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6 하늘 섬 =========================================================================
뭐지?
누나한테 배를 맞는 순간, 뭔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돌아보고 호수를, 초원을 돌아보지만 특이한 건 안보….
황급히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니 보여야 할 게 안 보인다.
이형종이 죄다 사라졌어?
“서하야?”
누나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잠시 미뤄두고 다시 하늘을 찬찬히 살펴보니 하늘에 하얀 점 같은 게 하나가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저긴…. 11시 쪽 신전이 있는 방향인데.
“누나.”
“으응?”
잘 쉬다가 갑자기 심각해지는 내 모습에 누나도 덩달아 긴장하는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대답했다.
“도망가라고 손짓하거나 하면 바로 언덕으로 뛰어가. 알았지?”
“무, 무슨 일인데 그래?”
“하늘에 떠 있던 이형종이 죄다 사라졌어. 뭔가 심상치 않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 아까 이야기 나눈 대로 할게.”
틀림없다. 시선은 저 흰 놈한테서 느껴지는 거야.
내가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누나도 내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일각수의 뿔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슬금슬금 나무 뒤로 숨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하얀 점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다. 주변에 그 많던 이형종 들이 죄다 도망가버릴 정도라면, 적당히 강한 녀석일 리가 없어.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 거 같은데. 제길, 설마 속성 타입인가? 차라리 신체 강화 타입이 나은데…. 재수 없으면 희귀 타입일지도 모르고.
…괜찮아. 난 고위에 가까운 상위 이형종을 공간 조작도 안 쓰고 이겼잖아? 설마 누나의 1회차 지역에 고위 이형종이 있을 리가….
아 참, 귀신고래가 있었지. 그 크기나 섬을 때려 부수는 놈이 상위 이형종일 리 없지.
에이 더럽다 진짜.
최대한 공간 지각에 집중하면서 녀석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점점 모습이 커지면서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개가, 4장? 좌우에 2장씩 두 쌍의 날개를 지닌….
허 참. 천사? 천사냐?
생각하는 도중에도 천사는 천천히 날아와서 곧 공간 지각의 범위 안에 들어왔는데, 재빨리 천사의 위상력을 감지해보니 위상력이 186만…. 고위 이형종이다.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흐르는데 다행인지 저 천사는 적의는 보내지 않고 있었다.
아….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타입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 더러운 이형종 놈들은 전투개시 전에는 타입을 알 수 없으니 짜증 난다!
속성 타입일까? 속성이면 외견상으로는 하얀색이고, 머리카락이 금색이니까 번개 속성? 아니면 빛? 빛은 범위가 넓으니 누나가 휩쓸릴 위험이 커. 자릴 피할까. 근데 안 따라오고 누나한테 가버리면….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하는 가운데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천사의 모습에 3회차에 만난 인어처럼 말이 통하는 놈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긴장은 풀지 않고 천사를 계속 보고 있으니 천사도 금빛 홍채를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저건 여성형 천사였는데 하나하나가 자기 몸보다 큰 새하얀 날개와 벌꿀 색의 금발을 휘날리며 얇은 한 장의 천을 튜닉처럼 걸치고 있었는데 손과 발에는 신발이나 장신구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키는 2m가 조금 넘어가는데, 백조 날개처럼 생긴 날개는 한 짝이 3m를 넘어가는 거 같다. 손에는 자기 키만 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천은 무척이나 얇아 천사의 알몸이 고스란히 비춰 보이고 있었는데 외모나 몸매가 거의 신체 강화 능력자 수준의 미녀였다.
보통 천사는 중성으로 표시하던데 저 천사는 풍만한 유방도 그렇고 금빛의 털이 나 있는 둔덕도 그렇고 여지없이 여성성을 표현하고 있다.
천사는 100m까지 다가오더니 하늘에 멈춰서 가만히 날 내려다본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천사와 눈을 맞추고 있더니, 천사가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움직이는데 머릿속으로 천사의 말이 흘러들어온다.
=그대는 천마 天馬를 본 적이 있습니까.=
…난리 났다.
내 손에 시체도 남기지 않고 소멸한 페가수스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데 공간지각으로 누나를 확인하니 누나도 눈이 휘둥그져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망가.
누나의 시선이 날 향하는 순간 손을 허리 뒤로 돌려 누나를 향해 손을 젓는다.
“응. 한 쌍의 날개에 여섯 개의 다리가 있는 말이라면 5일 전에 본 적 있어.”
내 손짓을 본 누나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곧 뒤돌아서 도망가기 시작한다. 버팅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시키는 대로 도망가네.
=어찌하셨습니까.=
두 날개를 우아하게 퍼덕이는 천사는 내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졌는데 고저차 없는 음색에 사늘한 목소리는 어쩐지 희미한 분노의 감정이 담겨있는 거 같다.
“어찌했냐니. 그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는 게 먼저 아냐?”
침을 꼴깍 삼키면서 누나와 천사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입을 열었지만 천사의 눈에 점차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천사는 도망가는 누나 쪽으로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나만 노려보고 있다. 누나는 잠깐 사이에 400m까지 떨어지더니 도망을 멈추고 이쪽을 보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야!! 더 도망가지 않고!!
아 진짜! 나중에 엉덩이 맞을 줄 알아!
=어찌하셨습니까.=
“…어찌했다면 어쩌게?”
=어찌하셨습니까.=
“말이 안통하는구만. 먼저 적의를 보내며 공격해오길래 죽였어.”
다 알고 찾아온 거 같은데 간 보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내 말을 기점으로 천사의 예쁜 얼굴이 구겨지며 분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천벌 天罰을.=
천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공간 보호막을 치고 동시에 천사에게 원거리 공간 조작을 가했다.
망했네~!
적의를 캐치하는 순간 먼저 선빵을 때렸지만, 전조도 없는 공간의 일그러짐은 고위 이형종인 천사에게 그다지 크지 않은 상처만 남겼다!
공간 조작이 최강이 아니었어!!
=흐윽.=
천사를 중심으로 동그란 파문이 천사의 몸만큼 퍼져 나왔지만, 일그러짐에 휘말린 한쪽 날개가 조금 우그러지며 천사의 가녀린 육체가 휘청일 뿐이었다.
거기다 공간 조작을 버티던 천사는 저 가녀린 육체를 활짝 펴더니 공간조작의 일렁임을 뿌리쳐버렸다!
…믿었던 공간 조작이 힘없이 파훼 되는걸 보니 입안이 바짝 마르는 거 같다.
하늘에 고정되듯 몸을 띄운 천사는 격노한 기색으로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리며 짜랑짜랑한 소리로 외친다.
=천벌을!!=
츠즈즛!
우와! 하늘에서 빛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다!!
순간적으로 마나 모드 - 가속이 켜졌지만 가장 먼저 빛의 속도로 떨어진 빛의 벼락은 피하지 못했는데 공간 보호막이 살짝 울렁이더니 지속시간이 10%나 줄어들었다!
“헉!”
비록 처음 한 발은 맞았지만 슬로우 모션의 세계로 들어가며 잽싸게 발을 굴러 연달아 떨어지는 빛의 벼락을 피해냈더니 빛의 벼락과 함께 라이트 볼트가 무시무시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징 치르릉 치이잉!
우와아아아!! 이, 런! 미친!
수없이 터져 나오는 늘어지는 트라이앵글 같은 소리에 기겁하면서 필사적으로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린다.
대지를 검게 태우는 빛 벼락을 피하며 내가 지나치는 자리로 연달아 쏟아져 내리는 라이트 볼트에 이를 악물고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회피한다.
등 뒤에 누나보다 배는 두껍고 빠르게 날라오는 라이트 볼트가 빛무리를 뿌리며 폭발하는 모습이 섬뜩하다.
하지만 비처럼 쏟아지는 라이트 볼트를 전부 피할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몇 발의 라이트 볼트의 공격을 허용하니 공간 보호막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츠즛!
마치 고장 난 티비처럼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 벼락이 다시 한 번 떨어지는 순간 황급히 옆으로 펄쩍 뛰며 천사에게 다시 공간 조작을 시전했다.
떡갈나무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천사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 공간이 다시금 일그러지고 족히 G컵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리고 조각한듯한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도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천사의 외형에는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에!
=하앗!=
일그러진 공간을 다시 한 번 기합으로 터트려버린 천사는,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고통에 멈칫했다가 기합으로 공간 조작을 떨쳐내느라 빛 벼락이 잠시 멈췄다.
나도 최강이라고 생각한 공간 조작을 버텨내는 모습에 기겁할 뻔 했지만 멀쩡한 외형과는 다르게 내장이 엉망진창이 됐는지 코와 입으로 피를 왈칵 쏟아내며 파르르 떠는 모습을 확인하고 아주 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통하는 건 아니구나.
천사가 입고 있던 튜닉은 공간 조작에 휩쓸려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백옥같은 나신을 드러낸 천사는 자신의 피로 가슴을 적시더니 황급히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어! 도망가는 거냐?!
순식간에 멀어진 천사를 보다가 내 멍청함에 혀를 찼다. 마나 레이의 거리를 벗어나 버렸어.
근데 피가 뻘건 색에 하얀빛이 감돈다, 설마 저거 광혈光血이야? 진짜 천사?
…나 지옥행 특급열차 예약한 거야?
아 몰라! 저대로 두면 하늘 높이 올라가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천사부터 먼저 팰래!
단 2번의 공간조작과 한 번의 공간 보호막으로 이미 절반에 가까운 12만 TP를 소비했다. 거기다 보호막도 지속시간이 50% 정도밖에 안 남았다.
만약을 위해 TP를 남겨둬야 해.
하늘로 계속 올라가는 천사를 향해 최대한 빨리 쏠 수 있는 수치인 50 TP 마탄 4발을 천사를 향해 쏘아냈더니 천사는 등 뒤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마탄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몸을 돌리고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러자 치리리리링하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의 끝에서 무수한 라이트 볼트가 마탄을 향해 쏟아진다!
덩달아 아래쪽에 있는 나에게도 쏟아지는 라이트 볼트를 피해 호숫가를 따라 달리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와진짜! 한번 휘둘렀는데 지팡이에서 수십 발의 라이트 볼트를 쏟아붓는 건 너무하잖아!!
누나, 누나 쪽으로 도망가면 안 돼!!
쿠과가강
라이트 볼트 여러 발을 씹으면서 날아간 50 TP 마탄은 천사의 인근 거리에서 터지며 좁은 범위에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다.
=흐윽.=
폭발은 대기를 떨게 만들고 호수의 수면이 파도치듯이 철썩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천사의 신음이 머릿속을 울린다.
충격에 가녀린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풍성한 벌꿀 색 금발이 미친 듯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백옥같던 피부가 뭉개지고 찢어지며 전신으로 광혈을 흩뿌리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승기가 보인다!
마탄의 폭발에 휩쓸리느라 날아오르기를 멈춘 천사를 향해 쉬지 않고 마탄을 쏘아내니 천사는 피할 생각도 못 한 채 몸을 웅크리고 날개로 몸으로 감싼 채 연달아 마탄의 폭발에 휩쓸리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쿠쿵! 쿵.
뭐야 저거? 날개는 폼이었어?! 퍼덕이는 게 멈췄는데 왜 안 떨어져!! 게다가 천사의 날개가 마탄의 폭발을 버티고 있잖아!
최초의 마탄에 전신에 터지고 찢어진 상처를 입은 천사는 몸의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피를 철철 쏟고 있었는데, 그 순간 천사가 발작적으로 외친다.
=큭…. 하늘이여!!=
천사의 섬칫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자마자 하늘이 새하얗게 물든다.
오싹한 느낌에 피부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면서 대지를 박차고 달리던 뱡향의 반대로 몸을 날리니 내가 달려가려던 장소에 거대한 빛의 줄기가 내려꽂혔다!
데에에에엥….
칵! 식겁하겠네!!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간접 영향권에 있었을 뿐인데 공간 보호막의 지속시간이 팍 줄어서 10%밖에 안 남았다!! 계속 달렸으면 저 빛줄기에 핀포인트로 맞고 죽을 뻔 했어!!
천사도 방금의 일격은 좀 힘들었는지 숨을 고르길래 잽싸게 공간 보호막을 다시 치는데, 공간 보호막을 쳤는데도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몸을 진동시키는 느낌에 몸서리치고 다시 천사를 향해 손가락에서 마탄을 뽑아내 미친 듯이 날렸다.
남은 TP는 10만가량! 이걸로 저년을 못 죽이면 내가 죽겠다!
마나 탄보다 어림잡아 5배는 강한 위력을 보이는 마탄을 어떻게 저리 버티는지 천사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주변에서 터져나가는 마탄의 폭발에 버티기 시작했다.
어?! 몸에 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아오 씨발! 저 날개는 뭐냐 대체! 저게 회복 자세라도 되냐?!
하지만 충격이 없진 않은지 천사가 입에서 다시 한 번 피를 쏟는 순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웅크리고 있는 천사의 아랫배 부분에 공간 조작을 다시 한 번 날렸다.
2번을 더 쓰면 더이상 못 쓰지만, 아낄 때가 아닌 거 같아!
그런데 그게 정답이었는지 자신의 아랫배에서 한 번 더 일그러지는 공간을 떨쳐내지 못한 천사는 공간 조작에 휩쓸리며 걸쭉한 피를 토하더니 다 끊어져 가는 숨소리로 입을 연다.
=흐윽…. 하, 늘 님이시여. 저자에게…. 하늘 날개의…. 철퇴를….=
그리고 천사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피를 뿌리며 호수에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공간 지각은 천사의 숨이 붙어있다고 알려와서 마나 레이의 범위에 들어오는 순간 천사의 심장을 향해 마나 레이를 쏘아냈더니 검지 굵기의 푸른색 불투명한 빛줄기가 삽시간에 천사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입맛이 쓰다.
뒷맛이 겁나 더러운 싸움이다. 잘하고 못 하고가 아니라 상대한 이형종이…. 에이!
더러운 건 더러운 거고 이미 저질러버렸으니 어떡하냐, 할 일 해야지!
호수에 떨어진 천사의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 공간 보호막을 끄고 물속에 뛰어들었더니 그새 물고기 이형종 들이 천사의 피 냄새를 맡았는지 시체에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새끼들이?!
순간 열불이 뻗쳐서 마나 레이로 가까이 다가온 것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멀리 있는 놈들한테도 마나 탄을 쏟아부어 박살 내버렸다.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데…!
푸른 호수 속에 뻘건 피와, 피 속에서 흐르는 빛줄기가 안개처럼 퍼져나오며 천천히 가라앉는 천사의 모습이 보인다.
물의 흐름에 하늘거리는 하얀 날개를 보다가 손을 뻗어 날개를 붙잡으니 물 속이지만 최고급 털실을 잡은듯한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다.
날개를 잡아당기고 심장에 구멍이 난 천사의 몸뚱아리를 끌어안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좀….
어휴.
커다란 날개가 물을 잔뜩 빨아들여서 조금 무거웠지만, 헤엄을 못 칠 정도는 아니어서 마나 모드 - 가속을 켜고 천사의 시체를 허리에 끼고 호수 기슭으로 헤엄쳤다.
“…하아.”
진짜 선빵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처음에는 공간 조작이 피해를 별로 못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단지 표시가 안날뿐이었지 심각한 데미지를 준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겨우 두 발을 맞고는 도망가려 했던 거겠지.
먼저 공간 조작으로 타격을 안 줬으면 저 천사의 속성 공격에 도망 다니다가 전투가 무진장 힘들어졌을 게 틀림없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라이트 볼트의 연사 속도에 빛 벼락이랑 프랑의 심판의 벼락보다 조금 못해 보이는 큰 빛 벼락까지.
거기다 누나가 근처에 있어서 신경이 자꾸 그쪽으로 쏠리려 해서 진짜….
전투가 끝난 걸 누나가 확인했는지 황급히 내 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인다.
달려오는 누나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옆구리에 낀 천사의 시체를 내려봤는데 천사는 전투에 휩쓸리며 옷가지가 다 찢어진 데다 물에 흠뻑 젖은 나신이 고스란히 드러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알몸의 이곳저곳에 입었던 상처는 어느새 아물었는지 매끈한 피부를 드러내지만,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전부 피를, 광혈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까….
…으음? 왜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지.
아니, 천사의 나신에 발정 나서 울렁거리는 게 아니다. 이건…. C 클래스에 올라설 때 봤던 환상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하아아….”
아 몰라.
한숨을 쉬면서 천사의 시체를 옆에 집어 던져놓고 털썩 주저앉았더니 두 눈에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누나가 달려와서 날 덥석 끌어안는다.
“서하야아아~! 괜찮아?! 다친 덴 없어?!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는데 괜찮아?!”
“선빵필승이란 말이 있잖아. 내가 먼저 친 덕분에 다친 곳은 없어.”
뭐 벼락 한 대 맞고 라이트 볼트에 두드려 맞고 큰 빛 벼락에 휩쓸리긴 했지만, 다행히 공간 보호막이 다 막아줬다.
“다행이야….”
누난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날 걱정한 건 걱정한 거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 누나를 일단 생각해둔 대로 혼내줘야겠지?
얼굴을 한껏 굳히고 날 끌어안고 있는 누나를 밀어낸 다음 양 뺨을 꼬집으면서 누날 노려봤다.
“그전에 내가 뭐랬어.”
“흐에에?”
“도망가라고 했을 때 뭐라고 했냐구.”
뺨을 놔주니 누나는 힐끔거리면서 엎어진 채 날개에 몸이 가려져 있는 천사를 보다가 조금 기죽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머, 멀리 도망가라구 했지.”
…슬금슬금 물러나려는 누나를 보니 머리에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다. 동시에 번개같이 손을 뻗어 누나의 허리를 잡아당겨서 내 무릎 위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히익?! 서하야?”
“언덕 위로 도망가랬지, 누가 멀리 도망가랬어!”
버둥거리는 누나의 등을 한 손으로 누르고 손바닥을 펼쳐 누나의 궁둥이를 내려쳤다.
철썩!
“아악! 아파!”
“도망가랬으면, 약속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냐!! 저 천사는 고위 이형종이라고!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했어!”
철썩! 철썩, 철썩!
거세게 엉덩이를 터질 듯이 두드려댔더니 누나는 울상을 지으며 황급히 두 손을 뒤로 돌려 엉덩이를 가린다.
“꺄아!! 미, 미안해애! 난 니가 걱정돼서 그랬단말야!”
“미안한 줄 알면 미안해할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냐! 거기다 누난 똑똑하면서 왜 잘못들은 척 하는 건데?!”
철썩! 철썩철썩!
“아악! 자, 잘못했어어어!”
누나의 손목을 잡고 치우면서 다시 거세게 누나의 궁딩이를 후려치고 있으니 누나는 비명을 지르고 버둥거리면서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흐으으! 난 니가 걱정돼서 그런 건데…!”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두드려주고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주니 황급히 일어나서는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며 날 밉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등급이 높은 이형종과 싸울 때 누나가 근처에 있으면 내가 제대로 못 싸워. 이 천사도 빛 속성 타입이었는데 만약 광범위 공격을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진짜…. 후우.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며 힘없이 말하니 누난 잔뜩 혼난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며 내 얼굴을 힐끔거린다.
“…….”
“입술 내밀지 마. 이번엔 누나가 잘못한 거야. 언덕 위로 도망가랬더니 400m밖에 안 도망가고, 혹시나 저거의 라이트 볼트나 벼락이 누나 쪽에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데.”
“치이.”
툴툴거리는 누나를 찌릿하고 노려보니 찔끔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에휴.”
어쨌든 무사했으니까…. 한숨을 내쉬니 천사의 시체에서 무척이나 진한 위상력이 퍼져나오기 시작한다. 이 느낌은 1회차 거인 프랑의 시체 근처에서 느낀 그 진한 위상력의 느낌이다.
“…어어? 아! 이건 서하 니가 흡수해야…!”
이만큼이나 진한 위상력이라면 누나도 피부로 느끼는지 누나는 황급히 천사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길래 누나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
“됐어. 흡수할 수 있는 만큼 해. 이 기회에 D 클래스에 올라서야지.”
“아냐아! 니가 먼저 B 클래스까지 올라서야지! 어, 얼른 놔아!”
아 몰라. 186만에 20%라 치면 37만2천인가…. 전부 다 누나가 흡수하게 하면 C 클래스로 올라설 테지만 어쩐지 피곤하고 지치고 이상한 기분 때문에 움직일 기운이 없다.
하지만 누난 자꾸 자리를 피하려고 하길래 다시 엉덩이를 후려쳤더니 "후꺅!" 하면서 엉덩이를 가리고는 얌전해져 버렸다.
나와 누나가 흡수할 수 있는 20%를 다 흡수했더니 누나는 생각보다 적은 14만의 위상력만 흡수했다. 그래도 D 클래스에 올라섰으니까.
“어휴. 나보다 네가 먼저 흡수해야지!”
한 손은 엉덩이를 가린 채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두드리는 누나는 속상하다는 표정이다.
“누나 마음은 알겠는데 어차피 이 녀석을 전부 흡수해도 다음 클래스로 못 올라가. 그리고 마나 시브로 남은 것도 전부 흡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그런 거야?”
누나도 천사의 위상력을 모두 흡수한 거 같아 본격적으로 마나 시브를 돌려서 천사의 시체에서 계속 퍼져나오는 위상력을 전부 흡수했다.
수 분간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으려니 300,010 정도던 위상력은 순식간에 늘어 200만을 넘어 202만이 됐다.
앞으로 148만이면 B 클래스겠군.
…아~! 정말 찝찝해 죽겠네!
인상을 구긴 채 천사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누날 보니 누나는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클래스가 올랐으니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나….
눈을 감고 있는 누나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곧 눈을 뜨고는…. 날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냐. D 클래스 되면서 뭐 바뀐 건 없어?”
“웅~ 확 바뀐 건 없어. 몇 가지 연습이 필요한 건 생겼구.”
“연습?”
“응. 둘째 날에 니 말대로 빛 속성이랑 어둠 속성을 합치는 거. 그거 가능할 거 같아.”
…와씨. 진짜 사기캐.
원래 만화에서도 정반대의 속성을 융합하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고 그러는데 누난 빛과 어둠이잖아? 딱 봐도 속성 간의 융합에 성공했다간 엄청난 게 튀어나올 거 같은데?
내 마포보다 더 센 게 튀어나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나저나…. 아우. 이건 뭐니. 엔젤 헤일로가 없는 걸 보면 천사는 아닌 거 같구.”
…응?
누나는 키가 2m 정도 되는 천사의 시체에 다가가 날개 끝을 잡아 살짝 들어보더니 훤히 드러나는 여자의 나신에 눈을 찌푸리며 날개를 도로 내려놨다.
“천사 아냐?”
“응? 응. 천사처럼 생기긴 했는데 머리 위에 엔젤 헤일로가 없잖아. 천사는 아니지 않을까?”
그런가? …그렇겠지? 천사가 아니겠지?!
다행이다!! 하긴 여긴 위상 세계잖아. 천사가 있을 리가 없지!
지옥행 티켓 예매 취소요!
…엔젤 링은 후대 창작이라는 이야기가 얼핏 생각났지만, 몰라! 신경 쓰면 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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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에서 표지를 만들어줬는데 좋군요! (싱글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