 사람들이 말이 통하면 전쟁도 좀 줄어들려나?”

내 이야기에 살포시 웃는 프랑을 보다가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한국에 남겨둔 일도 다 정리했으니 에델베르그 가문으로 가볼까!

============================ 작품 후기 ============================

으으어....

독자 입장일 때는 댓글 안보고 코멘트도 안 달고 재밌던 편에 추천만 주고 다녔는데 막상 글 쓰는 입장이 돼서 코멘트를 확인하니 악의가 깃든 코멘트를 많이 받는 거 같네요. 거기에 쪽지로도 가끔 이상한 내용이 날아오고요.

물론 제 글솜씨가 많이 부족한 게 그 이유겠죠 ㅎㅎ;;

첫 번째 글이라서 기준선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 지몰라 일단 손 가는 대로 먼저 썼는데 좀 더 알아보고 썼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움이 드네요.

오늘 e북 출판계약서를 받았는데 제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완결 낸 뒤에 초반 중반에 많은 지적을 받은 부분을 고치고 19금 씬은 다 치워버린다음 리메이크 형식으로 내는 방향으로 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땐 제목도 살짝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그땐 제목을 후기에 남겨드릴 테니 그 이북이 보인다면 피해가 주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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