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8 아숨프레 수몰 폐허. =========================================================================
해산물 풀코스 점심을 먹고 3팀의 박윤호 팀장과 17명의 팀원만 주둔지에 남겨둔 채 121명 전원이 수몰 폐허에 진입했다.
10명씩 한 조로 11개 조를 만들어 돈이 될만한 것들을 모두 발굴하라 지시한 화연이는 남은 6명과 누나와 최수한을 이끌고 위상력이 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중에 떠서 이형종이 오나 안 오나 감시하고 있었고.
프랑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지 360도 사방을 쉴 새 없이 돌아보며 이형종이 다가오는지 안 오는지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심심해져 버렸다.
공간의 벽에 드러누워서 화연이와 누나가 위상력이 느껴지는 곳을 파내는 걸 구경하고 있으려니 누나가 뻘밭의 물기를 조작해 바짝 마른 흙으로 만들어버리고 대지 능력자가 나서서 흙을 움직여 구멍을 만들기 시작한다.
“지루하시면 화연에게 가셔서 발굴을 도와드리시는 게 어때요?”
“응? 그럼 프랑이 지루할 거 아냐.”
“지루하지 않아요.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풍광을 즐기는걸요? 전 괜찮으니 가서 화연을 도와드리세요. 발굴이 일찍 끝나면 일찍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까?”
“그럼요!”
그럴 리가 없지. 단순 감시가 재미있을리가 없잖아. 게다가 몇시간째 똑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데 좋은 경치를 구경하는것도 한 두번이지.
손을 뻗어 내 위에 떠 있는 프랑의 종아리를 만지니 껴안으니 "어마?" 하면서 날 내려다본다.
“지금 화연이가 캐내고 있는 건 옷장처럼 생긴 물건이야. 위상력이 담긴 옷장이라니, 웃기지 않아?”
“옷장이요…?”
“응. 그 옷장 안에 세련된 풀 플레이트 아머가 멀쩡한 모습으로 들어있긴 한데…. 위상력이 깃든 물건도 아닌데 전혀 녹슬거나 상한 모습이 아니야.”
“어머. 혹시 보존 기능이 있는 옷장이 아닐까요? 보존 기능이 달린 건 상하거나 녹슬게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 진짜?”
호오, 보존 기능이란 것도 있구나.
“아무튼 남은 3개는 검이랑 사슬 갑옷하고 창 하나씩이야. 내가 도와줄 이유가 없어.”
프랑의 매끈한 맨살을 만지다가 원피스 자락을 살짝 잡아 들어 올리니 새하얀 두 다리 사이 삼각지를 가리는 레이스 팬티가 눈앞에 드러난다.
“아휴. 서하도 참.”
뭐라고 말하려던 프랑은 내 짓궂은 행동에 얼굴을 붉하면서 다리를 오므리더니 두 손으로 원피스를 누른다.
부끄러워하는 프랑과 아웅다웅 거리면서 놀고 있으려니 수몰 폐허를 뒤지던 팀원들이 부럽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게 독순술로 읽혀진다.
-부럽다…. 하늘 위에서 저런 초절정 미소녀 정령과 노닥거리고….-
-크으.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지? 재능 쏠림이 심해도 너무 심하잖아.-
-또 유화연 보스와 연인 사이시라면서. 진짜 부럽다.-
-인생의 승리자란 저런 모습이겠지? 거기다 유화연 보스도 타임리버때랑 요즘이랑 비교하면 그야말로 살 떨리게 아름다워지셨지 않냐?-
-유화연 보스랑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조흐컥!-
-이 개새끼가?! 뒈지려면 혼자 뒈져 새꺄!-
-아오. 미친 꼴통 새끼가! 개소리 하고 싶으면 말로 하지 말고 짖어 인마!-
-으아각! 그만 때려 씹새끼들아! 마스터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걸 듣냐 듣길! 아오. 씨발, 더럽게 세게 때리네! 너희 나한테 감정 있냐?!-
-야 이 미친놈아! 마스터 공간 지각이 범위안에 모든 걸 본다는 거 몰라?! 거기다 독순술까지 익히고 있으시다는 데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간 다 보실 거라고! 우리까지 골로 가게 만들고 싶냐?!-
-어…. 진짜?-
-야! 저 새끼 버려! 걸리면 우리까지 좆될지모르니까!-
-아오, 고문관 새끼!-
-야야! 미안! 미안해! 입조심할게!-
…화연이를 상대로 음담패설을 내뱉은 저 새낄 순간 조져버릴까 했는데, 조지는 건 심했고 벌은 줘야겠다. 그래야 내 연인들에 대해 숙덕거리다간 큰일 난다고 소문이 퍼지면서 입조심하지.
“프랑. 퀘스트 발생이야.”
“네?”
“지금 북서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이동 중인 10명의 무리 보여? 한 명이 9명 뒤따라가는 모양새.”
“네. 보여요.”
“거기 검은색 판금 부츠에 허리춤에 검은색 건틀렛을 고정시켜두고 검은 소매 없는 티에 검은 바지 입은 남자도 보이지?”
“제일 뒤에 쫓아가는 사람이네요?”
“그 사람한테 10 TP 벼락 한 방 먹이고 오면 퀘스트 클리어야.”
“…무슨 죄라도 저질렀나요?”
“응. 입 잘못 놀린 죄. 퀘스트 보상은 키스 1회 이용권이야. 어때?”
“다녀올게요!”
퀘스트 보상을 들은 프랑은 고민도 하지 않고 잽싸게 날아가더니, 지목한 남자를 불러 세운다.
그러자 그 남자는 사색이 돼서 나랑 프랑을 번갈아 보며 허리를 굽신거리고 남은 9명도 안색이 퍼렇게 변하면서 검은 플레이트 부츠의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은 고개를 절래절래젓더니 손가락을 뻗으니까 입을 함부로 놀린 능력자는 두 눈을 감고 전신에 위상력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 저거 T resist 맞지? 방어 기술.
그리고,
꽈릉!
끄아아악!
약한 번개를 한 방 먹고 비명을 지르면서 뻘밭에 자빠진 능력자를 두고 프랑은 내 쪽으로 날아오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조원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날 향해 날아오는 프랑과 벼락을 맞고 뻘밭에 꼬꾸라진 녀석을 번갈아 본다.
“다녀왔어요!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벌이라고 해주면서 벼락을 떨어트렸어요.”
“응. 잘했어. 퀘스트 보상은 지금 쓸래?”
“후훗. 좀 있다 쓸래요.”
“그래.”
벼락을 맞은 녀석에게 사람들이 모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다가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던 일을 마저 하러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같은 조원이라고 버리고 갈 수는 없었는지 회복 능력자가 벼락 맞은 녀석에게 회복을 걸어주는 게 보였다.
-…그래도 벼락 한대만 날린 걸로 벌은 끝난 거겠지?-
-와 진짜 무섭다. 예쁜 정령 아가씨인 줄만 알았는데 단호하기까지 하네.-
-그만하고 발굴에 집중하자 집중.-
-어어. 그래-
잠깐의 헤프닝이 일어나긴 했지만 11개 조의 조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의 건물을 뒤지고 다니고 대지 속성 능력자들은 땅속을 살펴보며 발굴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화연이는 땅에 파묻혀있던 위상력이 담긴 옷장을 꺼내 올렸는데, 그 옷장은 나무로 만들어진데다 땅속에 오랜 시간 파묻혀있었을 게 틀림없는데도 나무의 결이 살아있는 게 막 만든 것마냥 광채를 뿌려댄다.
굉장히 고풍스러운 검은색 옷장 안에는 갓 만든 것 같은 세련된 풀 플레이트 아머 한 벌이 보관되고 있었다.
형태와 굴곡을 봐서는 여성용으로 보이는 풀 플레이트 아머는 평범한, 아니 질 좋은 철로 만든 상등품이었지만 위상력을 머금지 않은 일반 제품이었는데도 갓 만들어진듯한 광채를 자랑하는 걸 보며 진흙투성이의 사람들이 연신 대박 났다고 입을 연다.
호수 쪽을 감시하던 프랑을 위해 라디오 중계방송 해주듯이 이야기를 해주니 눈이 동그래지며 날 내려봤다가 다시 호수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공기에 노출됐는데도 멀쩡하다니, 역시 보존 기능이 달려있나 봐요. 오랜 시간 멀쩡한 상태로 유지해주는 아이템이라니, 굉장한 물건이네요.”
“그 정도 수준이야?”
“무기와 방어 구라면 지속해서 마모되며 언젠가는 부서지게 되는 게 법칙이잖아요. 그런 법칙을 거스르게 해주는 도구에요. 정말 저 옷장이 장비를 유지 보수를 해주는 거라면 그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거에요.”
그러면서 내 손에 들린 천총운검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나 가치 있는 무기와 방어 구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서하의 천총운검 정도라면 저 옷장의 품격에 어울리는 무기겠지요. 그리고 천총운검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테구요.”
…프랑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위상 세계에서 발견된 위상력을 머금은 레어나 유니크, 레전드리 등급의 장비들은 부서지거나 파손되면 수리할 방법이 없다.
아니, 존재하긴 한다. 똑같은 재질로 판단되는 위상력을 머금은 광물로 땜질하거나 소모된 장비의 위상력을 위상석을 이용해 충전하거나.
하지만 술에 물 탄다고 술이 늘어나는 건 아니잖아. 물을 타면 탈수록 희석되다가 결국에는 물이 되어버리지.
그러니까 전투를 치를수록 빨리 마모되는 소모품이나 다름없고 내가 장비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그 방법이 해결되는 거라면….
“가격이 억 단위겠네. 억 달러 단위.”
“그쵸?”
이제 보니 가장 큰 대박은 저 옷장이었구나. 그제야 발굴도 중단하고 옷장 주변에 모여서 인증기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
“아, 10시 방향에 위상력 16,744의 바닷가재 이형종이 올라와요.”
“어.”
중상위인가.
퍼퍼펑.
물리력을 거의 행사 못 하는 프랑은 제외하고 날 포함한 138명이 들 수 있는 양의 부산물은 첫날에 전부 획득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 동안 수몰 폐허를 뒤지면서 일단 한 푼이라도 될만한 것들은 모두 찾은 다음 쓸만하고 돈 될만한 것만 골라낸다.
그러니까 발굴하고 회수할 것들의 무게와 부피만큼 나머지 부산물을 버리고 가야 할 판이라 위상석을 가진 녀석은 공간의 벽으로 죽이고 프랑이 날아가서 위상석을 회수하고 위상석이 없는 녀석은 지금처럼 마나 탄을 쏘아내 지워버리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쫀득쫀득하고 맛있다는 간이랑 뇌랑 앞발은 남겨서 식사 담당이 회수하게 했다.
가져온 폐급 고위 위상석을 충전하며 가끔 호수에서 기어 나오는 바닷가재처럼 생긴 이형종을 조지고 있으려니 능력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수몰 폐허를 헤집고 있었다.
대지 속성 능력자가 생활 보조 능력자들을 대동한 채 땅속에 묻혀있는 때가 낀 보석이나 잔뜩 녹이 슨 장구류, 다 썩어가는 생활용품들을 능력을 이용해 땅속에서 끌어올린 뒤 커다란 자루에 집어넣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체 강화 능력자들은 건물을 뒤지며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식기나 도자기 등을 우선 끌차에 싣고 있었고 바람 속성 능력자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인증기로 건물의 형태나 특이한 문자, 벽화, 절반쯤 부스러져 내린 상징물들을 찍고 있었다.
화연이가 이끄는 조는 두 번째 위상력 아이템인 곡도를 확인하고 세 번째 아이템인 사슬 갑주를 파내고 있었다.
그렇게 발굴을 시작한 지 4시간째, 오후 5시가 됐을 때 바람 속성 능력자 한 명이 날아와 화연이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6시까지 수색 발굴을 종료하겠다는 유화연 보스의 전언입니다.”
“알겠어요.”
바람 속성 능력자가 말을 전해주고 돌아갈 때쯤 철사를 엮어 만든듯한 상·하의 한 벌을 건물 잔해 속에서 끄집어냈는데 녹색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걸 보니 바람 속성의 위상력이 담긴 물건인가보다.
곡도는…. 말이 곡도지 나무 몽둥이가 더 좋아 보일 만큼 썩고 녹슬어 있었고 사슬 갑옷 역시 녹슬고 부스러진 곳이 대다수인 폐급이었다.
남은 창만 꺼내면 위상력이 감지되는 아이템은 모두 회수되고, 11개 조로 나뉜 능력자들도 수몰 폐허를 거의 다 조사해가니 해가 지기전에 발굴은 끝날 거 같다.
그런데 화연이는 누나에게 부탁해서 곡도와 사슬 갑옷을 조심스레 씻고 말리더니 옷장 안에 있던 여성용 풀 플레이트 메일을 꺼내더니 곡도와 사슬갑옷을 넣어놨다.
그리고 바로 마지막 포인트로 이동해 절반쯤 무너진 고딕 양식의 성당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대지 속성 능력자와 기감 능력자가 나서서 건물 내부 구조와 묻힌 성당 일부를 그림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 그림을 바탕으로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달라붙어서 조심스럽게 잔해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지속된 작업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탄력도 붙어 금방 건물의 잔해를 드러낸…. 어어?
“프랑! 경계 부탁해!”
“아? 네!”
공간의 벽을 박차고 화연이가 있는 곳을 향해 황급히 뛰어내렸다.
저건 뭐야?
재빨리 성당 외벽건물을 공간의 벽으로 확 지워버리니까 수중장비를 끼고 마악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몸을 멈칫하고 화연이와 누나도 놀란 눈으로 성당 터로 뛰어내린 날 바라봤다.
“스톱!! 거기 들어가지 말고 스톱!”
잔해를 걷어내고 드러난 계단 안으로 산소호흡기를 입에 물고 진입하려던 두 명의 신체 강화 능력자를 붙잡아 뒤로 물렸더니 내 손에 잡힌 능력자가 놀라면서 날 돌아봤다.
“마스터, 무슨 일입니까?”
머리를 제외한 갑옷 전부에 진흙이 묻어서 진흙 인간이 된 화연이가 내게 다가오며 묻는다.
“저 안쪽에서 소울 리퍼의 상자에서 느낀 거랑 비슷한 낌새가 들어.”
내 이야기에 다가오던 누나와 최수한도 놀라고 다른 사람도 동료들을 돌아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성당 지하실에 고여있는 물을 공간의 벽을 이용해 다 치워버리니 기역 모양으로 꺾인 지하실의 끝부분에 거꾸로 꽂혀있는 창대에서 기분 나쁜 붉은빛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한층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T resist, 위상력 저항 기술을 돌리기 시작하고 나도 마나 시브를 온몸으로 집중시키며 말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해볼 테니 화연이와 누나는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멀찍이 물러나 있어.”
“마스터 홀로 가시게 둘 수 없습니다. 통합관리부장은 다른 인원을 통솔해 물러나 주십시오.”
“아….”
화연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서며 누날 향해 다른 인원들의 통솔을 부탁한다고 말을 꺼냈는데 누나도 따라오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조원들을 불러모은다.
내 마나 시브의 저항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누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조원들을 뒤로 물리고 자신도 지하실 출입구에서 멀어져간다.
으음. T resist가 소울리퍼의 정신 지배를 막아서는 걸 보긴 했지만 그래도 화연이가 따라온다는 말에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돌아가란다고 해서 돌아갈 거 같지도 않으니…. 다들 100m가량 멀어진 걸 확인하고 지하실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니까 화연이는 손에 20cm 길이의 백색 형광봉을 들고 날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오니 무언가가 내 몸을 둘러싼 마나 시브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역시 뭔가가 마나 시브를 건드는걸. 화연인 괜찮아?”
“이 정도는 문제없어.”
화연이가 누나처럼 억지로 버티며 따라올 만큼 바보 같은 짓을 할거란 생각은 안 드니까 믿어도 되겠지. 이어서 코너를 돌았더니 지반이 약간 무너져 절반 정도 가려진 입구 너머 불길한 빛을 뿌려대는 창대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길래 저렇게 불길한 빛을 뿌리는 거지? 화연이도 내 뒤를 따라 벽을 돌아 나와서는 바닥에 꽂힌 창을 보는 순간 곧바로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안돼. 더는 가까이 가는 건 무리야.”
“어떤 느낌이 드는 거야?”
“저 창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무기를 쥔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저주 계통의 무기인 거 같군.”
“어, 저걸 잡으면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뛰게 된다는 거?”
“그래.”
“그럼 그냥 부숴버리는 게 좋겠네.”
“능력자 연합에서도 저주 아이템은 발견 즉시 파기를 권장하니까. 영상과 사진을 찍고 파기를… 서하!”
나도 봤다. 창대가 갑자기 쑥 뽑혀 공중에 떠오르더니 창극을 날 향하며 뻘건 빛을 더 뿌리기 시작하는데 창대 근처에 위상력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눈에는 안보이지만 공간 지각에는 희끄무레한 것이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이 감지된다.
“저거, 저주 무기 맞는 거야? 위상력이 모이기 시작하는 걸 보면 이형종인데?”
“빈딕티브 고스트? 저주 무기에 유령이 붙은 건가!”
잠깐 사이에 희끄무레한 것의 위상력이 720까지 올랐고 이제 맨눈으로도 희미한 회색 그림자 같은 놈이 십자 창처럼 생긴 창을 들어 날 향하며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령이 나타나면서 창이 들어 올려진 뒤로 내가 몸에 두른 마나시브를 건드리는 느낌이 사라졌다.
“중위 이형종이네. 지금도 저 창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지금은 오히려 사라졌다.”
화연이의 가늘고 예쁘게 휜 눈썹이 찌푸려지며 그녀의 체내 위상력이 더욱 강하게 회전한다.
공간의 벽이 유령에게도 통하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즉시 희끄무레한 유령을 공간의 벽으로 감싸버리니 형태가 부정형으로 일그러지면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 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귀곡성을 지르며 유령은 터져버렸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십자 창은 놀란 듯이 붉은 기운이 줄어들었다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흠. 저 무기에 내 TP를 주입하면 어떻게 되려나? 저 녀석의 붉은 기운 같은 건 내게 위협이 안 되는 거 같으니 좀 실험해볼까.
십자 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뒤에 멀찍이 물러나 있던 화연이의 경악한 외침이 들렸다.
“서하?! 뭐하려는 거냐!”
“창대에 내 TP 좀 떨어트려 보려고.”
“뭐어?”
내 TP가 무기물한테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화연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다.
창을 향해 다가가는 내 모습에 십자 창은 붉은 기운을 더욱 강하게 뿌려대며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나한텐 안통해. 얌전히 내 TP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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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