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03화 (203/517)

00203  하늘 섬  =========================================================================

분지 섬의 4시 방향에 있는 황무지 섬을 살펴보고 큰 섬으로 넘어가기 위해 공간의 벽을 폭 3m 두께 1m에 길이를 300m씩 깔고 치우는 연습을 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10분 정도 걸었을까, 뭔가 무수한 시선이 느껴져서 시선이 느껴진 방향을 보니 큰 섬의 호수 쪽에서 희끄무레한 것들이 무수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야. 아니지? 그치? 이렇게 먼데 어떻게 날 보고….

아이씨!

날 향해 날아오는 라이트 볼트 다발에 인상을 쓰면서 공간 보호막을 친 다음 동쪽으로 폭 3m의 기다란 공간의 벽을 만들고 큰 섬을 향해 달렸다.

저 흰 점들이 전부 날개 인간들이야? 못해도 20km는 떨어져 있을 텐데 눈이 얼마나 좋은 거야?!

쉬지 않고 동쪽으로 달리면서 흰 점들을 힐끔 보는데, 숫자가 50을 간단하게 넘는 거 같다.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이 흰 점으로만 보여서 날개가 몇 장인지도 안 보이네.

흰 점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거 같은데, 저놈들한테 마탄이나 마나 탄을 썼다간 폭음에 최고위 이형종이 난입할지도 모르니 제외.

공간 지각으로 지워버리려고 벼르고 있는데 녀석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접근하더니 멈춰 서서 내 공간지각 범위 밖에서 라이트 볼트만 무수하게 날리고 있었다.

뭐야! 왜 안 다가오냐?!

마치 근거리까지 다가오려는 거처럼 보이더니, 커다란 호수 인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워낙 멀리서 날아오는 데다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피하는 데 어려움도 없고 위기감도 없지만, 일방적으로 공격받고 있으려니 좀 짜증 난다.

눈에 힘을 줘서 살펴보니 날개가 죄다 2장인 거 같은데, 달려가서 확 다 쓸어버리고 튈까…?

아까는 조금 당황해서 마나 모드 가속을 켰지만, 가속을 종료하고 흰 점들을 빠르게 발판을 만들며 호박색 판 위를 달려나가며 날개 인간들을 노려보며 어쩔까 고민해봤지만, 답이 안 나온다.

한 번에 긴 공간의 벽을 쳐버리는 바람에 TP가 확 줄어버려서 마나 시브를 몸에 돌리며 진정을 되찾고 적당히 공간의 발판을 만들고 그 위를 밟고 이동하며 다시 북쪽을 바라보니 놈들은 여전히 멀리서 라이트 볼트만 쏘아내고 있었다.

수십 마리가 동시에 라이트 볼트를 비처럼 쏘아내는 건 위협적이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 위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거기다 마치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한 느낌도 동시에 들어서 저놈들은 대체 뭐 하는 건가 싶다.

정말로 날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마치 전함이 전투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쏘아내는 화망처럼 쏘지 않고 날 향해 거리를 좁히면서 최대한 집중해서 쏘아대겠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오지말라는 위협사격인 거 같다.

일단 큰 섬의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마나 모드 가속을 켜서 5시 방향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도망가다 보니 쏟아지던 라이트 볼트의 숫자가 줄어들다가 멈추길래 나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흰 점들이 점점 작아지는 게 보였다. 되돌아가는 건가?

…시발 것들. 최고위 이형종을 등에 업고 치사하게 멀리서….

두고 보자. 내가 A 클래스가 되는 순간 너희들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다!

그나저나 어떻게 날 발견한 거지? 못해도 20km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이형종이 가진 위상력 감지로 날 발견했을 리가 없잖아.

섬에 있을지도 모르는 최고위 이형종이, "저기에 혼이 썩은 인간이 있다. 잡아라." 라고 했거나 아니면 날개 인간들의 눈이 겁나 좋아서 하늘에서 자기네들을 염탐하는 날 발견하고 공격했거나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뭐, 후자겠지? 일단은 날개도 달렸고 이형종이고 새 같은 놈들이니 눈이 좋은 거겠지. 새들은 다 눈이 좋다잖아.

거기에 꼭 "오지 마!!" 하는 것처럼 라이트 볼트를 엉망진창으로 마구마구 뿌려댔었으니까.

황원荒原에 서서 되돌아가는 날개 인간 군단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저긴 일반 능력자들한테는 엄청 위험한 곳이네. 수십 마리의 속성 타입 상위 이형종이 떼로 몰려다니는 곳이라니.

저길 공략하려면 나라에서 능력자들을 동원해서 공략해야 할 수준이다.

난 저렇게 몰려온다고 겁나진 않지만, 그 뒤에 있는 최고위 이형종은 겁난다. 그래서 반격 안 하고 도망쳤던 거고.

어쨌든 귀환 포인트를 찾기 위해 공간 지각을 차분히 돌리며 큰 섬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 섬의 황원에 나 있는 거친 풀들은 내 가슴까지 올라오고 있었는데 이거 때문에 걷기가 좀 짜증 난다.

4.5km의 공간 지각 범위안에 잡히는 이형종은 천마와 일각수 두 종류뿐인데 대부분이 중위급. 그중에 간혹 중상위급이 보였다.

하늘 섬 상공에서 큰 섬을 내려봤을 땐 그냥 현실의 평원이랑 똑같은 생태계처럼 보이더니 중간중간에 이형종도 함께 살고 있나 보다.

뭐 당연한 이야기려나. 중상위 이형종까진 뭔가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하니까 식사 거리가 되어줄 동물들이 필요하겠지.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큰 섬에서도 5시 방향에 삐죽 솟아 나온 부분이다. 일단은 호수가 큰 섬의 서쪽에 치우쳐져 있어서 이쪽으로 왔는데 귀환 포인트가 이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

꾸우우우우어엉….

“어? 고래 울음소리?”

물속에서 퍼져나오는 듯한 울림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분지 섬에서 들었던 조금 날카로운 울음소리와는 다르게 묵직하고 흔들림이 없는 소리다.

누나가 있었다면 당장 보러 가자고 졸랐겠지만 난 생선 별로 안 좋아해. 아 참, 고래는 포유류였나?

“아~ 몰라 몰라. 집에 돌아가는 게 먼저야. 15일 동안 참았더니 몸에 사리가 생길 거 같아! 프랑이랑 화연이랑 영은이가 보고 싶다고!!”

고래 울음소리 따윈 무시하고 공간 지각에 집중하며 큰 섬의 외곽을 따라 달렸다.

꾸어어어어어어엉….

“아 몰라.”

꾸어어어어엉….

“안 들려 안 들려.”

꿔어어어어어엉…

…으으으! 그냥 울음소리면 무시하겠는데, 내가 말을 꺼낼 때마다 울어대는 게 꼭 날 자꾸 부르는 거 같아!

방향도 어딘지 알 거 같다. 지금은 남동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방향을 조금 꺾어서 동쪽으로 쭉 가면 보일 거 같다.

꾸워어어어어어엉…

“…아, 진짜!”

오냐! 날 부르는 그 면상 한번 봐주마!!

기다려라! 내가 간다!!

마나 모드 - 가속을 켜고 화연이와 영은이가 느꼈을 속도감에 취하면서 순식간에 큰 섬의 동쪽 벼랑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구름바다와 흡사한 색의 고래 한 마리가 순한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근데 크다.

진짜 크다.

엄청 크다! 고래는 벼랑에서 3km 떨어진 곳에 구름바다 위로 머리를 들어내고 있었는데 전신이 새하얗고 턱 아래, 전체를 뒤덮는 줄무늬가 보인다.

그런데 몸의 여기저기에 웬 상처가….

삼각뿔 모양의 머리가 흔히 알던 고래랑 비슷한데 원근감을 무시하는 저 고래는 내 공간 지각 범위 밖에 있는데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보인다.

맨눈으로 고래의 모습을 살펴보는데 녀석의 덩치가 눈에 전부 안 들어온다! 등 부분만 구름바다에서 솟아 나와 있는 거 같은데, 그 등 부분마저도 저 멀리 하늘 끝까지 맞닿아있는 모습이 진짜 무시무시하다.

덩치만 봐서는 거의 초거대 거북이 급인 거 같다.

“…니가 나 불렀어?”

-그렇다네. 어린 인간.- 꾸우우우웅.

역시 말을 거는구나. 아니 말을 건다기보다는 머릿속에 뜻이 흘러들어오는 게 초거대 거북이랑 똑같다. 특히 머릿속에 먼저 뜻이 흘러들어오고 귀에는 꾸웅 꾸웅 거리는 고래 울음이 이어서 들어오는 게 기묘한 느낌이다.

“왜 부른 거야? 나 바쁜데.”

-그대의 마음이 그리움에 가득한 것이 보이는군. 마음이 어딘가에 향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지만, 그대에게 밖에 도움을 청할 이가 없어 부득이 그대를 불렀다네.- 꾸우우우우우웅…

굉장히 선한 느낌에 예의 바른 고래네. 근데 내 생각을 읽은 거야?

“내 생각을 읽은 거야?”

-생각이 아니라 마음일세. 비록 그대의 $@는 *$ 할지언정 마음은 맑고 순수하니 그것을 믿고 그대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는 것일세.- 꾸우우우우우웅…

마음이랑 생각이랑 다른 건가? 머리랑 마음이랑 따로 논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고래가 두 가지 단어를 말했는데 이해도 안 가고 말로 표현도 안 된다.

부탁이라니…. 으음. 나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뭔데? 간단한 거면 도와줄게.”

-그대에게 하고자 하는 부탁은, 벽 너머 서쪽에 있을 나의 반려자에게 한마디 전해달라는 것일세. 한마디만 전해준다면, 그대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 나 역시 어떤 수단을 마련해서라도 도움을 주겠네.- 꾸우우우우우웅…

반려…. 마누라라고?

“혹시 반려가 서쪽 섬 하나에 몸통박치기 하는 그 귀신고래 말하는 거야?”

-…그러한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꾸우우우웅…

순해 보이는 눈을 감은 고래는 어딘가 모르게 슬픈 표정이다.

-그녀가 맞을걸세.- 꾸우우우웅.

“직접 가서 말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려고 하는 거야? 벽이라고 했는데 벽 같은 건 안 보였는 걸?”

-그대가 딛고 서 있는 땅에는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네. 그 존재의 영향은 이 운해의 북과 남을 가로지르며 왕래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일세….- 꾸우우우우우웅….

“막아? 벽? 난 그런 거 못 느꼈는데?”

그보다 저 고래랑 비슷한 존재? 그럼 이 고래도 최고위급이야? …슬쩍 다가가서 공간 지각으로 위상력을 감지해보고 싶은데.

-하늘은 저들의 것. 그대 역시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세.- 꾸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무척 보고 싶다는 느낌이 간절하게 전해져온다.

“…얼마나 못 본 거야?”

-해가 뜨고 지길 10만 번이 넘었을걸세.-

우어?! 273년이 넘어? 내가 그 시간 동안 프랑, 화연, 영은이를 못 본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라.

“어휴. 그냥 가서 전해주기만 하면 돼?”

-도움을 주는 것인가?-

거대한 흰고래는 기뻐하는 감정을 보내며 재차 확인하려 들었다. 쩝…. 집에 가는 거 좀 늦어지겠다.

“서쪽에 네 아내가 있는데 못 만난다면서. 다른 일이었으면 거절했을 건데 아내라고 하니까 도와주려는 거야.”

-고맙네 어린 인간.- 꾸우우우웅

“됐어. 내 이름은 서하야. 정서하.”

-…나의 이름은 인간의 언어로 알붐 케투스라 한다네.- 꾸우우우우웅

어? 사람의 언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어? 에이. 것보다 빨리 도와주고 집에 가야지.

“그래서, 뭐라고 전해주면 돼?”

-하계에서 보자 전해 주시게.- 꾸우우웅

“그거면 돼?”

-그것이면 되네. 그리고 그대가 찾는 전이원은 그대가 서 있는 장소에서 남쪽으로 가면 있을걸세.- 꾸우우우웅

전이원이 뭐야? 그보다 여기서 서쪽까지 한번 갔다 오려면 두어 시간 걸릴 테니까 후딱 다녀와야겠다.

-이야기를 전했다면, 가기 전 이곳으로 돌아와 주시게.- 꾸우우우우웅…

“알았어. 그나저나 저번 몇일동안 본적이 없는데 바로 전해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구름 속에서 반려의 이름, 푸루스 발라이나를 부르시게. 그리하면 곧 찾아올 것일세.- 꾸우우우웅

자칭 알붐 케투스라는 고래가 해주는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듣고 바로 뒤돌아 분지 섬을 향해 뛰었다.

큰 섬의 하늘 높이 뛰어올라 발밑에만 공간의 벽을 치는 연습을 하며 알붐 케투스가 해주는 말을 떠올렸는데, 저 날개 인간들이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붐 케투스와 푸루스 발라이나는 둘의 능력으로 이 구름바다를 만들어 함께 하늘을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커다란 섬 하나가 구름바다 속으로 들어오더니 구름바다를 자신들의 것인냥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거기서 만족했으면 됐을 텐데, 날개 인간들은 어느 사이엔가 구름바다를 움직이는 법까지 찾아 자기네들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알붐 케투스와 푸루스 발라이나가 날개 인간들의 우두머리와 대화를 통해 공존을 모색하려 했지만 오히려 공격을 받아 큰 상처를 입고 구름바다 속으로 도망을 쳤다고 했다.

한 번의 공격에 큰 상처를 입은 알붐 케투스와 푸루스 발라이나는 황급히 구름바다로 피했지만 같은 곳으로 피하지 못하고 알붐 케투스는 동쪽으로, 푸루스 발라이나는 서쪽으로 피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둘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큰 섬에서 알 수 없는 힘의 벽이 뻗어 나와 구름바다를 동쪽과 서쪽으로 양분해버렸다고 했다.

그 벽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알붐 케투스도 알 수 없고 단지 접근하려 하면 하는 힘만큼의 역장이 발생해 밀어낸다고 했었다.

네 몸 크기라면 섬을 들이박는 걸로 부술 수 있지 않냐고 물었는데 섬이 역장의 속에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물론 부수려고 공격도 해봤지만, 오히려 공격을 반사 당해 큰 상처만 입었다고 했었다.

알붐 케투스의 몸에 나 있던 상처는 그로 인한 상처였다. 게다가 섬에는 작은 동물들이 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고 했다.

…푸루스 발라이나는 동물이 있든 없든 별 섬을 들이박으면서 다 부시던데.

마누라 성격이 드세서 고생 좀 했겠다고 말하니 쓴웃음을 짓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까지만 듣고 뒤돌아서 공간의 벽을 밟고 하늘을 달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들었다간 이야기가 무진장 길어질 거 같았거든.

솔직히 알붐 케투스의 반려라는 푸루스 발라이나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몰라서 싫다고 할까 했는데 이름만 부르면 바로 나타날 거래서 그냥 빨리 전해주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저렇게 착해 보이는 고래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아가 버리면 어쩐지 찝찝할 거 같기도 하고 마누라를 273년이 넘도록 못 만났다는 것도 불쌍하고 또 귀환 포인트, 귀환 포인트를 알붐 케투스는 전이원이라고 하더라. 그거 위치도 알려준 게 플러스 요소가 된 거도 있어 후딱 이야기를 전해주기로 했다.

이번엔 큰 섬의 인근에 접근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큰 황무지 섬의 상공을 통과해 분지 섬으로 달려갔다.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큰 섬 쪽을 확인했는데 정확히 호수의 정 남쪽을 통과하려는 순간 흰 점들이 무수하게 날아오르는걸 보고 움찔했다.

하지만 멀어서 그런지 몰라도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미리 공간의 벽으로 발판을 띄엄띄엄 만들어놓고 그 위를 달리는 연습을 했는데, 이것보단 내가 발을 디딜 장소에 발판을 만드는 쪽이 익숙해지면 더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방식을 바꿨는데, 두 번째 방법이 정답이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발판 위를 달리면 발밑을 자꾸 보게 되면서 속도가 일정 이상 늘어나지 않았는데 내가 내딛는 곳에 발판을 만드니 익숙해지니까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거든.

처음엔 주춤주춤하면서 느린 속도로 커다란 판을 만들면서 그 위를 달렸지만, 차츰차츰 크기를 줄여나가며 조금씩 속도를 빠르게 하니 분지 섬에 도착할 때쯤에는 50cm 크기의 발판을 만들고 그곳을 밟으며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게 됐다.

한 번에 1개의 판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니까 TP는 50에서 오르락내리락해서 TP의 유지에도 좋았다.

이대로면 하늘을 뛰어다니면서 공간 조작을 펼치거나 공간의 벽을 만들어서 쓸어버릴 수도 있겠다.

거기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을 발견했는데, 공간의 벽을 생성이 가능한 건 공간 지각 범위 안이지만. 한번 생성해놓은 공간의 벽은 내 공간 지각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유지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연습을 포함해 2시간가량을 달려 남동쪽에서 분지 섬을 관통해 북동쪽, 푸루스 발라 이나를 처음 봤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공간 벽이랑 마나 모드가 아니었으면 이런 달리기는 꿈도 못 꿨겠네.”

문득 큰 섬을 피해 빙 둘러간다고 6시 쪽 신전의 위쪽을 뛰어서 달려가니 날개 여자가 흠칫 놀라면서 내가 있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놀라는 표정이 생각보다 귀여웠는데, 저년도 부부 고래의 사이를 가른 것들의 동료라고 생각하니까 밉살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혼에서 악취가 난다는 폭언도 쏟아부었었고.

분지 섬의 11시에 도착해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 구름바다에 들어가니 또다시 시선이 느껴진다. 이 시선이 푸루스 발라이나인걸까?

“푸루스 발라이나! 알붐 케투스가 이야기를 전해 달래서 왔어!”

구름바다 속에서 소리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어떤지 내 바로 아래에서 알붐 케투스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거대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 근데 이대로면…. 비탈길에 몸통박치기 하겠는데?!

기겁하고 분지 섬으로 뛰처올라가다못해 공간의 벽을 밟고 황급히 하늘로 튀었다. 그 순간 올라오는 기세에 비해 나랑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줄이더니, 종래에는 알붐 케투스처럼 얼굴만 내민 채 머릿속으로 뜻을 전해왔다.

푸루스 발라이나는 긴 유선형의 몸매에 머리와 등 부분에 수많은 상처 자국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들이박았길래 저만큼 상처가 난 거야?

혹시 구름 섬이랑 별 섬이 작은 이유가 푸루스 발라이나가 들이박아서 다 때려 부순 게 아닐까? 알붐 케투스의 절반보다 못한 거 같은데 그래도 무진장 커서 별 섬 이랑 구름 섬을 합친 길이는 될 거 같다.

저 몸집이라면 부수고도 남았겠지.

-그에게서의 전언이라는 건가요.- 꾸우우웅…

푸루스 발라이나의 목소리는 알붐 케투스보다 조금 가늘고 한 옥타브 높은 느낌이었는데 하던 짓에 비하면 부드럽고 잔잔한 바다 같은 목소리다.

“응. 알붐 케투스가 하계에서 보자고 전해 달래.”

-…그런가요. 전해주어 고마워요. 착한 인간.- 꾸우우우웅

음. 푸루스 발라이나의 작은 눈에서 살짝 눈물이 흐른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푸루스 발라이나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다시 구름바다 속을 잠수해 들어갔다.

=멈추세요!!=

으잉? 쟤는 언제 쫒아왔지?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체 무슨 짓을!! 공격하지 않으면 얌전히 있다 돌아간다는 말을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6시에 하나 남은 날개 여자는 4.5km 너머에서 의념을 보내다가 구름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간 푸루스 발라이나를 눈으로 쫓더니 당황하고 화난 눈빛을 보내온다.

널 공격 안 하고 얌전히 있었잖아. 큰 섬에서 공격해오는 것들도 상대 안 하고 얌전히 있었는걸?

“응? 난 고래의 부탁을 들어서 이야기만 전해준 거 뿐이야? 널 공격 안 하고 얌전히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그대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몰라. 아, 적어도 너희보다 착한 고래 부부라는 건 알겠다.”

그때 나는 전신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덕분에 눈에도 마나 비전이 발동 중이었는데 무척 화난 날개 여자는 빠르게 나에게 날아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랬다가 흠칫 놀란 자신에게 또 한 번 놀라더니 지팡이를 날 향해 뻗었다.

“공격하면 가만 안 둔다.”

공간 지각의 경고등이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는 모습에서 화가 날랑말랑날랑말랑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이런…. 악한 자가!=

날개 여자는 분노로 날개를 파르르 떨면서 눈썹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11시랑 2시 방향 신전에 있던 날개 여자들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벌써 공격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쟤는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까 내 눈을 보고 흠칫 놀랬지? 저 날개 여자도 내 마나 비전에 영향을 받은 건가?

좋아. 인간도 아닌데 막 실험해봐야지.

난 눈에 마나 비전을 강하게 집중하고 목에도 마나 비전을 집중해 날개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소리쳤다.

“[닥쳐!]”

=?!=

푸른 빛이 뚝뚝 떨어지는 내 눈에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는 날개 여자는 지팡이를 쥔 두 팔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고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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