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89화 (189/517)

00189  하늘 섬  =========================================================================

누나는 정장 재킷을 벗고 내가 건네준 하복 셔츠를 안에 입고 그 위에 재킷을 입었는데 셔츠를 만지작거리고 목을 움츠려 옷깃에 묻으면서 우후루 하는 게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뭐가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허기가 지는 느낌에 비상식량 벨트를 한 입 뜯어먹고 누나는 허리띠를 풀어서 버클에 달린 절단기로 잘라먹어 아침을 해결했다.

불을 피워서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좋을 텐데 별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구름이 흩어질 생각을 안 해서 불을 피우는 건 무리다.

하이에나는 뭐…. 못 먹는다 쳐도 들소는 잡아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구름이 흩어질 생각을 안 해서 불을 피울 수가 없다.

그래도 입구에 블라우스를 걸어놔서 그런지 습기가 전부 블라우스에 스며들더니 구멍 안으로 퍼지지도 않고 습기는 전부 블라우스를 통해 나무 그릇에 점점이 떨어지는데, 어느새 사람 몸통만 한 나무 그릇에 물이 1/4 정도 차올랐다.

이 정도면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일단은 당분간 이렇게 식사를 해결하고 누나가 능력자로 각성한 다음에는 적당히 실전을 경험하면서 별 섬을 탐색해봐야지. 구름이 흩어지면 동물이든 이형종이든 사냥해서 구워 먹기로 하고.

그 뒤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가 접근하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더니 어느새 누나가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왜 그래? 시간 얼마 안 지났으니까 좀 더 자.”

“아냐. 하이에나가 접근하고 있어.”

재빨리 나무 구멍 밖으로 튀어나가서 슬금슬금 접근하던 하이에나 세 마리를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신체 강화능력으로 수백 미터 밖으로 던져버린 다음 구멍 안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누나 무릎을 베고 반쯤 선잠을 자면서 점심때까지 시간을 보냈지만, 사이사이에 하이에나들이 자꾸 나무 주변을 어슬렁거렸었다.

그 꼴이 누나 냄새를 맡고 먹잇감을 쫓아온 모습이라 또다시 뛰쳐나가서 몇 마리를 때려죽인 다음 시체를 저 멀리 집어 던져버렸더니 나머지들이 기겁하면서 도망가버렸다.

대가리가 좋지 않은지 그 뒤로 서너 번 더 다가오길래 올 때마다 한 마리만 남기고 다 때려죽였더니 다 합쳐서 13마리를 죽였을 때 하이에나는 더는 나와 누나가 있는 나무로 다가오지 않았다.

누나가 조금 춥다고 해서 내 다리 사이에 앉히고 끌어안은 채 누날 품에 안고 반쯤 선잠을 자고 있을 때, 위상 세계에 들어온 지 20시간이 지날 무렵에 내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누나가 갑자기 고개를 픽 떨구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움찔하면서 눈을 뜨고 누나의 심장을 살펴보니 위상력이 정확히 10이 되어있었다.

각성 때 정신을 잃는 건가? 생각해보면 나도 정신을 잃었었지?

그런데 생존학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혀 없었잖아. 이러니까 생존율이 겁나 떨어지지. 도망 중에 각성하면 그대로 물려 죽으라는 거 아냐?

하지만…. 이해하는 게, 각성의 시기는 죄다 제멋대로니까 알려줬다가 괜히 사람들이 신경을 쓰고 어딘가에 숨어만 있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그러다 굶거나 목말라 죽을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정신을 잃는다는 걸 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딘가 틀어박혀 꼼짝도 안 할 테니까.

내 머리로는 이 정도밖에 생각이 안 든다. 아무튼, 내가 움직이면 누나한테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꼼짝않고 누나의 몸 안을 공간 지각으로 살펴봤다.

누나의 몸 안 심장에 쌓여있던 위상력은 심장에서 꾸물거리다가 천천히 심장에서 퍼져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물처럼 흐물거리며 심장을 감싸던 위상력은 곧 한 줄로 모여들더니 심장을 중심으로 부정형 띠 모양으로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띠는 물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부정형 띠 모양 위상력에 물색이면, 물 속성인가?

가만히 있은 지 대충 1분 정도 지났을 때 눈을 반개한 채 기절해있던 누나가 스르르 눈을 뜨더니 눈을 깜빡인다.

“…어머.”

어리숙한 표정을 짓고 당혹스러워하던 누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날 바라본다.

“나 얼마나 기절해있었던 거야?”

“1분 정도 됐어. 능력자가 된 기분이 어때?”

“…뭔가 기분이 이상해.”

다시 눈을 감고 잠시간 가만히 있던 누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두 손을 펼쳐본다. 그 순간 몸 안의 위상력이 흔들거리더니 손에서 물이 샘솟듯이 솟아올라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꺅?!”

손에서 순식간에 흘러넘친 물은 누나의 치마랑 다리를 흠뻑 적시고 바닥에도 물을 살짝 고이게 만들 정도로 쏟아져 나오더니 누나가 허둥거리면서 손가락을 꼬물거리자 손바닥에서 퐁퐁 샘솟던 물은 곧 멈추었다.

“아우, 이런.”

누나는 당황하면서 바닥에 살짝 고인 물을 내려다보더니 고인 물에 손을 뻗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갑자기 고여있던 물이 출렁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헐…. 저거 말이 되는 건가? 갓 각성한 능력자가 속성을 조종한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누나는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을 지긋이 응시하더니, 물이 조금씩 찰랑 찰랑거리다가, 누나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구멍 밖으로 줄지어 주르륵 빠져나기 시작한다.

일렬로 나란히 이동하던 물의 행렬이 끝났을 때 누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이렇게 하는 거구나.”

…물이 고였던 바닥을 쓱쓱 쓸어보니 물기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누나의 몸속의 TP는 6이 줄어 4가 되어있었다.

각성하자마자 속성을 제어 하다니, 보통 각성 직후에는 약한 속성 탄 한 발을 발사하는 게 전부라더니 천재는 달라도 뭔가 다른가 보다.

누나의 자질은 얼마로 나오려나?

“축하해. 단 하루 만에 각성한 데다 각성하자마자 바로 속성 제어까지 하다니, 진짜 천재네. 혹시 자질이 S급인 거 아냐?”

“히히. 그래도 서하 너만큼은 아냐. 암튼 자질이 높게 나왔으면 좋겠다.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게.”

“높은 자질이 아니더라도 누난 나한테 무진장 도움을 많이 주고 있거든? 뭣보다 이제 위상 세계에 강제 소환당할 일이 없게 됐으니까 안심이야. 내가 옆에 있을 때 소환돼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휴.”

“그러게.”

내 한숨에 살포시 웃은 누나는 하루 만에 각성했다거나 능력을 제어 할 수 있게 된 것보다 내 마음이 기쁘다는 표정이었다.

누나의 TP 회복량은 나보단 한참 느리지만, 일반 능력자보단 배로 빨랐다. 영은이의 말에 따르면 보통의 능력자의 TP 회복은 10분에 1%라고 하는데 누나는 5분에 1%였거든.

하루 만에 각성한 능력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하지만 세상에 퍼진 TP 회복량에 관한 이야기들은 따로 없는 걸 보면 TP 회복량이 다른 능력자들보다 빠른 사람들은 일부러 밝히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나한테 TP 회복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누나도 회복량이 더 빠르다는 걸 숨기라고 해줬다.

이제 누나도 능력자니까 내가 TP를 주입해주면 D 클래스까진 금방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누나를 바라보며 생각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생각이 끝났을 때 내 마나 시브에에 관해 다시 설명해주면서 누나의 몸에 내 TP를 주입해서 클래스를 높이면 어떨까 물어봤지만, 누나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TP 주입은 강제적으로 위상력을 늘리는 거지? 어쩌면 위상력이 적을 때 TP를 받아들였다간 성질이 변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누나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영은이가 정신을 잃고 몸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건…. 하지만 내 TP는 위상 석의 TP랑 똑같았는데? 아냐! 에너지 이터, 미호의 경우를 생각해봐!!

…일단 지금은 누나한테 신경 쓰자.

내 표정이 굳어진 걸 본 누나는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은지 내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있었다. 잠시 그런 누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형종을 불러들여서 죽이는 걸로 위상력을 늘려보자.”

“응.”

누나는 내 표정이 굳었던 이유가 궁금해하는 거 같지만 아직은 이야기해줄 수 없어.

오후 1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구름이 사방을 가리고 있어서 육안으로는 근방의 확인이 불가능하다. 하늘에는 아까부터 5마리에서 7마리 정도의 독수리 이형종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독수리 외에도 까마귀나 비둘기, 무진장 거대한 참새 같은 것도 날아다녔다.

일단 저것들을 유인해내야겠지?

식용 벨트를 조금 뜯어먹는 걸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나무 구멍에서 빠져나와 누나의 과녁판이 되어줄 녀석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누나의 사격 능력을 테스트해봐야겠다. 하지만 여전히 구름이 섬을 뒤덮고 있어서 장거리 사격은 무리인데…. 일단 살아있는 생물부터 죽이는 연습을 할까?

“구름 때문에 상황이 별로 안 좋으니까 일단 섬의 모습을 확인해볼 겸 중앙에 있는 뾰족한 산 주변을 돌아보자. 덤벼드는 녀석들이 있으면 누나 속성 탄 테스트도 해보고.”

“알았어. 근데 정말로 구름이 흩어지질 않네.”

“이런저런 풀과 덤불,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걸 보면 해가 비춘다는 이야기니까 언젠가는 걷히겠지.”

“응. 니 말이맞아.”

구멍에서 나온 누나는 시각적으로 막혀있는 상황에다 하이에나의 습격을 받았던 걸 떠올리는지 내 손을 꼭 쥐고 곁에 붙어 다녔다.

기온도 상황이 이래서 그런지 조금 쌀쌀하다고 느낄 정도다. 누나는 내 하복 셔츠 위에 정장 재킷을 걸쳤는데도 살짝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불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느긋하게 별 섬의 중앙에 있는 뾰족 산을 중심에 두고 반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해서 8시 방향으로 이동하니 우릴 발견한 하이에나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한다.

잠시 뒤에는 나와 누나를 먹이로 보는지 하이에나 여섯 마리가 사람 웃는 소리 비슷한 울음을 내면서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으으. 울음소리 징그러! 게다가 구름 때문에 모습도 안 보여!”

“흠. 소리 나는 곳으로 속성 탄 한 발 쏴 보지?”

“속성 탄? 워터 볼 말이지?”

“어.”

난 속성 탄이라는 게 입에 붙어버렸는데 알고 봤더니 속성별로 앞에 속성을 붙여서 파이어 볼트, 워터 볼, 윈드 커터, 어스 미사일이라고 부른다든가.

나라별로 다 이름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영국이나 미국의 작명 식을 따라가는 분위기더라.

누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더니 손가락을 뻗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순간 1 TP의 속성 탄, 워터 볼을 쏘아냈는데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방정맞은 울음을 내던 하이에나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렸다!

와. 누나도 혹시 감지 능력을 얻은 거 아냐?

누나가 쏘아낸 워터 볼은 화살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갔는데 단번에 한 마리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린 게 기가 찬다.

손가락만 한 물방울이 쏜살같이 날아가 자신의 존재감을 남겼는데, 그 미친 존재감을 머리통에 받아들인 하이에나는 끄웩하는 사람 비명과 비슷한 소릴 내더니 풀썩 쓰러졌다.

한 마리가 쓰러지는 소릴 들은 나머지 다섯 마리가 흠칫하면서 몸을 멈추는 게 보인다.

그 순간 누나의 연이은 5번의 워터볼에 1마리는 빗나가고 4마리도 머리통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나면서 이승을 하직해버렸다.

미친! 진짜 감지 능력도 같이 얻은 거 아냐?!

살아남은 한 마리도 마나 레이를 잠깐 뿌려서 머리에 구멍을 내버리고 누날 돌아보니 누나도 날 돌아보며 상황을 물어온다.

“어, 어떻게 됐어?”

뭔가 소변 마렵다는 표정으로 안짱다리를 하고 몸을 조금 움츠린 누나는 자신이 쏘아낸 워터볼이 몇 마리를 맞춘건지 궁금한가보다.

뭐, 맞을 때 별다른 소리도 안 났고 하이에나도 조용히 널브러졌으니까.

“6마리 중의 5마리를 맞췄어.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맞춘 거야?”

“그래? 으흐흥. 다 직감으로 쏘아낸 건데 6발 중의 5발을 맞추다니, 나 쫌 대단한 듯?”

누나는 다시 어깨를 으쓱으쓱 하면서 우쭐한 표정을 보였다. 확실히 잘하긴 했지만 아직은 칭찬해주기에는 부족하지?

그, 만화에서도 수행 초기에 칭찬은 독이 된다고 하잖아.

“한 마리 놓쳤잖아. 아직 부족해. 백발백중은 돼야지.”

“뭐야~. 6마리 중에 5마리면 83%는 되잖아!”

“그 17% 확률로 빗나간 게 아군을 때리면 어쩌려고 그래?”

“윽. 그래도 구름으로 하나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는걸!”

“대신 거리도 짧았지.”

“…흥.”

내가 칭찬해주지 않으니까 팔짱을 끼더니 뿔이 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돌리든 말든 일단 이걸로 하늘 위에 있는 이형종을 끌어들여 볼까?

죽어 널브러진 녀석들에게 걸어가니 흥흥거리면서 툴툴거리던 누나는 깜짝 놀라면서 내 곁에 따라붙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삐진 건 삐진 거라는 건가.

“다른 거 더 찾아볼 거야?”

“아니, 이 녀석들로 하늘에 떠 있는 이형종을 불러내 봐야지.”

아직 하이에나의 사체가 안보여서 그런건지 몰라도 생명체를 죽였다는 거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 거 같아서 다행인…가? 다행인 거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른 판단이었는지 누나는 자기가 쏘아낸 워터 볼에 머리통에 구멍이 나고 , 그 구멍에서 뇌수를 조금씩 흘리는 모습을 보더니 안색이 새파래졌다가 눈을 꼭 감고 내 팔에 달라붙었다.

살짝 속으로 한숨을 쉰 다음 다섯 마리의 하이에나 사체를 한군데 모으고 마나 레이저를 짧게 뽑아내서 놈들의 몸통을 잘라버렸다.

피 냄새를 뿌리면 되려나? 거리도 멀고 잘 보이지도 않는데 엉뚱한 것들이 몰려드는 건 아닌가 몰라.

“히이익.”

누나는 반 토막 나면서 내장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난 생선 배도 가르고 시골에서 닭 잡고 내장도 긁어내 봤으면서 뭐 이런 거에 놀라고 그래?”

“그,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이!”

“뭐가 달라? 먹는 거랑 안 먹는 거?”

“아우, 너 증말!”

누난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내가 얄미운지 손을 뻗어 내 옆구리를 막 꼬집기 시작한다. 나도 누나 옆구리를 막 꼬집어주면서 근처에 있는 바오밥 나무에 다가가서 마나 탄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갔다.

나한테 꼬집힌 옆구리를 쓰사듬던 누나는 입술을 삐죽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우씨….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응. 내려오면…. 안보이니까 어쩔 수 없나? 내가 다 죽일 테니까 누난 위상력을 흡수만 해.”

“그럴게. 그보다 너 목은 안말라? 물 마신 지 오래 됐잖아.”

그런가? 생각해보니 조금 목이 마르긴 하다. 내 말에 누나는 구멍 밖에 손 내밀어서 물을 만들어내 손을 씻더니 두 손을 모으고 손바닥에 물을 만들어낸 다음 내게 들이밀었다.

마셔보니 적당히 시원한 게, 검증 때 식수통에 능력자들이 만들었던 물보다 좀 더 상쾌한 느낌이…?

아무튼 누나가 물 속성을 얻어서 다행이다. 이제 식수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일곱 마리의 이형종 중 독수리 이형종 한 마리의 고도가 점점 내려오기 시작한다.

“한 마리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네. 이 구름을 뚫고 하이에나 사체들을 발견한 건가?”

솔직히 발견할 거라는 기대는 그다지 안 했는데 생각보다 녀석들의 눈이 좋은 거 같다. 조금 주의해야지.

“구름의 밀도가 다 똑같진 않을 테니까 옅은 부분이 순간적으로 드러난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독수리의 고도는 점점 낮아져서 곧 구름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뒤를 따라 비둘기와 참새 이형종 들도 한 마리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셋 다 위상력 60~80 사이의 하위 이형종이라 놈들의 위상력 감지는 얼마 안 된다. 1회차에 쥐새끼를 생각해보면 7m 정도가 한계일 거다.

여긴 하이에나의 사체 더미에서 50m 떨어진 곳이니 누날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나를 등 뒤로 숨기고 세 마리 이형종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공 200m쯤 위에서 잠시간 선회하던 녀석들은 쏜살같이 내려와 하이에나의 사체를 낚아채 가려고 한다!

저것들이?!

잽싸게 튀어나가며 두 발에 토막 난 하이에나들을 하나 혹은 둘씩 집고 가려던 녀석들에게 마나 레이를 뿌려 세 놈을 토막 쳐버렸다.

뭔가 크고 무거운 게 후두두 떨어지는 소리에 누나가 몸을 흠칫하는 게 공간 지각으로 보였다.

“나와. 세 놈 잡았어.”

하늘 위에 있던 4마리의 이형종은 눈치를 못챈건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 없이 하늘을 선회하고만 있다.

누나의 손을 잡고 죽은 이형종에게 다가가니 하이에나들처럼 몸이 반 토막 난 녀석들이 내장을 쏟으며 널브러져 있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누나도 질겁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처럼 부르르 떨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으으. 나도 이제 능력자잖아. 이런 걸 많이 볼 텐데 익숙해져야지.”

“오오, 기특한걸?”

감탄했다는 듯이 누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니 날 찌릿하고 흘겨보고는 이형종의 시체로 다가간다. 녀석들도 거의 한 덩이에 가깝게 뭉쳐있어서 따로 움직일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곧 세 마리의 이형종 시체에서 물빛 위상력이 퍼져나오고 누나의 몸으로 스며들어 가는데 누난 그걸 못 느끼는지 그냥 이형종의 시체들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나. 위상력이 누나 몸으로 흡수되고 있는데 뭔가 느껴지는 거 없어?”

“어? 어머?!”

내 말에 흠칫하고 놀란 누나는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기 시작했다.

이형종 세 마리의 위상력은 모두 합쳐서 210 정도인데 20%인 42를 몸 안으로 천천히 흡수하는데 위상력들은 전부 누나의 심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누나는 위상력이 점점 늘어나다가 이윽고 50이 넘어 52가 되면서 I 클래스에서 H 클래스로 등급이 올라갔다. 동시에 누나의 심장에서 다시 한 번 위상력이 퍼져 나오더니 한 겹의 띠를 더 만들어 나간다.

역시 속성 능력자들은 클래스가 한 단계 오를 때마다 1겹씩 늘어나는구나.

그…런데, 두 번째 위상력의 띠는 물색이 아니라,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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