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19화 (219/517)

00219  이 자식들이 진짜?!  =========================================================================

기자 회견을 가장한 발표를 마친 뒤 집무실에 돌아왔더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 화연이가 서있었다.

화연이는 어제 돌아와서 혜령이 이모와 영은이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아무 말도 못했고 밤에는 잠들지도 못한채 연신 몸을 뒤척였었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겠지.

“괜찮아?”

“미안….”

“…에휴.”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화연이에게 다가가서 힘껏 끌어안았다. 배신한 건 소피아지 화연이가 아닌데 이렇게 자책감을 느끼다니.

“화연이 탓이 아니야. 영은이 말고는 스파이의 존재조차 눈치 못 챘잖아. 영은이도 소피아가 스파이일줄은 몰랐다고 했고 나는 의심조차 못 했어.”

“…….”

“거기다 잡히기 직전에 튀었다는 것만 봐도 애초에 계획…. 아냐 그냥 화연이는 신경 쓰지 마. 나랑 영은이가 다 알아서 할게.”

거듭되는 위로에도 화연이는 말을 못하고 가만히 선 채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만 있었다. 그래서 화연이의 허리가 부러져라 힘껏 끌어안았다.

“끄흡?! 서, 서하?”

허리가 부러질듯한 통증을 받았는지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더니 그제야 날 돌아본다.

“이제 입을 여네. 다시 말하지만 화연이 잘못이 아니야. 아, 물론 배신자한테 속아서 언니 언니하고  부르던 자신을 반성하는 거였다면 이해해줄게.”

“…후우. 서하, 부탁이 있다.”

눈 아래 기미가 끼고 살짝 충혈된 눈의 화연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처분은 나에게 맡겨줘.”

“그럴게. 그 대신 나한테도 좀 밟아줄 기회를 줘.”

“…알았다.”

미호는 자기도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물고 있었는데 프랑이 어깨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당장에라도 달려들었을 표정 같다.

품에 화연이를 안은 채 슬쩍 사업 지원2동 옥상을 공간지각으로 살펴보니 기자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런 기자들을 다독이느라 누나랑 혜령이 이모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고 김표충 부장에 하유철 부장과 덩치 좋은 사업지원동의 직원들까지 총출동해서 기자들을 달래고 있는 게 보인다.

오늘 있었던 발표와 내일 실행할 일이 전 세계에 풀리면, PR 영상을 찍을 때 나한테 한소리 한 이능력부처의 깐깐 아줌마조차도 다른 말 못하겠지.

집에 도착해서 품에 화연이를 끌어안고 콱 잡아먹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몸을 더듬기 시작했더니 화연이가 몸을 꿈틀거리다가 한숨을 폭 내쉰다.

“…하고 싶은 건가?”

“어? 나야 언제나 준비완료지만 오늘은 화연이가 기분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기분 풀어주려고.”

그러면서 정장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화연이의 찰떡 아이스크림 같은 유방을 만지기 시작하니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날 돌아본다.

“내 기분을 풀어주는 것과 하는 것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프랑이 그러던데? 기분 안 좋을 땐 한번 하는데 기분 해소에 도움된다고….”

“제, 제가 언제요오!”

프랑은 내 이야기에 비명 지르듯이 외치며 화들짝 놀란다.

“어?! 화연이가 2조 토벌전으로 자리 비웠을 때 그랬잖아! 그 뒤에 개자식 일로 기분 나빠하고 있으니까 날으브븝!”

“꺄아~!! 꺅!!”

화다닥하고 날아와서 내 입을 틀어막은 프랑은 얼굴을 빨갛게 붉히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뭐야. 왜이러는건데?

- 큰 가슴 만져지면 기분 좋아지는 거야?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미호는 귀막고 있으세요!”

- 왜에?

“아니….”

그때 히아리드는 자신의 원피스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수박만 한 가슴을 만져보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연다.

=가슴을 만져져도 기분이 좋아지진 않습니다.=

- 그런 거야? 나도 만져보고 싶어.

=그렇게 하십시오.=

- 와아~ 말랑말랑~ 따끈따끈~

“““…….”””

빨개진 얼굴로 내 입을 막고 있는 프랑의 손을 잡고 오른쪽 옆구리에 번쩍 든 다음 히아리드의 원피스 자락을 젖히고 자기 머리보다 큰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미호도 잡아서 왼쪽 옆구리에 들고 한숨을 쉬었다.

“…진정해. 일단 내 선언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자.”

난장판이 되려하는 분위기를 애써 정리하며 TV를 켰더니 아까 내가 터트린 마포가 화면에서 흘러나온다. 곧 화면이 전환돼서 우리나라 유명 뉴스룸이 나오며 젊은 여자 아나운서와 정장을 입은 배불뚝이 중년 남자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교수님께서는 저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능력입니다. 저게 정말 사람의 능력이 맞단 말입니까? 폭발의 크기 측정 방법은 각 지름을 이용하여 폭발의 반지름을 구할 때는, 비례식을 이용합니다. 지구에서 본 폭발의 각 지름은 약 32'로 0.5˚에 해당합니다. 그럼 폭발의 지름 D는 곡선이나, 전체 360도에 비해 매우 작은 각이므로 직선으로 가정합니다. 지구에서 폭발까지의 거리를 r이라 하고, r = 350km 입니다.즉, 비례식을 세워보면,

360˚ : 0.5˚ = 2πr : D로써 D는 =….]

[예? 예? 박사님, 잠시….]

…내 마포의 폭발 크기를 갑자기 계산하기 시작하는 중년 남자 교수는 아나운서의 당황한 목소리도 안 들리는지 내 마포의 폭발 규모를 계산한다.

여러 번 채널을 바꿔봐도 내 PR 영상의 일부분, 하늘 섬 전체의 모습과 마포의 폭발 장면이라거나 알붐 케투스와 마포의 폭발 장면이라거나 고위 이형종, 날개 달린 플라비우스 종족과의 전투와 마포의 폭발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채널을 돌리다 보니 꽤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의 두 학자가 스튜디오에서 토론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나누는 대화가 꽤 흥미롭다.

[그랑 블루 예비 마스터의 심성은 매우 비인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림잡아 지름이 백수십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을 사람이 사는 지상을 향해 쏘아내다뇨. 거대한 폭발로 발생하는 자연 훼손은 둘째치고 그 폭발에 휩쓸리는 사람과 짐승들은 무슨 죄입니까.]

[그렇다면 임우식 선생님은 아무 죄 없는 미성년자를 죽이기 위해 두 번이나 살해 시도를 한 일본을 그냥 두자는 이야깁니까?]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됩니까?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폭력이라는 이 특수한 수단과 손을 잡는 자는 누구든 이 수단이 가져오는 특수한 결과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린 정서하 능력자를 다독여 달래고 정부에서 직접 나서 정치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정당한 폭력이라는 특수한 수단 그 자체가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을 규정짓고 있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일본의 우국 신민회라는 단체의 성격을 생각해보셨는지요]

[물론입니다. 과감히 현대를 그 예로 살펴봅시다. 이 지상에서 절대적 정의를 폭력에 의거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이 목적을 위해 추종자, 즉 인적 <기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는 적절한 내적 그리고 외적 보상을 이 인적 기구에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구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니아니, 이번 경우는 기구가 필요 없이 그랑 블루의 마스터 혼자서도 가능한 일인데요.]

[이 멍청한 사람아! 그랑 블루 마스터도 인간이야! 인간인 이상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그 자신이 뛰어나다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뛰어난 법이 있냔 말이야!]

[뭐요?! 멍청하다니!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폭….]

에이, 뭐가 이래. 계속 깐죽거리는 쥐 상의 토론자가 짜증 났는지 말상의 학자는 갑자기 버럭 하면서 화를 낸다. 뭔가 흥미 있는 주제로 토론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말싸움으로 변하네

아무튼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다. 프랑은 휴대폰으로 외국의 기사를 찾아보고 화연이는 인증기를 켜서 커뮤니티를 돌아보는데 프랑이 보여주는 영국 뉴스 데스크의 SNS에서는 나에 대한 실시간 기사가 올라오는 족족 수백 번의 리트윗되고 있었는데.

“…….”

화연이의 표정이 찡그려지는 걸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화연이가 보는 홀로그램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랑 블루 보스는 이형종각, ㅇㅈ?

ㄴ병시나 정서하는 보스가 아니고 마스터거든?

ㄴ알거든?

ㄴ알긴 개뿔

-ㅇ ㅇㅈ ㅇㄱㄹㅇ ㅂㅂㅂㄱ

-일본 오지고요~ 내각 족됐고요~

-우국 신민회가 우익소굴이라면서? 우리 대통령느님께서 단단히 작정하시고 파헤치셨네

-저런 능력으로 일본을 공격한다고? 능력자 연합이랑 IWO에서 가만히 안있는거 아냐?

ㄴ안있으면? 연합 본부에 떨어지면 몰살 테크인데?

ㄴ마포가 본부에 떨어지면 미국이랑 연합 지부랑 동시에 전쟁아냐?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수천만명이 살고 있는 곳에 저걸 쓰는건 안된다고 생각해요.

ㄴ선비충 떴다~!!

-마포 존나게 알흠다워….

ㄴ…어이, 저길 봐. 굉장한 마포야.

ㄴmarch…….

-일본이 맨날 저지랄해대니까 그랑블루 마스터도 빡칠대로 빡친거지.

ㄴ자기 마누라 옆에 스파이까지 있었다잖냐.

-저걸 봐 살인자의 눈이야!

ㄴ님이 살해당할듯ㅋㅋㅋㅋ

-내가 스킬 범위하면 다들 인정하는 빛 속성 능력자인데, 내가 TP 모두 올인해도 저만한 범위는 못쏜다. 진짜 이형종인거 아냐?

ㄴ최고위 이형종이라거낰ㅋㅋㅋㅋ

ㄴ그랑블루 마스터가 님 찾아감

ㄴ쵴ㅋㅋ곸ㅋㅋ윜ㅋㅋ잌ㅋ형ㅋㅋ종ㅋㅋㅋ

-그만해, 이 미친놈들앜ㅋㅋㅋㅋ

여기까지 보고 있는데 화연이가 화난 얼굴로 아래쪽 댓글 창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랑 블루 마스터를 모욕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전직 키보드 워리어라서 아는데 저렇게 글 쓰면 오히려,

띵띵띵띵!

띵띵!

띵띵띵!

띵띵띵띵!

띵!

이렇게 댓글 수십 개가 달리면서 난리 나지

-그랑 블루 마스터를 모욕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ㄴ니가뭔데

ㄴ헠ㅋㅋ시발 닉넴봐라 그랑 블루 보스 떴따!!

ㄴ엌ㅋㅋㅋ 유화연ㅋㅋㅋㅋㅋ 댓글 체크하고 있었던거얔ㅋㅋㅋㅋ

ㄴ윗님 졎댐ㅋㅋㅋㅋㅋ

ㄴ진짜 유화연이었네요 나 젖댓어욤 'ㅅ'/~

ㄴ한강 찾아가는 거 ㅊㅊ

ㄴ님 애인 진짜 이형종 아님? 저건 사람이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닌데?

ㄴ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님은 진짜 자살추천ㅋㅋㅋ

ㄴ예비 신랑님 인터넷 명예까지 지키려는 유화연ㅋㅋㅋㅋㅋㅋ

ㄴ마누라떴다!!!

댓글 반응을 지켜본 화연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데 저걸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인증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받았더니 울상을 짓는 영은이의 얼굴이 홀로그램창으로 떠오른다.

“왜 그래?”

[서하가 터트린 폭탄이 예상외로 효과가 커. 지금 IWO랑 능력자 연합 본부에서도 계속 전화가 오고 옆 나라 중국이랑 러시아랑 미국에 영국까지 핫라인 통화를 원하고 있어!]

“흐흐. 힘내.”

일부러 툴툴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날 힐끔거리는 영은이에게 씨익 웃으면서 말해주니 잠깐 멈칫했다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사과한다.

[소피아 에델베르그를 못 잡아서 미안. 그년이 내 옆에도 귀를 심어놓았을 줄 몰랐어. 그년을 확실하게 잡으려고 3중으로 함정을 까는데 함정 하나가 소피아 그년에게 홀린 녀석이라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려서….]

“응? 괜찮아. 잡는 건 포기 안 했지?”

[안 했지!]

“그럼 됐어.”

근시일내에 영국에 갈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영은이는 내 옆에서 화를 다스리는 화연이를 힐끔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입을 연다.

[오늘 또 집에 못들어갈거같아.]

“정말 바쁜가 보네. 난 영은이가 있어서 오늘처럼 막 질러버릴 수 있는 거야. 영은이만 믿을게.”

[…치이. 나중에 찐하게 키스해줘야 해?]

“기절할 정도로 찐하게 해줄게.”

[우후후. 기대되는걸. 아무튼, 일본은 지금 겁먹었는지 어쩐지 반응이 전~혀 없어. 하긴, 마포의 폭발이 일본 전역에서 확인이 가능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거시기가 쪼그라들었겠지? 서하는 언제쯤에 시작할 거니?]

“우선 처음은 공격이 아니라 위협을 할 거야.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줄 수 있어?”

[위협…. 협상의 좋은 수단이지. 알았어, 한번 찾아볼게. 그리고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 United Nations Nature 이랑 능력자 연합, IWO에서도 대책 마련에 고심할 거야. 그러니 마포를 쏘아내는데 거리낌 같은 건 느끼지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우리 서하를 지켜줄테니까.]

그러더니 사악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연다.

[일본 본토에 한 방 날리려면 100km 범위로 가정했을 때 적당한 곳은 홋카이도 외에는 없을 텐데, 일단 첫발은 도쿄 앞바다나 도쿄 상공에 터트려줄 수 있니?]

“있어. 바다에서 터트렸다간 상관없는 나라에까지 해일이 밀어닥칠 테니까 일본 상공에서 터트려야겠어.”

[생각 같아서는 확 후지 산에 떨어트려 달라고 하고 싶은데…. 아쉬운걸~]

“흠…. 후지 산을 지우는 정도라면 1,000 TP 정도만 써도 지울 수 있는데?”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아무튼, 걱정 말구 한발 찐하게 날려버리렴!]

“응. 집에 못 오는 영은이의 한을 담아서 날릴게.”

[이히히. 기대되는걸~!]

“무섭군.”

“무서워요….”

나와 영은이가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본 프랑과 화연이는 조금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무섭다거나 질렸다는 게 아니라 장난기가 섞인 얼굴이라 나도 피식 웃으면서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경호원 형 누나들한테 가서 꽃 한 송이 놔줄 수 있겠다.”

“…….”

“날 공격한 놈들을 전부 박살 내고 데려와서 죽은 경호원 형 누나들의 묘 앞에서 무릎 꿇게 한 다음 백배사죄하게 해야지.”

…그리고 소피아, 넌 잡히는 순간 죽었다고 복창해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연이랑 영은이의 무기와 방어 구를 진열해놓은 장비 방에 들어가 포스레더 세트를 입는데 재킷 주머니에서 블루 스톤이 떨어졌다.

…일본 때문에 빡쳐서 이걸 잊고 있었네. 일단 TP가 바닥난 고위급 위상석을 모아둔 상자에 던져놓고 나왔다. 나중에 연구소를 지으면 연구하라고 던져주던가 해봐야지.

포스레더를 다 입고 거실로 나오니 화연이는 온몸에 나 있는 격렬한 사랑의 흔적을 얇은 이불을 드레스처럼 몸을 감싸서 숨긴 채 서 있었고 프랑도 외출하기 위한 옷차림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호도 누나가 어렸을 때 입은 티셔츠랑 멜빵 치마를 입고 꼬리를 살랑거린다.

“뭐야. 너도 따라오게?”

- 주인님 가는 곳은 나도 따라갈 거야!

“가는 건가.”

“응. 범죄자들 안 넘기면 엿된다는걸 보여주고 올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화연이는 인증기를 켜서 세계 지도를 펼치더니 크게 확대해서 우리나라와 일본만 보이게끔 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 딱 절반쯤 되는 구역을 대각선으로 쭈욱 긋는다.

“일본 지도가…. 도쿄까지 생각보다 머네.”

“거리상으로는 서울에서 도쿄까지 1,100km 정도다. 그리고 여기부터가 일본의 영공이다.”

손을 들어 올리느라 몸을 가린 얇은 이불의 틈이 벌어지며 화연이의 눈부신 나신이 드러나고 다리 사이의 골짜기에 눈이 가는 걸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 저렇게 은근히 드러나는 게 더 야한 거 같아.

“그럼 다녀올게.”

따라나서려는 히아리드는 아직 능력자 연합에서 인증이 끝나지 않아 그냥 앉혀놓고 프랑이랑 미호만 데리고 테라스에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나 모드 - 가속을 펼쳐서 전력으로 독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헀다.

달리는 와중에 영은이에게도 출발했다고 문자를 날려준다음 내 옆에서 같이 날고 있는 프랑과 미호를 보니 바람속성이 부러워졌다.

내가 전력으로 달리는데도 별 어려움 없이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하면서 공중곡예를 하는데 바람 속성으로 날고 있는 미호를 보니 바람 속성이 살짝 부러워졌다.

한참을 달리는 데 집중했더니 독도까지 도착하는 데만 35분 가까이 걸렸다. 지금 높이가 지상에서 15km 정도인데 발밑에 양털 카펫처럼 깔린 구름과 구름 사이사이 틈으로 일본 땅이 보인다.

“생각보다 멀어…. 여기서 도쿄 상공까지 가는데 1시간 넘게 걸리겠어.”

“도쿄 상공에 쏘아내실 생각이시니 도쿄까지 가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여기서 쏘아내셔도 될 거 같은데.”

“…그러네?”

멍한 표정으로 날 보는 프랑을 킥킥거리면서 웃어주고 어디쯤 높이에서 쏴야 극도의 공포를 느낄지 대충 눈대중으로 살펴본다.

그냥 쐈다가 잘못해서 마을이나 도시가 마포에 휩쓸렸다간 좋지 못한 일이 생길 테니까.

물론 날 죽이려 한 놈들은 죽이고 싶을 만큼 싫고 그런 놈들을 뽑아준 게 일본 국민들이니까 전부다 짜증 나긴 하지만 능력 있고 기분 나쁘다고 무턱대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그건 인간쓰레기잖아.

거기다 도쿄에 마포가 떨어졌다간 수천만 명이 죽을 텐데 그쯤 되면 개인과 국가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능력자 연합이나 IWO에서도 가만히 안 있을 거다.

가만히 있지 않고 덤빈다고 해도 별로 무섭진 않은데 어떤 수단을 써올지 모르는 건 겁나거든.

나야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나 내 연인들을 노리는 건 싫다. 거기다 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이런 나라랑 쌈박질을 시작했다간 하철수 그 개자식보다 내가 더 위험하다는걸 전 세계에 알리는 꼴이 되잖아.

일본을 조지려다 전 세계랑 싸우게 될 판이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해야지.

…만약 싸우게 되면 우리 가족들을 공간의 벽으로 만든 벙커 안에 모아놓고 덤벼든 나라 수도에만 마포 한발씩 떨어트려 버릴까? 그럼 겁먹고 안 건들 거 같은데. 아니, 오히려 악에 받쳐서 물고 늘어질지도.

내 주변을 위성처럼 빙글빙글 도는 미호를 붙잡아 끌어안고서 꼬리를 쓰다듬으니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몸을 비튼다.

그런 미호의 자그마한 몸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고민하고 있으려니 내 고민을 읽은 프랑이 일본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상공으로 올라가 보시는 게 어떠세요? 지금 높이가 15km 정도일 텐데 50km 상공에서는 적당한 위치가 보일지 몰라요.”

“끄응. 거기까지 가면 좀 춥고 숨쉬기도 힘들던데. 에이, 우국 신민회인지 우민노예회인지 진짜 가만 안 놔둘 테다.”

이빨을 으득거리면서 전신에 마나 시브를 최대한 집중하고 피부에도 돌리기 시작하니 파란 페인트 통에 들어갔다 나온 것마냥 전신이 시퍼렇게 변한다.

한숨을 쉬면서 지상 50km 높이까지 뛰어오르니 평범하게 마나 시브를 집중했을 때보단 추위가 덜 느껴지는데 미호는 불덩어리를 수십 개 띄워서 자기 몸에 붙이고도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꼬리털도 얼어붙어서 딱딱하게 변한 게 웃음이 날 만큼 안쓰러워 보인다.

- 주, 주주주인니니니므으어 추어어어어덜덜덜

“넌 아까 거기 내려가 있어.”

- 아아아아라떠어으엉.

잠깐 사이에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미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내려간다.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위상력을 체크하니 초당 50 정도로 TP가 감소하고 있었다.

육체에 해가 되는 상황에서 내 몸을 보호하며 TP가 감소하니 이 높이쯤 되면 사람이 맨몸으로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거겠지.

“좀 더 올라가 보자.”

혹시 몰라 TP를 500만까지 충전시켜놨던 고위급 위상석을 주머니에서 꺼내 왼손에 쥔다. 위험하게 TP가 줄면 위상석에서 TP를 뽑아 흡수해야지.

일단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전력을 다해 마나 시브를 몸에 집중하면서 고도를 높이니 높일수록 TP 감소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 정도라면 위상석의 TP에 내 TP까지 모두 다 써도 20분밖에 못 버티겠다. 850만 TP로 20분 버티기밖에 안되다니.

지상 100km까지 올라오니 사방이 어두컴컴해져서 살짝 무서워졌지만, 덕분에 도쿄 전체가 훤히 보이면서 사격 코스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이 앞에서 뭐라 입을 벙긋벙긋거리는데 소리가 안 들린다. 대기가 없어서 그런가? 대신 독순술로 읽으니 -몸은 괜찮으신가요?- 라고 물어보고 있었다.

-괜찮아. TP가 좀 줄고 있지만, 볼일 마치고 내려가면 될 거 같아.-

멀쩡한 모습의 프랑을 힐끔 보고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오른손을 뻗어서 마포를 준비한다.

1만 TP 마포의 범위는 대략 150km니까 도쿄 상공 300km 위에 터트리면 마포가 도쿄 상공을 가득 가리겠지. 적당히 위치를 가늠한 다음 손바닥에 TP를 응축시키고 회전시키며 마나 시브로 표면을 덮은 다음, 발싸!

소리 없이 내 손을 떠난 마포는 쏜살같이 날아간다. 마포의 속도는 1km/s이고 목표로 한 곳이 70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대충 12분 뒤면 폭발하나?

한발로는 뭔가 아쉬우니 좀 더 쏴주자. 그리고 1분이 지났을 때 한발을 더 쏘고 두 발째에서 1분이 지났을 때 다시 한 번 쏘아내고 마지막으로 1분 뒤에 4발째 마포를 쏘아냈다.

형태는 사각형 꼭짓점에서 터지게 하고 중심에는 도쿄가 들어가게끔 쐈으니 도쿄에 있는 우국 신민회 개자식들과 도쿄 시민들에게 확실하게 전해질 거다.

내 협박이.

폭발도 한 발의 범위가 150km 정도 되니까 4발이 1분 간격으로 터져 나오면 보기 싫어도 보게 될 거다. 그 폭발은 그 옆에 대도시인 나고야나 오사카에서도…. 아니, 내가 어제 쏜 게 주변국에서도 다 봤다고 하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확실히 보이겠지.

급속도로 줄고 있는 TP에 왼손에 쥔 위상석을 자극해 TP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증기를 켜서 영은이한테 마포를 발사했고 9분 뒤에 순차적으로 네 발의 마포가 터질 거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동시에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은 말 못하는데. 일단 전화를 받았더니 홀로그램 창이 떠오르며 영은이의 얼굴이 나타난다.

[서하, 발사했…. 거, 거긴 어디니? 뒤에 우리나라가 보이는데?]

우리나라가 보인다고?

영은이 말에 돌아보니 진짜였다. 우리나라 전체가 다 보여. 아니 그보다 산소가 없는 곳인데 어째서 영은이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거지?

아, 인증기가 피부에 붙어있어서 소리가 몸을 진동시켜서 전달되나 보다. 어쩐지 조금 소리가 울린다고 생각했더니 인증기에 이런 효과가 있었구나.

잠시 화면을 아래를 향해준 다음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니 곧장 영은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상 100km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니 홀로그램 창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은이는 이건 예상 못했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데 비서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영은이의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아, 아아. 그렇군요. 서하 군을 막아보려 했지만 벌써 발사한 거군요. 하지만 두 번째는 제 체면을 생각해서 잠시 중지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갑자기 존대와 함께 어색한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입을 여는데, 이게 그 형식적인…. 그 뭐시냐. 마땅한 단어가 생각 안나네.

아무튼 한국 정부도 날 막으려고 했다는 형식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증거로 남기겠다는 그건가보다.

난 고개를 끄덕여주고 도쿄를 향해 몸을 돌리니 일본 전역의 모습이 보이는지 홀로그램 창에서 연신 감탄과 경악성이 흘러나온다.

그 뒤로 영은이는 이런 상황에서 막무가내의 공격은 서로의 감정의 골만 조장하니 가능한 행동에 나서기 전에 우리 정부와 상의를 부탁한다는 국어책 읽기의 억양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나도 고개를 끄덕여주고 도쿄 쪽을 바라봤다.

곧이어 도쿄 상공에 태양 하나가 생겨나며 빛의 폭발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있으려니 1분 간격으로 연달아 3개의 태양이 더 생겨나는 걸 보고 히죽 웃었다.

굿잡.

마포의 폭발에 충격파가 지상으로 쏟아져나오고 도쿄 앞바다도 파도가 살짝 몰아치는 게 보인다. 저만한 충격파가 도달했다면 피해가 좀 났을 거 같은데….

에이 몰라. 이쯤 되면 확실한 위협이 됐겠지.

4개의 태양을 바라보다가 검지를 척 올려주고 바닥나고 있는 tp량을 확인하고 쏜살같이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면서 홀로그램 창에 이쪽을 보고 있는 영은이한테 손을 흔들어주고 인증기를 종료했다.

임무 완료, 귀환!

============================ 작품 후기 ============================

218화 초반부에 누락된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수정이 끝난걸 올린 게 아니고 수정 전의 글을 올려버려서 ㅠㅠ

어제 자정부터 55분 사이에 보신 분들은 초반만 살짝 봐주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