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36화 (236/517)

00236  아숨프레 수몰 폐허.  =========================================================================

곰치거머리의 전체 길이는 대가리가 잘려나가서 900m가량으로 줄어들었고 몸통 두께는 100m가량으로 길쭉해서 대륙붕 형태의 호숫가로 끌고 올라오니 호수의 부력을 받고 바닥에 질질 끌려서 한결 끌고오기 편해졌다.

그나저나 더럽게 크다. 이렇게 큰 걸 끌고 올 수 있는 신체 강화도 장난이 아니고.

“아, 누가 와요.”

수면 위쪽에 공간의 벽을 만들며 걸어서 주둔지까지 곰치 거머리 이형종의 몸통을 끌고 가고 있으려니 프랑이 저 앞에서 날아오는 능력자 한명을 발견하고 이야기해줬다.

주둔지 쪽에서 날 향해 날아오고 있는 바람 속성 능력자는 좀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가 끌고오고 있는걸 보고 경악하면서 호수에 떨어지며 물살을 일으켰다.

“어푸푸!”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집중력이 풀려서 그만.”

물에 빠져서 첨벙거리다가 겨우 하늘로 떠오른 바람 속성 능력자는 홀딱 젖은채 주둔지 상황을 전해줬다.

주둔지 인근에 무언가 큰게 떨어진 소리에 경계가 걸렸다며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시야 분석 능력자가 바람 속성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시야 분석으로 살폈는데 주둔지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 주둔지 크기만한 거대한 곰치 머리가 떨어져있는걸 보고 깜짝 놀랬다고 했다.

“보고를 받은 유화연 보스께서 이형종의 머리를 분해해서 옮기게 하는 한편 저를 보내신겁니다.”

이걸 마스터가 잡은 건가, 마스터는 어디에 있는 건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다들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하늘에서 시야 분석으로 경계를 서고 있던 능력자가 내가 거대한 무언가를 끌고 오고 있다는걸 발견했단다.

“그래서 찾아오신거군요?”

“네! 바로 운반팀을 데려오겠습니다!”

질린 표정으로 내 손에 끌려오고 있는 거대한 거머리 몸통을 보던 바람 속성 능력자는 소름끼친다는 표정으로 진저리 치더니 주둔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곰치거머리의 몸통을 끌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물 속성 능력자와 신체 강화 능력자들의 도움으로 주둔지와 가장 가까운 호숫가에 곰치거머리의 사체를 끌고왔더니 화연이와 누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중나와있었다.

“마스터!”

“누나, 다녀왔….”

화나고 놀라고 걱정스럽고 다행이라는 표정이 섞인 누나는 내 말을 자르며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세상에! 잠깐 산책겸 다녀오신다더니 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이런 한밤중에 고위 이형종을 혼자 잡으신거에요?! 어쩜 마스터는…!”

…에휴.

“어쩌다보니 잡게 됐습니다. 괜찮아요. 다친데도 없고 멀쩡합니다. 그보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회의실로 모이죠.”

누나의 잔소리에 슬쩍 표정을 굳히면서 정중하게 이야기를 하니 내 반응에 누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회의용 천막으로 팀장 조장들과 함께 이동해서 자리에 앉아 인증기를 켜서 호수 전경을 찍은 사진을 홀로그램창에 띄웠더니 다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홀로그램창을 바라본다.

야경을 찍긴 했지만 달이 밝아서 전체적인 윤곽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은 사진이다. 그런데 거대한 다섯 호수의 모습을확인한 정태령 조장의 표정에 의아함이 담기기 시작한다.

“어…?”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정태령 조장을 바라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제2 생활보조 조장에게 시선을 돌린다. 화연이도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정태령 2조장은 뭔가 떠오른게 있습니까.”

“네, 전체적인 모습이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있는 오대호가 생각나서요.”

“아!!”

허스키한 목소리의 정태령이 입을 열자마자 누나도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형태가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정말 오대호와 흡사하네요!”

“어엉? 그럼 여기가 지금 미국땅이라는겁니까?”

이름모를 샤프하게 생긴 5팀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호수가 찍힌 사진을 보다가 나한테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위상세계가 정말 지구의 다른 시간축이라는 가설이 맞나본데요?”

“마스터가 찍은 사진을 봐서는 지금 우리가 있는곳이 오대호중 한곳인 슈피리어 호수일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10시 방향에 두개로 나뉜 호수는 휴런 호수일테고 딜도처럼 생긴곳은 미시간 호수겠죠.”

“…딜도요?”

정태령 2조장의 스스럼없는 말에 서글서글한 외모의 3팀장이 멍한 표정으로 되묻고 1조장이나 다른 두 팀장도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돌린다.

“왜요? 딜도 몰라요? 여성용 자위….”

“거기까지. 그럼 남은 두곳은 이리와 온타리오겠군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전에 정태령 2조장의 이야기를 끊으며 화연이가 화제를 돌리더니 손을 턱에 대고 눈빛을 번쩍이며 홀로그램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 사실에 대해서 다들 입단속을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기간은 그랑 블루에서 발표를 할때까지입니다.”

“““네.”””

“그리고 마스터는 잠깐 산책겸 주변 순찰을 돌고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상당히 멀리 나가셨군요.”

윽. 누나만 삐진줄 알았는데 화연이도 좀 화가 났나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며 조용히 말하는데 화났다는 기색이 느껴진다.

“어, 응. 좀 밤 산책겸 순찰을 할까 했는데 그냥….”

“프랑도 옆에서 말리시지 그랬습니까.”

“으우…. 말릴 수 없었어요. 미안해요.”

조용한 꾸짖음에 프랑마저 울상을 지으면서 날 바라본다. 누나는 화연이를 응원하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게 두번다시 그런 짓 못하게 하라는 표현같다.

어떻게 혼낼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일어서있는 화연이를 보고 있으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호수의 주인마저 간단히 잡고 거기다 이곳까지 끌고 오실줄은 몰랐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야. 그리고 저기…. 휴런 호수에 마나 포를 좀 던져서 수위를 많이 줄여놨어. 밤에 수몰 폐허가 있는곳을 내 공간의 벽으로 얇게 둘러놓으면 슈피리어 호수도 내가 공간의 벽을 처둔곳 까지 수위가 낮아질거야.”

“수로, 강을 확인하고 메꾸는 방향으로 하신다 안하셨습니까?”

“프랑하고 거길 체크해봤는데 강 폭이 가장 좁은곳이 800m 정도에 수심이 7m 정도가 돼. 지금 레이드 팀에 대지 속성 능력자가 4명 밖에 안되는데 메꾸는건 무리라고 판단했어.”

“…확실히 그정도 폭이면 남은 4일을 모두 투자한다고 해도 불가능하겠군요.”

“그렇다면 남은 고위 이형종과 상위 이형종이 얼마나 되는지가 관건이겠네요.”

누나는 간단하게 혼내고 끝낸게 조금 불만이었는지 살짝 입술을 내밀고 있었지만 업무 관련 회의가 시작되니 별 말 하지않고 회의에 참가 했다.

“음 곰치거머리처럼 생긴 저놈보다 위상력이 30만 정도 작은 놈이 슈피리어 호수 북서쪽 끄트머리에 하나 더 있는걸 확인했어. 내일 아침에는 그걸 잡을까?”

“곰치거머리,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저 괴물의 이름은 피소르사우르스에요. 피소르라는 능력자가 처음 발견하고 종을 알 수 없는 모습이기에 공룡학자였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피소르사우르스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정태령 2조장이 부연 설명을 해주는데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소르사우르스라, 이형종에게 자기 이름을 붙이다니 특이한 사람이네.

“피소르 사우르스는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발견 되는 종이지만 고위 이형종이면서 폐기물이나 다름 없는 녀석이에요. 다만 두개골의 뼈가 워낙 단단하고 커서 그 크기를 이용해 뭔가를 만든다고 들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전혀 비싸게 팔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돈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괜히 드잡이질 벌였네. 그냥 확 지워버릴걸.

돈 안된다는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리니 정태령 조장은 그냥 웃어버렸다.

“마스터의 활약으로 부산물은 충분하다못해 넘칠만큼 확보했습니다. 이 이상 모았다간 저희들도 다 못짊어지고 갈지도 모릅니다요.”

한현랑 1팀장은 히죽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이는데 다른 사람들도 웃으면서 동감을 표했다.

“확실히 지금 쌓인 양은 저희들만으로 모았다면 일주일은 온종일 싸워야 챙길 수 있을 양이죠.”

“하지만 마스터는 반나절도 되지않아 모았잖아요? 전투요원보다 운반요원을 더 뽑아서 데려와야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아~ 희귀 능력자중에서는 아공간을 가진 능력자도 있다던데 그런 사람을 확보하면 좋겠어요.”

“인도의 라와르라는 B 클래스 능력자 말이죠? 그사람은 거의 500평에 달하는 아공간을 지니고 있다던데요.”

어? 아공간 능력자도 있어? 팀장들과 조장들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궁금점이 생겨서 물었다.

“아공간 능력자는 용케도 위상 세계에서 생환했네요?”

“라와르 그사람은 인도의 특수부대 출신이었답니다. 마르코스라던가?”

…돈도 안되는데 피소르 사우르스를 잡을 필요가 있을까. 잡을까말까 고민하는데 화연이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입을 연다.

짝짝

“그만. 내일은 그럼 내일은 계획대로 수위가 낮아지면 본격적인 탐색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그전까지 부산물 정리를 마무리지어주십시오. 마스터는 힘들게 끌고 오셨지만 피소르사우르스의 사체의 분해를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역시 작은 피소르 사우르스는 잡지 말아야겠다. 다가 오면 그냥 마나 포를 쏴서 지워버리던가 하고.

팀장과 조장들 다섯명은 웃으면서 천막 밖으로 나가는데 그들이 나가자마자 화연이는 표정을 굳히더니 다가와서 내 뺨을 잡아늘리기 시작한다?!

“으가가각?!”

“네가 사라지고 1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않았다. 그 직후에 서쪽 하늘에서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었지. 그 순간 나와 시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고있나.”

아까 잔소리로 끝이 아니었구나!!

“미항행!”

“아주 그냥 뺨을 찢어버려! 저 쬐끄만게 벌써부터 속썩이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가면 얼마나 말썽을 피울지 상상도 안가!”

칵! 너무해!

“시하도 잘못한게 있다.”

“응?”

“서하는 대외적으로는 그랑 블루 마스터다. 시선이 없는 곳에서 혼을 낼지라도 그렇게 서하의 행동에 제지하고 나서는건 좋지 못해.”

“아우….”

맞아. 누난 너무 날 어린애 취급하면서 과보호하려한다고! 그, 근데 손은 놓구 말하면 안될까…?

마나 탄을 여러발 쏴서 호숫가에 늘어져있는 곰치거머리, 피소르사우르스의 몸뚱아리를 지워버리고 돌아오니 식사담당 생활보조 능력자들이 곰치거머…. 피소르사우르스의 대가리의 살을 발라내서 동글동글하게 만들더니 고기경단으로 만들어 튀기기 시작한다.

한창 부산물 처리작업중인 사람들의 저녁 간식으로 먹을 셈인가 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샤워하고 나와서 부산물 찌꺼기를 처리해달라는 누나의 부탁에 작은 언덕만큼이나 쌓인 찌꺼기 산에 마나 탄을 날려 지워버렸다.

“진짜 편한 능력이야.”

“됐고. 누난 오늘 어디서 잘거야?”

“응? 네 천막에서 잘거….”

“안돼. 누난 여자들 천막에 가서 자.”

어디서 눈치 없이 동생 부부 사이에서 잘려고! 눈을 부라리면서 누나한테 협박하듯 말을 꺼내니 누나도 대번에 눈썹을 찡그리면서 물어온다.

“…왜에.”

“왜긴. 알면서 묻고 그래.”

“아유! 진짜 이 꼬마 변태 같으니!”

“칭찬 감사.”

짜증내는 누나를 뒤로하고 전등을 단 장대를 부산물 처리 장소 이곳저곳에 세워 주변을 밝혀놓고 부산물 정리에 정신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야식이라며 곰치 고기경단 수프를 날라온다.

내 옆에도 간이 의자를 내려놓고 나랑 프랑한테 수프를 건네주길래 고맙다고 하면서 받아들고보니…. 이거 수프가 아니고 탕인거 같은데? 난 생선탕 못먹는데….

그래도 프랑이 내 옆에 동동 떠서 고기경단 수프를 한입 떠서 먹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한다.

“와아. 이거 정말 맛있어요. 서하도 어서 드셔보세요.”

…어쩔수 없이 투명한 국물을 한입 마셔보니 의외로 매콤하면서도 짭짤한게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없다? 이거라면 먹을 수 있지!

고기경단도 간이 잘 베여있는데다 탱글탱글하고 탄력있는 식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야식을 다 먹고 공간 지각으로 한밤중의 주둔지를 살펴보고 있으려니 보초를 설 준비를 하는지 세명이 한 조로 3개조가 화연이에게 신고를 하는게 보인다.

다시 시선을 돌려 이형종 사체의 산쪽을 바라봤는데 사체의 산에서 떠나지않고 부산물을 열심히 해체하는 최수한과 그 옆에 다른 물 속성 능력자와함께 누나가 물을 만들어내서 부산물을 깨끗하게 씻기고 있었다.

그리고 씻은 부산물은 불과 바람 속성 능력자가 깨끗하게 말리고 한데 묶거나 상자에 넣어 쌓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다가 회의용 천막으로 들어가니 화연이는 검증단때의 영은이처럼 서류를 쌓아놓고 뭔가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 수몰 폐허로 가서 공간의 벽을 칠까 하는데.”

“음? 그렇군. 바람 속성 능력자를 불러서 같이 가지. 어떻게 될지 나와 시하도 확인해야하니까.”

“바로 갈거니까 준비해.”

5팀의 바람 속성 능력자 한명과 함께 누나와 화연이를 데리고 수몰 폐허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밤이 깊어지니 구름이 늘어나면서 달을 가리기 시작하는데 시리도록 하얀 달빛이 구름에 부딪혀 산란되는 밤의 호수는 몽환적인 분위를 풍기고 있었다.

잠시 달빛이 부서지는 수면을 바라보다 물 속에 잠겨있는 수몰 폐허를 다시 살펴보니 어지간한 도시 크기의 물에 잠긴 폐허가 공간 지각에 들어왔다.

낮에는 이형종한테 신경쓰느라 체크를 잘 못했는데…. 지금보니 희미하지만 위상력이 느껴지는 곳이 몇군데 있다.

“정말?!” “정말인가?!”

누나와 화연이는 깜짝 놀라면서 물 속에 있을 폐허가 보이는양 발 아래를 내려다본다.

세 사람은 수몰 폐허의 중심에 서있게 하고 난 주변을 뛰어다니며 수몰 폐허가 있는 호수의 바닥부터 시작해 높이 100m에 두께 1cm로 만들어 수몰된 폐허의 외곽에 담처럼 공간의 벽을 둘렀다.

여유잡고 32km 가량을 쳤더니 320만 tp가 홀라당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호수의 물이 공간의 벽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사라지고 있는데 공간의 벽이 너무 얇아서 문제가되는건 아닐까 했지만…. 수압과 유속에도 끄덕없었다.

무언가가 가득 공간의 벽을 건드는게 느껴지는데 이게 전부다 물이겠지.

호숫물이 공간의 벽에 빨려들어가며 사라지고 있을때 소용돌이같은게 생기지 않을까 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수면도 조용히 출렁거리고 물 속에서도 특이점같은건 생기지 않았다.

신기하네. 공간의 벽이 닿은건 무엇이든지 소멸시킨다면 공기같은것도 없애려나? 하지만 공간의 벽 근처에 있을땐 딱히 숨쉬기 곤란하다거나 공기가 밀려든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일정 이상의 부피를 지닌것만 소멸시키나?

“공간의 벽을 친거 맞니?”

“응. 수몰된 폐허 주변에 전부 쳐놨어.”

무척이나 얇은 공간의 벽이라 만약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공간의 벽을 쳐둔 곳에 마나 탄을 한발 날렸지만 공간의 벽에 닿는 순간 지우개로 지운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 공간의 벽은 멀쩡했다.

“마나 탄을 날린건가?”

화연이는 약간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마나 탄이 사라진 시커먼 호수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응. 1cm로 쳐놔서 공격받으면 혹시 내구도에 문제가 없을까 했는데 멀쩡해.”

물살이 조금씩 출렁이는 호수면을 바라보던 화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 속성 능력자에게 말했다.

“그럼 돌아가지.”

공간의 벽은 호수 속에 있어서 눈에도 안보이고 수면도 마찬가지로 잔잔한 파도만 치고 있어서 바람 속성 능력자는 의아한 표정이 됐지만 별 말 없이 누나와 화연이와 함께 주둔지로 날아갔다.

다음날 아침까지 무언가가 감각을 건드리는 느낌때문에 한숨도 못자다가 눈을 떴더니 조금 멍한 기분이다.

…이 감각은 탐색 능력을 처음 얻었던때랑 똑같은걸.

나 혼자였으면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꿈지럭대다가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 이형종이랑 놀아주고 댓가로 목숨을 챙겼을텐데 새벽까지 부산물을 처리하고 씻고 온 화연이가 내 품에 안겨서 곤히 자고 있어서 꿈쩍도 안하고 있었더니 (기분상) 더 피곤한거 같다.

새벽 2시에 들어와서 잠든 화연이는 4시간이 흐른 아침 6시가 되자마자 칼같이 눈을 떴다.

“잘잤나.”

내 왼쪽 팔을 베고 자던 화연이는 여전히 군인같은 말투로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맞춰줬는데 아침이다 보니 화연이의 입에서 새콤달콤한 자두향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거 같다.

“화연이는 잘 잤어? 4시간 밖에 못잤는데.”

“너와 함께 지내면서 자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더 늘어났다. 나에게는 4시간'씩'이나 되는거지.”

“화연은 서하가 없을때면 언제나 3시간만 자니까요”

반대편, 내 오른팔을 베고 있던 프랑도 나와 화연이의 대화에 눈을 뜨고 모닝 키스를 해준다.

“난 하루에 7시간은 자야하는데.”

필요하면 안자고 버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하루에 3시간만 자라고 하면 미쳐 날뛰어버릴꺼다. 혼자 중얼거렸더니 옷을 챙겨입던 화연이가 중얼거린걸 들었는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3시간만 자는 훈련을 한데다 신체 강화 능력자니까 그런거다. 서하는 피로가 풀릴만큼 푹 자두는게 좋아.”

타이즈 아머만 입어 농밀한 육체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화연이가 장비를 입는걸 도와주고 나도 포스레더 재킷을 걸쳐서 나가니 아침일찍 식사 준비를 하던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온다.

나도 같이 인사를 해주고 씻은 다음 호수로 나가니 화연이도 뒤를 따라왔다.

프랑과 화연이와 공간의 벽을 쳐둔 수몰폐허에 가서 확인해보니 수위가 확 줄어들어들어서 푸른 하늘 아래 수몰 폐허와 내가 쳐둔 공간의 벽이 공기중에 노출된게 보인다.

수몰 폐허의 하단부만 약간 잠겨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닿는 범위가 줄어드니 수위가 내려가는 속도도 줄어든거 같다.

“수위가 많이 내려갔군.”

“어. 그래도 발목까지 물이 잠겨있어. 낮에는 수심 깊은곳에 공간의 벽을 다시 설치해서 수위를 더 낮춰야겠네.”

발목까지 잠기는 수위를 보다가 호수 속 깊은곳에 커다란 공간의 벽을 다시 쳐뒀다. 저정도 크기면 아침 챙겨먹고나면 수몰 폐허가 완전히 노출되겠지.

“…물을 이정도나 소멸시켜버려서 현실이었다면 환경파괴범으로 이름을 올렸을거 같아.”

“확실히 서하가 현실에서 바닷속에 공간의 벽을 넓게 쳐두는것만으로 바다가 사라지겠군. 지구를 멸망시키는데 그보다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없겠어.”

…화연이 무셔!

수위가 내려감에따라 모습을 드러낸 수몰 폐허의 모습은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공간 지각으로 볼때보다 더 넓어보이는 폐허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중세 영국의 석조 주택같은 집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둥들, 부서져내린 저택에 각종 시설의 흔적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화연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돌아가자. 아침을 먹고 인원을 절반으로 나눠 탐색과 부산물 해체 팀을 정해야겠다.”

화연이의 말에 프랑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입을 연다.

“부산물을 다 처리하고 탐색에 들어가는게 낫지 않나요?”

“첫날 탐색은 지형과 사물의 구조 파악입니다. 본격적인 발굴은 오후는 되어야할테고 그동안 습격해오는 것들도 있을테니 주둔지에 대기할 인력도 있어야하죠.”

“그렇네요.”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들의 손에 이끌려 주둔지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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