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88화 (188/517)

00188  여긴 어디?  =========================================================================

“이, 이이이이이런건 무무무무리야! 안돼!”

…라고 하면서 사색이 될 거라 생각한 누나는 안색 하나 안 바뀌고 구름이 잔뜩 시야를 가리고 있는 폭 1m의 비탈길 좌우를 살펴본다.

그리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길 타고 올라가면 다음 섬이야?”

“응. 올라갈 수 있겠어?”

“하필이면 단화를 신었을 때 소환될 게 뭐다니, 정말….”

누나는 한숨을 폭 내쉬면서 자기 신발 밑창을 보는데 약간의 홈만 나 있어서 이런 비탈길을 오르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확실히 오르는데 마음가짐은 문제가 안 되지만 신발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우와. 누난 대체 얼마나 대담한 거야? 천재는 원래 저런가? 난 살짝 겁나는데.

나랑 누난 남맨데도 진짜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생각해보면 누난 가슴 빼곤 모든 면에서 기준치를 한참 초과하는 스텟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능력 빼곤 기준치를 밑도는 스텟이잖아.

암튼 저 신발로는 흙 비탈을 올라가기 힘들겠는데. 나야 학교지정 특수화를 신고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역시 누날 업고 올라가야겠다.

100m 높이에 길이 50m 정도의 계단…이라고 해야 할지 흙 비탈길이라고 해야 할지. 검증을 끝내고 화연이랑 체술 수련하면서 균형감각도 굉장히 높아졌으니까 누나 하나쯤이야 업고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니지.

나는 누나 앞에서 쪼그려 앉으면서 말했다.

“누나. 업혀.”

“으응?!”

“왜 놀래? 그 신발로 걸어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 나. 누나 몸무게쯤이야 1ℓ 생수병보다 부담 없으니까 얼른 업혀.”

“응….”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거 같다. 남맨데 부끄러워질게 뭐가 있지? 누나는 조심스럽게 내 등에 가슴을 기대고 내 목에 팔을 감아 꼭 껴안는다.

나도 손을 뒤로 돌려서 누나의 엉덩이를 받치고 일어서니 역시 56kg 정도는 무게감도 안 느껴진다. 바람도 별로 안 불 때 빨리 비탈길을 올라야지.

“안 무거워? 나 몸무게가 조금 나가는데.”

“흠, 이 정도면 56kg 정도인가? 쌀 한 포대보다 조금 더 무거운 거 아냐?”

“윽?! 어, 어떻게 아는 거야?!”

정답인가보다. 누난 자기 몸무게가 들통났다는 사실이 무진장 창피한지 내 뺨을 살짝 꼬집으면서 내 목을 조아댄다.

“그냥 들어보니까 알겠는데? 아무튼, 꼭 잡아. 중간에 이형종이 나타나고 덤벼들면 마탄을 쏴낼 건데 살짝 흔들릴지도 몰라.”

“…알았어!”

그러더니 누나는 두 다리로 내 허리를 감고 다리를 꼬았다.

“오, 좋은데.”

자세가 좀 웃기게 변하고 치마가 훌렁 올라가서 팬티가 다 보이지만 그만큼 누나의 몸이 내 등에 단단히 고정됐다. 하지만 누나는 이 자세가 좀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진다.

천의 면적이 많지 않은 은색 레이스 팬티라서 사이로 달덩이 같은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보인다.

뭐 다른 볼 사람도 없으니 부끄러운 자세쯤이야 상관없지. 난 조금 빠르게 발을 놀려 열심히 위로 올라갔다.

“야아. 손 꼼지락거리지 마!”

“어? 이렇게?”

“요게!”

조금 등에서 흘러내린 누나를 추슬러 올리다가 엉덩이를 잡았더니 누나가 투정을 부려왔다.

살짝 장난기가 돌아 일부러 손바닥으로 누나의 궁딩이를 찰싹찰싹 때리니 짐짓 화난 는굴로 손을 들어서 내 머리통을 콩콩 두드린다.

그나저나 비탈길의 중간 정도까지 올라왔는데 이 안개들이 정말로 구름이라면 여긴 상당히 고도가 높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럼 바람이 좀 세게 불어야 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잠잠하다.

혹시 성층권 정도 되려나? 아니면 여긴 원래 바람이 잘 안부는 건가….

궁금증이 생겨서 누나한테 물었더니 내 말을 들은 누나는 잠시 구름이 잔뜩 낀 주변을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구름은 암만 높아 봤자 10~13km인걸. 성층권은 지상에서 20~50km 정도 높이 부분을 말하는데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야.”

“그런가.”

“아무튼 신기한 곳이야.”

“그러게.”

누나랑 맞닿은 등의 옷자락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축축한 게 좀 기분이 찝찝하다. 누나도 말은 안 하겠지만 마찬가지겠지. 머리카락도 잔뜩 습기를 먹어서 축 늘어졌으니까.

슬쩍 누나의 손을 내려보니 피부가 불어서 쭈글쭈글해진 손가락 끝이 보인다.

누난 내 등에 좀 더 달라붙으며 내 머리 위에 얼굴을 올리고 뿌연 구름으로 가려진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구름은 맞는 거 같은데…. 색이 옅은 걸 보면 구름의 위쪽인가?”

“응. 구름 모양 섬에서는 땅에서 1km 높이까지 구름이 있었는데, 여긴 땅에서 대충 700m 높이까지만 둘러싸여 있어.”

“흐응.”

누나는 뭔가 구름에 대해 상각을 하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일단은 다음 섬으로 넘어가야겠다. 누나, 꼭 잡아.”

“으응?”

비탈을 거의 다 올라왔을 때쯤 여러 마리의 이형종 들이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거든. 싸움이라면 안정적인 땅 위에서 해야지.

누나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날 껴안은 두 팔과 두 다리에 힘을 준다. 나 역시 두 손으로 누나의 엉덩이를 받친 채 발을 살짝 굴러 쏜살같이 남은 비탈길을 올라갔다.

이런 협소한 장소에서 싸우는 건 사양이야!

빠르게 뛰어올라 두 번째 섬, 별 섬이라고 하자. 별 섬에 올라섰을 때 4마리의 독수리 이형종이 나와 누나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구름이 주변에 한가득하고 완전히 가려져 있는데 어떻게 날 발견한 거지? 공간 지각으로 놈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살펴보니 내가 있는 범위를 포함해 전부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공간 지각 범위에 들어오는 섬의 형태는 첫 번째 섬, 구름 모양 섬이니까 구름 섬의 나무는 좁고 길게 뻗은 모양이었다면 이 별 섬의 나무들은 두 종류였다.

공간 지각 끄트머리에 들어오는 산의 일부에는 평범한 단풍나무처럼 보이는 게 잔뜩 나 있고 산 아래 평지와 언덕에는 바오밥 나무처럼 짧고 굵은 나무들이 이곳저곳에 솟아올라 있다.

일단…. 산 인근에 가장 크고 굵은 저 바오밥 나무 쪽으로 가야겠다.

“누나. 주변에 무진장 굵고 두꺼운 나무들이 많아. 그중에 한곳을 파내서 아지트로 삼을 거야. 괜찮지?”

“응. 그렇게 해.”

섬의 지면은 초원처럼 풀과 큰 덤불들이 이곳저곳에 잔뜩 나 있었고 검붉은 들소와 하이에나같이 생긴 동물들도 덤불 속 여기저기에 숨어있었다.

“들소랑 하이에나 같아 보이는 동물들도 꽤 많이 보이는데 동물 중에는 이형종이 없네. 이형종은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들 뿐인 거 같아.”

“비행형 이형종이 동급이라면 지상형보다 공격이나 회피 쪽에 이점이 많아. 아마 그 때문에 지상형 이형종이 사라진 게 아닐까?”

“하긴 섬이라서 도망갈 곳도 없네.”

그러고 보니 비탈을 다 올라왔는데도 누난 등에서 안 내려온다. 뭐 상관없나. 이러면 좀 더 빠르게 이동도 되니까.

하는데 공간지각이 적의를 캐치하고 동시에 100m 앞쪽 덤불에서 줄무늬에 등에 털이 길게 난 하이에나 4마리가 날 향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공격하다 위험하면 도망갈…. 꺅!”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눈알만 번뜩이며 순식간에 5m까지 접근한 하이에나의 모습에 누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내 목과 허리를 꽉 조인다.

하늘 위에서 선회 중인 독수리를 의식한건지 짖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빠르게 달려온 놈들이지만, 이형종도 아니고 평범한 동물이잖아.

마나 레이를 쓰는 건 아깝고 위력이 너무 강하니 간단하게 마나 레이저를 뽑아내 가장 선두에 서있는 놈을…. 잠깐, 마나 레이저로 토막 냈다간 피 냄새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거 같은데.

지워버리려면 마나 탄이지만, 혹시나 내가 쏘아낸 마탄의 충격파에 누나가 다칠 수도 있으니 능력을 사용한 전투는 최대한 피하자.

그냥 때려죽여야겠다.

“누나. 꽉 잡아.”

“서, 서하야아?!”

놈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순간 마나 모드 - 가속을 키고 공간 지각까지 집중한다. 정신이 가속되며 마치 거북처럼 느릿느릿 날아오는 놈들을 보다가 녀석들에게 접근해 주먹을 들어올린다.

누나가 등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내 빠른 움직임에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아, 누날 고정하기가 좀 그런데.

에이 몰라. 한 손은 누나의 엉덩이를 움켜쥐면서 고정하고 다른 주먹을 쥔 손으로 가장 선두에서 주둥이를 서히 벌리는 하이에나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뻐억! 꿰에에엥!

머리통이 터져나가지 않게끔 힘 조절을 해서 후려친 덕분에 녀석은 반항다운 반항조차 못 하고 두개골이 부서지며 즉사해버렸다.

내가 엉덩이를 움켜쥔거에 누나가 흠칫하면서 꾸움틀 하는걸 느끼며 그 뒤를 쫓아 뛰어오르던 두 번째 녀석을 향해 다리를 차올려 놈의 아랫턱을 올려차버리니 놈의 아랫턱이 박살나고 공중에서 풍차처럼 붕붕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어 아직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세 번째 녀석의 머리통마저 수도로 내려쳐 두개골을 박살 내버렸다.

끼우울?!

순식간에 죽어버린 세 마리의 모습에 남은 한 마리는 깜짝 놀라면서 깩깩거리는 소리를 내며 도망가려 한다.

“누나, 내려.”

공간 지각으로 주위에 다른 동물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누나의 팔과 다리를 풀어서 초지 위에 내려놓고 마나 모드를 힘껏 돌려 번개같이 쫓아가 남은 한 마리 역시 머리통을 내려쳐 죽여버렸다.

하이에나의 습성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도망갔다가 엄마·아빠 친구를 바리바리 데리고 올지 모르니 다 쳐 죽여놓는 게 좋겠지.

동물보호법 같은 거 알게 뭐야. 현실도 아닌데.

죽인 네 마리를 지금 가는 방향과 반대 되는 곳으로 신체 강화를 최대한 돌려 집어 던지니 내 공간 지각 범위 너머까지 날아가 버렸다. 무게가 30kg은 넘어가던데 저렇게나 멀리 날아가다니…. 과연 신체 강화.

멀리 집어 던져놓고 주저앉아있는 누나한테 다가가니 누나는 발개진 얼굴로 엉덩이를 가리고 엉거주춤하게 선채 날 흘겨보고 있었다.

“괜찮아?”

“…몰라. 근데 그렇게 쫓아가서 때려죽일 필요가 있니? 도망가게 내버려두면.”

“놔줬다가 무리 지어서 공격해올 수 있잖아. 마나 탄을 쏘아내면 간단하게 지워버릴 수 있겠지만, 능력을 쓰면 위상력의 흔적이나 폭음 때문에 다른 놈들이랑 하늘에 떠 있는 이형종 놈도 달려들까 봐 때려죽인 거야.”

“…응. 알았어. 이상한 말 해서 미안.”

“뭐가 미안해. 자, 업혀.”

“으응?! 아, 아니 나도 걸을 수 있는데?”

“빨리 목적지로 이동하려고 하는거야. 1km 넘게 가야하는데 누나 발에 속도 맞췄다간 1시간 걸리겠다.”

“으으.”

머뭇거리던 누나는 다시 내등에 업히는데 어쩐지 움찔움찔거린다. 그런 움직임은 신경안쓰고 누나의 엉덩이를 받친채 목표로 한 바오밥 나무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주변에 다른 하이에나와 들소들이 있지만 내가 저지른 폭행의 현장을 본 건지 내 속도를 본 건지 한껏 몸을 웅크릴 뿐 그 뒤로 나에게 덤벼들진 않았다.

내가 목표로 한 바오밥 나무는 지름이 13m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굵고 높이도 50m에 달하는 무진장 거대한 녀석이었다.

그 나무는 별 섬의 중심이 되는 근방에 있었는데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들짐승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신 산에서 최하위~중하위 모두 합쳐 비행형 이형종 수천 마리가 공간 지각에 들어왔다.

뾰족하게 솟은 산은 높이가 1km가 약간 안 되는 거 같았는데 간당간당하게 내 감지 범위 안에 전부 들어온다.

저렇게나 많은 숫자라니, 뭘 먹고 사는 거야? 동물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데?

마치 송곳처럼 솟아오른 산의 절벽 이곳저곳에는 둥지가 있었고 이형종 들은 그곳에서 날개를 접은 채 쉬고 있었다.

짙은 구름 때문인지 녀석들 대부분도 둥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수천 마리 중 위상력이 제일 많은 녀석은 중위급에 어딘가 모르게 귀엽게 생긴, 크기는 안 귀여운 새였다.

수리…는 아니고, 참새처럼 동글동글한 머리에 새카만 눈동자와 짧은 부리가 나 있었고 날개의 끝은 검게 물든 데 비해 몸통에는 진한 색의 반점이 여기저기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풍성한 깃털 때문에 몸집이 커 보이지만 깃털 속은 꽉 찬 근육으로 가득하다.

보통 새들은 날기 위해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데 저 녀석은 이형종이라 다른가 보다.

목표로 한 바오밥 나무에 도착해서 누나를 내려 줬더니 한숨을 폭 쉬면서 내 등에서 내려온 누나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리하고 바로 앞에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바오밥 나무를 올려다본다.

“와…. 이런 곳에서 이만한 크기의 바오밥 나무를 볼 줄은….”

그러더니 날 돌아보며 물었다.

“구멍은 어떻게 낼 거야? 나무를 파낼 도구도 없는데?”

바오밥 나무 몸속에 여기저기 구멍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큰 건 아니라 마나 탄을 쏘아내서 작은 구멍을 만들어놓고 그 속에 숨으면 하이에나들한테 위협받을 일도 없고 이형 종들에게 발견될 일도 없겠지.

“마나 탄으로.”

“응?”

의아해하는 누나한테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줬다.

클래스가 오르면서 어딘가 달라졌는지 범위가 좀 더 늘어났으니까, 대충 3m 정도의 구멍을 만들려면 충격파 없는 버전으로 0.7 TP 정도를 7m 높이쯤에 쏘아내면 되겠지? 그 정도면 하이에나들도 기어오르지 못할 테니까.

손가락 끝에 TP를 모아 지상에서 7m 높이쯤에 속이 꽉 찬 부분을 향해 마나 탄을 날렸다.

콩알보다 조금 더 큰 마나 탄이 바오밥 나무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더니 푸시익하는 소리와 함께 마나 탄이 낸 구멍을 통해 바람이 빠져나온다.

주변의 희뿌연 구름이 밀려나는 모습에 누나가 작게 감탄하는 게 들린다.

남은 건 올라가서 입구를 조금 더 넓히면 끝인가.

누나는 밑에서 기다리고 난 공간 지각을 펼쳐 주변을 경계하며 폭 50cm가량의 직선형 구멍을 냈다. 입구를 넓고 크게 만들었다간 비행형 이형종 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니까.

…중하위급 이상 되면 그전에 나무를 부숴버릴 거 같긴 하지만 그전에 나한테 죽을 테니 일단 목표는 하늘에서 안 보이게, 땅에서 높은 곳으로 동물들한테 안전하게가 모티브다.

누나를 등에 업고 나무를 올라서 구멍 안에 들어가게 했더니 나무 안에 생겨난 지름 3m의 원형 공간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넓다아? 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 기분이야.”

“안심된다니 다행이네. 이제 물을 만들어야지. 누나가 말대로 한번 해보자.”

“응. 근데 여기도 근처에 물이 없어?”

누난 긴 생머리를 뒤로 한데 묶으려다 묶을만한 끈이 없다는 걸 알고는 다시 풀어버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응. 산도 거의 절벽에 흙뿐이라 물 같은 건 안 보여.”

“으음. 그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길쭉한 나뭇가지 네다섯 개만 잘라와 봐.”

“응? 뭐하게?”

누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장 재킷을 벗더니 얇은 블라우스도 같이 벗어버렸다.

얇은 실크 블라우스를 벗은 누나는 가슴에 귀여운 꽃 모양 자수가 달린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는데 가슴도 없으면서 브래지어는 왜 하는 건가 모르겠다.

“…너 방금 이상한 생각 했지.”

“안 했거든? 그걸로 어떻게 할 거야?”

가슴 없다는 게 이상한 생각인가? 누난 의심 간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날 노려보다가 입을 삐죽이더니 블라우스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걸로 식수를 만들어봐야지. 구름이 많으니까 블라우스 자체가 수분을 흡수해서 여과 기능을 할 거야. 옷 아래쪽에 물을 담을 그릇만 만들면 되니까, 아까 보니까 맨손으로 나무 잘 파던데 그릇 하나 만들어봐.”

그리고 맨살 위에 재킷을 다시 걸친 누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워?”

“으으. 재킷이 차가워….”

“재킷 벗어서 줘봐. 물기 짜서 줄게.”

누난 별말 없이 다시 벗어서 건네줬고 밖으로 나가서 꼼꼼하게 물기를 짜서 누나한테 던져준 다음 나무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잽싸게 1m 정도로 곧게 뻗은 나뭇가지를 여러 개 자르고 구멍으로 돌아오니 누나는 나한테서 나뭇가지를 받아들고 블라우스의 어깨 재봉선을 뜯어내서 끈처럼 나무를 한데 모아 묶더니 간단하게 삼각대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삼각대를 만든 누나는 나한테 입구 쪽 바닥을 평평하게 파내라고 하길래 시키는 대로 했더니 입구에 삼각대를 세우고 그 위에 블라우스를 올리니 입구를 완전히 가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무 벽을 네모난 모양으로 잘라낸 다음 속을 다시 파내니 그럭저럭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고 블라우스의 아래쪽에 나무 그릇을 가져다 놓고 잠시 지켜보니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입구에서 들어오는 습기는 블라우스를 거쳐서 아래쪽 나무 그릇에 모이겠군.

“오, 이러면 수분 보충은 문제 해결이네.”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 드러누웠다.

“피곤하지? 좀 쉬어.”

“응.”

어제 오후 5시에 입장하고 그 뒤로 새벽 5시까지 불침번을 서다가 누나가 깨고 바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오전 7시군.

아~ 앞으로 어떡한다. 여기서 누나가 능력을 각성할 때까지 버텨야 하나? 안전을 생각하면 그러는 쪽이 나을 텐데….

“힛츄.”

누나는 추운지 살짝 몸을 떨다가 작게 재채기를 했다.

이상한 재채기에 소리에 감기가 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옆에 앉아 생각에 잠긴 누나의 몸을 살펴보니 심장에 쌓인 위상력이 느껴진다.

어?

벌떡 일어나서 누나의 몸을 공간 지각으로 다시 한 번 살펴보니 14시간 만에 위상력이 7이나 차오른 게 보였다!

“헐.”

황당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니 누나도 의아한 눈으로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하는 표정이 됐다.

“왜 그래?”

“아니 잠깐, 14시간에 7이 오르면, 15일 360시간을 14로 나눴을 때 25에 7을 곱하면 175? 아니! 2시간에 1 오르니까 360시간이면 180이잖아!”

“무슨 말이야?”

180? 나갈 때 G 클래스라고? 우와…. 내가 처음 각성했던 건 3일째잖아. 귀환했을때는 F 클래스였지만 그건 거인 프랑의 위상력을 흡수하면서 성장한거니까….

만약 위상력이 10이 되는 순간 각성한다 치면 누난 6시간 뒤에 각성하는 거야?

나보다 더 빠르잖아?!

사기캐다! 내 앞에 사기캐가 있다!

“와.”

일단은 내 정신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누나한테 내가 확인한 걸 설명해줬다. 그런데…. 누난 얼굴을 붉히면서 다리를 오므리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린다.

“너, 너 설마 알몸을 맘대로 투시할 수 있는 거야?”

…….

“감지 능력이잖아. 당연한 거 아냐?”

“…….”

누나의 눈빛을 받고 있으려니 식은땀이 흐를 거 같다. 이럴 땐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야 해!

“혹시 내가 사람들 알몸을 막 투시하고 돌아다닌다거나 그런 거 의심하는 거 아니지?”

“…안 그랬어?”

“우와아…. 누나, 실망이야.”

정말 실망했다는 듯이 다시 누워서 누나한테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니 누나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날 의심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는데 이대로 두면 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거야.

들키면 무슨 잔소리가 날아올지 몰라…!

“나한테는 화연이랑 프랑이 있는데 누나는 날 여자들 알몸이나 투시하고 다니는 변태라고 생각하고.”

“…….”

“거기다 난 누나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은가 몸 상태를 살펴보고 지켜주려고 한 건데…. 진짜 너무해.”

말이 이어질수록 누나는 표정이 의심에서 찔림으로, 찔림에서 미안함으로 바뀐다. 좋아.

“아까 누나 기침 소리에 몸이 안 좋아진 게 아닐까 살펴보다가 능력자가 되어가는 거 같아서 말한 건데…. 잠도 안 자고 누나 지켜주려고 한 건데. 누난 동생을 그런 변태로 봤다 이거지?”

“아, 아냐~! 누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구 그냥…. 누나가 미안해 응? 서하야앙.”

저 사과는 함정이다! 하지만 계속 삐진 척 하는 것도 안돼!

누나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면서 코맹맹이 소릴 내지만, 일부러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됐어. 아무튼, 14시간 동안 누나 심장에 위상력이 7이 차오른 게 보이는데 몸 상태는 어때?”

“으응? 어…. 그러고 보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 거 같아. 어깨랑 무릎이 결리는 것도 사라졌구.”

…세상에. 스무 살이 벌써 관절통을 앓는단 말야?

누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자기 무릎이랑 어깨를 만지는데 블라우스가 없어서 그런지 재킷 단추를 다 채웠지만 움직일 때마다 없는 가슴골이랑 브래지어가 다 드러난다. 살짝 추워 보이기도 하고.

난 하복 상의를 벗고 힘을줘서 짠 다음 누나한테 던져주며 말했다.

“2시간마다 위상력이 1씩 차오르는 게 사실이면 앞으로 6시간 뒤에 누나도 각성을 하게 될 거야.”

“정말? 그전에 나한테 왜 셔츠 주는 거야? 니가 입어야지!”

“됐거든요? 갓 초보 능력자 주제에 고위 능력자님을 걱정하는 거야? 주제를 알아야지.”

“뭐얏?”

같잖다는 내 표정에 누나는 약오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손을 저으면서 누나의 말을 막았다.

“됐고 얼른 입어. 음…. 그리고 누나가 능력자로 각성하면 능력 타입을 보고 15일 동안 버스 태워줘야겠다. 잔뜩 태워줄 테니까 긴장타라고.”

“…버스 태워준다면서 왜 긴장하라고 하는 거야?”

“어디서 날로 먹으려 그래. 난 회복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 누나도 실전 경험을 해봐야지!”

“아, 그 말이구나. 알았어! 누나도 열심히 할게!”

겁먹고 찡찡거리지 않아서 맘에 든다. 저 잘난 누나가 찡찡거리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기도 하고.

과연 하루 만에 각성하는 능력자는 어떤 능력을 깨달으려나~? 기대되는걸!

그보다 신경을 딴 데로 돌려서 다행이다. 후후.

============================ 작품 후기 ============================

만우절은 만우절일뿐이죠 ^^;

살 좀 찌우려고 단백질 보충제를 샀는데 2kg짜리가 엄청 크더군요;; 다먹으려면 1년넘게 걸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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