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1 발족식...인데 이 새끼들이 정말?! =========================================================================
내 이야기를 들은 미야비 일본 총리는 어디까지가 진심인가 간파해보려는 모양새지만, 다 진심이거든요?
마침내 다른 수단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숙여지는 상체를 따라 귀 밑아래 짧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리고 희고 매끈해 보이는 피부가 굴욕감에 붉게 물들며 내장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듯이 끊어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그리…하겠다. 사과하지.”
“그럼, 우리 서하 군도 그동안 행동을 자제할 테니 돌아가는 즉시 협의한 대로 시행하도록 해.”
“…그러겠다.”
미야비 일본 총리의 항복 선언뒤에 영은이의 주도로 받아내야할 것들을 정리했는데, 뽕을 뽑을거라고 예상한것과는 다르게 영은이는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 지었다.
일본이 나에게 해줄 것은 미야비 일본 총리가 귀국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나에 대한 행위 일체를 시인한 뒤 허리 숙여 사과하고, 사건에 가담한 주동자와 주범과 실행범 서른 일곱 명을 압송하는것.
그리고 나에 대한 두 번의 테러에 휘말린 일반인들, 박물관 사태 때 소울리퍼의 정신지배에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27명에게 각각 100억 원씩, 두 번째 습격에 사망한 다섯 명의 경호원 형 누나들의 가족에게 1,000억 원씩의 배상금을 내고, 피해당사자인 나는 현시대 일왕의 보물이라는 천총운검을 받기로 했다.
물론 이 천총운검은 진짜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노무라쿠모노 츠루기라는 검이 아니고 위상 세계가 나오면서 우연히 발견된 진짜 유니크한 검이다(라고 화연이가 설명해줬다.).
효과가 소비 TP 20% 감소 옵션이 달린 검인데 무슨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 한 자루 뿐인 보검이다.
신체 강화에 마탄, 마포, 공간의 벽을 치고 회복까지 하면서 TP를 많이 쓰는 나에게 이런 20% 소비 TP 감소 옵션은 꿀이지, 꿀. 지금은 일왕이 폼으로 가지고 다닌다든가.
일본 총리와의 이야기가 끝난 후 배웅은 국무총리 아저씨한테 맡기고 영은이는 프랑과 화연이를 불러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저대로 곱게 사과하고 물러날 족속들이 절대 아니야.”
“여사님 말대로다. 아마 뒷수작을 벌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지.”
“그래서 적당히 물러난거야? 이대로 끝나지 않을거라고?”
“그래. 아무리 우리 서하 군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도, 머리 위에 대폭발이 일어났다고 해도 직접 공격하진 못할거라고 생각할걸.”
“…미호와 히아리드는 당분간 부모님 곁에 붙여놓고 보호하게 해야겠군.”
“좋은 생각이다. 나나 여사님은 스스로 몸을 지킬 힘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듣던 프랑은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영은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일본 고위 공직자들의 성질이 그렇다면, 이번 일을 구실삼아 전쟁을 벌일 확률 같은 건 없을까?”
“어머, 그럼 대환영이지? 우리가 일본 자위대를 막는 사이 서하가 일본으로 쳐들어가서 군사 요충지에 있는 기지를 전부 박살 내버리고 일왕궁이든 기간시설이든 쑥대밭으로 만들면 되니까.”
그러면서 "1910년에 우리 나라를 침략해왔던 빚을 갚아주면 돼."라며 웃는 영은이를 프랑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 외에도 준비 중인 게 있으니 날 믿어!”
“알았어. 뒤를 부탁해.”
“후후. 맡겨주렴.”
그 뒤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혜령이 이모와 미호를 데려온 우리는 접견실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혜령이 이모에게 들려줬다.
“일본 총리가 지금 나온 이야기를 전부 실행할까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걸 보면 이번 일도 변명과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룰 거 같습니다만.”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부분을 지적해오는 혜령이 이모도 유능한 사람이다.
“안 할 확률이 클 거야.”
“…….”
한숨을 쉬는 혜령이 이모를 돌아본 영은이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어주며 입을 열었다.
“미야비 일본 총리는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탄핵당하고 하야할 가능성이 9할 이상이야. 내 자리를 걸고 내기해도 좋아.”
우리는 영은이와 함께 다과실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물론 주변에는 사람들을 모두 물려서 영은이와 우리 뿐이다.
“그렇게 미야비 일본 총리가 하야하고 대대적인 물갈이 후에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가능성이 그 9할에서 90% 이상이구.”
다과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영은이는 생긋 웃으면서 잘 깎인 과일 하나를 포크에 찍어 내 입에 넣어준다.
“그렇게 되면 아까 이야기했던 강대국의 수장들은 일제히 일본을 향해 비난 성명을 낼 거야. 그렇게 세계 강대국들의 비난에 움츠러든 상황에 우리 서하 군은 사죄하길 거부한 일본에 더이상의 용서는 없다고 하면서 쳐들어가 마탄으로 지형 바꾸기 작업을 시작하면 돼.”
거기까지 들은 혜령이 이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린다.
“그러다 전쟁이 벌어지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네요. 저쪽 머리들이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은 이상 무력도발 따위는 우리 마스터가 있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테니까요.”
“그렇지?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니까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갈 거야.”
“아까 여사님이 말한 그 강대국들은 뭐 때문에 우리한테 손들어주는 거에요?”
“요거.”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 영은이는 실실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10개의 고위급 위상석 경매의 참가 자격이 그거야. 경매에 참여하는 대신 일본의 행위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거. 애초에 잘잘못이 명확한 상황이었지만 거기에 더해 고위급 위상석이라는 거대한 사탕이 있으니 그들도 확실히 우리를 지지해주기로 한 거야.”
영은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프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일본은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옆 나라의 능력자에게 해를 입히는 걸로 무슨 이득이 생긴다구….”
“일본뿐만이 아니야. 자국이 아닌 타국의 특이 능력자는 기회만 되면 쓱싹해버릴 곳이 얼마든지 있어. 강한 능력자는 곧 국가 성장의 발판이 되기 마련이니까.”
되돌아온 대답이 상상 이상이었는지 프랑은 안색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뱉는다.
“우리 서하쯤 되면 성장의 발판이 아니라 궤도 엘리베이터쯤 되잖니? 그러니 일본에서는 일단 손부터 뻗고 본 거야. 하지만 밟기 전엔 지렁이인 줄 알았는데 밟고 보니 독사였다는거지!”
영은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가 찬다. 어찌 보면 세계 최초의 S 클래스 능력자인 제랄 패커드도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더러운 싸움 때문에 몸을 숨기고 은거에 들어간 게 아닐까.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는지 영은이는 계속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밟고 보니 이거, 뭔가 이상하다? 하고 눈치를 보는 상황에 우리 서하가 쨘! 하고 B 클래스가 되어버린 거야. 거기다, 자기 나라를 손짓 몇 번에 지워버릴 치트 같은 능력까지 있네? 아마 한 번이라도 서하를 어떻게 해볼 생각을 했던 나라는 서하의 성장 속도에 가슴이 철렁한 기분일 거야.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손을 두 번이나 썼던 일본이 본보기로 걸린 거구.”
영빈관을 나오면서 우릴 배웅하러 나온 영은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서하 군은 일본의 반응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다가 일본이 하는 꼴을 보고 행동에 나서면 돼. OK?”
“OK.”
손가락으로 o 모양을 만들면서 하는 대답에 까르르하고 웃는 영은이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고 일행들과 함께 그랑 블루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행동의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8월 1일. 그랑 블루의 발족식과 함께 고위급 위상석의 경매일에 사건이 터졌다.
아, 우리 발족식에 사건이 터진 게 아니라 옆 나라에서 터졌단 말이다. 지금 빌딩에 B 클래스 능력자만 6명에 그중 한 명은 A 클래스를 넘어서는 능력자다. 거기에 고위 이형종 한 마리에 상위 아종 한 마리까지 있다고.
테러하러 온 놈도 날 보고 "저 그냥 나갈게요." 하고 도망갈 판인데 누가 시비걸겠어.
아무튼 발족식과 경매가 성공적으로 끝나갈 무렵에 우리나라를 비공식 방문했던 미야비 일본 총리가 자기 집에서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발족식은 사업 지원2동의 대연회실을 대대적으로 개조해서 국내 유명 관계자들, 청궁과 에쉬반, 무화령의 보스가 참석했으며 국내 재계 1위와 2위의 회장과 부회장들 또한 참석한 상태로 이루어졌다.
난 강현우 지부장도 참석할 줄 알았는데 지부장은 사정상 참여할 수 없다며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었다.
IWO와 능력자 연합 본부가 일체 반응을 안 보내는걸 보면 지부장의 사정이라는 게 편파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그 부분의 사정이라 짐작했다.
위상석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온 각국 대사 겸 책임자들도 겸사겸사 발족식에도 참석하며 그랑 블루의 출발을 모두가 축하해주었었다.
발족식 시작 30분 전부터 모여있던 각국 대사와 장관 및 책임자들은 날 보더니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다가와서 나랑 안면을 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내가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알 수 있게 된 대목이었지.
오후 2시에 시작된 발족식은 대연회장을 가득 메운 평범하지 않은 초대 객들과 한쪽 벽에 줄을 지어 선 내외신 기자들이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가운데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통합관리부장인 누나의 발족식 선언과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이어서 그랑 블루의 PR 영상을 거대 패널 TV를 통해 내보내 주었다.
그랑블루 PR 영상은 두 명의 보스인 화연이와 박지웅 보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전투 영상이었는데 박지웅 보스와 화연이가 번갈아 나오며 중상위 이형종, 이족 보행류들을 진형을 갖춰 군대식으로 몰이 사냥을 하는 PR 영상은 마치 한편의 짧은 전쟁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이어진 나에 대한 무삭제 PR 영상. 영은이가 은근슬쩍 몰래 흘린 표본 영상이 아니라 무삭제 원본 PR 영상이 거대 패널 TV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에는 모두가 하던 대화, 행동을 그만두고 TV에 집중했다.
내 PR 영상은 3회차부터 코끼리우로스 산맥에서부터 검증단을 거쳐 누나와 함께한 하늘 섬의 내용을 그야말로 판타지 영화처럼 환상적인 편집으로 한 편의 영화같이 만들어놨었다.
내빈들은 조용히 화면만 응시하다가 플라비우스 종족과의 전투 장면 사이사이에 용유도에서 촬영한 내 능력이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멋들어진 모습으로 재생됐는데, 특히 마포가 무시무시한 위용을 드러낸 그 순간에는 대연회장에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늘 섬 상공을 허공 답보로 달려가며 찍은 하늘 섬의 전경에는 입을 쩍 벌렸다가 알붐 케투스와 푸루스 발라이나, 두 마리의 최고위 이형종으로 의심 가는 고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는 경악성을 터트렸다.
20분간 이어진 그랑블루와 나의 PR 영상이 끝나자 참석자 전원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영화도 아닌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뭔가 싶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 넘어가자.
그 뒤에 누나가 준비해준 낭독문을 들고 프랑과 미호를 옆에 세우고 낭독하러 단상에 올라가려는데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아 조금 당황해버렸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 사이로 그랑 블루가 발족할 수 있었던 배경과 도움을 준 이들, 이 자리에 참여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가 적힌 2분짜리 낭독문을 읽고 났더니 가장 앞줄에 각국 장관과 대사들과 함께 앉아있던 영은이가 일어서서 단상 위에 올라오더니 날 살짝 포옹해주었다.
교대하듯 나는 내려오고 영은이가 단상 앞에 서더니 5분간 나에 대한 자랑과 훌륭함에 대해 어필하며 그랑 블루의 앞날에 축복과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 후 내가 누나와 혜령이 이모와 함께 단상에 다시 올라 마지막으로 10분간 질의 응답을 하는 것으로 1시간에 걸친 발족식을 마치려 했는데,
“이후에 있을 경매 준비에 앞서 그랑 블루에 관한 질의 응답을 10분간 가지겠….”
말도 끝나기 전에 멋들어진 카이저수염을 한 40대 중년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니, 이런 장소에서 그렇게 자기 어필을 하는건 예법에 어긋나는 거라고 하던데….
암만 봐도 미국이나 영국인이 아닌 카이젤 남자는 유창한 영어로 입을 연다.
“전 세계를 통틀어 고위급 이형종을 길들인 것은 정서하 마스터 뿐인 걸로 알고 있소. 대체 어떤 방식으로 고위 이형종을 테이밍하셨는지?”
음. 이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나 말고 혜령이 이모가.
“이 녀석들을 길들일 수 있었던 건 제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어떤 능력인지는 노코멘트입니다.”
미호는 연두색 저고리와 피처럼 붉은색의 치마와 금색 수실이 놓인 깜찍한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새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주니 미호는 여우웃음을 지으며 여우 귀를 연신 까닥인다. 그리고 바람을 이용해 몸을 띄우더니 내 목을 껴안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입을 연다.
- 주인님 좋아! 주인님 강해! 주인님이 최고야!
“…라네요.”
“훌…륭합니다. 그토록 정서하 마스터를 잘 따르는 고위 이형종이라니, 그랑 블루의 미래는 창창대로군요.”
미호는 고위 이형종이 아닌데.
카이저수염의 남자가 자리에 앉더니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갈색 피부에 혼혈 느낌이 가득 나는 미남자, 아랍 에미리트의 2 왕자랬나. 왕자가 눈을 번쩍이며 어멋, 이건 꼭 사야 해! 하는 표정을 하더니 영어로 외친다.
“고위 이형종인 미호 양을 양도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양도만 해주신다면 제가 가진 재산 전부를 털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미호는 존재에 대해 숨길까 했는데 딱히 숨길 이유도 못 느껴서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미호는 고위 이형종이 아닙니다. 상위 아종이죠. 이미 가족 같은 녀석이라 양도 같은 일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호가 제가 아닌 다른 이의 말을 들을지도 의문이고요. 미호 너 저 사람 따라갈래?”
- 싫어! 냄새나!
진짜 싫다는 듯이 조막만 한 얼굴을 팍 찡그리더니 내 뒤로 숨어버린다.
아랍의 왕자는 나름 폭언을 들었지만, 심장에 사랑의 화살이 꿰뚫렸다는 표정을 짓더니 흐물거리면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로리 속성의 왕자라니, 위험한 사람일세.
그 뒤를 이어서 그야말로 훈남 속성의 금발 벽안의 미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영국 본토 발음으로 내게 질문했다.
“영국의 오를레앙 나이트퀼입니다. 미호라는 육미호 외에도 플라비우스라는 종족의 고위 이형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천사 같은 모습이라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대연회장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 녀석은 곧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미국의 저스틴 팀버 재무차관입니다. 그랑 블루 마스터의 PR 영상에서 이형종으로 판단되는 거대한 고래와 대화를 나누신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50대 후반의 백발 중년남성의 말에 주변이 발족식장이 조용해진다.
“자기 마누라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달해달라고 한 거였어요. 그리고….”
“꿀꺽, 그리고?”
“제가 부르면 한번은 와서 도와준다던데요? 그는 제 예상이긴 하지만 최소 최고위 이형종일 거에요. 어쩌면 위상급일지도….”
다시 한 번 내려앉은 침묵과 안색이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아진 저스틴 팀버 재무차관을 보다가 슬쩍 웃었다.
“더이상 질문은 없는 거 같네요. 여기까지 할게요.”
조금은 경망스러운 말투로 질의 응답시간을 끝냈더니 그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워하지만, 10분 다 지났는걸?
보통 레이드팀 발족식은 반나절은 지속한다고 하던데 어차피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할 이 바닥, 결과물로 보여주면 그만인데 발족식을 4시간씩 할 이유가 있냐는 내 의견에 1/4로 대폭 축소해버리고 대신 고위급 위상석 경매로 남은 3시간 중 2시간을 채워버렸다.
그러니까 이제 본 게임에 들어가는 거지.
난 단상에서 내려와 영은이 옆으로 가서 앉으니 때를 맞춰 김표충 부장이 후줄근한 양복이 아니라 콜린 퍼스 마냥 핏을 맞춘 최고급 양복을 입고 단상 앞에 서며 약간의 위트를 곁들인 이야기를 꺼내며 경매를 시작한다고 하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거대한 유백색 커튼이 걷히며 그곳에 나타난 히아리드의 모습에 박수 소리가 빠르게 멎어간다.
일부러 천사 컨셉으로 꾸며놨는데 겉모습이 상상 이상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특수 투명 케이스에 든 10개의 고위급 위상석을 가지고 눈처럼 새하얀 흰 드레스를 입고 네 장의 순백의 날개를 하늘거리며 등장한 히아리드의 모습을 본 내빈들은 헉 소리도 못하고 멍하니 히아리드를 바라보다가 곧 휴대폰이나 인증기를 켜서 히아리드의 모습을 정신없이 찍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냥 보면 천사같이 생겼으니까 실제로 처음 본 사람들이 감탄할 만도 하지.
히아리드의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에 발족식장은 침묵에 빠져들었지만 점점 고조 되는 분위기는 나도 느낄 정도였다.
경매 진행은 예상외로 혜령이 이모가 아닌 고급 제비같이 생긴 우리 김표충 부장님이 이끌었다. 김표충 부장의 허술한 모습만 기억하는 나로서는 잘하려나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진행을 아주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모습에 살짝 놀랬다.
발족식에 참여한 각 국가의 장관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수성과 NG 그룹과 정부에서도 참여한 이번 경매에서는, 미국의 재무 차관과 아랍 에미리트의 왕자가 3개씩 쓸어가 버리고 그나마 남은 4개 중 2개는 중국이 낙찰받아버렸다.
남은 2개는 러시아와 영국이 1개씩 낙찰받는 걸로 2시간의 치열한 경매를 마쳤는데 하나도 챙기지 못한 호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의 대사와 장관들은 깊은 한숨을 쉬는 걸로 자신들의 기분을 표현했다.
고위급 위상석 하나가 수십조 단위로 널뛰자 우리 정부와 수성, NG 그룹은 헛물만 켜게 됐는데 수성과 NG가 헛물 켠 모습을 보니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와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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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