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09화 (209/517)

00209  자기 PR의 시대  =========================================================================

영은이 인생에 흑역사 하나가 추가된 다음 날. 다음날이라기보단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으니 아직 오늘인가.

아침에는 나랑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출근해버린 영은이를 본 프랑과 화연이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길래 솔직하게 대답해줬다가 변태 짐승 소리를 들어버렸다.

“…화연이는 아직 나한테 소원 하나 들어줄 거 있지? 프랑도 정액 관장하는걸 보고 싶은데.”

어젯밤에 욕실에 주저앉은 영은이가 눈물을 흘리는걸 본 터라 두 번 다시 안 그래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그냥 위협용 멘트만 날렸을 뿐인데 화연이는 물론이고 프랑도 창백한 얼굴로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학생의 신분으로 7월 24일 금요일인 오늘 학교에 나가야 했겠지만 학교는 1박 2일의 임해합숙으로 텅 비어있었다. 정상 수업 중이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 나갔겠지만.

“준비는 잘했어?”

“준비할게. 뭐가있다고. 아, 운전에 집중해! 김 여사 소리 듣고 싶어?”

누나가 운전하면서 자꾸 날 보며 말을 걸길래 한소리 해줬더니 당장에 주둥이가 튀어나온다. 에휴.

나와 프랑은 누나의 서버 밴을 타고 서해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 능력을 촬영해서 그랑 블루와 나에 대한 홍보 영상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는데 한두 명이 이동하는 게 아니고 능력자 연합에 정부에서도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바쁜 화연이나 혜령이 이모를 대신해 누나가 동행하는 거다.

기왕 홍보하는 거, 나와 함께하는 프랑과 내 펫인 히아리드는도 함께 찍기로 했는데, 히아리드는 날개 때문에 차 안에 타는 게 힘들어 하늘을 날아 뒤를 따라오게 했다.

물어보니 시속 200km까지 날 수 있다더라. 신체 강화 타입은 마하의 속도로 날아다닌다던데 자긴 속성 타입이라 느리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라던가 장비의 준비라던가 그런 거 있잖아.”

“필요 없어. 난 지금까지 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치웠다고.”

“뭐? 너 마지막에 내 체인 다크 썬더 아니었으면 플라우비스 종족 못 잡았을 거잖아!”

혼자라는 말에 누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박하지만 나도 할 말 있거든?

“누나 때문에 잘 못 싸운걸 생각해야지! 시간이 걸리기야 했겠지만, 원거리 승부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잡았을 거라고!”

“흥 잘났어. 정말.”

아침에 PR 영상을 찍기 위해 출발하려니 미호가 따라오고 싶어서 낑낑거렸지만, 집에 두고 나왔다.

내가 위상 세계에 있는 동안 아빠 병원에 있는 수의사에게 검사를 받아본 결과 미호는 아직 어린 아기라 먹고 자고 반복할 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형종이라 해당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어린애기라니까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건 안 좋겠지.

풀이 죽은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TP를 조금 먹여준 다음 쿨쿨 자고 있으면 갔다 올 거라고 해주니 마지못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우리를 끄응끄응거리면서 바라보았었지.

아무튼, 우리가 타고 있는 차 뒤편에는 40인용 대형 버스에 대외홍보팀의 팀장인 안현 중씨와 함께 홍보팀의 영상팀이 영상촬영자재를 들고 함께 이동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능력자 연합의 버스가 달리고 있었으며 뒤쪽에는 정부 이능력부처의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연합에서는 대외운영팀장인 차훈. 저번에 에너지 이터 일로 만났던 그 사람이 다시 왔는데 알고 보니 대외운영 1팀이랑 2팀으로 나눠져있더라.

1팀은 차훈 팀장이 홍보와 외부적인 일을 맡고 2팀은 나랑 전화로만 대화를 나눈 김지훈 팀장이 이형종과 능력자 연합 한국 지부의 내부 일에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특히 김지훈 팀장은 특무대 소속이기도 한데 이형종 관련 일이 특무대와 겹쳐있어서 같이 한다든가.

정부 국무조정실 이능력부처의 버스에는 처음 보는 인물이 타고 있었는데 3급 공무원이라는 굉장히 깐깐해 보이는 아줌마가 타고 있었는데 처음 만난 장소에서 만화에서나 보던 삼각형 모양의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위아래를 살펴보는데, 그 모습에서 호의가 안 보여서 찜찜함이 느껴졌다.

이능력부처에는 김학준 차장 위로 한 명이 더 있고 아래로 두 명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라는 삼각 뿔테안경 아줌마는 과장이라고 불리는 거 같았다.

그러니까 그랑 블루와 내 PR을 위한 영상을 찍기 위해 이동하는데 정부와 연합에서 떨거지로 따라붙은 거지.

뭐, 내 능력에 관해 널리, 그리고 빨리 퍼지면 퍼질수록 나야 좋으니까 허락해줬다.

그렇게 되다 보니 총인원이 100명이 넘어가는 대규모 이동이 됐지만 내가 신경 쓸 사람은 지금 이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얌전히 나와 누나의 투닥거림을 듣던 프랑은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서하는 정말 잘났는걸요?”

“…….”

나와 누나는 프랑의 반응에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있었더니 정말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프랑이었다.

서울을 벗어나 인천 국제공항이 있는 용유도에 도착한한 대외홍보팀은 영상 촬영을 위해 최고급 기재를 펼쳐놓고 여러 가지 시점에서 내 능력을 체크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하철수가 진입해간 오피스텔의 방에 공간의 벽이 유지되고 있단 말이죠?”

[네. 다른 이상 없이 유지되고 있는 걸 확인했어요]

“알았어요. 다른 일이 생기면 전화해 주세요.”

[후후. 마스터도 PR 영상 멋지게 찍으시길 바랄게요!]

혜령이 이모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끊으니 프랑과 히아리드가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온다.

누나의 주도 아래 우리 대외홍보팀을 중심으로 정부에서 나온 무슨 무슨 과장이라는 깐깐한 외모의 여자랑 차훈 팀장이 모여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데, 대충 독순술로 훔쳐보니까 어떤 장면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각도에서 찍을지에서부터 무슨 능력을 쓸지, 어떻게 보여줄지를 정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짜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거 같아 옆에 다가가서 대충 능력 시범 보여주고 그걸 찍고 돌아가면 안 되냐고 했더니 누나가 "넌 재미없는 영화 보면 영화 찍은 감독에서부터 영화배우들까지 욕하는 주제에 대충 찍으려고 해?"하는 말에 슬쩍 자리를 피해버렸다.

“근데 주변에 비행기 날라오는 거 아냐? 여기서 능력 시범 보이다가 비행기가 휩쓸리면 큰일 나는데.”

“화연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행기 노선을 전부 바꿔서 오늘 하루는 김포 공항으로 항로를 변경했대요. 하루도 되지 않아 비행기의 경로까지 막 바꾸다니, 영은의 입김은 얼마나 강한 걸까요?”

“…깊게 생각하지 말자.”

“…네.”

히아리드는 내 머리 위 10m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는데 우리 홍보팀에 정부 쪽 사람이나 연합할 거 없이 틈만 나면 히아리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프랑과 누나는 히아리드를 끌고 1층 쇼핑몰에 내려가 수십 가지 속옷과 몸에 맞는 바지와 치마, 등이 파인 셔츠를 비롯해서 온갖 잡다 용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왔었다.

그 결과 상의는 등이 전부 패인 흰색 긴 팔 셔츠에 검은색 플레어 롱스커트를 입었는데, 키 160 정도의 인간 기준으로 만든 플레어 롱스커트다 보니 무릎까지 내려오는 어중간한 길이가 됐다.

그래도 외모만 봐서는 그냥 천사인 데다 인간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외모라, 사람들의 시선이 히아리드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시나리오 설정이 끝났는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드론을 띄우고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나와 안현중 팀장, 이능력부처의 과장과 차훈 팀장이 다가온다.

“우선은 평범하게 마포를 한번 쏘아주십시오. 그걸 카메라에 담은 뒤에 다음 구도를 조성해보겠습니다.”

안현중 팀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깐깐 아줌마가 날 보며 맘에 안 든다는 듯이 입을 연다.

“아무리 대통령 각하의 총애를 받는 능력자라지만 이렇게 운항로를 변경하면서까지 특혜를 내려주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

차훈 팀장은 손에 들고 있는 핸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별 말없이 가만히 서 있는데 깐깐 아줌마가 다시 입을 연다.

“어차피 능력자라는 것은 위상 세계에서 사냥만 하게 되는 것인데 굳이….”

“거기까지 하시죠.”

누나가 발끈하려는 모습을 보이길래 내가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뭐라구요?”

“아줌마. 이능력부처 과장 맞아요?”

“무슨….”

“아니, 그렇잖아요. 이능력부처면 누구보다 능력자와 위상 세계에 관해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부의 이능력 부처의 과장씩이나 된다면 내 능력에 대해서 잘 알 텐데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거에요? 내가 기분 나빠져서 정부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어쩌려고.”

내 이야기를 들은 깐깐아줌마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각자의 성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다소 스펙이 떨어져도 여러 사람의 팀워크를 중시해서 레이드팀을 짜는 게 좋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능력이 상위 이형종을 상대하고 잡을 수 있다지만, 혼자서는 아무리 강해도 숫자를 이길 수 없어요. 또한, 검증 때의 그 영상만을 보면 당신의 모습은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고 갖춘 능력을 활용조차 못 하는 한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해요. 저는 롱 레인지 스타일인데 검증을 위해 굳이 인파이트를 벌이는 바람에 추태를 보였죠. 아니었으면 솔리드 스네이크는 접근조차 못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저 위에 날고 있는 저건 아줌마 눈에는 안보이나요?”

“…….”

깐깐 아줌마는 하늘을 선회 중인 히아리드를 올려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안경을 고쳐 쓴다.

“아줌마가 말하는 스펙이 떨어지지만, 팀워크를 중시한 능력자들을 얼마나 모아야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또 얼마나 모아야 저런 녀석을 테이밍할 수 있을까요?”

내 말에 할 말이 없는지 깐깐 아줌마는 얼굴을…. 어라?

젠장 맞게 승질낼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게….

“흠. 각하께서 신경 쓰실만하군요. 조금 전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뭐냐, 갑자기. 적응 안 되게.

개운치 못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입술을 삐죽이고 있으려니 깐깐 아줌마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더니 다시 입을 연다.

“이번에 당신의 PR 영상 촬영에 협조하라는 지시서가 내려오기 전부터, 당신의 검증 영상을 받은 순간부터 솔리드 스네이크 사냥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100번가량 재생해봤지만, 바로 전에까지 제 판단은 그저 우연히 강한 능력을 갖춘 꼬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응? 갑자기 변한 표정에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아줌마는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입을 연다.

“허술한 대응력, 허술한 판단력, 허술한 전투방식, 그리고 이곳에 도착해서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 어슬렁거리며 다가와서는 말도 되지 않는 언행을 하기에 그 생각에 확신을 하게 됐었죠.”

윽…. 그렇게나 엉망으로 찍혔나? 생방송으로 볼 땐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방금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머리 회전 빠르고 감각적이지만 깊게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난 꼬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리드 스네이크의 사냥 영상 역시 영상 촬영을 위해 일부러 불리함을 끌어안고 싸운 거였군요.”

꼬맹이이이? 이 아줌마가!

내가 화난다는 표정을 지으니 프랑이 뒤에서 "참으세요…!" 하면서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진짜….

…다 맞는 말이니까 봐줬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전형적인 놀기 좋아하는 유능한 지휘관 타입인가요. 하지만 지금 그랑 블루 마스터의 세간에 대한 인식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의 저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는걸 명심해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가. 나와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에 대한 판단을 내릴 기준으로 잡을게 검증 영상뿐이니까. 그러니까 허접해 보이는 검증 영상 때문에 날 못 미더워하고 그냥 힘만 센 어린 꼬맹이로 본다는 건가?

그래서 청궁이랑 무화령이 보이콧까지 일으킨 거였나 보다.

만만하게 보여서.

“기억해둘게요. 조언해줘서 고마워요. 아, 줌, 마.”

깐깐 아줌마의 눈썹이 꿈틀하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려서 웃었다.

아무튼,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저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나는 나에 대한 평가를 모른 채 병신처럼 좋다고 실실 쪼개면서 다녔겠지.

으음. 혹시 영은이가 저 아줌마를 일부러 보낸 건가? 따끔한 한소리 듣게끔? 그래서 잠시 인증기를 켜서 영은이한테 문자를 보냈다.

[필독]

[영은이는 깐깐 아줌마를 일부러 보낸 거 맞지?]

영은이에게 보내는 문자를 뒤에서 본 프랑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 지에 대해 이해했는지 눈썹이 역팔자로 꺽여 올라간다. 그 뒤에 휴대폰을 꺼내더니 문자를 막 날리기 시작하는데…. 영은이한테 보내는건가?

아무튼 인증기로 문자를 보낸 뒤에 안현중 팀장과 차훈 팀장, 살짝 분위기가 바뀐 깐깐 아줌마 과장과 셋이서 마저 PR 영상을 찍을 구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의 이야기를 나눈 다음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 공간의 벽을 치면서 1km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찍고, 그곳에서 마탄의 발사 장면과 폭발 장면을 찍는 게 좋겠다는 결론 내렸다.

그리고 대외홍보팀에 속해있다는 로고가 박힌 셔츠를 입은 여자 다섯 명이 우르르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아끌고 우리 그랑 블루 대형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어어?”

“마스터의 메이크업을 맡은 김민주에요. 잘부탁드립니다!”

“““메이컵팀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날 의자에 앉힌 김민주는 연하늘색의 그랑 블루 정복을 입고 있었는데 곧 커다란 메이크업 도구가 가득 찬 상자를 가지고 오고 흰색에 홍보팀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다른 여성들도 뭔가 검푸른 빛이 감도는 내 체격에 딱 맞는 최고급 정장을 가져오더니 수십 개의 커프스단추를 두더니 어느 게 어울릴지 살피기 시작한다.

다른 여성은 자기 몸 크기만 한 네모난 케이스를 가지고 오더니 가방 옆으로 밀어서 여니까 어림잡아 100개가 넘어가는 모양과 패턴과 색이 다 다른 넥타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옆에는 백수십 종류의 넥타이핀이 보인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김민주라는 여자가 내 헤어스타일을 코디하기 시작하고 옆에서는 프랑이 이것저것 숙련된 교관의 모습으로 지시하기 시작했다….

“아. 머리카락은 이대로 해주세요.”

“네? 하지만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는 건…”

“중요한 건 제 얼굴이 아니라 능력이니까 머리카락은 그대로 놔두세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니 김민주는 당혹한 표정으로 프랑을 보는데 프랑도 한숨을 폭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튼 정신없는 메이크업 시간이 지나고 프랑의 시중을 받으면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새 구두까지 신고 나왔는데, 마치 오래 입고 신은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서하! 정말 멋있어요!”

“좀 얼떨떨해.”

프랑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휴대폰으로 내 주변을 날라다니며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뻘쭘한 기분에 누나한테 다가가니 누나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내 모습을 살펴본다.

“우와아~? 이게 누구야. 내 동생 맞아? 다른 사람 같은데?”

“…됐어.”

“뭐가 돼! 잠시 사진 찍게 일루와봐. 앗, 서하야!”

공중 촬영 장비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다가 누나가 카메라를 꺼내는 모습에 전신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공간의 벽을 만들어 순식간에 1km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어휴 참, 호들갑은….

푸른 빛을 뿜으며 공중에 생겨난 호박색 발판을 밟고 순식간에 솟구쳐 오르는 내 모습을 깐깐 아줌마를 비롯해서 차훈과 기타등등들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게 보인다.

호박색 공간의 벽은, 혜령이 이모의 말을 빌리자면 본 순간 위압적인 무언가가 느껴지는 모습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잘 보게끔 큼직한 발판을 만들어 뛰어올랐지!

그들의 시야를 전부 가리며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거대한 호박색의 투명한 벽은 솔직히 내가 봐도 뭔가 있어보인다.

아무튼 좌우 폭 1km에 두께 3m짜리 발판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개미만큼 작아진 사람들의 모습에 시선을 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조금 껴서 시야가 좋지 않은데.

내 옆에 같이 날아오른 프랑과 히아리드는 공간의 벽에 닿지 않게끔 조심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야가 그다지 좋지 않네요.”

“응. 그래도 마포 한번 터트리면 죄다 증발해버릴 테니 크게 상관은 없을꺼야.

그때 지상에서 치누크 헬기처럼 생긴 드론이 촬영카메라를 달고 내 옆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카메라에서 안현중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촬영 준비 올 그린입니다.

“시작할까요?”

-시작해주십시오!

난 숨을 한번 들이쉬고 왼쪽에 떠 있는 프랑과 오른쪽에 떠 있는 히아리드를 한번 본 다음, 손바닥에 1만 TP 위상력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나 프랑을 보면 수십 만짜리 TP를 쉽게 응축하던데 나는 1만 TP를 응축하는 것도 힘드네.”

“후후. 대신 서하의 1만 TP 엘리멘탈 클러스터 밤은 다른 능력자의 1,000만 TP 급이니까요. 그들도 100만 이상을 응축하기 힘들다는 걸 생각해보면 비율은 비슷하지 않나요?”

“으흐흐. 그 말 들으니 조금 기운이 나는걸.”

그리고 응축이 완료된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하는 주먹만 한 마포를 하늘로 겨냥한다.

“일부러 보라고 천천히 응축했는데, 다음번엔 빨리 쏴도 되겠죠?”

-무, 물론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마포를 최대한 빠르게,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대충 100km짜리 폭발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니까 멀리 쏘아 올려야지.

쏘아내는 순간 가속을 붙였더니 초속 1,200m로 쏘아져 나간 마포는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3분 정도 지나면 200km 밖에서 터질거에요.”

-그으…렇습니까?

마포가 뚫고 지나간 부분만 마치 송곳에 찔린 것 마냥 빨려 나가서 구멍이 나 있는 모습을 올려다봤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구름이 쪼끔씩 흩어져있는 푸른 하늘이 참 맑다는 생각이 든다. 이 따가운 햇빛만 아니면 참 좋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정확히 3분 20초가 지나는 순간.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눈을 찌르는듯한 빛의 폭발이 무시무시한 범위로 퍼져나가며 하늘의 구름을 죄다 태워버리고 공기를 진동시키는듯한 굉음을 대지를 두드린다.

-으으아아악!!! 꺄아~ 꺄악! 으악!

헬기 모양 드론에 달린 마이크에서 비명이 흘러나온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옆 나라에서도 다 보이겠네.

마이크에서 들리는 비명을 흘려넘기며 히아리드에게 물었다.

“히아리드.”

=네, 하늘님.=

“넌 저거 버틸 수 있겠어?”

=맞아봐야 알겠지만, 못 버티고 증발할 확률이 80% 이상입니다.=

“그래. 고위 이형종도 못 버틸 확률이 8할이라…. 날 습격 모의했던 공격한 개자식들한테 먹여주기 딱 좋겠네.”

사납게 웃으면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빛 폭발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 마탄이, 날 위해 죽은 5명의 경호원 형 누나들의 혼을 이끌어줄 빛의 지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충분히 되어주고도 남을 거에요.”

-…….

잠시 후 빛의 폭발이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지상의 모습을 확인한다. 여기서 마나 시브를 전신에 집중하고 신체 강화를 최대한 돌려서 뛰어내리면 괜찮…으려나? 폼나게 뛰어내리면 멋질 거 같은데.

…괜히 목숨 걸고 스턴트 무비 찍고 싶진 않아서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지상까지 삼각 점프로 뛰어 내려왔다.

드론 헬기는 수백미터씩 뛰어내리는 내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간단하게 땅에 내려서니 화연이와 누나와 함께 대외홍보팀장이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누나가 입을 열었다.

“와아. 전에보다 더 커진 거 같아. 지름이 120km는 되어 보이던걸?”

“그건 5,000 TP로 쏜 거고. 이번엔 풀 차지해서 쏘아낸 거야.”

“대단하군. 120km 범위의 엘리멘탈 클러스터 밤이라니, 비견될만한 위력의 미사일은 전술핵미사일뿐인가. 거기에 신체 강화 B 클래스에 회복능력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1인 군단이군.”

차훈 팀장이 멍한 표정으로 핸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리는데 옆에 있던 안현중 팀장이 허리를 푹 숙이더니 식은땀을 흘리면서 외친다.

“죄, 죄송합니다! 화면에 비명이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찍어야 할 거 같습니다!”

“네. 그러세요. 지금 한 번 더 쏘아낼까요?”

“아, 넵!!”

황급히 대외홍보팀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니 깐깐 아줌마가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고 차훈 팀장 역시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핸디 카메라를 들고 날 찍고 있었다.

슬쩍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니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아줌마는 어딘가 모르게 심각한 모습이다.

그 이후로 마탄과 마포, 마나 레이를 찍고 인근 횟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프랑과 히아리드가 힘을 합쳐서 광범위한 공간에 먹구름을 만들어내고 바다에 뇌우를 뿌리고 히아리드도 옆에서 빛 벼락을 뿌렸다.

바다에 비처럼 뿌려지는 뇌우와 빛 벼락을 배경으로 가운데 내가 서 있고 오른쪽에 프랑, 왼쪽에 히아리드가 날고 있는 모습은 내가 봐도 환상적이다.

후후후.

그리고 공간의 벽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안현중 팀장은 마지막에 능력자들과의 대련으로 진행하려 했지만 내가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제 능력은 위력 조절이 불가능해요. 제 공격 스킬 가장 약한 마나 탄을 위력을 최소한도로 줄인다고 해도 중위 이형종을 분해해버리는데, 사람들을 상대로 쏘는 건 안됩니다.”

안현중 팀장과 깐깐아줌마와 차훈 팀장은 내 이야기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련을 취소했다. 그러자 나와 대련이 예정되어있던 C와 D 클래스 능력자들은 사색이 되어있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결국, 하늘에 친 공간의 벽에 속성 능력자들이 속성 탄을 비롯해 각종 스킬을 쏟아부어 공격해보고, 히아리드의 빛 벼락과 프랑의 심판의 벼락을 막아내는 공간의 벽을 화면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물론 십수 명의 C~E 클래스 속성 능력자가 전력을 다해 쏟아내는 속성 탄의 파도에 부서지긴커녕 흠집도 나지 않는 모습에 다들 입이 쩍 벌어진 건 덤이었고.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