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1 하늘 섬 =========================================================================
2시 신전에서는 3시 쪽에 만들어둔 캠프가 가깝지만 어째서인지 누나도 그렇고 나도 9시 쪽 캠프로 이동했다.
아마도 내 앞에 나뭇가지와 뾰족한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서 숨겨진 날개 여자 이형종의 시체, 이거 때문이겠지.
고치처럼 자기 날개에 둘둘 말린 날개 여자 이형종. 그 위에 3m는 넘는 4장의 날개를 덮어놓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그러다 벌렁 드러누워서 오렌지빛에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 얻은 새 능력에 관해 생각해봤다.
공간의 벽을 만질 수 있다는 거에 이걸 무기 같은 걸로 쓸 수는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어차피 공간 지각 범위 안에서는 내가 원하는 데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무기 같은 모양으로 쓸 필요는 없겠지?
거기다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허공에 딱 고정된 상태이기도 하고…. 혹시나 해서 동그란 막대기를 만들어서 손에 쥐어봤는데 암만 용을 써도 물리법칙? 엿머겅! 하는 것처럼 꿈쩍도 안 한다.
다시 공간의 벽을 넓적한 판처럼 공중에 만들어서 그 위에 벌렁 드러누우니 지팡이를 들고 스킬 수련을 하는 누나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이렇게 생성한 곳에 고정되어버리니 갑옷 같은걸 만들 수도 없겠는걸.
혹시나 싶어서 공간 보호막을 쳐봤더니 공간의 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서라면 마포의 폭발 범위도 공간의 벽으로 제어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거라면 차라리 공간의 벽 자체로 공격하는 게 낫지 괜히 마포를 쓰고 거기에 또 공간의 벽으로 제어하는 건 이중 삽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 보호막을 치우고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밑에서 누나가 날 부른다.
“서하야~.”
“어, 왜?”
“아까 구한 위상석 좀 보여줘!”
초롱초롱 빛나는 누나의 눈을 보다가 주머니에서 고위급 위상석을 꺼내 누나한테 던져줬다. 두 손에 고위 위상석을 받은 누나는 달빛을 반사하면서 시리게 푸른 빛을 뿜는듯한 위상석을 바라보며 두 눈에 욕심이 슬그머니 차오르기 시작했다.
“예쁘다~! 등급이 높은 위상석은 블루 다이아몬드보다 더 예쁘더니…. 꼴깍.”
하지만 암만 욕심이 발동해도 300만 TP 짜리 위상석에 욕심을 발동할 수는 없는지 누나는 연신 침만 삼킨다.
물빛으로 빛나는 위상석은 등급이 높을수록 맑은 물빛이 감돈다. 고위급 위상석 같은 경우에는 블루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다운 광채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다.
“두 번째 잡은 녀석이 고위급 위상석을 가지고 있다니, 땡잡았네. 고위급 위상석은 전부 경매로만 한다던데 얼마나 비싸게 받을 수 있으려나.”
“땡잡아? 얼마나 비싸게 받아?”
한참을 에헤헤 거리면서 위상석을 달빛에 비춰보거나 뺨에 대보면서 행복해하던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눈썹을 찡그리면서 날 올려다본다.
“어?”
“세상에. 나 진짜 이 말 안 할려구 했는데. 너 사람 맞어? 땅에 떨어진 빛 벼락 흔적 못 봤니?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보호막 하나 치구 혼자서 고위 이형종을 잡는다구? 이 말을 다른 사람한테 했다간 광년이 취급 받을 거야! 고위 이형종을 혼자 잡은 니가 괴물이라구!”
“너무해!”
“너무한 건 너야, 너! 고위 이형종을 잡기 위해서 레이드 팀이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준비하는지 아니? 전투지원 쪽에서 고위 이형종을 타겟 잡으면 그 이형종에 대한 모든 걸 분석한단말야! 분석하고 분석해서 그 이형종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장비를 갖추고! 저항장비를 갖추고! 물리 저항 장비를 갖추고! 진형부터 시작해서 전투 시뮬레이션을 수십 수백 번 돌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전술가를 초빙해서 전투의 흐름까지 분석하는데! 넌 보호막 치구 마탄 슉슉 날리더니, 벼락을 몇 대나 맞았는데 끄덕도 안하구 마탄만 자꾸 날리다가 떨어졌을 때 뭔가 슉슉하구 고위 이형종을 잡아버렸잖아!”
쉴 새 없이 따따따 말을 쏟아붓던 누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다시 심한 말을 던진다!
“이 괴물아!”
“우씨. 난 그냥 고위급 위상석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궁금했던 건데….”
괜히 질문하나 날렸다가 폭풍 구박 받았네!
“아니, 고위 이형종을 혼자 잡았으면 칭찬해줘야지 구박은 왜 하는 건데?!”
“어휴…. 화랑이 어째서 외 눈 거인만 잡는지 생각해봐 이 맹추야.”
“잡기 쉬워서?”
“아냐! 그만큼 노하우가 쌓이고 외 눈 거인 전문 장비가 쌓이고 팀이 짜여져서 그런 거야! 타임리버가 세계랭킹 21위였지만 화랑도 25위였단 말야. 보스가 C 클래스 감지 능력자인데 어째서 세계 랭킹 25위인지 생각도 안 해봤어?”
생각을 왜 해. 남의 레이드 팀에 신경 쓸 바엔 타임리버나 내 연인들한테 신경을 쓰겠다.
내 표정에서 생각을 읽었는지 누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어휴~! 세계 유수의 레이드 팀 중에 단 한 종류의 이형종을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안전하게 잡는 팀은, 한 종류지만 고위 이형종 하나를 잡는데 특화된 팀 중에서는 화랑이 독보적이란 말이야. 그런 레이드 팀을 만들어낸 아주머니도 대단하신거구 그런 레이드 팀을 지금까지 별다른 잡음 없이 이끌어온 박지웅 보스두 대단하신 거야!”
“아 몰라. 그래 봤자 난 이제 혼자서 고위 이형종도 막 잡을 자신 있거든? 내가 더 대단하다고!”
“아 진짜! 단적으로 봐서 B 클래스 중급 신체 강화인 화연이도 있고 균형도 잘 짜여있는 타임리버가 고위 이형종 레이드를 왜 못했는지 생각해봐!”
공간의 벽을 치우면서 땅에 내려와 누나 옆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화연이는 그 피스터머라는 고위 이형종도 잡았댔잖아! 그리고 이제 내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타임리버랑 화랑이 합쳐져서 그랑블루가 됐는데 그딴걸 왜 생각해?”
“…아우, 진짜. 내 동생만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뭐. 내가 누나보다 더 세거든?”
“세서 좋겠네요!”
딱콩!
“아 왜 때려!”
“얄미워서 때렸다!”
지팡이를 들고 내 머리를 또 콩콩 때려대는 누나한테 지팡이를 뺏어서 지팡이 머리로 누나의 엉덩이를 후려치니 "꺄!" 하다가 도망가면서 나한테 워터 볼을 쏘아내기 시작한다!
말은 워터 볼이지만 그냥 물 덩어리라서 몇 대 맞아주니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으르렁거리면서 지팡이를 들고 누나 뒤를 쫓아가니 갑자기 번쩍하고 섬광이 터져 나오면서 눈앞이 안 보인다!
순간 흠칫하다가 공간 지각으로 누날 찾아보니 저 멀리 도망가…. 저거 분신이잖아!
섀도 점프로 숨었나? 누나가 숨은 방향을 홱 돌아보고 그곳으로 뛰어가는데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진다!
“어푸푸! 아 뭐야?!”
물벼락을 맞고 누나가 있, 는곳에 도착했더니 안 보인다! 또 튀었어!
“약오르지?! 메롱메롱!”
저 멀리 30m 떨어진 곳에 나타난 누나는…. 점프 거리가 또 늘어났네? 아니 그것보다!
우어어어!! 내 마탄같은걸로는 누날 어찌할 수 없어서 신체 강화를 돌리면서 누날 쫓기 시작하니 누난 빛이랑 물이랑 섀도 점프를 이용해서 날 피해 다니며 물 폭탄을 쏘아댄다!
“우와~! 섀도 점프 짜증 나! 신체 강화만으로 못 잡겠어!”
“까르르!”
진짜 짜증 나서 눈에 불을 켜고 마나 모드 - 가속을 킨 채 번개같이 뛰어가니 누나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도망가다가 공중에 워터 볼을 던진다. 그 순간 사라지며 공중 50m 지점에 워터볼이 만들어내는 미약한 그림자로 점프를…!
“헐?!”
그리고 연달아 워터 볼을 던지면서 섀도 점프로 뿅뿅 날아다니는데 기가 찬다.
해가 완전히 지고 달과 별이 떠오를 때까지 투닥이던 우리는 누가 그랬냐는 듯이 낄낄거리면서 저녁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19일 아침에 일어난 나와 누나는 6시의 이형종을 잡으러 출발했다.
왼쪽 어깨에는 고치처럼 말린 날개 여자 이형종의 사체를 짊어지고 누나는 네 장의 날개를 들고 6시 언덕에 마련된 캠프로 이동한 우리는 날개 여자 이형종의 사체와 날개를 잘 숨겨놓고 신전을 살폈다.
“…저 신전에도 날개 여자 이형종이랑 천마 한 마리 뿐이야. 날개 여자는 위상력 220만의 고위 이형종이고 천마는 중상위 이형종이야.”
4.5km로 대폭 늘어난 공간 지각 덕분에 언덕 위에서도 신전이 감지가 된다. 공간 지각의 끄트머리에 신전을 넣고 감지하니까 저 날개 여자 이형종은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는 거 같다.
날개 여자 이형종은 새 석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천마는 그 뒤에 앉아 고개를 바닥에 늘어트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간 지각으로 샅샅이 살펴보고 내가 숨겨놓은 날개 여자 이형종 사체랑 비교했더니 틀에 넣고 찍어낸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겼다. 완전히 소멸해버린 두 번째 날개 여자 이형종도 똑같이 생겼었지?
위상력이 220만 정도라 아쉽지만 위상 석은 없다. 그래도 300만짜리 하나는 건졌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참고로 그 위상 석은 누나의 주머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가지고 있고 싶다나?
이른 점심을 먹고 싸울 준비를 시작하니 누나가 날 보며 물었다.
“어쩔꺼야? 바로 공간의 벽으로 죽일 거니?”
“아니. 이제 대화 한번 시도해보려고. 범위도 대폭 늘어나고 나도 많이 세졌으니까 저게 아무리 용을 써도 날 못 이길 테니까.”
“…너무 배포가 두둑한 거 아냐?”
“초거대 거북이에 대해서 정말 궁금하단말야. 말이 안 통하고 먼저 공격해오면 나도 바로 상대할 거지만 그게 아니면 대화부터 시도해보려구. 저게 아니면 초거대 거북이에 관해서 알 방법이 없을 거 같아.”
“으응.”
누나는 이제 와서 대화를 해볼 생각이 들었다는 게 어쩐지 신경 쓰인 거 같다.
“벌써 둘이나 잡아놓고 이제 와서 말을 걸려는 게 맘에 안 들어?”
“조금 그래. 어쩐지 우리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
“…그럼 그냥 말까?”
앞으로 고위 이형종을 잡을 일도 많을 텐데 누나가 잡기 싫어하는 이형종을 죽이기는 싫어서 물었더니 잔뜩 당황하며 또 미안해했다.
“응?! 아, 아냐 아냐! 미안해. 누나가 괜히 눈치 없는 말 꺼냈지? 자, 어서 가보자. 이번에도 난 숲에 숨어서 보다가 서포트할게?”
“어? 아냐. 그런 뜻이 아니라.”
“으응. 뭘 말하려는지 알아. 나도 갑자기 엉뚱한데 서 이상한 자비심 같은 게 들어버려서 그랬어. 신경 쓰지 말구 가자!”
“응. 알았어.”
나보다 먼저 앞장서서 언덕 비탈길을 내려가는 누날 뒤쫓아 가서 입을 열었다.
“어제 누나의 서포트는 최고였어. 누나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싸우고 있었을지도 몰라.”
“흥~ 그런 칭찬은 좀 일찍 하라구!”
구박하는 말투와는 다르게 누나는 빵실거리면서 웃는다. 나도 마주 웃어준 다음 신전에 접근하는데 날개 여자 이형종과의 거리가 4km 이하로 줄어드니 바로 날개 여자 이형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고위 이형종은 위상력 감지 범위가 4km인가?
“…누나. 이번엔 전투가 시작하기 전까진 어둠 속성 쓰지 마. 알았지?”
“알았어.”
어쩌면 어둠 속성 능력을 써서 저 말대가 리가 발작 일으키듯이 달려든 걸지도 모르겠다…. 예상일 뿐이니까 진짜인지 아닌지 알 방법도 없고.
아, 저 지팡이도 두고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에이, 그랬다간 주머니에 위상 석도 놔두고 왔어야했겠지.
아무튼 난 적의가 없다는 뜻으로 두 팔을 늘어트린 채 천천히 신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려니 날개 여자 이형종도 신전의 셀라에서 걸어 나오고 그 뒤를 따라 천마도 함께 나온다.
셀라에서 나온 여자 이형종은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며 멈춰있었고 나와 누나도 얼마 길지 않은 숲을 통과해 날개 여자 쪽을 바라봤다.
능력자 보정으로 눈이 좋아진 나와 누나지만,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엔 힘든데…. 이형종인 날개 여자는 우리 얼굴을 보고 있는 거 같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겨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440m까지 다가갔더니 천마가 움찔하면서 날 경계하기 시작한다.
중상위급의 위상력 감지 범위는 440m인가? 엘리펀트로스 이인자 녀석은 더 길었던 거 같은데…. 천마가 경계하는 거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말없이 날개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일입니까, 배교자여.=
배교자? 날 보고 하는 말이니 나한테 말하는 건가? 내가 왜 배교자지…. 난 무굔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 찾아왔어. 무례인 줄은 알지만 대답해줄 수 있을까?”
=그대의 혼에서 풍기는 악취는 마주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물러나세요.=
아~ 속에서 갑자기 울컥해버렸어. 내가 혼까지 썩은 놈이란 거야? 확 그냥 마성의 어린 육식 왕자님의 힘을 보여줘?
“초면에 무례한걸.”
=애초 무례한 것은 그대들입니다. 나의 자매들을 해친 그대의 낯짝은 얼마나 두껍기에 저에게 질문을 하려는 것입니까.=
…우와.
나는 물론이고 누나까지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그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래도 약하게 경계만 할 뿐, 공격해오려는 모습은 없어서 살짝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누나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야. 공격해오는데 죽여주세요,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기에 저 역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저의 입에서 당신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가 ^$&@!하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중간에 이해도 안 되고 발음하기도 힘든 두 단어는 뭐지?
“많은 것도 아니야. 딱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어. 높이가 20km를 넘는 거대한 거북이에 관한 거.”
=…어째서 그대가 &%^@를 알고 있는 겁니까.=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날개 여자의 얼굴에 미약한 경련이 지나가며 희미한 놀라움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해주면 질문에 대답해줄 거야?”
=…….=
누나는 나와 날개 여자의 대화에 숨을 죽인 채 집중하고 있었고 천마 역시 나와 누나를 번갈아 보며 약한 경계심을 표시하고 있다.
날개 여자는 눈을 감고 어째 고민하는듯한 모습이길래…. 그냥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날짜로 치면 100일도 전에 직접 만났었어. 그리고 나한테 "그들을 미워하지말라" 라는 부탁을 받았거든. 그 거북이는 뭔지, 그 거북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알고 싶어.”
=…그대는…. 그 질문에는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끄응…. 근데 날개 여자 이형종은 '저자들에게 그걸 알려줄 수 없다.' 라는 표정이다. 어쩐지 알기 쉬운 표정인 거 같아 혹시나 싶어 다시 입을 열었다.
“안 하는 거야? 아니면 못하는 거야? …모르는 거야?”
=…….=
“…말해줄 수 있는 존재는 있어?”
=…….=
“동쪽의 큰 섬에 있어?”
=…….=
“날개가 세 쌍인 존재가 알려줄 수 있어?”
=그, 그대는….=
내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지막에는 눈썹을 역으로 꺾으면서 마음을 읽는 거냐 는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너, 표정 숨기게 되게 못하는구나. 아무튼, 대화를 나눠줘서 고마워. 답례랄까, 답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얌전히 있다가 돌아갈게. 너희도 우릴 공격하지 말아줘.”
=…….=
날개 여자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누나. 가자.”
“으응.”
날개 여자와 천마는 우리가 숲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천마가 날개 여자의 모습에 걱정이 되는지 큰 입을 가져가 날개 여자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침묵하던 날개 여자는 고개를 들어 허전한 눈빛을 보내더니 도로 신전 안으로 들어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새 석상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으음. 공간의 벽을 쳐서 발판처럼 만들면 옆쪽 섬에는 넘어갈 수는 있지만, 저 섬에 있다는 날개 6장의 날개 인간이면 어째 최고위 이형종 일 거 같아서 넘어가기 겁나네.”
“…옆에 큰 섬으루 넘어갈 생각은 아니지?”
“응. 가도 나 혼자 넘어갈 거야. 누난 안 데려가.”
“안돼! 가지마, 응? 최고위 이형종이 덤비면 어떡하려구 그래!”
“나도 겁나서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마.”
“…휴우. 아무튼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아? 신전의 벽화는 확인 못 했잖아.”
“공간 지각으로 이미 다 확인했어. 누나 예상대로 6시 신전에는 뱀과 새가 서로 노려보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 거대한 뱀은 공중에 몸을 돌돌 만 채 떠 있는 모습이었는데 땅에는 온갖 뱀들이 가득한 음각 그림이었어. 단지 2시 쪽 벽화와는 다르게 싸움은 일어나지 않은 벽화던데?”
“우움.... 역시 니 말대로 사방 신이랑 관련이 있을법한 신전과 벽화들인 거 같아.”
“일단은 구름 섬, 별 섬, 분지 섬의 모습 하구 귀신고래랑 전투, 신전의 모습 같은 건 전부 영상으로 기록하고 사진도 찍어놨으니까 나가서 조사해보면 되겠지.”
“언제 찍었어? 난 찍는 줄도 몰랐는데.”
“그냥 학교 애들한테 자랑하려고 좀 찍은 건데?”
누나는 내 대답이 어처구니없었는지 황당한 표정이 됐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6시 캠프에 돌아온 우리는 날개 여자의 사체와 4장의 날개, 일각수의 뿔 하나를 내려다봤다.
“이제 어떡할 거야? 남은 시간 동안 그냥 수련만 하다가 돌아갈 거니?”
“그래야지. 돌아가기 전에 마포도 최소 출력으로 한번 쏴봐야겠고.”
지금은 19일 오전 11시, 오후 5시가 되면 12일째가 된다. 22일 오후 5시가 되면 최소한 누나는 복귀하게 될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할 확률이 크겠지.
지난 시간 틈틈이 이동하면서 분지 섬을 살펴봤지만, 귀환 포인트는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눈을 돌려 고위급 위상석을 만지작거리며 헤벌쭉하고 있는 누나를 봤다.
…못해도 14일째 되는 날에는 누나한테 말해야겠다.
그 이후 누나의 강력한 요청에 11시의 별 섬이 보이는 쪽에 캠프를 하나 더 설치했다. 말은 거창하게 캠프라고 했지만, 땅속에 두더지 굴 하나 파고 덤불을 통째로 옮겨다가 가림막 하나 설치하고 끝.
아무래도 누나는 돌아가기 전에 구름바다 속을 유영하는 귀신고래가 한 번 더 보고 싶은 거 같았다.
…솔직히 나는 그 귀신고래를 잡고 싶은데.
누나는 가림막 뒤에 숨어서 옷을 홀랑 벗고 퓨전 다크라이트를 계속 연습했는데 누나 같은 천재한테도 힘든 일인지 자꾸 실패하면서 빛과 검은 안개를 막 퍼트렸다. 다크 썬더를 쏘아내는 거랑은 또 다른가 보다.
폭발을 안 하는 건 다행인데 빛은 괜찮지만 검은 안개가 문제다. 검은 안개는 실패할 때마다 잔뜩 퍼져 나와서 주변에 있는 건 누나 빼고 다 녹여버렸거든.
그걸 보다가 나도 마포를 시험해봤다.
누나가 휴식을 취할 때 마포를 쏘아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최소치인 5,000 TP를 손바닥에 응축시켰다. 그리고 위상력을 모아서 덮어씌웠더니 보기에도 섬뜩한 심해의 물속 색 같은 퍼런 구슬이 완성되었다.
구슬의 중심은 회오리 모양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는데 TP와 위상력이 따라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섬뜩하다.
“꼴깍.”
누나의 침 넘어가는 소릴 들으며 하늘을 향해, 최대한 멀리 날아가게끔 조절해 마포를 쏘아 올렸다.
5초 만에 내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나가버린 마포는 하늘 높이 쭉쭉 올라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마포는 한참이 지나도록 터지지 않는다.
“…언제 터지니?”
“그러게? 그냥 최대한 날아게끔 날렸는데…. 언제 터지려나?”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다 돼갈 때쯤에서야 빛이 번쩍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별이 폭발하는 모습이라면 이런 걸까 싶을 만큼 빛을 사방으로 폭사하는 모습이….
구구구구구구구….
뒤늦게 도착한 굉음과 함께 저릿저릿한 소름을 선사해주었다. 누나도 목덜미에 약간의 소름이 나 있는 게 보인다.
하늘에 잠시간 생겨났던 또 하나의 태양을 올려다보던 누나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10분 뒤에 터졌지? 속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어?”
“5초 만에 4.5km를 벗어나 버렸으니까…. 초속 900m인가? 단순 계산하면 540km 밖에서 터졌어.”
“으음….”
누나는 머릿속으로 뭔가 계산기를 튕겨보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너 진짜 휴대용 전략핵미사일이다? 마포가 도시에 떨어지면 도시 하나가 통째로 증발할 거야.”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계산이 가능해?”
“계산 식이 있어, 그러니까 대충 50km 정도 돼.”
“생각보다 작네. 난 100km는 넘어갈 줄 알았는데.”
“…너무 현실을 게임처럼 보는 거 아냐?”
어제 마포의 폭발 범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그런지 누나도 수백km가 아닌 점에 안심하는 거 같은데 저건 최소 TP로 쏜 거라고.
실제로 마포를 쏴봤더니 이러든 저러든 현실에서 쓰면 안 될 능력이긴 하다. 현실에서는 마나 탄이나 공간의 벽을 쓰고 위상 세계에서는 마탄을 위주로 써야겠다.
마나 탄이나 마나 포를 쏠 때면 현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 마탄이나 마포는 그런 게 없어서 조금 아쉽군.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