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5 아숨프레 수몰 폐허. =========================================================================
“서하?!”
“할 일이 있고 다른 사람들 다 일하는데 나 혼자 놀 생각은 없어. 북서쪽에 연결된 호수의 수로만 확인하고 오자. 겸사겸사 보이는 이형종 들은 다 죽이고.”
“…네엥.”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프랑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실쭉거리다가 몸을 공중에 띄우더니 팔을 뻗어 내 목을 껴안았다.
“오, 이 자세 오랜만인 거 같아.”
목과 등에 닿는 프랑의 보드라운 가슴 감촉에 실실 웃으면서 말했더니 프랑도 픽하고 웃더니 내 뺨을 살짝 꼬집으면서 말했다.
“수로만 확인하고 오시기에요? 너무 늦으면 화연도 시하 님도 걱정하실 거에요.”
“알았어.”
발아래는 어둠에 잠긴 빼곡한 침엽수림이 펼쳐 져 있고 오른쪽은 수평선이, 왼쪽은 지평선이 펼쳐진 한밤의 하늘을 달리는 기분은 어딘가 모르게 설레는 감정을 품게 하였다.
호수 면에서 6km 상공까지 뛰어올랐지만, 여전히 수평선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넓이에 잠깐 한숨을 쉬고 10시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프랑이 귓가에 입을 가져와서 속삭였다.
“서하. 고위 이형종이에요. 생김새가 화연이 설명해준 점과 흡사해요.”
“어디쯤 있어?”
“바로 발아래에요.”
여긴 주둔지에서 100km 떨어진 위인데…. 낮에 청소를 중단한 위치에서 조금만 더 나갔으면 녀석을 발견했을 위치다.
뒤를 돌아보니 주둔지의 빛이 점으로 보일 만큼 멀지만, 고위 이형종이니만큼 100km 정도는 이동하려 하면 얼마든지 할 수준이니까 녀석이 주둔지를 발견하게 되면 무슨 수단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고민이 든다.
“머리는 정말 곰치처럼 생겼네요. 위상력은 97만인데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2km는 될 거 같아요.”
“위상력이 낮네. 그래도 고위 이형종이니 조심해야겠지. 그 녀석은 지금 뭐 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자고 있나 봐요.”
“그럼 빨리 수로를 확인해보고 돌아오자. 돌아오는 길에도 저놈이 그대로면 기습해서 죽이는 걸로 하고.”
“네!”
10시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니 프랑의 시야 분석의 도움을 받으면서 호수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이형종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중상위 이형종이고 상위 이형종도 100마리가 넘어간다. 고위 이형종도 한 마리 더 발견했는데 처음 발견한 녀석보다 더 작고 위상력도 60만으로 더 약한 녀석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이 들어갈만한 거대 한 호수에 고작이라고 할 만큼 적은 숫자의 상위 이형종이 있는 걸 보니 이형종의 분포도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큼 넓은 곳에 있는 이형종치고는 너무 작지 않아? 그러고 보면 아까 낮에 정리할 때도 정리한 범위에 비해 숫자가 너무 작았었어.”
“이 정도가 보통이 아닐까요? 생각해보시면 1회차에도 저랑 만난 이후에 만난 이형종은 3일간 쥐 이형종 한 마리에 양아치 이무기 한 마리 뿐이었잖아요. 그 뒤에는 홍수 때문에 특이한 상황이었구요.”
“…사람도 몰려 사는 곳이 있으면 안 사는 곳도 있으니까 이형종의 생태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야겠네.”
30분을 달려서 수로라고 생각한 곳에 도착해보니 폭이 가장 좁은 곳이 800m에 수심은 10m 정도 되는 거대한 강이 나타난다.
“대지 속성 능력자의 힘으로 메우기는 힘들어 보이지?”
“폭이 넓어서 입장한 레이드 팀의 대지 속성 능력자분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며칠 걸릴 거 같아요.”
“한번 TP를 모두 소진하면 회복하는데 17시간 넘게 걸리니 안 되겠군.”
시선을 돌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프랑도 거대한 강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강의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강에는 최하위부터 중하위 이형종 들이 서식하고 있네요. 최하위나 하위급들이 이곳 강에서 덩치를 불리고 호수로 진입하나 봐요.”
“좀 더 높이 올라가서 살펴보자. 여기서는 아숨프레 호수 말고 다른 곳의 모습이 잘 안 보여.”
그리고 마나 시브로 몸을 보호하며 100km까지 뛰어 올라왔는데…. 그러고 보니 TP 소비가 현실보다 감소량이 적다? 살짝 숨을 쉬어보니 희박하긴 하지만 공기도 있다.
“오, 여긴 공기가 있는 걸.”
“어머?”
“현실에서는 숨이 거의 안 쉬어지고 겁나게 춥고 괴로웠는데 여긴 좀 괴롭긴 하지만 버틸 만 하네.”
현실과 위상 세계의 차이점은 뭘까 궁금해하다가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100km 상공까지 뛰어 올라오니 그제야 호수의 전경이 다 보인다.
아숨프레 호수에서 10시와 12시 방향에 크기가 비슷한 호수가 2개가 더 있고 그보다 작은 호수 2개가 10시 방향 먼 곳에도 보인다.
“와. 무슨…. 아숨프레만한 호수가 2개가 더 있냐. 그보다 작은 건 2개나 더 있네.”
말이 나오지 않는 호수의 규모에 어이 상실이 어떤 기분인지 느끼고 있는데 프랑은 10시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
“네? 아, 어쩌면 이 호수가 바다랑 연결되어있진 않을까 생각했어요.”
“응? 낮에 몇 번 잠수할 때 염기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생각에 잠긴 프랑은 두고 호수 전체를 영상 기록으로 촬영하고 사진도 전체적으로 찍고 나서 프랑을 보며 말했다.
“저쪽, 강 가운데 섬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 근처에서 10 TP 마탄을 좀 던져봐야겠다.”
“강변 쪽에 터트려서 크레이터로 메워보시려구요?”
“될지 모르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마탄은 삭제가 아니라 폭발이니까 공간의 벽을 치고 폭발의 방향을 조절해주면 될지도 몰라.”
섬 근처에 다가갈수록 확실히 수심이 얕아서 강바닥이 보인다. 섬도 강이 흐르면서 모래나 흙을 날라와서 쌓이고 쌓이다가 생겨난 섬 같다.
굽이굽이 돌고 있는 강의 모습이지만 수심이 7m 정도에 강과 퇴적 섬의 사이 폭이 100m 정도 되어 보이니까 폭발 방향만 잘 잡아주면 되지 않을까.
강변에 소괄호 모양의 공간의 벽을 하나 친 다음 공간의 벽 근처 지면 속에서 터지게끔 10 TP 마탄을 쏘아냈다.
쿠우웅!
땅속에서 폭발한 마탄이 집채만 한 흙덩어리들을 강 쪽으로 날리고 뿌려서 물길이 막힌 강의 일부를 메꾸는 게 보인다!
하지만….
“…안되네. 폭발시킬만한 곳은 정해져 있는데 그 정도로는 강을 못 메꿔.”
폭발과 진동에 작은 동물과 최하위 이형종 들이 기겁하고 도망가는 게 보였지만 그냥 내버려두고 프랑의 조언을 받아가며 조심조심 터트려봤지만, 강에 빠진 흙은 쌓이지 않고 그냥 흘러내려 아숨프레 호수에 밀려들어 간다.
저거, 딴 호수에서 아숨프레 호수로 물이 밀려들어 가는 건가….
“강의 수위는 7~10m 정도니까 그냥 공간의 벽으로 호숫물을 없애다 보면 자연히 수위 조절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크기만 한 호수 세 개가 연결되어있는데 물을 얼마나 없애야 할 줄 알고?”
“으음. 보통 한 공간에서의 저장량 이상이 되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물이니까 아까 서하의 말씀대로 마나 탄으로 옆쪽 호수의 바닥을 지워서 아숨프레 호수보다 저장량을 많게 하면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해도 다른 호수와 연결된 곳에서 물이 흘러들어온다면 수위가 높아지지 않을까? 으으. 강물이 흐르는 방향이 아숨프레 호수 쪽 말고 반대쪽으로 가는 거였으면 이런 고민 같은 건 안 해도 됐을 텐데.”
“…그냥 환경파괴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물을 없애버려요! 저쪽 10시 방향 호숫물을 절반 정도 없애버리고 아숨프레 호수 쪽도 없애버리면 4일간 수몰 폐허 조사할 시간은 나올 거에요!”
프랑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과격한 방법을 제시했다. 확실히 그 방법이….
귀가 솔깃한 제안에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오후 8시가 다 돼간다. 돌아가면서 위상력 97만짜리 곰치 비스름한 고위 이형종을 잡고 가려면 슬슬 돌아가야 할 테니 프랑의 말대로 해야겠다.
“그래야겠다.”
다시 하늘 높이 뛰어올라 10시 방향에 있는 거대한 호수의 중심 즈음에 마나 포를 쏘아낼 준비를 했다.
손바닥에 TP를 가속 회전시키며 응축을 시작하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2만 TP가 손바닥에 응축된다. 5,000 TP가 지름 1km를 통째로 지워버리니 2만이면 4km 정도 되려나.
수면에서 터트리면 물+호수 바닥 해서 구멍이 뻥 뚫릴 테니까, 마나 포가 호수의 수면에서 터지게끔 적당히 조절해서 쏘아냈다.
띠이이잉!!
“아,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이 소리도 오랜만이네.”
손바닥에서 쏘아낸 진한 물빛의 마나 포가 빠르게 날아가더니 목표로 한 수면에서 블랙홀 같은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가 옅은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충격파도 없고 터지는 소리도 없이 예상했던 4km 범위를 통째로 지워버린 마나 포는 달빛보다 희미한 빛을 뿌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마나 포가 터진 곳은 투명한 유리 보울을 호수에 찍어누른 것 마냥 거대한 반구형 공간을 만들어냈다.
“…뭐야? 호숫물이 왜 안 모여들어?”
범위안에 존재하던 호숫물과 호수 아래 땅까지 다 지워버린 마나 포는 동그랗게 파내어진 호수 바닥까지 보이게 만들었는데, 마나 포가 터진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게 뭔가 이상, 아!
콰과과과과과….
생각하는 도중에 호수가 출렁하더니 무시무시한 기세로 빈 곳을 향해 몰아치기 시작한다. 물이 급격하게 모여들며 무시무시한 굉음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무시무시하군.”
십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거칠게 흔들리는 호수면은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두려운 모습이다.
“수위가 조금 줄어든 거 같아요.”
“보니까 저 호수도 수심이 2km는 되겠더라. 똑같은 수준의 마나 포를 더 쏴야겠어.”
그러면서 오른손을 들어봤는데 엘리펀트로스 산에서 C 클래스 최상급의 우두머리를 잡을 때처럼 한 발 쏘고 저릿저릿해져서 못 쏘는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클래스가 오르고 신체 강화 능력이 높아져서 그런가?
손에 이상이 없는 걸 보면 연속으로 펼쳐도 되겠군.
처음에 폭발한 곳을 포함해 네 곳을 정해서 오른손과 왼손으로 연달아 뿌리니 시커먼 블랙홀 같은 구멍이 생겨나면서 호숫물과 호수 바닥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그리고 호숫물이 격랑을 일으키고 소용돌이를 만들며 빈 곳을 메우고 그러면 또 마나 포를 뿌리고 메꿔지길 기다렸다가 또 뿌리고, 그렇게 몇 번 반복했더니 한눈에 봐도 수위가 대폭 줄어들었다.
“대충 수위가 1/3 정도는 내려간 거 같지?”
“네에.”
질린 표정으로 호수랑 날 번갈아 보던 프랑은 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다른 손은 눈썹 위로 올리더니 뒤로 돌아 아숨프레 호수를 바라본다.
나도 돌아보니 물의 흐름이 반대로 바뀌어 아숨프레 호수에서 10시 방향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내일은 아숨프레 수몰 폐허를 얇은 공간의 벽으로 감싸버리면 알아서 호숫물이 공간의 벽에 밀려들어 오면서 사라지고 수위가 줄어들겠지.
내일이 아니라 자기 전에 해야겠다. 수위가 줄어드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시간을 확인해보니 정확하게 오후 8시다.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에 중간에 97만짜리 고위 이형종을 잡고 돌아가면 씻고 잘 시간이 되겠다.
“다행히 그랑 블루의 첫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겠군.”
“…첫 레이드를 성공시키시려고 이렇게 애쓰시는 거에요?”
“응. 타임리버랑 화랑이 합병하고 첫 레이드인데, 거기다 나도 같이 왔는데 성공도 아니고 실패해봐. 웃음거리가 될 거야.”
“우웅.”
내 등에 매달린 프랑은 뭔가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달싹거리지만 이내 포기하고 내 목을 한껏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구 서하가 이런 작업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하의 능력은 이런 잡일을 하기에는 너무 뛰어난걸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나? 난 딱히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면서 으스대고 싶진 않은데.
“이런 일은 나 밖에 못할 거 아냐. 그리고 우두머리가 솔선수범해야 사람들도 날 따라 열심히 하지.”
“윗사람이 너무 활동적이어도 피곤해하고 윗사람이 다 해버리면 아랫사람은 거기에 적응해서 게을러 질 수도 있어요. 서하의 행동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지만 적당히라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 아시죠?”
“네네~”
“대답은 한 번만!”
“네이.”
…뭐가 웃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등에 닿은 프랑의 가슴을 통해 키득거리는 게 느껴 졌다. 손을 뒤로 돌려 프랑을 등에 업은 모양으로 만들었더니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즐거워한다.
“서하의 등에 업히는 건 이런 기분이었네요~”
“좋아? 앞으로 자주 업어줄게.”
프랑을 등에 업고 97만의 고위 이형종을 발견한 곳으로 돌아왔더니 프랑의 말로는 여전히 미동도 않고 쿨쿨 자고 있다고 한다.
녀석은 네 개의 지느러미로 물개처럼 물 밖으로 나와서 습격해올 수 있을 거 같으니 미리 죽여놔야지.
“주변에 다른 이형종은 없어?”
“저 이형종은 호수 바닥, 마치 바닷속의 산 같이 생긴 곳에 혼자 엎드려 있어요. 주변에는 전부 평범한 수생 동물들 뿐이구 이형종은 하나도 없어요.”
“동종형과도 함께 안 지내나 보다. 위상력 60만짜리랑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내는 걸 보면 독립생활을 하는 놈인가 본데.”
뭐 따로 떨어져 있으면 나야 감사지.
프랑에게 정확한 위치를 전해 들은 다음 계단을 만들어 천천히 놈을 향해 걸어 내려간다.
고위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범위는 히아리드의 경우를 생각해봤을 때 4km 정도였지. 나는 4.5km니 놈이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공간의 벽을 쳐서 죽일 수 있을 거다.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다가가는 내 모습이 암살자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가다보니 공간 지각 끄트머리에 프랑이 말한 녀석의 몸 일부분이 들어온다.
근데 진짜 흐물흐물하고 물렁물렁하고 미끌미끌해보이는게 소름 끼치게 생겼네…. 어디가 머리인가 조금 걸으면서 살펴보니 꼬리 부분으로 갈수록 몸통이 가늘어지고 머리 쪽으로 갈수록 몸통이 두꺼워진다.
녀석의 머리를 찾아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곰치같이 생긴 녀석의 대가리가 감지되는데, 생선의 일종이라고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거 같다.
시뻘건 눈깔의 모양이 마치 그놈을 생각나게 하는….
으음. 그놈이라니?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뭔가 이상한 퍼런 색깔의 괴물 얼굴이 스쳐 지나갔는데, 왜 갑자기 그게 생각나는 거지?
“서하? 왜 그러세요?”
“어? 아냐. 갑자기 이상한 괴물 얼굴이 생각나서. 집중하자 집중!”
멈춰 서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프랑이 살짝 눈을 뜨면서 날 돌아보기에 나도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다시 곰치 대가리 녀석의 머릿속을 감지했다.
녀석의 두개골은 겁나 튼튼해 보고 그 속에 사람 크기만 한 뇌가 존재했다. 하지만 놈의 뇌는 주름이 거의 없는 밋밋한 모습인데 뇌의 주름이 많을수록 지능이 높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 녀석은 말 그대로 생선 대가리 일 거 같다.
내가 녀석을 살펴보고 있는데도 놈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럼, 잠들 듯이 죽어주시게.
놈의 뇌 전체에 공간의 벽을 5겹 중첩했더니 벽이 생겨나는 것과 동시에 뇌가 부들거리다 터지더니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녹아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놈은 미친 듯이 몸통을 뒤틀고 비비 꼬며 해저산맥을 부수기 시작한다!
퍼퍼퍼펑! 촤자자작!
“으아?!”
몸을 뒤트는 와중에 녀석의 흐물흐물한 몸통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다가 뾰족뾰족 솟아오르더니 그 부분에서 어른의 팔뚝 굵기만 한 워터젯이 사방으로 쏟아져나왔다.
워터젯이 해저산맥을 두부처럼 가르고 나가는 걸 보며 깜짝 놀라서 발밑에 공간의 벽을 넓게 쳐버렸는데 놈이 몸을 비트니 워터젯이 놈의 움직임에 맞춰 천지 사방을 가르기 시작한다.
내 발밑의 공간의 벽도 치고 지나가지만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워터젯을 보며 황당해져서 입을 열었다.
“저런 능력이 있었을 줄이야. 팀 능력자들을 데리고 갔으면 큰일 날뻔했네.”
“네에. 해저 암벽을 두부 가르듯이 갈라버리다니, 평범한 능력자였으면 몸이 갈라졌겠어요.”
어림잡아 놈의 몸통 백수십 곳에서 워터젯이 뿜어져 나온다. 방향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거머리 몸통이 꿈틀거릴 때마다 방향을 짐작할 수 없게끔 휘어지고 가르는 모양새라 저걸 다 피하고 막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놈의 몸뚱어리는 크기도 더럽게 커서 많은 능력자가 공격해오더라도 수월하게 상대할법한 능력이다.
“근데 왜 안 멈추냐.”
뇌를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렸는데도 쉴 새 없이 퍼뜩 거리는 몸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시뻘건 빛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놈의 눈깔을 보다가 몸에 마나 시브를 좀 더 강하게 집중하면서 프랑에게 떨어지라고 말했다.
내게서 멀리 떨어지는 프랑을 확인하고 공간 보호막을 친 다음 발밑의 공간의 벽을 치우고 뛰어내리며 놈의 머리통 전체를 공간 지각에 집어넣는다.
그 순간 세 줄기의 워터젯이 공간 보호막의 표면을 가르고 지나가는데 지속시간이 순식간에 1/4가 줄어든다. 역시 그냥 물은 아니겠죠?
빠르게 낙하하던 나는 놈의 몸통이 전부 공간지각에 들어온 순간 발밑에 공간의 벽을 치고 녀석의 심장을 찾,
푸쾅!!
“큭!”
그 순간 집채만 한 물 덩어리가 번개같이 날 향해 쏘아져 나오더니 보호막을 치고 지나가는데 순식간에 지속시간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퍼퍼퍼펑!
뒤이어 수면에서 솟구치며 날 향해 날아오는 물대포를 공간의 벽을 박차고 허공을 뛰어다니며 피하는데 놈은 마치 날 직접 보는 것마냥 주둥이에서 물대포를 날려댄다.
“뭐야? 그게 뇌가 아니었어?”
게다가, 날 정확하게 감지해서 공격하는 걸 보니 확실이 저시키가 살아있는 거 같다. 그래서 놈의 몸통을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는데 내장이나 뇌라고 할만한 게 안 보인다.
꽈르릉! 꽈과과광!!
프랑이 하늘 높은 곳에서 연달아 수십만 TP 짜리 벼락을 떨어트리는데 호수 속 깊은 곳이라 벼락이 놈이 있는 곳까지 전도되지 않는 거 같다.
“쳇. 멀쩡한 모습으로 끌고 가려 했는데!”
퍼퍼펑!
물대포가 프랑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데 하늘 높이 떠 있던 프랑은 여유 있게 물대포를 피해낸다. 당연히 나보다 더 빠르고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데다 공간지각도 있는데 저런 거에 맞을 리가 없지.
멈출 생각을 안 하는 놈에게 공간의 벽을 얇은 칼 모양으로 만들어서 3 중첩 시켜 놈의 몸통과 머리 사이에 생성시켜버렸더니 머리통이 몸에서 툭 떨어져 나간다.
퍼퍼퍼펑! 츠아아악 촤아아악!
“이크!”
머리가 떨어져 나가니 더욱 발광하기 시작하는 놈의 몸통에서 떨어져 황급히 하늘 높이 뛰어오르니 프랑도 날 쫓아 높이 떠오른다.
“우와. 몸통이 거머리라서 그런지 뇌가 없어졌는데도 안 죽네. 거기다 떨어져 나간 대가리에서도 물대포를 쏘아낼 줄은 몰랐어.”
“저, 저도 당황해서 벼락을 떨어트려 버렸어요.”
프랑도 저런 징그러운 모습은 질색인지 안색이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발아래 호수 면이 거칠게 출렁거리는걸 보니 아직도 날뛰는 거 같다.
“아, 점점 몸통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어요. 머리는 이제 움직임을 멈췄네요.”
절단면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고 뒤틀고 비틀던 몸뚱이가 서서히 멈추고 뾰족해졌던 피부도 원래대로 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다시 공간 보호막을 치고 뛰어내렸다.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는데도 반응이 없다. 확실히 죽은 거 같군.
반 토막 난 놈의 단면을 공간지각으로 살펴보니 진짜 희한한 모습이다. 척추뼈도 안 보이는데 놈의 대가리로 이어지는 곳에는 뼈가 보인다.
입에 첫째 인어가 준 진주를 입에 넣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녀석의 백 수십 미터짜리 머리통을 잡고 들어 올렸다.
무진장 무거워서 마나 모드가 아니라 신체 강화를 극대화해서 40km 하늘 높이 끌고 올라와서 주둔지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머리통이 주둔지 인근 숲에 떨어진 걸 확인하고 다시 뛰어내려 놈의 앞지느러미를 잡고 공간의 벽을 치면서 수면으로 떠올라 주둔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크고 무겁지만, 물속이라 부력을 받아서 다행이다.
거의 아파트 크기만한 놈을 끌고 천천히 주둔지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확인 하려는데 코멘트 숫자 옆에 2가...? 무슨 숫자인가했는데 서평의 숫자더군요!
두 분이나 서평을 써주시다니 감격...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