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에너지 이터3 =========================================================================
귀를 쫑긋거리면서 주변을 한동안 살펴보던 녀석은 날 은근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마스터를 알아보는 거 같네요…?”
“갑자기 이렇게 서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그 증거겠죠?”
…이 녀석, TP 줄 거냐는 듯한 표정인데 혜령이 이모랑 프랑은 그걸 눈치 못 챈 거 같다. 하긴, 마나 시브 능력에 관해서도 모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반응이긴 하지만 프랑도 눈치를 못 챌 줄은….
그동안 눈치 내공이 좀 쌓인 건가 했는데 나한테만 한정으로 통하는 눈치였나?
혜령이 이모는 흰 여우가 그래도 이형종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는지 섣불리 손을 뻗어 만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이형종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니까. 이렇게 데려온 내가 이상한 거고. 근데 최하위 이형종을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사람도 있다는거 같은데 세상 참....
녀석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 채 혜령이 이모의 차를 타고 그랑 블루 빌딩으로 돌아온 나는 혜령이 이모와 헤어졌다.
“마스터? 그럼 일단 애완용으로 정부와 능력자 연합에 신고 절차를 치르고 사육 허가증을 받아올 테니까 그때까진 집 밖으로 데리고 다니는 건 자제를 부탁드릴게요. 아마 월요일 오후에는 허가증이 발부 될 거라 생각해요.”
“네. 그럼 전 집에 있을 테니까 일이 생기면 전화해주세요.”
“네.”
혜령이 이모는 그대로 사무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리고 나도 집으로 향하면서 이 녀석의 체질이 변한 이유에 대해 머리를 좀 굴려봤다.
하지만 생각나는 게 없다. 어휴.
큰방에 들어가니…까, 영은이는 아침에 내가 입었던 저지 트레이닝복을 품에 안고 자고 있었다.
…왜? 어째서?
“아, 그거네요. 옷에 서하의 체취가 배어있으니까 저렇게 있으면 서하랑 같이 있는 기분이 들어요.”
“…어떻게 그걸 알아? 프랑도 저래 봤어?”
“…….”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프랑을 보니까 좀 황당하다. 아니, 그도 그럴게 언제나 나랑 같이 있으면서….
잠깐, 언제 저래 봤다는 거지? 언제나 나랑 같이 있었잖아?
…그보다 한쪽 다리만 웅크린 채 자는 영은이를 보니 슬금슬금 거시기가 반응을 하려고 한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리고 하얀색 쫄티에 회색 숏 팬츠만 입고 있으니 몸의 굴곡이…. 꿀꺽.
슬금슬금 손을 뻗어서, 가장 예민한 곳을 살살 간지럽히니 꿈틀꿈틀거리다가 잠에 취한 신음을 흘리는 모습이…. 흐흐흐.
잠시 욕망에 질뻔했지만 일단 이 흰여우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을 해봐야겠다.
거실로 다시 나와서 소파에 앉아 품에 안긴 흰 여우 자식을 내려다보니 녀석도 크고 동그란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TP를 먹이면 이 녀석은 금방 건강해질 텐데 그럼 사람을 공격하진 않을까? 프랑은 어떻게 생각해?”
“잠깐이라도 사람을 공격하려는 모습이 비치면 바로 도살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쪽을 물은 게 아닌데.
“그, 러지 말고 공격을 예방한다거나 그런 건 없어?”
“아~ 그런 거라면 이빨을 다 뽑거나 손발을 뽑….”
“잠깐잠깐! 프랑 너무 살벌해!”
손톱 발톱이 아니라 손발을 뽑아?!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을 데려왔을 때부터 프랑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조금씩 하고 있었지.
“하지만 에너지 이터의 특질은 잃어버렸다지만 이형종인걸요!”
아, 곤란하네. 프랑이 싫어하는 녀석을 억지로 데리고 있고 싶진 않은데. …근데 이 녀석, 아까부터 살짝살짝 떠는거 같다?
마치 프랑이 말할 때마다….
…….
-프랑, 이 녀석을 위협할만한 사나운 이야기 아무거나 꺼내봐.-
프랑은 내가 갑자기 입을 달싹거리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독순술로 내 입 모양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형종이니까 언제 사람을 습격할지 몰라요. 이대로 키우는 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팔다리를 자르거나 이빨을 몽땅 뽑고 혀를 잘라내거나, 아! 눈알을 파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역시, 팔다리를 자른다고 할 때 움찔하고 이빨 뽑고 혀를 자른다고 할 때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뽑는다는 말에 부르르 떨었다.
“아, 역시 이 녀석 사람 말 알아듣는다.”
“어머?”
“방금 또 움찔했어.”
녀석은 무진장 겁먹었는지 귀도 접히고 털도 추욱하고 늘어졌다.
“말귀를 알아들으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자, 이거 먹고 싶지?”
녀석의 코앞에 손가락을 가져가서 손끝에 1 TP를 뽑아냈더니 눈을 번쩍 뜨고는 혀를 내밀어서 TP를 핥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눈을 뜨는 순간 손가락을 뒤로 빼면서 녀석의 등을 잡고 누르니 버둥거리면서 키웅이우웅하고 신기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너, 사람 말 알아들을 수 있지?”
녀석의 등을 여전히 누른 채 내려다보니 녀석도 새까만 눈을 올려 날 올려다보는데 깜빡깜빡하는걸 보니 내숭 떨려는 거 같아 보인다.
그래서 손끝에 TP를 회수해버렸더니 키우웅 키잉 끼잉 하면서 앞발을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너, 자꾸 이러면 앞에 무서운 누나가 널 잡아먹어 버릴지도 몰라?”
요상하게 변하는 프랑의 얼굴은 둘째치고 흰 여우 녀석의 눈을 내려다보니 다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갸우뚱한다.
“전부다는 몰라?”
끼웅 끼르르릉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옆에서 보고 배웠나 싶다. 우선 1 TP를 손끝에 다시 뽑아내고 녀석의 뾰족하고 귀여운 주둥이 앞에 내밀었더니 잽싸게 혀를 내밀어 할짝할짝 핥더니 부르르 떤다.
공간지각으로 작은 몸 안을 보니 1 TP가 회복해서 9 TP가 된 게 보였다.
“옳지. 착하게 지내면 지금처럼 밥 줄 테니까 내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흰 녀우 아니 여우 녀석은 역시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끼우웅 이옳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곧 축 늘어졌는데, 비쩍 말라서 힘이 나질 않나 보다. 몸 안을 감지해봐도 소화 중인 음식도 안보이고.
점심때 과일 샐러드를 만들었던 게 있었지? 소스 같은 건 안 뿌리고 생과일 그대로니까 이 녀석도 먹어도 되려나?
녀석을 품에 안고 냉장고에 가서 문을 여니 흘러나오는 냉기에 살짝 눈을 뜨는 게 보인다.
랩에 씌워진 과일 샐러드 통을 꺼내고 포크를 하나 가지고 거실로 돌아와서 앉으니 녀석도 과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충 랩을 벗기고 포크에 사과 조각을 찍어서 놈의 주둥이 앞에 가져다 대주니 조그만 주둥이를 놀려 갉작갉작하고 사과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서하. 에너지 이터를 정말 키우실 거에요?”
프랑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랑 흰여우를 번갈아 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게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야. 너 사람 공격할 거야?”
이웅? 키옳.
아삭거리면서 내가 포크로 찍어서 올려주는 배를 갉아먹는 녀석은 고개를 푸르르 떨더니 다시금 배를 갉작거린다.
포크를 뒤로 물리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현실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함부로 공격하면 안 돼.”
이옹옹.
새카만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어째서? 라고 묻는 기분이 든다. 이걸 어떻게 이해시키지?
그때 프랑이 나서서 녀석의 눈을 마주하며 냉랭함이 흘러나오는 얼굴로 차분히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위험한 존재를 싫어해. 특히 동족을 공격하는 다른 종족은 죽여서 없애기도 한다. 네가 사람들을 공격하면 널 위험한 존재라고 판단하고 죽일 거다.”
프랑의 이야기를 들은 녀석은 쫑긋 솟아올라 있던 귀를 축 늘이면서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이 되었다.
“네가 위험한 존재가 되면 네 주인님인 서하에게도 좋지 못한 여론이 생길거다. 그러니까 네가 그런 존재가 되기전에, 나에게 목숨을 잃게 될거다.”
그러면서 손끝에 번개를 일으키니 흰여우 녀석은 더욱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내 품 안에 파고든다.
“그러니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지 마라. 알아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도록.”
프랑에게서 풍겨나오는 서늘함에 흰여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손을 내밀어 겁먹고 움츠러드는 흰여우 녀석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니 가만히 있던 녀석은 프랑이 손을 뗄 무렵 혀를 내밀어 프랑의 손가락을 핥았다.
굉장한데? 순식간에 길들여버렸는걸.
하지만 자기 손가락을 핥은 모습이 못 미더운지 살짝 얼굴을 찌푸린 프랑은 내 무릎 위에 앉은 녀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흐음. 어쩐지 이 녀석이 마음에 걸린다는 걸 프랑한테 어떻게 납득시킨다….
“프랑. 이렇게 하자.”
“네?”
녀석을 노려보는 걸 멈추고 내게 눈을 돌리는 프랑에게 마나 비전을 키고 내 눈을 가르켰다. 파랗게 빛나기 시작하는 내 눈을 본 프랑은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더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방법이 통하면 좋겠어요.-
-이형종이라서 이게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머리도 좋은 거 같고 사람 말도 알아들으니 효과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이래도 안되면 이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처분하는 걸로 하자. 하지만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구박하지는 말고.-
-우음. 예감이신 건가요?-
예감? 흐음…. 예감은 아니야.
-아니, 그냥 내 느낌인 거 같아.-
-알았어요.-
우리가 독순술로 이야기를 나눌 때 녀석의 상태를 공간 지각으로 유심히 살펴봤는데 그저 내가 포크로 찍어주는 과일을 열심히 먹을 뿐 딱히 우리에게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포크를 살살 들어 올려 녀석의 고개가 올라오도록 하다가 녀석과 눈을 마주치니 내 눈을 보고 흠칫! 하고 굳어버렸다.
…가 내 눈을 빤히 보더니 다시 과일로 시선을 돌리고는 앞발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일단 반응은 보였으니 그대로 놔둬 봐야지.
다시 포크를 내려 녀석이 먹기 편하게 주둥이 앞으로 밀어주니 아삭아삭 잘도 먹는다.
프랑을 올려다보니 녀석이 흠칫하고 굳었던 걸 프랑도 확인한 거 같다. 프랑이랑 마주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감을 포크로 찍어 녀석의 주둥이 앞으로 가져다주며 생각했다.
영은이가 일어나면 이 녀석에 관해서 알려주고, 화연이가 돌아오면 마탄에 관해서도 알려줘야겠다.
두 손으로 다 안 잡히는 커다란 사발 안에 있던 과일을 전부 먹어치운 녀석은 배가 통통하다 못해 터질 만큼 불러와서는 내 다리 사이에서 다시 잠들어버렸다.
이 녀석의 위상력은 다시 9로 늘어났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분석 능력이 사라진 건 정말 아쉬운걸~. 그게 있었으면 이 녀석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연합의 연구실에 있을 때보다는 확실히 편해 보이는 얼굴이네요.”
“그렇지?”
프랑은 녀석의 서너 배는 될 법한 커다란 쿠션을 가져와서 내 옆에 놓고 에너지 이터를 들어 올려 쿠션 위로 옮겼다.
설마 질투 하는 건가?
쿠션 위에 녀석을 옮긴 프랑은 그러고서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앉았는데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진짜 질투 한 거야?!
“…프랑, 짐승한테 질투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네넷?!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지만 표정이나 허둥거림은 정곡을 찔린 사람 같은걸?
손을 뻗어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잠든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니 가죽 너머로 뼈만 가득 느껴졌다. 우선 이 녀석을 다시 살찌워야겠군.
태블릿을 가져와서 숙제를 하고 있으려니 영은이는 오후 4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늘씬하고 쭉쭉빵빵한 몸을 얇은 속옷 같은 쫄티와 숏팬츠로 가린 채 하품을 하면서 나온 영은이는 곧장 내게 다가와 품에 안겨들며 콧소리를 냈다.
“아응~ 그동안 쌓인 피로가 다 풀린 느낌이야.”
“잘 잤어?”
“으흥. …근데 얘는 뭐니?”
브래지어조차 안 하고 얇은 쫄티에 숏팬츠만 입어서 그런지 품에 안긴 영은이의 육체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덕분에 조금 흥분해버렸지만, 곧 시선을 돌려서 흰 여우를 보며 말했다.
“4월에 잡았던 에너지 이터야. 정확하게는 에너지 이터였던 녀석이지만.”
“이 녀석이 그 녀석이었구나?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게다가 가죽만 남았네?”
영은이는 손을 뻗어서 아직도 잠들어있는 흰 여우의 도드라진 등뼈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보더니 살짝 눈을 찌푸렸다.
“으음. 어쩐지 데려와야 할 거 같아서 그랬는데, 실수 한 걸까?”
그러면서 흰 여우가 내 TP를 먹고 에너지 이터의 특질을 잃어버린 거랑 녀석이 매일매일 위상력이 줄어들어서 곧 죽을 판이었다는 거, 혜령이 이모랑 능력자 연합 연구소에 가서 이 녀석을 데려온 걸 이야기해줬다.
“흐음…. 사람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지? 일부러 언어를 가르친 것도 아닐 텐데 연구원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말을 깨칠 정도라면 머리도 굉장히 뛰어나다는 이야기네?”
영은이 말대로다.
4월 중순 때부터 7월 초인 지금까지 고작 2달 좀 넘는 시간에 사람의 말을 대충 알아들을 정도로 학습했다면 어지간히 지능이 높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서하는 이 여우를 데리고 어떻게 할 셈?”
“딱히 어쩌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 건 아니야. 그냥…. 죽어가니까?”
“우리 서하도 어지간히 충동적이구나? 데려온 건 데려온 거구, 이것도 이형종인 만큼 안전 대책을 세워둬야겠네.”
“어떤 대책?”
이형종의 힘을 억제하는 그런 수단 같은 게 있나?
영은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더니 인증기를 띄워서 개 목줄 하나를 보여줬다. 목줄은 위상석이 쓰이는 일종의 구속구였는데 목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x자로 몸통과 앞다리의 윗부분을 감는 형식이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최하위 이형종의 행동을 구속할 때 쓸 수 있다고 하며 신호를 보내면 순간 경화가 되어서 앞 다리가 몸통에 달라붙어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고 나와 있었다.
이건….
“전에 영은과 화연이 입었던 타이즈 아머랑 비슷한 건가요?”
내가 물어보려 한걸 프랑이 먼저 말해버렸다. 영은이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딩동댕~! 폴 딕트의 갑옷에 힌트를 얻어 제작한 구속구 겸 보호구랄까? 위상력 운용 기술 대신 목줄에 끼워 넣은 위상석에 에너지를 받아서 순간 경화시켜버리는 거야. 테스트해봤는데 중하위까지는 억제가 가능하다구 해.”
그렇구나.
“중위나 중상위는 안돼?”
“그것들부터는 진짜 괴수들이니까 테스트는 할 수도 없고, 그 정도 등급은 애완용으로 키우게 허락도 안 해주지?”
“그런가. 그럼 이거 하나 사서 채워두면 되겠다. 어디 보자 가격이…. 100억?! 비싸!!”
“집에 하나 있으니까 주한이 더러 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네.”
근데 영은이는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지 내 품에서 떨어지며 어딘가로 전화하더니, 어딘가가 아니고 집사 할아버지구나. 곧 개 목줄에 위상석 하나를 끼워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막 부려먹는 나이 먹은 처녀라니, 버릇없어 보여.”
“으응?!”
내 옆에 앉아서 몸을 기대오는 영은이는 자기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고, 나이 많은 할머니라서 싫냐고 자꾸 칭얼거리길래 손을 돌려 가슴을 콱 움켜쥐면서 귀에 속삭여줬다.
“싫었다면 밤새도록 괴롭히지도 않았지?”
얇은 쫄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푸딩 같은 맨 가슴을 주물럭거리니 금방 얼굴이 빨개지면서 달뜬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거칠게 만져줘도 막 흥분하다니, 내 연인들은 전부다 변태들인 거 같다.
“서하도 변태잖아요!”
“맞아. 왕 변태!”
큭!
테라스로 나가서 통나무를 통째로 의자처럼 가공해놓은 벤치에 앉아 있으니 시야 전체가 하늘만 보여서 무척이나 상쾌했다.
상쾌한 건 상쾌한 거고 괘씸한 두 연인을 양옆에 끼고 하루종일 만져도 질리지 않을 거 같은 가슴을 주무르고 젖꼭지를 희롱하고 있으려니 야외플레이 같아서 조금 설렌다.
생활동의 내 집 위치는 중앙의 사무동에 가려져 사업지원 두 개 동에서는 테라스가 안 보인다. 사무동도 39층에서는 내 집 내부가 보이지도 않고 40층은 내 사무실이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 할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쓰레기 같은 파파라치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서 영은이도 여길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며 집 안에서는 편한 복장으로 활보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집사 할아버지가 치즈색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오는 게 감지된다.
곧 그랑 블루 빌딩 입구에 멈춰 설 거 같아서 프랑에게 개 목줄을 받아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날아올라서 1층으로 내려간다.
“날아다니면 기분 좋겠다~. 나도 날아보고 싶어.”
“뛰어내리면 잠시동안 활강할 수 있지 않아?”
“그건 추락이잖아! 아무리 나라도 이만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다치…진 않으려나? 이제 B 클래스니까.”
내 말에 잠시 발끈한 표정을 지은 영은이는 곧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번 뛰어내려 볼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참아.”
“조금 다쳐도 우리 자기가 회복시켜줄 거잖아?”
어? 자기?
노골적인 호칭에 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영은이는 생글거리며 내 반응을 보다가 자기도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버렸다.
“그, 그런 반응을 보이면 부끄럽잖아!”
“그럼 어떤 반응을 원한 건데?”
“…장난 치지 말라구 내 몸을 주물럭거린다거나?”
…부끄러움에 대한 핀트가 조금 어긋나있는 거 같은데.
뭐 만져주길 원하는 거 같아서 영은이의 팬티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희롱하면서 노닥거리고 있으려니 프랑이 집사 할아버지한테 상자 하나를 건네받고 꾸벅 인사한 다음 날아왔다.
근데 속도가 평소보다 느린 거 같아서 상자를 받아주는데 무게가 조금 나가는 거 같다. 대충 5kg 정도인가?
“아휴. 무거워서 날아오느라 혼났네요.”
“응? 그거 3kg 정도밖에 안 될 텐데?”
박스 무게가 2kg이야?
“몸이 생겼지만, 물리력은 얼마 안 돼.”
“그럼 들 수 있는 한계가 10kg 정도 되니?”
“순간적이라면 30kg까지 될 것 같지만…. 지속력을 생각하면 6~7kg 정도일 거 같아.”
프랑이랑 영은이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신기한 재질의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서 새카만 목줄과 목줄에 달린 6가닥의 끈이 놓여있었다.
직접 들어보니 영은이 말대로 3kg 정도 되는 거 같다.
“이걸 끼고 저 녀석이 움직일 수 있을까?”
영은이랑 이야기를 나누던 프랑이 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목줄을 만져본다.
“이 목줄이 3kg이면 지금 에너지 이터 몸무게의 3배가 넘으니까 힘들지 않을까요?”
“흐음~? 하지만 저건 이형종이잖아. 지금은 뼈만 남아서 힘들지도 모르는데 살이 찌면 이 정도는 가뿐하지 않을까나?”
“영은이 말대로야. 저 녀석은 이형종이니까…. 저 녀석도 TP를 먹여서 진화 시켜야 하나?”
하루에 1 TP씩 줄어든다 치면 매일매일 1 TP씩 먹이는 걸로 현상 유지는 되겠지만 어쩐지 진화시켜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내 생각을 들은 프랑과 영은이는 의견이 나눠져버렸다.
“진화한다고 해도 우리라면 중위 이형종까지는 쉽게 잡을 수 있잖아.”
“프랑 말도 맞지만 진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외국에서는 중하위 이형종이 느닷없이 나타나면 큰 난리가 난다구?”
“그건 우리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어. 영은도 화연도 B 클래스에 나도 벼락을 쓰구, 서하는 말하면 입만 아프니까.”
“그건 그런데…. 안전을 생각해보면 당분간 TP를 주지 않아도 적당히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만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옆에 두고 저 여우의 특성을 파악한 뒤라도 늦지 않을 텐데.”
“하지만 서하의 마나 비전을 정통으로 봐버렸잖아? 사람들을, 생명체를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고 주의까지 줬으니까 막 날뛰지는 않을 거야.”
으음. 이쯤에 내가 나서야겠다. 계속 의견이 엇갈리면 사이가 나빠질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말하려 하는 뜻은 알겠어. 영은이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해. 그건 윗사람으로 생각해둬야 할 당연한 자세니까.”
내 생각이 맞았는지 영은이는 내 말에 활짝 웃는다. 프랑도 그 점은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기왕 데려온 거, 좀 쓸만하게 만들자는 생각인 거 같다.
“일단 잠시 시간을 두고 지켜본 다음에 저 녀석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서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하자. 아무래도 변화한 특질이 어떤 성향을 띄게 되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프랑도 이어지는 내 말에 납득한거 같다.
“아무튼 영은이도 너무 걱정이 과해. 처음 잡힌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했잖아? 그 점도 생각해둬.”
“응.”
그리고 살짝 검은 목줄을 내려다보는데, 이 정도면…. 사람도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내 표정에만 눈치를 발휘하는 프랑과 원래 눈치 귀신인 영은이는 내 손에 들린 개목걸이와 내 표정을 보더니 눈빛이 반짝한다.
“…뭘 기대하는 거야? 안 해!”
“치.” “에이….”
살짝 혀를 차고 실망하는 두 연인을 보니 살짝 어이가 없어지려 한다. 어째 점점 취향이 마조같아지는데 왜 저러냐 진짜.
난 평범한 게 좋은데.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