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42화 (242/517)

00242  아숨프레 수몰 폐허.  =========================================================================

내 TP를 맛보다니, 어디까지 이야기가 흘러나간 거지?

이제 우리 가족과 내 몸은 충분히 내가 지킬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긴 했지만 그래도 알려져서 좋을 게 있고 안 좋을게 있는 법이다.

TP를 맛본다는 말을 꺼낸 여자 능력자에게 다가가니 쉬던 그녀들은 날 보고 흠칫 놀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곧장 그녀 앞에 다가가 눈에 마나 비전을 켜서 뻣뻣하게 굳은 단발머리를 말총으로 묶은 귀여운 얼굴의 능력자를 보며 물었다.

“방금 나눈 이야기,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요. 미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죠?”

“아, 어. 그게.”

눈에 띄게 당황하는 여자 능력자에게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추궁하거나 벌 주려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보세요.”

“네, 넵. 미호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데니쉬 버터 쿠키를 하나씩 줬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것 중에 두 번째로 맛있다면서 무척이나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맛있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주인님, 마스터의 TP라고 대답해주고 쌩하니 가버렸다고 7팀의 선수지가 이야기해주는 걸 들었어요.”

내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프랑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들을 보는 걸 모른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겠지만 레이드 팀 내에서 비밀로 해야 하는 거랑 말하면 안 되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시죠?”

“네넷!!”

“그럼 계속 쉬세요.”

으음. 돌아가서 미호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서 내 천막으로 향하는데 프랑은 날 따라오지 않고 그대로 남더니 곧 능력자들을 모아놓고 한바탕 설교를 시작한다.

그 모습에 누나와 화연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프랑한테 다가가는데 그걸 발견한 여자 능력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뒷일은 화연이랑 누나한테 맡겨야지.

오후에는 내 천막 안에서 프랑의 야들야들한 허벅지를 베고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게으름 피우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프랑이 다정하게 쓸어주는 손길은 수면제인가….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어젯밤에는 공간의 벽을 건드는 느낌 때문에 얼마 못 잔 수면을 보충했더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둔지를 살펴봤다.

“오늘은 이형종의 습격도 없고 조용하네.”

“서하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이에요.”

육지 쪽은 청소한 적 없는데 내가 뭘 했다고? 천막을 나오니 주둔지에 매운탕 향기가 가득 퍼져있었다.

“매운탕은 생선 비린내 때문에 먹기 싫은데….”

주둔지 내부도 부산물을 쌓아뒀던 천막은 모두 접혀 짐으로 변해있었고 부산물도 전부 포장되어서 주둔지 중앙 공터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철수하겠네.

주둔지 주변을 살펴보니 이형종은 물론이고 동물도 한 마리 없이 조용하다. 아무래도 어제 호수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피소르 사우르스를 끌고 오는 모습에 이형종이고 동물이고 죄다 도망친 거 같다.

누나랑 화연이가 어디 있나 살펴보니 취사장에서 직접 요리를 하고 있는 게 보여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일어났어?”

앞치마를 두르고 게살을 발라내 꽃게탕을 만들던 누나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물어온다.

“응. 거기서 뭐해?”

“넌 매운탕 못 먹잖아. 그래서 따로 먹을 거 만들고 있어. 간이 맞는지 맛 좀 봐바.”

누나의 말에 주변에 있던 식사담당 생활 보조 능력자들의 움직임이 딱 멈춰버리더니 나와 누나를 번갈아 본다.

누나가 국자에 맑은 꽃게탕 국물을 조금 떠서 내 입에 기울여주길래 맛을 보고 맛있다고 해주니 옆에서 게살 튀김을 만들고 있던 화연이도 튀김 하나를 들어 내 입에 가져다준다.

“이것도 한번 먹어봐라.”

게살이 맞긴 한데 엄청 큰 이형종 게살이다 보니 게살 튀김이 아니라 게살 스테이크랑 다를 게 없는 거 같다. 아무튼, 먹어보니 바삭바삭한 튀김 겉옷에 탱글탱글한 게살이 알맞게 익어있어서 씹는 순간 즙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목구멍에 화상 입을뻔하고서 엄지를 들어 보이니 화연이도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새우튀김을 튀기기 시작했다.

“서하는 매운탕을 못 먹는 건가요?”

“응. 쟤는 어릴 때부터 생선 비린내에 민감해서 두 숟가락만 먹어도 헛구역질하고 그랬어.”

“몇몇 냄새에 과도하게 민감한 사람들은 유전자에서 특정 부분이 크게 발달해서 그 향기를 심하게 느끼기 때문에 못 먹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지.”

화연이랑 누나 사이에 프랑도 끼어들며 음식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화연이한테 물었다.

“일은 다 끝난 거야?”

“그래. 내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정리하고 철수할 거다.”

그런가. 아숨프레 수몰 호수 레이드도 이걸로 끝이군.

다음 날 아침, 예정했던 것보다 하루 일찍 레이드를 마무리 지은 우리는 빠르게 철수 작업을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시작한 철수 준비는 7시에 천막을 모두 거두고 스프레드 룸을 압착시키는걸로 끝마쳤다. 그리고 식사 담당 생활 능력자들이 마지막 남은 수산물 재료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137명이 등에 짐을 한가득 짊어졌다.

프랑은 물리력이 거의 없어 제외고 나는 귀환 포인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길을 만들어야 해서 제외.

철수 준비는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듯 빠르게 자기 할 일을 해결하고 짐을 들고 철수 준비가 끝났을 땐 8시 정각이었다.

“각 팀의 팀장과 생활 보조의 조장들께서는 인원 체크를 확실히 하세요.”

오른손에는 천총운검을 들고 왼손에는 누호디의 십자 창을 들고 분주한 주둔지를 보다가 화연이의 손짓에 미리 파악해둔 귀환 포인트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죄다 자르고 3m 폭의 길을 만들면서 쭉 이동하는데 이번에 이용할 귀환 포인트는 훨씬 길었지만,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져서 훨씬 빠르게 이동했지만 5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중간 이형종이 접근하려 했지만 마나 탄을 쏘아내 간단하게 지워버리고 점심도 칼로리메이트로 때우면서 쉬지 않고 이동해 오후 2시에 목표로 한 귀환 포인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귀환 포인트가 있는 장소는 가로세로 3m가량의 정말 작은 공터였는데 빛무리가 떠 있는걸 확인한 화연이는 짐을 내려놓으면서 소리쳤다.

“귀환을 위한 장소를 확보하겠습니다. 신체 강화 능력자들은 앞으로 나서주세요.”

두 세 명이 한 조로 나무를 통째로 뽑아서 숲 안쪽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하고 파헤쳐진 땅은 대지 속성 능력자들이 다시 단단하게 다지기 시작한다.

139명이 넉넉하게 자리 잡고 설 만큼 공간을 확보한 다음 인원 파악을 시작했다.

“각 팀장과 조장은 인원 체크와 물품 체크를 시작합니다. 체크가 끝난 곳부터 보고하세요.”

“1팀 이상 없습니다.”

“공간 지각으로 뒤떨어지거나 빠진 사람이 없는지 다 확인하고 있는데 일부러 이렇게 인원 체크를 할 필요가 있어?”

화연이의 명령에 각 팀과 조장들이 인원 체크를 하는 와중에 누나 귀에 속삭였더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내 귀에 속삭였다.

“규칙은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꼭 지켜야 하는 거야. 소규모 그룹은 모르겠지만, 인원이 많아지고 집단이 거대해질수록 규칙을 따라야 혼란이 일어나지 않아.”

그런가.

“3팀도 이상 없습니다.”

“5팀 이상 무.”

“1조와 2조도 빠진 물품과 결손 인원 없습니다.”

“그럼 복귀하겠습니다. 모두 자리 잡으세요.”

인원 체크가 끝나자 귀환 포인트를 중심으로 거미줄 형태로 139명이 자리를 잡은 다음 귀환하기 직전 화연이가 외쳤다.

“귀환에 낙오되는 사람은 이곳에서 7시 방향으로 6km가량 이동하면 귀환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쪽을 통해서 이동하십시오.”

그리고 화연이는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천천히 10부터 1까지 숫자를 역으로 세기 시작한다. 검증단 복귀 때랑 똑같은 걸 보니 이미 체계적으로 완성된 규칙인 거 같다.

그리고 화연이가 세는 숫자가 0 이 되는 순간 새하얀 빛이 뿜어나오며 망막을 자극한다.

이렇게 내가 생각해봐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고 생각되는 4일간의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첫 번째 레이드가 끝이 났다.

언제나처럼 공간이 바뀌는 걸 인식한 순간 공간 지각을 돌려 주변에 위협이 되는 건 없는지 체크한 다음 혹시 눈부심이 치료가 될까 싶어 눈에 힐링 터치를 걸었다.

…근데도 눈부심이 안 사라진다! 이 망할 빛 같으니.

100평 남짓한 공간에 꽉꽉 들어찬 139명을 보고 물건도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려니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눈부심을 해결하고서는 옆의 사람을 확인해본다.

“각 팀 조장들은 인원체크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숫자와 빠진 물건은 없는지 체크를 시작하는 화연이를 보다가 공간 지각으로 미호와 히아리드를 찾았는데, 둘은 이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빈 오피스텔 건물에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히아리드는 예전과 똑같이 양손에 하늘 지팡이를 들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었는데 미호는 바닥에 엎드려서 휴대용 게임기로 레이드 몬스터 헌터를 하고 있다.

…저거 어디서 가져온 거야? 설마 자리 비우고 집에 갔다 온 거 아니지?

그랬으면 입을 함부로 놀린 벌에 명령을 어긴 벌로 엉덩이가 세배로 커질 때까지 두들겨줄 테다.

자신의 물품을 체크 중인 화연이와 누나한테 다가가서 말했다.

“난 가서 미호랑 히아리드 데려올게. 먼저 돌아가.”

“알았어.”

“아니, 트레일러와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둘을 데리고 연합 빌딩의 입구로 오도록 해.”

“어.”

인원 체크하고 누나가 그랑 블루 총무부에 전화를 거는 사이 미호와 히아리드가 있는 곳에 가니 미호가 활짝 웃으면서 내 품에 다이빙하듯 달려든다.

- 주인님!

조그만 몸집의 미호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팔과 다리로 내 몸을 껴안은 미호는 - 이히히 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다녀오셨습니까, 하늘님.=

“그래. 그 사이에 별일 없었지?”

=하루에 한 번, 강현우라는 인간이 왔다 간 것을 제외하면 없었습니다.=

- 나도 열심히 지켰어! 칭찬해죠!

“그래그래. 열심히 지켜서 잘했다. 다음에도 부탁할게.”

- 히히!

“그런데 게임기는 어떻게 들고 있는 거냐. 올 때 없었잖아.”

- 혜령이 가져다줬어!

그런가. 방실방실 웃는 미호를 보니 살짝 한숨이 나온다.

머리가 덜 여문 녀석이라 사고 치기 전에 이것저것 먼저 알려줘야 했는데…. 미리 경고해주지 못한 내 잘못이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가 줘야겠다.

그래도 잘못했다는 걸 인식하게는 해줘야지. 나는 얼굴을 슬쩍 굳히면서 미호의 앞에 앉아서 손을 뻗어 녀석의 뺨을 잡아당겼다.

“미호. 그랑 블루 빌딩 안에 사람들한테 과자나 간식 같은 거 얻어먹고 다녔지?”

- 웅? 우웅.

내 굳은 표정을 본 미호는 당장 귀가 접히면서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기 시작했다.

“얻어먹으면서 나에 관한 이야기도 말했지?”

- 말했어….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나에 대한 건 물론이고 너에 대한 것, 히아리드와 프랑, 화연이, 영은이에 대한 것도 말하면 안 돼. 우리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비밀로 해야 하는 거야.”

- 우우.

꼬리도 축 늘어지며 연신 내 눈치를 살피는 미호의 뺨을 쭉 잡아당기면서 물었다.

- 흐늉.

“사람들한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 주인님 TP가 제일 맛있다는 말만 했어…. 나 혼나는 거야?

“이번엔 안 혼나. 하지만 다음부터는 크게 혼날 거야. 다음부터 누가 우리에 관해서 물어본다고 해도 말 안 할 거라고 해. 알았지?”

- 응!

그제야 여우 귀가 쫑긋하고 서면서 환하게 웃으며 다시금 내 옷자락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한다.

가슴에 매달린 미호를 끌어안고  히아리드도 데리고 나와서 방 안에 5겹의 공간의 벽을 친 다음 연합 빌딩 앞으로 돌아 나갔다.

도로를 달리는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마크가 찍힌 대형 버스를 바라보며 부러움과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버스의 창밖으로 구경하면서 지하 3층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간부들과 수많은 사람이 내려와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 버스에서 내려 단상 쪽에 있는 혜령이 이모들에게 걸어가니 뒤쪽으로 박지웅 보스와 김표충 부장, 하유철 부장이 환한 얼굴로 우르르 다가와서 이야기를 쏟아낸다!

“축하드려요. 마스터! 아티팩트 4개에 역사 유물까지 발굴하셨다고 들었어요!”

“유화연 보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요한 건 마스터께서 다하셨다구요.”

“역시 마스터가 최고인 거 같습니다.”

“허허.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네 명이 한 번에 말을 걸어와서 눈을 끔뻑거리다가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누가 들으면 제가 다 한 줄 알겠네요.”

상기된 표정의 혜령이 이모를 보다가 옆에 다가선 하유철 부장을 돌아보니 흐뭇한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아숨프레 수몰 폐허의 1/3이나 되는 구역의 이형종을 모두 정리하시고 수몰 폐허에서 위상력이 깃든 아이템 다섯 개를 감지하신 것도 마스터이시지 않습니까. 거기다 더욱 중요한 것을 발견하셨으니 이 성과는 모두 마스터의 능력에 힘입은 대성공으로 치부될 겁니다.”

“맞아요. 정시하 통합 관리부장님이 전해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정말 대단한 발견을 하셨다구요!”

혜령이 이모의 열렬한 반응에 그냥 웃어주고 있으니 화연이는 사업 지원 2동으로 부산물을 나르는 모습을 보고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피곤할테니 이쯤 해서 해산하도록 하죠. 서하, 레이드 종료 선언을 해주지 않겠나.”

내가 해줘야하나? 뭐 출발때처럼 잔뜩 무게잡고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 단상 위에 올라서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보며 목소리에 마나 보이스를 담아 입을 열었다.

“[우리 그랑 블루를 이끌어가는 간부님들의 들뜬 목소리를 들어보니 첫 레이드는 대성공인 거 같네요.]”

킥킥 웃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왼손에 들고 있는 누호디가 깃들어있는 창을 들어 올리니 웅웅거리면서 십자 창이 스스로 울기 시작한다.

십자 창을 본 사람들의 눈이 놀라서 크게 떠지며 지하 3층 주차장이 시끌시끌해진다.

화연이의 말에 따르면 에고 무기는 유니크 급이라고 했다.

에고 무기라지만 판타지 소설처럼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주인의 무력을 상승시켜주는 개사기 같은 게 아니고 그냥 이형종이 접근하거나 사물에 위험을 감지하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든 무기 자체가 떨리든 해서 알려주는 그런 기능이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위상 세계에서 도움이 많이 돼서 등급이 한 단계 높게 설정됐단다.

“이번에 다들 회피하던 아숨프레 수몰 폐허의 레이드에서 네 가지의 아티펙트와 하나의 역사 유물을 획득했습니다. 획득한 물품의 사항은 이후의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4일간의 레이드,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거 없는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단생을 내려오니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서 내 이름과 그랑 블루의 이름을 연신 외친다.

간부들과 함께 19층의 회의실로 이동하니 혜령이 이모가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안티 필드 에그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았을 때 누호디의 창과 철판을 회의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화연이가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히 설명해 드렸지만 아숨프레 수몰 폐허는 마스터께서 하늘 높이 올라가 호수의 전경을 찍은 결과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걸쳐있는 오대호임이 판명됐습니다. 마스터, 사진을 보여주시죠.”

화연이의 요청에 인증기를 켜서 하늘에서 찍은 위상 세계의 세 호수 사진을 회의실 중앙에 띄우니 다들 놀란 표정으로 옆 사람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미국의 오대호, 슈피리어와 미시간, 휴런, 이리와 온타리오입니다.”

내가 띄운 홀로그램 창 옆에 화연이가 가지고 있던 세계 지도의 오대호를 붙여놓는다. 현실의 오대호와 위상 세계의 오대호는 멀리서 확인해보면 그야말로 90%의 일치율을 보였다.

“약간 차이점이 있지만 크기에 비교하면 없는 거나 다름없군요. 그렇다면….”

김표충 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보며 입을 여는데 혜령이 이모도 신중한 모습으로 말을 받았다.

“…여태껏 위치 확인이 어려웠던 위상 세계의 지형확인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판단되네요.”

“지금까지는 위상 세계가 시간 축이 다른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이야기가 대세였지만 그 증거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나 명확한 사진이 생겼으니 그 주장에 힘이 실리겠군요.”

“이걸 발견하고 증거물까지 확보하신 분이 저희 마스터이니 이걸 위상학회를 통해 발표하면 마스터와 함께 우리 그랑 블루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간부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내 관심 밖의 이야기라 제대로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에 우리 그랑 블루가 유명해진다는 말은 확실히 인식했다.

내 앞에 놓인 철판에 손을 뻗은 화연이는 위상력 운용 기술을 돌리며 철판을 건드렸다.

“이것은 아숨프레 수몰 폐허에서 발견한 마법 진이 새겨진 음성 기록 철판입니다. 이것 또한 이형종이 아닌 인류와 흡사한 고등 영장류의 사회적 동물이 위상 세계에서 존재했으며 지금도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해주는 유물입니다.”

곧이어 검은 안개가 흘러나와 인간 형태로 뭉치며 달부라는 도시가 멸망하게 된 대략적인 내용이 담긴 독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위상 세계가 아니라 그런지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이야기가 나와서 사람들의 눈을 강렬하게 빛나게 만들었다.

저 독백과 내용이 언어학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위상 세계 언어의 해석에도 박차가 가해질 테니까, 여러 가지로 그랑 블루의 이름을 알리는 데 좋은 물건이 될 거다.

4일간의, 정확히 말하자면 2일간의 성과에 대해 모두 들은 간부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 한껏 들뜬 모습으로 날 연신 추켜세웠다.

뭐, 나도 사람이니까 칭찬을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 실실 웃고 분위기가 한껏 들뜬 상태로 회의를 이어 나갔다.

수복 기능을 가진 옷장은 역시 팔지 않고 수복이 필요한 아이템과 장비류의 수리에 이용하기로 했다.

돈을 받고 수복해주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혜령이 이모는 돈이 궁한 상황도 아니고 또 이 정도의 아티펙트라면 좋지 못한 의도로 접근해올 사람들이 있으니 차라리 장비를 매입해서 수리하고 되파는 형식을 취하면 했지 수리 의뢰를 받는 것은 격을 떨어트린다는 이야기에 수리 의뢰는 받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독백이 담긴 역사 유물은 내용의 발표 후 공개 경매로 판매하기로 했으며 곡도와 사슬갑옷 상·하의 한 벌은 정확한 옵션 체크 후에 레이드 팀 내부 인원을 통해 구매자를 찾기로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십자 창에 대한 처분이었는데 십자 창의 유래를 들은 사람들은 다들 표정이 모호해졌다.

위험한 무기라는 걱정 담긴 표정과 그런 무기를 강제로 굴복시킨 나에 대한 감탄, 혹은 황당함이었으니까. 하지만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그나마 수긍할만한 제안이 나왔다.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부분은 십자 창에 깃든 혼과 현시대 인류와의 감정선이 다를 경우입니다. 현재 마스터의 사비로 연구소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니 연구소가 완공되고 십자 창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 봉인하거나 마스터께서 소지하고 계시는 쪽으로 해야 할 듯 합니다.”

“마스터의 실생활 공간에 비치해두는 것은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합니다. 특수 기밀 금고에 특수 장벽을 설치해 그곳에 보관하는 쪽이 바람직하겠군요.”

“좋습니다. 십자 창은 특수 기밀 금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하지요.”

“남은 것은 부산물과 수몰 폐허에서 출토된 보석, 귀금속의 처리군요. 이 부분은 언제나처럼 처분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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