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1 하늘 섬 =========================================================================
섬의…. 분지 섬이라고 할까. 분지 섬의 지형지물을 살펴보니 분지 안에 구릉지와 평지가 적당히 분포되어있었다.
분지의 7할을 차지하는 나무들을 살펴보니 수분 나무나 등 뒤에 별 섬의 바오밥 나무처럼 크지 못해서 나무 위에 피해있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다 분지의 하늘 위에는 점 같은 게 날아다니는 게 보이는데, 저것들도 전부 이형종이라고 봐야겠지.
“아? 뭐, 뭔가 신전에서 날아올랐어.”
누나의 말에 황급히 시선을 내려 가장 가까이 있는 신전을 살펴보니 과연 뭔가가 새하얀 게 날…개? 같은 걸 퍼덕이면서 떠오르는 게 보였다.
난 누나의 허리를 낚아채며 언덕에 엎드렸다.
“아윽! 왜, 왜 그래?”
“보나 마나 이형종 일 거 아냐! 신전에서 나왔다면 보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몸을 숨겨야지!”
“…!”
내 힘 때문에 흙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버린 누나는 말부터 하라는 항의의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신전 위로 날아오른 하얀 점 같은걸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빠…르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얀 점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며 하늘로 높이 솟아올라 갔다가 벼락같이 떨어지며 검은 점 몇 개를 낚아채 버렸다!
그리고 유유히 선회하며 하얀 신전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만큼 빠르다면 신체 강화 타입 아니면 바람 속성일 텐데, 흰색이니까 바람 속성은 아닐 테고 신체 강화 타입인가. 신전의 크기도 꽤 큰 걸 보면 다른 놈들도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
“서, 서하야. 우리 그냥 별 섬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누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가자는 의견을 냈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차라리 마포를 날려서 신전을 지워버리…는 건 기각.
마포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만약 폭발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섬이 부서져내리면 어떻게 해.
말없이 신전만 노려보고 있는 내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누나는 내 팔을 잡고 살살 당기기 시작한다.
“그, 그냥 돌아가자아. 이제 식수 문제도 없어졌잖아? 옷이 습기에 젖어도 금방 뽀송뽀송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감기 걸리거나 몸이 안 좋아질 일도 없을 거야. 응?”
이형종이 죄다 비행형에다가 도망칠 곳도 얼마 없는 하늘 섬이라니? 누나의 위상 세계도 첫 번째, 1회차 치고는 미친 난이도다. 누나도 그걸 눈치채고 저렇게 겁먹은 거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 혼자라면 괜찮은데 누나가 있어서 좀 걱정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팔을 잡고 애원하는 누나를 쳐다보며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마음은 돌아가는 것 보다 이쪽에 있는 걸 선택하고 있었다.
…딱히 싸우고 싶다거나 아까 날아다니던 하얀 점이나 신전 같은 게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니다.
“누난 여기 있는 게 무서워?”
“…조금.”
으으음.
누나가 저렇게 겁을 먹은 거라면 그냥 돌아가야 하나….
“음…. 좀 생각해봤는데 돌아가는 것 보다 여기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왜에?”
“그건….”
꾸우우우우웅~
막 설명하려 입을 떼는 순간 뒤쪽에서, 마치 고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누나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가슴에 손을 올린다.
우우우우웅….
또 다시 들려온 소리는 귀를 진동시키는듯한 음색으로, 하늘에 울려 퍼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살펴봐도 특별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나도 소름 돋는다는 표정으로 내 팔을 껴안고 오들오들 떨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누나의 위상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손을 들어 누나의 등에 대고 힐링 터치를 걸어준 다음 다시 뒤쪽의 구름바다를 돌아봤다.
눈앞에 보이는 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광범위한 부분이 출렁거리고 있었는데 그 범위가 별 섬보다 넓어 보인다.
거기다 무언가에 위협을 느꼈는지 뾰족 산에 있던 비행형 이형종 들이 죄다 날아올라 하늘을 새까맣게 만들고 있었다!
“무, 뭐야? 구름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누나는 내 팔을 더욱 세게 끌어안으면서 몸을 바짝 붙여온다. 그리고,
쿠웅!
하는 몸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발밑을 지나간다!
별 섬 주위의 구름은 더욱 요동치며 파도치듯 출렁거리기 시작하고, 꾸우우우웅~~ 하는, 다시금 고래 울음 소리 같은 게 하늘을 뒤덮듯이 울려 퍼진다!
“아윽.”
“누나?!”
음파 같은 고래 울음소리가 몸을 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 순간 하늘에 무수히 떠 있던 이형종 들이 후두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누나도 가슴을 쥐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건 고위 이형종의 포효와 비슷한 효과인가 본데. 재빨리 누나의 몸 안을 자세히 투시해보니 누나의 3줄의 위상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가슴을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는 누나의 등에 손을 얹고 다시 힐링 터치를 걸어주며 별 섬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쿠궁
다시금 진동이 나와 누나가 서 있는 언덕을 치고 지나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이형종 들은 더욱 부산스러워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데 그중 많은 숫자가 나와 누나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하늘을 까맣게 메우던 이형종 들은 세 번째 울음소리에 거의다 떨어져 반의반도 남지 않았고 하위 이형종으로 판단되는 것들은 비틀거리면서 힘겹게 날갯짓을 하며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에 비해 중하위 이형종 들은 꽤 멀쩡한지 빠른 속도로 나와 누나가 있는 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숫자의 이형종이 추락하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는데 그래도 많은 숫자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도망갈 곳은…. 없나. 분지로 뛰어드는것도 신전때문에 꺼려지고 언덕을 따라 뛰려니 지금 날아오는 저 이형종 들이 거슬린다.
누나의 위상력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다음 누나를 가로막고 서며 아직도 출렁거리는 구름 속을 노려본다.
대체 뭐지.
구름은 지금 서 있는 분지 섬을 아득히 넘어서는 범위에 가득 차있었는데 말 그대로 운해. 하늘 이 맞닿아있는 곳까지 구름이 펼쳐져 있다.
말 그대로 구름의 바다다. 시야의 모든 곳은 구름으로 가득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래 울음소리 같은 거였지? 중학교 때 가족 여행으로 국내 최대의 아쿠아리움에 놀러 갔을 때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아까 들은 세 번의 울음소리는 말 그대로 고래 울음소리였다.
…구름 속을 헤엄치는, 거대 고래인가?
슬슬 1.5km 공간 지각 범위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형종 들이 보인다. 손을 들어 연사가 느린 마탄보다 연사 속도가 빠른 마나 탄을 준비한다.
그리고 1.5km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놈들의 위상력을 체크해보니 역시나 위상력 200에서 300 사이의 중하위 이형종 들이다. 놈들을 향해 준비해둔 마나 탄을 마구마구 쏘아내기 시작했다.
퍼벙, 뻐버버벙 뻥, 퍼엉 쿠우웅!!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간 마나 탄은 1.5km를 벗어나 이형 종들 사이에서 쉴 새 없이 터져나간다.
쿠우웅.
동시에 다시 한 번 육중한 충격음이 퍼져 나오더니 땅을 들썩이는 진동이 여기까지 전해져오고, 저 멀리 솟아있는 뾰족 산이 살짝 흔들거리는 게 보인다!
꾸우우우우우우웅~~
“아악!!”
아까보다 진해진 울음소리에 누나가 다시 비명을 지르더니 까무룩 기절해버렸다!
저, 고래 자식이?! 누날 공격했다 이거지?! 뭐하는 새낀지 모르지만 두고보자!
잽싸게 누나의 등에 손을 올려 힐링 터치를 한번 걸어준 다음 새 대가리들이 하나도 접근하지 못하게 10 TP의 마나 탄을 넓은 범위에 커튼처럼 뿌려댔다.
쉴 새 없이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마나 탄이 공간을 일그러트리고 범위에 들어오는 중하위 이형종 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기 시작하니 난데없는 공격에 분지 섬을 향해 날아오던 이형종 들이 선회해서 좌우로 주르륵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앞선 것들이 직각으로 꺾어지며 분지 섬의 좌우로 퍼져 나가는 걸 봤는지 뒤따르던 하위 이형종과 얼마 남지 않은 최하위 이형종 들도 그 뒤를 따라 직각으로 꺾어져 날 피해 도망간다.
그리고 누나를 돌아보려…니, 저건 페가수스?!
새하얀 말처럼 생긴 놈이 등에 달린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을 달리듯이 내게 질주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나 탄의 폭발음에 이끌린건가? 제길…. 근데, 날개가 2쌍이다?
나 참, 누가 이형종 아니랄까 봐!
조금 앞으로 달려나가 누나를 몸으로 가리고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놈을 노려보니 놈도 날 노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위상력을 체크해보니, 허허.
저건 중상위 이형종이다. 크기도 일반 말의 4배는 넘고 위상력도 18,000이나 된다! 저걸 죽이고 누나가 위상력을 흡수하게 하면 당장에 3,700의 E 클래스 능력자가 될 테지만, 만에 하나 저놈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누나한테 허용하면 누나는 못 버틸 거다.
페가수스는 나한테 적의를 보는 중에도 덩어리진 위상력이 제 타입을 찾아가지 않고 있었다.
속성 타입이라면 접근시키는 건 위험해. 그냥 죽이자!
상냥한 마나 탄이 아니라 전력을 다듬은 100 TP 짜리 마탄을 놈을 향해 쏘아내니 위상력을 표면에 둘러싼 TP가 번개같이 날아간다.
피하려 할 줄 알았다. 자식아.
놈도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마탄을 확인하고 살짝 피해내려 하는 순간, 마탄이 저 말대가리와 가까워졌을 때 원격 컨트롤로 마탄을 터트려버렸다.
쿠구구구구궁
터트려버린 마탄은 임플로션처럼 공간을 압축하더니 곧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충격파를 사방으로 퍼트린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폭발한 마탄은 말대가리를 말 그대로 분쇄해버렸다.
페가수스, 천마가 폭사하는 순간 기절한 누나를 들쳐업고 남쪽 능선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저 폭발음 때문에 신전 안에 무언가가 또 튀어나올지도 몰라! 처음 나온 게 중상위 이형종이잖아? 그러니까 일단 자리부터 피하고 보자!
수 분을 달음박질쳐서 6km 가까이 남서쪽 언덕을 따라 달리니 내가 달리기 시작한 방향의 비행형 이형종 들은 다시 기겁하며 좌우로 쫙 갈라져 도망가기 시작했었다.
결국, 언덕이 남쪽으로 직각으로 꺾어지는 부분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세 곳의 신전이 잠잠한 걸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별 섬을 보니 구름바다는 언제 요동쳤냐는 듯 잠잠해져 있었다.
“후우…. 진짜 그건 뭐였지?”
생각해보니 진짜 기가 찬다. 누나나 나나 뭔 놈의 운이 이렇게나 더러운지, 그냥 남매가 쌍으로 저질이네 저질이야.
어떤 인간은 번개 속성을 각성하자마자 크리스탈 이터를 만나서 바로 B 클래스가 돼서 금의환향했다던데 나나 누나는 뭘 만나도….
에휴.
누난 제대로 기절했는지 달려오는 동안 꽤 격하게 흔들렸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축 늘어져 있었다. 위상력도 아주 살짝 흔들리고 있는 거 같은데….
마지막 울음소리가 좀 타격이 컸는지 힐링 터치를 걸어줬는데도…. 으음. 부정형 위상력이라 흔들리는건지 그 고래 울음 소리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건지 헷갈리네.
그냥 등에 업힌 누나를 돌려서 품에 안고 가슴에 손을 올려 힐링터치를 다시 한 번 써주니 약간 불규칙하던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분지 섬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분지 섬의 상공에는 이형종 들의 일대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별 섬에서 도망쳤던 녀석들과 분지 섬에서 살던 녀석들의 2파전이겠지.
물론 별 섬이 잠잠해진 걸 보고 다시 되돌아가는 놈들도 보였다.
분지의 반대 방향으로 언덕을 타고 내려가 누나를 얌전하게 눕힌 다음 두 손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경화시키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행히 진흙이나 무른 땅이 아니고 단단해서 굴을 파더라도 무너지거나 하진 않을 거 같다.
솔직히 무너질까 봐 크게 파지는 못하고 높이 1m에 폭이 1.5m 정도의 토굴을 파는 걸로 만족했다.
조심조심 누나를 토굴 안에 눕혀놓고 언덕 너머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뭇잎들이 잔뜩 자란 나뭇가지를 잘라와 입구를 위장시켰다.
그리고 감시를 위해서 언덕 위에 올라왔더니 한숨이 폭 나온다.
아~. 이제 오후 6시인가, 입장한 지 이제 24시간 하고 1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진짜 한숨이 푹 나오게 만들어주시네.
언덕 위에 엎드려서 분지랑 상공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으려니 상공의 혈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긴 쪽은 분지 섬의 새떼인지 별 섬 쪽으로 도망가는 새 떼를 쫒아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파닥파닥 날아서 별 섬으로 무사히 넘어가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도중에 찢어발겨 져 다른 이형종의 한 끼 식사 거리가 되는 놈들도 있었고….
그때 우연히 초지 위를 빠르게 달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어딘가 모르게 흰 놈이길래 설마 페가수스인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봤지만, 너무 멀어서 형태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무진장 하얀 놈이라는 건 알겠다.
흰 녀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이형종에게 가더니 뭔가 들썩거리는 게, 잡아먹는 거 같다.
잠시 그 꼴을 지켜보다가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당연히 분지 안에도 이형종이 존재하겠죠. 네.
…근데 아까 그 울음소리는 대체 뭐였을까.
일단 누날 공격했으니 내 데스 노트에 이름을 올려두긴 했는데…. 아무튼 기회가 되면 확….
조금 허기가 져서 허리띠를 풀어 한 입 뜯어먹는 걸로 저녁을 해결하고 묵묵히 분지를 내려다보며 그대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프랑이 보고 싶다.
10분 수면, 10분 경계, 10분 수면, 10분 경계.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냐면 공간 지각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누나도 콜콜 자고 있고 날은 어두워져서 달과 별이 떠오르는데 사방은 적막감만 감돌아서 지겨워 죽을뻔했거든?
할 것도 없어서 공간 지각 능력의 범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눈을 감고 감지만 켜서 제삼자의 시선으로 공간 지각 범위를, 마치 3차원 지도를 켜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도를 보듯이 내려보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자연히 알게 되더라고. 그렇게 3차원 지도를 살펴보다가 눈을 뜨면, 그걸로 좀 쉬었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
아무튼, 이 3차원 지도라는 게 무척이나 재미있다. 하느님이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확대 축소도 되고 원하는 곳은 그게 땅속이라 해도 볼 수 있는 데다가 검색을 통해 보고 싶은 부분,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도 있더라니까?
근데 범위가 좁아서 3차원 지도에 들어오는 건 죄다 풀, 나무, 흙, 돌, 누나.
새로 얻은 능력을 갖추고 혼자 놀기를 하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서 아침 8시가 되니 누나가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였다.
6시부터 12시간을 내리 자더니 위상력도 조금 늘어서 어제 G 클래스가 된 뒤로 102에서 지금은 108이 됐다.
2시간마다 1씩 오른다니, 이대로 현실로 돌아갈 때까지 저 기세로 상승하는 건가?
근데 난 1시간에 0.12씩 올랐잖아? 흡수량도 개인마다 차이 나는 거야? 아니면 사기캐라서 저런 거?
부스스 일어난 누나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서, 서하야아? 어디있어어?-
…위상 세계 들어와서 겁없는 모습을 보여주길래 담이 큰가보다 했는데 내가 옆에 있어서 괜찮았던 건가 보다.
이런 울보 같으니.
나는 잽싸게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 나뭇가지 위장막을 치우고 굴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뭇가지가 치워지는 소리에 누나가 흠칫 놀라면서 오른손을 뻗어 빛을 만들어내니 굴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오, 생체 전등.”
“서….”
내가 들어오는 모습에 표정이 활짝 펴지려다가 생체 전등이란 소리에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뭐야?! 이게 누나한테 자꾸 이상한 별명 붙이네!”
“헤엥. 아까까지만 해도 벌벌 떨면서 울먹였던 주제에 강한척해 봤자 안 무섭거든
“윽….”
“그리고 누나가 지금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난 이틀 연속으로 밤잠도 못 자고 위에서 보초 서고 있었는데. 누나가 기절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알아?”
“…응?”
난 멍한 표정이 된 누나 앞에 앉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가 12시간 동안 내리 쿨쿨 잘 동안 동생은 밤새도록 언덕 위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단 말야.”
“어….”
“거기다 이 굴을 누가 판 거라고 생각해?”
이어지는 내 이야기에 누나는 점점 눈썹이 축 늘어지다가 결국 배시시 웃으면서 날품에 안고 머리를 토닥거려준다.
“아구구, 그래쪄? 울 동생님 고생 많았네? 토닥토닥.”
…….
두 손을 뻗어서 누나의 옆구리를 콱 찌르고 위에서 아래로 주욱 긁었더니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황급히 뒤로 물러나 버린다.
“캬하하히흑?! 아으으, 뭐 하는 거야!”
“됐고 손 씻게 물이나 좀 줘. 물도 마시고 싶어.”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꽁한 표정을 짓던 누나는 뒤돌아 나가는 날 따라 굴 밖으로 나왔다.
“으응~~! 후아.”
까치발로 서며 한껏 기지개를 켠 누나는…. 헤에? 가슴이 조금 큰건지 크레이터 같은 누나 가슴에 조금씩 융기가 생기는 거 같은데?
원래부터 프랑 뺨 때리게 예뻤던 외모는 별로 바뀐 게 없는데, 능력자가 되면서 신체 구조가 조금씩 바뀌고 체질이 개선될 때 외모로 갈 포인트가 가슴에 다 몰빵되고 있나 보다.
누나가 손에서 뿌려주는 물줄기에 손이랑 얼굴을 씻고 있으려니 위쪽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젠 어떻게 된 거야?”
“푸우우. 어제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기억나?”
“…이상한 고래 울음소리 비슷한 거 때문에 기절한 거였어?”
“잘 알고 있네. 진짜 고래가 고래 울음소리를 낸건지 아니면 이형종이 고래 울음소리를 낸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울음소리에 위상력이 담겨있었어. [이거처럼.]”
마지막 단어를 목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말을 꺼내니 고래 울음소리만큼은 아니지만 내 목소리가 살짝 울렁이면서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그 소리에 누나도 움찔한다.
“진짜 위상력이 담긴 포효를 근거리에서 들으면 하위 이형종도 즉사할 정도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누나도 기절로 그친 거지.”
내가 씻는 모습을 내려보던 누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별 섬 쪽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늦었거나 빨랐으면 큰일 났었겠다….”
“어. 그러니까 이 근방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보자. 가능하면 적당한 중위나 중상위 이형종 한 마리 잡아다가 위상력도 흡수하는 걸로 하고.”
“응.”
두 손을 모아 누나가 만들어주는 물을 받아 마시니 말랐던 목에 수분이 보충되며 상쾌한 기분이 됐다. 날씨도 덥지 않고 선선한 봄 날씨라서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그나저나 어제 페가수스처럼 중위급 이형종 한 마리만 혼자 떨어져나와 주면 좋을 텐데.
가능하면 여기서 D 클래스까지 누날 키워주고 싶다. 낮은 클래스로 귀환하는 것보단 기왕이면 높은 클래스로 귀환하는 게 나을 테니까.
누나랑 같이 별 섬 쪽을 돌아보니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던 놈이 날뛰고 간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섬을 감싸고 있던 구름이 조금 옅어져 별 섬의 일부가 드러났다.
그리고 드러난 부분을 통해 이리저리 부서져 내린 곳이 눈에 들어왔는데 움푹 팬 부분이 정체를 알 수 없던 무언가가 들이박아서 생긴 흔적이라는 걸 눈치챘다.
보통의 절벽처럼 세로로 갈라진 모양이 아니라 여기저기 뭉개진 곳이 잔뜩 있었거든.
섬 일부를 부술 만큼 거대한 녀석이라니, 또 나타나면 가까이 가서 공간 지각으로 살펴볼 생각 말고 그냥 피해있어야겠다.
생각한 걸 누나한테 알려줬더니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러자고 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