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8 이 자식들이 진짜?! =========================================================================
내가 위상 세계에서 내가 웬 꼬리 달린 여우 소녀를 데리고 나왔을 땐 능력자 연합 빌딩에 굉장한 소란이 일어나버렸는데, 연합 빌딩 옥상에 있던 지부장은 연락을 받았는지 허겁지겁 뛰쳐 내려오더니 미호를 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었다.
“…그 이형종은 무슨 등급이냐.”
“상위 아종이요.”
“그래 상…. 아종?!”
“이 녀석이 그 에너지 이터에요.”
“뭣?!”
상위 아종이 됐다는 에너지 이터, 미호를 보는 지부장은 무언가 궁금함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눈썹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애써 참는다.
잘한거에요. 물어본다고 해서 알려줄 수 있는것도 아니거든요.
능력자 연합 빌딩 옆의 오피스텔을 살펴보니 역시 내가 쳐둔 공간의 벽이 사라져있었고 히아리드는 미동도 없이 하늘 지팡이를 양손에 꼭 쥐고 눈을 감은채 하철수가 사라졌던 방에 대기중이었다.
지부장과 함께 히아리드가 지키고 있는 오피스텔로 가서 공간의 벽을 다시 치며 히아리드에게 물었다.
“하철수는 나오지 않았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대기할때 널 건든 사람은 없고?”
=없었습니다.=
딱 필요한 말만 하는 모습에 살짝 한숨을 쉬고 지부장을 돌아보니 블루 지니어스의 애완용 고위 이형종이라고 알렸더니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긴, 예쁜 천사같긴하지만 고위 이형종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쬐끄만 아기 여우가 10살 수준의 꼬마 여자아이가 된 걸 굉장히 놀라워했는데 무서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하면서 누나랑 내가 입었던 어린이 옷을 입혀보며 즐거워하셨다.
난 부모님이 미호를 거리낌 없이 대하는 것보다 내가 10살 때 입던 옷을 버리지 않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랑 블루 빌딩에 도착했을 땐 그랑 블루 레이드팀의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놀란 눈으로 혜령이 이모를 보는데 이모는 내 팔을 잡아끌고 그대로 사무동 19층의 대형 회의실로 이동했다.
제대로 씻고 정리도 못 한 채 그대로 긴급회의에 들어갔는데,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들은 건 타임리버 설립 때부터, 아니 화연이가 화랑에 있을 때부터 함께해온 소피아가 배신자였다는 이야기였다.
“…소피아가 배신자라고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대통령님께서 직접 요원들을 이끌고 그랑 블루에 들이닥치셨는데 그전에 소피아 부대장….”
“칭호는 빼시고요.”
“아, 네. 소피아 에델베르그가 황급히 그랑 블루 빌딩을 떠나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고 했어요. 바로 자신의 차를 몰고 떠나간 지 10분 뒤에 도착하신 대통령님의 말씀에 따르면 수십 년간 계획되어온, 일본의 주도 아래 키워진 첩자라는 이야기였어요….”
…어처구니가 없다. 그 벌꿀 색 긴 머리카락의 청초한 아가씨가, 웃을 때면 해바라기 같고 화연이의 한쪽 팔로 타임 리버가 국내 레이드 팀 랭킹 2위가 되도록 헌신한 그 소피아가.
배신자라고…?
“소피아는 영국 그로키스 연구소 소속의 유명한 가문의 차녀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
혜령이 이모는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현 에델베르그 가주의 부인이 80년 전 일본 사태 때 영국에 팔리듯이 넘어간 신체 강화 능력자였대요. 그녀가 일본 정보조직 출신이었고 에델베르그 가주와 결혼한 뒤 슬하에 얻은 자식을 모두 일본의 첩자로 키운 것도 그녀였다고….”
아, 뒷골땡겨.
“에델베르그 가문은 뭐래요?”
“절대 인정 안 하고 있어요. 애초에 의절 선언하고 가문을 뛰쳐나간 년이라고 자신들과 관계없다는 입장이에요….”
화연이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아랫입술을 깨물며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도 보셔야 해요.”
혜령이 이모는 불편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 상태로 진행 요원에게 손짓하니 곧바로 회의실 내부의 대형 패널 TV에서 뉴스의 한 장면이 흘러나온다.
…….
대형 패널 TV를 보며 더러운 기분에 표정을 굳히고 있었더니 고급스럽게 꾸며진 회의실 안은 15명이 모여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침묵이 유지된다.
나 프랑, 화연이, 누나, 혜령이 이모, 박지웅 보스에 김표충 부장과 하유철 부장, 차소영 부대장과 화랑 출신 신체 강화 B 클래스 부대장 네 명에 경호부장과 사내 시큐리티 팀장까지 15명.
[대한민국 출신이자 대한민국 신규 레이드 팀의 보스로 예정된 블루 지니어스, 정서하에 대한 능력자 협회의 편의와 편애는 IWO의 이념에 반대되는 행위입니다.
능력자 연합의 결성 배경에는 포용적 경제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IWO - 능력자 간의 공동체를 위해 비전을 공유하고 나아가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야 함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재앙과도 다름없는 이형종의 사육을 허가해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고작 18살의 어린 소년에게 위상 세계 임의 출입 허가이라는 흉악한 무기를 쥐여주는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않은 10대 청소년에게 제어조차 하지 못할 강대한 힘이 주어지는것은 대한민국, 나아가 지구 전체에 암운이 드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형태와 발현양상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분명한 해악….]
화면에는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라는 자가 나와서 원숭이 우는소리를 해댄다. 기가차서 계속 듣다보니 속에서 열이 치솟아 오른다.
화내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네.
“끄세요.”
싸늘한 내 목소리에 진행 보조원이 침을 삼키며 패널 TV를 조작해 녹화한 뉴스를 종료시켰다.
15명이 둘러앉은 거대한 1자형 테이블의 중앙에는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 있었는데, 홀로그램 창에는 정복을 갖춘 영은이와 수많은 의원이 앉아있는 게 비쳐 보였다.
“이게 어제 오후에 발표된 내용이라고요.”
[맞아. 서하군이 위상 세계에 입장하고 4시간 뒤에 일본 내각에서 총리가 직접 발표한 내용이에요.]
영은이도 굳은 표정으로 일본이 먼저 선수 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나는 눈을 감고 아까 대변인이라는 원숭이가 끽끽거리던 내용을 떠올리다가 비릿하게 웃었다.
“후후. 날 죽이려 한 놈들에 총리도 포함되어있나 보네요. 전에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죠?”
[조사는 다 끝났단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건과 신촌동 습격사건에 대한 배경 파악은 모두 끝나서 발표만 하면 돼.]
영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혜령이 이모와 누날 돌아보며 물었다.
“총무부장님, 통합관리부장님. 그랑 블루 레이드 팀 발족식까지의 준비는 얼마나 남았나요?”
“저희 그랑 블루의 준비는 끝났기에 이틀 뒤 28일 화요일에 발족식이 가능합니다만 초대객 분들께 초대장을 돌린 것이 있기에 손님들을 모시려면 빨라도 5일은 걸리는 상황입니다.”
“…그럼 전야제 겸해서 내일 여사님이 준비해주신 걸 발표하겠습니다. 여사님, 저번에 부탁드린 그대로 진행하고 싶은데요.”
[으음…. 조금 성급한 게 아닐까? 좀 더 준비해서….]
“그대로 준비해주세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이상은 못 기다려요. 그리고 발표 직후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 10개를 2일에 나눠서 경매 진행 예고를 하겠습니다. 경매 참가 자격은 일본을 제외한 즉시 거래가 가능한 나라로.”
고위급 위상석 10개라는 이야기에 우리 회의실은 물론이고 영은이가 있는 청와대 각료 회의실에서도 소란이 일어난다. 중간에 고위급 위상석 10개라면 우리 정부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살짝 눈썹을 찌푸리니 영은이는 한쪽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날 향해 시선을 돌린다.
영은이도 언제 그렇게 만들어뒀냐는 눈빛으로 날 보는데, 2일간 위상 세계에 있을 때 품에 넣고 다니면서 TP가 여유가 될 때마다 충전했다.
17개가량 충전했지만, 한 번에 다 풀면 의심받을 거 같으니 10개만 풀려는 거다.
죄다 200만 넘게 충전시킨 고위급 위상석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게 풀리면 다른 나라는 나에 대해서 무척이나 긴장하게 될거다.
갓 B 클래스가 됐을 거라 의심할 텐데 갑자기 고위급 위상석 10개를 판다고 나오면 나 혼자 잡았을 거란 의심밖에 안들 거잖아. 거기다 내 뒤에는 고위 이형종 펫도 있어서 그 의심을 더욱더 부채질할 거다.
고위급 위상석을 가진 고위 이형종을 한두마리도 아니고 최소 10마리 이상 잡아내는 B 클래스 능력자.
그랑 블루의 선전과 일본을 찍어누르는데 이보다 좋은 카드는 없겠지.
[…응. 그거라면 좀 더 소란을 일으킬 수 있겠네. 뒤는 맡겨두렴.]
아직 웅성거리고 소란스러운 회의실 안을 돌아보며 마나 보이스로 나지막이 말했다.
“[조용.]”
“““…….”””
순식간에 깔린 침묵 사이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일본이 절 죽이려 하는지, 이렇게 시비를 거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어째서 소피아 에델베르그 부대장을 스파이로 침투시켜놨는지도 몰라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한테 달라붙던 소피아를 생각하니 속에서 불길이 점점 커지다못해 위에 구멍이 날 지경이다.
그 년은 내가 어제 위상 세계에 입장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김포 공항을 통해 우리나라를 떴다는 이야기였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본의 두 번에 걸친 공격으로 일반인의 피해가 났다는 것과, 절 지키기 위해 경호대 소속의 요원 다섯분이 사망했다는 겁니다. 거기다 소피아 에델베르그…로 하여금 제 정보를 빼낸 것에 이번엔 노골적으로 공개 방송을 통해 절 비난하고 성토하는군요.”
…마나 비전은 현실에서 안 쓰려고 했지만, 마나 비전의 호감도 업 up 효과를 받았을 소피아 에델베르그마저 뒤통수를 때리고 튀었다는 걸 들으니 내가 너무 물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 비전과 보이스에 정신적인 충격을 줘서 세뇌까진 걸지 않아도 호감도를 심어둬서 사람들이 나를, 그랑 블루를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소피아 에델베르그처럼 이미 들어와 있는 스파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나 비전의 호감도 효과를 생각하면 후천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배신은 막을 수 있을 거다.
…소피아, 그 개잡년이 타임리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화연이한테 접근해서 내부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런 것도 모르고 그년에게 호감을 품으면서 이런저런 간단한 이야기들을 해준 내 목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다.
고위 이형종의 사육과 내 위상 세계 임의 진입 허가는 날 비롯해서 수뇌부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본이 알게 된 것도, 내가 박물관에 야외 수업을 가는 것도! 수련장에서 혼자 수련한다는 것도!
전부 그 쌍년이 일본에 까발려서 알게 된 거였다.
…그래서 화연이가 저렇게 창백한 얼굴로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는 거고.
저장장치를 처음 화연이와 영은이 앞에서 보여줄 때, 화연이가 영은이에게 도와줄 게 없냐고 물었을 때 지금은 없다, 하지만 나중에는 있을 거다 라고 한 게 영은이는 스파이를 예상했던 게 틀림 없었을 거다. 그게 소피아인 줄도 알았을까?
아무튼, 내가 위상 세계에 입장한 그 날,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그 개잡년을 잡으려 했는데 2중 3중의 함정과 포위망을 뚫고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 튀었다고 했다.
…그 조력자는 보나 마나 일본에서 보낸 능력자겠지. 씨발.
마음을 잘 주지 않는 화연이가, 언니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알고 보니 스파이였고 자신과 나에 대한 일거투 일수족을 수집해서 일본에 넘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빨을 부드득하고 갈면서 눈에 시퍼런 마나 시브를 줄기줄기 흘리기 시작하니 일제히 헛숨을 들이키며 놀란다.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감아 전신에 마나 시브를 집중한다. 전신에 푸른 빛이 물결치듯 뻗어 나오는 모습에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내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공간 지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눈을 뜨고 한명 한명 눈을 마주쳤다.
“절 두 번이나 살해 시도를 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시킨 데다 끝까지 절 자극한 일본은 이번 기회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물론 배신자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찾아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거고요.”
시퍼런 위상력이 흘러내리는 내 눈과 마주친 사람들은 한명 한명 흠칫거리면서 몸이 굳어진다. 프랑과 영은이는 안색이 조금 흐려지지만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눈치챈 그녀들은 살짝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이 끓는 기분에 주먹을 움켜쥐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긴장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부탁이니까, 내 마지막 심리적인 브레이크를 부수진 말아주라. 이 이상 날 건드렸다간 나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난 학살자라는 칭호는 갖고 싶지 않다고.
다음날 거스러미가 지는 저녁 무렵 그랑 블루 빌딩 사업지원 2동의 옥상에서 일본에 대한 내 대응을 발표하기로 했다. 마지막에 데몬스트레이션을 보여주려면 밖에서 해야 하니까. 거기에 좀 어두워야 마포의 폭발에 의한 빛이 강조되면서 효과가 극대화 될 테고.
갑작스런 발표였지만 내외신 기자들은 일본의 발표에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랑 블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랑 블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연락을 하니 웬 떡이냐 싶어 국내에 존재하는 외신 기자들과 국내 유명 방송사의 뉴스룸에서도 내 발표를 생방송으로 중계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기자들, 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방송 자재까지 다 들고 진을 치니 150평의 옥상이 좁아 보인다.
옥상에 펼쳐지는 인종 박람회를 내 집무실에서 옥상 감시카메라를 통해 구경하고 있으려니 누나는 내 뒤에서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발표할 거야…? 여론이랑 반응이 장난이 아닐 텐데….”
“내가 왜 여론 반응을 신경 써야 해? 누난 내가 이대로 병신처럼 얻어맞길 바라는 거야?”
“그, 그런 게 아니구우.”
“날 죽일 놈 살릴 놈 욕만 하는 건 신경 안 써. 물론 욕의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놈들은 용서 못 하지만.”
PR 영상 촬영 때 입었던 정장과 비슷한 초고급 양복을 입으니 몸에 착 달라붙은 느낌이 조금 어색하다.
“프랑, 미호. 나 어때? 보기 괜찮아?”
“멋있어요!”
- 이게 멋진 거야? 응 주인님 멋져!
프랑은 정령을 상징하는듯한 하늘거리는 금색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를 올려묶은 모습으로 날 보며 눈을 반짝였고 미호 역시 앙증맞은 생활 한복을 입고 흰색 머리카락을 댕기 머리로 묶어 하얀 여우 귀와 여섯 개의 여우 꼬리를 파닥이면서 눈을 반짝였다.
히아리드는 그리스의 예식용 토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날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한다.
둘의 반응에 누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버렸다. 누나가 어찌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걸 보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발표까지 3분 남았다.
“복귀하고 나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는 바람에 누나한테 이야기 못 했는데.”
“응?”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의 위상 세계에 혼자 들어가지 마. 갈 땐 나랑 꼭 같이 들어가야 해.”
뭣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냐는 듯이 궁금해하는 누나에게 위상 세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구름은 구름 고래들이 만든거였구 그 밑에는 평범한 땅이 있다며? 추락해도 워터 볼 쏘아내고 섀도 점프 쓰면서 지상으로 이동하면 되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그보다 너랑 같은 위상 세계일 수 있다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랑 같이 가. 알았지?”
“후후, 알았어.”
“…그럼 시작할까.”
누나와 이야기하는 와중에 3분이 지나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나가니 노을빛에 불타는 하늘이 보인다.
공중에 공간의 벽을 치며 사업지원 2동으로 하늘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부러 보게끔 공간의 벽을 크게 치며 이동하고 내 뒤로 프랑과 미호와 히아리드가 공중에 떠서 뒤를 따른다.
누나는 재빨리 사업 지원2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김표충 부장과 하유철 부장과 중간에 만나더니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사업지원 2동 쪽에 거의 다다라가니 내외신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중을 걸어서 오는 날 발견하더니 경악과 소란이 터져 나온다.
카메라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담담한 표정으로 헬기 포트 중앙에 마련된 단상까지 이동해 마이크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을 살짝 드니 웅성거림이 줄면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줄어든다.
다시금 공간의 벽을 옥상 전부를 감싸도록 쳤더니 조금 강하게 불던 바람이 줄어들어 적당히 이야기 나누기 좋게 변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표정은 적당하지 못하고 당황과 경악과 공포 등이 적당히 버무려진 표정이다.
나는 무표정으로 방송 카메라들이 전부 ON 상태인 걸 보고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이라는 말만 듣고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은 저희가 준비한 자료부터 보시고 난 뒤에 이야기하죠.”
입을 열자마자 성격 급한 몇몇 기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가 이어지는 준비 자료라는 이야기에 슬그머니 손을 내린다.
옥상 한쪽 구석에 마련된 거대한 패널 TV 앞에 서 있던 진행 보조 요원이 재빠르게 패널을 조작해 영은이가 수집한 자료. 일본이 날 공격했다는 증거들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상자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한 레이드 팀이 마라우소 인근에서 탐색 및 발굴 도중 값비싸 보이는 상자를 하나 얻게 됐었는데 얼굴에 모자이크를 하고 목소리변조를 넣은 사람이 화면에 나와 상자를 얻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상자를 얻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단 같은 동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별생각 없이 비싸 보이는 보석 상자를 얻었다고 희희낙락했지만 마라우소라는 지역의 특성상 저주받은 물품일 수 있기에 빠르게 봉인처리를 하고 현실로 돌아왔죠.]
그리고 화면의 한쪽이 나뉘며 출토된 상자에 대한 모습과 우리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에 오게 된 소울리퍼의 함의 모습. 소울 리퍼의 함이 국립 중앙 박물관에 들어오게 된 경위가 자세히 나와 있는 서류들이 한 장씩 나오기 시작한다.
죽음의 땅이자 유령 계통의 이형종 들이 다수 출몰하는 마라우소의 물건들은 저주받았거나 귀신들린 상자 같은 게 대부분이기에 레이드 팀은 그 자리에서 비싸 보이는 상자를 밀봉하고 탐색이 끝날 때까지 봉인했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온 레이드 팀은 능력자 연합이 아닌 오래된 신사에 상자를 들고 가 감정을 받았다.
[능력자 연합의 감정은 안전하고 빠르고 뒤처리까지 빠르게 해주지만…. 우리는 돈이 없는 그룹이었기 때문에 이름난 신사에 찾아가 감정을 의뢰했어요.]
연합의 감정비는 너무 비싸 이렇게 사설 의뢰를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게 능력자 연합의 방침이고.
아무튼, 그 신사는 오래전부터 특정 물품의 감정을 해오던 곳이었는데 레이드 팀은 그 비싸 보이는 상자가 소울 리퍼가 봉인된 악령의 상자라는 감정 결과를 받고는 능력자 연합 일본 지부를 통해 파기하려고 했단다.
[안에 소울 리퍼가 봉인된 상자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영국에 한 번 나타나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잖아요? 그래서 연합에 가져가서 파기 요청을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하지만 신사의 신주는 레이드 팀에게 이 상자를 우리에게 넘기면 적당히 해주解呪를 해줄 테니 내용물 일부를 자신들에게 넘겨달라고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해당 신사는 저주받거나 귀신들린 물건의 해주를 전문으로 해오던 곳으로 명성이 높아 레이드 팀은 혼쾌히 상자를 넘겨주고 얼마후 일정량의 대가를 받는 걸로 끝났는데, 신주가 알고 봤더니 우국 신민회라는 조직의 후원자였었다.
소울리퍼의 함을 입수한 신주는 그 함을 가지고 우국 신민회를 찾아갔고, 돌아올 때는 맨손으로 돌아왔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단단히 밀봉된 소울리퍼의 함은 어째서인지 배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와 어느 순간 일반 전시용 유물로 둔갑해 귀중품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화물의 검수를 한 자는 뭣도 모르고 귀중품 마크에 단단히 밀봉되어있는 모습에 별다른 의심을 못 하고 검수 확인 도장을 찍었었다.
그리고 소울리퍼가 들어있는 상자는 사설 경매장에 출품되었고, 위상 관의 새로운 테마를 찾던 박물관장의 눈에 띄어 위상관 기획특별전의 테마의 중심이 되어 4월 20일, 국립 중앙 박물관 지하의 위상전시관에 전시되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의한 고등학교 야외 수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거고.
중간에 뭔가 휙 건너뛴 기분이 없잖아 있는데 그 기분은 서류를 살펴보면 휙 건너뛴 게 아니라 사전에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진 계획된 범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4월 24일 중앙박물관으로 야외 수업을 간다는 정보.
의한 고등학교에서 그때쯤 전교생을 절반으로 나눠 매년 산과 박물관을 번갈아 간다는 이 정보는 의한 고등학교의 학생이라거나 관련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화면에 나와 있는 서류는 의한 고등학교 교무 회의록.
회의록에는 내가 A 조에 포함되어있다는 내용이 확대되어있었다.
이쯤 되니 기자들이 웅성거리면서 "저게 진짜야? 일본에서 그랑 블루 마스터를 죽이려고 저렇게나 조작했다고?", "능력자 연합은 뭘 했길래 저런 것도 예지하지 못한 거야?" 같은 이야기가 연신 흘러나온다.
“[조용.]”
목소리에 마나 시브를 심어 나지막이 입을 여니 당장에 소음이 사라진다.
“다음을 보시죠.”
다음은 5월 15일, 날 습격했던 자들이 이동했던 코스, 일본에서 필리핀으로 이동해 베트남에 들렀다가 홍콩을 거쳐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상하이로 들어가서는 옌타이 시의 동 강으로 이동한 증거.
그리고 이동에 사용했던 물건들, 여권들과 중국 캉다오 인근에서의 목격자 진술과 증명사진, 위성을 통한 이동장면이 차례대로 화면에 떠오른다.
무엇보다 날 습격했다가 죽임을 당한 습격자들의 신체 사진이 전부 떠올랐는데 얼굴과 손바닥이 염산으로 뭉개진 모습과 습격자 남녀의 몸 일부에 있던 문신의 흔적을 추적해 일본 능력자 단체, 천위보황단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날 습격하기 위한 날짜와 장소에 대한 정보는 타임 리버의 부대장으로 있던 스파이, 소피아 에델베르그를 통해 나에 대한 일거투 일수족, 모든 정보가 일본에 넘어갔으며, 그 개년의 사진과 함께 개년이 일본의 스파이 짓을 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도주해서 잠적한 상태라는 것도 알려줬다.
모든 영상 재생이 끝났지만, 기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하지 말라고 전신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기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말하면 그 사람은 나랑 동급의 능력자인 셈이다.
“전 일본에 딱히 잘못한 거 없어요. 잘못이라는 단어도 웃기네요. 전 일본은커녕 제주도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일본은 절 죽이려고 2번이나 수작질을 부렸어요. 거기다 두 번 다 인명 피해가 났고요. 대체 제가 뭘 잘못했길래 일본이 절 죽이지 못해 안달이죠?”
은은한 웃음을 지으면서 마이크를 쥐고 기자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지만, 기자들은 연신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날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도 선언하려고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시간 있으려니, 가장 앞줄에 있던 기자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입을 연다.
“무, 무슨 선언입니까…?”
“절 죽이려 들은 집단이 소속된 곳이 일본의 우국 신민회라고 하더라고요.”
우국 신민회라는 단어에 내외신 기자들 전원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나도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우국 신민회에 관해 알아봤더니 지금 일본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가입해있는 단체명이라더라. 말 그대로 극우단체 뺨치는 활동으로 우리나라를 시도 때도 없이 헐뜯고 물어뜯는 개놈의 자식들이 모인 곳이더라고.
“그래서 일본에 요구할게요. 절 습격하는데 한발이라도 걸친 자들을 전부 한국에 넘겨주세요. 뭐, 싫다면 넘겨주지 않아도 돼요. 대신 고작 18살의 어린 소년이 위상 세계 임의 출입 허가이라는 흉악한 무기를 쥐고,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않은 10대 청소년이 제어조차 하지 못할 강대한 힘을 가지고 일본에 어떤짓을 하게 될지 직접 체감하게 될테니까요.”
방긋 웃으면서 화면에 확실히 담기게끔 손가락을 팅겨 호박색 공간의 벽을 모두 치우고 천천히 공간의 벽을 계단처럼 만들어 그 위를 걸어 올라가 공중에 서서 기자들을 내려다본다.
그런 내 오른쪽에는 프랑 공중에 떠서 금빛 전류를 몸 주변으로 흘리기 시작하고 왼쪽에는 히아리드가 하늘의 지팡이를 두 손에 쥐고 눈을 감은 채 내 뒤에 조용히 떠 있었다.
미호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여섯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공중을 날아다니며 기자들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대형 패널 TV에서 과장은 보태지 않은 내 능력에 대한 PR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영상이 끝날 무렵에 패널을 통해 거대한 폭발이 기자들의 눈과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할 무렵 천천히 오른손을 공중으로 뻗었다.
그런 내 모습에 내외신 기자들이 일제히 내 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날 찍는 바람직한 기자들에게 시선을 준 다음 1만 TP 마포를 빠르게 만들어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쏜살같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간 주먹만 한 푸른 구슬은 잠시 후,
쿠구구구구구구구….
“허억?!” “꺄아악!” “Ugh!” “oh my god!!” “¡Bu! ” “ши́кань!”
어둠을 모두 걷어내면서 일순간 하늘에 태양을 연상시키는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대기를 진동시키며 우렛소리를 퍼트리고 눈이 멀듯 한 빛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굉음이 지상으로 쏟아져내리니 기자들이 자기네 나라 언어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우렛소리와 진동하는 대기에 의해 몸이 떨리는 걸 느끼며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리는 빛의 폭발을 올려다봤다.
저걸 일본땅에 터트리면 세계 사람들은 날 뭐라고 생각하려나. 파괴자? 학살자?
마포가 폭발하며 터져 나온 진동이 사라지고 빛이 사그라지며 어둠이 다시 몰려올 무렵 기자들의 공포와 경악에 물든 얼굴이 내게 향한다.
옥상 전체의 서치라이트가 켜져 옥상을, 공중에 떠 있는 날 비춘다.
“이건, 그랑 블루도, 한국도 아니고 능력자 연합도, IWO의 의사 역시 일체 관계되지 않은 온전히 제 의지에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 위에 다시 마포, 시퍼런 구슬을 만들어내니 다시 한 번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관계자들을 전부다 넘겨주기 전까진 하루에 한 번, 일본의 어딘가에 마포가 떨어져 내릴 거예요.”
여러 대의 카메라에 시선을 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 그 전에 절 죽이려든 놈들 전원을 한국에 압송시켜주면 돼요. 어때요, 참 쉽죠?”
기자들을 한번 돌아보며 쓰윽 웃었더니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흠칫하면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품에서 하나의 블루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다운 보석같은 에너지원, 고위급 위상석을 들어올렸다.
“마지막으로 6일 뒤, 8월 1일 그랑 블루 발족식 때 10개의 고위급 위상석의 경매가 이루어질 거에요. 물론 이건 제가 구한 거에요. 자세한 건 저 뒤에 걸어오는 총무부장님과 사업지원부장님한테 물어봐 주세요. 그럼.”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혜령이 이모에게 고위급 위상석을 휙 하고 던졌더니 이모가 화들짝 놀라면서 두 손으로 위상석을 받아낸다.
내 돌발행동에 경악성을 터트리는 몇명이 있었지만 내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자들은 단 한마디의 질문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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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나라 지진 나는거 보면 우리나라도 불안불안....
PS. 00:55 누락된 부분 추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