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6 한달 간의 이야기. =========================================================================
수업을 마치고 얼마 전에 들렀던 보석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청담동으로 이동하려니 프랑은 평범한 또래 여자아이처럼 우리 학교 하복으로 모습을 바꾸고 머리카락은 줄이고 커다란 흰색 빵모자와 검은색 큰 뿔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남자들의 미녀 추적능력은 얕볼 수 없는지 지나가면서 남자들이 프랑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그래도 저번이랑은 다르게 소란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누나한테 선물할 장신구를 사러 별생각 없이 청담동 명품거리에서 내렸을 때 사람들이 일제히 프랑을 보더니, 프랑 옆에 서 있는 날 확인하는 순간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라고.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고 날 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옆 사람들이랑 웅성거리는데 심상치 않은 모습에 골목길로 숨어서 프랑한테 가방을 주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인상을 바꿨다. 그리고 프랑을 하늘로 올려보내고 천천히 골목을 걸어 나오니 그 직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라.
수십 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에 기겁할뻔했지만, 다들 날 힐끔 보더니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골목 안으로 계속 달려갔다.
“응. 내 얼굴은 그냥 평범하니까 머리 모양만 좀 바껴도 못 알아보는 거겠지? 그러니까 프랑만 모습을 적당히 숨기면 다니는 덴 불편하지 않겠다.”
어째 내 옆에는 무진장 아름다운 금발 여신이 따라다닌다는 식으로 소문이 난 거 같다. 그러니까 내 얼굴로 블루 지니어스를 분간하는 게 아니라 프랑의 모습으로 날 알아보는 거지.
“사람들은 바보예요. 눈앞에 서하가 있는데도 못알아보구….”
프랑은 그게 맘에 안 들었는지 입술을 삐죽이며 궁시렁거렸다.
이번에는 여유롭게 보석점으로 들어가니 저번에 왔을 때 본 매장 담당 여성 매니저와 여직원 셋이 판매대 앞에 서 있다가 들어서는 날 보더니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한다.
과연 거대 유명 보석 브랜드는 뭔가 다른지 소설에서처럼 학생이나 어린애들이 들어오면 손님취급도 안 하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고 철저하게 접객서비스를 교육받은 모습들이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시나요?”
“안녕하세요. 2주 전에 탄생석 목걸이 3개 주문하고 갔었는데요.”
“아! 그분이셨군요.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문하신 상품을 확인하겠습니다.”
알아보지 못해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히며 사과한 매니저는 하나의 쇼케이스를 내밀어 보였는데 속에는 내가 봐도 아름답게 세공된 탄생석과 탄생석을 감싸는 백금 목걸이 줄이 세 개의 작고 예쁜 케이스 안에 넣어져 있었다.
“마티네 타입의 4월과 7월, 프린세스 타입의 11월의 탄생석 목걸이입니다.”
누나의 목걸이를 사면서 설명을 들었는데 타입은 목줄의 길이에 따라 나뉜다든가?
쇄골 위쪽까지 살짝 내려오는 게 마티네 타입이고 프린세스는 정장이나 블라우스 같은걸 자주 입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마티네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는 타입이었다.
4월은 화연이, 7월은 영은이, 11월은 프랑이었는데 각자에게 느끼는 분위기가 보석과 딱 맞아떨어져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참고로 울 누나는 가넷으로 초커 타입을 사줬다. 프린세스 타입을 사 줄랬다가 가슴도 없는데 가슴에 시선 집중 시키면 미안하잖아.
초커타입은 마티네보다 짧은 목줄이라 예쁜 목선을 가진 사람에게 어울린대서 골랐지.
직접 주문제작이라 그런지, 평범한 나였다면 1년 동안 용돈을 모아도 1개도 못 살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계산을 위해서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플래티넘 카드를 꺼냈더니 이번에도 직원들의 눈이 조금 커다래지는 게 보인다.
매니저는 평범한 모습인데 세 명의 점원은 플래티넘 카드를 가지고 비싼 목걸이를 세 개나 사 가는 모습에 궁금증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날 힐끔거리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11월의 탄생석 목걸이는 지금 꺼내서, 프랑의 목에 직접 걸어주기로 했다.
“프랑. 이리와.”
안경 너머로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버린 프랑은 무척이나 부끄럽고 기쁜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나랑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길래, 예쁜 턱을 잡아 살짝 올리고 목걸이를 프랑의 가늘고 예쁜 목에 걸어주니 햇빛을 받아 노란빛을 뿌리는 토파즈가 하얀 피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백금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더 예쁘겠는걸?
매니저는 메이크업 스탠드 거울을 가져와 프랑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볼 수 있게 위치를 조정해준다.
프랑의 새하얀 쇄골에서 약간 더 흘러내린 탄생석 목걸이가 무척 마음에 든 얼굴이다.
그런데 매니저의 직업 정신이 나타나 있던 얼굴은 살짝 균열이 가고 있었고 직원들도 두 눈을 부릅뜬 채 프랑을 보고 있다.
흐흐흐. 같은 여자가 봐도 프랑의 외모는 좀 사기지?
가죽가방에 목걸이를 챙겨 넣고 보석점을 나가는데, 나가기도 전에 점원들이 입을 열고 속닥이는 게 들린다.
“혹시 진짜 블루 지니어스?! 그치? 맞지?!”
“선배선배! 진짜, 진짜에요! 블루 지니어스 옆에는 금발의 미소녀가 있다고 했…!!”
…날 알아본 거였어?
그 순간 프랑이 빵모자를 살짝 들었는데 순간 백금색 머리카락이 빵모자 아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프랑은 찰랑거리면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백금발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4명의 매장 직원을 향해 돌아보며 빙긋 웃어주고 나와 함께 매장을 나섰다.
“…놀리면 못써.”
“놀린 거 아닌걸요. 서하를 알아본 거 같아서 확신을 줬을 뿐이에요.”
그러면서 빙글거리면서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타임리버 빌딩에 도착해서 화연이의 집무실로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화연이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와 프랑을 보며 어서 오라고 입을 열었다.
교복을 입고 있던 프랑은 언제나처럼 끈 원피스로 모습을 바꾸고 화연이의 앞으로 날아가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이리저리 기웃기웃거리기 시작했다
“…?”
화연이는 프랑이 왜 이러는 건가 하는 눈으로 프랑을 보다가, 시선이 프랑의 목에 닿는 순간 움직임이 멈췄다.
“…!”
“서하가 선물해준 거랍니다~? 우후훗.”
프랑의 말을 들은 화연이는 곧 부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날 바라보는데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온다.
내 손에 들린 잘 포장된 내 손보다 조금 더 긴 사각 상자를 보는 화연이의 눈은 기대감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자. 선물이야.”
뭔가 멋진 말을 건네고 싶어서 머릿속을 뒤져봤더니, 책에서 본 "널 사랑하는 내 마음을 담았어." 라던가, "이 안에 네 심장을 떨리게 만들 아름다운 빛이 숨어있어." 같은 몇 가지 멘트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려니까 말문이 막혀버려서 그냥 멋대가리없이 화연이에게 넘겨줬지만 화연이는 이마저도 떨린다는 표정으로 두 손으로 상자를 받더니 눈을 감으면서 가슴에 꼬옥 안았다.
“고…맙다.”
“한번 열어봐.”
화연이의 손을 잡고 소파로 이동해서 앉으니 화연이도 내 옆에 앉으면서 상자를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기기 시작한다.
그냥 뜯으면 되지 저렇게 찢어질까 봐 뜯어질까 봐 세심하게 포장을 푸는 이유는 뭐야?
이해가 안 가서 화연이의 앞에 둥둥 떠 있는 프랑을 보니 프랑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삐죽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조심스레 포장끈을 풀고 곱게 접힌 포장지를 벗기니 은색으로 빛나는 반투명 케이스가 햇빛을 반사하며 빛을 뿌리고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목걸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
잠시 감탄사를 흘린 화연이는 쥐면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케이스를 열더니 그 안에 중첩된 하트모양으로 놓인 목걸이 줄과, 케이스 중앙에 고정된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모습에, 이대로 두면 해가 질 때까지 바라보겠다 싶어서 화연이의 뺨을 콕 찔렀다.
“아?!”
“화연이 생일이 4월이잖아. 그때 못 챙겨준 생일선물을 겸해서 주는 거야. 맘에 들어?”
“으응. 마음에 든다.”
대답이랑은 다르게 정신없이 목걸이를 바라보고만 있고, 목에 걸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하는 수 없이 화연이의 손에서 목걸이 케이스를 뺏었다.
“아?!”
손가락으로 뺨을 찔렀을 때랑 똑같은 반응이네. 나는 케이스에서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걸어줄게. 이리 와봐.”
“으응….”
수줍어하는 표정이, 살짝 늘어지는 칠흑같이 새카만 눈썹과 은은하게 떨리는 검은색 눈동자가 무척이나 예쁘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연이를 바라봤다.
화연이는 내가 목걸이를 채워주기 쉽게 턱을 살짝 들어 올렸는데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목이 드러난다.
정장을 입고 있는 화연이의 셔츠 윗단추 3개를 풀고 목걸이를 걸어주니 앙가슴이 드러나며 쇄골 아래로 살짝 늘어진 목걸이와 다이아몬드의 탄생석이 화연이의 앙가슴이 시작되는 곳까지 내려간 모습이 매력적이다.
화연이는 내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할 땐 움찔해버렸지만 3개만 풀고 목걸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스르르 미소를 짓고 내 뺨을 양손으로 잡더니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줬다.
그 사이 프랑은 얼굴 크기만 한 손거울을 들고 와서 화연이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볼 수 있게 해줬다.
…와아.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화연이는 처음 본다.
나하고 처음만났을때는 사늘한 표정만 짓고 있었는데 점점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나 슬쩍 웃거나 찡그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었다.
그러다 요즘 들어서 웃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내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데, 지금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이 떨리네.
한참을 목걸이를 조심스레 쓰다듬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거울을 확인하던 화연이는 다시 날 끌어안으며 진한 입맞춤을 해줬다!
달콤새콤한 자두 맛을 잔뜩 즐기고 기분 좋게 웃고 있으려니 곧 진정한 화연이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셔츠 단추를 잠그고 책상에 앉아 서류를 내려다본다.
그걸 프랑이 힐끔 보더니, 프랑도 나한테 찰싹 달라붙어서 내 얼굴에 끊임없이 쪽쪽 하면서 버드 키스를 찍어댄다!
“후후. 오늘 학교는 어땠지?”
“딱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어. 화연이도 별다른 일은 없었지?”
“뭐어 그렇지. 내일 1조가 위상 세계로 들어가는 점을 제외하면 언제 나와 똑같은 하루다.”
“팀 개편한다고 했는데 개편 작업은 다 끝난 거야?”
“아니. 정식으로 개편이 끝난 건 아니고 임시로 팀을 짜서 들어가는 거야. 하지만 그 숫자가 평소의 5배 가까이 되는 대인원이 들어가는 만큼 안정성도 더 높아질 거고 그만큼 화합도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거기다 화랑의 B 클래스 부대장 네 명과 우리 쪽의 차소영, 소피아 두 사람이 예비대로 편성되서 레이드 쪽도 기대 중이야.”
“으음. 우리는 부대장이 둘뿐인 데다 C 클래스 최상급이라 조금 밀리지 않을까?”
들어보니 화랑은 부대장이 넷이랬는데. B 클래스 네 명.
“화랑은 여사님이 두 손에 꽉 쥐고 있어 우리와 트러블이 생길 여지는 극히 적다. 또 차소영과 소피아는 부대장을 맡을 만큼 뛰어난 판단력에 훌륭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화랑의 B 클래스는 다들 B 클래스 초입에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라 속성과 회복 능력자가 합세하면 오히려 밸런스가 맞아떨어져.”
그러더니 날 보며 잠시 신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스가 될 네가 그런 식으로 타임리버와 화랑의 편을 가르는 행동을 보이는 건 좋지 못해.”
“아, 미안. 주의할게. …근데 내가 보스가 된다니? 난 화연이가 보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능력 면에서도 미래를 봐도 보스의 자리에는 나보다 서하 네가 더 어울려.”
“하지만 내년이라고 해봤자 그때가 되도 난 19살이잖아. 경험도 경력도 화연이랑은 비교도 안 되고 나이도 어린 날 보스로 인정할까?”
“나이가 어린 부분에서 오는 경험 미숙과 경력은 아랫사람이 받쳐줄 수 있어. 중요한 건 능력. 자질이지.”
그러면서 화연이는 AFE, 안티 필드 에그를 꺼내면서 작동시킨다.
“외 눈 거인의 위상력은 평균 120만. 마나 시브로 모든 위상력을 흡수할 수 있는 너라면 외 눈 거인을 5번 잡으면 B 클래스가 될 테지. 거기다 A+의 자질까지 생각해본다면 네가 보스가 될 이유는 충분해.”
“하지만 그것도 외 눈 거인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 않나요? 5마리나 되는 외 눈 거인을 금방 찾을 수 있을까요? 서하에게는 여름방학 한 달 뿐이잖아요.”
“화랑이 5위에 머무를 수 있었던 건, 화랑 보스의 위상 세계가 외 눈 거인 숲을 끼고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지난 십수년간 외 눈 거인을 레이드 해왔지만, 아직도 그 숲에는 어림잡아 수백 마리의 외 눈 거인이 생태계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캠프를 짜두고 한 마리씩 풀링해서 잡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첫 번째 레이드에서 5마리를 잡고 B 클래스로 올라설지도 모르죠.”
“와…. 만약 그렇게 되면 역사상 최단시간에 B 클래스에 올라선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네?”
그럼 더 유명해지는 거 아냐?
하지만 내 말을 들은 화연이는 픽 하고 웃으면서 AFE를 종료하며 말했다.
“아쉽겠지만 그건 아니야. 역사상 가장 빠르게 B 클래스에 올라선 사람은 따로 있거든. 그 사람이 달성한 신기록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야.”
“엥? 어떻게? 얼마나 빨리 B 클래스가 됐길래 그렇게 말하는 거야?”
“1회차 14일째에 크리스탈 이터를 잡은 사람이지.”
…….
“그 사람은 단번에 442만의 위상력을 가진 B 클래스 능력자가 됐다.”
“와.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사기네.”
화연이의 말에 어처구니없어서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더니 내 말을 들은 프랑과 화연이는 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됐다.
“…우리 앞에서는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래. 재수 없다고 욕먹을 거다.”
잉….
날 야단치는듯한 두 연인의 모습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살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기록의 보유자는 중국의 화윙첸이라는 번개 속성의 능력자다. 그는 1회차에서 번개 속성의 능력을 각성하고 최하위 이형종 들을 학살하고 다니면서 시작 지점 근방을 겁 없이 탐색하고 다녔다고 했었는데 우연히 벼락이 연신 떨어지는 숲으로 들어갔다가 딱정벌레 크리스탈 이터를 만났다고 했었다.”
허어. 진짜 겁도 없네. 아니, 희귀 능력은 무척이나 강력하다고 하니까 번개 속성을 각성했으니 당연하려나?
“그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에 보자마자 겁 없이 번개를 쐈다고 했지. 하지만 한 방에 죽지 않고 바르작거리면서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고 쫓아가면서 계속 번개를 쏴서 잡았다고 했다. 덕분에 자질도 B 클래스였던 그는 바로 자신의 자질 최대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거지.”
“뭐, 여러 가지 운이 겹쳤던 거지?”
“그래.”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을 겪고 이 능력을 얻었는지 둘 다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진짜 너무해.”
나도 운이 좋아서 살아남고 능력을 얻은 거긴 하지만, 그만큼 죽을 고비도 몇 번을 넘겼단 말야. 근데도 나만 가지고 뭐라고 하다니. 흥이다.
그런데 위상 세계 일을 떠올려서 그런지 위상력이 꿈틀하고 모이면서 위상 세계의 입구를 열려고 하길래 마나 시브를 돌려 강제 해산시켰다.
하지만 주변이 약간 울렁거리는 건 막지 못했는데 프랑과 화연이는 그제서야 안색이 변하더니 내 양옆으로 다가와 앉아서 날 달래기 시작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래. 그 중국인이 무척이나 운이 좋은 상황이었지. 별다른 어려움도 없이 9일간을 생존해서 번개 속성이라는 강력한 능력을 얻은 거니까.”
“맞아요! 서하는 고난과 역경을 넘으면서 스스로 능력을 쌓으신 거잖아요? 서하는 그런 운 좋은 능력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거에요!”
“알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면 재수 없다고 욕먹는다는 거잖아? 오늘 밤은 영은이랑만 놀아야지.”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소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버리니 프랑과 화연이는 더욱 당황해진 모습으로 내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내 뺨에 키스해주고 허벅지를 쓰다듬는 등 내가 삐진 걸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프랑과 화연이는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 보며 눈빛을 나누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 고생을 알아주지 않아서 조금 토라지긴 했지만 프랑과 화연이가 날 달래면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금방 풀렸다. 뭐 내 능력이 사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당황해서 내 화를 풀어주려고 애교를 부리는 연인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서 계속 토라진 척하고 있으….
“정말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어….”
“정말 죄송해요. 서하….”
…려니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내 손만 만지작거린다. 이런 모습을 보니 화를 내기라도 하면 눈물을 쏟으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기세다.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하의 화가 풀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
“저두요!”
“좋아. 그럼 나중에 내가 말하는 거 하나 들어줘야 해?”
“음. 알았다.”
“…!”
음. 화연이는 별 의심 없이 승낙했는데 프랑은 내 말에 '큰일 났다!' 하는 표정으로 나랑 화연이를 번갈아 본다. 늦었어, 프랑!
“프랑은 말만 미안하다고 한 거구나?”
“아?! 니에요! 으으, 저도 뭐든지….”
“아냐. 싫어하는데 억지로 해달라고 하기 싫어. 그러니까 그냥….”
슬쩍 삐짐을 넘어서 [울먹]하는 얼굴을 지어 보이니 화연이는 놀란 눈으로 날 보다가 프랑을 나무라는 표정이 되고 프랑도 당황해서 황급히 내 팔에 달라붙는다.
“아이잉! 저두 서하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생각인걸요? 자아자아. 뭘 원하시나요! 무엇이든 말해보세요!”
크크크. 아주 좋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더니 프랑과 화연이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그리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서 되돌아섰다.
“무엇이든지 하나 들어준다고 했지? 약속한 거다?”
“…!”
“…휴우.”
“흐흥~. 뭘 해볼까~?”
일부러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체념한 표정의 프랑을 돌아봤다.
“시하 님이 이렇게 서하한테 많이 당한 거에요. 시하 님은 가족이니까 짓궂은 부탁은 하지 않았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서하는 변태인걸요! 이걸 빌미로 서하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부끄럽고 창피한 행위를 강요받을지도 몰라요!”
“그런….”
너무해!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실례잖아!
프랑의 이야기를 들은 화연이는 멍한 표정으로 진짜냐는 듯이 날 올려본다.
“…프랑은 기사로써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머리에 강아지 귀 머리띠를 쓰게 하고 엉덩이 구멍에 강아지 꼬리를 끼운 채로 1년 동안 생활하기 해볼까?”
“넹?!”
“난 변태잖아. 무척이나 부끄럽고 창피한 행위를 강요할 수 있는 걸?”
“으윽…!”
내 말을 들은 프랑은 자기가 한 말을 물릴 수도 없고 왜 그런 말을 해버렸을까 절망하기 시작한다.
“그걸 두고 자승자박이라고 하는 거야. 일단 더 부끄럽고 창피한 행위가 생각날 수 있으니까 프랑은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화연이는 이미 정해뒀으니까 다음에 시간 나면 부탁할게?”
“으…응. 알았다.”
화연이는 반쯤 넋이 나가버린 프랑을 힐끔 보더니 침을 꼴깍 삼킨다. 자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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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가락이 말을 안듣는 듯.... ㅠㅠ
머릿속에 이야기는 있는데 글로 나오면 뭔가;; 조금 마음에 안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