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85화 (185/517)

00185  로리 보스  =========================================================================

박지웅 보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나이와 가족관계 같은걸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13살이 어린 부인과 5년전에 결혼한 그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가장이었다.

“우와. 13살 연하의 아내분이시라니.”

“허허허. 무척이나 착하고 아리따운 아내라서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뒤를 쫓아다녀 버렸습니다.”

42살인 박지웅 보스의 부인은 H 클래스의 신체 강화 능력자였는데 싸움이나 전투를 싫어하고 무척이나 가정적인 성격이라고, 요리도 잘하고 착하고 귀여운 사람이라며 부인 자랑을 잔뜩 했었다.

부인은 화랑의 생활 보조 능력자였는데 부인의 부친께서 일하던 도중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해 돈이 필요해져서 화랑의 생활 보조에 지원해왔단다.

그렇게 생활 보조로써 로테이션을 돌다가 8개월 만에 박지웅 보스와 함께 탐색전에 들어가게 됐었는데 자그마한 몸집으로 전투를 제외한 요리와 기타 작업에 열심히 돌아다니는 부인의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던가.

“…부인 되시는 분의 키가 어느 정도시길래 자그맣다는 표현을….”

“으흠. 이제 144cm입니다.”

작아?!

키가 180cm가 넘는 박지웅 보스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인증기를 켜서 부인의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부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처럼 보이는 무척이나 앳되고 귀여운 소녀였다!

이 아저씨, 로리콘이었냐!!

“경찰 아저씨….”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니 박지웅 보스는 흠칫하더니 허둥거리면서 손을 젓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정말 스물아홉 맞다니까요? 미성년자가 아닙니다!”

“…부인되시는 분 나이가 스물 아홉이라고요?”

암만 봐도 12살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요!

아, 그건가. 합법 로리.

살짝 부부생활이 걱정됐지만 뭐 신체 강화자니까 어디가 다치거나 하진 않겠지. 아니, 신체 강화자 특성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박지웅 보스의 생명이 조금 걱정되네.

박지웅 아저씨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진짜 털털한 옆집 형같은 분위기라 왠지 피식피식 웃음이 자꾸 난다.

“그래서 효진이를 쫓아다니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팀의 보스인 제가 접근하는 게 그저 몸을 노리고 다가오는 줄 알았더란 겁니다!”

“그야 그렇잖아요. 형은 그냥 보면 옆집 흔한 아저씨처럼 생겼으니까.”

“흐흐흐. 아무튼, 효진이는 저만 보면 겁먹고 도망가서 결국 공략 대상을 바꿨습니다. 장수를 공략하려면 말부터 쏴야 하는 법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음식과 건강 보양식을 챙겨서 효진이 아버님이 입원하신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3개월을 들락거리니 그때가 되서야 효진이도 제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고 천천히 다가오더군요.”

“지극정성이었네요. 돌아볼 만했겠는데요?”

그야, 한 레이드 팀의 보스가 100일 가까이 자신만 보고 쫓아다니면 마음이 돌아 설만 하지.

성격이 단호하지 못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박지웅 보스는 어디서 그런 저돌성이 생겼는지 열심히 주효진을 쫓아다니면서 고백을 하고 그녀의 부모님도 자꾸 등을 떠밀며 한번 만나보기라도 하는 바람에 결국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굴곡이 있긴 했지만, 박지웅 보스의 어설픈 고백에 프러포즈까지 했지만, 진짜 장애물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박지웅 보스도 금수저였는데 아내로 능력자라고는 하지만 H 클래스인 생활 보조를 부인으로 맞아들인다고 하니까 집안 어른들이 펄쩍 뛰었다고 했다. 어디서 그런 근본도 없는 년을 아내로 맞아들이려 하냐고 난리 쳤다며 박지웅 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격이 단호하지 못한 박지웅 보스는 주효진을 아내로 맞이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집안에서 결사반대하며 주효진과 결혼하면 혀 깨물고 죽어버리겠다는 모친의 협박에 당황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고민했다고 했다.

모든 걸 버리고 주효진과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릴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끼어든 게 영은이었다.

반쯤 죽어있는 얼굴로 화랑의 집무실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모습을 발견한 영은이는 박지웅 보스를 채근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단다.

그 직후 어째서 그런 고민이 있는데도 자신에게 상담하지 않았냐면서 박지웅 보스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고는 청와대로 주효진을 데려오라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도착한 주효진만 데리고 어디론가 가려던 영은이는 박지웅 보스가 달라붙으니 걷어차 버린 다음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했다.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몇 시간을 기다린 뒤에 나타난 영은이는 바로 박지웅 보스와 주효진을 이끌고 박지웅 보스의 친가에 강림해버렸다.

이마에 하얀 건을 둘러매고 자리에 드러누워 박지웅 보스에게 무언의 항의를 보내던 양친은 난데없이 나타난 대통령의 웅장한 모습에 기겁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영은이의 말에 박지웅 보스의 양친은 두말없이 박지웅 보스와 주효진의 결혼에 찬성했다고 했다.

그 말이라는 게,

“어리바리하고 우유부단한 박지웅의 곁에는 주효진처럼 심성이 올곧고 내조를 잘해줄 여인이 필요합니다. 주효진의 외모는 비록 어리고 연약해 보이지만 부친의 상처에 스스로 팔을 걷어 생활 보조에 뛰어들 만큼 강단이 있으니 내권으로서 박지웅의 모자란 면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여인입니다.”

…였다.

그렇게 도둑놈 소리 듣고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이며 양가의 축복 아래 헤벌쭉 웃으면서 결혼식을 올린 박지웅 보스는 극도의 고뇌를 하루도 되지 않아 해결해준 더욱 영은이를 따르게 되었다던가.

고뇌를 본척만척하던 영은이가 나서게 된 이유는 아마…. 박지웅 보스가 해외로 튀어버릴까 봐 그런 게 아닐까?

무려 C 클래스의 감지 능력자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거나 사건 사고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망명한다고 하면 어느 나라든지 대환영일 테니까.

더군다나 박지웅 보스는 분석 능력자라서 평야 지대에서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해외로 떠나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는 박지웅 보스의 이야기는 영은이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할 이야기였을 테지.

결혼하고 나서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박지웅 보스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머릴 쥐어뜯고 있을 무렵 주효진도 화랑 내부에서 왕따와 갈굼을 당하면서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작은 몸으로 화랑의 보스를 낚아챈 불여우라던가. 결혼하지 않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레이드 팀 보스. 거기다 빽으로 막강한 파워의 대통령이 버티고 있고 레이드 팀 역시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레이드 팀이다.

이보다 더 군침 흐르는 먹이가 어디 있을까.

회사에서의 괴롭힘에도 주효진은 입을 다물고 꿋꿋하게 버텼다는 걸 알게 된 박지웅 보스는 감격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화랑의 보스 자리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주효진의 괴롭힘에 앞장선 자들을 처벌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걸 말린 것도 주효진이라고 했다. 대담하게도 영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웅 보스를 혼내달라 했다더라.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랑 간식을 먹으며 로리 보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음. 조만간 2조가 복귀하겠군요.”

“그러네요. 저도 잠시 준비 좀하고 와야겠어요.”

빙글빙글 웃으면서 조만간 집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박지웅 보스의 말에 기다리겠다는 말로 답해주고 40층으로 올라왔다.

“영은도 참…. 도와줄 거라면 빨리 도와주지 않고 어째서 애를 태운걸 까요?”

“인터넷에서 본거지만 결혼 중매 같은 건 가까운 사이에 서주는 게 아니라던데? 친한 사이에 중매 서줬다가 찢어지면 애꿎은 원망만 받는다더라구. 아마 영은이가 급히 나선 건 박지웅 보스가 해외로 도망가버릴까 봐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겠네요. 인재욕심이 많은 영은은 박지웅 보스 같은 사람이 도피하는걸 용납 못할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영은은 그야말로 인재들의 개미지옥이네요?”

저런, 호칭이 악덕 사장에 악당 보스에 이제는 개미지옥도 추가되어버린 건가.

나중에 말해주면 재밌겠는걸~?

내 집무실에서 박지웅 보스가 가지고 있던 센싱 스피어를 떠올리며 내 공간 지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공간 지각의 능력 중 가장 많이 쓰는 건, 표현하자면 날 중심으로 한 반경 1.5km의 지도다. 지도에는 검색 기능도 딸려있어서 특정 키워드를 생각하면 그것과 관련된 게 머릿속으로 떠오르지.

그다음은 적개심, 살의, 적의 같은 걸 감지하는 기능.

누군가가 날 대상으로 적의를 띄면 그 녀석의 위치가 저절로 파악되면서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순식간에 머릿속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적개심 감지 기능에 이어진, 날 공격하는 물체에 대한 감지.

이건 화연이와 프랑과 대련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건데 내가 아무리 정신줄을 놓고 있더라도 무언가가 날 향해 공격해오거나 하게 되면 바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억지로 공간 지각 능력을 오프시켜놓으면 안보이지만 능력을 꺼둘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지.

나는 눈을 감고 푹신한 사장 의자에 몸을 파묻고 천천히 내 중심부터 1.5km까지 지각 영역을 샅샅히 살피기 시작했다.

남자는 21만 5,412명, 여자는 35만 9,166명. 미호를 기준으로 해서 식물을 제외한, 미호보다 더 큰 생물은 1만 2,473마리.

그보다 미호보다 작은 생물을 합치면 11만 4,116마리. 숲과 산에 뜻밖에 꽤 많은 동물이 살고 있구나.

애완동물들도 꽤 많고.

그리고 딱 한 번 사용해보고 묻어놨던 공간 지각범위 확장을 해봤다.

1.7km, 1.9km, 2km, 2.5km, 3km.

공간 지각 범위가 늘어날수록 위상력 탐지가 불가능해지고, 생명체에 대한 감지가 불가능해지고, 3km까지 넓혔을 땐 그저 지형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머리가 살짝 욱신거려서 오래 지속하긴 힘들다.

역시 처음 공간 지각을 얻었을 때와 달라진 점은 범위가 조금 늘어난 걸 제외하면 없다.

공간 지각 범위를 원래대로 돌린 다음 다시 한 번 천천히 확장해나가지만 머리에 부하만 걸리고 딱히 능력이 향상될듯한 느낌은 안 든다.

수련 방법은 이런 게 아닌가?

공간지각 형태를 마구 변형시키며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보고 부채꼴 모양으로 퍼트리기도 해봤지만 어떤 모양이든지 1.5km 거리를 벗어나는 순간 공간 지각에 제한이 걸린다.

이리저리 연습하다 보니 남자고 여자고 할 거 없이 죄다 알몸을 스캔해버리고 지각 범위 안의 건물 구조라던가 누군가가 집안에 숨겨둔 비자금에 단독 주택의 지하에 불법 지하실을 만들고 거…기….

저건 사람, 시체?

내 지각범위 동쪽에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가로막혀있고, 그 끄트머리에 주택가가 몰려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 불법 개조한 지하실이 보인다. 문제는 그곳에 사람의 시체로 보이는 토막 난 사체가 커다란 식당용 냉장고 속에 쌓여 있다는 거다.

집안을 전부 살펴봤지만, 가구만 차 있을 뿐 사람이 사는 흔적은 보이지 않고 사람도 없다.

…냉장고 속의 시체를 살펴보니 늙은 노부부의 모습이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부모님이랑 누나가 사는 여기 근처에 살인마가 있단말야?

“서하? 무슨 일인가요?”

내 인상이 찌푸려진 걸 봤는지 프랑이 내 책상 위로 날아오더니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동쪽으로 1,420m 떨어진 주택가에 살인이 일어났어.”

“…!”

컴퓨터를 켜서 주소를 확인해보니 56-8번지다. 대형 주택가가 밀집된 곳인데 대체 누가…. 돈 때문에 일어난 살인인가?

“경찰에 신고해야겠어요.”

“그전에 누가 저랬는지 범인을 확인하는 게 먼저 아닐까? 괜히 벌집 쑤셨다간 범인이 도망가버릴 수 있으니까 놈의 얼굴부터 확인해야지.”

뭣하면 내가 달려가서 녀석을 포박해버리면 되는 일이고.

“…그러네요.”

프랑도 폰을 꺼내서 검색을 시작하고 나는 뭔가 단서가 없을까 싶어서 그 집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지만, 노부부에게는 자식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와 같이 찍은 사진 외에는 특이하다 할 만한 건 안 보인다.

집안을 비롯해서 집 밖 정원에도 풀이 잔뜩 자라있고 먼지도 골고루 쌓인 모습에서, 집을 사용하지 않은 지 최소 두 달이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네요…. 신문에서는 살인사건이나 행방불명 같은 사건·사고 기사가 없어요.”

“응.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고 있지만 집 전체에 누군가 들어왔다 나간 흔적이 없어. 최소 두 달은, 아무도 들락거리지 않은 거 같아.”

아, 찝찝해!

“역시 경찰에 신고 해야겠….”

띠리리리리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프랑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시 시계를 보니 5시에서 30분이 지나고 있었고 전화를 건 사람은 혜령이 이모였다. 화연이가 돌아온 건가?

“여보세요.”

[마스터? 지금 2조가 복귀했다는 연락이 들어왔어요. 트레일러에 부산물을 싣고 이동을 시작했으니 10분 뒤면 도착한다고 해요.]

“네. 도착하면 지하 주차장 3층으로 내려갈게요. 그리고,”

[네. 네?]

“그리고 공간 지각을 수련하다가 쟁선마을 56-8번지 불법 지하실의 대형 냉장고에서 사람 시체를 발견했어요. 두 달 동안 집안에 출입한 사실이 없는 거 같으니 그 점에 유의해서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아…. 그,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살인사건 소식에 혜령이 이모는 잠시 말문이 막힌듯했지만 금방 침착을 되찾고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하면서 수화기를 내렸다.

“과학수사대가 출동하면 범인을 쫓을 수 있겠지?”

“한국의 경찰과학수사는 유능하다고 하니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응. 부모님이랑 누나한테는 범인이 잡힐 때까지 가능한 외출을 삼가라고 해야겠다.”

다시금 피, 혈흔을 키워드로 공간 지각을 펼쳤더니 산 쪽에서 무시무시한 숫자의 혈흔이 드러나서 움찔해버렸다.

…키워드를 바꿔서 사람의 피의 흔적을 검색했…는 데 많은 수가 모텔의 이곳저곳을 가르키고 있어서 눈이 찌푸려졌다.

에잉. 혼전 순결도 모르다니. …그러고 보니 내 집에도 몇 군데 보이네.

어흠.

아무튼 그 외에 살인사건은 보이지 않고 취객들이 주먹다짐을 한 듯한 몇 군데가 보이지만 딱히 관심이 가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익숙한 화연이의 위상력이 공간 지각 범위에 들어온다!

왔구나~!

지하 주차장 3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사업지원부의 직원들이 잔뜩 내려와서 대기하고 있었고 그사이에 김표충 부장의 모습도 보였다.

“김표충 부장님 안녕하세요?”

“어, 블루 지…. 어흠흠. 오셨습니까, 마스터.”

금기어를 내뱉으려고 하는 김표충 부장을 찌릿 노려봤더니 금새 말을 돌려버린다. 이 사람이 진짜….

“그랑 블루 빌딩에서 그 단어가 제 귀에 들어오면 김표충 부장님의 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죠?”

“아니, 그건 좀… 그 별명을 저 혼자만 아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몰랑. 부장님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전 진짜 다른 직원들한테 그 별명을 말 안 했다니까요?! 그리고 유화연 보스도 며칠 전에 말을 꺼냈지 않습니까?! 왜 저만…!”

그랑블루의 사업지원 1동을 맡았는데도 여전히 너저분한 양복 차림의 김표충 부장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항변한다.

“부장님이 제 약혼녀에요?”

“…….”

다 큰 어른이 불퉁한 표정을 지으니까 때려주고 싶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지하 주차장 입구 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김표충 부장의 모습은 나랑 이야기 안 하겠다는 무언의 시위로 보였다.

“부정은 긍정. 인정?”

“아니 진짜, 마스터! 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아, 2조가 들어오네요.”

“큭…!”

어른을 놀리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는 거 같다. 크크.

1조처럼 대형 버스 5대와 대형 트레일러 3대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자리를 잡는 걸 보고 있으려니 혜령이 이모랑 누나가 박지웅 보스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허허. 마스터는 벌써 와계셨군요.”

“어머? 김 부장님 표정이 안 좋으신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안녕하세요. 김표충 부장님?”

“어서오십쇼 박지웅 보스, 이 부장님, 정 부장님. 별 일 아닙니다.”

김표충 부장은 떪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툴툴거리면서 날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누나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으응…? 누나는 날 발견하고 웃으면서 손을 살살 흔들어주는데…. 누나 주변에 위상력이 살살 모이는 게 이상하다.

뭔가 느낌이…. 그러고 보니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도 누나한테 귀환 포인트랑 비슷한 걸 감지했었지?

이상한 느낌에 누나한테 다가가서 팔이나 어깨, 등을 쓸었더니 위상력은 주변으로 퍼졌다가 다시 슬금슬금 누나한테 모이고 있었다.

“뭐해?”

누나는 자기 몸을 더듬는 날 보더니 내 코를 잡으려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손가락으로 뺨을 콕 찔렀다.

“어? 아냐….”

뭔가 싶어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때 주차가 끝난 버스에서 차례대로 능력자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한다.

2조 역시 1조와 비슷한 숫자로 131명의 능력자가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화연이가 내리더니 뒤이어 B 클래스 초입의 신체 강화 능력자 한 명과 소피아도 내린다.

화연이는 잠시 시선을 돌리더니 날 발견하고는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띠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 없구나. 다행이네.

날 중심으로 내 왼쪽에는 박지웅 보스랑 김표충 부장이 서고 오른쪽에는 누나랑 혜령이 이모가 서 있었는데 화연이는 소피아랑 여자 신체 강화 B 클래스 능력자와 함께 정확히 날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 서더니 날 보고 살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2조 총원 131명, 결손 인원 0명. 현 인원 131명. 지금 복귀했습니다.”

“고생 많았어.”

그러면서 검은색 반소매 코트를 입고 있는 화연이를 품에 안으니 주위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저분이 블루 지니어스? TV보다 더 어려 보이시는데.” “그래도 C 클래스인데 혼자서 상위 중에서도 최상위급 솔리드 스네이크를 혼자서 잡으셨잖아.” “대단하다~. 저분과 함께라면 이제 고위 이형종도 쉽게 잡을 수 있겠어.”

“스페셜 타입이라니 멋져~! 하지만 유화연 보스는 이길 수 없을 거 같으니 포기할래.” “야야. 마스터랑 유화연 보스랑 깊은 사이라더니 진짠가 봐. 앞으로 유화연 보스 줄에 서야 하나?” “줄이 무슨 의미가 있냐. 마스터가 B 클래스에 올라서면 혼자서 다 해 드실 텐데.”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화연이를 품에 꼬옥 안고 있으려니 살짝 얼굴이 붉어진 화연이는 몸을 살짝 꿈틀거렸다가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이, 이제 그만 마스터로써 체통을 차….”

그 순간 뒷골이 오싹하면서 기이한 느낌이 누나 쪽에서 뿜어져 나왔다.

“뭐…어!?”

목이 막히는 느낌에 황급히 누나를 돌아보니 누나는 눈을 감은 채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고 누나의 주변에서는 동그란 파문이 수십 개가…!

“서하!! 안돼!!” “서하?!”

“보스!!” “마스터!!” “강제 소환?!” “꺄아악!”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경악성과 날 잡으려는 사람들의 손을 피해, 누나한테 달려간다.

강제 소, 환?! 안돼! 누나 혼자…. 보냈다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나도 모르게 전력으로 가속을 돌리며 공간 지각을 펼친다.

사고가 가속되며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이 절반 가까이 느려지고, 갑자기 튀어나가는 바람에 미호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며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인다.

공간 지각 범위 안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새겨지듯 그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프랑이 경악한 표정으로 날 잡으려 손을 뻗고, 화연이 역시 잠시 굳었다가 날 향해 달려오지만, 잠깐의 멈칫거림이 나와 좁힐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 버렸다.

“서어하아아아아!!!” “아아안돼에에에!”

늘어지는 듯한 화연이의 목소리와 프랑의 비명을 뒤로하고 누나한테 달려가려니 주변에 이름도 모르는 능력자들이 나에게 달려들며 손을 뻗고 몸으로 막으려 들지만, 화연이에게서 배운 몸놀림으로 날 잡으려 드는 사람들의 손을 어렵지 않게 피해 나간다.

눈앞에 누나가 점점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

공간이 늘어난다.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누나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빛마저도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나는 머뭇거림 없이 누나의 품에 뛰어들었다.

누나의 따뜻한 체온이 내 품 안에 들어왔을 때, 무언가가 날 밀어내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 밀려나면 안 된다.

마나 시브를 전신에 집중하며 밀어내려는 힘에 저항하고 있으려니 시야가 희미해지면서 멸등하듯 주변이 어둠에 잠겼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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