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4 로리 보스 =========================================================================
최수한을 집사 할아버지한테 맡겨놓고 39층에 아빠 집에 들어가니 마침 엄마가 저녁을 하고 있었다.
누나는 일하는 중이라고 못온대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더니 어쩐지 지치고 피곤한 느낌이 잔뜩이라 한숨이 푹 나왔다.
요 몇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버려서 컨디션이 좀 저조한 편이었다.
금요일에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의 일에 하철수, 그자식 일까지 터졌더니 요 몇일 제 컨디션이 나오지 않아 기분이 축 처져있었는데 최수한에게 억지 상을 내렸더니 더욱 기분이 처지는 느낌이다.
내 기분을 눈치챈건지 프랑이 강아지귀와 강아지 꼬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애교를 부리고 내 품에 뜨거운 몸을 맡겨와서 조금씩 기분이 풀리고 있었다.
특히 강아지모양 잠옷을 입고 강아지귀에 강아지 꼬리를 한 프랑은 살인적인 귀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야~ 프랑이 없었으면 난 정말 프랑력이 부족해져서 죽어버렸을거야.”
“하아…. 푸훗. 그게 뭐에요.”
품에 안고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더니 프랑은 숨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기쁘다는듯이 내 품안에 파고들며 킥킥 웃어버린다. 농담이 아닌데.
“진짜라고? 요 몇일간 기분나쁜일이 몇가지가 터져나와서 우울했단말야.”
“그런가요? 그럼 제가 열심히 위로해드릴게요!”
그러면서 내 얼굴에 자잘한 키스를 해대는데 옆에서 빤히 지켜보던 흰 여우 녀석도 침대에 뛰어올라 달려오더니 내 얼굴을 막 핥아댄다!
“으악! 이녀석 왜 이래?”
끼응! 끼옹!
녀석의 허리를 잡아 들어올리니 네 다리를 버둥버둥거리다가 날보며 꼬리를 살랑살랑거린다.
“…프랑 보고 배운거야?”
끼응!!
녀석이 짧게 짖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는걸 본 프랑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아, 이녀석 이름도 지어줘야겠네. 언제까지나 이녀석 저녀석 이놈저놈 할 수는 없으니까….”
흰 여우 녀석이니까…. 흰 여우…. 흰….
“넌 그냥 흐니 하자.”
키잉?
“어? 싫어?”
끼웅! 끼잉낑!
“…….”
여우주제에 뭐가 그리 까다롭냐. 그냥 지어주는대로 할것이지. 어째 크고 새까만 눈동자가 불만으로 가득차는걸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프랑을 돌아봤다.
“프랑은 좋은 이….”
키오오옹! 키옹! 키아앙! 컁꺙!
“으악! 이새퀴 왜 발광이야?!”
프랑한테 좋은 이름 없냐고 물어볼랬더니 갑자기 머리로 내 배를 들이받고 뛰어올라서 내 머리에 달라붙어서 버둥거린다!
얼굴에 달라붙은 놈을 떼어내고 머리를 찰싹 내려치니 "끄웅."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프랑도 팔짱을 낀 채 이녀석을 기가찬다는듯이 내려다보고있었다.
“서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름 붙이는게 싫은가보네요.”
“…진짜냐?”
끄옹!
하아…. 내 앞에 얌전히 앉아서 날 올려다보는 녀석을 보고있으니까 답이 없다. 그러면서 기대한다는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흐음. 일반 여우처럼 붉은기도 돌지 않고 전신이 새하얀 털에, 살이 조금씩 오르면서 꼬리도 폭신하고 귀여운게 예쁜 꼬리다.
일자산에서 처음 봤을땐 고양이 꼬리에 네 발을 전부 긴 털이 감싸는 조금 요상한 모양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크고 하니 원래 사막여우처럼 모습이 바뀐건가?
어쨌든 이름은….
“미호로 하자.”
끼웅! 꺙꺙!
“어후. 그래그래. 좋냐? 넌 이제 작은 미微 여우 호狐라고 써서 미호다.”
끼…잉?
아름다운 여우인줄 알았지? 아니 근데 이시키는 한자도 알고 있었어? 연구원이 가르쳐준거야 뭐야?
잠시 양 손에 두 짐승들을 껴안고 놀아주니 아까까지 들던 심각하고 저조한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덕분에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을거 같다.
하루의 시작을 미녀의 키스로 시작하는건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일어나셨어요?”
끼옹옹
“응. 매일매일 키스로 깨워주면 좋을텐데, 흐아아암.”
생긋 웃으면서 날 내려다보는 프랑에게 살짝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더니 프랑의 표정이 어색해진다?
손을 뻗어서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니 녀석은 네 발로 내 손을 붙들고 살짝살짝 내 손가락을 깨물며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꽤 기운이 나는거 같네. 4일만에 살이 꽤 올라서 털을 역으로 밀어올리지않으면 뼈가 드러나진 않는게 귀여운 모습이 점점 살아난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아하하, 그게…. 화연이나 영은이 함께 있을때면 서로 하려구 해서….”
…그냥 순서대로 하면 되지.
조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프랑을 바라봤더니 살짝 발끈한 프랑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어쩔수 없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그건 서하탓이 크단말이에요!”
“엉?!”
“검증을 끝난 다음 헤아려보세요! 밤에 저희를 안아주지 않았던적이 있는지!”
“…….”
“매번 정신이 잃을정도로 저희를 사, 사용하시고선 가장 먼저 일어나셨잖아요?!”
그, 그랬나?
“아니더라도 같이 일어나버리니 입맞춤으로 깨울 기회도 얼마 없었단말이에요…!”
“아, 응. 알았어. 미안해, 응?”
말하다보니 화난다는건 저런 모습을 말하는건겠지?
화가 난다는 표정이 되어가는 프랑을 잽싸게 껴안아주고 궁둥이를 토닥거리고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프랑이 살짝 한숨을 쉬는게 느껴졌다.
“자자. 아빠 집에 가서 밥먹구 학교 가자. 미호 너도 오늘부터 같이 다닐 수 있어.”
꺙!
“그래그래.”
어쩐지 녀석이 긍정할땐 꺙꺙거리고 부정할땐 컁컁거리는거 같다. 다른 소리는 꼭 옹알이같기도 하고.
교복을 입고 아래층에 내려갔더니 누나는 오늘도 없었다. 살펴보니 사무동의 자기 집무실에 있었는데 이 시간에 일하러 간거야?
“누난 벌써 회사 나간거야?”
“어휴. 말도 마렴. 어제 자정에 집에 기어들어오더니 그대로 널부러져서 잠들지 뭐니! 애써 옷 벗겨서 재워놨더니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또 일하러 가버렸어!”
“헐….”
“다 네녀석 때문이잖느냐. 네 놈 레이드 팀이라고 저 고생을 하는거다.”
잉…. 나때문이야? 황당하다는 내 표정을 본 아빠가 인상을 쓰면서 날 보고 잔소리를 던진다.
그러고보니 누난 벌써 방학했지? 그래서 시간이 있다고 회사 일을 받아서 저러는거야?
아빠는 누나가 저 고생을 하는게 탐탁찮은가보다. 하긴 딸바보 아빤데 자기 잠들면 딸이 들어오고 깨기전에 집에 나가버리니 얼굴을 못보니까 그럴만도 하겠지.
“…누나 해고할까?”
끙. 어처구니 없는 놈 본다는 아빠 표정도 오랜만이네. 그러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신문으로 눈을 돌리는걸 보니 나도 울컥해버렸다!
“아, 진짜. 아빤 누나만 예뻐하고! 누나 결혼한다고 신랑감 데려오면 다리몽둥이 분지르겠다!”
“당연한거 아니냐. 다 늙은 나한테 다리몽둥이가 분질러질만큼 허약한 놈한테 시하를 맡길성 싶으냐.”
“아, 네.”
툴툴거리면서 주방에 있는 식탁 앞에 앉으니 프랑도 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프랑은 왜 또 날 그렇게 봐?”
“서하는 시하 님을 결혼 시킬 생각 없으시지 않으셨어요?”
“내가 언제?”
“시하님 결혼상대로 서하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면 안된댔잖아요?”
헐…. 그때 진짜 내 생각을 읽은거였어? 근데 거실 밖에서 프랑의 말을 들은 아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하고 중얼거리는게 귀에 들려왔다.
“당신!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와서 아침 먹어요! 그리구 지금 아들보다 강한 사람이 있긴 하니? 누나 혼삿길 막을 소리하지말렴! 가뜩이나 남자한테 관심없어보여서 걱정이니까!”
엄마의 잔소리에 꽁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려니 아빠도 맘에 안든다는듯이 미간에 힘을 주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런 아빠랑 날 본 엄마는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한숨을 폭 하고 내쉰다.
“어휴. 우리집안 남자들은 정말….”
“큼큼. 어서 먹읍시다.”
“와. 오늘은 해물된장이야? 맛있겠다!”
프랑의 미소가 어쩐지 민망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어깨에 미호를 올리고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해치면 절대 안된다고 다시한번 다짐을 준 다음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내 어깨에 올려져있는 미호를 본 애들은 너나 할거없이 죄다 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어대니 미호는 계속 찰칵거리는 소리가 듣기싫은지 귀를 접어버렸는데 그 모습에 여자애들의 꺅 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우아우아우아우아! 사막여우! 사막여우잖아?! 어떻게 된거야 서하야?!”
어…. 한고은은 그냥 뒤에서 멀뚱거리는데 수유리랑 조민호가 내 책상위에 올라가있는 미호를 보더니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표정으로 정신없이 미호를 바라봤다.
수유리는 그렇다쳐도 조민호까지 정신줄놓고 볼줄은 몰랐는데.
“이녀석도 이형종이니까 만지지는 말고 구경만 해.”
슬금슬금 손을 뻗다가 내 말을 듣고서 손을 딱 멈추는 수유리와 조민호.
애완견 앞에 쇠고기 갈비를 놔두고 "참아!" 라고 하면 이런 표정이지 않을까…. 애간장이 다 닳겠다는 표정으로 끙끙 앓는 두녀석을 미호도 '이 인간들은 뭐지?'하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본다.
“와. 귀엽긴 겁나 귀엽네. 사육 허가증도 받은거냐?”
“어제 발급 받았어. 사람 말도 알아듣고 사람들 공격하면 큰일난다는 걸 가르쳐놔서 공격은 안하지만 그래도 자극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신기해하는 김창현한테 대답해주며 손가락을 뻗어서 미호의 머리를 살살 긁어주니 눈을 감고 고개를 이리저리 비트는데 주변에서 연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아이가 하고 있는 목걸이 본적이 있어. 유사시에 구속 역할도 하는거지?”
한고은도 수유리의 뒤에 다가와서 미호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미호를 본게 아니라 미호가 하고 있는 목줄을 본건가보다. 그런데 수유리는 더이상 못참겠는지 반쯤 울먹이는 표정으로 나한테 애원하기 시작했다.
“으우우우. 서하야~. 한번만 만져보면 안돼?”
“나한테 묻지말고 미호한테 물어봐.”
“앗! 이 아이 이름이 미호야?! 미호미호야. 한번만 만져보면 안될까?”
컁!
“싫다는데.”
“에엑?!”
그나마 수유리는 말이라도 걸어봤지, 조민호는 그냥 애가 탄다는 표정으로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는게 참 안쓰러운 녀석이다.
그때 약간 부스스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온 강소라는 자기 자리에 있는 애들을 밀어서 치우더니 털썩 주저앉으면서 신음을 흘린다.
“흐아아아~. 힘들어어어~.”
“소라 양?. 머리 떴어요.”
“아~. 몰라몰라~. 아침을 만든 조물주가 밉다~.”
그보다 네 늦잠을 미워하는게 낫지 않을까.
뒤에서 리디아가 책상에 널부러진 강소라의 머리를 품에서 빗을 꺼내 빗어주는데 곧 수업이 시작한다는 종이 울려퍼졌다.
1교시와 2교시에 연달아 이세계 생존학 수업을 듣고 3교시와 4교시에 이계 생물학 수업을 들었더니 잠이와서 죽을뻔했다.
작년처럼 올해도 학교 최고 미녀 선생님이라는 소유진 선생님이 교탁앞에 서서 열심히 열변을 토하면서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솔직히 내 연인들에 비하면 남자나 다름없어서….
오늘이면 화연이도 돌아오고 영은이도 일이 끝나서 복귀할테니까, 계속 시계를 보니 시간이 더 안가는 기분이다.
“또 학생회실에 가는거냐?”
점심을 먹고 3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리디아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의한 고등학교의 학생회는 정말 대단해요. 원래 선생님들이 해야하는 업무의 일부분을 스스로 나서서 처리하는 모습이 정말….”
“그래.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언제쯤 시간이 날 거 같아?”
“지금이요!”
“…학생회실 가는거라며?”
“그건 부차적인 것! 서하가 우선이지요! 자, 가요!”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근데 손은 좀 놓지. 프랑이 노려보고 있거든…?
밖은 더워서 나가기 싫다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사람이 없는 자재실에서 창 밖의 운동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그 자식에 관해서 나한테 양보해줘서 고마워.”
“그…. 하칠수? 말인가요?”
“칠순지 칠득인지 정신줄 놓은 개념없는 쓰레기 자식이라면 맞아.”
자재실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걸 막기 위해 나란히 서있는 쌍둥이를 힐끔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너도 당사자라 알아야할거 같아서 말야. 일단 놈이 과거에 했던 짓까지 모두 캐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준비중이야. 아마 다음주쯤 되면 시작할거같아.”
“간단한 욕설로 얼만큼 처벌이 가능한가요? 가벼운 경범죄로 풀려나면 실망할거 같아요.”
“그럴리가. 아까도 말했지만 과거의 일까지 전부 끄집어내서야. …네 귀가 더럽혀질까봐 말 안하는거지만, 그 개자식은 못해도 수십년은 감옥에서 썩을 정도의 죄를 저질렀거든. 썩고 나오더라도 새우잡이든 게잡이든 원양어선이든 보내서 평생 육지를 못밟게 할거고.”
이야기를 듣던 공주는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날 새초롬하니 바라본다.
...? 왜 저래?
나도 잠시 리디아의 시선을 마주받고 있으려니 리디아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입을열었다.
“그정도인가요…?”
“아주아주 썩어빠지다못해 갱생조차 불가능한 버러지 수준이야.”
“…….”
끼웅.
내 말에서 살기가 느껴졌는지 내 왼쪽 어깨에 올려져있던 미호가 내 뺨을 할짝할짝 핥는게 느껴진다. 살짝 손을 들어서 미호의 턱 아래를 긁어주니 골골거리면서 내 손길을 만끽한다.
이녀석, 고양이냐? 여우는 개과인걸로 아는데.
“그러기위해서 뒷조사를 하고 사전작업중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네게 한 폭언에 비해 과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처벌할테니까.”
“그러니 대사께는 알리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뭐 그런거지.”
“그럴게요. 이제와서 약속을 뒤엎거나하면 서하가 실망해서 저를 비롯, 영국마저 싫어하게 될거 같으니까요.”
그러면서 생긋 웃는다. 햇살에 비친 옅은 금발이 반짝반짝 빛내는게, 프랑보단 못하지만 봐줄만하게 예쁘네.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네. 그럼…. 아참.”
사뿐사뿐 밖으로 나가려던 리디아는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그날 입었던 수영복은 결국 포기했답니다.”
“어?”
“서하의 조언대로 교복을 입고 수영을 하기로 했어요. 후후.”
그리고 몸을 돌려 자재실에서 나가 세 쌍둥이를 데리고 2층의 학생회실로 걸어간다.
“…왜 그걸 나한테 이야기해주는거지?”
옆에서 살짝 토라진 표정의 프랑을 보고 물었더니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서하는 마성의 어린 육식왕자님이니까요!”
큭. 리디아가 내 손을 잡고 가는걸 뿌리치지 않았더니 삐진건가?
이쪽을 보는 사람도 없어서 슬쩍 프랑의 가는 허리를 끌어당겨서 상체를 바짝 붙이니 얇은 하복 셔츠를 통해 프랑의 풍만한 유방의 감촉이 가슴 가득 느껴진다.
흥흥거리면서 날 흘겨보지만 이렇게 프랑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나온다.
“…아휴.”
내 웃음을 본 프랑은 못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면서 입을 열었다.
“바람은 안돼요!”
“바람이 불어오면 마탄으로 다 지워버릴꺼야.”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프랑의 입술을 덮치며 사과맛이 잔뜩 나는 프랑의 혀를 한동안 괴롭혀버렸다.
학교를 마치고 놀자는 아이들의 권유에 오늘 귀환하는 레이드 팀이 있어서 거기에 가봐야한다고 했더니 같이 따라가고싶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은 곤란해. 아직 매스컴에 공식 발표도 안했고. 대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불러줄게.”
“약속한거다?!”
“나도 보고싶은데~.”
어쩐지 묘하게 흥분한 애들을 뒤로하고 그랑 블루 빌딩으로 향했다.
4시쯤에 도착해서 혹시나 2조가 이미 도착한건 아닐까 그랑 블루 빌딩 전체를 감지해봤지만 화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누나 맞지? 분명 울 누나가 맞는데 주변에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이건 마치….
맞다. 귀환 포인트. 그거랑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면서 사무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7층에 내리니 혜령이 이모도 꽤 바빠 보인다. 누나도 무척이나 바빠보여서 방해하지않으려고 혜령이 이모한테 온건데.
“그러니까 지금 당장 처리해야한다니까요?! 아니, 1시간뒤면 2조가 귀환할 판인데…! 아 없으면 만드세요! 그게 사업지원2동 창고관리차장님이 할 일이잖아요! 안되면 마스터가 마나 탄을 날려버릴지도 몰라요!”
뭐시?! 날 왜 협박감으로 사용하는건데?!
“지금 당장 부산물처리 공장 차량을 불러서 넘기던가 옮기던가 사업지원 1팀 김 부장님과 상의해보세요! 당장 1시간후니까요!!”
철컥 하는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린 혜령이 이모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날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조금 바빠서….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잠시후에 이야기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 급한거 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40층에 있을테니까 화연이 2조가 돌아오면 불러달라구요.”
“네 그럴게요! 아, 강석 테크 사장님? 지금 부산물 창고에 여유분이 어느정도되나요? 네? 반 동 비었다구요? 지금이라면 1동 전부가 비어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저런거까지 총무부장이 확인하는거야? 일단 진짜 바빠보이니 피해줘야겠다.
한 손으로는 프랑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미호의 턱을 간지럽히면서 40층으로 올라가려다 문득 다른 사람이 생각나 38층에 멈추고 내렸다.
몇번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앞으로 같이 지낼 사람인데, 조금 친분을 다져놓는게 좋겠지?
사무동 38층, 전 화랑의 보스였던 박지웅 보스의 집무실은 티비에서나 보던 대기업 고위 간부의 집무실처럼 꾸며져있었다.
내 집무실이 진갈색을 베이스로 원목을 이용해 꾸며진 곳이라면 박지웅 보스의 집무실은 대리석을 이용해서 꾸며져있었는데 수많은 화분과 분재, 그리고 흰색과 회색으로 수많은 꽃 무늬가 새겨져있는 페르시아 양탄자가 바닥에 깔려있어서 대리석의 차가운 느낌을 중화시키고 있었다.
박지웅 보스는 책상에 앉아 삼각대같이 생긴 지지대 위에 올려져있는 칠흑색 구체에 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구체는 지름이 20cm는 될만큼 컸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물체였다.
“엇? 마스터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박지웅 보스랑 이야기를 많이 해본적이 없어서…. 바쁘시면 나중에 다시 올게요.”
“하하하. 저같은 보스가 할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남는 시간에는 그저 감지 능력을 단련하고 연습할 뿐이지요.”
그러면서 반구형 검은 물체에서 손을 떼는데 살짝 공간 지각으로 그걸 감지해보니 속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면서 막 움직인다?
이상한 느낌에 조금 집중해보니까 살아있는게 아니라 그냥 구체 안에서 뭔가가 막 흐르고있는거였다.
“하하. 마스터도 이건 처음 보시나봅니다?”
“네. 구슬 안에서 뭐가 막 지맘대로 움직이네요?”
“허어. 그 멀리서 센싱 스피어 속을 감지하신겁니까? 역시 대단하시군요.”
박지웅 보스는 센싱 스피어라고 부른 칠흑색 구체를 들고 소파로 다가왔고 나도 박지웅 보스를 따라 그의 앞에 앉았다.
“허허. 그녀석이 에너지 이터였던 이형종입니까?”
“네. 거의 다 죽어가고있었는데 다행히 살집도 오르고 건강해지고 있어요.”
박지웅 보스는 유심히 미호를 보더니 곧 시선을 돌리고 내 앞에 센싱 스피어를 내려놨다.
“신기하네요. 겉은 멀쩡한데 속은 막 움직이다니.”
“허허허. 약간이긴 하지만 위상력을 흡수하는 녀석이기도해서 멀리서 속을 파악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지요. 거기다 내부의 움직임도 아주 미묘해서 신경을 쓰지않으면 캐치하기 힘든 녀석입니다. 그래서 감지 능력자들의 수련용으로 많이 쓰이죠.”
헤에. 감지 능력자들은 이런걸로 수련하는거였나?
손은 대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살펴보고 있으려니 박지웅 보스는 너털웃음을 짓더니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스터는 땅 속마저 손바닥 뒤집듯 훤히 보실 수 있는 능력자시니 이런 연습도구는 필요없으실겁니다.”
박지웅 보스의 노골적인 칭찬에 조금 어색해져서 살짝 웃었다.
난 감지 타입들은 딱히 수련같은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 있어도 그냥 높은곳에서 사람들을 감지하거나 움직임을 캐치하는 그런식인줄 알았는데 전용 연습 도구가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C 클래스에 오를때 공간 지각만 아무 변화가 없었지? 나도 공간 지각을 좀 더 연습하고 굴려야할 거 같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나보다.
============================ 작품 후기 ============================
155화의 솔리드 스네이크 전투씬에 힐링 웨이브 발사시에 1단계를 사용했다고 나옵니다. 단계를 언급한 부분이 실수여서 1단계라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그리고 조아라에서 이번 컨테스트에서 입상했다는 연락이 ^^;
이게 모두 여러분들께서 잘봐주셔서.. 크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