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41화 (241/517)

00241  아숨프레 수몰 폐허.  =========================================================================

위상 세계 입장 3일째.

아침에는 주둔지를 지킬 5팀을 제외하고 1팀과 3팀을 4개 조로 나눠 귀환 포인트 탐색에 내보냈다. 남은 인원들은 전부 부산물의 포장을 시작했다.

누나는 1시간마다 옷장 안에 종류별로 분류해 넣어둔 보석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하나의 물건이 완벽하게 복구 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0시간이라는 걸 분석을 통해 확신했다.

완전히 구부러지거나 동강 나서 부서져 버린 건 수복이 되지 않지만 그 외에는 아무리 심한 상태라 하더라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은 10시간이면 완전히 수복되었다.

다만 미약한 흠집이라도 집어넣은 상태를 기준으로 10시간에 걸쳐 천천히 수복되는 점은 좀 아쉬웠다.

“응. 보석도 전부 새것 같아졌어.”

누나는 과장 보태서 자기 주먹만 한 터키석을 들어 올려 으헤헤헤 웃으면서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데 진짜 얼굴값 못하게….

문득 보석은 원석을 깎아 만든 걸 텐데 저렇게 커팅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가는 걸 보니 원리가 어떤 것인지 조금 궁금해졌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며 신경을 껐다. 나중에 연구소를 지으면 똑똑한 사람들한테 그때 연구해보라고 해야지.

옷장의 크기는 총 높이 2.5m 폭이 1.5m였으며 아래쪽에 서랍장이 없는 형태라 비스듬히 세워 넣는다면 대충 3m 길이까지 옷장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옷장에 위상력이 약간 줄어든 거 같아.”

“그래? 18시간 동안 계속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가. 얼마나 더 갈 거 같아?”

“이 기세로 줄어든다면 7일을 정도?”

“그럼 옷장 속에 있는 물건들을 복구하는데 위상력을 많이 사용하고 복구가 끝난 건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위상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나 보네.”

누나는 남은 흠집난 보석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오늘 나머지를 다 복구하겠다며 중얼거렸다.

아, 그러니까 터키석은 내려놓지 좀!

다들 일하는 와중에 혼자 뒹굴뒹굴하기도 미안해서 화연이와 누나한테 위상석이나 채집하겠다고 하고 허리에는 천총운검을 차고 손에는 누호디의 창을 쥔 채 주둔지를 나왔다.

검은 안개의 이야기와 누호디의 기억에 의하면 이곳 호수 외에도 다른 두 곳에도 수몰 폐허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손으로 창대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야, 너 호수가 보여?”

웅!

지상 50km까지 올라와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십자 창을 향해 질문을 던졌더니 짧게 우는 걸로 긍정의 표시를 보인다.

오기 전에 긍정은 짧게 한번 울고 부정은 길게 두 번 울라고 하니 웅! 하는 걸로 알았다는 의사 표시를 했는데…. 창 주제에 어떻게 주변 풍경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건지 진짜 신기하다.

신기한 걸로 치면 프랑이 가장 신기하지만.

“저 호수 전체가 네가 살던 도시의 형태랑 비슷해?”

웅…. 우웅.

“수몰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도시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건가요?”

웅!

“그럼 니가 죽고 나서 시간이 되게 오래 지났나 본데.”

정태령 2조 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딜도 모양인 호수로 하늘을 달리면서 십자 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넌 누호디의 혼이 확실해?”

웅!

“억울한 사념이 남아 창에 깃들었을 수도 있잖아.”

우웅!

“흠. 도시가 수몰될 거란 걸 예지하고 검은 로브의 사제한테 알렸던 거지?”

웅!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노예 검투사가 됐다가 결국 고문받고 죽은 거고.”

웅….

쩝. 입맛이 쓰다. 프랑도 좀 찌푸린 얼굴로 아숨프레 호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때는 지금 이 시대로부터 몇 년 전일까요. 물속에서 풍화된 석조 건물들의 연대를 측정해본 분의 이야기로는 최소 2,000년은 흘렀을 거라고 하시던데….”

우웅…. 우우우웅….

프랑의 이야기를 듣고 십자 창, 누호디는 슬피 울듯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살짝 가슴이 아릿하게 느껴지는 게 슬피 우는 소리였다.

딜도 호수…라고 계속 부르기도 민망하니 지구에 있다는 똑같이 생긴 호수의 이름을 따라 붙여야겠다.

“여기 호수가 우리 현실에 있는 미시간 호수랑 비슷하다고 했지? 위상 세계에서는 재앙 때문에 호수가 생겨났는데 현실에서는 무슨 이유로 생겨났을까.”

“현실의 오대호는 빙하호 glacial lake라고 정태령 2 조장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빙하가 녹아서 모인 호수라고? 그럼 여기도 재앙이란게 빙하가 녹아 물과 눈이 밀려든 걸까?”

우웅? 우우우웅?

“니가 암만 말을 해봤자 우리 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려. 그리고 계속 너나 십자 창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누호디라고 부를게. 괜찮지?”

웅….

프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미시간 호수에 도착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미시간 호수는 세로로 길게 뻗은 가지 형태의 호수였는데 폭이 짧은 곳은 80km에서 긴 곳은 120km나 됐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직선거리로 160km니까 이 호수만 해도 우리나라가 들어갈랑말랑하는 셈이다.

호수 바닥의 형태는 아숨프레와 비슷했지만, 수심은 훨씬 깊어 가장 깊은 곳은 2.6km나 됐다.

아무튼, 프랑과 함께 90분가량을 미시간 호수의 상공을 뛰어다니며 살펴봤지만, 건축물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대신 위상석을 가진 상위 이형종인 바닷게와 문어, 상어, 수십 미터짜리 고래 같이 생긴 놈들에게서 상위 위상석 4개를 얻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마음대로 충전할 수 있으니 TP 수치보다 위상석의 등급이 중요하다. 그러니 아무리 TP가 낮더라도 등급만 높으면 굿이지.

가지 모양의 호수에는 고위 이형종 네 마리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전부 피소르 사우르스였다. 녀석들은 제일 높은 위상력을 지닌 놈이 100만을 겨우 넘기는 놈들이어서 위상석을 구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하나만 얻으면 연구소 하나 건설하고 몇 년간 굴릴 돈이 생길 텐데.

그 순간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형종에게 TP를 먹여 최고위 이형종으로 만들자마자 죽여버리면 그 위상력을 흡수할 수 있을까?”

“…시험해볼 생각은 아니시죠?”

“해보고 싶어.”

“안돼요! 서하의 TP를 먹은 이형종은 다들 아종이 되잖아요! 고위 아종이라면 최고위와 비슷한 힘을 낼지도 모르고 최고위 아종은 존재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녀석이 강해진 자기 몸에 적응 못 하게 350만 TP를 한 번에 응축시켜서 먹이면 안 될까?”

…격하게 반대하는 프랑을 보면서 살살 달래듯이 입을 열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최하위 이형종이 단번에 최고위로 진화하는데 740만 TP 정도가 필요하잖아요? 지금 서하의 위상력으로는 한 번에 먹일 수 없고 나눠서 먹여야 할 텐데 적응할 시간을 주게 되니까 안 돼요!”

“지금 갖고있는 고위급 위상석에 최대한 충전한 다음에 한 번에 뽑아 먹이면 되잖아. 그럼 적응 할 시간도 안주고 위상력이 350만이 되서 최고위 이형종이 되는 순간 바로 죽이면 돼.”

“그으….”

좋아, 반대가 살살 약해진다!

“나도 생각 없이 위험하게 날뛸 생각은 없어. 한 번만 실험해보고 안 되면, 못 잡을 거 같으면 잽싸게 튈게.”

미시간 호수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며 프랑을 열심히 설득했더니 점점 울상을 짓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대신 주둔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면 하늘로 뛰어올라서 도망치기에요?”

“응.”

그리고 1시간 동안 가지고 있던 고위급 위상석에 TP를 있는 대로 쑤셔 넣어 750만까지 만들어놓고 손에 꼭 쥔 채 실험대상을 찾았다.

그런데 누호디는 아까부터 자꾸 웅웅거리면서 창대를 울려대는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TP를 뽑아내서 응축할때마다 울었.... 아! 저기 몰모트로 적당한게 보인다!

역시 제일 제일 만만한건 바닷게 이형종이지!

바닷게 이형종은 진짜 신체 강화인 주제에 속도도 느리고 가끔 폴짝 뛰어서 덮치는 공격을 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밥 중의 밥이라고 할 법한 녀석이니까.

만에 하나 못 잡고 도망칠 경우를 대비해서 집게발과 다리들을 모조리 뜯어놓고 몸통만 남겨놨다.

두려움이라도 느끼는지 녀석은 두 눈만 남은 채 까닥거리고 있었는데 TP를 먹이기 전에 마나 시브와 마나 보이스로 녀석의 정신을 최대한 위축시켰다.

그리고 뽈록 튀어나온 게 특유의 눈깔이 사정없이 떨리는 걸 보며 손끝에 TP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처음 50만 TP까지는 수월하게 응축이 됐지만, 그 뒤로는 점점 응축하기 힘들어져서 별수 없이 구슬처럼 동글동글해진 100만짜리 TP 구슬을 8개를 만들었다.

너무 압축됐는지 푸른빛이 아니라 검은빛을 내는 구슬 8개를 내려보다가 프랑을 보니 프랑도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내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TP를 보고 있었다.

“자, 시작한다.”

“네!”

나도 긴장하고 프랑도 긴장한 상태에서 몸통 길이만 1m를 넘어가는 하위 이형종인 바닷게의 주둥이에 TP 구슬을 몽땅 쑤셔 넣고 잽싸게 뒤로 물러, 어?!

“아?!”

쯔즈주주즈즈즈….

…TP 구슬 8개를 한 번에 먹은 녀석은 등딱지, 아니 전체적으로 매우 짙은 푸른색에 물들더니 흐물흐물해지다가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곧이어 TP가 폭발적으로 퍼져 나왔지만, 이건 위상력이 아니라 내 TP다. 마나 시브로 끌어당기니 TP가 늘어나길래 죄다 끌어당겨서 TP를 뽑아 쓴 고위급 위상석에 전부 흘려 넣었다.

“아, 뭐야…. 한 번에 800만 TP를 먹으면 못 버텨?”

먹인 건 800만 TP인데 퍼져 나와서 회수한 TP는 600만이 안 된다. 그 순간 200만이 사라진 거다.

얼굴을 찌푸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바닷게 이형종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가 한숨을 폭 쉬었다.

“이대로 끝…내시는 건 아니죠?”

“당연하지! 다음 대상물을 찾자!”

푸시시시식….

“구슬 한 개를 못 버티네.”

8개에서 7개 6개 5개, 점점 줄어들어 1개만 먹여봤는데도 바닷게 이형종은 그대로 액체가 되었다가 기체로 변하면서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너무 허약한 녀석이라 그런가 싶어 중하위 이형종을 찾아다가 먹여봤지만 실패.

이번엔 단 한 마리 뿐이던 중위 바닷게를 잡아 다리를 모두 뽑아버린 다음 TP를 상위 이형종이 될 때까지 TP를 주입했더니 껍질이 핏빛처럼 붉어지고 잘라버린 집게발과 뒷다리가 모조리 재생해버렸다.

거기다 등딱지를 비롯해 다리와 배 부분에까지 악마의 뿔 같은 송곳 수백 개가 튀어나와 무척이나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아무튼, 재생과 동시에 6m까지 자란 녀석은 번개같이 커다란 집게발을 횡으로 휘둘렀는데 마나 모드 - 가속을 켜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한대 얻어맞을 뻔 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재생해버린 가위처럼 변한 집게발이 횡으로 휘둘러질 때 잽싸게 피했는데, 피한 날 보고 분노하는지 철컹철컹하면서 집게발 두 개를 가위처럼 울리더니 내 몸을 썰어버리려는 듯이 흉흉한 기세로 뻗어내 왔다.

공간 보호막을 치고 뛰어오르며 놈의 다리 관절부에 공간의 벽을 쳤더니 우두두둑하면서 조금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공간의 벽을 중첩했더니 다리가 모조리 끊어져 나가며 몸뚱이가 땅에 쿵 하는 둔중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는데 그 순간에도 재생하려는 모습이다.

게다가 배 부분의 딱지를 움직이며 꿈틀거리려 하길래 공간의 벽을 말뚝처럼 만들어 놈의 몸을 고정시켜버리고 다리의 관절부위에 공간의 벽을 쳐놨더니 재생되는 족족 분해되며 무력화된 놈이 시커먼 눈깔을 까닥거린다.

“와. 공간의 벽을 버티는 힘이 히아리드의 날개 방어력과 비슷한데?”

멀리서 긴장한 표정으로 나와 바닷게의 싸움을 지켜보던 프랑은 내가 바닷게를 무력화시키는 순간 날아오으어억!!

쭈루룹!

공간의 벽에 꿰뚤린채 고정되어있던 놈이 주둥이에서 갑자기 시커먼 무언가를 뿜어내길래 황급히 피했는데, 검은 물 같은 게 닿은 공간 보호막이 치지지직하면서 지속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길래 깜짝 놀라서 검은 물을 공간의 벽을 쳐서 지워버렸다.

“서하?!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고개를 돌려 검은 물이 떨어진 땅을 보니 고약한 녹색 연기를 피워내며 땅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상위 아종으로 변한 게한테도 당황….”

그리고 프랑이 뭐라고 말하는 와중에 빠르게 TP 구슬을 바닷게 녀석의 주둥이에 쳐넣었더니 눈깔을 미친 듯이 까닥거리다가 마찬가지로 푸른색에 물들더니 물처럼 녹아내렸다가 기화되어버렸다.

“…….”

힐끔 프랑을 쳐다봤더니 스산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라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프랑한테 다가가서 손을 잡으니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날 내려다본다.

“시, 실험이 목적이잖아? 그거 하나 먹는다고 최고위 이형종이 되진 않는다고. 그래서 나도 1개만 실험 삼아 먹여본….”

“됐어요. 서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요. 그러니 접촉해서 800만 TP를 주입하려는 건 절대 안 돼요. 이번 도둑게만 봐도 날카로운 기세를 보여주는데 직접 붙어서 먹이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아요? 절대, 절대, 절대 안 돼요!”

윽.

“그래도 조심하면서 게다리가 재생될 때마다 잘라내면….”

“그랬다간 두 번 다시 절 못 볼 줄 아세요! 영혼 석에서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

…저렇게 강경한 모습을 보니 차마 시도를 못 하겠다. 칫, 위상력을 늘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돌멩이를 툭툭 겉어차며 툴툴거리고 있으려니 프랑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뒤에서 날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미호가 고위 이형종이 되고 히아리드와 저까지 셋이서 함께 무기부터 방어구까지 모두 차려입는다면 저도 고려해볼게요.”

“…약속한 거다?”

제한적이지만 허락을 해준 프랑을 보면서 좋아하고 있으려니 한숨을 쉰 프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뺨에 키스해주길래 프랑에게 나도 키스해주며 생각했다.

나가자마자 예절, 도덕, 사회 선생님 수배해야겠다. 지금도 하루에 2시간씩 과외받고 있지만 좀 더 박차를 가해야겠어.

점심이 될 때쯤에 주둔지로 돌아왔더니 부산물을 쌓아둔 십수 개의 천막 중 절반이 접혀 철거되고 있었다.

철거된 천막 안에 있던 부산물들은 모두 짊어지기 편하게 포장이 되어있었고 포장된 짐들은 모두 주둔지의 중심부에 커다란 가림막을 쳐두고 그 아래 쌓아놓고 있었다.

귀환 포인트 확인을 나갔던 4개 조도 복귀했는지 각자가 자신이 짊어지고 갈 짐들을 체크하느라 주둔지가 시끌시끌하다.

“다녀왔어?”

“응. 여기 106만 TP.”

서류뭉치를 들고 다가온 누나는 깃털 예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발굴할 때에는 다들 평범한 차림이었는데 어느새 전투 복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4시간 만에 1조 원을 번 거니?”

두 손으로 4개의 상위급 위상석을 건네받은 누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지나가다 누나의 말을 들은 능력자들도 놀란 표정이 됐다가 "마스터니까 그 정도는 하셔야지", "그럼 그럼." 하면서 부산물 천막 쪽으로 가버렸다.

“…조금 놀면서 모은 거야.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테니까 돈 벌어야지.”

놀았다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한테 들릴세라 조용히 말했다.

“정말 신촌동 수련장에 저택 지을 거야? 연구소랑?”

“대~저택을 지을 거야. 연구 단지도 지을 거고 정제 소도 지어야지.”

세 개를 짓는데 얼마나 드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지금도 지을 돈이 있는데?”

“그건 그랑 블루의 자금이잖아.”

“…너 사업내역서 안 읽어봤지.”

사…업 내역서? 그 400장짜리 백과사전 수준의 책 말이지? 당연히 안 읽어봤지. 그거 읽을 시간에 화연이랑…. 흠흠.

당당한 내 모습에 누나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피식 웃으면서 설명해준다.

“어휴. 레이드 팀에서 나오는 수익을 100이라고 하면 그중 30은 레이드 팀의 자금으로 쓰이고 남은 70은 각자의 배분율에 따라 나뉘게 되지만, 레이드에 서하 네가 참여하면 70의 절반인 35%를 네가 가져가게 돼.”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35%의 한도 내에서 자기 배분을 받아가는 거지.”

그러면서 서류철의 종이를 넘겨 나한테 한 부분을 보여주는데 보석의 수입이 약 1720억가량이고 부산물 쪽은 6,200억. 위상 석은 98만, 그 밑에 내가 방금 가져온 106만 TP를 표시해놓고 옆에 약 2조 7천억이라고 쓰여있었다.

“복구가 완료된 곡도와 체인메일 한벌을 판매한다 치면 이번 수입은 3조 4920억가량이 돼. 그중 1조가량은 레이드 팀 사업비로 쓰이게 되고 남은 2조 4444억 중 1조 2,222억은 네 주머니로 들어간다구.”

누나가 써주는 1,222,200,000,000이라는 숫자를 보지만 그냥 숫자로 보일 뿐 이게 돈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네가 참여하지 않는 레이드에서 난 수익의 일부분도 네 통장으로 들어가. 그리고 정제소 공장을 짓는 비용은 레이드 팀의 사업비에서 나갈 거야. 연구소 역시 사업비에서 나갈 테지만 너도 출자할 수 있을거구. 너는 니 집 지을 돈만 모아. 정제 소나 연구소는 앞으로 통장에 쌓일 돈을 가지고 해도 충분하니까.”

“응. 알았어. 근데 내가 참여하지 않은 곳에서도 돈을 받는 건 좀….”

“네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야.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도 사양하면 호구가 될 뿐이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어.”

요 며칠 맹한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렇지 실제로는 똑똑하니까 누나 말에 따르는 게 낫겠지?

내가 오전에 혼자 나가서 100만 TP 위상 석을 확보해왔다는 이야기가 주둔지에 퍼졌는지 능력자들이 힐끔거리면서 날 바라본다.

공중에 공간의 벽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부산물을 짐으로 꾸리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독순술로 읽히는 여자 능력자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멋지다아…. 저 사색하는 모습 좀 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한 고뇌가 느껴 져…. 반할 거 같아~!-

…난 그냥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구경하고 있을 뿐인데…. 아무래도 마나 비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나는거 같지?

저렇게 호감도가 계속 쌓이면 스파이짓 같은 유혹에는 안빠질테니 그냥 잘됐다고 생각해야지.

-4시간 동안 1조를 벌다니. 마스터는 진짜 레이드 팀을 짤 필요가 없는 거 아냐?-

-그러게. 돈 안 되는 부산물 따위 다 버리고 그냥 위상석만 챙겨도 되실 텐데 왜 레이드 팀 마스터가 되신 걸까.-

-우민들아. 당연히 유화연 보스 때문이지. 화랑의 배경에는 유화연 보스의 모친이신 대통령님도 계시잖아. 그러니까 두 레이드 팀을 합쳐서 자기 아래 두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한 몸 희생하시는 거 아니겠니.-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능력자가 히죽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 건 모르겠고 난 진짜 만족한다. 이번 배율을 따르면 나한테 떨어질 배당금이 200억이 넘을 텐데, 예전 화랑에서였다면 이 정도 받기 위해서는 정말 목숨 걸고 몇 주 동안 개같이 구르면서 뛰어야 하는데 고작 2일간 땅 좀 파고 벌었잖냐.-

-그것도 절반은 마스터께서 가져가시고 남은 거지? 거기에 아티펙트들은 뺀 돈이라잖아.-

-캬~ 앞으로도 마스터랑 함께 위상 세계 들어오고 싶다….-

-힘들 걸. 마스터가 위상 세계 입장할 때마다 10개 팀 중 2팀씩 로테이션하기로 했다던데. 이번에는 첫 임무에 수몰 지역 작전이라 우리 1팀이랑 너희들 3팀 5팀 같이 들어온 거지 다음부터는 두 팀만 따라간대.-

후후후. 이렇게 차츰차츰 내 명성을 높여가는….

그 순간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가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마스터의 TP를 먹으면 진짜 천국을 오르내릴 만큼 기분이 좋다던데 사실일까?-

-사실 아닐까? 7팀의 수지가 미호한테 맛난 거 쥐여주면서 자세히 물었는데 막 몸이 배배꼬일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더라.-

뭣이! 아, 생각해보니 미호한테 입단속 안 시켰네.

-…마스터한테 달라붙어서 아양 떨면 맛보게 해주시지 않으려나?-

-그랬다가 마님한테 걸리면 깩소리도 못하고 죽는다 너.-

-욕심부리다가 유화연 보스 눈에 벗어날 만한 짓은 하지 마. 그러다 일본처럼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돌아가면 미호의 궁둥이를 터지도록 두들겨야겠다.

============================ 작품 후기 ============================

어제밤부터 하루종일 비가 오니까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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