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22화 (222/517)

00222  내 오른손의 봉인이 풀려나려 한다…!  =========================================================================

“이렇게나 짧고 강렬한 발족식은 처음입니다.”

“성공적인 발족식을 축하드립니다. 그랑블루 마스터.”

경매도 다 끝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상위급 위상석중에서도 최상급에 가까운 걸 가져와 막간의 즐거움을 주는 와중에 가끔 신문에서나 보던 수성 그룹의 회장과 부회장, NG 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이 내게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안 오실 거라 생각했는데 오셨네요. 별거 없는 짧은 발족식인데 구경은 잘하셨어요?”

직설적인 내 발언에도 두 할배는 노회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흠흠. 물론입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레이드 팀을 이끈다는 것은 정서하 마스터의 자질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주는 하나의 예일뿐이죠. 이번 발족식에서도 그 자질을 손수 증명하시는 모습에 역시 영웅은 타고 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 NG 그룹은 그랑 블루와 언제라도 협력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도 갖은 준비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그랑블루와 함께 대한민국의 재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희가 할 이야기를 NG 그룹에서 먼저 하는군요. 수성도 전 그룹 차원에서 그랑 블루의 지원에 아낌없이 두 손을 거들 생각입니다.”

언제는 나랑 그랑 블루를 짓밟을 생각이었으면서 지금 와서는 웃으면서 저런 말을 늘어놓다니, 진짜 속에 능구렁이 세 마리씩은 키우고 있는 거 같다.

우리 영은이는 9마리는 키우는 거 같지만.

그런데 회장 부회장들은 괜찮은데 뒤에 자제나 손자라는 것들이 내 뒤에 서 있는 프랑과 히아리드를 보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꼬라지가 내 불편한 심기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일단은 일본부터 박살 내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죠. 여러분들이 능력자 연합에 일본이 한 짓과 똑같은 행동을 한 걸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거기, 눈 돌려.”

내 얼굴에 금칠하는 이유를 누가 모를까 봐? 뒤에 자식이랑 손자들을 세워놓은 의도가 눈에 다 들어온다.

내 이야기에 회장 할배들과 뒤에 자식과 손자 손녀들의 안색에서 핏기가 싹 사라지고 덧붙인 말에 할배들은 뒤늦게 눈치채고 몸을 돌려 손자들을 노려본다.

내가 이런 인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와서 다들 안 도와주고 뭐하나 싶어서 살펴보니….

화연이와 박지웅 보스는 청궁과 에쉬반, 무화령의 보스들을 상대하고 있고 각국의 장관과 대사들은 영은이와 누나와 혜령이 이모가 상대하고 김표충 부장과 하유철 부장은 대연회장에 부족함이나 불편사항을 번개같이 체크하면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들을 공간지각으로 살펴봤다가 내가 왜 이런 늙다리들을 상대하고 있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수성 그룹 회장이랑 NG 그룹 회장 이름도 모르네. 그런데 멀리서 유채린이 날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공간 지각으로 느껴 졌다.

유채린은 근처의 의자에 앉아 아랍 에미리트 왕자가 건네주는 쿠키를 상자째로 뺏어 들어서 집어먹던 미호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을 건넸다.

그 와중에도 두 할배가 날 보고 정제소 어쩌고 연합 어쩌고 이야기를 하는데 귀에 모기가 앉은 거 같아서 짜증이 솔솔 나기 시작한다.

그때 녹색과 빨간색에 금색 수실이 놓인 깜찍한 계량 한복을 입은 미호가 품에 고급 쿠키 상자를 들고 바람을 이용해 날아오더니 내 목을 껴안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입을 연다.

- 주인님주인님. 통합관리본부 대응팀이라는 곳의 인간이 주인님보고 똥 마려운 표정 짓고 있어.

…예절 선생님 붙여줘야겠다.

“잠시만요.”

안타까운 표정의 두 늙은 능구렁이를 뒤로 한 채 등에 미호를 매달고 유채린과 아랍 에미리트 왕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이리저리 물러나며 길을 만들어준다. 곧이어 유채린은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야비 야스히코 일본 총리가 독살당했습니다. 지금 일본 중앙방송에서 긴급 속보로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데 정부관계자는 범인으로 마스터를 지목했습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황당한 표정으로 할 말은 다 했다는 무표정한 얼굴의 유채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미스터 그랑블루?”

“네?”

“이래 봬도 인맥이 좀 되는지라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제가 한 손 거들 수 있을 거 같군요. 저는 미스터 그랑블루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랍 에미리트 왕자, 제이크 빈 르시드 빈 술탄 아리안이라던가?

다른 왕정 국가의 왕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혜령이 이모가 거듭거듭 말하면서 무례하게 대하시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라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기억한 인물인데….

능력자도 아닌데 능력자 버금가게 잘생긴 제이크 왕자는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내가 아니라 내 목에 매달린 미호를 보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일본을 뭉개는 데는 저 혼자 할 생각이라서요. 호의는 감사합니다. 미호, 김표충 부장님한테 가서 TV 좀 켜보라고 해.”

“일본 2채널입니다.”

끼어들듯이 유채린이 하는 말을 듣고 미호에게 다시 전달해준다.

“일본 2채널이라고 하면 알 거야.”

- 김무당벌레 부장? 알았어!

하더니 여섯 꼬리를 살랑거리며 쏜살같이 단상으로 날아간다. 김무당벌레?

그나저나 제이크 왕자는 심장에 화살이 꽂힌 사람의 얼굴을 하면서 뿅 간다는 표정을 하고 미호의 뒷 모습을 쫓고 있었다.

“아아, 어찌 저리 귀엽고 예쁜 존재가 다 있는지…!”

“제이크 왕자님은 로리콘?”

내 직설적인 이야기에 제이크 왕자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고 유채린도 흠칫한다. 하지만 제이크 왕자는 내게 시선을 돌려서는 씨익 웃더니 다시 미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호 양은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후후후.”

“합법 로리라면 전 세계적으로 해당되는 능력자들이 있지 않나요? 제가 아는 사람만 두…명인데.”

한 명은 하늘나라로 가버렸지만….

“하하하.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호 양은 그런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매력이 제 뜨거운 사막의 심장을 사로잡는군요.”

나한테 이야기하지만, 눈은 계속 미호를 쫓는 모습에 왠지 신선함이 느껴진다. 내 연인들이랑 가족을 제외하곤 저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아랍의 왕자라서 패기가 넘쳐 그런가?

곧 거대한 패널 TV가 다시 켜지고 일본 2채널 방송에 맞춰지더니 화면에는 특보라는 마크가 찍히고 미야비 야스히코 일본 총리가 자택에서 독살당해 죽어있는 것을 이시카와 하루노부 2등 사무라이가 발견했다고 반복해서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시카와라면 그 깍두기 자식인데.

화면에 보이는 고급스런 실내 바닥에는 새하얀 선으로 사람의 모양을 띤 선을 그려놨는데 선의 머리 부분에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있는 모습이 TV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어진 발표에서 일본 정부 대변인이 지난 7월 31일, 미야비 일본 총리는 한국을 방문했으며 방문 직후 안색이 어두웠고 두통과 흉부 통증을 호소했으며, 8월 1일 오늘 오후 2시, 자택에서 숨져있는 것을 이시카와 하루노부 2등 사무라이가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저 아줌마가 죽어버리다니…. 돌아가서 이야기를 꺼냈지만 비난을 사다못해 숙청 당한 건가? 우국 신민회 인간들한테?

…자기들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거 같아서 총리까지 죽여버리는 종자들이라니, 더욱 용서가 안된다.

한번 본 사람이지만 정소희처럼 가슴이 멍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는 커녕 지나가는 모기가 밟혀 죽은 것만도 못한 감흥이 일어난다.

그걸 전부 옆에서 유채린이 통역을 해주고 있었는데 대변인은 곧이어 범인으로 날 지목하며 한국에서 독과 관련된 능력에 당했다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되어있었다.

“후후후. 농약 한 사발 처먹고 날뛰어도 저것보단 덜 발광하겠는데. 어떻게 저렇게 멍청할 수가 있냐.”

속에서 짜증이 벌컥벌컥 솟아나고 있지만, 아직 피로연 중이라 성질을 못 부리겠다. 하지만 내 심정이 기운으로 표출되는지 주변 사람들의 안색이 살짝 변하면서 내 주변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고 있으려니 영은이가 뒤에 미호와 히아리드를 달고 굳은 표정으로 나한테 다가온다.

“이를 어쩌니, 1할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네? ”

“무슨 생각으로 일본 국민이 뽑은 총리를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됐네요. 유채린 씨, 지금 기자들에게 말해서 방송 촬영 가능한가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자들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는 유채린의 정복 차림을 보다가 영은이를 무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여사님. 마침 관객들도 충분하고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도 많으니 지금 당장 발표할까 하는데 괜찮아요?”

“무슨 발표를 할 생각이니?”

“후후후. 대체 누구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저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해결을 보려한건지 모르겠지만, 따귀 맞고 싶다고 뺨 내미는데 때려줘야죠.”

내 얼굴에 그려지는 섬뜩한 미소를 본 그녀는 살짝 미간을 들어 올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가 생기면 그날 미야비와 대화를 영상도 공개하면 되겠구나. 하고 싶은 대로 해보렴. 그 뒤는 정부가 해결해볼 테니.”

“부탁드릴게요.”

되돌아서며 "아까운 아이가 죽어버렸네…." 하고 걸어가는 영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제이크 왕자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유채린을 보니 곧바로 본론을 꺼낸다.

“긴급 뉴스로 생방송 준비 중이랍니다.”

유채린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허공 답보를 펼쳐 내빈들의 머리 위를 걸어 단상으로 이동했다.

내빈들의 시선은 뒤를 따르는 프랑과 히아리드보다 내 발밑에 생겨나는 호박색 투명한 발판을 유심히 바라본다.

개중에는 히아리드의 드레스 자락 안쪽을 보려는 이들도 있었다. 프랑이야 바지를 입고 있고.

변태 신사의 마음가짐을 발휘하는 놈들을 째려봐주니 흠칫하면서 시선을 돌려버린다.

단상 위에 올라서 초대형 패널 TV에서 반복되는 일본 대변인의 발표를 뒤로하고 마이크를 들었더니 내빈들의 시선이 전부 날 향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의 발표를 TV를 통해서 본 다음이라 다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다.

“방금 TV에서 나온 뉴스를 보셨나요? 일본은 간단한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데다 쓸데없이 피해를 늘리는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저들은 제가 왜 참고 있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마나 비전이 켜져 있는 상태 그대로 내빈들을 돌아보며 흠칫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뉴스의 말대로에요. 31일에 미야비 일본 총리가 비공식으로 극비리에 한국 정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정부에서 제게 연락을 했고, 여사님과 저와 일본 총리 셋이서 담화를 나눴죠. 그 내용이야 뻔한 거 아니겠어요? 자기네들 머리 위에 터진 마포가 땅에 떨어질까 봐 제게 사과를 위해 찾아온 거였거든요.”

내빈들을 비롯해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들까지 전부 날 향하는 걸 확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요구했어요. 절 살해하려 한데 한 손이라도 거든 인물 전원의 신병 구속 및 압송 요청.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러자 맞다는듯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주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본의 현재 의원 전체의 70%가 넘는 인간들이 해당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들 전원의 신변을 넘기라고 하고 한국에서 재판을 치르겠다고 했는데 그중에는 테러인 줄도 모르고 손을 거든 인물들도 있다고, 그들 전부가 압송되면 일본 정부는 마비된다며 미야비 일본 총리의 간곡한 요청과 정부의 중재로 해당 사건의 주모자급 서른 일곱 명을 넘기고 테러에 휩쓸린 시민들과 저에게 배상을 하는 걸로 타협을 봤어요. 이것도 과한 요구였나요?”

그리고 바로 옆에 능력자 인증기를 켜서 홀로그램 창을 띄워 나와 영은이, 미야비 총리가 나눴던 대화를 띄운다.

그 모습에 많은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에는 속 풀릴 때까지 날뛰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사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시고 설득해주셔서 그 말에 따르려고, 주범만 넘기고 저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배상하는 걸로 만족 하려고 했어요. 그랬거든요? 근데….”

이빨을 으득하고 깨물고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일본에도 이야기가 나가겠죠? 그러니까 저한테 독살 혐의를 씌우려고 한 멍청한 당신한테 말하지. 그냥 알기 쉽고 죄를 덮어씌우기 좋게끔 화끈하게 한 방 날려줄 테니 내 이름 앞의 칭호는 독살범이 아니라 학살범으로 바꿔.”

굳어버린 내빈들과 기자들을 보며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사과 따위 다 필요 없어. 당신들 때문에 다친 사람들,”

숨을 들이쉬며 전신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왼손을 들어 손에 마포를 준비한다. 그리고 손 위에 돋아난 지름 7cm의 깊은 바닷속보다 어두운 TP와 위상력의 결정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날 지키려다 죽은 경호원 형 누나들한테 미안해서 못 참겠다. 정확히 48시간 뒤에 도쿄에다 지름 150km 크레이터 하나 새겨줄 테니까, 갈 때까지 가보자고.”

처음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지만, 마지막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전신에서 시퍼런 마나 시브의 기운을 흘리는 내 모습을, 기자들의 플래시가 퍼버벙하고 터지면서 카메라에 담았다.

“서하야. 정말 쏠 거야? 응? 진짜루?”

“마스터. 화가 나신 건 이해하지만, 도쿄에 마포를 터트리면 수천만 명이 죽게 될 거에요. 사람을 한 명 죽여도 죄책감을 벗기 힘든데 수천만 명은….”

“한 명을 죽이면 범죄자지만 수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내 집무실에서 날 설득하러 올라온 간부진들, 누나와 혜령이 이모는 간절한 표정으로 날 말리려 들었지만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발족식장에서 보여준 모습에 영은이는 대책을 마련한다고 얼른 청와대로 돌아가 버렸고 내빈들도 웅성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중에는 창백한 얼굴의 수성과 NG 그룹 회장 일가도 있었다.

청궁이랑 에쉬반, 무화령의 보스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영국 대사한테도 할 말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일본의 수작 거리 때문에 기분 팍 잡쳐버려서 이야기도 못 꺼냈네, 제길.

내 표정을 계속 살피던 혜령이 이모는 한숨을 푹 쉬더니 패드를 들어 이것저것 알아보며 입을 연다.

“…정부를 통해 도쿄에 있는 우리나라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작업을 해야겠네요.”

“일본 내 우리 자국민뿐만 아니라 이번 일을 널리 알려서 도쿄에 사는 시민들도 전부 대피를….”

“우리 정부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해요. 각종 매체를 통해서 그들을 최대한 피난 시키는 방향으로….”

“각하께 부탁드려서 미국에서도 시민 대피에 관해….”

“유튜브에 마스터의 선포를 올려 일본 국민이 볼 수 있게….

굳은 표정의 날 두고 간부들이 숙덕거리다가 펴지지 않는 내 인상에 힐끔거리며 자기들끼리 시선을 주고받더니 내게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빠져나갔다.

집무실에는 프랑과 화연이가 두 손을 마주 잡고 서 있거나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고 고급 쿠키 상자를 품에 꼭 안은 미호와 언제나처럼 커다란 화분 옆이 자기 자리인 양 마네킹처럼 서 있는 히아리드만 남았다.

팔짱을 끼고 말없이 서 있던 화연이 입을 연 건 간부들이 내려가고 5분이 지났을 때였다

“서하.”

“응.”

“어떻게 할 계획인지 물어봐도 될까.”

“역시 프랑이랑 화연이는 역시 눈치챌 거라고 생각했어.”

내 말에 프랑은 빙긋 웃으면서 내 뒤로 날아와 내 목을 끌어안고 내 뺨에 자기 뺨을 비빈다.

“그야 서하가 진짜 화냈을 때는 무표정이 되는걸요?”

“그…랬나? 아무튼 오늘 있었던 발족식이랑 경매는 모두 중계됐을 거 아냐? 내 능력이 어떤 것인지, 어떤 상황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정보가 일본에도 흘러나갔겠지?”

내 앞에 놓인 과자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대체 뭐 때문에 자기네 총리를 독살하면서까지 날 자극하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일본 대변인이 꺼내는 이야기에 무진장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며 막무가내로 가겠다는 선언을 했어. 그 흥분한 어린놈은 며칠 전에 도쿄 상공에 백수십킬로미터짜리 폭발을 일으키기까지 했지. 그럼 일본의 정치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랑 뺨을 붙인 프랑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며 내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커다란 가슴을 강조하는 화연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놈들은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며 사전에 무언가를 계획했겠지만, 너의 과격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아마도 독살의 혐의에 시민의 목숨을 방패 삼아 너와 협상을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할 테니 당사자들은 죽기 싫어 해외로 도피할 확률이 매우 높겠네요….”

“맞아. 48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누나를 비롯한 간부들은 도쿄 시민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겠지. 그 모습에 시민들은 "저것들의 우두머리가 진짜 마포를 쏠꺼야!" 라는 진정성을 느낄 거야. 거기서 해외로 도피하는 일본 정치가들의 모습을 찍고 확인해서 일본 대중에 흘리면 데모가 아니라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니까, 죄 없는 일반 시민들은 도쿄를 떠나 대피하는데 정작 화약고에 불씨를 집어 던진 범인들은 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피해 구경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모습을 파악하고 촬영해 일본 사회에 집어 던져 분란을 일으키겠다는 이야기인가요?”

“맞아.”

프랑은 나와 화연이의 대화에서 내용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고 나는 씨익 웃으면서 프랑의 허리를 잡아당겨 내 무릎 위에 앉게 했다.

“24시간 뒤에 한 번 더 마포를 날릴 생각이야. 그리고 도쿄에 있는 정치인들이 다른 곳에 숨어들면 거기에도 마포를 날려버리겠다고 경고할 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프랑과 화연이는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생각해낸 건가, 하고 놀란 표정이다.

“이것도 영은이랑 우리 그랑 블루의 간부들이 있으니까 시도한 거야. 만약 나 혼자였으면 머리 아프고 짜증 나고 귀찮아서 지금쯤 그냥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을걸.”

아무튼, 그 뒤로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미호를 엄마한테 보내서 엄마 곁에서 놀라며 내보내고 히아리드는 빌딩 밖에서 수상한 놈들이 오는지 망보라고 쫓아냈다.

일본 총리가 돌아간 뒤로 일본에서 허튼짓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이란게 있으니까 엄마랑 아빠 근처에 호위를 세워놔야지.

화연이도 내가 꾸민 일에 한 손 거들겠다며 자기 집무실로 내려가 버려서 사장 의자에 앉아 다리 사이에 프랑을 앉혀놓고 장난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켜놓은 TV에서는 그랑 블루 발족식에서 일본을 향해 경고하는 내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일본 뉴스 채널로 바꿔서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TV 화면에서 보이는 뉴스룸이 덜그럭거리면서 흔들거린다.

“…뭐야?”

“TV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촬영 중인 카메라가 흔들리네요?”

생방송 중이었는지 남자와 여자 아나운서도 당황했지만, 곧 당황을 지우고 평온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려 한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거 같다는 예감에 프랑의 허벅지 사이에서 놀던 손가락도 멈추고 TV를 뚫어지게 보고 있으려니 점점 흔들림이 심해진다.

드드드드드드

[꺄아악!] [助けて!] [地震だ!]

진동은 격해져서 뉴스룸의 물건들이 바닥에 넘어지고 뒤쪽 벽에 걸린 장식물들이 튀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벽에 금까지 가는 걸 보고 규모가 꽤 큰 지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나운서도 격하게 흔들리는 내부에서 서 있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남녀도 놀라서 뉴스 데스크 아래로 숨어 들어가고 그 순간 카메라도 바닥에 떨어지며 기울어진 뉴스룸의 모습을 내보내고 있었다.

곧이어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에서 불꽃이 튀더니 퍼석하고 형광등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뉴스룸이 칠흑에 물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까매진 화면으로 사람들의 비명과 무언가가 무너지고 떨어지는 소음이 아스라이 들려온다.

“지진이야?”

“지진이네요.”

프랑이 손을 뻗어 TV 리모컨을 잡더니 다른 뉴스 채널로 바꾸는데 화면에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메라는 하늘에서 도쿄를 찍고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고층 빌딩이 붕괴하고 단독 주택들이 폭삭 주저앉는 모습, 거기에 수십 층의 초고층 빌딩이 천천히 흔들리는 광경은 오싹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곧이어 도쿄의 여러 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고 도시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끊이지 않는 두두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 멀리 잡히는 도쿄 타워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저거, 지진 규모가 어느 정도지. 고층 빌딩이 붕괴하고 집이 무너질 정도라면 리히터 규모 7.0은 넘겠네.”

수분째 지속되는 도쿄가 반파되고 있는 모습을 TV로 구경하고 있는데 프랑이 화들짝 놀라면서 내 품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헝클어진 옷차림을 바로 한다. 그 직후 혜령이 이모가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마스터! 일본에 지진…. 아.”

내가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본 혜령이 이모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제가 나쁜 놈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 쌓인 감정을 생각하면 그리 느끼시는 게 당연한 거에요.”

도심 곳곳에 일어나는 화재에 넓은 공터로 피신해있는 일본인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내 경고에 때를 맞춰 일어난 지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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