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9 아숨프레 수몰 폐허. =========================================================================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무너져서 통로를 반쯤 막고 있는 흙을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리고 십자 창에 다가가니 웅웅거리면서 붉은빛이 더 강해지고 내 몸에 둘러진 마나 시브를 찌르는 느낌도 조금 더 강해진다.
그래 봤자 누나의 어둠 속성 검은 안개보다 못하다. 누나의 어둠 속성이 내 마나 시브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라면 이건 솜털로 간지럽히는 느낌?
우우웅~! 우웅우웅!
“큭….”
날 따라 다가오려던 화연이는 더욱 강해지는 십자 창의 기세에 버티지 못하고 황급히 물러난다. 하지만 저러는 창의 모습이 나한테는 '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야!' 하는걸로 느껴진다.
“오지 말란다면 더 다가가 줘야지.”
우웅?!
어? 방금 소리가 좀 달랐던 거 같은데. 어쨌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붉은빛을 뿌리는 창을 내려다보다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입을 열었다.
“조용히 안 하면 허리 분질러버린다.”
우우웅 우우….
…뭐지. 진짜 말귀 알아듣는 거야? 설마하니 에고 웨폰?!
긴가민가하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기운도 치워. 아까 유령이 터져나간 거 봤지? 내 말 안 들으면 너도 그 꼴 날 줄 알아.”
…….
허어…. 진짜 말을 알아듣네. 씻은 듯이 사라진 불길한 기운에 혹시나 해서 있는 대로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눈에도 마나 비전을 극도로 발휘하면서 창에 손을 뻗어서 잡았다.
“서하!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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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이겁니까.
이번엔 무슨 영상을 보여주시려는…. 또? 또라니, 예전에 본 검은 성 말고 한 번 더 본적이 있나? 이상한 기분에 머리를 굴리다가 보이는 영상에 정신을 집중했다.
장소는…. 지금 있는 성당? 회색 석조 건물에 천장에는 나무 샹들리에와 벽에 잔뜩 서 있는 수십 구의 촛대 장식물에 올려진 초에서는 노란빛이 일렁이며 어두운 성당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성단의 뒤편 벽에는…. 똬리를 튼 모양의 거대한 뱀의 상이 놓여져있었는데 저거, 어째 눈에 익다?
…아! 하늘 섬의 신전에 있던 그 뱀이랑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
그 성단의 앞에는 새까만 로브를 입은 바코드 머리의 중년 남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로마 군단 병 같은 복장의 사람에게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투구의 아래로 칙칙한 금발이 뻗어 나와 있고 빨간 망토를 두른 로마 군단병 같은 복장인 사람은 왼손에는 십자창을 들고 오른손에는 스쿠툼이라고 불리는 사각 방패를 쥐고 있었다.
어? 저 창은….
병사는 스쿠툼을 내려놓더니 머리에 쓴 갈리아식 g형 투구를 거칠게 벗어 땅에 내동댕이치며 격렬하게 항의한다.
소리가 없군.
투구를 벗어서 드러난 병사의 얼굴은 곱상한 얼굴의 여자였다.
로마 여신 같은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는데 병사라고 보이지 않는 약간 통통한 외모였지만 일그러진 얼굴이 무척이나 화가 난 모습이다.
무엇이 그리 화나는지 하얀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십자창의 끝으로 연신 성당 바닥을 쿵쿵 찍으며 항의하는 여성은 계속되는 검은 로브의 남자…. 사제겠지? 사제의 거부를 표현하는 고개 저음에 결국 크게 분노해서 정강이 받이를 한 다리를 들어 올려 성당 바닥을 내려찍었다.
그 충격에 천장에 메달린 나무 샹들리에가 흔들흔들하다가 초 몇 개가 떨어지는데 로마 병사 복장의 여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창을 휘둘러 정확히 촛대의 끝에 붙은 불만 쳐서 꺼버리더니 다시금 격하게 항의를 시작한다.
…어? 누호디? 으응? 저 남자 사제의 입이 달싹거리는 순간 누호디라고 한 거 같은데.
누호디는 그 영상 재생 철판에 나온 이름이잖아. 그, 멸망을 예언했다던 그 사람. 그럼 저 사제가 그 철판의 영상 기록 본인이고 저 창을 든 여자가 누호디?
그러는 와중에 무언가의 설득은 실패했는지 으득하고 이빨을 깨문 누호디는 창을 질러(순간 사제를 찔러죽이는 건가 했다.) 바닥에 떨어진 투구를 쳐올리더니 튕겨져 올라온 투구를 잡아 머리에 쓴 다음 스쿠툼 들고 거친 동작으로 몸을 돌려 성당을 빠져나간다.
누호디는 네모난 석조건물들이 서 있는 길을 지나 그녀의 방으로 보이는 곳에 돌아오더니 바로 창과 방패를 내팽개치고 갑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군살이라고는 1g도 없을듯한 완벽한 근육질의 나신을 붉은빛이 감도는 달빛 아래 드러낸 그녀는 수건을 물에 적시고 뒤뜰로 나가더니 달빛을 받으며 몸을 닦기 시작한다.
몸만 봐서는 화연이나 영은이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 같은 강인한 모습이다.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은 누호디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얇고 가벼워 보이는 커다란 천을 몸에 두르고 돌로 된 침상에 모로 누워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상념에 잠겼다.
그런 누호디의 집에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가 찾아오더니 갑자기 19금 씬을 찍기 시작한다.
뭐야. 왜 이런 걸 보여줘? 그보다 50대가 20대 여자를 안는 건 너무 시각적으로 괴로운데.
한창 물고 빨다가 막 본경기에 들어가려는 순간 누호디는 손을 내려 음부를 가리고 검은 사제의 물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막았다.
그러면서 뭐라 뭐라 입을 여는데 검은 로브의 사제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다가 크게 노한 표정이 되어 누호디의 뺨을 힘껏 후려쳐버린다.
남자 사제는 입가에 한줄기 피를 흘리는 누호디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기분 상했다는 듯이 두꺼운 천이 깔린 돌침대에서 일어나 로브를 걸친다.
누호디는 재빨리 다가가 사제의 로브 자락을 움켜쥐는데 손을 크게 털어 누호디의 팔을 떨쳐내고 발길질로 쳐낸 뒤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얻어맞은 충격으로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쓰러진 누호디는 아프다거나 화난다는 표정이 아니고 그저 상실감과 허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한낮, 길고 넓은 흰 천으로 몸을 감아 드레스처럼 만들어 입은 누호디는 2층의 난간에서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는 누호디의 눈에는 사랑스러움과 고통과 절망과 후회가 담겨있었다.
밝은 햇살이 내려 쬐는 석조 건물과 목조 건물 사이사이에 푸른 나무들이 잔뜩 자란 도시는 내가 알고 있는 빌딩 숲의 도시와는 다른 이질적인 차가움과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한참을 도시를 내려다보던 누호디는 몸을 돌려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누호디의 갑옷과 비슷한 옷을 입은 병사들 여럿이 우르르 달려들어 누호디를 거칠게 밀쳐 넘어트리더니 그중 빨간 닭벼슬같은 센추리온 투구를 쓴 장교가 나서서 양피지를 펼쳐 입을 연다.
굳은 표정의 병사들 여섯에 둘러싸인 누호디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양피지를 다 읽었는지 센추리 온 투구를 쓴 남자는 다시 양피지를 말아 들고 방을 나가버리고 다섯 병사의 손에 잡힌 누호디는 그대로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 와중에 천 자락이 병사들의 발에 밟혀 풀어헤쳐져 대낮의 대로에 알몸으로 끌려가게 됐고 구경꾼들의 저질스런 표정과 환호를 받게 됐지만 누호디의 표정에는 슬픔만 가득했다.
대낮이지만 창이 몇 개 없어 여전히 어두컴컴한 성당에는 검은 로브의 사제가 성단 뒤편, 뱀의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누호디를 끌고 온 장교와 병사 여섯은 누호디를 밀쳐 쓰러트려 놓고 성당을 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누호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기도 중인 사제를 바라보고, 기도가 끝난 검은 사제도 자리에서 일어나 누호디를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시금 흘러가는 시간.
철판을 발견한 콜로세움에서 누호디는 현란한 창술을 선보이며 중위~중상위로 보이는 도둑게 이형종의 관절을 토막 내다가 결국 몸뚱아리만 남은 도둑게의 등딱지 위에 올라가 창을 높이 들어 올리며 자신의 붉은 눈동자처럼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른다.
다양한 복장의 수천의 관객들이 격렬한 환호성을 지르며 열렬한 동작으로 누호디에게 꽃과 손수건을 마구마구 집어 던졌다.
누호디의 상태는 멀쩡하지 않았다.
도둑게와 싸우기 전에 이루어진 수십번의 전투에 새것같이 빛나던 갑주는 모두 부서져 버려졌고 피처럼 붉은 망토는 이제 누더기처럼 헤어져 어깨 어림에 걸려있었다.
허름한 천으로 가슴과 비부만을 가린 모습, 멀쩡한 것은 그녀의 몸뚱이와 3m짜리 십자 창 한 자루 뿐이었다.
누호디는 그 뒤로 정말 많은 자들과 싸웠다. 기억이 강물처럼 흐르듯 장면 장면이 연속되는데 그중에는 누호디와 같은 인간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고 귀가 뾰족한 자, 땅딸보 난쟁이 같은 자, 돼지 같은 들창코에 근육질 인자와 개의 머리를 한 자 등.
늑대인간 이형종을 세로로 쪼개버리는 것으로 이번에도 승리를 쟁취한 누호디.
어림잡아 세자릿수의 목숨을 거두어들였을 무렵 수백 번의 연승을 이어가던 누호디도 오랜 시간 전투가 이어지며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했는지 녹음이 우거진 숲이 떠오르는 녹색 머리카락과 뾰족하고 긴 귀를 가진 쌍검사에게 한 번의 패배를 기록하고 만다.
온몸에 날카로운 자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패배한 누호디는 그 즉시 무장이 해제되어 어느 대저택…. 성으로 보이는 곳에 끌려가 고문을 받기 시작했다.
수많은 장소를 옮겨 다니며 고문을 받고,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모욕과 성적인 폭행을 받고 많은 수의 관객들 앞에서 조롱과 함께 아인종과 짐승들에게 윤간당하며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분노와 고통, 절망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고문을 받아내는 누호디의 눈동자는 깊은 슬픔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누호디가 쓰던 십자창이 거꾸로 박힌 성당의 지하실.
나와 화연이가 서 있던 그 장소였다.
오랜 시간 많은 종류의 고문의 흔적을 몸에 새겨놓은, 예전의 새하얗고 아름다울 만치 강인했던 육체는 모두 사라지고 앙상한 뼈와 가죽에 상처만을 남긴 누호디는 자신의 창 자루에 몸이 묶인 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주일간 방치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그녀에게 입맞춤하기 직전, 그녀의 코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지가 분노하듯 격렬한 떨림이 수 분간 지속되었다.
흔들리며 들썩이는 지하실의 돌벽 사이에 흙가루가 떨어질 정도의 진동에 힘겹게 눈을 뜬 누호디의 붉은 홍채에 통로를 들이치는 격류가 새겨진다.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운 시커먼 물의 격류.
격류 속에 누호디는 눈을 감고 그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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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떴을 땐 한쪽 무릎을 꿇고 창 자루에 손을 가져간 그 자세 그대로였다. 오래되고 길고 긴 기억을 봤지만 공간 지각은 내가 창을 잡은 지 10초가 채 지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창 자루를 잡고 일어서니 뒤에서 화연이가 다급히 달려들어 내 얼굴을, 몸을 더듬는다.
“머리는! 몸은 괜찮은 건가?! 너는 어찌 그리 무모한 짓을…!”
…내 얼굴을 진흙 범벅으로 만든 화연이를 뚱한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화연이도 잠시 내 얼굴과 자기 손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다.
심통이 나서 창대의 끝으로 화연이의 아랫배를 쿡하고 찌르니 움찔했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으흠으흠거리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묻은 흙을 닦아내며 불만을 담아 화연이를 한번 노려봐주고 창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뭐라고 말해봐.”
“미, 미안하다. 손에 진흙이 묻은 걸 깜빡했다. 용서해줘.”
“응? 아니 화연이한테 한 말이 아니야. 이 창에 누호디의 혼이 담겨있는 거 같아서 그래. 야, 말 안 해?”
창대로 바닥을 쿵쿵 찍으니 창날에서 우우웅 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너 누호디 맞아? 맞으면 짧게 울어봐.”
“누호디라고? 서하, 지금 무슨 말을….”
웅!
창이 우는 소리에 화연이는 깜짝 놀라면서 내 손에 들린 십자창을 바라봤다.
일단은 자신이 누호디라고 대답한 십자창을 보며 말했다.
“나한테 네 기억을 보여준 이유가 뭐야…. 라고 물어도 대답 못 하겠지. 이걸 어떻게 할까.”
“정말 누호디 본인이 맞는 건가? 믿기지 않는군….”
별반 반응이 없는 창대에 TP를 살짝 흘려 넣었더니 우우웅?! 우우우웅우웅우우웅!! 하고 격렬하게 울면서 붉은 기운을 퍼트리려 하길래 허리춤에서 천총운검을 뽑아내 TP를 주입해 셔 내려치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울음도, 붉은 기운도 딱 멈춰버리는 십자창.
“…저주를 받아서 광전사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해?”
“광전사의 저주가 담긴 무기가 위험한 이유는 이지를 잃은 채 무기에 조종당하며 끊임없이 전투를 이어가며 생명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생명력이 고갈되어 죽게 되지. 그것을 해결하려면 저주의 매개체, 십자 창을 바로 부수면 즉시 광전사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들었지? 난 니가 언제 어디라도 바로 부술 수 있어. 널 잡고 움직이던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터져나가듯이 말이야.”
우웅….
“그러니 사람들 현혹했다간 넌 그 자리서 폐품 확정이다. 알아들었으면 한 번만 울어.”
웅!
이 창은, 아무래도 누호디가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창에 혼이 깃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프랑의 경우가 생각나서 그냥 부숴버리기에는 거리낌이 든다.
거기다 내 이야기도 알아듣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걸 보니 확 부숴버리기에는 뭔가….
“나가자. 누호디에 관한 거랑 내가 이 녀석을 잡은 순간 봤던 기억은 다들 모인 장소에서 들려줄게.”
“그래.”
화연이와 함께 나가는데 내 옆에서 걷던 화연이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광전사로 만드는 저주를 담은 에고 웨폰을 굴복시킨 희대의 장면을 봐서 그런다.”
라며 핏 하고 웃어버렸다.
앞장서는 화연이의 뒤를 따라 지하실을 나왔더니 발굴은 종료됐는지 능력자들이 전부 내가 있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와 화연이가 지하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누나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내 왼손에 들린 창을 보며 물었다.
“이게 그거야?”
“이게 그거야.”
입을 삐죽이는 누날 보고 슬쩍 웃어주니까 누나는 흥흥거리다가 화연이한테 다가가 1조부터 11조 전원 발굴 작업이 종료됐다고 전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화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람 속성 능력자를 불러 모두 주둔지로 이동하라고 전해라며 보내고 획득한 유물과 장비 품을 실은 수레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 누호디의 창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호숫가를 살펴보며 경계 중인 프랑에게 다가가니 프랑이 방긋 웃으면서 내 품에 안겨왔다.
“일은 잘됐나요?”
“응. 그냥 공간 지각으로 확인했을 때는 소울 리퍼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간 거였는데…. 뭔가 복합적인 요소가 담긴 거 같아.”
“소울 리퍼…. 언데드 지역도 아니면서 그런 무기라는 건 신기한 경우네요.”
“아냐,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언데드 무기라고 보기에는 좀…. 광전사 저주가 담긴 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구. 내가 보기에는 창에 이전 사용자의 혼이 깃든 거 같아.”
혼이 담긴 무기라는 말에 프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랑 비슷한 경우일까요?”
“글쎄, 내 이야기를 알아듣는 거 같긴 한데 프랑이랑 비슷한 경우라고 보긴 힘들지도.”
나도 처음 보는 무기라서 호기심을 가지긴 했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위험성이 높은 저 십자창을 쓰거나 파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내 생각을 들은 프랑은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쓰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한다.
“글쎄, 근접전도 못 하는 내가 저 창을 들어서 뭐하겠어.”
그렇다고 화연이나 영은이더러 쓰라고 줄 수도 없고 팔 수도 없고 부수기에는 창대를 잡는 순간 본 기억 때문에 거시기하고.
하여튼 프랑의 손을 잡고 주둔지로 향하는 화연이와 누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주둔지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온몸에 덕지덕지 발려 있는 진흙을 씻어내는 거였다.
해가 지고 있을 무렵이라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데 식사 담당 생활보조 능력자들까지 전부 투입된 발굴이라 그녀들 먼저 씻고 나오게 배려해줬다.
그 뒤 다른 능력자들이 차례차례 씻는 와중에 누나는 능력을 사용해 화연이랑 최수한을 먼저 간단히 씻겨주고 자신도 씻은 다음 셋이서 11개 조가 아숨프레 수몰 폐허에서 획득한 자루 80개 분량의 각종 물품을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우선 물로 한번 다 씻어낸 다음 귀금속과 보석 동전 장비 순으로 분류해야겠네.”
“예술품 쪽은 물속에 오래 있어서인지 목조 액자의 흔적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라 판단되는 것은 대부분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뭉개진 상태였거나 나무로 된 책 껍질 등만 남아있었습니다. 그 외에 대부분 민가라고 판단되는 건물이어서….”
“최수한의 말대로다. 일단 땅속에 묻혔던 것과 건물들을 뒤지며 보석이나 귀금속, 동전 등을 획득했지만, 동전 종류는 금과 은의 함유량을 확인해보고 버리던가 해야겠지.”
프랑은 세 사람에게 다가가 옆에 쏟아져 있는 잔뜩 이끼 끼고 녹슨 동전들을 살펴보다가 화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숨프레 수몰 폐허의 탐색과 발굴은 모두 끝난 거에요?”
“네. 모두 끝났습니다.”
의자 모양으로 공간의 벽을 치고 그 위에 앉아있는 날 돌아본 화연이는 살짝 웃어주고 프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하가 없었다면 이번 레이드는 실패라는 단어도 부족할 정도로 큰 실패를 했을 거 같군요.”
“에이. 과장하지 마. 못해도 그 옷장은 찾았을 거 아냐. 형태도 멀쩡하고 외관상 상하거나 부서진 게 하나도 없는 건데.”
“아니. 서하 네가 없었다면 공략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호수에서 수생 고위 이형종에 상위 이형종과 싸우라니, 미친 짓과 다름없다. 실수 한번 하면 대형 인명피해가 날 자연환경인데 거기에 발굴과 탐색이라니, 말도 안 되지.”
화연이의 말에 최수한도 날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전 세계 레이드 팀이 난색을 보이는 전투 1위가 수중전입니다. 작년 능력자 연합에서 인증기 커뮤니티를 통해 공략 포기 대상 1순위가 수중 지역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성과는 대성공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최수한의 이야기에 다들 따로 고이 모셔진 고풍스러운 엔티크풍 검은색 옷장과 곡도, 사슬갑옷 상하의 한 벌과 십자 창을 바라보지만, 누나만은 날 주인님이라고 칭하는 최수한을 불편한 표정으로 봤다.
어제 출발 직전에 최수한이 내 집사가 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때 표정이 진짜 스무 살 아가씨 맞나 싶게 썩은 표정이었지….
누나는 자루에서 쏟아져나오는 발굴품들을 내려다보다가 우릴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저녁을 먹고 난 뒤 사기를 북돋기위해 탐색 발굴의 성과를 공개하도록 해요.”
누나와 화연이는 씻고 나오는 사람들을 부르며 발굴품들의 정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진행 내용에 스포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무언가가 신경쓰여 집중을 못하시겠다는 분이 많이 계셔서 가장 기본적인 틀만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NTR은 없어요. 절대 없음! 등장 인물이 죽으면 죽었지 NTR은 없어요!
중요한거라 두번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