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4 민물 인어? =========================================================================
그곳에는 많이 야윈 세 인어가 앉아있었다. 야위다 못해 병에 걸린 듯한 세 인어는 우릴 발견하고도 힘이 없는지 물고기 다리 부분을 호숫가에 집어넣은 채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화연이를 땅에 내려준 다음 인어들을 살펴보니 셋 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녀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는데 셋 다 얼굴에 생기가 없고 볼이 홀쭉해졌으며 각질이 일어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해 보인다.
살집이 통통했던 몸은 2달 사이에 살이 극심하게 빠져 도톰하게 부풀어 올라있던 두 가슴은 축 늘어져 할머니들의 가슴을 연상시키게 하고 갈비뼈가 도드라져 보이며 뱃가죽이 등가죽과 붙을 지경이었다.
물고기 다리는 이미 윤기를 잃고 허옇게 뜨기 시작하고 비늘도 많이 벗겨지고 있었다. 심하게 벗겨진 곳은 시뻘건 속살이 드러날 정도였는데 특히 제일 작았던 인어의 상태는 참혹하다고 할 정도였다.
세 인어 중 가장 작았던 인어는 거의 뼈만 남은 모습으로 심장 박동도 미약하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제일 큰 인어의 가슴에 안겨있는 모습이, 곧 죽을 거 같아 보였다.
물고기 다리는 이미 태반의 비늘이 벗겨져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안녕. 오랜만인데 잘 지내지 못한 모습이네.”
뻐끔….
제일 작은 인어를 안고 있는 가장 큰 인어는 흐릿한 시선으로 날 올려다보더니 힘없이 입을 열었다 닫았는데 입을 여는 순간 입안이 바짝 마르고 백태가 낀 게 보였다.
“피하라고 했었는데…. 피할 곳이 없었나 보네.”
뻐…끔.
음. 키순으로 세 인어를 첫째 둘째 셋째로 구분해야겠다. 외형에서 조금 차이가 나지만 자매처럼 닮은 모습이니까.
힘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첫째를 보다가 옆을 보니 둘째는 첫째의 옆에 모로 누워 날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한쪽 눈에 백내장이 낀 게 보였다.
화산재를 마셨다고 상태가 저렇게 심각해지나? 온갖 질병이란 질병은 다 걸린 거 같은데.
특히 셋 다 위상력이 꽤 감소해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땐 첫째가 911이었고 둘째가 822 막내가 757이었는데 첫째는 800 언저리고 둘째는 671, 막내는 507로 중위급에서 중하위급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설마 위상력이 500 아래로 내려가면 죽는다거나 그런 거 아냐?
프랑과 화연이는 내 옆에서 조금 찌푸린 눈으로 인어들을 보고 있었다.
“화연아. 음용 팩 세 개 줘봐.”
나와 인어들을 한번 살펴본 화연이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배낭에서 압축 음용 팩 세 개를 꺼내 나에게 건네준다.
“일단 이거부터 마셔.”
내가 건네주는 팩을 받아든 첫째 인어는 이게 뭐냐는 듯이 날 올려다봤다. 그래서 팩 하나의 끝부분을 찢어서 첫째 인어의 손바닥 위에 살짝 떨어트렸더니 첫째 인어는 눈을 살짝 뜨면서 내 손에서 음용 팩을 받아 한 모금 마셔본다.
- 뽀글?!
오, 뽀글거리네. 물기가 없어서 뻐끔거린 거였나.
첫째 인어는 바로 자신의 품에 안겨 늘어진 셋째 인어의 입에 음용 팩을 기울여 조금씩 적셔주니 셋째 인어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물을 받아마시기 시작한다.
음용 팩의 절반 정도를 셋째에게 먹인 첫째는 몸을 돌려 둘째의 입에도 음용 팩을 갖다 대주니 둘째도 힘없는 동작으로 손을 올려 음용 팩을 받아서 꼴깍꼴깍 마시기 시작했다.
프랑은 작은 인어들부터 챙겨주는 첫째의 모습에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지고 화연이도 다시 한숨을 내쉰다.
첫째는 다른 팩 하나를 뜯더니 둘째에게 또 건네주고 마지막 팩을 뜯어서 셋째의 입에 다시 흘려 넣어주는데….
자긴 한 모금만 마시고 둘째랑 셋째한테 다 주네. 그 모습을 보던 화연이는 배낭에서 음용 팩 하나를 더 꺼내더니 첫째에게 건네준다.
“너도 마셔라.”
첫째의 눈동자에서 고마움이 묻어나며 화연이의 손에서 음용 팩을 받아든 첫째는 셋째에게 팩 하나를 다 마시게 한 다음 자신도 마셨다.
미호는 인어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눈도 돌리지 않고 셋의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는데, 생선을 눈앞에 둔 고양이의 표정이 이러할까 싶다.
물을 마신 세 인어는 안색이 조금 밝아지긴 했지만 이대로 두면 100% 죽겠지. 첫째 인어의 표정을 보니 은인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감이 잔뜩 오르긴 한 거 같다.
그럼 시작해볼까. 우선 인증기의 영상 기록 기능을 켜고 첫째에게 입을 열었다.
“그 두 인어는 네 가족이야?”
- 보글.
“동생?”
- 보글보글.
고개를 끄덕는걸 보니 역시 자매였구나.
“나는 내 능력의 실험체가 되어줄 존재를 찾고 있어.”
- 뽀골?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셋째 인어와 물을 마시고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둘째 인어를 내려다보던 첫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무슨 이야기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에다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냥 치료해줘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넌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 내 실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면 너랑 네 동생을 회복시켜줄게. 난 회복 능력을 쓸 수 있거든.”
그러면서 손을 뻗어 첫째 인어의 가슴팍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힐링 터치를 사용하니 내 손가락이 닿은 지점에서 푸른 빛이 점점이 퍼져나가더니 칙칙한 회색을 띠던 피부가 약간이지만 우윳빛을 되찾고 안색도 좋아지는 게 보인다.
회복이 통해서 다행이다.
“괴롭히는 실험은 아니야. 어쩌면 네가 강해질….”
- 뽀그륵!
눈을 동그랗게 뜬 첫째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더니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품에 안고 있던 셋째를 내 앞에 들이밀며 간절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협조해주는 거라고 믿을게.”
꽤 상태가 나쁘니 3단계를 쓸까. 내 공간의 벽에 두 팔과 날개가 날아가 버린 히아리드도 순식간에 회복시켰으니까 그 정도면 되겠지.
우선 3단계 힐링 웨이브를 쓰니 푸른 물결이 퍼져가며 세 인어의 몸을 감쌌다가 흘러가 버린다. 그와 함께 가장 심각했던 셋째의 물고기 다리에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며 비늘이 생겨난다.
허옇게 뜨던 꼬리지느러미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시커멓게 죽어가던 얼굴의 안색도 원래의 우윳빛으로 되돌아왔지만, 비쩍 마른 모습은 그대로다.
둘째도 눈을 뜨더니 자신의 물고기 꼬리를 보다가 손으로 비늘을 만져보며 울먹이기 시작하는데 백내장이 꼈던 왼쪽 눈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인어들의 심장 부근에 불안하게 흔들리던 위상력 덩어리도 잔잔한 모습을 되찾았다.
- 뽀글? 보글보글!
- 보그륵!
첫째는 많이 마르긴 했지만, 병색이 사라진 둘째의 모습에 눈물을 머금고 끌어안았다. 곧이어 셋째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제 언니들과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그중에 나와 프랑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 뽀그르르!
그리고 세 자매는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세 인어는 고마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보글뽀글뿌글거리는데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나눌 방법이 없어? 우리 귀에는 너희 이야기 소리가 보글보글 거리는 걸로 밖에 안 들려.”
살아났다는 기쁨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던 인어들이 진정한 건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계속 뽀글거리면서 우리한테 뭔가 말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물어봤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호수와 우리를 번갈아 봤다.
“호수는 왜? 물이 있어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 보글보글
“진짜? 물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첫째 인어의 반응을 지켜보던 프랑과 화연이는 서로 숙덕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물속에서 진동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가 보군요.”
“그런가 보네요. 하지만 저 호수는 화산재가 가득 가라앉아있는 데다 물 성분이….”
“그러니 저 인어들도 물 밖에 나와 있는 거겠죠. 그런데 호수에 인어라니,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걸까요.”
“바다만큼이나 넓으니까 여기서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프랑과 화연이의 대화를 듣다가 첫째에게 다시 물었다.
“저 물속에는 못 들어가지?”
끄덕끄덕
“그럼 대화를 나눌 방법은 네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거나 하는 방법뿐이겠네.”
“아, 서하? 호수는 아니지만 커다란 강이 엘리펀트로스 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며칠 나아가면 있긴 해요. 거기라면 이 인어들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프랑의 이야기를 듣고 아까 하늘 위에서 살펴본 경치를 떠올리지만…. 프랑이 말한 곳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래? 그건 거인 프랑의 걸음걸이를 기준이지?”
“네에. 여기에 올 때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럼 일단 이 녀석들을 데리고 이동하자.”
나와 프랑의 이야기에 첫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꼬옥 감더니 기도하는 모습과 비슷한 자세를 잡는다.
그와 동시에 인어의 체내에 있는 위상력이 움직이더니, 물고기 비늘이 모이고 꼬리가 줄어들고 지느러미가 서서히 작아지더니, 꼬리가 두 갈래로 나뉘며 부분부분 비늘에 감싸인 두 다리가 생겨난다.
“오….”
첫째는 생겨난 다리를 나에게 보란 듯이 쫙 벌리는데,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해초 색 음모에 뒤덮인 인어의 음부가 고스란히 눈앞에 드러난다!
동시에 잽싸게 나선 화연이는 인어의 발목을 잡아 오므린 다음 옆으로 홱 잡어던 지고 프랑은 날 흘겨보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곧이어 둘째도 끙끙거리면서 힘을 쓰더니 힘겹게 다리를 만들어냈는데 첫째보다 비늘도 많이 붙어있고 골반 쪽에는 지느러미가 그대로 붙어있는 데다 음부는 온통 비늘로 가로막혀있어 첫째처럼 완벽하게 사람의 다리로 만들지는 못했다.
셋째도 다리를 만들어내려고 끙끙거리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게, 위상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런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첫째는 잠시 걷는 연습을 하더니 셋째의 꼬리지느러미를 잡고 TP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셋째도 용을 쓰니 겨우겨우 비늘이 잔뜩 뒤덮인 사람 다리 모양 같은 게 생겨났다.
…TP를 주입하는 게 가능해?
어쩐지 지친 표정의 첫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방금 셋째 다리에 TP를 집어넣은 거야?”
당연하겠지만 첫째는 우리가 쓰는 이형종, 위상력, TP 같은 단어는 하나도 모르기에 잠시 시간을 들여 개념을 이해하게끔 설명해주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TP가 아냐?”
끄덕끄덕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 꽤 답답하네.”
마치 프랑이랑 독순술로 대화를 나누기 전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아무튼, 이 녀석들을 어떻게 데려가나 했는데, 그냥 나랑 화연이가 셋을 나눠 업기로 했다. 화연이는 등에 첫째를 업고 셋째는 품에 안기로 했고 나는 배낭을 앞으로 메고 등에는 둘째를 업고 가기로 했다.
“가방은 제가 들게요!”
내가 배낭까지 맨 걸 보고 배낭 정도는 자신이 들겠다며 프랑이 나섰지만….
“으으읏…!!”
배낭을 받자마자 배낭의 무게에 앞으로 발랑 자빠져버렸다.
배낭에 깔려서 바동거리던 프랑은 곧 배낭을 통과해 일어서더니 배낭의 끈을 잡고 안간힘을 쓰지만 배낭은 꿈쩍도 안 한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쓰는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으니 프랑은 울상이 돼버렸다.
첫째와 셋째는 화연이한테 풍겨오는 서늘함에 기가 죽은 모습이고 화연이도 이형종을 안고 업고 가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이 별로 안 좋다.
아니, 내 등에 업힌 둘째를 보는 표정이 험악했다!
“조금만 참아.”
굳은 표정의 화연이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아주니 그제야 조금 안색이 풀린다. 만약 내가 실수로라도 다른 여자를 품에 안거나 했다간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쪼개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빨리 가지.”
화산재가 쌓여 죽어버린 회색의 숲을 빠져나오니 회색빛 양탄자가 깔린듯한 구릉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엘리펀트로스 산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화산폭발의 영향인지 아직도 흰 연기가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었다.
“굉장한 모습이군.”
화연이 말대로 수천 미터의 산이 녹아내려 시커멓게 변해 용암이 굳어있는 모습은 침이 절로 삼켜질 모습이다.
비교적 뾰족하던 모습의 산은 온데간데없이 산 봉우리의 2/3 가량이 사라지고 가운데가 움푹 패여 그 틈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운석에 맞은듯한 모습인걸.
산자락을 비롯한 산 중턱까지 자라있던 나무들은 죄다 불타 사라졌고 시커먼 용암에 뒤덮인 모습만 남아있었다.
일단 둘째를 내려놓고 공간의 벽을 밟고 10km 상공까지 뛰어올랐는데 중간에 강풍이 몰아쳐서 떨어질 뻔했다.
잽싸게 수십미터짜리 공간의 벽을 치고 그 위를 뒹굴었는데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만큼 놀랬다…. 나만큼이나 놀란 프랑은 사색이 돼서는,
“제, 제가 보고 올 테니 서하는 내려가서 기다려주세요!”
“프랑은 영혼석에서 4km까지밖에 못 살펴보잖아? 지금처럼 판을 넓게 만들어서 올라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고 애써 담담한 척 입을 열었다.
내 여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쏘냐!
아무튼, 구름도 없는 곳이라 최대한 높이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프랑이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곳을 보니 과연 강이 보인다.
“저쪽으로 가면 이형종 들도 보이고 그러겠지?”
“네. 식량도 현지 조달할 생각으로 안 챙겨왔는데 얼른 가요.”
“응. 프랑의 전기직화구이 맛을 또 보겠네.”
“후후. 기대하셔도 좋아요.”
헤에~ 기대해도 좋다니, 연습을 많이 했나 보다. 조미료도 챙겨왔으니까 훨씬 맛난 걸 먹을 수 있겠지?
강이 있는 위치와 방향을 확인한 후 땅으로 내려와 다시 인어들을 등에 업고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펀트로스 산을 지나칠 때 지하 용암 동굴을 살펴봤는데 화산폭발 전이나 지금이나 용암의 양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대신 건물들의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나와 프랑이 따라 내려갔던 통로도 막혀있었는데, 정체 모를 고위 이형종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흐음… 지하의 용암동굴에 있던 고위 이형종이 안 보이네.”
- 뽀글?!
“안 보이나?”
“응. 위상력이 감지가 안 돼.”
“화산폭발의 충격으로 소멸 한 걸까요?”
“고위 이형종이 자연재해에 죽을 수도 있는 걸까?”
귓가에 연신 보글거리는 물방울 소리는 무시하면서 공간 지각에 들어오는 용암 동굴을 다시 한 번 스캔해보지만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다.
“없는 녀석을 어찌할 수도 없으니 빨리 가자. 슬슬 저녁때가 다가오는데 잿더미 위에서 야영할 수는 없잖아?”
“그래.” “네!”
앞에는 42kg의 배낭을 메고 뒤에는 87kg의 인어 아가씨를 업고 있어서 그런지 신체 중심이 막 흔들린다. 이 상태에서 뛰는 것도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화산재가 그득 쌓여있던 곳을 벗어날 때쯤에는 균형을 잡으면서 달리는데도 익숙해져서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전력 질주해도 공간의 벽을 치면서 실수 없이 달릴 수 있겠는걸.
그리고 4.5km 범위 안의 수십 마리의 이형종이 공간 지각에 들어와서 마나 레이를 점사로 쏘아내 다 죽이려…했지만, 갑자기 초거대 거북이의 말이 떠올랐다.
예상이긴 하지만 양아치 이무기도 그 거북이가 막아준 걸로 아는데….
쩝. 좀 있다 그냥 쫓아내야겠다.
- 꼬륵?!
음? 갑자기 둘째가 다급한 보글거림을 내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미호가 둘째 인어의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야야. 미호 너 왜 그러냐.”
끼웅! 우물우물 키웅!!
으르릉거리면서 첫째의 검지를 잘근잘근 물어대는걸 보다가 둘째의 얼굴을 살펴보니 고통에 눈썹을 찡그리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미호를 어찌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둘째가 아까부터 살살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데 미호가 문 손가락도 그 손인 걸 보면, 둘째가 날 만지는 게 마음에 안 드나 보다.
하늘 높은 곳에서 본 강은 실보다 조금 더 굵었지만 직접 눈에 들어온 강은 강이라기에 너무 거대했다. 폭이 한강의 3배는 될 거 같다.
“자, 내려.”
둘째의 엉덩이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몸을 털었더니 - 꼬록?! 하면서 내 등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화연이도 셋째를 강에다 집어 던져버렸는데 첫째는 분위기를 읽고는 잽싸게 손과 다리를 풀어서 화연이의 등에서 떨어졌다.
“일단 주변에 있는 이형종은 다 쫓아낼까.”
“죽이지 않고 쫓아내는 건가?”
화연이는 슬금슬금 첫째에게 기어가는 둘째와 강에서 빠져나와 첫째에게 다가가는 셋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응. 죄다 죽여버릴까 했는데 초거대 거북이 부탁도 있고 해서 쫓아내려고. 그래도 다가오면 다 죽여버릴 거지만.”
세 인어 자매는 내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떻게 쫓아내실 생각이신가요?”
“대충 200km 상공에서 마포 8,000 TP 짜리 터트려주면 다 도망가겠지? 머리 위에 수십 메가톤의 핵폭탄이 터지는 셈인데 도망가지 않는 놈들은 죽여달라는 걸로 간주할 거야.”
현실에 있을 때 내 마포의 위력이 뭐에 비견될까 싶어서 검색해봤다. 그 결과 1952년에 아이비 마이크라는 14메가 톤의 핵폭탄의 폭발 실험을 했다던데 그 핵폭탄의 간접 영향권까지 모두다 합쳤을 때가 내 마포 폭발 범위랑 비슷하더라.
어쨌든 200km 너머에서 터지게끔 조절해서 쏘아 올리고 바로 정사각형으로 우리를 감싸도록 공간의 벽을 펼쳤다. 바로 위에서 터트리는 거니 혹시나 충격파에 프랑이나 화연이가 다치면 안 되니까.
“야. 그거 만지면 죽어.”
- 뽀골?
셋째는 호박색 공간의 벽이 신기한지, 비쩍 마른 몸으로 여유를 두고 펼친 공간의 벽에 비칠거리며 다가가길래 주의를 줬다.
그래도 이해를 못 한 모습이길래 다가가서 녀석의 손을 잡고 와 첫째에게 밀었다.
그 순간 터진 마포는 눈 부신 빛과 함께 충격파를 뿌려대지만, 공간의 벽은 빛을 제외한 충격과 진동을 모두 막아냈다.
아니, 상처를 입힐만한 수준은 모두 막아내는 거 같다. 그래도 세 인어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모습이었나 보다.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공간 지각 범위 안의 동물 이형종 할 거 없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게 느껴진다.
“꽁지에 불붙은 거마냥 도망가네.”
“앗. 전부 도망간 건가요?”
“어? 그런데?”
하늘에 약간의 폭발의 흔적만 남은 모습을 올려다보던 프랑은 내 중얼거림을 듣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저녁거리들도 다 도망갔겠네요.”
“…아.”
얼빠진 내 표정을 보며 피식하고 웃은 화연이는 족히 수십 년은 살았을 법한 강변의 나무 아래 가방을 내려놓더니 내 옆으로 와서 내 손을 잡았다.
“칼로리메이트는 챙겼으니 그걸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지. 일단은 저것들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저것들은 마포의 폭발에 놀라 서로 부둥켜안고 수풀에 자빠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눈치챈 첫째가 겨우 진정하고 두 동생을 다독인다. 그러면서도 날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것들부터 정리해야지.
내 목을 간지럽히는 미호의 폭신한 꼬리를 느끼며 첫째에게 다가갔다. 세 인어 자매는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데 비쩍 마르고 야윈 여자애들이 날 무서운 걸 보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니 좀….
내가 나쁜 놈 같잖아? 회복까지 걸어줬는데!
“여기면 네 두 동생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이제 약속했던 시험을 해보고 싶은데.”
둘째와 셋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와 첫째를 번갈아 보고 첫째는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동생을 꼭 끌어안으면서 - 보글보글 거린다.
그러면서 강의 물살을 따라 가르키는게 저 물길을 타고 가라는 건가보다.
아니.
“잠깐. 나 지금 굉장히 기분 나쁜걸 깨달은 거 같은데, 첫째 너, 지금 내가 널 죽일 시험을 할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게? 지금 날 보는 표정이 '그런 거 아니었어?' 하는 표정이다!
“…콱 진짜 잡아먹어 버린다?”
위협 아닌 위협에 둘째와 셋째는 겁에 질려 자신들의 언니를 부둥켜안는데 첫째는 눈치가 있는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리와. 일단 말이 통하는지 물속에서 시험해보자.”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첫째는 허리를 잡고 늘어지는 두 동생을 뿌리치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두 다리를 물고기 꼬리로 바꿨다. 황급히 뒤따라 온 두 동생도 인어 본연의 모습을 돌아가더니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강가를 헤엄치며 즐거워한다. 저것들은 붕어 대가리인가….
내 뒤를 따라온 화연이는 허리춤의 칼 손잡이 근처에 손이 가 있는 걸 보니 여차해서 상황이 이상해지면 바로 목을 쳐버릴 생각인 거 같다.
일단 인어의 손짓대로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잠수했더니 눈앞에 첫째의 빙긋 웃는 미소가 보인다.
- 이야기가 들려?
“부그르륵.”
아, 틀렸다. 이대로는 내가 말을 못해.
수면으로 떠올랐더니 나와 함께 잠수했던 프랑과 화연이도 일어서면서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입을 열었다.
“역시 물을 진동시켜 이야기를 하는 거였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드러났으니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해보지.”
“응. 물가에 올라와. 어떻게 할 건지 알려줄게.
============================ 작품 후기 ============================
노블레스란을 볼 때마다 배너에 내 맘대로가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한데 그 덕분인지 새로 보러오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어떻게 아냐면 40화 내외로 못 버티고 쓴소리를 해주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지셨거든요. ㅠ
출판 계획할 때 출판 담당자분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몸이 부들부들
신종 수치 플레이인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