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6 돌아왔다!! =========================================================================
그 뒤로 고위 이형종 히아리드를 능력자 협회에 밝히고 반응을 지켜보고 그랑 블루의 발족식을 선행하며 그전에 내 능력을 대대로 선전하기로 했다.
동시에 청궁과 무화령, 그 뒤에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행보에도 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걸로 하고 이야기를 끝냈다.
홀가분한 표정에 설렌다는 표정으로 다들 돌아가는 와중에 혜령이 이모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며 집무실에 남았다. 다들이라고는 해도 박지웅 보스랑 김표충 부장이랑 하유철 부장만 나갔지만.
혜령이 이모는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잠시 주저하다가 한숨을 폭 쉬더니 입을 열었다.
“하철수의 일에 관해서입니다만….”
“아, 맞다. 그 개자식은 어떻게 됐죠? 재판 결과가 나왔나요?”
“…마스터와 통합관리부장께서 위상 세계 강제 소환이 되셨을 때, 하철수는 검찰청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유치장? 그, 경찰서에 있는 감옥 같은 거 말하는 건가? 그런데 감옥에 갇혔다는 거 치고는 혜령이 이모의 표정이 굳어있는 게 심상치 않다.
“하철수는 도주의 우려가 있어 먼저 고소장과 고발장을 접수하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보낸 다음 검찰청 유치장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었어요. 거기서 교도소로 이감된 후 재판까지 기다리게 하는데….”
…어쩐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이혜령 부장은 얼굴이 찌푸려진 날 보더니 살짝 미간에 힘을 주다가 한숨을 폭 쉬며 마저 입을 열었다.
“ 마스터와 통합관리부장께서 위상 세계로 강제 소환이 되신 후에 하철수 역시 위상 세계로 강제 소환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씨발.
“하철수가 강제 소환 당한지 5일만에 연락이 왔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차라리 죽었으면 나았을 텐데, 마스터께서 귀환하시기 5일 전, 즉 7월 17일 오후 5시 29분에 하철수가 현실로 귀환에 성공했다고 해요. 그리고 하철수는 즉시 능력자 연합 관리관의 손에 이끌려 능력자 연합으로 이송됐답니다.”
아오~! 그 개새끼는 운이 얼마나 좋은 거야?!
…세상에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힌 인간들이 많다. 나잇대도 다양해서 11살부터는 소년원에 들어가고 14살부터는 교도소에 간다지?
그리고 소년원이든 교도소든 35살 이하의 강력 범죄를 저질러 십여 년간 옥살이를 해야 하는 인간들일수록 제발, 간절히 위상 세계에 빌고 또 빈단다.
위상 세계에 가게 해달라고.
위상원리교라는 웃기지도 않은 종파가 생긴 것도 그것 때문이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놈이 위상 세계에 빨려 들어간다. 거기서 죽고 생환하지 못한다면 그냥 사망처리 되는 걸로 끝나지만, 문제는 생환했을 때다.
생환 자는 다들 알다시피 일단 능력자 연합으로 데려간다. 때문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능력자 연합의 특수 인증기를 몸에 강제 삽입하며 연합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된다.
특수 인증기로 일거투 일수족이 감시되고 죄의 이력은 남게 되지만, 생환한 그 순간부터 형 집행이 정지된다.
즉 자유롭게 바깥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거다!
거기서 다시 한 번 죄를 저지르면 기존에 저질렀던 범죄에 능력자로서 범죄를 저질렀단 이유가 추가되어서 가중처벌을 받아 즉시 알카트라즈로 수감되지만….
알카트라즈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은 무척이나 험악하다. 그러니 그 새끼가 정신 차린 척하고 지낸다면 저지른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말도 안 되게 쾌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거다!
마음에 안 든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거기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고 있는 데다 혜령이 이모가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난 게 아니라는 표정이라 더 마음에 안 든다!!
“…이미 형 집행 정지 명령이 떨어졌어요. 하철수는 능력자 연합 내부의 특수 관리 시설에서 감별과 측정을 받고 신체검사까지 진행했다고 해요.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 자질은 A급. 타입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안돼. 듣고 싶지 않아. 하지만 들어야 해. 그래도 들었다간…!
“레어 타입. 정신 조작 계통이라고 해요.”
…찌리릿하고 머릿속에 전기가 흘러 지나가며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자극한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살인 대상은 그 자식이 될 거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무섭게 굳은 내 얼굴에 프랑과 화연이는 연신 날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하철수 그 자식을 죽일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예감이 말했다. 내 첫 번째 살인 대상은 그 자식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그리고 내가 했다는 짓이 알려지지 않게끔 처리할 생각이다. 정신 조작 계통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냥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왜냐고?
…희귀 타입 중 가장 많은 부류가 감지 계통이다. 그다음이 초능력, 흔히 말하는 염동력과 속성 조작 능력, 투시나 염화念話, 이런 능력이고.
세 번째는 예지와 예감 능력자들이고 마지막으로 극히 희귀한 계통이 정신계통이다. 그리고 정신 조작이, 이 정신 계통에 포함된다.
정신 조작이란 능력은 이름 그대로의 능력이다. 대상자의 정신을 조작한다.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고 증오를 심을 수도 있고 정신을 무너트리는 정신공격도 가능하고 최면을 비롯해 정신에 관련된 모든 감정을 조작할 수 있다.
녀석의 자질은 A. 위상력만 제공되면 B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하다. 그리고 현존하는 정신 조작 계통 능력자들은 죄다 자신의 자질 한계까지 성장해있으며 레이드 팀 영입 0순위이자 꺼리는 0순위의 능력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사람은 물론이고 이형종의 정신까지 조작할 수 있다. 이형종에게 극도의 복종심을 주입해 끌고 다니면서 이형종을 사냥할 수가 있다는 거다.
그런 정신 조작인데, 그 개자식이 원한을 품고 내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정신을 떡 주무르듯이 주무른다면, 그리고 몸을…!
우지직.
“서하!!” “서하?!”
…아차. 의자 부숴버렸네.
격하게 뛰는 심장과는 반대로 이성은 냉수를 뒤집어쓴 것마냥 차갑게 얼어붙는다. 두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이빨이 으득 갈리고 서늘한 느낌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 같다.
화들짝 놀라는 혜령이 이모는 다리가 풀려서 풀썩 주저앉아버리고 프랑은 바로 달려와서 내 목을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화연이 역시 걱정이 한가득인 눈빛으로 내 앞에 살짝 무릎을 굽히고 내 뺨을 어루만진다.
“…방금 살기가 폭사 되었다. 하철수 그 인간 때문이지?”
“맞아.”
“서하….”
방금 그 느낌이 살기를 뿜어낼 때의 느낌이었나? 프랑은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내 뺨에 자기 뺨을 비비고 있었고 화연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조작 능력이라니…. 그런 성격을 가진 자에게 칼이 아닌 핵미사일 발사 버튼이 쥐어져 버린 셈인가.”
창백한 얼굴로 딸꾹질하는 혜령이 이모에게 다가가 힐링 터치를 걸어주니 그제서야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깊은숨을 내뱉는다.
“죽일 거야.”
“…서하.” “…….”
“예감이 내게 말하고 있어. 죽이라고.”
프랑은 날 끌어안은 채 몸이 굳어버렸고 화연이도 눈빛이 깊게 가라앉아버렸다.
정신 조작 능력자들은 이형종의 정신을 떡 주무르듯이 조작해서 끌고 다니며 이형종을 사냥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능력을 이용하면 B 클래스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을 거야
정신 조작에 관해서는 나도 얼마 전에 접한 정보였는데 하필이면 그 개자식이….
놈이, 그 자식이 빡돌아서 위상 세계에 멋대로 진입해버리고 나에 대한 원한을 갈면서 B 클래스까지 성장해서 나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 새끼의 독사같이 번들거리던 악의에 가득 찬 눈깔이 기억나서 한숨이 나온다.
그때 혜령이 이모의 휴대폰이 울리는데, 전화를 받은 혜령이 이모는 안색이 확 하고 굳어진다.
…설마.
굳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혜령이 이모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철수가, 위상 세계에 멋대로 진입해버렸다고 해요.”
…씨발.
혜령이 이모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자마자 프랑과 화연이를 품에 끌어안고 네 개의 살덩어리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내 머리와 뒤통수를 쓰다듬는 두 손길을 느끼며 머리를 굴린다.
프랑도, 화연이도, 혜령이 이모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프랑과 화연이는 내 이야기에, 혜령이 이모는 내 행동에.
사과 향과 자두 향이 어우러져 내 가슴속을 채우고 보이지 않는 벗인 마나 시브가 내 머릿속의 어두운 찌꺼기들을 제거하기 시작하고 생각을 가속한다..
그래. 너는 나라는 존재에 겁을 먹고 동시에 악에 받쳐 위상 세계로 들어갔겠지. 똑똑하진 못하지만, 눈치가 있다는 건 인정해주마.
하지만 넌 최악의 방법으로 날 자극해버렸어.
그러니 너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서 강해져라. 나도 무슨 수를 써서든 널 죽여버릴 테니까.
두 연인을 품에서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혜령이 이모를 불렀다.
“…이혜령 부장님.”
“네, 넷!”
“지금 당장 하철수가 위상 세계로 진입한 곳에 가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네!”
지금은 10시가 넘어간다. 그에 비해 하철수는 5일전, 오후 5시 29분에 많이 꾀죄죄한 몰골이었지만 다친곳 하나 없이 귀환해서 현장에 대기 중인 D 클래스 중상급 신체 강화 능력자 두 명에게 잡혀 능력자 연합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능력자 연합 빌딩의 감별 실에서 능력을 감별 받고 정신 조작 계통이라는 판정을 받은 직후 일반인들은 대피, T resist 라고 불리는 공용 저항 기술을 가진 D 클래스 이상의 능력자들이 모여 하철수의 위상력을 측정했다.
결과는 G 클래스. 자질은 A급.
지부장이 직접 나서서 범죄자용 특수 인증기를 하철수의 신체에 삽입했고 삼엄한 관리하에 의사 출신 능력자가 나서서 신체검사를 끝내고 회복 능력자를 동원해 질병과 상처를 치료했다고 한다.
“클래스가 낮아서 T resist로 저항이 가능했나 보네요?”
“그래. 만약 F 클래스만 됐더라도…. 감당하지 못했을 거야.”
“발광했었나요?”
“관리자의 말로는 생환 직후에는 자기가 이 세상의 왕이라도 된 것 인양 행동했다더군. 내가 그놈의 몸에 특수 인증기를 삽입할 때에는 반항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진 상태였고.”
지부장은 날 안내해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만난 강현우 지부장은 내게 깍듯이 존대를 붙여왔는데 내가 일부러 손을 저으면서 편히 말을 놓으라고 했다.
얕보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강현우 지부장을 내 편으로 삼기 위해서인 거지.
마나 비전을 쓰면 간단할 테지만…. 현실에서 사람에게 마나 비전과 마나 보이스를 쓰는 건 안 하기로 했으니까. 실제로 편히 말을 놓으라는 내 이야기에 지부장도 슬쩍 웃어주었고. 그 모습에 확실히 호감도가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식은, 복귀하자마자 관리자들에게 자신이 최강이 될 테니 미리 복종하라는 식으로 오만방자한 말을 떠들고 다녔다.”
“…그걸 가만히 내버려뒀어요?”
“당연히 안 내버려뒀지. 하철수의 이야기를 들은 관리관들은 정신 조작 계통이라는 걸 눈치채고 바로 T resist를 운용하면서 위상 능력자 연합 관리법을 알려줬다고 했다. 민간인과 능력자에게 함부로 이형 능력을 사용하면 형집행정지 명령이 해제되는 것과 함께 알카트라즈에 갇힐 것이라는걸 말이지. 그걸 비롯해서 그 자식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전해줬는데 그중에는….”
“위상 세계 입장 방법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있었군요.”
“…그래. 네 일이 기준이 돼서 생환자들에게 바로 위상 세계 입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게 규칙이 바뀌었지. 녀석은 관리자들에게 기본 사항을 교육받고 능력자 연합 빌딩으로 이동해서 위상력의 감별과 측정을 끝내고 특수 병동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은 이후 회복 능력자의 회복과 질병 치유를 받았다. 그 뒤에 능력자 관리동에 녀석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지.”
나와 프랑과 화연이, 혜령이 이모와 히아리드는 지부장과 몇 명의 수행원을 따라 능력자 관리동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능력자 관리동은 한국 능력자 연합 한국 총괄 지부 바로 옆에 붙은 15층짜리 빌딩이었는데 개조해서 오피스텔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래. 그 뒤로 5일간 녀석은 죽은듯이 지냈다. 언뜻보면 비굴한 모습일 정도였지만 눈빛만은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이었지. 그리고 5일째가되던 오늘, 일과시간이 끝난 녀석은 자기 방에서 수 시간을 인증기로 능력자 커뮤니티를 살펴보더니 침대에 드러누웠어.”
하철수에게 배정됬다는 방문을 열어보니 15평가량의 살기에 나쁘지 않아 보이는 오피스텔 내부의 정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대로 위상 세계로 들어가 버렸지.”
…하철수는 세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한 가지는 형 집행 정지인 상황에서 자신의 바닥 인성을 보여준 데다 위협적인 능력을 뽐낸 것.
“하철수는 자신의 위험성을 그 자식 스스로가 피력한 덕분에 정신 조작의 위험성과 무단 위상 세계 진입이라는 두 가지가 어우러져 지극히 위험한 존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미 능력자 연합 본부와 IWO 상임이사국 긴급회의에서 알카트라즈 수감이 아닌 발견 즉시 사살명령이 내려진 상황이야.”
뭐 때문에 그랬는지 아무도 모른다.
처음 혜령이 이모에게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던 대로 녀석이 나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을 죽이러 올 거라는 눈치를 채서 도망간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몰라.
여기서 녀석은 또 한 가지의 큰 실수를 범했다.
스스로 법을 어기고 위상 세계 진입을 해버리는 걸로 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다.
그게 날 자극했다.
솔직히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이렇게 쉽게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일본의 19금 에로 만화책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등장한다. 사람으로서 할 게 못 되는 잔인한 것에서부터 남의 여자를 뺏고, 자기 여자를 뺏기는 장르까지.
그중 내가 가장 혐오하는 건 NTR. 저쪽 동네 발음으로 네토라레라고 하는 장르인데. 자신의 여자를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빼앗기는 장르다.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랑하는 여성이 생판 모르는 남한테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장르다. 그 만화의 남 주인공은 마지막에 결국 멘탈 붕괴로 폐인이 되더라.
성욕이 왕성하던 어린 시절에도 그 부류는 딱 한 번 접해보고는 치를 떨면서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지만, 한번 본 기억이 내 여린 가슴에 트라우마 급의 스크래치를 남겨버렸다.
그런데 그런 짓을 저지를만한 개자식이 떡하니 나타났다.
나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내 여자들의 미모에 군침을 흘리다 못해 발정 난 모습을 보일 인성을 가진 놈이!
내 연인들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니. 그것도 싫어하는, 이제는 증오하게 된 그 개자식에게 프랑이, 화연이가, 엄마나 누나가 성적으로 유린당한다고…?
…그랬다간 난 미쳐 날뛸 거다. 한두 명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내가 죽거나 세상이 끝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때까지 끝장을 보게 될 거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그 자식을 죽인다.
“…….”
나도 모르게 살기를 뿜었는지 지부장과 지부장의 수행원 네 명이 흠칫하고 날 돌아본다.
“아, 죄송해요. 지부장 형도 그 자식과 저랑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너와 하철수 사이의 트러블이라면 들었다.”
“그 자식은 마지막까지 독사처럼 눈알을 번들거리면서 절 노려보더라고요.”
“음….”
“놈이 현실에 복귀하면 가장 먼저 절 노릴 거에요. 아니, 여자를 밝히는 그 개새끼 성격이라면 제 연인들이나, 가족을 노릴 게 틀림없겠죠. 이런 말 하는 건 자랑처럼 들리지만, 엄마도 누나도 제 연인들도 손에 꼽히는 미녀들이니까요.”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프랑과 화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든다는 표정이다.
“아아.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운이 10 정도라면 넌 혼자 수백만쯤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에요. 프랑과 화연이는 강하고 언제나 저랑 함께하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엄마나 누나, 아빠는 틀려요. 만약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 자식에게 당한다면….”
으드득
“…….”
“전 미쳐서 날뛸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마을이나 도시 붕괴 같은 상냥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국가 단위로 소멸할 거에요. 그 와중에 그 자식이 죽어도 내가 멈추지 않을 확률이 100%에요.”
꿀꺽.
내 이빨 가는 소리와 함께 살기가 흘러나오며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지부장이 마른침을 삼킨다.
프랑과 화연이도 부르르 떠는 게 느껴진다.
“사살 명령이 떨어졌다면서요? 녀석을 죽이는데 협력해주고 싶어요.”
“잡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건가.”
“네. 죽이는 거요.”
“…그랑 블루의 보스가 한 손을 거든다면 이쪽에서도 안심이지.”
지부장의 말을 들으면서 하철수가 사라졌다는 오피스텔 내부의 공간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하철수가 한 가장 큰 실수는, 입장 위치를 특정지을 수 있는 장소에서 위상 세계로 들어가 버린 거다. 감시 카메라가 감시 중인 이곳에서, 몸에 특수 인증기를 삽입한 채.
위상 세계는 누구나가 지켜야 하고 절대 어길 수 없는 두 가지 법칙이 있다.
첫 번째는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5일간은 위상 세계에 재진입을 못하는 것.
다른 하나는 들어간 장소에서 다시 나오는 것.
나는 녀석의 방을 살펴보다가 공간 지각으로 방의 구조를 파악하고 공간의 벽을 쳐야 할 사이즈를 계산한다.
높이 2.6m 길이 7m 폭이 6m.
1,050 TP를 쓰면 이 공간 전체에 공간의 벽을 칠 수 있다. 혹시 모르니 두 겹, 세 겹으로 쳐야 놔야지.
녀석이 현실로 귀환하는 순간 공간의 벽 속에서 산산이 분해되어 죽도록.
지부장은 오피스텔 방 하나에 가득 찬 호박색의 공간을 보며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순식간에 분해되어 사라진 가구들을 보고 더 놀랐을 거다.
“…이게 네 비기냐?”
“비기 아닌데요? 그냥 능력인데요?”
“허.”
지부장에게 공간의 벽을 시험해보라며 가장 강력한 속성 탄을 공간의 벽에 쏘아보라고 했다. 순순히 내 말에 따르며 손에 불의 속성을 응축하는데, 손가락 끝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며 50만 TP 가량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압축된다.
…솔직히 놀랬다. 50만 TP를 저렇게 손쉽게 컨트롤하다니. 난 마탄이든 마나 탄이든 응축은 1만 단위가 최대인데.
아무튼, 압축한 파이어 볼트를 공간의 벽에 쏘아냈는데. 뭐, 누나의 퓨전 다크라이트도 빨아먹고 히아리드의 빛 벼락도 씹어먹은 공간의 벽이다.
50만 TP라는 게 좀 놀랍긴 하지만 소비한 TP를 채워주셔서 감사지.
10겹으로 쳐놔서 TP가 좀 많이 소비됐었는데 지부장의 속성 탄에 단박에 다 회복됐다.
흡수되듯이 퍼지면서 사라지는 파이어 볼트의 모습에 지부장은 물론이고 세 명의 수행원과 내 뒤에 서 있는 프랑, 화연이, 혜령이 이모까지 경악하고 있었다.
“저는 공간의 벽에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고위 이형종도 죽이는 공간이에요. 다른 사람은 능력자든 일반인이든 손대는 순간 분해되면서 죽으니 주의하세요.”
“아, 알았다.”
“…에이 별로 알지 못한 거 같은데. 히아리드. 손 한번 집어넣어 봐.”
=네.=
흠칫 움찔
직접 눈앞에 보여줘야 경각심을 가지지.
히아리드는 내 명령에 오피스텔 방안에 가득한 호박색 벽에게 다가가는데 지부장은 흠칫하는 선에서 끝났지만, 수행원들은 극도로 경계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방의 입구, 호박색 벽 앞에 선 히아리드는 두 손을 팔꿈치까지 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푸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히아리드의 창백한 두 팔이 우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곧 "퍽."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의 벽 안에 집어넣은 부분이 사라지며 광혈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흑.=
“힐링 웨이브.”
절단면에서 광 혈을 쏟으며 신음을 흘린 히아리드는 두세 걸음 물러나고 동시에 힐링 웨이브 4단계를 발사해 상처를 치유해줬다.
“어헉?!”
내 몸에서 뿜어져냐온 새파란 물결에 지부장과 세 수행원은 눈을 부릅뜨며 거친 숨결을 내뱉는다.
동시에 히아리드의 잘린 두 팔이 순식간에 재생하는 모습을 본 지부장은 나와 히아리드를 번갈아 보더니 허탈한 모습이 되어버린다. 그 모습을 무시하고 바닥에 뿌려진 히아리드의 광혈도 공간의 벽을 펼쳐서 다 지워버렸다.
“보셨죠? 고위 이형종의 몸도 분해해버려요. 그러니 함부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세요. 일단은 벽에서 50cm가량 틈을 둬서 만들어뒀기 때문에 감시 카메라는 다 작동하고 있을거에요. 녀석이 돌아와서 분해되는 모습을 담게 되거나 공간의 벽이 사라지면 꼭 연락해주세요.”
“아, 알았다. 그런데 이…. 히아리드라는 여성은,”
“사람 아니에요. 고위 이형종 암컷이에요.”
“그, 그그그래. 너…는, 살아 있는 이형종을 현실로 빼돌리는 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알고 있긴 한 거냐?”
그제서야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표정의 지부장은 어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모습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건 몰래 빼돌리는 게 문제 아닌가요? 영국에서는 엘프를 밀반입했는데도 멀쩡했다면서요? 전 이렇게 신고하러 오고 연구 샘플도 제공해 주려 했는데…. 무려 살아있는 고위 이형종이라고요? 고위 이형종의 연구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하아아.”
지부장은 내 말에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거 같더니 곧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 작품 후기 ============================
대형 마트 호객 아주머니를 조심하세요....
칼슘 보충용 생으로 먹을 잔멸치를 사러갔다가 아주머니의 현란한 말솜씨에 홀라당 넘어가서 멸치 한봉지를 샀는데,
커...
이거 잔멸치가 아니잖아 ㅠㅠ 잔멸치 사러 왔다고 했는데!!
큰 멸치를 주신 아주머니, 이 원한은 잊지 않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