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3 하늘 섬 =========================================================================
그날 밤 이후로 7월 14일까지 5일간 누나와 함께 분지 섬의 언덕을 따라 돌면서 중하위랑 중위 이형종 들을 때려잡았다.
분지 안쪽은 신전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고 외곽만 돌며 감지에 걸리는 이형종이나 하늘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덮쳐드는 것들을 잡아 3개의 중하위 위상 석을 얻을 수 있었고 누나도 F 클래스에 올라서고 위상력도 1,400까지 쌓을 수 있었다.
누나는 F 클래스가 되면서 몸에 어둠을 두르거나 빛으로 감싸고, 물 뿐만 아니라 수분까지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이저는 쏠 수 없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속성 탄을 쏘아보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더니 갑자기 손끝에서 워터 젯을 쏘아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천재 사기캐 같으니. 그런 천재라도 TP를 응축해서 한순간 폭발시키는 마나 포 같은 건 F 클래스에서는 쓰지 못하는 거 같다.
“그치만 이 레이저는 TP 소비가 심해서 14초 동안 쏘면 TP가 바닥나버려!”
신전에서는 둘째 날에 잡아 죽인 페가수스 이후로는 신전에서 나오는 녀석들도 없었고 들어가는 녀석들도 없이 조용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분지 섬의 신전은 각각 2시 방향, 6시 방향, 11시 방향에 하나씩 존재하고 있었는데 셋 다 언덕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누나는 이제 겁이 없어졌는지 신전에 살짝 다가가 보는 게 어떻냐고 말을 꺼냈는데 안된다고 한마디에 일축해버렸다.
“왜에? 이제 중위 이형종도 잘 안 보이잖아. 잡으려면 분지에 진출해야 할 텐데 신전을 지나쳐서 가야 하는 거 아냐?”
“누난 고래 울음소리 때문에 기절해서 못 봤겠지만 신전에서 크기가 4 에서 5미터는 될법한 중상위 페가수스가 한번 돌진해왔었어. 만약 그런 놈들 수십 마리가 우르르 달려오면 어쩌려고?”
“그, 그랬어?”
“덤으로 그놈들 중에 속성 타입이 몇 마리 섞이고 그 녀석들이 멀찍이서 속성 탄을 날려대면…. 누날 안전하게 지켜줄 자신이 없어. 뭐가 어찌 됐든 누나랑 함께 안전하게 돌아가는 게 일차적인 목표니까 누나도 괜히 신전에 호기심을 비추지 말고 얌전히 있어.”
“으응.”
그 뒤로 누나는 별말은 안 꺼내고 얌전히 내 손을 잡고 따라오면서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풀이 죽은 건가 했지만, 표정은 생각에 잠긴 듯 진지한 모습이라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난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나랄지…. 누나가 15일이 지난 뒤에 자동 귀환 때 같이 못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분지 섬의 언덕을 도는 와중에 귀환 포인트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뭐, 안되면 누나 먼저 돌려보냈다가 한 번 더 들어오라고 해야지.
바람 속성 능력자는 하늘을 날 수 있으니 지상으로 내려가 보거나 아니면 동쪽에 큰 섬으로 넘어가서 찾아보면 될 테니까.
바람 속성 능력자는 타임리버에 차소영 부대장이 가장 클래스가 높고 그다음이 김가민 2팀장이다. 그러니 만약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 섬에 나 혼자 남게 되면 누나한테 말해서 5일 뒤에 바람 속성 능력자들이랑 다시 들어오라고 해야지.
…으음. 누날 안전한 곳에 두고 분지 섬을 살펴보면서 귀환 포인트를 찾아야 하려나. 다른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옆의 큰 섬은 어쩐지 거리낌이 생겨서 건너가기 싫은데.
그리고 입장 8일째가 지나가는 그 날 오후, 고래 울음소리가 다시 하늘 섬에 울려 퍼졌다.
오후 6시가 지나서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나와 누나는 분지 섬의 12시 방향에서 멈추며 별 섬이 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고 쉴 준비를 했다.
벨트를 잘라 먹으면서 내일은 어떻게 할지 누나랑 의논하려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음. 내일 말인데….”
꾸우우우우웅~
“?!”
고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누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전처럼 까무룩 기절하진 않았다.
누나와 함께 별 섬 쪽을 바라보니 구름바다 속에서 희끄무레한, 별 섬보다 더 큰 거대한 고래의 형상이 얼핏얼핏 비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커!”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워낙 거대한 모습 때문에 고래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진한 구름 속에 있어서 희미하게 형태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노처럼 생긴 좌우의 지느러미, 긴 잠수함처럼 생긴 몸체와 넓적하게 퍼진 꼬리, 그리고 움푹 들어간 꼬리의 중심부. 머리는 삼 각꼴 모양에 등 지느러미가 없는 모습이 말 그대로 고래의 형태다.
누나는 별 섬 인근을 유영하듯 움직이는 녀석을 정신없이 바라보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귀신고래?”
“귀신고래처럼 생겼어?”
나는 고래라면 새카만 몸체에 주둥이를 쫙 벌리면 같은 크기의 고래도 삼킬 거 같이 입이 엄청나게 큰 브라이드 고래밖에 모르는데. 브라이드 고래가 기억에 남은 것도 무시무시하게 큰 주둥이 때문이니까.
“으응. 조금 다른 거 같긴 하지만 생김새는 귀신고래 같아.”
귀신고래 이형종은 몸길이만 6km는 되어 보이는 거 같다. 그리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별 섬의 반대쪽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느닷없이 별 섬에 몸통박치기를 가한다!
쿠웅!
이미 별 섬의 뾰족 산에 있던 이형종 들은 죄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있었는데 4일 전에 대량으로 죽어서 그런지 그 숫자가 무척이나 적다.
꾸우우우우웅~
대부분이 하위 이형종 이상이겠지. 녀석들은 분지 섬으로 날아오지도 않고 귀신고래 녀석의 울음소리에도 영향을 안 받는지 멀쩡한 모습이다. 다만 조금 더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걸 보면 아주 영향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
누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살짝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서 누나의 등에 손을 대고 힐링 터치를 한번 걸어준 다음 귀신고래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녀석은 별 섬의 움푹 팬 곳에만 집요하게 머리로 들이박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들이박을 때마다 섬의 일부분이 조금씩 패이며 흙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린…. 어어어!?
쿠웅!! 두드드드드….
“어마!”
분지 섬이 요동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충격이 지나간 직후 별 섬에 2시 방향을 가르키고 있던 모서리 부분의 중간쯤에 금이 가더니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다!
10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여기에서 수많은 파편을 만들어내며 섬에서 떨어져 나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우리 그랑 블루 빌딩이 5채는 들어갈 수 있는 땅이 순식간에 사라졌네.”
“섬에서 떨어져 나간 땅은 아래로 떨어지나 봐. 저 구름 밑에는 뭐가 있을까?”
“짙은 회색의 안개만 가득한 공간에 저만한 크기의 이형종 들이 득실거린다거나?”
“…으아앙! 말하지 마! 생각해버려서 무섭잖아아!”
누나는 질겁한 표정으로 내 팔을 잡고 흔들어댄다. 나도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렸더니 식은땀이 흐른다.
“어, 아무튼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별 섬을 들이박는 거지? 4일 전에 나타났던 녀석도 저놈이 맞을 거 같은데.”
꾸우우우우우웅~~
세 번째 울음소리를 들은 누나는 표정이 묘해진다. 찡그린 표정에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얼굴이랄까.
“아, 저 아이…. 우는 거 같아.”
여자의 감수성이란 건가?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은 누나는 표정에 살짝 슬픔이 깃드는데 난 그냥 귓가를 울리는 묘한 느낌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차례 길게 울음소리를 내뱉은 녀석은 천천히 구름바다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저 자식이 주기적으로 와서 별 섬에 몸통박치기를 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별 섬에 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겠다.
모양이 조금 바껴버린 별 섬을 보고 있으려니 하늘에 떠 있던 이형종 들이 하나둘씩 뾰족 산에 내려앉는 게 보인다.
보인다고 해봤자 까만 점들이 하나둘씩 뾰족 산에 달라붙는 걸로밖에 안보이지만.
고래가 사라진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누나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자길 보라는 듯이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든다.
“왜?”
“분지 섬의 외곽에 보이는 이형종은 이제 다 잡은 거 아냐? 오늘은 한 마리 밖에 못 봤잖아.”
으음. 나도 그 생각을 했다. 누나의 클래스를 올려주려면 이제 분지 안으로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6일동안 빙빙 돌면서 잡았으니까…. 대부분 다 잡았겠지. 그래서?”
“이제 여기서 기다렸다가 귀환하면 안돼?”
으음? 이제 누나도 F 클래스에 올라서고 전투도 적응해서 분지 섬 안쪽을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분지 섬의 외곽은 다 정리가 끝났으니 분지 섬 안쪽으로 진출해봐야지.”
응? 왜 저러지.
내 말을 들은 누나는 별 섬 쪽을 한번 힐끔 보더니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알았어. 신전 쪽으로는 안 갈 거지?”
“어. 신전은 피해서 살펴볼 생각이야. 그러니까 내일은 분지 섬의 9시 캠프에 가보자. 그나마 11시 쪽 신전이랑 6시 쪽 신전 사이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 부분을 파고들면 설령 신전에 고위 이형종이 있다고 해도 들키지 않을 거야.”
그 고위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범위가 10km씩 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지.
“알았어.”
캠프는 6일간 누나와 함께 섬의 외곽 언덕을 빙글빙글 돌면서 만들어둔 건데, 캠프라고 해봤자 굴 하나 파둔 거 뿐이지만 12시와 3시 6시 9시 네 곳에 만들어놨었다.
다시 분지 쪽의 지형을 확인하고 있으려니 누나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정장 재킷을 벗어서 나한테 뒤집어씌운다.
“뭐야?”
누나의 향기가 가득한 재킷을 내리며 올려다보니 샐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코를 검지로 콕 찌른다.
“나 좀 씻을 거야. 돌아보지 말구 공간 지각도 하지 마?”
…씻어? 어떻게?
“어떻게 씻으려고?”
의아한 표정으로 누날 보고 있으려니 누나는 반대쪽, 분지 안쪽을 보라는 듯이 손을 휙휙 저어댄다.
뭐, 누나 씻는 모습 따위를 봐서 뭐하게. 아무튼, 누나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더니 블라우스랑 치마를 벗고 속옷 차림이 되더니 두 손에서 물을 쏟아내면서 머리부터 씻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속옷도 거치적거리는지 벗….
눈을 돌리고 누나 주변의 공간 지각도 치워버렸다.
저런 방법도 가능하구나. 하긴, 하루에 두 번 이상 샤워하는 누나가 8일 동안 얼굴만 씻었으니 더는 참기 힘들었겠지.
등 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11시 방향 인근에 보이는 신전을 노려봤다.
으으음. 저 신전 안에는 어떤 놈들이 있으려나. 일단 페가수스는 확실할테고…. 내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뭐가 더 있을지 감이 안 잡힌다.
2일 차에 덤벼들었던 페가수스는 하늘에 울려 퍼지는 폭음에 호기심에 이끌려 나왔다가 날 발견하고 달려든 게 아닐까?
저 신전을 지은 걸 보면 틀림없이 손과 손가락이 존재하는 녀석들일 텐데, 꼭 생김새는 고대 그리스 신전같이 생겨서는….
“설마 안에 반신半神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내 입을 때려주고 싶다. 반신이라니, 뭐야 그게. 위상 급이라도 되는 거야? 말이 씨가 된다는 겁나 재수 없는 속담도 있으니까 생각난 걸 막 입 밖으로 내진 말자!
아, 생각해보면 11시 쪽 신전은 언덕이랑 가장 가까워지는 부분이 3km 정도 밖에 안 되는 거 같던데, 긴장할 필요는 없겠네?
만약 고위 이형종이 있고 3km 밖을 감지할 수 있었다면 근처에 능력자 둘이 지나가는데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지난 6일 동안 빙빙 돌면서 대여섯 번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 틀림없을 거야!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좋았어! 내일은 9시부터 시작해서 호수 인근까지 뒤지면서 중위 ~ 중상위 이형종을 때려잡아 누날 D 클래스까지 올리는 거야!
누나한테도 이걸 알려줘야지!
“누나! …헉.”
“…꺅!!”
되돌아본 순간 누나의 알몸이 전부 적나라하게 보여서 순간 굳었다가 누나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몸을 가리고 주저앉는 순간 목에서 우득 소리가 날 정도로 팩 돌려버렸다!
“크억, 모, 목이…!”
까, 깜빡했다. 누나가 샤워 중이었는데!
누나도 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쪼그려 앉아버렸는데 하필 옷을 집으려고 돌아설 때 뒤돌아볼 건 뭐냐!
격통이 느껴지는 목을 움켜쥐고 언덕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으려니 누나가 깜짝 놀라면서 달려….
아악! 공간 지각 꺼져!!!
“서, 서하야?! 왜 그래?! 목 아파?!”
누나 목소리가 들려서 뒤를 힐끔 봤더니 옷가지를 가슴에 품고만 있고 아래가 다…!
“크…악! 옷 입어 옷!!”
이놈의 미친 대가리가!!
주먹을 들어서 내 머리통을 마구 두드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누나의 숨이 막히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하야…?!”
“으으으. 아, 앞으로 씻기 전에 말해. 가림막이라도 대충 만들어줄테니까 거기서 씻어..”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 목에 힐링 터치를 걸고 있으려니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으…. 검증이 끝난 다음에는 연인들이랑 욕구가 쌓일 틈도 없이 매일매일 한 번 이상 풀어서 그런지 이상한 가학심이라던가 충동적인 욕구가 들지 않았는데 5일이나 못 만났더니 누날 상대로…. 아 진짜.
내 대가리는 어떻게 되먹은 거야.
한숨을 폭폭 내쉬고 있으려니 누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옷 다 입었어?”
“으응. 아까 목을 쥐고 구르던데 목 다친 거 아냐? 괜찮아?”
누나의 걱정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뒤돌아보니 제대로 씻었는지 뽀송뽀송한 얼굴에 깨끗해진 옷이 보인다.
“괜찮아. 별거 아냐. 그, 그리고 돌아본 거 미안해. 상황 파악하다가 기쁜 일을 발견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아냐. 어렸을 땐 같이 목욕도 하구 그랬잖아. 누나도 깜짝 놀래서 미안해.”
누난 엄마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끄으응. 반성하자 정서하!
“아무튼 기쁜 일이라는 게 뭔데?”
“신전에 너무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이형종 들이 몰려나올 일은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분지 섬의 9시 방향에서 파고들어 가면 안전하게 중위급부터 중상위급 이형종 들을 사냥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해.”
“아, 그렇구나. 언덕이랑 11시 쪽 신전의 거리 만큼은 안전하다는 뜻이네?”
몇 마디 말 안 꺼냈는데 누난 금새 원인을 파악해버린다. 이게 진짜 천재인 건가?
“응. 위상력 감지 범위가 3km가 넘는 이형종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나칠 때 달려들었을 테니까.”
“알았어. 자, 이제 너두 씻어. 생각보다 TP로 물을 만들어내서 하는 샤워가 기분 좋아.”
“어, 응.”
내 손을 잡아끄는 누나 말대로 언덕을 내려와 교복 셔츠만 벗고 돌아서니 누나는 바지도 벗으라고 했다.
…어쩐지 뻘쭘해져서 팬티만 입고 서 있으니 누나가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리더니 머리 위로 물을 뿌려주기 시작했다.
“오오? 시원해!”
“그치?”
청량감이 가득한 물에 감탄하면서 몸을 씻고 있으려니 누나도 생긋 웃으면서 손을 뻗어 내 등을 닦아줬다.
…머릿속의 더러운 잡념도 씻겨져 나가라!
몸을 씻고 나서 누나가 교복을 가지고 가더니 흙먼지를 깨끗하게 씻어 물기까지 제거해준 다음 돌려줬다.
교복을 다시 입고 보니 누나 말대로 되게 상쾌하네. 집에서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난 기분이야.
점점 날이 어두워져 가길래 모닥불을 피워 줄랬는데 누나는 필요 없다면서 오늘 밤은 그냥 이대로 언덕 위에 누워서 자겠다고 했다.
“괜찮아? 해 지면 조금 쌀쌀해지는 거 같던데.”
“응 괜찮아. 아무래도 이게 능력자로 각성하면서 육체가 좀 바뀐 건가 봐. 요 며칠은 춥거나 더운 느낌이 별로 안 들었거든.”
“하긴, 킥킥. 아까 보니까 누나의 불쌍한 가슴도 조금 커졌더라? 크레이터 가슴이 꽤액!”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극통이 느껴진다!!
“크크, 크레이터어어어~?! 정~서~하~~!!”
아차! 누난 진짜로 화난 표정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내 머리통을 있는 힘껏 두들겨대기 시작한다!
“아그그극! 누나 가슴 커졌다고! 칭찬인데 왜 때려!! 그만해!”
잽싸게 뒤로 물러나 누나의 공격범위에서 피했더니 누나가 으르렁거리면서 천천히 나한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가슴이 뭐! 뭐! 크레이터가 뭐!! 이 나쁜놈아아! 으아앙!”
아니 커졌다고 했는데 그 말은 쏙 빼먹고 크레이터라는 말에만 반응하냐?!
거세게 휘두르는 누나의 을 이리저리 피했더니 누나는 약올라 죽겠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결국 주저앉아 엉엉하고 울어버렸다.
에이. 가슴 커졌다고 칭찬해줬는데 진짜. 크레이터에서 A 컵 정도는 됐으니까 잘된 거 아냐?
한동안 눈물을 짜내던 누나를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적당히 거리를 띄우고 주저앉아버렸다.
왜! 뭐! 난 잘못한 거 없다고! 오히려 두들겨 맞은 내가 사과 받아야 한단 말야!!
…힐끔힐끔 누나가 우는 걸 훔쳐보고 있으려니 누나도 조금씩 울음을 그쳐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내 잘못인 거 같아서 가슴이 콕콕 찔려온다.
그렇다고 지금 또 피해버리면 이번엔 진짜로 대성통곡하면서 울어버릴 분위기라 누나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속으로 흠칫거리고 있었는데 누난 내 옆에 앉더니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버렸다.
“…훌쩍. 나쁜 놈.”
“…….”
“너 진짜 그럼 안돼. 누나한테 막말하구…. 훌쩍.”
아니, 칭찬한 거라니까…. 하지만 지금 누나 상태에서는 말 해봤자 울음보만 자극할 거 같아서 그냥 손을 들어 프랑에게 해줬던 것처럼 눈을 가려줬다.
“…훌쩍.”
그랬더니 곧 진정하는듯하다가 새근새근 잠들어버린다.
하아아, 어쩐지 피곤하다.
나도 연인들의 크고 폭신폭신한 가슴에 안겨서 응석 부리고 싶은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프랑의 풍만한 가슴 같은 달이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돌아가면 진짜 프랑이랑 화연이랑 영은이 가슴을 모아놓고 얼굴을 파묻어야지.
============================ 작품 후기 ============================
시하의 아스팔트 껌딱지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