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5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
우리나라는 며칠간 우국 신민회의 일당들이 재판을 받느라 시끌시끌하고 옆 나라 일본도 난데없는 총선거를 실시하고 반파된 수도를 복구하느라 벅적할 때 나는 집무실의 내 의자에 앉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외면하고 연인들의 품속에서 신경 안 썼던 몇 가지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가장 큰 의문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다.
내 능력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그저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면서 얻은 초 유니크한 능력이지만 여기에 초거대 거북이의 한마디가 끼어들면 이야기는 확 바뀐다.
나는 누구지? 아니, 난 어떤 존재지?
프랑과 화연이는 둘이서 외출하고 영은이도 누나도 일하느라 바쁘고 미호도 혜령이 이모한테 가서 쿠키 내놓으라고 조르고 있을 때,
내 옆에 서서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히아리드에게 물었다.
“넌 처음 날 봤을 때 내 혼에서 악취가 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였어?”
=…….=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래로 내린 자세에 눈을 감고 있더니 히아리드는 내 질문에 움찔하더니 다리를 오므렸다.
뭐야, 그 신경 쓰이는 반응은?
=하늘님에게서는 존재와 이유를 알 수 없는 강렬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그 뒤에 말을 더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히아리드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금색 눈동자를 들어 날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일족에게서는 바람의 냄새가 납니다. 대지의 일족에게서는 흙의 냄새가. 대해의 일족에게서는 물의 냄새가. 짐승의 일족에게서는 불의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하늘님께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가까이 있으면 머리를 찌르고 가슴과 아랫배를 자극하는 불쾌…한 향기가 났었습니다.=
“나 혼자만? 아니면 옆에 있던 누나도?”
=시하 님에게는 흔한 향기가 날 뿐입니다. 시하 님 뿐만 아니라 다른 여느 인간들 모두 흔하디흔한 향기입니다. 가까이 있다간 잡아먹힐 듯한 향기가 나는 것은 하늘님 뿐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눈 뒤로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잡아먹혀? 무슨 뜻이야.
그리고 복잡한 머릿속의 중심에는 내가 B 클래스로 오르기 직전에 꾼 꿈. 보통은 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땐 몇 시간, 아니 몇 분 안에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꿈이 있었다.
초거대 거북이의 말.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 히아리드가 말한 혼에서 나는 불쾌하고 자극적인 향. 그리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나지 않는 꿈의 내용.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히아리드가 드물게 당혹스런 감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부, 불쾌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기였기에 악취라고 표현했을 뿐, 지금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어? 지금은 어떤데?”
=저를 발정 나게 하는 향기입니다.=
“쿨럭!”
=하늘님의 손이 제 아랫배를 들쑤실 때의 감각을 생각나게 하는 향기입니다. 미호는 이것을 "발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짱다리를 한 채 허벅지를 부비는 히아리드를 보니 저 녀석을 굴복시킬 때 했던 짓이 떠올라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러다 문득 알붐 케투스가 날 보고 했던 이상한 말이 생각났다.
“$@와 *$ 였나? …뭐야. 히아리드 너 왜 놀래?”
=그걸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히아리드가 저렇게 먼저 의사 표현을 하는 건 처음 본다. 이 단어들을 어디서 들었냐고?
“알붐 케투스가 말했는데? 내가 $@는 *$ 하지만 마음은 순수하다고. $@…. 이 발음하기 힘든 말은 뭔 뜻이야? *$ 이것도.”
=미호의 교육 시간에 저도 같이 배움을 받을 때 인간…이라는 종족은 혼은 하나지만,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는 존재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는 머리의 사고와 이성이 감성을 따르며 상호 보완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는 사고와 감성이 이성에 눌려 좋지 못한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무슨 말이야…. 이해가 안 가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히아리드의 말은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는 표현하자면 오랜 시간 정신을 가다듬고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수련이자 낮은 곳을 굽어볼 수 있는 아량을. 도량을 지님을 뜻하며 *$는 보다 낮은 곳에서 더욱 낮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낭떠러지 위를 걸어가는 고난이며 그 앞에 존재하는 것은 이치와 율….=
“그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모르는 자라면 악취라고 느끼겠지만, 저라면 발정 향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진짜. 지금이라면 달마대사랑 이야기했다는 양무제의 기분을 알 거 같아!
“…이리와.”
=…….=
내 심기가 사나워졌다는 걸 눈치챘는지 히아리드는 쭈뼛거리면서 강화유리 앞에 앉아있는 나한테 걸어온다. 앉아서 올려다보니 히아리드의 다리 길이는 내 앉은키를 넘기지 않을까 싶은 만큼 길다.
치맛단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히아리드의 치마를 잡아 올려보니 누가 입혔는지 모르겠지만, 순백색의 흰 끈팬티가 보인다.
어쩐지 구름이 잔뜩 낀 날에 산을 오르면 맡아지는 구름 냄새랄까 그런 게 히아리드의 음부에서 흘러나오는 거 같다.
팬티의 가운데가 젖어있는 걸 보다가 손을 뻗어 팬티의 끈을 풀었더니 작은 천 조각이 흘러내리며 여러 장의 소음순이 장미꽃처럼 질 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음부가 드러난다.
이미 젖을 만큼 젖어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닙니다.=
“아냐. 일부러 말을 빙빙 돌리면서 내 심기를 자극하는 거 같아. 내 말 맞지?”
=아닙느흑!=
히아리드는 순식간에 자기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침입해온 무엇인가가 주는 충격에 두 팔로 아랫배를 감싸며 커다란 네 장의 날개를 파르르 떤다.
“진짜 아냐? 니 말을 들어보면 전혀 말이 안 되는 입에서 나오는 단어를 아무렇게나 나열한 거 같은데?”
이 녀석, 감정 표현이 점점 드러나는 걸 보면 혹시 세뇌가 풀리는 건가? 반항…이라고 봐야할려나.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히아리드는 몸을 주체못하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팔꿈치까지 들어간 손에서는 따뜻함을 넘어선 뜨거움과 함께 거친 압박감이 느껴진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조그만 홈을 쓸다가 거칠게 찔러넣으니 홈을 억지로 열어젖히며 푸욱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TP를 막대하게 쏟아붓기 시작하니 히아리드는 발가락 끝으로 서며 상체가 점점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하으으윽. 아아닙니다아아으아…!=
전신을 잘게 떨고 휘청이며 거칠게 내 손을 깊게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에 다른 손을 뻗어 히아리드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두 눈에 마나 비전을 강하게 집중하고 마나 보이스까지 써서 입을 열었다.
“[내 눈을 똑바로 봐. 네 주인님은 누구지?]”
=하, 느으을, 님입, 니다아앙!=
“[지금까지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걸 너의 존재에 맹세코 진실이라고 할 수 있어?]”
=사실입, 니다앗!=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과 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에서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입가에 한줄기 침을 흘리며 억지로 몸을 가누며 내 눈을 바라본다.
으음. 내 착각인가.
강제 세뇌가 조금씩 풀려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다시 한 번 자극을 주면서 확인해봤는데 풀리는 낌새도 없고, 말한 게 전부 사실인 거 같다.
히아리드의 자궁이 빵빵해질 만큼 순도 높은 TP를 왕창 쏟아놓고 거칠게 손을 잡아뺐더니 쁘즈즉하는 소리와 함께 히아리드의 눈이 돌아가며 집무실의 바닥에 철퍼덕하고 쓰러져버렸다.
볼품없이 나동그라진 천사의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발밑에 히아리드의 머리가 있어서 그 위에 발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부탁이니까 널 살려두는 거에 내가 후회하지 않게 해줘.”
=네…에….=
티슈를 뽑아 흥건하게 젖은 팔뚝을 닦으며 힐링 웨이브 1단계를 발사했더니 히아리드의 새하얀 날개 네 장이 푸드득거린다.
결국 알붐 케투스는 날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놈이라고 부른 건가? 아니, 마지막에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 어우.
내가 착한 놈이라니, 세상에 착한 사람 다 얼어 죽었나.
꿈틀거리는 히아리드의 머리에서 발을 치우니 히아리드는 천천히 내 신발과 양말을 벗기더니 상기된 얼굴로 내 발을 핥기 시작한다.
…이녀석은 이형종이다. 이형종이야. 이형종이니까. 이형종일 뿐이야!
머리 위에 빛나는 태양을 올려다보니 갑갑함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일본 사건이 정리되고 집무실에서 프랑과 미호랑 셋이서 레이드 몬스터 헌터라는 이형종 사냥 게임을 하면서 놀고 있는데 한고은이 비서 복장을 한 채 다과를 가지고 오는 걸 보고 무진장 놀랬다.
프랑도 동그래진 눈으로 한고은을 보는 와중에 물었다.
“니가 왜 그 옷을 입고 있냐?”
“25일부터 아르바이트 시작했는데?”
“…아니, 너희 부모님이 알바하는거 허락해?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시라며?”
“네 비서 알바한다고 하니까 허락하시던데?”
모델워킹하듯 골반을 살랑거리며 걸어온 한고은은 비서관 정복을 입고 뒤로 틀어올린 만두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기가 찰 정도로 잘 어울린다.
하지만 몸짓이 꼭 상사를 유혹하는 발칙한 비서 같은 모습이다.
“너 혼자…. 아! 설마 방학식 때 능글맞게 웃었던 게 이거 때문이었어?”
“빨리도 눈치채네. 나뿐만 아냐. 수유리는 통합관리부 말단 알바로 들어갔고 강소라는 총무부에, 김창현이랑 강주찬도 사업지원부에 들어갔어. 조민호도 대외홍보팀에 들어갔는걸?”
“다 온 거냐….”
한고은은 야시시한 몸놀림과는 다르게 익숙한 손동작으로 다기로 된 찻잔에 차를 따라주고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프랑과 미호의 앞에도 차를 따라주고 커다란 화분 옆에 서 있는 히아리드에게도 차를 따라줬다.
“응. 근데 너 소문이 무지 흉악하더라? 너한테 밉보이면 얻어맞으면서 절정에 달하다가 쾌락에 울부짖고 죽을 때까지 범해지다가 언어폭력에 오르가슴을 느끼며 쾌락사 해버리는 마성의 어린 육식 왕자님이라던데?”
“푸흐헙!!”
내 정신을 뒤흔드는 한고은의 이야기에 입에 머금었던 찻물을 뿜었다가 황급히 티슈를 뽑아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하는 유화연 보스님밖에 모르는 바보라서 그런 짓은 안 한다고 해줬어. 나 잘했찌?”
“그…래.”
천연덕스럽게 웃는 한고은의 모습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와 함께 혜령이 이모와 누나가 올라왔다가 한고은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머, 비서관의 신입인가요?”
“아니에요. 이모. 서하네 학교 친구들인데 그랑 블루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싶다고한 그 아이들 중 하나에요.”
“아아. 그 이야기군요.”
“안녕하십니까. 한고은입니다.”
한고은은 나한테 보여줬던 이상한 워킹이나 웃기지도 않는 몸놀림은 서해바다 멀리 버리고 삽시간에 완벽한 비서의 모습 그대로 누나와 혜령이 이모한테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한다.
기가 차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프랑은 날보며 푸훗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날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니에요~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한고은 양도 알 정도니까 이제 그랑 블루 빌딩 내부에서 그 소문이 전부 퍼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랑이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하는 말을 들으려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지금 누나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 이거 누나 귀에 들어갔다간…!
“응? 프랑은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그게요~.”
…!!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프랑이 누나한테 소문을 전부 불어버렸다!!
…휴대용 게임기를 내려놓고 책상에 엎드려버렸더니 혜령이 이모랑 누나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와 프랑을 번갈아 본다.
“그…게 무슨? 이야기에요 프랑?”
“최수한 씨의 일을 아시지요?”
최수한의 일은 꽤 유명했는지 누나와 혜령이 이모도 고개를 끄덕인다. 프랑은 그 모습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는데 혜령이 이모는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누나는 회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프랑의 허리를 낚아채고 비상구를 통해 헬기 포트로 뛰어 올라갔다.
“앗?! 서하야!!”
누나가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지금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허공 답보로 사업지원 2동의 헬기 포트로 이동한 나는 프랑을 내려놓으며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프라아아아앙…. 그걸 누나 앞에서 말해버리면 어떡하냐아아.”
누, 나가 엄마한테 말하면 어쩌지?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안 가는데…. 걱정을 한가득하고 있으니 프랑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쪽이 상황 해결에는 더 빨라요. 아마 내일모레쯤에는 서하에 관련된 뜬소문이 모두 사라질 거에요.”
“그래도….”
“이 소문도 인제 그만 사그라질 때가 됐는걸요. 이제 명실공히 한국 최고, 세계 최고가 될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마스터에게 그런 나쁜 소문이 돌아다니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시하 님이 조금 화가 나시겠지만, 그거에 대비해서 최수한을 살리기 위한 점이라는 걸 강조했으니 시하님도 뒷일을 잘 처리해주실 거에요.”
쭈그려 앉은 내게 다가온 프랑이 등을 껴안아 주더니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만 빼면 다 사실인걸요?”
“…엉?”
“쾌락사까진 가지 않지만, 저도 가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구요? 그건 화연도 영은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그렇게 거칠게 했었나? 그냥 평범한 체위로 그녀들을 만족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한 거 뿐인데…. 프랑 입에서 쾌락사라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조금 심각한 거 같다.
“그으…. 그건 미안해. 그래서 나도 정상위랑 기승위랑 후배위 세 자세로 평범하게만 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어째서인지 서하의 품에 안기면, 걷잡을 수 없이 흥분되다가 몸이 쉴 새 없이 느껴버려요.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겁이 덜컥 날 정도로요.”
“…뭐 때문에?”
“그건 서하가 B 클래스가 되어서 돌아온 그때부터였어요. 짐작 가는 일이 없으신가요?”
“없어. 돌아와서 내가 겪은 일은 전부 이야기해줬잖아?”
잠시 내 능력에 대해 바뀐 점을 떠올려보지만 별다른 점은 없는걸? 히아리드한테 한 행동까지 말했으니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이야기해줬다.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감각이….
아, 히아리드가 내게 나는 향기가 발정 향이라고 할 정도랬는데 그거 때문인가. 그걸 이야기해줬더니 프랑의 눈에 번뜩임이 스치고 지나간다.
“…화연과 영은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전 화연에게 가볼게요. 서하는 어떻게 하실 거에요?”
“어, 난 사업 지원2동 창고에 가보게. 거기 김창현이랑 강주찬이 있다니까 얼굴 한번 봐줘야지.”
“네, 그럼 나중에 봬요.”
어째 사랑을 나눌 때마다 연인들이 빠르게 절정에 오르고 순식간에 기절해버리더라니, 내가 B 클래스에 오르면서 공간의 벽 말고도 다른 능력이 또 생긴 걸지도….
사무동의 화연이에게 날아가는 프랑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발정 향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지?
프랑이 가버리고 나도 집무실로 돌아갈까 하다가 학교 친구 녀석들이 알바하고 있다는데 그래도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와봤더니 불평불만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다야. 넌 일본이라는 국가랑 싸워 이긴 거잖냐.”
“난 그냥 무력시위밖에 안 했어. 일은 여사님이랑 우리 간부들이 다 한 거지.”
김창현은 사업 지원2동의 부산물창고에서 땀 흘리면서 열심히 부산물들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강주찬도 특수재질의 보호 장갑을 끼고 부산물 창고에 쌓여있는 특수 소재의 수량을 체크하고 점검한 물건을 정돈하면서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무력시위와 인맥도 네 힘이잖아. 지금 일본은 선거 준비하느라 난리법석이라던데 그걸 서하 니가 했다는걸 생각할때마다 멍해진다니까.”
“난 그거보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가 서하한테 손 들어준 게 더 놀랍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글쎄? 그것도 총무부장님이랑 여사님이 다 알아서 해줬는데.”
김창현은 사이스 비틀, 등딱지에 6개의 빨간 점이 박혀있는 지 몸통보다 더 큰 딱정벌레 껍질을 들어다 옮기고 허리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죽겠다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으아아…. 그럼 넌 힘쓰는 거 말고 하는 거 없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부지런한 멍청이라잖아. 힘만 센 바보가 미쳐 날뛰는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게 얌전히 지내는 거 만큼 중요한 게 어딨다고.”
킥킥거리면서 높게 쌓인 허블쉽 모피 위에 앉아서 두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더니 김창현과 강주찬도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넌 머리 안 써서 그렇지 머리 쓰면 되게 무서울 거 같던데? 리디아 공주 대하던 것만 봐도 그렇잖아.”
“야 주찬. 저놈은 그냥 귀찮아서 아랫사람들한테 일 다 맡겨버리고 탱자탱자노는 타입이야. 유능한 게으름뱅이가 딱 저놈 아니냐.”
“킥킥.”
“크크크.”
“어이. 뒷담화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하라고.”
강주찬에게 들은 거지만 저번에 누나랑 같이 저녁 먹고 나서 한고은이 울 누나 전화번호를 받아갔는데 그 뒤에 누나한테 연락해서 한고은 패거리들이 어떤 자리라도 좋으니 그랑 블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단다.
“너희들이라면 좀 더 미래를 생각해둔 쪽으로 알바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냐?”
“우린 아직 고3이잖냐. 그런 미래 걱정은 대학 들어가서 해도 돼.”
김창현은 급할 거 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흥얼거리며 포대자루를 들어다 한쪽 구석에 쌓기 시작했다. 강주찬도 마찬가지로 포대자루를 나르며 입을 열었다.
“난, 아버지 뒤를 이을 거니까 지금 이렇게 국내 최고의 레이드 팀과 안면을 익히는 것만으로 만족이야. 그리고….”
강주찬은 자기 몸통보다 더 큰 포대자루를 내려놓더니 허리를 펴면서 날 보고 웃었다.
“주빈이 치료해줘서 고맙다.”
“…별게 다 고맙네. 그럼 난 갈게 수고해라.”
“그랴. 너도 열심히 농땡이 피워라.”
“잘 가.”
창고를 나와 그 뒤로 수유리와 강소라, 조민호가 일하는 곳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부 누나가 편의를 봐준 덕분이라나.
웃으면서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고자질하라고 했더니 다들 잘 봐주신다며 편하게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장난기가 솟아버렸다.
그래서 책임자들을 향해 음흉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알바들 너무 놀게 하는 거 아니에요? 비싼 돈 주고 일까지 가르치는데 죽도록 부려먹어야죠?”
“큭, 알겠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 부려먹겠습니다!”
“힝?!”
울상을 짓는 녀석들 덕분에 크게 웃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나오니 녀석들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저 녀석들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데 나도 뭔가 해야겠지.
싸우는 거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나 일감을 던져주는 거겠지? 신촌동 수련장에 대저택도 짓고 재단도 하나 만들고 연구소도 만들어야겠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 역시 해야할 건 레이드지!
============================ 작품 후기 ============================
자고 일어나서 민방위 갔다오고 볼일 좀 봤더니 한것도 없는데 하루가 삭제됐네요....
내일부터 다시 2편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