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07화 (207/517)

00207  돌아왔는데….  =========================================================================

“잘 부탁해요. 지부장 형!”

“하아아아아….”

능력자 연합 오피스텔을 나오며 골이 아프다는 표정의 지부장의 손을 잡고 흔들며 입을 열었다. 뭐가 걱정인지 알 거 같아서 슬쩍 걱정을 덜어줄 겸 약간 노골적으로 느껴지게끔 말이지.

“너무 그렇게 골치 아파하지 마세요. 저는 저한테 우호적인 사람한테 저도 우호적으로 대해준다고요?”

그러면서 시익 웃어주니 지부장은 움찔했다가 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지부장과 수행원을 두고 혜령이 이모가 운전하는 밴에 올라타 그랑 블루 빌딩으로 돌아오는데 내 왼쪽에 앉은 화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렇게 공간의 벽을 쳐두는 걸로 괜찮나? 서하에게 부하가 걸리는 건 아니고…?”

“응, 괜찮아. 마나 시브를 전신에 집중하지 않고 쓰면 약간 부담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10분 20분 쉬지 않고 연속으로 쳐댈 때의 문제지 저렇게 한번 쳐놓는 건 상관없어.”

“그런가. 그럼 하철수가 귀환하는 동시에 공간의 벽 속에 나타나게 될 테고, 그 상태로 가구들처럼 분해돼서 죽겠군.”

공간 지각으로 뒤따라 날아오는 히아리드가 잘 쫓아오는지 확인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응. 공간의 벽에 무언가가 닿거나 하면 나한테 신호가 오니까. …솔직히 지부장 형이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협력을 받아들여서 다행이야. 아니었다면 저 근방에 히아리드를 배치해서 그 개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감시하게 하려 했는데.”

평범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화연이의 허리를 더듬다가 손을 옷자락 안으로 집어넣으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오는 게 느껴진다.

조금 더 손을 집어넣으니 매끈한 복근이 만져지고 내게 살짝 몸을 기댄 화연이의 자두 향 체취가 맡아지니 그제서야 긴장과 분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에 앉은 프랑한테도 손을 뻗어 치마 밑으로 집어넣으니 말랑말랑하고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만져진다.

둘 다 내 손길에 살짝 몸을 비틀면서 기대오다가 프랑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입을 열었다.

“저렇게 지속해서 유지하는 데는 특별한 조건 같은 게 없는 건가요?”

“딱히 조건은 없어. 하지만 공간의 벽의 유지시간을 몰라서 일단 한번 써둔 거야. 꽤 긴 시간 유지가 될 거라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지속하는지 정확히 확인은 해봐야겠지.”

“공간의 벽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위상 세계에 들, 어가면 공간의 벽이 해제되는 건 아닌가?”

매끈한 복부에 있는 귀여운 배꼽의 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니 배에 힘을 주는지 복근이 뭉치며 딱딱하게 변해버린다.

살짝 말이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모습에 배꼽을 살살 찌르고 간지럽히니 화연이의 얼굴이 조금씩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공간의 벽을 치는 건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서만 되는데, 한번 쳐둔 건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나가도 유지가 돼. 내가 확인한 최대 거리는 10km였는데 연합 빌딩에서 그랑 블루 집까지의 거리는 7km 정도니까 거리상으로는 부분이 문제 되진 않겠지. 멀리 떨어져야 할 때에는 히아리드를 배치해놓으면 되니까. 하지만 위상 세계 들어가도 유지가 되는지 그건 확인해봐야겠는걸.”

다음 위상 세계 입장 때는 히아리드를 보초로 세워놔야겠군.

히아리드를 보초로 세운다는 이야기에 혜령이 이모가 아깝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고위 이형종이라면 그 전투 능력으로 상위 이형종까지 가볍게 사냥하고 다닐 텐데 감시에 사용하는 건 어쩐지 아까운걸요.”

“…아까워하다가 하철수를 놓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재앙이 닥치는 건 원하지 않아요. 거기에는 혜령이 이모도 포함되어있으니까요.”

“후후. 설마 저 같은 아줌마를 노리려고요.”

녀석이 멍텅구리가 아닌 이상 나 다음으로 하유철 부장이나 혜령이 이모를 원망할 거라 생각하는데. 혜령이 이모도 수준급 미녀니까 어쩌면 능력자인 나보다 일반인인 이모를 먼저 노릴지도 모르지.

괜히 말해줘서 걱정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맞장구 쳐줬다. 어쨌든 녀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져버릴 생각이니까.

시간을 확인해보니 자정이 다되어간다. 그러고 보니 영은이한테는 연락도 못 해줬네. 엄마랑 아빠랑 누나한테도 연락도 못 했고.

생각난 김에 인증기를 켜서 영은이에게 다녀왔다는 문제를 보내주니 당장 답장이 왔다.

[다친 곳은 없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와서 안심시켜줘~ ㅠㅅㅠ]

영은이의 귀여운 반응도 좋아서 바닥까지 추락했던 기분이 점점 회복되는 거 같다. 이래서 연인이, 가족이 좋은 거지.

그랑 블루 빌딩에 도착해보니 39층의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는 게 보인다. 영은이는 40층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단 39층에 부모님이랑 누날 보고 올라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혜령이 이모.”

“네?”

“제 능력에 대해 전부 본 이모한테 제 능력에 관해 소문을 퍼트리는걸 부탁하고 싶은데요.”

“정말인가요? 열심히 할게요!”

이모는 나한테 하철수의 소식을 전해줄 때부터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아마 하철수 그 개자식의 행적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며칠이지만 정보를 입수하는데 늦어버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뒀다는 게 원인인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하철수가 위상 세계에 들어가 버린걸 알았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뒤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의기소침하게 지내다가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두는 것보단 기운을 북돋워 주는 게 나은 판단이겠지.

“그럼 부탁할게요. 우리는 부모님이랑 누나한테 가봐야겠어요.”

“네. 좋은 밤 보내세요!”

“혜령이 이모도요.”

근데 이모는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무동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튼, 양옆에 프랑과 화연이를 끌어안고 한밤중의 그랑 블루 1층 홀을 가로질러 생활동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한숨을 쉬었다.

자꾸 한숨 쉬면 복 날아간다고 할머니가 그랬는데.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누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달려와 날 안아주면서 머릴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우리 아들! 고생 많았지?”

“조금 늦어서 걱정했어. 별일…. 어어?!”

누나는 우리 뒤에 서 있는 히아리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엄마도 누나의 반응에 시선을 돌리다가 그제야 히아리드를 발견하더니 눈을 두 번 깜빡이고는 날 돌아보며 물었다.

“세 번째 마누라니?”

“아냐!! 엄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기겁하겠네 진짜! 엄마의 등을 밀면서 거실로 들어가니 아빠도 보던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와라.”

“응. 다녀왔어.”

“야아. 서하야. 저 날개 여자는 어떻게 된 거야? 왜 데려온 거야?”

“있어 봐. 좀 이따 다 설명해줄게. 그러니까….”

어? 영은이는 드레스 룸에서 무척이나 정숙하고 우아한 정장을 차려입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39층으로 내려온다.

딩동~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층에 도착해도 엘리베이터 문은 열리지 않고 초인종이 울리게 되는데 지금 그 초인종이 울렸다.

“어머?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내 손에 밀려서 소파에 앉았던 엄마는 다시 일어나더니 벽의 인터폰을 확인하는데 깜짝 놀란다.

“어머!”

인터폰에 달린 화면에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영은이가 비치고 있었다. 엄마는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가서 문을 열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영은이도 마주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엄마의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오는데 아빠도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

“지금은 사적인 자리이니 공적인 호칭은 넣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조금 빠르게, 하지만 실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세련된 모습과 타이밍으로 아빠의 말을 끊은 영은이는 누날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가 품에 끌어안았다.

누나는 당황해서 손을 작게 허우적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영은이의 허리를 살짝 잡았다.

“아, 아주머니?”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이야기는 들었단다. C 클래스에 빛과 어둠의 속성을 각성하고 A급의 자질까지 가졌다지? 정말 서하 군의 누나 다운 자질이구나!”

“아,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칭찬이었는지 누나도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하니 두어 번 누나의 등을 토닥여준 영은이는 누나를 품에서 놓아줬다.

그리고 손을 들어 누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더니 번개같이 나한테 다가와서 내 손을 꽉 잡는다.

순간 안아줄 줄 알고 살짝 팔을 벌렸는데 뻘쭘하게….

“…….”

영은이는 내 손만 꼭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는데, 눈동자 속에서 숨길 수 없는 열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한동안 내 손만 잡고 있던 영은이는 엄마랑 아빠랑 누나가 의아함을 비출 때쯤에서야 손을 놓고 엄마랑 아빠를 향해 아부성 멘트를 무시무시하게 날리기 시작했다.

살을 섞으면서 같이 산 나였으니 그게 아부라는 걸 눈치챘지 엄마랑 아빠는, 거기다 눈치 귀신인 누나마저 아부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훌륭한 아부였다.

그야말로 아부의 표본이랄 수 있는 모습!

엄마는 뭐 헤벌쭉 웃으며 기뻐하는 건 여러 번 봤지만 아빠까지 흠흠 하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을 줄은 몰랐다.

히아리드를 거실 구석에 서 있게 하고 누나에게 어디까지 설명했냐고 물어봤더니 별다른 이야기를 못 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십수 일간 녹화한 영상 기록을 홀로그램 창에 띄우면서 빠르게 감으며 중요한 부분에서 일시 정지를 하고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누나마저 내가 기록한 영상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부모님과 내 연인들은 조용히 내 앞에 뜬 거대한 홀로그램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내 설명을 듣고만 있었는데 엄마와 누나, 프랑은 거대한 하늘 섬의 전경에 탄성을 지르고 아빠는 홀로그램 창과 한쪽에 얌전히 서 있는 히아리드를 번갈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화연이와 영은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네가 부탁한 거 들어줬어. 하계에서 다시 보자고 했더니 알겠다면서 구름바다 속으로 잠수해가더라.”]

[꾸우우우우웅…!!]

[“이건 뭐야?”]

[꾸우우우우웅…]

[꾸우우우우웅]

[“뭐, 능력을 테스트해볼 겸 겸사겸사 한 거야. 그럼 나간다?”]

[꾸우우웅]

[“그래~ 다음엔 저런 놈들한테 잡히지 말고 둘이서 행복하게 살아.”]

[꾸우우우우웅.]

당연하지만 내 목소리만 나오고 알붐 케투스, 무진장 거대한 흰 고래는 그저 꾸웅꾸웅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화면으로 봐서 알붐 케투스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는 엄마와 아빠는 그저 신기한 표정이고 화연이나 영은이는 대강 짐작이라도 가는지 안색이 조금 굳어버렸는데 누나는 푸루스 발라이나와 알붐 케투스를 못 봤다는 생각에 울상을 짓고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금만 늦게 올걸!" 이러고 있었다.

알붐 케투스의 이야기를 내게서 들은 영은이는 굳은 얼굴을 풀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붐 케투스, 푸루스 발라이나. 둘 다 라틴어구나.”

“라틴어야?”

“응. 알붐 케투스. 남성명사로 흰색 고래를 뜻해, 반대로 푸루스 발라이나는 여성명사로 검은 고래를 뜻하지. 저 이형종 들이 라틴어를 배웠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가 저 고래들에게 이름을 지어줬다는 걸 뜻해.”

“아…. 그러고 보니 인간의 언어로 알붐 케투스라고 했댔어.”

“혹시 이름에 관한 다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대답도 꼬박꼬박 해줬는데, 난 돌아올 생각이 가득이어서….”

“어휴, 바보야! 중요한 정보랑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조금 늦게 돌아오더라도 확실히 하구 와야지!”

물어볼 걸 그랬나? 음. 물어볼까 말까 약간 고민하긴 했었는데 역시 물어볼 걸 그랬다. 누나의 핀잔에 입을 삐죽이고 있으려니 프랑이 내 팔을 안으면서 물었다.

“히아리드…라고 했나요? 히아리드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네? 히아리드, 알붐 케투스랑 푸루스 발라이나에 관해서 아는거 없어?”

=이름에 대한 유래는 모릅니다. 아는 것은 구름 고래의 습성에 관한 것뿐입니다.=

그러자 누나는 다시 한 번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게 뭐가 중요해? 우호적인 고래들인데 뭐 이름의 유래 같은 게 중요할게 뭐가 있다고!”

“이 바보야, 라틴어라구! 위상 세계에 거대한 고래들이 라틴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게 뭘 뜻하는지 몰라서 그래?”

“뭐 어쩌다 라틴어에 관심이 많은 능력자가 다른 시간 축에서 둘을 만나 이름을 지어줬겠지. 최소 10만일을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전에 얼마나 오래 살았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내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건 아닌 거 같다는 표정이지만 영은이는 웃으면서 누날 말린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서하 군의 말대로 딱히 중요할 건 없다고 생각이 되는걸. 거기다 시하의 위상 세계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지 않겠니? 그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아, 소라고둥.

“아까 영상에서 나온 소라고둥 있잖아. 이걸 알붐 케투스가 나한테 주면서 하는 말이, 이걸 부르면 날 찾아와서 한번은 도와준댔어. 나중에 부르게 되면 그때 물어보면 되지?”

그러면서 챙기고 있던 소라고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

나랑 아빠랑 엄마 빼고 다 놀란다. 어? 히아리드까지 놀라네.

누나는 놀란 눈으로 은색의 소라고둥을 집어 살펴보더니 예술품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라고둥의 자태에 눈을 떼지 못한다.

“저걸 부르면, 최소 최고위 이형종이 찾아와서 도와준단 말이구나? 부르는 조건은 뭐니?”

“…….”

…영은이의 물음에 슬쩍 눈을 피해버렸더니 표정에 황당함이 번져간다.

이건 쉴드쳐줄수 없겠다는 듯이 한숨을 폭 내쉬는 영은이는 물론이고 누나의 한심하다는 표정과 화연이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에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날 향하는 시선에 점점 압박감을 느끼면서 화제를 돌릴 건수를 찾는데 히아리드가 눈에 들어온다.

“어, 맞아. 히아리드,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명령을 내리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모두 들어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늘님.=

“…하늘님? 하늘님은 11시 쪽 날개 여자 이형종이 꺼낸 말이잖아?”

“응. 히아리드를 테이밍하다보니 날 하늘님이라고 부르더라구.”

누나는 테이밍이라는 단어에 눈초리를 날카롭게 하며 히아리드의 몸매를 훑어보더니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테이밍을 하는데 어떤 방법을 동원한 건데?”

“폭력이랑 내 마나 시브를 이용했어.”

“폭…력?”

마나 시브는 어따 필터링하고 폭력에만 집중하냐. 그리고 난 거짓말 안 했다? 성폭력도 폭력은 폭력이니까.

“응, 폭력. 폭력 말고 다른 뭐가 필요해?”

내 당당한 모습에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이 된 누나를 피식 웃으면서 본 영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서하말대로라면 폭력으로 정신을 굴복시키고 능력으로 세뇌했다는 거구나. 마나 시브에 고위 이형종을 굴복시키고 테이밍 할 정도의 효과까지 있다니. 여러모로 대단한걸?”

“응. 그래서 히아리드에 대한 IWO랑 능력자 연합의 대응을 본 다음에 이형종 군단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야.”

영은이가 생각한 쪽은 그쪽이 아니라는 듯이 조금 당황하더니 순식간에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은이는 사람들을 세뇌하는 걸 말했겠지.

누나는 조금 우려스러운 모습이긴 하지만 날 믿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정이 넘어버려 내일 출근해야 하는 엄마와 아빠, 누나를 위해 집을 나왔다.

누나도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해준 이야기가 전부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오는 걸 포기했다.

히아리드를 보며 조금 걱정스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고위 이형종을 테이밍했다는거에 대해서는 날 믿으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40층으로 올라오니 거실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며 환해졌다. 거실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자기 집에서 자고 있던 미호는 불이 켜저 밝아진 거실을 빠르게 달려와 폴짝 뛰어 내 가슴에 매달렸다.

이옹옹! 아웅!

“그래그래. 16일 동안 말 잘 듣고 잘 지냈지?”

끼웅!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미호를 품에 안고 궁둥이를 토닥거려주니 눈을 감고 꼬물거리면서 내 가슴에 머리를 부빈다.

살이 마른 게 조금 불쌍해서 위상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TP를 30까지 먹여줬는데 그사이에 14까지 줄어있었다.

만약 30까지 먹이지 않았다면 이 녀석도 죽었겠지.

“자.”

손가락에 TP를 조금 뽑아서 녀석의 코앞에 가져가니 날름거리면서 내 손가락을 핥아댄다. 그리고 내 손가락 끝에 생성된 푸른 물방울을 보자 욕망 스위치가 켜졌는지 세 연인의 눈동자에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프랑이랑 화연이는 저거 데려가서 속옷이랑 옷 좀 대충 입혀줘.”

“네.” “알았다.”

화연이는 히아리드에게 다가가더니 기다란 튜닉 자락을 걷어 올려보는데 그대로 드러나는 금잔디가 깔린 음부의 모습에 눈을 꿈틀했다.

잽싸게 튜닉 자락을 내린 화연이는 날 돌아보더니 살짝 눈썹을 찡그리다가 히아리드의 팔을 잡아끈다.

“세상에. 속옷도 없이…!”

프랑과 화연이의 손에 끌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히아리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영은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모님한테는 언제나 착한 아들로 있고 싶어. 영은이는 내 마음 이해하지?”

“으응.”

“영은이도 짐작했겠지만 히아리드를 테이밍한건 마나 비전과 마나 보이스로 하루 동안에 걸쳐 진행한 일종의 정신 조작인 셈이야. 쾌락으로 이성을 무너트리고 마나 보이스로 정신을 마비시키고 마나 비전으로 호감도를 집어넣고 폭력으로 각인시킨 게 지금의 히아리드거든.”

“역시 그랬구나. 그럼 사람들한테는 그 세뇌는 쓰지 않을 거니?”

“하철수 같은 개새끼가 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그냥 죽여 없앨 생각이고, 나랑 적대하는 인간들에게는 마나 비전 정도는 써볼 생각인데, 영은이는 어떻게 생각해?”

“마나 비전은 매혹이 아니라 호감을 이끌어내는 작용인 거지?”

“응.”

“좋은걸. 첫인상이 좋다거나 호감 가게 생겼다는 것처럼 호감만큼 뛰어난 무기는 없으니까.”

프랑과 화연이는 히아리드를 끌고 금방 나왔는데 등이 훤히 패인 포댓자루 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브래지어는 하지 않고 팬티는 드로즈 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저 수박만 한 가슴에 맞는 브래지어는 없나 보다.

“속옷은 나중에 따로 사주든가 해야겠어요. 옷도 등의 날개 때문에 입을 수 있는 게 얼마 없어요.”

“응. 그건 대충 1층 매장에서 사주던가 주문하기로 하고, 히아리드 너는 저기가 네 자리다. 평소에는 저곳에 앉아 대기해.”

나는 손가락을 뻗어 소파의 끝에 있는 간이 소파를 가르켰다.

=네, 하늘님.=

아무래도 저거의 기본 표정은 무표정인 거 같지? 아까 화연이가 튜닉 자락을 걷어 올릴 때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걸 봐서는 감정이 있긴 하지만 그 감정이 굉장히 옅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아리드는 내가 가르킨 검은색 버튼 보조 소파에 걸어가 앉았다.

“자. 다들 모여봐. 내가 15일간 겪은 이야기는 다들 들었으니까, 이제 내가 없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을 차례잖아.”

“그보다 몇 가지 궁금한 게 더 있어. 최고위 이형종이 쳤다는 그 벽, 어째서 고래를 만나지 못하게 한건지 히아리드에게 안 물어봤니?”

“어? 안 물어봤는데…. 뭐, 그냥 서로 떨어트려 놓고 자기네들 맘대로 구름을 쓰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난 별로 안 궁금한데 영은이는 궁금한 점이 많이 남아있나 보다. 그 두 고래가 나쁜 고래도 아니었고 멋대로 구름 속에 들어와서는 구름을 멋대로 차지해서 못살게 굴었잖아. 그거 외에 중요한 게 더 있나?

그래도 다들 궁금해하니까 물어볼까.

=그 두 마리의 고래는 저희 일족에서는 구름 고래라고 부릅니다. 구름 고래는 성체가 되어 짝을 찾게 되면 구름을 생성하며 하늘을 떠돌게 되는데 그 구름 속에 있거나 구름에 몸을 가리면 위상력을 숨겨줍니다.=

헐.

=그 구름을 움직이고 조종을 하기 위해서는 두 마리가 한 곳에 붙어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때마침 두 마리가 떨어졌기에 역장을 펼쳐 만나는 것을 막고 구름을 한 곳에 고정해놓은 것입니다.=

“그럼 혹시….”

=그렇습니다. 두 마리의 구름 고래가 구름을 버리고 떠날 경우 생성되어있던 구름은 흩어지게 됩니다. 그 점을 염려해 두 구름 고래를 떨어트려 놓았었던 겁니다.=

히아리드의 설명을 듣던 영은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질문을 던진다.

“너희 종족이 구름에 숨어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대해의 주인을 섬기는 사비 일족때문입니다.=

“…묻는것만 대답하지 말고 니가 알고 있는 거 다 설명해봐 좀.”

내 구박에 당혹해 한 히아리드는 곧 설명을 길게 했는데, 10만 번의 해가 지고 뜨기 전에 대해의 주인이란 녀석을 섬기는 사비 일족과 자기네들 플라우비스 일족 사이에 크게 싸움이 났다고 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전투 끝에 승리는 플라우비스 일족에게 돌아갔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고 한다. 사비 일족의 우두머리들은 대부분 멀쩡한 반면, 플라우비스 일족의 다섯 우두머리 중 살아남은 개체는 하나뿐.

거기다 고위 이형종도 대부분 죽고 단 셋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고위 이형종 셋 중 둘은 나한테 죽고 하나는 테이밍 됐으니 최고위 이형종 하나만 남게 됐다는 건가. 그나저나 최고위 이형종이 다섯이나 되다니, 징글징글하다. 그 사비 일족이라는 것들도 그만한 숫자가 있단 이야기 아냐?

“결국은 너희 좋을 대로 해먹기 위해서 그 고래 부부를 이용해먹었다는거네.”

=그렇습니다. 구름 고래는 부부애가 무척이나 강한 짐승, 그 상황에서 반려자를 포기하지 않을 게 확실한 존재들이라 저희 일족이 몸을 숨기고 세력을 기르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귀환한 뒤에 알붐 케투스도 하계라고 한 곳에 돌아가 버렸을 테니 그 구름은 사라졌겠네.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저 녀석 종족은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네.”

“그러니? 나는 이해가 가는걸. 나였다면 내 세력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해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거야.”

“그. 그래?”

“후후. 지금은 나라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생겼지만?”

내게 윙크를 하면서 미소를 지은 영은이는 살짝 기지개를 켜는데 옆에 있는 화연이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다.

“히아리드의 말대로라면 플라우비스 종족은 시하와 널 격하게 싫어하게 됐을 거다. 당분간 시하가 자신의 위상 세계에 입장하는 건 말려야겠군.”

“음…. 그래야겠다.”

그 뒤에 히아리드에게 영은이가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더니 프랑이 차를 준비해와서 내 옆과 맞은편 의자에 앉아 진지한 표정이 된다.

나도 내 무릎 위에 올라와서 눈을 감고 있는 미호의 머릴 쓰다듬으며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이야기를 기다렸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