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0 이 자식들이 진짜?! =========================================================================
집에 도착해서 사무동 헬기 포트에 내려서니 9시가 넘어간다.
프랑이 손수건을 꺼내 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는 사이 다들 뭐하나 싶어서 살펴보니 화연이와 혜령이 이모, 누나는 화연이 집무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김표충 부장과 하유철 부장은 자기 집무실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하유철 부장은 그 뒤로 어떻게 됐지? 하철수 그 독사 새끼가 정말 하유철 부장의 아들 맞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39층 화연이 집무실에 들어서니 세 여인이 날 반긴다. 그 뒤편 TV에서는 아까 일본 도쿄 상공에 터트린 내 마나 포에 대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의 표정이 굳어있는 걸 보니 단순한 항의 시위로는 여겨지지 않은 거 같다. 헛수고 안 해서 다행이구만.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데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어떻겠어.
“반응이 어때?”
내 말에 누나는 TV 리모컨을 들어 일본 채널로 돌리는데 돌리자마자 1시간 전에 마포가 터지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며 애써 침착함을 보이는 아나운서가 쏼라쏼라거리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한국의 흉악한 능력자가 도쿄에서 300km가량 떨어진 상공에 능력을 써서 폭발을 일으켰다. 정확한 피해를 파악 중이며,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킨 일본 현 내각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어젯밤 생중계된 한국 능력자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랬나.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놔뒀는지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대충 이런 이야기야.”
걱정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통역해주는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진짜 흉악이 뭔지 아직 맛을 못봤구만.”
내 덤덤한 모습에 혜령이 이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연다.
“이번 일을 가지고 세계 여론은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는 않고 있어요. 다만 여러 국가의 수뇌부들은 조심스럽게 우리 한국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대통령님의 연락이 있었어요.”
“IWO와 능력자 연합은 뭐래요?”
“그쪽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어요.”
“내 쪽이 됐든 한국이 됐든 일본이 됐든 한 곳을 성토할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보네요.”
“여론은 관망하겠다는 자세가 크겠죠. 섣불리 한쪽을 편들다가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테고요. 하지만 우리 쪽에 손을 들어 주는 국가 우두머리들 쪽은 마스터의 능력과 샛별처럼 떠오르는 안정적인 고위급 위상석 획득 팀으로 여기고 있을테구요.”
“생각보다 고위급 위상석의 가치가 더 큰가 보네요.”
알아듣지 못할 일본 여자 아나운서의 소리는 귓가로 흘리면서 티비를 보고 있으니 내 마포의 폭발 충격파에 도쿄의 여기저기 건물에 금이 간 모습이나 빌딩의 깨어진 유리창이 담긴 화면이 나온다. 도시의 6차선 도로로 보이는데 길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자동차들도 죄다 멈춰서 있었다.
그러다 기자로 보이는 일본 남자가 머리에 안전모를 쓰고 심각한 표정으로 쏼라쏼라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런 것도 있지만, 마스터의 능력이 답 없어서 그런 거겠죠. 거기에 정시하 통합관리부장의 존재도 있고 고위 이형종인 히아리드와 귀염둥이 미호도 있잖아요. 국내 위상 관련 연구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마스터 남매와 프랑씨, 히아리드, 미호만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능력자 전원을 합친 것보다 강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걸 다른 국가들도 인식했겠지요.”
“PR 영상에 포함된 고위 이형종과의 전투 영상이 흘러나간 게 주요했다. 아침부터 우리 그랑 블루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능력자들의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그랑 블루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관련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어.”
“응. 그쪽은 화연이랑 누나랑 이모한테 맡길게. 정부가 연락해오면 이야기 잘 해봐.”
그러면서 누나랑 혜령이 이모한테 영은이와 맺은 작당에 관해 설명해줬다. 내가 앞에 나서서 날뛰는 척하면 뒤에서 정부가 날 다독이면서 이득을 챙긴다는 이야기.
물론 날뛰는 척이 안 먹히면 진짜 날뛴다.
“…세상에!”
“그럼 일본을 직접 공격은 안 할거란 거지?”
놀랐다는 표정의 혜령이 이모를 뒤로하고 누나는 내가 대량학살을 벌일까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나도 수십 수백만 명을 죽인 희대의 학살자로 이름을 올릴 생각은 없지만…. 해야 한다면 할 거다.
“일본이 하는 거 보고. 관련자 전부 우리나라로 압송 조치하고 배상하면 그냥 넘어갈 거야.”
“…일본이 그럴 리가 없잖아. 일본 내각의 우국 신민회는 일본 정치집단에서 가장 큰 힘에 많은 국회의원을 보유한 조직이란말야. 그들이 전쟁이라도 일으키려 하면….”
“그럼 대응은 여사님에게 맡기고 난 하늘에서 일본 전역에 마포를 떨어트리는 거지.”
“서하야!!”
동생인 내 손에 학살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누나는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내 손을 꼭 잡는다.
“시하 양? 진정하세요. 마스터는 어디까지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러실 생각이신 거에요. 그러니 저희에게 대응을 맡긴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에요. 그렇죠?”
역시 혜령이 이모.
누난 내 일에는 어쩐지 냉정함을 못 찾는 거 같단말야. 내가 마스터로 있는 이상 통합 관리직에 누날 앉혀놓기보단 서브 마스터 같은 위치를 만들고 거기에 누날 올리는 게 나을지도.
아 그러고 보니….
“이모 말이 맞아요. 그리고 유채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세요?”
“유채린, 정부에서 얼마 전 알선해준 회복 능력자 말씀이시군요. 유영은 대통령님이 그녀를 직접 추천해주셔서 일반 팀에 배치했는데 문제라도 있나요?”
“어, 여사님이 교육시켜서 보내준다고 하더니 벌써 보냈나 보네요. 예전에 흘리듯이 말을 꺼낸 이야기로는 그녀의 업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하던데 통합관리직에 보내서 누날 보좌하는 쪽으로 한번 알아봐 주실래요?”
정부에서 보낸 여성이 그런 사람이었나 하는 표정이 된 혜령이 이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사님이 인정하실 정도였다면…. D 클래스 중급의 회복 능력자이지만 뛰어난 업무 능력이 있다면 전투에 돌리는 것보단 낫겠네요.”
“난 보좌 필요 없는데?”
“필요해. 누난 내 일이라면 정신 놓고 멍청한 일을 벌일 거 같으니까 그걸 막아줄 사람이 필요해.”
“윽. 너무해….”
하지만 프랑을 비롯한 화연이와 혜령이 이모도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걸 본 누나는 더 충격받고 소파에 모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잠시 연인들 앞에서 이야기해도 될까 싶지만 어디 가서 소문 흘리고 다닐 여자들이 아니니 그냥 물었다.
“하철수는 하유철 부장님의 친자가 맞나요 아닌가요?”
“아, 그건 마스터의 예상대로였어요. 하유철 부장님의 부인은 외도를 통해 아이를 가졌다고 해요. 거기다 하철수를 낳은 뒤에 하유철 부장님에게 비밀로 한 채 난관 수술을 받고 난잡한 생활을 즐겼더군요.”
…인상이 절로 써진다. 프랑과 화연이와 누나는 이게 무슨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나와 혜령이 이모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미호를 잡아 다리 사이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미호는 에헤헤 거리면서 두 다리를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하철수의 범죄 행각을 밝히던 도중 알아낸 사실이라고 하면서 하유철 부장님께 모두 알려드렸죠. 지금은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으시대요.”
“그걸로 끝?”
“그걸로 끝이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상대남들의 자료를 모두 모아 불륜 상대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걸으셨고 우리 법률자문단의 권유에 따라 부인에게도 사기죄로 고소하고 이혼 위자료 청구 소송까지 걸으셨대요.”
“좋네요.”
어떤 부분이 사기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자식을 우리 자식인 양 속인 년이니까 사기죄도 몇 개 걸렸겠지.
“후후. 더 좋은 건 하유철 부장님의 부인되던 여자는 알거지가 돼서 길바닥에 나앉게 됐고 그녀의 외도 결과물은 흉악 범죄자가 된 데다 불륜을 저지른 상대남들도 홀랑 벗겨 먹을 수 있게 됐죠. 하유철 부장님은 이제 온건히 그랑 블루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이 기회에 자신의 인생을 그랑 블루에 묻으시겠다고 하세요.”
“…홀로 사시는 데 불편한 점이 없게 잘 챙겨드리세요.”
“네!”
이야기가 끝난 혜령이 이모는 나한테 허리를 숙이고 인사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데 그 뒤에 세 여자가 나한테 다가오며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하유철 부장님의 사생활이니까 다른 데서 이야기 안 할 거지?”
“당연한 거 아냐? 그자가 하유철 부장님의 친자가 아니었대?”
누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나한테 얼굴을 들이밀며 큰 눈을 깜빡거린다.
“응. 나도 영은이가 살짝 귀띔해줘서 알게 된 거야.”
“가정에 충실한 남자였는데 그런 망종 같은 자식이 나온 게 이해가 안 갔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
“정의구현이 됐네요. 30년이 다 돼가도록 밖으로 돌아다니며 외도를 벌인 여자는 한 푼의 재산분할도 없이 쫓겨나고, 배 아파 낳은 자식은 IWO와 능력자 협회에서 추살 명령이 떨어지고. 아주 쌤통이에요.”
프랑은 상당히 과격한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데, 그러고 보니 프랑은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려 드는 사람을 무척이나 싫어했지?
“그런가~ 직원 중에서 하유철 부장님을 남몰래 연모하는 여직원들이 많던데 어떻게 되려나?”
…그게 무슨 소리야.
“하유철 부장님 지금 60살이 다 돼가지 않아? 근데 인기가 많다고?”
“응. 특히 사업지원 2동의 젊은 여직원들 사이에 로맨스 그레이로 인기가 굉장해. 이번 일도 은근히 알게 모르게 사내에 퍼졌는데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인걸?”
로맨스 그레이가 그런 건가…. 하유철 부장은 나이에 비해 몸 관리를 잘해서 40대 중반 정도로 밖에 안 보이긴 하는데…. 뭐 여자가 능력 있는 남자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뭐라 할 일은 아니지.
“아무튼, 우리도 내려가 볼게. 네가 벌인 일 때문에 며칠 바쁘겠다.”
“어. 뒷일 잘 부탁해.”
“응.”
화연이와 누나도 자기 집무실로 내려가는 걸 보다가 인증기로 세계 지도를 펼쳐 일본만 보이게 확대했다. 그리고 프랑과 함께 어디에 떨어트려야 인명 피해 안 날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밤이 될 때까지 내일은 일본의 어디에 마포를 떨어트릴까, 후지 산을 날려버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아빠랑 엄마가 날 부른다는 누나의 이야기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아빠랑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침에 내가 일본에 위협한 사건 때문이겠지. 그 일은 15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식지 않고 TV와 인터넷을 온통 달구고 있었다.
할 말이 없어서 엄마랑 아빠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더니 부모님은 걱정이 한가득 담긴 눈길을 보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러다 할 말 없으면 올라가 보겠다고 하니 아빠는 내가 무슨 일을 벌여도 가족들은 내 편이라는 이야기만 해줘서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집무실로 나와서 여름방학 과제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혜령이 이모가 내 집무실로 찾아오더니 도쿄에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고 말해줬다.
거기다 우국 신민회에 소속되지 않은 일본 정치가들이 일본의 공중파를 통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TV를 켜보니 원숭이 새끼처럼 생긴 중년 남자가 나와 얼굴을 붉히며 쏼라쏼라거리는데 계속 화면이 전환되며 도쿄 시내 곳곳에서 정치인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 화염병을 던지고 나라 망하게 할 거냐며 자수하라는 피켓을 펼치는 대규모 데모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모의 통역을 듣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펜을 내려놓고 이모를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을 우리나라가 아니고 국제 사법 재판소에 넘겨서 날 공격한 자들을 재판하라 이거네요? 우리나라에 보내지 말고?”
“그렇습니다.”
“이 새끼들이….”
죽을뻔한 건 난데 왜 그쪽으로 보내서 재판받게 해라 마라는 거야? 내 중얼거림에 혜령이 이모가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국제 사법 재판소도 난색을 보인다고 해요. 그곳은 보통 국가와 국가 간의 분쟁 조율이 목적인 곳인데 이번 사건은 국가와 국가 간이 아닌 개인과 국가 간의 분쟁이니까요. 이건 틀림없이….”
“우국 꼴통 회에서 선동한 거겠죠.”
“푸흡. 네, 네. 맞큽흑. 맞아요.”
혜령이 이모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들어간 건데, 갑자기 푸큭큭거리면서 터진 웃음보를 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음기가 진정될 즈음에 다시 물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어떻게 대응 중이에요?”
“대통령님께서는 고위 능력자가 의문의 테러를 당한 나라를 집중적으로 접촉하며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그리고 그 나라들을 포섭해서 일본을 향해 비난….”
혜령이 이모가 설명하는 도중 인증기에 전화가 왔다. 영은이였다.
“잠시만요, 여사님한테 전화가 왔네요. 네, 여사님.”
[안녕~ 서하 군? 혹시 지금 전화 가능하려나?]
“네. 바쁘실 텐데 무슨 일이세요?”
[으응. 별건 아니구 일본 총리가 극비리에 소수의 인원을 대동하고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 인천 국제공항에서 내려 청와대로 이동 중이라는데, 서하는 어떻게 생각하니?]
“총리가 극비리에 왔다고요?”
[응. 어제 경고 삼아 터트린 거 때문에 찾아오는 게 확실할 거야. 비공식적으로 우리 서하 군에게 사과하고 끝낼 생각인가 봐?]
비공식에, 총리 혼자라고?
“하하. 사과받고 돌아서서 무슨 개소리를…. 아, 죄송해요. 무슨 헛소리를 할 줄 알고요.”
[응응. 확실히 걔네들은 그런 경향이 있어. 자존심인지 뭔지 배상을 해야 하는걸 보상이라는 단어를 쓰고 사죄문을 발표해야 할 부분에서 성명문을 발표한다거나. 이번에도 만약 비공식으로 우리 서하 군한테 사과한다면 뒤에 돌아가서는 어떤 식으로 조작 발표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걸?]
“…일본 총리가 청와대로 이동 중이랬죠? 저도 가봐도 될까요?”
[물론이야. 오히려 꼭 와주길 바랬단다.]
“네, 바로 출발할게요.”
몰래 찾아왔다는 일본 총리가 과연 어떤 소릴 할지 궁금해졌다.
혜령이 이모는 내가 통화를 종료하는 걸 보더니 아까 하다가 중단된 이야기를 이어서 이야기해준다.
“대통령님께서는 자국 내에서 능력자를 향한 테러가 일어난 나라를 중심으로 조사하시고 물밑 작업을 벌이고 계신대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고위급 위상석 경매의 참가권을 두고 다른 나라를 회유해서 일본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 중이세요. 일본 총리가 직접 비공식적으로 찾아온 걸 보면 그 효과가 벌써 드러났나 보네요.”
“그렇군요. 아무튼, 이모도 같이 가죠. 화연이도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화연이와 혜령이 이모를 대동하고 프랑과 미호와 함께 청와대에 도착했더니 이미 입구에 경비가 삼엄했다.
비공식 방문이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 국가수반이 방문했으니 평범하게 경비를 설 수는 없는 거겠지.
안내를 받으며 한옥집의 내부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의 넓은 접견실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영은이와 TV에서 가끔 보던 일본의 총리가 서 있었다.
현 내각 총리는 65살의 날카로운 외모의 여자였는데 얼마나 돈을 처발라 가꿨는지 능력자도 아닌 주제에 30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인다.
짧게 친 단발머리에 순백의 정장을 입은 총리는 날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길래 나도 마나 비전을 키며 일본 총리를 노려봤다.
내 눈에 시퍼런 빛이 흐르기 시작하니 순간 흠칫하긴 했지만, 여전히 날 노려보는 모습에서 상당히 적의가 쌓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되는 당사자분들만 남으시겠습니다. 이외의 분들은 모두 나와주시길.”
“何の話だ!あいつが何をするか分からないのに、どうして!”
뭐래. 우리 총리 아저씨의 말에 저 일본 총리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깍두기 머리 남자가 격하게 외치며 날 손가락질하는 꼴이 좋은 말은 아닌 거 같다.
“네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가냐는 말이다.”
화연이가 저 깍두기 대가리가 하는 말을 번역해줬는데, 속에서 울화기 치밀어오른다.
아 진짜…. 나도 지금 기분 안 좋단 말야. 이 깍두기 놈아.
“B 클래스 신체 강화, 위상력은 딱 350만인 걸 보니 일본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능력자인가 보네요. 저 인간부터 일단 죽여놓고 시작할까요?”
심보가 뒤틀리는 기분에 썩소를 날리며 온몸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손바닥을 위로 펼쳐 공간의 벽을 생성해냈더니 깍두기 머리 놈과 일본 총리의 뒤에 서 있던 수행원, C 클래스 속성, 회복, 감지 능력자들이 깜짝 놀라며 일제히 공격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눈이 거침없이 흔들리는 꼬라지를 보니 겁을 잔뜩 먹은 원숭이 같다. 좋구나, 뭘 자세만 잡고 있냐. 얼른 공격해. 그래야 앗! 실수! 하면서 팔다리 좀 분질러주던가 잘라주지.
나와 일본 수행원들 사이에 대결구도가 잡히니 영은이는 활짝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분위기가 마음에 무척 드는군요. 청와대에 비공식으로 찾아오셨으면서 그런 비난 받을 행위를 하시고. 공격 자세만 잡지 말고 직접 공격해보시는 게 어때요?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상황과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지든 저희 정부에서도 일절 간섭하지 않고 책임도 외면하겠어요.”
내 심정을 눈치채고 저러는 거겠지. 생긋 웃으면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서는 영은이의 모습에 우리 정부 측 인원들도 사색이 돼서 우르르 물러선다.
화연이는 혜령이 이모를 가리고 서고 프랑은 내 오른쪽에 서서 일본 수행원들을 노려보는데 미호는 화연이 옆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 지금 싸우는 거야? 저 사람들 혼내줘도 돼? 하고 묻는다.
“예의는 국에 밥 말아, 아니 일본은 차에 밥 말아 먹던가? 차에 밥 말아 쳐드셨어요? 다짜고짜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안좋겠어요? 지금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서 도쿄에 마포 한발 떨어트려 드려요? 네?”
“…이시카와. やめなさい。”
이시카와는 이름이고, 야메…. 저거는 그만하라는 거지? 일본 총리는 다른 소란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날카로운 눈으로 날 보며 살짝 입을 열었는데 이시카와라고 불린 깍두기 대가리 새끼는 하! 하면서 일본 총리의 뒤로 가서 선다.
“아니, 나가라고. 총리 아저씨가 나가랬잖아.”
내 말을 들은 우리 국무총리 아저씨가 헛기침을 한다. 그러자 일본 측 구석에 서 있던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사색이 되더니 나와 이시카와라는 깍두기 머리를 번갈아 보는데 저 아저씨가 통역사인가보다.
통역사가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거리니 일본 총리 아줌마는 눈은 여전히 날 향한 채 살짝 고개만 돌려 뭐라 뭐라 말하니 깍두기 대가리가 또 핫! 하면서 상체를 숙이고 수행원들을 이끌고 죄다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한국어 할 줄 아는 거야?
“화연이랑 미호도 나가서 저 깍두기들이 무슨 짓 벌이려고 하면 죄다 밟아버려. 미호는 실수인 척 죽여도 돼. 방금 나간 일곱 놈 얼굴 다 기억했지?”
- 응! 기억했어! 까불면 죽인다! 맞아?
“그래그래. 잘하면 주인님이 맛난 거 줄게.”
- 와아~!
나랑 미호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일본 총리 아줌마가 다시 미호를 보더니 흠칫해버린다.
미호는 신난다는 듯이 도도도 문밖으로 달려나가고 화연이와 혜령이 이모는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날 한번 보고 돌아나갔다.
그 뒤를 이어 정부 쪽 사람들. 총리 아저씨랑 다른 보좌관인지 사람들도 우르르 나가서 넓은 접견실에는 나와 영은이와 일본 총리 아줌마 셋만 남았다.
“…소문이라는 것은 믿을게 못 된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이번처럼 잘못된 소문은 처음이다. 예고도 없이 우리 수도 상공에 스킬을 사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 총리 아줌마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그마한 흑단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널찍하게 둘러싼 의자 중 한 곳에 앉았다.
“놀고 있으시네요. 그저께 발표한 건 어느 구멍으로 들으셨길래 예고도 없대요? 얼마 안 남은 자비심을 베풀어서 경고 삼아 도쿄 상공에 터트려드렸는데 아직 오늘치 남아있거든요? 그거 생각하시고 입 놀리시죠?”
역시 한국어 할 줄 알았구나. 아니 그보다 내가 한 무력시위가 어느 정도 통했나 보다. 일본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비공식으로 극비리에 후다닥 날아올 정도니까.
상대방 지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노려보며 날선 어투로 입을 여니 일본 총리는 인상을 찌푸릴 뿐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뒤에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영은이도 자기 전용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
“사설은 됐고, 어쩔꺼야. 우리 서하 군은 겉만 보고 판단했다간 큰코 다쳐.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전부 사실인 데다 도쿄에 마포를 쏘려는 걸 말리느라 나도 고생했다구?”
그러면서 인증기를 켜서 내가 마포를 날린 직후 한국과 일본의 땅덩어리를 배경으로 공중에 떠 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눈썹 끝을 파르르 떤 일본 총리 아줌마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과하러 왔다.”
“그게 지금 사과하러 온 인간의 태도니?”
“사과라는 것은 상호 이해만 일치하면 태도야 어떻든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파하하하하하!! 푸훗. 푸흐흐흐. 하아하하. 그래서 물질적인 배상을 하겠다고 그렇게 떠밀리듯이 우릴 찾아온 거니? 서하 군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렴.”
…영은이와 일본 총리 아줌마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서서 듣다가 시키는 대로 영은이와 가까운 곳에 앉으며 마나 시브를 풀었더니 푸르게 빛나는 날 바라보던 일본 총리는 긴장했던 듯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에 영은이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일본 총리 아줌마를 되돌아보며 입을 연다.
“아무튼, 요 수십 년간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웃긴 이야기였어. 그래, 일본은 사과의 뜻으로 무엇을 주려나 한번 들어볼까?”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영은이는 날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냈다.
“그건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쪽이 빠를 것 같다. 블루 지니어스는 우리 일본에 무엇을 바라는가.”
“날 죽이는데 한 손이라도 거든 자들 전부의 목숨이라고 하면 들어줄 거야?”
“…….”
“그러니까 함부로 막 물어보는 거 아니야. 칼 손잡이는 내가 잡고 있는데 그렇게 세게 나오면 나도 세게 나갈 거라고.”
총리 아줌마는 날카롭다 못해 찔러죽일 듯한 눈빛으로 날 빤히 본다. 나도 마주 노려봐주고 있으려니 영은이는 내 말에 소파 팔걸이를 죽어라 내려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파하하하하! 고위 이형종도 한 손으로 찍어 누르고 테이밍까지 한 서하 군이 만족할 조건이라니! 아하하하! 미야비 넌 웃기러 온 거니? 아하하하!”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너….”
“그 강자는 지금 아줌마 나라에는 없고 명분도 내가 쥐고 있어. 거기다 내 곁에 스파이까지 쳐붙여놓고 나한테 고운 소리 듣길 바라는 거야? 경고하는데 그따위 말투로 날 자극하지 마. 그렇지않아도 기분이 나락인데 여기서 더 떨어졌다간 바로 튀어나가서 지구 상에서 일본이라는 섬나라를 지워버리는 수가 있어.”
아까부터 자기 잘못 없다는 식으로 마치 옆집 가게에 물건 사러 온 듯한 모습에 열불 뻗치고 있는데….
소피아 그 개년을 생각하니 위에 구멍이 뚫릴 거 처럼 속이 뜨거워져서 으르렁거리듯이 말을 꺼냈더니 영은이도 일본 총리 아줌마도 움찔해버린다.
“한가지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돈이나 명예 권력 따윈 내 관심 밖이야. 내가 원하는 건 이번 일에 가담한 인간들 전원이 우리나라에 와서 재판을 받고 잘못을 사죄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거뿐이라고. 개소리 지껄일 시간 있으면 돌아가서 그놈들이나 잡아 넘겨.”
그러면서 영은이를 봤다.
“그런다고 당신네 나라 능력자들에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쓸데없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더 생겨나는 건 나도 바라지 않아서 내가 직접 이 자리에 나온 거야.”
사실 내 요구가 100% 먹힐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옆 나라 정치꾼들도 나라가 자기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자신이 나라라는 생각을 하는 인간들도 많아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상황이라면 해외로 튀어버리거나 하겠지.
그러니 적당히 영은이가 나서서 적당히 중재를 해줄 거라 생각하고 나는 내 요구 조건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말하는 거다.
물론 그 중재가 내 마음에 안 들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포가 날아간다.
“…무리한 요구다. 나 개인적으로도 확인해봤지만, 너에게 조금이나마 발을 걸친 자는 내각 의원의 7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없어진다면 일본의 정치는 마비돼.”
“나라가 사라지는 것보다 정치가 마비되는 쪽이 낫지 않아?”
내 말에 눈을 부릅뜨고 팔걸이를 잡은 손을 파르르 떠는 일본 총리를 보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표정을 가다듬은 일본 총리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데 그때 영은이가 나섰다.
“우리 서하 군은 자신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에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난건 죄 없는 일반인들이 그 사건에 휩쓸려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야. 거기에 미야비, 네 뻣뻣한 목때문에 더 화가 나는 거고.”
“이건 내 성향이다.”
“거기다 일본 정보부에서 우리 화연이 옆에 스파이까지 붙여놨었지? 그거 때문에 우리 서하군의 심기가 무~척이나 나빠져 있는데 어쩔 셈?”
“…….”
“후후. 우리 서하 군이 이렇게나 강해진 건 전~부 너희들 덕분인걸? 너희가 뺨을 때렸으니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않겠니. 자업자득이라는 사자성어를 알려나 모르겠다?”
살살 약 올리는듯한 영은이의 말에 일본 총리 아줌마의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갈 때 영은이 피식하고 웃고는 날 돌아보며 이제 본론이라는듯이 입을 열었다.
“서하 군? 이 아줌마가 내미는 중재안을 들어보겠니?”
영은이는 살살 달래듯이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날 보며 말하기에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난 슬그머니 영은이를 돌아봤다.
“우리 서하를 암살하려 한 자들은 확실히 우국 신민회의 일당들이야.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자들은 저 인형 아줌마 말대로 현 정권의 의원 총 숫자에 70%나 되지. 하지만 그중에서는 마지못해 참여한 인간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주범들만 처리하고 끝내자고요?”
“중의원 475명과 참의원 242명. 이중 습격 사건에 깊게 관여한 이들만 우리 한국에서 살인교사 및 살인죄로 처벌하는 거야. 물론 나머지는 그에 합당한 물질적인 배상이 있어야 할 테고.”
그렇게 말을 끝맺은 영은이는 안색이 점점 찌푸려지는 미야비 일본 총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너희는 사면초가인걸 알아야 해. 오늘이 지나면 미국 러시아 중국·인도와 유럽 연합의 강대국들이 우리 한국과 그랑 블루 마스터인 서하 군을 지지한다고 발표할 거야. 거기다 너희 나라 앞바다에 마포까지 터트렸는데도 IWO와 능력자 연합은 침묵을 고수한단말야.”
썩어가다 못해 문들어질거같은 얼굴로 두 눈을 감아버린 일본 총리를 향해 영은이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총리인 네가 공개적으로 지금까지 저질렀던 행위에 대해 전면적으로 사과해. 사과와 함께 주범들을 넘기고 물질적인 배상을 서하 군에게 하는 쪽이 지금 우리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중재야.”
“너무 과한….”
“거절하면 지금 당장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발표할 거야. 사죄배상을 거부한 일본이 싸움을 걸어왔다고 판단, 즉시 공격하겠다고. 그리고 일본으로 날아가서 사람들이 없는 산과 호수 들판을 죄다 지워버리겠어. 우선 후지 산부터 박살 내드리고 그 뒤에 위상석 발전소부터 하나하나 지워드리지. 다 지워진 다음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거절하고 협상으로 끌고 가려 는듯한 낌새가 보여 말을 끊으면서 강하게 나갔다. 내 협박 아닌 협박에 미야비 일본 총리의 눈썹이 꿈틀하고 이마에서는 땀이 한 방울 흐른다.
“거짓말 같지? 농담같이 들리지? 당신들이 날뛰어달라고 판을 벌여줬는데 날뛰어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잖아. 그치?”
이제 식은땀을 흘리는 일본 총리를 보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일본 정부는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에 지워버릴 거야. 아, TP 부족으로 날 어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버리도록 해. 내 회복량은 일본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수준이니까. 못 믿겠다면 실험해봐도 좋아.”
============================ 작품 후기 ============================
218화 초반부에 누락된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수정이 끝난걸 올린 게 아니고 수정 전의 글을 올려버려서 ㅠㅠ
어제 자정부터 55분 사이에 보신 분들은 초반만 살짝 봐주세요!
제가 하루에 두 편씩 일주일간 14편을 올렸는데요. 용량 확인해보니 450kb가 넘더라고요. 이걸 14kb로 쪼개면 하루 4편씩 올려지겠는데 그런 짓 하면 다들 싫어하실 거잖아요 ㅋㅋ
그러니 하루에 2편으로 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