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34화 (234/517)

00234  아숨프레 수몰 폐허.  =========================================================================

아…. 이거 실수했당.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호수 가운데는 곶처럼 툭 튀어나온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을 넘어가면 또 폭이 확 넓어졌다.

곶의 끄트머리에서 호수 변까지가 딱 100km 정도 되고 거기서 나아가면 어떻게 재든 폭이 최소 150km에 평균 250km가 넘고 가장 긴 곳은 350km까지 늘어나는 거대한 바다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 이상 길을 틀어막고 이형종을 싹 처리 못 한다는 거지. 지금도 시야 분석 30km를 가진 프랑이 하늘에서 좌우로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까지는 프랑이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어떻게든 커버했지만 이 이상은 놓치는 놈이 틀림없이 나온다.

아침 8시에 위상 세계에 도착해서 12시에 주둔지에 도착, 오후 1시부터 정리를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 5시간이 걸려서 지금은 오후 6시다.

그리고 남은 호수는 범위는 지금까지 정리한 곳에서 최소 3배 이상 남았다. 그러니까 더이상은 무리야.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고 그동안 잡은 이형종은 상위가 32마리, 중상위는 479마리, 중위 이형종은 이하는 세다가 짜증 나서 포기했다.

나도 이제 최고위 이형종 외에는 위상력을 흡수할 수 없고 프랑도 영혼석도, 몸에도 내가 주입해준 TP가 가득 차서 더는 못채우는 상태고 위상력 흡수도 못하는 단순 노가다니까 한숨이 그냥 막막 나오려고 한다.

거기다 화연이가 이야기해준 고위 이형종도 저 너머에 있을 텐데 그 녀석을 잡으려면 상위 이하처럼 손짓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라도 조금은 신경 써야 한다.

몰이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놈의 자식들은 대가리가 없는 것인지 도망도 잘 안쳐서 몰이도 안 된 덕분에 더 바빴지.

이형종을 정리하면서 공간 지각으로 지형을 확인한 건데 수몰 폐허는 화연이가 말한 것처럼 주둔지에서 가장 가까운 호수 변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마치 표주박 같은 모양새로 폭이 최대 11km까지 퍼져있는 모양새였다.

수몰 호수의 상공에서 프랑의 시야 분석으로 감시하며 대기하다가 다가오는 이형종을 처리하는 걸로 계획을 바꿔야겠다.

내 뒤에 둥둥 떠 있는 바람 속성 능력자에게 생각한 걸 설명해주며 돌아가서 화연이에게 알려주라 했더니 경례를 올리며 쏜살같이 주둔지로 날아간다.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는 프랑을 보면서 손을 흔드니 바로 날 향해 날아온다.

“부르셨어요?”

은은한 노을이 만드는 엷은 화장은 그렇지않아도 달의 여신 같은 아름다운 프랑의 얼굴을 더욱 예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오금까지 내려오는 백금 발이 노을빛에 붉게 타오르는 모습과 청초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만들어내는 매력은 프랑이 내 연인이라는 사실에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온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입을 살짝 맞춰주니 프랑은 얼굴을 붉히면서 내 목을 끌어안고 진한 키스를 해온다. 잠시 사과 향의 설육을 맛보다가 엉덩이를 살짝 두드리니 그제야 붉어진 얼굴로 내게서 떨어졌다.

“수고 많았어. 이형종 시체도 잔뜩 모았고 위상석도 60만 TP 가량 확보했으니 이만 돌아가자.”

“더이상 박멸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 이상 완벽하게 이형종을 차단하는 건 무리야. 저녁 먹고 돌아와서 밤에 상위와 고위 이형종만 찾아서 다 죽여놓고 내일부터는 수몰 폐허 위에서 감시하는 방향으로 하든가 해야겠어.”

“네. 그렇지 않아도 여기서 더 넓어지면 이형종이 도망칠 구멍이 생길 거 같았어요.”

“사체 회수를 도와주고 돌아가자.”

내가 죽여놓은 이형종 시체의 회수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공간의 벽으로 만들어둔 벌룬이 떠 있는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내가 이형종을 처리하기 시작한 지 2시간째부터는 물 속성 능력자 하나에 신체 강화 능력자 둘을 붙여서 운용을 시작했는데도 이형종 시체의 회수 속도가 내가 잡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차츰차츰 벌룬이 쌓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서서 사체 회수를 도와주기 시작하니 회수 작업은 금방 끝났다.

모든 사체 회수가 완료된 뒤에서야 신체 강화 능력자들은 한숨을 쉬며 주둔지에 마련된 휴식장소에 주저앉아버렸다. 물론 그건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고 물 속성 능력자들과 바람 속성 능력자들은 얼굴이 파래져서 시체처럼 쓰러져버렸다.

발밑에만 물을 응고시켜서 뛰어다니거나 한두 명씩 데리고 날아다녔지만, 그것도 5시간이나 계속되면 나 같은 사람도 아니고 일반 능력자니 쓰러지는 게 당연하지.

중간에 화연이가 중위 이형종까지 회수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와서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아무래도 저들은 내일까지 골골거릴 거 같다.

거의 8시부터 지금까지 멀쩡히 뛰어다니는 내 모습에 능력자들은 날 보며 존경심 20% 경외심 30% 공포심 50%를 품는 거 같다.

그들의 복잡한 시선을 받으며 슬쩍 주둔지의 동쪽을 보니 높이가 백수십 미터까지 쌓여서 해체를 기다리는 이형종 시체의 산이 보인다.

마스터인 내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데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쉴 수 있느냐는 화연이와 누나의 강압적인 이야기에 회수 작업 중인 능력자를 제외한 전원이 부산물 해체에 달려든 지 6시간째인데도 남은 게 저만한 양이라는 거지.

그러니 사람들이 날 괴물 보는듯한 표정으로 보는 거고.

주둔지 중앙 공터의 휴식처에 사체 회수팀들과 함께 앉아 쉬고 있으려니 곧 화연이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밤에 상위와 고위 이형종 들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응. 호수의 폭을 너무 우습게 봤어. 그래도 1/3 정도는 처리한 느낌이니까 싸우면서 여파가 클 법한 놈들은 밤에 모조리 잡아놓고 내일은 수몰 폐허 탐색 때 상공에서 감시하려고.”

1/3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명계의 주민들이나 낼법한 신음이 주변에서 쉬던 능력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화연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해체해야 할 부산물이 산더미입니다. 30명의 능력자가 이렇게 쉬고 있으면 일이 더 늦어질 테니 힐링 웨이브를 써서 저들의 피로를 해결해주지 않겠습니까.”

“으어어어. 보스으으. 조금만 더 쉬게 해주세요오오.”

“진짜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고요! 휴식을!”

“차라리 죽여주세요….”

화연이의 말에 쓰러져있던 능력자들이 울상을 지으면서 반 투정을 부리니 화연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편히 쉬고 싶다면 마스터께서 하신 일의 반이라도 따라가면 됩니다.”

그 순간 투정 불만이 쏙 들어가 버리더니 끙끙거리면서 비틀비틀 일어난다. 좀비 같은 그 모습을 보다가 힐링 웨이브 2단계를 쏘아주니 푸른 물결이 퍼져나가며 능력자들의 전신을 어루만지다 사라진다.

“…우와. 이게 마스터의 힐링 웨이브인가.” “쩐다. 정신적인 피로까지 다 사라진 거 같아.” “으앙~ 해체작업 시러~”

울상을 짓는 여자 능력자들과 신기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이는 남자 능력자들이 우르르 부산물의 산으로 이동하는 걸 지켜보던 화연이는 날 돌아보더니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내 입술에 키스했다.

“고생 많았다. 프랑도 고생 많았습니다. 하늘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던 뇌성에 감탄했습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후후. 전부 서하 덕분이잖아요. 화연도 부산물 해체에 힘을 쏟고 있었다는 거 다 알아요.”

슬쩍 프랑과 덕담을 나누는 화연이의 엉덩이에 손을 뻗어 타이즈 아머 너머로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을 느끼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쿡쿡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할 테니 그걸 먹고 쉬어라. 그리고…. 야간 사냥에는 언제나 몸조심해야 한다.”

“조심할게.”

“여차하면 마포로 호수를 날려버려라. 수몰 폐허의 수익이 중요하다지만 네 안전이 가장 중요해.”

“응.”

…어?

내 대답에 화연이는 빙그레 눈웃음을 지어주고 다시 부산물의 산으로 가버렸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마포로 호수를 날린다 -> 호수가 사라진다. -> 물이 사라진다. -> 수위가 낮아진다. -> 싸우기 쉬워진다. -> 수몰 폐허 탐색이 쉬워진다….

…!!

프랑은 내 표정에서 뭔가 눈치챈 거 같지만 내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지 가만히 앉아서 날 주시하고 있었는데 날 생각해주는 그 행동이 고마웠다.

마포를 쏘면 폭발의 충격파로 물이 크게 출렁일 거야. 그 물살에 수몰된 폐허가 손상이 생길 수 있을테니 그건 자제하고 마나 포를 쓸까?

충격파가 나오지 않는 마나 포를 날리면 물만 사라질 테니 수위가 점점 낮아지겠지?

홀로그램 창을 띄워 아침에 찍은 호수의 전경을 담은 사진을 보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아까 호수의 1/3을 정리하면서 지형을 확인해봤는데 이쪽 만(灣)의 가장 깊은 곳은 1.6km이고 모양은 전체적으로 바다처럼 대륙붕과 대륙사면, 해저 평원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그리고 수몰 폐허는 대륙붕에 위치하고있었는데 그곳의 수심은 300m.

마포가 아니라 마나 포를 날려 물을 없애면 수위가 점점 줄어들 거고 그럼 걸어서 수몰 폐허를 확인 가능해지겠지. 거기다 물고기 형태의 이형종 들도 수위가 낮아지면서 따라 수심이 깊은 곳으로 도망가버릴 테니 습격도 걱정 없고 갑각류들은 물이 없는 곳에서 움직임이 대폭 느려지니까 대처하기도 편해질 거다.

좋아. 마포 대신 마나 포로 물을 지워서 수위를 낮추자.

내가 D 클래스일 때 쏜 5,000 TP 마나 포는 지름 1km의 크레이터를 만들었었지. 이제 B 클래스가 된 데다 TP도 더 압축시킬 수 있게 됐으니 훨씬 더 많이 지울 수 있을 거야.

호수의 북서쪽에 다른 호수와 연결된 틈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 물이 들어오는건지 나가는건지 그걸 확인해보고 작업 시작해야겠군.

“프랑.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어떤 건가요?”

“일단 화연이와 누나랑 팀장 조장들을 모아줄래? 난 회의용 천막에 가 있을 테니까.”

“네!”

회의용 천막 안으로 들어와서 전등에 불을 켜고 호수의 전경이 담긴 사진을 홀로그램 창에 커다랗게 띄웠다. 그리고 편집 모드로 들어가서 파악한 수몰 폐허의 위치와 모양. 수심 등을 지도에 그리고 있으려니 남녀 8명이 우르르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지도를 보고 수몰 폐허의 위치와 범위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다 수심까지 표시된 지도에 무척이나 강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아까 화연이의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서 한 가지를 생각해봤는데 그 점에 대해 모두의 생각이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려고요.”

“마스터께서 떠올린 아이디어라니, 어떤 방식일지 기대되는데요?”

3팀의 팀장인 C 클래스 신체 강화 능력자 박윤호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보이면서 기대감을 표시하니 다른 사람들도 얼굴에 호기심이 차오른다.

“간단한 거에요. 제 능력으로 물을 없애서 수몰 폐허가 드러나도록 수위를 낮추는 거죠. 여길 보면 아시겠지만, 수몰 폐허는 대륙붕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곳의 수심은 최대 300m고요.”

“아! 마스터의 공간의 벽은 범위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우는 효과였죠?! 물속에 있으면 물도 전부 빨아들여서 지워버릴 테니 마스터의 말씀대로라면 수위를 간단하게 낮출 수 있겠네요. 그렇게 되면 걸어서 수몰 폐허를 탐색할 수 있을 테고 수생 이형종의 습격도 갑각류 등을 제외하면 사라질 테니…!”

…아. 마나 포를 쓸 게 아니라 공간의 벽을 치면 됐구나.

어휴, 프랑한테 미리 설명해줬으면 쪽팔릴 뻔 했네. 누나는 내게 본의 아니게 쪽팔림을 면하게 해주고 도움까지 준 것도 모르고 내가 그려둔 지역별 수심을 확인해보더니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날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감탄한다.

“게다가 호수지만 바다의 대륙붕과 대륙 사면으로 이루어지다가 해저 평원처럼 구성되는 곳이니 수위를 낮춘다고 해도 물을 전부 증발시키지 않아도 돼요! 대단해!”

아까까지는 '수위를 낮춘다고? 이 큰 호수를? 그게 말이 되나?' 하는 표정인 팀장과 조장들도 그제야 수위를 낮추는 이야기가 확 와 닿았는지 표정이 크게 밝아진다.

“우와. 그럼 수중 장비도 필요 없고 전투 준비만 갖추고 수몰 폐허를 조사하면 되겠군요?”

“대…단해. 이런 방식은 처음이야….”

“이건 우리 마스터니까 가능한 일군요. 마스터는 진짜 대단합니다!”

후, 후후후. 그래. 날 찬양해, 대단하신 이 몸을 찬양해라! 푸하하하!

조장과 팀장들의 흥분 섞인 모습을 실실 웃으면서 보고 있으려니 화연이도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감탄했다는 눈빛을 보냈다.

“확실히 대단합니다. 그 방식은 마스터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못 할 일이군요. 남은 것은 조사하지 못한 반대쪽 호수의 지형과 10시 방향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로의 물길을 확인하면 되겠습니다.”

“응. 그전에 아까 이야기한 대로 오늘 밤에는 나 혼자 아숨프레 호수에 있을 고위와 상위 이형종을 찾아서 잡을 거야.”

“뭐?! 그럼 나도…. 저도 같이 가겠어요!”

밤에 싸우러 가겠다는 이야기에 누나는 당장에 눈을 크게 뜨더니 혼자 가는 건 절대 안 된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누난 날 수 있어?”

“바람 속성 능력자와 함께하면 되잖아요….”

내가 거절할 모습을 보이니 누나는 울상을 지으면서 팀장들을 돌아보지만 나도 팀장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험 어험 하면서 누나의 시선을 피한다.

“이잉!”

“누나랑 화연이는 주둔지를 지켜야지. 낮에 내가 호수 정리할 때 중상위 이형종이 중위 이형종 몇 마리를 이끌고 주둔지를 습격해왔다며.”

내가 한참 호수의 이형종을 정리 중일 때 위턱과 아래턱이 반으로 쪼개져서 네 갈래로 주둥이가 뻗어 나온 25m가 넘어가는 악어가 그보다 작고 조그만 악어 4마리를 이끌고 주둔지를 공격해왔는데 누나와 화연이가 나서서 간단하게 퇴치했다고 알려왔었다.

“누나의 이형종 대처능력이 여러 가지로 뛰어나단 건 알지만 물속에서 고위 이형종을 상대할지도 모르는데 데려갈 수는 없어.”

“…알았어요.”

“그렇다면 밤이 아니라 낮에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위를 낮춘다면 작업속도도 빨라질 테니 앞도 잘 안 보이는 밤에 전투를 상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약간 더벅머리의 선하게 생긴 2조장 아가씨는 조금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여자는 제2 생활 보조 조의 조장이시랬지?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영 생각 안 나는걸 보면 직접 얼굴을 맞댄 적은 없었나 보다.

“정태령 씨 말씀대로에요! 위험하게 마스터가 밤에 전투를….”

“누난 조용히 해. 다른 일은 잘하면서 내 일만 되면 앞뒤 분간을 못 하네.”

그냥 두면 계속 회의를 질질 끌게 만들 거 같아서 누나한테 잔소리를 했더니 입술을 삐죽이면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 모습에 다른 팀장과 조장들이 숨죽여 웃는 걸 보고 살짝 한숨을 쉬면서 정태령이라고 하는 2조 생활 보조조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마나 비전을 켜서 회의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마나 비전을 키면 투시경처럼 밤도 낮처럼 볼 수 있어요. 시야 제한 같은 일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제 곁에는 프랑도 있으니까요.”

그제야 정태령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면 걱정 없군요."라며 물러서니 누나는 그 정도에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를 보낸다.

아 진짜. 회의 때 누날 제외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그 뒤로 회의를 통해 누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오늘 밤에는 그냥 쉬고 내일은 아침 일찍 다른 호수로 통하는 수로를 확인하고, 수위를 파악한 다음 대지 능력자를 데려가 물길을 막아버리기로 했다.

그다음 공간의 벽을 호수 속에 쳐서 수위를 잔뜩 낮추고 고위 이형종이 있는지 살펴본 뒤에 이형종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한밤중에 전투를 벌여봤자 회수 팀은 나처럼 밤눈이 밝지 않으니 위험하고, 죽여놓고 내일 회수하려 했다간 다른 급이 낮은 이형종 들이 시체를 뜯어먹어 훼손할 수 있다고 열심히 발언하는데 다 일리 있는 말이라서….

회의가 끝나고 천막 밖으로 나와 능력자들이 전부 달라붙어서 이형종 시체의 부산물 해체 작업을 하는 걸 지켜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우 진짜.”

“푸훗. 너무 그러지 마세요. 시하 님은 전부 서하가 걱정돼서 그러신걸요?”

“그건 알지만, 누나는 진짜 과잉보호라고.”

아까 누나가 보여준 모습에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생활 보조 능력자 10명이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음식 재료로 쓸 건지 꽃게처럼 생긴 이형종의 토막 난 사체를 가져와 깨끗하게 씻더니 큼지막한 솥을 준비하는 걸 보니 저녁은 꽃게탕으로 할 생각인가보다.

…하는데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도둑게와 소라게 바닷가재처럼 생긴 이형종을 들고 와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도 게판이겠군. 기대된다.

준비된 저녁을 모두 모여서 함께 먹고 주둔지에 진동하는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를 뒤로한 채 능력자들은 다시 이형종 시체의 산에서 부산물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최수한의 지시에 따라 화연이와 누나도 돕는 걸 보고 나도 가서 도와주려고 하니 최수한은 정색하면서 이런 일은 마스터인 내가 할 일이 아니라더라….

다른 능력자들도 나는 아침 8시부터 길 내고 밥 먹고 그 뒤로 쉬지 않고 호수의 이형종을 정리했는데 여기서도 마스터가 일하면 자기들은 식충이가 될 거라면서 우리 할 일을 뺏지 말라고 했다..

거기다 누나랑 화연이도 오늘 내가 가장 열심히 했다며 그냥 쉬라고 등을 떠밀길래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샤워장에서 씻고 내 천막으로 돌아왔다.

“흠.”

푹신한 에어 매트에 드러누워 주둔지 주변을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목책으로 주둔지를 둘러쌓아 놓고 목책에서 500m까지의 거리를 전부 밀어서 공터로 만들어놨다.

그리고 군데군데 탑? 사다리? 비슷한 걸 만들어뒀는데 저기서 보초를 설 생각인가보다.

어차피 날 보초 세울 생각도 없을 테니 자기 전까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혹시 있을지 모를 이형종이나 정리해둘까?

프랑한테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이형종 들을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를 누나랑 화연이에게 전해주라고 한 다음 어두컴컴해진 밤하늘을 솟아올라 마나 비전을 켜서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다 아래쪽에서 누나가 주먹을 쥐고 손을 막 흔드는 게, 왜 안 쉬고 또 일하러 가냐고 승질부리고 있었다. 내 저럴 줄 알고 프랑한테 전해달라고 했지.

나한테 다가온 프랑은 나 대신 누나한테 꾸중을 들은 표정이다.

“그러지 말고 내려와서 쉬시래요….”

“됐어. 누나가 뭐라 하면 프랑은 이야기를 전해줬지만 내가 말을 안 들었다고 해.”

“히잉.”

검은색과 회색의 세상을 돌아보며 산책하듯 공중을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하니 아래쪽에서 날 노려보던 누나도 내가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모습을보고 그제서야 시선을 돌리고 부산물들을 씻고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 즉시 프랑을 품에 껴안은 다음 공간의 벽을 박차고 누나의 시선을 피해 숲 너머로 번개같이 뛰어들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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