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하늘 섬 =========================================================================
…검은색이라니, 어둠 속성이란 말이야?
속성을 두 종류를 가지게 된 것도 놀라운데 그중의 하나가 희귀 속성이라고? 진짜?
와 진짜…. 사기캐다. 진짜 사기캐야.
E 클래스에 새 능력을 얻고 C 클래스에 세 번째 능력을 얻는다고 들었는데 속성의 추가는 다른건가?
아무튼 가만히 누나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누나는 두 번째 띠가 완벽하게 형태를 이룬 다음에 눈을 살며시 떴다.
음. 그나저나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속성 타입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속성은 어쩐지 사람의 성격을 따라가는 거 같았는데.
화중강 아저씨는 불처럼 화끈했고 유민희도 불 속성이라 그런지 뜨겁다 못해 따가운 수준이었지? 김가민도 바람처럼 살랑살랑한 분위기였고. 박초롱 박현지 자매도 대지 속성답게 좀 부드러운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차소영은 차분하고 조용한 게 물이랑 대지가 어울렸을 거 같은데 실상은 불이랑 바람이었고 지부장도 불 속성치고는 조금 미지근했던 거 같단 말야?
누나야 아수라 모드를 생각해보면 어둠 속성인 게 당연하지. 평소에는 물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성격이기도 했고.
내가 다가가니 누나는 날 돌아보며 얼굴에 활짝 웃음꽃을 피우면서 날 껴안으려 들었다.
“서하야~! 나 있지, 나 이중 속성 능력자가 됐어!”
“응, 봤어. 누난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이히히. 내가 무슨 속성인지도 알 수 있어?”
“어둠 속성 아냐?”
“맞아! 희귀한 어둠 속성이야! 이제 우리 레이드 팀에도 초 희귀 능력자랑 희귀 속성 능력자가 둘이나 돼!”
초희귀는 나인가? 그럼 희귀 속성은 프랑이랑 누나를 말하는 거겠네.
누난 폴짝폴짝 뛰다가 내 손을 잡고 흔들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날뛰다가 능력을 확인해보라는 내 말에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두 손을 뻗으면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리디아의 이야기에 의하면 빛 속성은 광범위한 대신 어둠 속성보다 약하다고 했었지. 과연 어둠 속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궁금하다.
누나는 곧 손끝에서 새카만 어둠을 만들어내더니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아무것도 없는 땅에 속성 탄을 쏘아냈다.
어둠의 속성 탄은 연기가 응축된 모양이었는데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워터 볼보다 더 느린데.
느린 속도에 실망할 무렵 땅에 닿은 어둠 속성탄은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 만큼 퍼져나가더니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걸 녹이기 시작했다.
아니,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땅을 녹인다. 염산도 아니고….
누나도 잠시 어둠 속성 탄이 터진 곳을 내려다보더니 할 말을 잃고 어둠 속성 탄이 닿아서 녹아 사라진 부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수리 이형종의 깃은 화살 깃의 재료로 조금 비싸게 팔린다고 했는데 챙겨갈 도구도 없고 장비도 없어서 그냥 버리기로 했다.
독수리 고기를 먹어보고 싶긴 한데 이런 습기 속에서는 불을 피울 수도 없고 구름이 언제 사라질지도 몰라 이형종 시체는 그냥 마나 탄으로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나랑 누나가 숨어있는 위치가 들통날까 봐 폭음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자제하려 했는데 누나도 하루 만에 능력자로 각성해버렸으니 이제 별 상관은 없겠지. 달려들면 냉큼 죽여버리면 되니까.
그래도 마탄은 폭발 충격파에 누나가 다칠 수 있으니까 자제하자.
“어둠 속성은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생각보다 흉측한 능력인 거 같아.”
“어떤 이야기였는데?”
“알려진 능력으로는 어둠 속성은 어둠 속에 숨어들거나 일정 범위를 어둡게 만들고, 어둠의 폭발에 휩쓸린 생명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고 들었거든.”
“닿은 부분이 녹아내린다면 치명적이긴 하네.”
누나는 조금 꺼림칙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맞아. 어차피 능력이라는 게 이형종을 상대하기 위해서인데 조금 잔인하면 어때! 강할수록 서하한테 도움이 될 테니 오히려 좋은 거야!”
“오~ 긍정적인 생각이네?”
“후후. 이 정도는 되야 너한테 도움이 될 거 아냐?”
하이에나의 사체는 그대로 냅둔채 누나랑 다시 바오밥 나무 구멍에 숨어있으려니 위에 떠 있던 네 마리도 이쪽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저놈들은 새대가리인가, 동료들이 내려갔다가 반응이 없으면 뭔가 의심이라도 해봐야지 겁 없이 내려오네.”
“새 맞잖아.”
누난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 그러네.”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비행형 이형종 들이 내려오는 모습에 신경을 집중한다.
이번엔 독수리 두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 까마귀 한 마리 해서 네 마리가 땅에 내려앉았는데 그래도 생각이라는 건 하는지 하이에나의 사체에 눈길을 주기보다 먼저 내려왔던 세 마리가 어디로 사라진건지 고개를 돌리며 찾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부리에서 꽁지까지 1m가 넘는 까마귀는 의아한 듯이 누나가 만들어낸 구덩이나 내가 마나 탄을 뿌려서 지워버린 곳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새대가리 주제에 머리 좀 쓰네? 그러고 보면 까마귀가 새들 중에 머리가 되게 좋다던가, 일단 저 까마귀부터 잡아야겠다.
마침 녀석들 전부가 신장이 1m 남짓 한 길이라서 나무 구멍 밖으로 살짝 손을 내밀어 그냥 마나 레이저를 뽑아내 가로로 손가락을 그어버렸다.
네 마리 전부 단박에 머리와 몸통이 분리뒤면서 쓰러진 걸 확인하고 누나와 함께 구멍에서 다시 나와 녀석들의 시체로 다가가니 누나는 말없이 이형종 들의 분리된 머리와 몸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쉰다.
“…그 능력 사기야.”
“하루 만에 각성하고 H 클래스에서 어둠 속성까지 얻은 누나도 괴물이거든?”
“괴물?!”
괴물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너무한다는 표정으로 내 등을 찰싹찰싹 때리는 누나의 손목을 잡고 퍼져나온 위상력들을 누나가 흡수하게 했다.
60, 70, 72, 81. 네 마리 합쳐 283의 위상력 중 흡수할 수 있는 20%인 56은 곧 누나한테 이끌렸지만 이미 위상력이 52 던 누나는 48만 흡수해 위상력이 100이 되면서 G 클래스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의 몸속에 생긴 세 번째 띠는 하얀색을 띠기 시작했다.
누나의 손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덩어리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쳤네 정말. 내 누나 맞아?”
“으응. 니 누나 맞아.”
“와 진짜. 너무한 거 아냐? 각성할 때 물 속성을 얻고 속성을 조작한 건 뭐, 천재니까 이해해준다 쳐도 두 번째에 어둠 속성을 얻더니 세 번째는 빛 속성? 다음엔 번개라도 얻을 셈이야?”
“…왜 나한테 그래! 능력이 생기는걸 어쩌라구!”
능력만 봐서는 물과 빛과 어둠 속성을 얻었다는걸 축하해주는 게 당연하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도 두 가지 이상의 희귀 능력을 갖춘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들었다. 누나도 못 들었다고 했고.
“여기서 누나도 자질이 B 이상 뜨면 난리 나겠네. 이거 뭐 개사기 남매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겠구만.”
누나도 이 상황이 솔직히 기뻐할 순 없었는지 기쁨 반 당황 반의반 나머지는 황당이 섞인 표정으로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축하해. 진심 사기캐 누나.”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마.”
“뭘, 나만 봐도 눈에 마나 시브 좀 집중하고 다녔다고 블루 지니어스라는 이상한 별명이 붙었잖아. 누난 돌아가면 블랙 앤 화이트 걸이라고 불리는 거 아냐?”
“…아.”
안색이 싸악 하고 굳어지는 누나는 날 보더니 남 일 같지 않은지 어지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누나한테 별명이 붙으면 나도 막 놀려줘야지.
“동양에서는 빛과 어둠의 성녀~ 라고 부를지도?”
“아우! 그만해!”
진짜 그런 별명이 붙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기 시작하는 누나의 손을 잡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누나가 예상보다 일찍 G 클래스가 됐으니까 남는 시간에는 계획을 조금 바꿔서 별 섬의 모습을 먼저 확인해야지.
가운데 뾰족 산에는 중하위 이형종도 수백 마리가 있긴 하지만 구름이 섬 전체를 가리고 있어서 그런지 녀석들은 날아오를 생각도 안 하고 아직 둥지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쳐들어가도 되긴 하지만 수백 수천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면 누나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괜한 자극은 하지 않기로 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기세 좋게 짖는다잖아.
뾰족 산을 중심으로 누나랑 1시간가량을 걸어 처음 쉬던 바오밥 나무에 도착한 결과, 역시 별 섬은 물이 없고 초지와 바오밥 나무만 가득한 섬이었다. 하지만 4시 방향에 다음 섬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었는데 얼마나 긴지 공간 지각을 대폭 확장해서야 다음 섬의 끝에 겨우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길의 크기만 폭 107m에 길이 2.4km 높이 1.2km의 거대한 비탈길이었다. 경사가 좀 심하긴 하지만 걸어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음 섬으로 올라가 볼까? 다음 섬은 여기보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구름이 다음 섬의 땅까지 못 올라오는 거 같아.”
“그러자. 어딘가에 쓸지도 모르니까 블라우스는 회수하구.”
“응.”
두어 시간을 구름 속을 걸었더니 몸이 다시 젖어버렸는데 블라우스를 회수한 누나는 자기 젖은 옷을 내려다보더니 TP를 조금 사용해서 수분을 전부 배출해버렸다.
“…나도 해줘.”
순식간에 뽀송뽀송해진 누나는 날 보며 웃더니 손을 뻗어 내 옷에도 물기를 제거해줬다.
누나는 한쪽 소매가 없어진 블라우스를 다시 입고 나도 누나가 건네준 하복 셔츠를 걸친 뒤 다음 섬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이 구름은 일시적으로 별 섬을 감싸고 있는 건가 본데?”
“응? 왜?”
“섬 중심에 있는 뾰족 산에는 이형종 들이 사냥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잠만 자고 있어. 만약 이 구름이 오랫동안 지속하는 거라면 아까 7마리처럼 사냥을 나오는 것들도 있을 거 아냐.”
“그것도 그러네. 생각해보면 이런 구름이 1년에 절반만 섬을 뒤덮어도 별 섬 전체가 벌써 늪지가 됐을 거구.”
“응. 다음 섬을 확인해보고 이형종이 얼마 없으면 나중에 구름이 걷혔을 때 중하위 이형종 잡으러 오자.”
“응.”
I 클래스에서부터 G 클래스까지는 100을 모으면 되지만 G 클래스랑 F 클래스는 필요 위상력이 4배로 늘어나고 E 클래스부터는 12배씩 필요해지니까 15일이 될 때까지 부지런히 잡아야지.
그런데 기가 차는 게,
“서하야~ 이거 봐라? 양손에 빛이랑 어둠이랑 따로따로 쓸 수 있어!”
누나의 왼손에는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고 오른손에는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허, 참.
누나는 다음 섬을 향해 가다가 중간에 심심하다면서 자꾸 날 찌르고 간지럽히길래 심심하면 속성 제어나 하라고 등짝을 때렸더니 날 잠깐 잡아먹으려 들었었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누나는 내 말에 속성 탄을 쏘아내고 몸에서 빛을 뿜어내고 어두운 안개 같은걸 뿜어내면서 이리저리 연습하더니 어느 순간 저렇게 양손에 각각 다른 속성을 쓰게 된 거다.
“왜. 그냥 둘 다 합쳐서 공격 스킬 하나 더 만들어보지그래.”
“으응. 하려면 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당장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못하겠어.”
헐, 진짜? 진짜 사기캐…. 어휴.
“자기 능력은 자기 자신만이 기준을 내릴 수 있다는 건 알지? 능력에 대한 직감은 유의해야 해.”
“응. 알아. 조심할게.”
나도 별로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나보단 4개월가량 먼저 위상 세계에 들어왔으니까 그동안 알아낸 걸 누나한테 가르쳐주면서 이동했다.
예를 들면 능력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으로 나만의 능력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한다거나 뭐 그런 거.
40분가량을 걸어 다음 섬으로 넘어가는 비탈길에 도착하니 구름 섬에서 별 섬으로 넘어올 때와는 다르게 무진장 폭이 넓어서 떨어질 걱정 같은 건 전혀 안 해도 될 거 같다.
“이렇게 폭이 넓고 긴 비탈이라니, 역시 다음 섬은 무지 클지도 모르겠다.”
“어? 아, 그 사냥영역 그거?”
누나의 중얼거림을 듣고 되물으니 누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그렇구 니 말대로면 폭이 100m가 넘구 높이도 1km에 길이도 2km라며? 으응.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
나와 누나는 손을 꼭 잡고 조금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올라갔다.
비탈길의 초입에서 돌려본 공간 지각 범위 안에 표시되는 다음 섬의 일부분은…. 별 섬처럼 삐죽 솟아오른 모양이었는데 절반을 올라왔을 때 다시 한 번 공간 지각 범위만 최대로 넓혀서 지형을 확인해봤더니 별 섬이랑 이어진 부분이 부채꼴 모양으로 점점 넓어지기 시작한다.
일단 구름은 다음 섬의 위쪽까지 올라가진 못하고 섬의 절벽 부분에만 닿아있었다. 섬의 정확한 모습은 맨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생각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는데 누난 15분을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니 학학거리면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힘들어? 업어줄까?”
“으으. 아냐. 조, 조금 쉬었다 가자.”
누나는 한순간 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살짝 젖어있는 비탈길에 궁둥이를 붙이고 주저앉아버렸다.
새하얀 치마가 흙투성이가 되어가지만 이제 신경 안 쓰기로 했나 보다.
한동안 할딱거리던 누나는 금방 안정된 호흡을 되찾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꾸준히 공간 지각을 펼쳐 동물이나 이형종의 존재는 없는지 살펴보는데 건너편 섬에는 잔디도 덮이지 않은 바짝 마른 땅만 보이고 다른 생명체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걷다 보니 점점 구름이 걷혀나가면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누나는 구름이 걷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힘을 내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다음 섬까지 거리가 1/3 정도 남아있을 때 구름의 영향권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나와 누나는 잠시 멈춰 서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봤다.
발아래를 굽어보니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 한가운데 하늘 높이 송곳처럼 삐죽 솟은 산이 보인다.
“저게 뾰족 산이야.”
“와아…. 못해도 4km는 넘게 떨어져 있을 텐데 그래도 산이 되게 커보여.”
산이 아니라 그냥 돌 봉우리 같다. 색도 옅은 회색이고 군데군데 틈 사이에 나무 한두 그루씩 나 있었는데 거친 단면마다 검은 덩어리들이 뭉쳐져 있었다.
공간 지각으로 봤던 위치랑 모습을 비교해보니,
“저 검은 점 같은 것들, 전부 이형종의 둥지야.”
“…무지 많다. 저거 다 잡으면 위상석이 몇 개나 나올까.”
“대충 2 천마리 정돈데 대부분 최하위급이고 하위 ~ 중하위급은 다 합쳐봤자 300도 안 돼. 그중에 위상 석을 가진 중하위급은 15마리뿐이야.”
“에게? 겨우 그거뿐이야?”
“응. 위상석의 TP를 전부 합쳐봤자 5천도 안돼.”
돈으로 합산하면 수십억이긴 하지만 돈이 아쉽지는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땐 아빠랑 엄마한테 받는 용돈 천원도 아까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이 돈 같지가 않아졌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뿐이다. 거의 하루 만에 다시 만나는 태양이 반갑네.
햇살이 그렇게 따갑지 않은 걸 보면 여기는 북반구나 남반구에 위치해 있는건가? 북반구의 북쪽이나 남반구의 남쪽은 여름이래도 날씨가 선선하다던데 지금 이곳이 딱 그 꼴이다.
구름바다에서 시선을 돌려 등 뒤를 보니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섬의 끄트머리 절벽이 구름 위로 수백 미터 솟아올라 있었다.
누나는 다시 손을 뻗어 나랑 자기 옷에 가득 차있는 물기를 움직여 바닥으로 쏟아내 버렸다. 자기 엉덩이에 가득 물든 흙탕물도 물을 조종해서 깨끗하게 만들어버리는 게 신기하다.
다시 누나의 손을 잡고 비탈길을 오르면서 누나한테 말했다.
“물을 그렇게 잘 다루니 누난 목욕 안 해도 되겠네.”
“목욕은 매일 해야지 무슨 말 하는 거야.”
“현실 말고! 위상 세계에서.”
“아.”
이런저런 시덥잖은 이야기로 누나랑 장난치면서 비탈길을 끝까지 오르니 누나의 숨이 턱 아래까지 차오를 때쯤에 다음 섬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 누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아후우. 올라오자마자 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눈앞에 언덕이 시야를 가리고 있으니까 어쩐지 짜증 나.”
나는 누나의 손을 잡아끌면서 언덕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저 언덕 너머에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으니까 저 위에 올라가면 섬이 다 보일 거야. 아마도.”
“으응.”
그러면서 누나는 검지를 입에 물면서 목을 꼴깍거린다.
“뭐해?”
“푸후. 물 마셨어. 너두 마실래?”
…기상천외하다.
어떻게 이런 수십 미터 높이의 흙 능선이 쭈욱 생겨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눈앞에 그야말로 거대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섬의 자태가 드러난다.
“서울 시내보다 더 넓은 거 같아.”
누나의 중얼거림에 섬을 내려다보니 섬은 전체적으로 넓적한 파전 같은 모양이다. 거기에 분지처럼 넓은 면적이 가라앉아있었고 그곳에 초지와 숲이 조성되어있는 게 보인다.
초지는 그다지 많지 않고 분지의 7할이 숲이다.
“서하야…. 저기 저거, 신전 아니니?”
…누나가 내 팔을 잡고 흔들며 한 곳을 가르키는데, 섬의 중앙에는 거대한 호수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호수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중간쯤에는 초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 그리스의 신전과 비슷한 모양의 새하얀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 저기도 있어. 저기에도!”
누나는 연신 섬을 가르키며 두 개의 신전을 더 발견해냈다.
중앙의 호수를 중심으로 삼각형으로 감싸는 모양인 세 신전은 어딘가 낡았다거나 풍화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느낌이 안 좋은데.”
그리고 시선을 돌리니, 동쪽 저 멀리 안개에 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섬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으로도 지금 서 있는 섬보다 비슷하거나 더 클 거 같다.
…어쩐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설정란에 하늘 섬의 전체 지도를 올렸습니다.
...손잭스가 그림판을 이용해 마우스로 그린 거니 대충 형상만 봐주세요!
안 봐도 상관없음!
그리고 전 몸무게가 55kg이 안됩니다 ㅎㅎ; 탄수화물+단백질은 지방이 무섭게 불어난다는 말에 겁먹고 옵xx 골드 스탠다드를 사버렸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