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2 아숨프레 수몰 폐허. =========================================================================
나와 프랑과 화연이 선두로 139명이 한 번에 능력자 연합 홀에 입장하니 경악과 함께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가득 들린다.
“와씨발. 그랑 블루잖아.” “저, 저기 봐. 선두에 그랑 블루 마스터 아냐?” “우와 쩐다. 이제 18살이라던데 수천 명의 수장이라니.”
“썅. 나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졲까. 그랑블루 마스턴 금수저가 아니고 지 힘으로 올라선 거구만.”
“나도 그냥 그랑 블루 생활 보조에 지원해볼까….” “아서라. 그랑 블루 생활보조도 G클래스 이하는 안 뽑는다더라.”
“그랑 블루 마스터의 마포는 진짜 씹사기던데 저렇게 끌고 갈 필요 있나? 혼자 다 잡아 죽여도 될 텐데.”
“멍청아. 짐꾼은 필요하잖아.” “야. 근데 그랑 블루 마스터는 연합 안 와도 혼자 맘대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있을텐데 왜 온 거냐?” “다른 사람은 데리고 못 들어가나 보지.”
이제 아침 8시인데도 백수십 명이 넘는 저 클래스 능력자들이 홀에 진을 치고 있고 그 사람들이 전부 날 보며 부럽다거나 한숨 가득한 투정을 부리는 걸 듣고 있으려니 가슴이 묘하게 간질거린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우 지부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날 마주했다.
“어서 와라. 8층을 비워뒀으니 그쪽으로 가지.”
“응.”
화연이와 누나가 사람들을 인솔해서 무거운 짐을 든 생활보조 능력자들 위주로 먼저 올려보내고 프랑이 공중에 떠서 "8층으로 이동이에요~" 하면서 돌아다니는걸 보다가 옆에 선 지부장을 돌아봤다.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붉게 물든 날카로운 눈빛의 진지한 미청년처럼 보이는 지부장은 잠깐동안 입을 가리고 고민을 하더니 날 보며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알티나 멜디오스 씨의 연락을 받은 거 있냐.”
“없는데요. 그 여자가 왜요?”
“제약이 답답해서 못 버티겠다고 IWO에 구두로 사임 의사를 밝히고 뛰쳐나갔다. 그게 네가 왔다 가고 2시간 뒤의 일이야.”
“헐…. 대책 없네.”
“내 말이!”
내가 내뱉은 단어가 지부장의 억울함을 찔렀는지 순간적으로 버럭 하고 외쳤다가 주변의 시선을 받은 지부장은 표정을 가다듬더니 다시 한숨을 푹 쉰다.
“그래서 형은 알티나 씨가 저한테 왔을 거라고 생각한 거에요?”
“30% 정도는. 그 여자도 멍청하지 않으니 바로 너한테 연락했다간 되려 잡혀갈 거라는 생각 정도는 했겠지.”
“…연락 오면 붙잡고 형한테 연락해줄게요.”
답답해서 복장이 터진다는 표정이라 불쌍해서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면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고 끄으응 하고 신음을 흘린다.
“IWO에서 형한테 책임을 묻나 보네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지부장 생활이 아주 마음 편한 거 같진 않아 보인다.
대형 엘리베이터가 능력자들을 세 번 나르니 절반이 넘는 인원이 홀에서 사라졌다. 네 번째 엘리베이터에 우리 그랑 블루 전투 능력자가 올라타는 걸 보다가 미호와 히아리드를 손짓해서 불렀다.
“제가 위상 세계에 들어가면 미호하고 히아리드가 하철수의 방에서 대기할 거에요.”
“…괜찮냐? 저번엔 당황해서 이야기 못 했다만, 만약 녀석이 B 클래스가 되어서 나오면 네 펫이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위상 세계에서 빠져나오면 눈이 부셔서 잠시간 사위 분간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미호도 같이 붙여놓고 근처에 다가오거나 나타나는 것들은 문답 무용으로 공격하라고 시켜놨어요.”
“….흠. 상위 아종에 희귀 속성의 고위 이형종 둘이면 네 말대로 충분하겠군. 그렇지 않아도 오피스텔은 만약을 대비해서 모두 방을 빼놨다. 놈들이 나타나면 걱정하지 말고 다 때려 부숴도 돼.”
“그거 마음에 드네요. 고마워요. 미호, 히아리드. 들었지? 녀석은 정신을 조작하니 미호 넌 특히 조심해.”
- 갑자기 나타나는 건 다 죽인다! 알았어!
“아냐. 어제 사진 보여줬지? 그거부터 죽여야 해.”
- 아, 응! 쥐새끼처럼 생긴 놈부터 죽인다!
“그래. 히아리드도 부탁한다.”
=염려 놓으십시오. 반드시 하늘님의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그놈이 위상 세계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빠져나올 거란 생각은 안 해. 그렇다고 해도 녀석이 빠져나온다면 적어도 자신의 실력을 자신하고 있을 확률이 높겠지, 아니면 정신 조작으로 이형종을 끌고 나올 수도 있을 테고.”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는 미호와 히아리드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철수도 자신이 돌아 나오길 기다리는 자들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을거야. 그래도 그놈이 되돌아 나온다면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고 방심하고 있을 상태일 확률이 높을 거야. 녀석은 레어 타입의 능력자. 신체 능력은 일반인보다 아주 조금 나은 정도니 히아리드, 너의 일격에 죽을 확률이 높아.
거기다 귀환 직후에는 눈부심 때문에 십수 초간은 주변을 확인할 수 없어. 그러니 그 순간이 기회야. 녀석이 튀어나오는 기미나 정황이 포착되면 최대한 빠르게, 가장 강한 능력으로 곧장 공격해.”
=숙지하였습니다.=
“미호. 너도 히아리드 말 잘 듣고. 기다리다가 무언가가 나오면 바로 이 건물을 모두 부숴도 되니까 최대화력으로 밀어버려. 알았지?”
- 응!
“하철수 그 개자식은 정신을 조작할 수 있으니까 정신 차릴 여유를 주면 안 돼. 중요한 거라서 계속 이야기하는 거니 확실하게 머릿속에 기억해두도록 해.”
-응!
=네.=
솔직히 미호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상위 아종과 빛 속성을 가진 고위 이형종이다. 이 두 녀석이 어찌 못할 상태라면 내가 아닌 이상 누가 있더라도 녀석을 막지 못한다.
지금은 녀석이 입장한 지 20일도 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서너 달이 지날 때부터는 나도 긴장하고 뭔가 다른 수단을 찾던가 해야 한다.
중국의 그 운빨이 극에 다다른 번개 능력자처럼 한방에 크리스탈 이터를 만나서 잡아 죽이지 않는 이상에는 B 클래스까지 무진장 오래 걸릴 테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리스탈 이터는 무진장 빨라서 어지간히 반사신경이 좋지 않은 이상 못 잡는다고 하니 하철수는 거의 못 잡는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내 마나시브처럼 죽인 이형종의 위상력을 모조리 빨아먹는 게 아니고 평범하게 죽인 이형종의 총 위상력중 20%만 획득 할 수 있으니 성장이 아주 빠르진 않을 거다.
거기에 정신 조작으로 대신 싸우게 하는 이형종 들과 20%를 서로 나눠 먹으면 성장 속도는 더욱 느려지겠지. 적어도 아무리 빨라도 서너 달은 걸려야 녀석이 B 클래스가 될 수 있을 거다.
뭐, B 클래스가 되기 전에 튀어나온다면 미호랑 히아리드에게 찢어져 죽을 테고 말이지.
두 애완동물이 오피스텔로 이동하는 걸 지켜보다가 마지막 차례가 되어서 프랑과 화연이, 누나와 함께 남은 인원들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호스트인 생활 보조 능력자를 중심으로 동시에 입장한 우리가 발을 내디딘 곳은 거대한 망치로 산봉우리를 찍어버린 것처럼 생긴 곳이었다.
대충 높이가 400m 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는 봉우리가 없이 지름 900m가량 되는 분지가 존재했는데 이곳에는 잔디가 빼곡히 깔려있고 산자락으로 내려가는 곳은 울퉁불퉁한 흙과 자갈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정렬합니다! 각 팀장은 낙오자가 없는지 인원 체크를!”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화연이가 나서서 정렬시키고 인원 체크를 시작한다.
아숨프레 호수에서 나와 프랑은 개별 행동을 취하기로 했고 세 개 팀과 세 명의 팀장을 이끄는 건 화연이와 누나가 맡기로 했다.
입장 전에 화연이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이 근처에는 중위부터 상위까지 다양한 종류의 수서 동물이 존재한단다. 그중 유의해야 할 놈이 게나 바닷가재처럼 생긴 갑각류다.
특히 바닷가재는 그야말로 청소부 같은 놈인 데다 상위인 녀석도 간간히 출몰할 정도라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잡아야 할 녀석의 사진을 봤는데 곰치 같은 주둥이에 거머리 같은 몸통과 펭귄 날개 같은 네 장의 지느러미가 팔다리처럼 달려있는 녀석이었다.
…공룡이라고 하던데 공룡 맞아? 생긴 건 겁나 징그럽게 생긴 게 공룡이 아닌데.
“수한.”
“네, 주인님.”
실보다 가는 위상력을 머금은 철사를 짜서 만든 전신 타이즈 아머를 입은 최수한이 내게 달려왔다. 타이즈 아머 위로 몸의 굴곡을 가려주는 평범한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어서 그냥 보면 소풍 나온 처녀 같은 모습이다.
가슴 고정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는지 티셔츠 너머로 가슴이 출렁거리는데, 저거 일부러 안 한 거겠지…?
B컵까지 자란 가슴 덕에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신을 영접하는 신도 같은 표정의 최수한을 보며 말했다.
“하늘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올 테니까 화연이나 누나가 날 찾으면 주변 지형 파악하러 갔다고 말해.”
“그러겠습니다.”
먼저 지형 파악을 해야지. 공간의 벽을 발아래 만들어내며 하늘로 뛰어 올라가니 주변의 풍광이 점점 드러나는데…. 바로 앞에 헉 소리 나게 큰 호수가 눈에 가득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니, 호수 맞아? 3km 상공까지 올라왔는데도 호수의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안 들어와….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 2km라더니.
“호수가 아니라 바다네 바다.”
“커요…. 현실에서 제일 크다는 호수인 카스피 해가 이 정도가 아닐까요?”
“카스피 해가 우리나라보다 더 크다고 하던데 저 호수는 그보다 작아 보이지 않아?”
기왕 올라온 거, 내가 뛰어오른 곳의 위치를 확인해본 다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나 시브를 최대한으로 집중하고 마나 모드 - 가속까지 켜서 지상 100km까지 뛰어올랐더니 그제야 호수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진짜 우리나라보다 클지도 모르겠다.
아숨프레 수몰 폐허 너머로도 호수 두 개의 흔적이 보이는데, 얼핏 봐서는 비슷해 보이는 사이즈다. 답 안 나오는 크기군. 여길 4일 만에 정리한다고?
일단 인증기를 켜서 눈에 보이는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공간의 벽을 워터 슬라이드처럼 만들어 쏜살같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우웩. 다, 다음부터 그냥 뛰어내려야겠다.”
초고층 나선형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그런지, 우욱.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왔는데 눈도 돌고 속도 울렁거리고 등도 뜨겁고 아프고….
허리를 굽히고 헐떡거리고 있으려니 누나랑 화연이가 황급히 달려오고 뒤따라 최수한과 4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도 따라 뛰어온다.
“서하?! 습격이라도 받은 건가?!”
“서하야?!”
“100km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조금 현기증이 생긴 거에요.”
후욱. 프랑, 나이스!
100km 상공이라는 이야기에 '과연 마스터!'라는 표정을 짓는 네 남자는…. 아니 일단 속부터 다스리고.
“총원 139명 중 낙오자 0명입니다. 레이드 1팀 3팀 5팀과 생활지원 1조와 2조 모두 이동 준비 완료됐습니다.”
화연이의 보고를 들으면서 마나 시브덕분에 빠르게 속을 진정시킨 나는 화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동할 장소는 정해져 있어?”
“현재 위치에서 10시 방향으로 3시간가량 도보 이동을 하면 이전 주둔 장소가 나옵니다.”
“10시 방향이라….”
화연이의 존칭이 어쩐지 적응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증기를 켜서 아까 위에서 찍은 사진을 홀로그램 창에 커다랗게 펼치니 다들 놀란 표정으로 거대한 호수의 전경이 담긴 사진을 바라본다.
“10시면 이쯤인가. 확실히 나무가 베어지고 관리한 흔적이 있네.”
“떠난 뒤로 이형종의 화풀이가 없었던 거 같군요. 해당 지점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응. 반경 4.5km에는 이형종이 없으니 바로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각자의 팀원과 조원을 인솔해 해당 지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중앙에 생활 지원 1조와 2조를. 선투에는 1팀, 후미에는 3팀과 5팀이 삼각 진형을 유지한 채 이동합니다.”
뒤에 달려온 남녀 한 쌍은 생활 보조 조장이고 남자 셋은 각 팀의 팀장들인 거 같다. 팀장 셋은 죄다 미남들인 걸 보니 신체 강화 타입이군. 1팀의 팀장은 B 클래스 초입. 나머지 두 명은 최수한과 비슷한 수준의 C클래스 상급이다.
화연이의 지시에 각자의 팀으로 돌아가더니 빠르게 진형을 잡는데 각 팀이 삼각형의 꼭짓점에 거리를 100m씩 벌려 서고 가운데 1조와 2조의 생활 보조 60명이 서 있는 진형이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나와 프랑과 화연이, 누나와 최수한과 함께 가장 선두에 서서 이동하는데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사진이 100km 상공에서 찍은거라구 했지? 높이랑 거리를 대조해보면 호수 크기가…. 한국이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사이즈네….”
“…그 호수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충격이다. 서하가 찍은 사진의 몇 장을 보면 호수의 12시와 10시 쪽에도 다른 호수의 흔적이 있었어.”
“굉장히 거대한 호수 군이라니…. 이 모습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누나의 고개가 연신 갸웃거리는 걸 보니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리저리 검색하고 있는 거 같다. 저대로 두면 알아서 결과를 검색해서 알려줄 테니 나는 진행해야 할 곳을 확인해야지.
누나와 화연이의 대화를 들으며 공간 지각으로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산 아래에는 걷기 힘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굴곡진 평지가 펼쳐 져 있지만 문제는 5~8m 높이의 침엽수림이 빽빽하게 자라있다는 점이다.
한두 명이라면 나무의 사이사이로 이동하기에 힘들어 보이진 않지만 140명에 다다르는 대 인원이 이동하기에는 꽤 힘들어 보인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나무 사이사이를 피해 십수 킬로미터를 나아가는 건 굉장히 신경 쓰이고 피곤한 일이 되겠지. 거기에 이형종의 습격을 신경 써야 할 테니 내가 없었다면 이 숲을 뚫고 가는 데만 하루를 넘게 써야 할 거 같다.
거기다 폭이 100m 가량 되어 보이는 호수들이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만 2곳이 있고 자그마한 강이라고 해야 하나, 물이 고여있으니 저것도 강 모양 호수인가. 그런 강 모양 호수도 하나가 있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비가 좀 더 오거나 물이 더 모이면 슾지대가 되고 거기서 한 단계 더 진행되면 늪지대가 될 거 같다.
분지의 언덕에 올라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건 수평선이다. 역시나 무시무시한 크기군.
거기다 산자락에서부터 호수 변까지 빼곡하게 자란 침엽수림이 보이고 군데군데 강이나 작은 연못…이 아니고 저 정도 크기가 정상적인 호수겠지? 호수가 있고 그보다 작은 연못 같은 건 수없이 많이 보인다.
완만한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데 뒤따라오던 능력자들이 수평선을 보고 감탄을 흘리더니 산 아래 우거진 북방 수림을 보자마자 탄식을 한다.
특히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저 숲을 뚫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절망 섞인 한숨을 내뱉는데 듣기만 해도 불쌍해진다.
“한 명이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틈이라니, 이동이 힘들어 보이니 능력으로 길을 만들어야겠군.”
“공간의 벽으로 밀면서 나가려고 했는데, 다른 방법이 있어?”
화연이의 중얼거림을 듣고 물어보니 바람 속성 능력자들로 나무를 다 베어 넘기고 대지 능력자들로 땅을 뒤집어엎어서 그 위를 지나간다는 거 같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행렬은 기다란 일직선이 되고.
“감지 능력을 돌려서 이형종의 습격을 대비하면서 길을 만들어 행군한다니, 말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을 행군이야.”
“응. 누나 말에 동감.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길을 내면서 갈게. 어지간한 노동이라면 뒤에서 지켜보겠지만, 화연이 말대로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들 위상력을 다소비하고 쓰러지겠어.”
내 말을 들은 화연이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나가 천총운검을 뽑아 들고 높이 10m 폭 100m 두께 3m의 공간의 벽을 치니 한 번에 24만 TP가 훅하고 사라진다. 천총운검의 효과를 받았는데도 24만이라니….
1초가량 유지하니 공간의 벽 속에 들어간 나무들은 모두 분해되서 사라졌지만 14번, 28초간 42m를 나아가고 1시간 40분을 쉬어야 한다.
“와. 저렇게 폭을 넓게는 못 치겠다. 42m 진행하고 1시간 40분을 쉬어야 할 판이야.”
레이드 팀원들이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호박색 벽을 보고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폭을 좀 줄였다. 높이와 두께는 그대로 두고 폭을 20m까지 줄이면 6만까지 줄어들고 여기서 천총운검덕분에 소비 TP가 48,000이 되니 72번, 216m를 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한 번에 100m까지 쭉 밀어버리니 아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각형 모양의 길이 생긴 숲을 보던 프랑이 날 보며 입을 연다.
“20m까지 폭을 넓힐 필요는 없지 않나요? 서하의 공간지각도 있고 저도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폭을 5m까지 줄이고 2열로 이동하는 걸로 해요.”
“프랑의 말대로다. 괜히 넓게 길을 만들어 둘 필요는 없어. 길이 넓고 편하면 그곳을 통해 이형종 들이 몰려올 수 있으니까.”
“알았어.”
그렇게 2열 횡대로 늘어서서 천천히 공간의 벽을 이용해 길을 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손끝에 마나 레이저를 뽑아 진행방향의 나무들을 토막 내버렸다.
밑둥에 한번 나무의 허리춤에 한번 잘라서 쓰러트리니 높이가 확 줄어든다. 덕분에 공간의 벽 높이를 절반으로 낮추니 조금 나무 부스러기를 피해야 했지만 이동 거리가 확 늘어나 1시간에 1km를 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중간에 맛있어 보이는 바다게 이형종이 습격해오는 게 보였지만 일부러 가까이 오게 내버려뒀다. 저거, 3회차에 먹었던 그 맛있는 게 이형종이잖아.
근데 무진장 크다! 내가 먹었던 건 고작해야 등딱지가 50cm짜리였는데 저건 5m가 넘어!
바닷게가 우릴 향해 나무를 베어내며 오고 있다고 전해주니 화연이가 최수한을 시켜서 뒤에 경계 태세를 갖추라 전한다.
그럴 필요 없는데. 어쨌든 연락을 받은 본진은 게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바람 속성 능력자들이 나무를 베어서 쓰러트리고 대지 속성 능력자들이 나무를 땅에 파묻어버린 다음 공터를 만들고 대열을 갖춰 전투태세를 마치니 곧장 높이 5m에 집게발 하나가 게의 몸보다 더 큰 바닷게가 등장했다.
그리고 난 녀석이 등장하자마자 공중으로 뛰어올라 바닷게한테 마나 레이저를 쏘아내 녀석을 세로로 잘라버리니 본진의 능력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중상위 이형종이다. 크기도 높이도 5m를 넘어가고 다리 하나의 굵기가 어른 몸통만 한 데다 길이가 5m가 넘는다.
그런 다리가 8개가 있고 특히 집게발 하나는 바닷게의 몸통보다 더 커서 저거 한 마리면 우리 레이드 팀 전원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
하위 이형종은 그냥 평범한 게처럼 생겼더니 중상위쯤 되니까 확실히 특징이 달라지네.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본진은 이내 바다게 이형종의 거대한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더니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달려들어 바로 해체해서 짐짝처럼 들쳐멘다.
다들 즐거워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저게 맛있다는 걸 저들도 아는 거 같다.
“후후. 다들 점심을 기대하고 있어요.”
“바다게 이형종이 맛있다는걸 아나보네. 그나저나 아숨프레 수몰 폐허가 있는 호수는 담수호가 아냐? 바닷게가 돌아다니네.”
“담수호다. 저건 바닷게가 아니라 도둑게라고 부르는 녀석이고.”
“응?”
“등딱지가 검고 사각형 모양에 앞발이 빨갛지. 바닷게는 보통 등껍질이 동그란 모양이다.”
“화연. 도둑질하는 게라서 도둑 게인 거야?”
어? 확인해보니 화연이 말대로 등딱지가 직사각형으로 네모난 모양이다. 그럼 전에 먹었던 것도 도둑 게였구나. 프랑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화연이한테 물어보는데 누나가 옆에서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에서 살다가 민가에 숨어들어서 밥을 훔쳐먹는다고 도둑 게라고 불러. 보통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 일부에서 사는 녀석들이야.”
어느새 전부 해체되서 능력자들이 짊어진 도둑게를 보다가 다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께 3m 폭 5m 높이 4m의 공간의 벽을 치는데 6,000 TP를 쓰다 보니 2시간 동안 3.6km를 이동할 수 있었는데 목적지까지 3km가량 남아있으니 2시간을 더 이동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겠다.
“도착하면 점심시간이겠군. 곧바로 주둔지를 설치하고 식사 후에 탐색에 나서도록 하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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