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여긴 어디? =========================================================================
으윽…. 속이 울렁거리고 더부룩한 게 토할 거 같아….
땅에 널브러져 있다가 부시시 일어나며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배를 문지르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어? 여긴 어디…. 아! 누나!!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뿌연 무언가가 사방에 가득 차있고 달도 별도 안보이는 어둠 속이라 마나 비전을 켰다.
누나, 누난 어딨지?!
황급히 주변을 돌아봤는데 다행히 누나는 바로 옆에 쓰러져있었다. 모로 누워있는 누나의 안색을 살펴보려는데 마나 비전으로도 색감이 부족한 세상이라 안색이 잘 보이지 않는다.
두 손을 교복 자락에 닦은 다음 누나의 뺨이랑 이마를 만져보는데 열이나 뭐 그런 건 느껴지진 않았다.
프랑이 기절한 최수한에게 했던 것처럼 누나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니 숨이 규칙적으로 느껴진다.
목에 손을 대봤지만…. 경동맥 쪽에 손가락을 대던가? 손가락을 대보니 뭔가 펄떡거리는 것도 느껴지고 공간 지각으로 누나의 가슴을 살펴봐도 열심히 뛰는 심장은 이상이 없어 보인다.
휴우. 멀쩡한거 같으니 다행이다.
…어?
프랑은? 영혼석! 펜던트! 펜던트 어디 갔어?!
황급히 두 손으로 목이랑 가슴을 더듬어보지만 역시나 없다!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에 공간 지각을 펼…쳤…. 는 데, 뭐야 여긴!!
모노크롬 색의 평지 너머로는 안개가 꼈는지 희끄무레한 것들이 감싸고 있어서 시야는 굉장히 협소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땅이, 섬이? 지금 나랑 누나가 있는 이 땅이 내 공간 지각 안에 둥둥 떠 있는 데다 섬 전체가 안개 같은 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모양새다!
두께는 지금 있는 섬의 중앙에서는 대충 1km가량 되는 거 같은데 외곽으로 나갈수록 점점 두께가 얇아지는 게 마치 땅이 통째로 패여서 공중에 떠 있는…!
아니 그보다 프랑의 영혼석이 어디 갔어?!
공간지각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영혼석이 보이지 않아!!
…!!
아아, 후욱 후욱.
쿵덕거리는 심장을 달래보려고 가슴을 움켜쥐고 마나 시브를 천천히 돌리면서 기절한 누나를 품에 안았다. 누나의 따뜻하고 포근한 체온이 느껴지니 조금 기분이 진정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인증기를 켜보니 역시나 접속 종료라는 단어만 보인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소지품을 뒤져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갑도, 휴대폰도, 프랑의 영혼석이 담긴 펜던트도!
욕이 나올 거 같은 기분에 입술을 꽉 다물고 숨을 가다듬으면서 누나의 몸을 더듬어봤다.
역시 누나도 옷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 내가 선물해 준 펜던트도 언제나 하고 다녔는데 펜던트도 없어.
누나의 새하얀 정장 재킷을 걷어올려 허리춤을 살펴보니 다행히 비상식량 벨트는 잘하고 있었다.
후우….
역시, 누나의 강제 소환에 휩쓸리면서 내 소지품도 전부 바닥에 떨어진 건가? 그거에 프랑의 영혼석도 포함되어있고, 영혼석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버려서 프랑도 함께 떨어진 거겠지?
후우, 후우.
펜던트는, 영혼석은 바로 프랑이 챙겼을 거야. 아니면 화연이가 챙겼을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자.
후우. 그럼 15일 동안 누나 곁에서 누나를 지키다보면 귀환하겠군. …아니, 누나는 저절로 귀환이 된다고 쳐도.
나는?
귀환 포인트를 찾아야 하나? 아니면 누나 귀환 때 함께 돌아갈 수 있는 건가? 근데 여긴 하늘에 떠 있는 섬이잖아? 방금 살펴봤을 때 귀환 포인트 없었다고?
무척이나 습기가 진하다고 생각하면서 섬을 다시 한 번 차근히 살펴보니 적당히 굴곡이 있는 구름 모양의 섬은 약…. 7만 제곱킬로미터 같다. 그러니까 경복궁 뒤편 북악산이랑 비슷한 넓이인가?
섬의 모양은 대체로 원형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부서져 내린 곳이 있어서 막 구름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섬에는 전체적으로 잔디가 잔뜩 자라있고 꽃으로 보이는 것들도 여기저기 마구 자라있었다. 나무들도 듬성듬성 자라있었는데 중요한 게 물이 없다.
으…음. 큰일 났네. 일단 섬에는 이형종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수분 확보가 불가능하잖아.
섬에 드문드문 나 있는 나무들은 처음 보는 나무들인데, 내 위상 세계의 수분 나무의 나뭇잎 같지가 않고 납작한 솔방울 모양의 나뭇잎이다. 그러니까 수분 공급 같은 건 무리다
하지만 나무 몸통에 뭔가 물이 흐르고 있긴 한데 저거 마셔도 되는 건가?
지금은 밤이라 잔디고 꽃이고 나무고 전부 회색으로만 보이긴 한데 나무의 표면이 우둘투둘하지 않고 매끄럽고 곧게 뻗은 모습이다. 전부 같은 종류의 나무인데 둘레도 얇아 대부분은 누나 허리 둘레 정도만 한 거 같다.
높이는 20m 정도인가? 나무가 워낙 좁고 나뭇가지도 얇아서 나무 위에 숨는다거나 그런 것도 못할 거 같다. 역시 누나 곁에 붙어서 15일을 버텨야겠지만, 역시 물이 문제인데.
수분 보충을 걱정하며 공간 지각으로 섬 둘레를 살펴보다가 계단 같은걸 발견했다!
남동쪽에 조그마한 계단 같은 건…. 꼭 사람의 손길이 닿은 거처럼 곧게 뻗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간 지각을 조금 더 넓혀보니 계단은 대략 50m가량을 이어지다가 다른 섬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와, 근데 폭이 1m도 안되는 데다 난간도 없어서 바람이 좀 세게 불었다간 바로 옆으로 떨어지면서 고공 낙하를 할 거 같은데?
두통을 감수하고 공간 지각을 반경 3km까지 최대한 확장했더니 계단의 끝에는 꼭…. 꼭짓점만 불쑥 튀어나온 듯한 땅이 연결되어있었다.
계단의 높이는 대강 100m가량 된다…. 장난 아니네.
그곳은 이곳보다 더 넓은지 최대한 확장을 해봐도 삐져나온 꼭짓점만 보이고 다른 지역 같은 게 보이질 않는다. 저 계단 위쪽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평지로 이어져 있는 거 같은데….
내 품에 안겨서 기절한건지 잠든건지 눈을 못 뜨고 있는 누나를 내려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솔직히 누나를 껴안았을 때, 잘못되면 어떡하나, 밀려나는 느낌이 있는데 시공간의 틈에 버려지거나 끼어서 죽는 건 아닌가 중2 병적인 망상이 무럭무럭 자랐었는데 멀쩡하게 같은 곳에 떨어져서 진짜 다행이다.
어휴. 나도 진짜 병신인 게 누나 주변에 귀환 포인트랑 비슷한 느낌이 들면 의심하고 조사를 해봐야지 누나가 바쁘다고 딴 데 신경 돌리고 화연이가 눈에 보인다고 무시하고.
만약 내가 없던 곳에서 누나가 위상 세계에 빨려 들어갔으면, 만에 하나 누나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거다.
어쩐지 이곳의 분위기도 이상하고 느낌이 싸한 게, 남들 다 누린다는 정상적인 1회차가 아니라 내 위상 세계처럼 엿 같은 곳이라는 예감이 든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돌아보지만 역시나 안개 같은 게 가득 껴있어서 그런지 별빛도 달빛도 비치지 않아서 무진장 캄캄했다. 아니, 새카만 어둠 속에 회색 연기 같은 것들이 가득 차있어서 좀 소름 돋는다.
…나야 공간 지각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누나 혼자 여기 떨어졌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일단 누나를 안아 올려서 잔디가 많이 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잔디에 습기가 모여 물방울이 맺힌 걸 보니 비라도 온 건가 싶은데. 잠시 돌아다니다가 풀밭이 죄다 물밭이라서 여기 눕혔다간 옷이 다 젖겠다 싶었다.
이거 진짜 안개? 아니, 구름?
결국,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서 누나가 편히 자도록 허리를 끌어안고 내 몸에 기대게 해놨다. 누나의 강제 소환에 껴들고 공간 지각까지 억지로 넓혔더니 머리가 좀 욱신거리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위상 세계니까 보초를 서야지.
중상위 이형종 이하는 식후 간식거리로 처리할 수 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내 위상 세계처럼 상위나 고위 이형종이 갑툭튀할지 누가 알아.
…아. 수분 공급방법 찾았다.
이형종을 잡아서 피를 마시면 되잖아.
좀 꺼림칙하지만 목말라 죽는 것보단 낫지. 다만 누나가 이형종의 피를 마실 수 있을지가 좀 걱정되긴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15일을 물도 없이 버티기란 무리라는 걸 누나도 금방 눈치챌 거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면 피를 마서야 한다는 걸 누나도 이해할 테니 억지로라도 마실 거야.
그렇게 누나를 지키면서 15일을 버티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지. 이런 곳에서 누나를 죽게 내버려둘쏘냐!!
점점 주변이 밝아지는 거 같아서 인증기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입장하고 12시간이 지나 아침 6시가 다 돼간다.
…즉 지겹다.
마나 시브 덕분에 두통은 금방 가라앉았는데 보이는 거라곤 안개인지 구름인지 엿 같은 게 시야를 가리고 있으니까 심심해!
아니, 이형종이나 위험이 없는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 12시간 동안 멀뚱멀뚱 앉아있으려니 지겹다고!! 누나는 중간에 한 번도 안 깨고 쿨쿨 잘도 잔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건가? 근데 나는 1회차도 그렇고 지금도 바로 눈을 떴는데.
평온한 표정으로 자는 모습에 심술이 나서 깨워버릴까 살짝 고민했지만 그래도 눈뜨면 위상 세계라는데 충격먹을테니까 그냥 냅둬버렸다.
아아, 그나저나 무슨 놈의 안개가 이렇게 진한지 모르겠네. 바로 5m 앞도 안보일 만큼 자욱한 게, 멋모르고 안갯속을 걸어 다니다가 섬 끄트머리에서 추락사! 같은 웃기지도 않을 상황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욱한 안개다.
12시간 동안 있다 보니 내 옷도 누나 옷도 축축해지고 머리에도 습기가 가득 내려앉아서 축축해져 있다.
진짜 이거, 아니 여기는 하늘 위인 거 같은데, 구름인 거 아냐?
공간 지각 범위 전체가 안개로 가려져 있는 데다 섬이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이라 구름으로밖에 의심이 안 가는데…. 지금 있는 곳이 공중에 떠 있는 섬인 거 같으니 구름이라고 하자.
아무튼,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서 뭐 주변이 확인이 안 된다.
쩝. 누나는 정장에 치마 차림이었는데 여름 정장이라 그런지 옷이 좀 얇다. 블라우스도 실크 블라우스라서 습기를 머금어서 그런지 옷이 비쳐서 속옷도 드러나고…. 이렇게 있다가 감기 걸리지 않을까?
물론 지금 누나의 심장으로 위상력이 찔끔찔끔 모이이면서 전신에 퍼지고 있어서 좀 더 튼튼해질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병에 걸릴 장소에 오래 있는 건 좋지 못하다.
내 힐링 웨이브가 질병도 회복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누날 업고 이동할 걸 그랬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누나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깨려는 건가?
귀를 살짝 기울여보니 "축축해…. 으응. 뭐야…."이러는 거 같다.
누나는 얼굴에 맺힌 이슬을 닦아내려는지 손을 들어서 얼굴로 가져가는데 손은 물론이고 옷도 물기가 잔뜩이라 닦기는커녕 물 범벅이 될 텐데.
재밌겠다 싶어서 잠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한 손을 들어서 얼굴을 문지르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거 같다.
“에페펫! 뭐야?! 물?”
버둥거리다가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간 누나는 발딱 일어나 앉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자기 손을 내려다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어? 여, 여긴 어디야…?”
…일어났으면 사방을 둘러봐야지 앞이랑 좌우만 돌아보네.
누난 뒤에 있는 날 발견하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손에 잡히는 잔디를 보더니 황망한 표정이 된다.
잔디를 더듬다가 주춤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누나는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다가 나랑 엄마 아빠를 찾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서하야? 엄마? 아빠!”
아, 점점 눈에 습기가 차오르고, 반쯤 덜깬 얼굴로 주위를 살펴보는데 저대로 두다간 울어버리겠는걸.
“으읏….”
“뒤는 안 돌아봐?”
“꺅?!!”
그냥 말을 꺼냈을 뿐인데 누나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자지러더니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팬티보인다.
“아윽! 서하야아!!”
그리고 날 향해 반쯤 기다시피 해서 달려든 누나는 앉아있는 날 끌어안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지간히 놀랬는지 가슴이 콩닥 콩닥거리는 게 누나의 없는 가슴을 통해 귀에 들려왔다.
“이거, 꿈이 아니구나. 여긴 위상 세계니?”
오우. 누나는 금방 냉정함을 되찾더니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떨림은 감출 수 없는지 살짝 두려운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좌우를 살펴본다.
“응.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은 나?”
“으응. 지하 주차장에서 화연이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다가 정신을 잃은 거 같아. 근데…. 니가 왜 여기 있어? 여긴 어떻게 된 거니? 안개가 왜 이렇게 자욱해? 게다가 들어온 시간은 오후 5시쯤일 텐데 왜 이렇게 밝아?”
두려운 표정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누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진정하라고 했다.
“들어온 지는 12시간이 좀 넘게 지났어. 지금은 6시가 다 돼가고 있고.”
“어떻게 서하 너두 들어온 거야? 정신을 잃기 전에 누가 다가오는 거 같았는데, 그게 너였어?”
“어 나였지.”
“…첫 번째 강제 소환은 혼자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
“뭐, 그건 나도 몰라. 누나한테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우연히 옆에 누나가 강제 소환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누나한테 달라붙은 건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어.”
“그렇구나, 나 때문에…. 혹시 여기 와서 밤새도록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응.”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새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목을 다시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근데 좀 축축하네.
“암튼 여긴 하늘 위인 거 같아. 내 공간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봤는데 땅이 통째로 하늘로 올라와서 둥둥 떠 있는 모양새거든. 그리고 구름이 이 섬 전체를 덮고 있는 거 같아.”
“이형종은 없구?”
“응. 없어. 밤새 지켜봤지만 다가오는 것들도 없었고.”
“다행이다. 근처에 이형종이 없으면 이대로 15일간 버티다가 돌아가면 되겠네.”
흠. 누나는 날 본 이후로 이런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을 안 보인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안정감을 느끼나 보지?
누나가 패닉을 일으키는 건 나도 바라지 않으니까 좋은 현상이다.
“근데 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마실 물이 없어. 이 섬 전체를 꼼꼼히 살펴봤는데 땅속은 물론이고 땅 위에도 물이라곤 하나 없는 곳이야.”
“흐음…. 이 안개는 전부 구름이잖아? 옷도 물기를 잔뜩 먹을 정도니까 옷을 걸어두고 아래쪽에 그릇 같은걸 만들어두면 물은 확보가 될 거야.”
그러면서 자기 옷을 쓸 내린 누나는 손에 가득 묻어나는 물방울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거 마셔도 되는 거야? 평범한 구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도 목이 말라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이렇게 습기가 많고 축축한 곳에 오래 있으면 그전에 누나가 병이 날 거 같은걸. 지금도 조금씩 떨고 있잖아.”
누나의 허리를 잡아당겨서 품에 꼬옥 안았더니 누나와 내 몸 사이에 끼인 옷에서 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잠시 누나를 꼭 안고 있으려니 체온으로 서서히 따뜻해지면서 누나의 몸떨림이 가라앉는게 느껴진다.
“후우. 그건 그러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섬이라며? 어딘가에 구름 밖으로 나 있는 산이라던가 언덕이 있어?”
“그런 건 없고, 대충 4시 방향에 다른 섬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같은 게 있어.”
“그래? 그럼 그쪽으로 가보자. 아니 그전에, 서하 너도 좀 자야 하지 않아? 밤새워서 보초 섰다며.”
누난 내가 걱정되는지 손을 들어 내 뺨을 쓸어내렸다. 뺨에서 진득하게 느껴지는 물기에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누나 혼자 있는데 이런 데서 어떻게 자. 난 며칠 안 자도 되고 잠시 조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일단 이 구름에서 벗어나 보자.”
“으응.”
누나의 신발도 발 등까지 덮는 소가죽 단화를 신고 있어서 돌아다니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니 다행이다.
“엄마랑 아빠가 걱정 많이 하시겠다.”
“내가 따라 들어왔다는걸 알았을 테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할 거야.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난 내가 안전하게 데리고 돌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응!”
프랑이랑 화연이랑 영은이도 강하니까 내가 잠시 없어도 괜찮을 거다. 미호 녀석한테 TP를 좀 먹여놓은 게 다행이네.
누나의 손을 잡고 4시 방향의 계단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1,200m 상공에 위상력 61의 하위 이형종 한 마리가 선회를 하는 걸 발견했다.
녀석은 남동쪽에서 날아왔는데 생김새는 거의 독수리다. 날개를 쫙 펴고 섬 위를 선회하고 있었는데 날개 끝에서 끝의 길이가 5m가 넘어간다.
뭐 일반 독수리도 3m는 넘어간다고 하니 그렇게 큰 편은 아닌가? 우릴 발견한 건 아닌지 공간지각이 경고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설마하니 이곳에 나타나는 이형종 들이 죄다 비행형인 건 아니겠지? 이걸 누나한테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누날 돌아보니 단호하고 긴장된 표정만 가득하다.
불안한 얼굴은 처음 깬 직후에 한 번뿐이고 지금까지 멀쩡한 데다 마음까지 다잡은 모습이라니, 역시 누난 대단한 거 같아. 저 정도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겠지.
“누나.”
“응?”
“이형종이야. 우리 머리 위 1,200m, 구름이 없는 위치에서 하늘을 날고 있어.”
“…등급이 어떻게 돼?”
“위상력 61의 하위 이형종에 독수리 모양이야. 지금은 한 마리 밖에 안 보이지만 지형의 특성상 비행형 이형종이 많을 거 같아.”
“응. 그렇겠네.”
생각대로 별다른 동요는 안 보인다. 나도 일부러 저 녀석을 향해 마탄을 쏴서 터트려 죽이는 걸로 관심을 끌 생각은 없다.
누나의 걸음걸이를 생각해서 천천히 계단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려니 녀석은 곧 남동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20분 정도를 걸었는데도 여전히 별의 꼭짓점 같은 지형만 공간 지각에 들어온다.
그래서 다시 공간 지각 범위만 최대한 늘렸더니 남동쪽 섬의 모습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사각형의 면을 안쪽으로 구겨 넣은듯한 모양의 섬이다. 거대하다! 거기다 섬 중앙에 꽤 높은 산이 솟아 나와 있다!
다시 공간 지각 범위를 원래대로 돌리고 한숨을 쉰다.
계단이라고 생각했던 건 별 모양의 섬이 지금 있는 구름 모양의 섬에 연결된 부분이었다.
어떤 원리로 저렇게 붙어있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위상 세계에서 깊게 생각하면 지는 거야!
누난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잔뜩 긴장하고 있는 거 같아서 누나의 손을 살살 쓰다듬어 주니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날 돌아본다.
“지금 있는 섬은 구름 모양인데, 넓이가 내 공간 지각 범위에 겨우 다 들어올 만큼 큰 섬이거든. 근데 저 계단이랑 연결된 곳은 별 모양 섬인 거 같다. 가운데 큰 산이 삐죽 솟아올라 있고 지금 있는 섬보다 더 클 거 같아.”
“산…. 산이면 니가 봤다는 이형종도 거기서 날라온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위급인 주제에 경계도 없이 하늘을 잘도 날아다닌걸 보면 조류 이형종은 하위 이상이 없을지도 모르겠어.”
“으응. 그럼 그 독수리 이형종이 먹이로 삼을 동물이나, 최하위 이형종도 있겠다.”
그러더니 조금 안색을 굳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니가 말한 섬보다 더 넓은 섬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누나의 말은 가정을 품고 있었지만, 표정은 확신을 하고 있었다. 저거보다 더 큰 섬이라니?
“독수리는 기본적으로 스케빈저야. 사체를 먹고 사는 조류인데, 그 한 마리가 차지하는 영역은 백수십 제곱킬로미터를 영역으로 삼거든? 이 섬이 남산 정도의 크기라면 7㎢ 정도라는 말인데 너무 좁잖아.”
“그런가? 하지만 저건 이형종이잖아. 독수리 시절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이형종 등급이 높아질수록 원래 생태와는 다른 양상을 띤대. 하위 이형종이라면 아직 독수리때의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거야.”
“…누난 그런걸 어디서 보고 외운 거야?”
“응? 그냥 강의 중에 조류와 이형종 생태에 관련된 게 있어서 우연히 봐둔 거 뿐이야.”
…우연히 봐둔 걸 그렇게 기억하고 있단 말야? 하여튼 천재들이란!
“그럼 독수리 이형종이 저거 하나일 리는 없을 거 같으니 누나 말대로 더 큰 섬이 있을 가능성도 크네.”
“응…. 하지만 어쩌면 최하위에서 하위로 등급이 오르면서 섭식 행동이 바꼈을 경우도 있으니까 그것도 염두에 둬야 해.”
“알았어. 근데 누난 저 독수리 이형종 이름 알아?”
“아우. 학자들이 이름 붙인 종명이나 학명 같은 건 너무 짜증 나. 그냥 형질대로 부르는 게 속 편해!”
갑자기 히스테리를 부리는 누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누나도 아차 하는 얼굴로 표정관리를 하면서 날 힐끔거린다.
“…학명은 라틴어로만 짓는 건 너도 알고 있지?”
학명은 라틴어로만 짓는다고? 그럼 긴 주둥이 마른 늑대의 학명은 long mouth skinny wolf가 아니라는 건가?
“그랬어?”
“응. 그러니까 독수리는 Aquila chrysaetos 라고 하는데 학명을 등록 관리하는 국제기구는 이형종이라고 해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든? 하지만 IWO, 능력자 연합 이형종 연구 학자들이 붙인 이름은 long wind ride eagle, 영문 표기법으로 앞선 특징을 한 두 단어로 표시하고 뒤에는 종명을 붙인단 말야.”
아, 그래서 끝단 어가 늑대나 토끼 여우 사마귀 같은 이름이 붙는 거구나.
“그냥 하나로 합치면 안 돼?”
“내 말이!! 두 곳에서 괜히 파워게임 한다구 다른 사람들 힘들게 하구 말야!! 그걸 직접 외우려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보란 말야! 영국이랑 미국이랑 국제기구가 서로…!”
뭔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누나의 분노점을 찌른건지 화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던 누나는 "크으으~!" 하면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후우 후우. …그래서 요즘 능력자들도 귀찮다구 그냥 형질 이름에 뒤에 이형종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어. 서하 너두 기억해둬.”
“어, 알았어.”
뭐, 가장 많은 숫자를 기본종으로 하고 파생되는 특이형태를 아종이나 변종이라고 부르니 나도 이쪽이 편하네.
잔뜩 흥분했다가 진정한 누나는 쬐끔 얼굴을 붉혔다가 날 힐끔힐끔 바라본다. 내 앞에서 짜증을 낸 거 때문인가?
어쨌든 다음 섬으로 가는 계단이 바로 앞이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