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65화 (165/517)

00165  한달 간의 이야기.  =========================================================================

저장장치의 내용을 확인한 다음 흘린 땀을 샤워실에서 말끔하게 씻어내고 나오니 화연이와 영은이가 대련을 하고 있었다.

퍼퍼퍽 퍼억 뻑!

“팔이 느립니다. 서하를 깔아뭉갤 땐 허리가 요분질 치더니 지금은 왜 통나무가 된 겁니까. 다리는 놔뒀다가 국 끓여 드실 셈입니까. 그러다 다리를 맞으면 자세가 무너지지 않습니까. 머리가 허점투성입니다. 또 아랫배에 얻어맞고 하혈하실 생각입니까.”

무시무시한 지적과 함께 영은이를 가차 없이 두드려 패는 모습을 보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나한테는 적당히 안마할 때보다 약간 더 센 힘으로 날 두드리는데, 영은이를 상대할 때는 손에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가혹하게 패대기치는 걸 보니 영은이가 조금 안쓰러워진다.

“서하? 어딜 보세요?”

히익! 순간 마나 모드 - 가속이 발동되면서 내 뒤통수로 단검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낼 수 있었다!

“주, 죽일 셈이야?!”

“어마. 전 물리력이 거의 없는걸요? 서하의 마나 모드 상태일 때는 찔려도 바늘에 찔린 상처밖에 안 나잖아요.”

저 단검은, 40cm짜리 날이 달린 거라 단검이랄지 숏소드랄지…. 단검 맞겠지? 영은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해서 날은 거의 없고 끝도 뭉툭하게 만든 300g짜리 뼈 단검이었다.

나랑 연습하라고 만들어준 건데, 아니 그보다!!

“기분이란게 있잖아! 딴 데 보고 있는데 뒤통수에 단검이 날라오면 기겁 안 할 사람이 어딨어?!”

“서하는 공간 지각도 있잖아요.”

“그래도…!”

“문답 무용!”

히이익! 나이프 파이팅 진짜 싫어어어어어!!

본격적으로 프랑과 마주하면서 공간 지각을 끄고 나도 딱딱한 나무 단검을 들고 프랑을 상대하는데, 눈앞을 가르고 지나가거나 내 가슴 아래쪽이나 시야 밖에서 슉슉하고 들어오는 뼈 단검을 볼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마나 모드 - 가속을 켰다 껐다 하니까 당장에 프랑의 호통이 터져 나온다!

“가속 하지 마세요! 훈련이 안 되잖아요!”

“전문가가 비전문가한테 그런 걸 요구하지 마!”

가속이 켜지는 건 본능 단위의 레벨이란 말야!! 그러면서도 새하얀 뼈 단검이 내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고 가버린다! 저건 언제 들어왔다 나간 거야?

달려들면 프랑은 잽싸게 스탭을 밟으면서 단검을 대각선 왼쪽 위로 올렸다가 내 시야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르고 내려오는데 기가 찬다! 아무리 공간 지각을 멈추고 있다지만 이건 심하잖아!

처음에는 프랑의 요구에 따라 공간 지각을 막고 가속도 막아버리고 마나 모드만 켠 채로 대련을 벌였는데 1분 동안 100번은 넘게 찔렸었다. 어디서 어떻게 찔린 지도 모르겠고 내 등 뒤를 잡으면서 등이나 옆구리를 마구마구 찌르는데….

아니, 마나모드라서 신체 강화 3배인데도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 프랑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게 말이 되나?!

“그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반사신경과 몸놀림의 문제랍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예측하면서 시야 밖으로 돌아가는, 기사단에서 내려오는 상급 기술인 풋 무빙워크에요.”

처음에는 단검 수련이 목적이었을 텐데 어느샌가 나는 프랑을 쫓고 프랑은 도망가면서 단검 끝으로 내 몸을 콕콕 찌르며 까르르 웃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때때로 내가 도망가고 프랑이 쫓아오면서 단검으로 찌르기도 한다!

문제는 마나 모드 가속을 켜고 도망가면, 그땐 프랑도 날아오면서 공중에서 콕콕 찌른다는 거다!

“아 진짜!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단검으로 찌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바람 속성 능력자가 단검을 쓸 수도 있잖아요?”

“차라리 단검을 바람으로 조작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그렇게 1시간 동안 프랑은 열심히 날 쫓아다니면서 피해 보라고 약 올리고 난 공간 지각과 마나 모드로 열심히 피해 다니는 게 훈련이다.

“…나도 서하랑 놀구 싶은데.”

도망다니다가 영은이의 중얼거림이 들려와서 그쪽을 보니 영은이는 화연이한테 강제로 몸이 꼬여서 널브러져 있었다.

왼쪽 다리는 머리 뒤로 돌아가고 왼팔은 오른쪽 다리 밑으로 돌아가고 오른쪽 다리는 겨드랑이 아래 등 뒤로 돌아가고 오른팔은 왼쪽 다리 안쪽으로 끼인 모습이 되어서 화연이의 엉덩이 아래에 깔려있는 모습을 보니 내쪽을 신경쓸때가 아닌거 같은데!

“노는 건 밤에 해도 되지 않습니까.”

“얘는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밤에 하는 건 놀이가 아니잖아! 살앙을 나누는 행위지!”

“…….”

“아야야야야야!! 하, 항복! 항복!”

저렇게 꽈배기처럼 꼬인 자세로 화연이의 말에 톡 쏘아주니 화연이는 당장에 주먹을 내려 허리뼈를 지긋이 압박한다.

“허, 리뼈 부러져어어어어!!”

“아악! 그만 찔러!!”

넓은 수련장에는 오직 나와 영은이의 비명만이 울려 퍼진다…!

“흐으으으으.”

누구에게는 힘들고 누구에게는 즐거운 훈련시간이 끝나고 저녁 식사시간이 되니 집사 할아버지가 우릴 부르러 내려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제야 프랑은 날 찌르는 걸 멈췄고 화연이도 엉덩이로 깔아뭉개던 영은이의 등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이 엉켜서 낑낑거리는 영은이의 엉덩이를 거세게 걷어차 버리니 두 팔과 다리가 풀리면서 철푸덕하고 엎어진다.

“얼른 땀이나 씻으시죠.”

“아흑! 지,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좀 상냥하게 대해주렴!”

“대련 중의 상냥함은 독입니다.”

그러면서 화연이는 발로 영은이의 다리 사이를 쿡 찌르고 샤워실로 가버리고 영은이도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따라 들어갔다.

“으으. 또 땀이 잔뜩…. 할 거면 씻기 전에 하란 말야.”

“후후. 다음부터는 그럴게요.”

“어휴…. 난 나이프는 그냥 위상 세계에서 다목적용으로 쓰려고 한거지 전투에 쓰려고 한 건 아닌데.”

물론 전혀 쓸데없는 짓은 아니라서, 한 달 동안 수만 번은 찔리고 옆에서 영은이가 수천 번 나동그라지는 걸 보니 사람이 어떻게 공격해올지, 공격해오면 어떻게 피할지 조금은 감이 잡히는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아까 샤워했는데 갈아입은 트레이닝 복에 속옷까지 또 땀에 젖어서 축축해지는 건 안 좋아!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프랑은 샤워실 쪽을 한번 보더니 내 품에 안겨서 방긋 웃었다. 그리고 투덜거리지 말라는 듯이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더니 연이어 내 얼굴의 이곳저곳을 살짝살짝 끊임없이 키스해준다.

…방실방실 웃고 있는 프랑의 얼굴을 보니 화도 못 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어버렸다.

다 함께 씻고 나와서 요리사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놓은 산나물 비빔밥에 고추장을 잔뜩 올리고 고소한 향이 나는 들깨 기름을 잔뜩 뿌려서 열심히 비비니 새빨갛고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이 완성되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입에 퍼넣으면서 고소한 들깨 기름과 고추장의 매운맛과 아삭아삭 씹히는 나물의 식감에 행복해하고 있으려니 프랑이나 화연이, 영은이는 밥은 안 먹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머거?”

“우리 서하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네?”

빙그레 웃다가 다들 고추장을 한 숟가락씩 퍼고 나처럼 들깨 기름을 가득 뿌리고서 열심히 비빈다.

반찬으로 삼으라고 요리사 아주머니가 잔뜩 올려놓은 갓김치와 고기산적을 열심히 집어 먹고 비빔밥도 입안 가득 채워서 우물우물 씹고 있으려니 비빔밥을 한 입 먹은 프랑이 입을 오물거리다가 삼키고 말을 꺼냈다.

“검증단의 검증이 끝난지도 한 달이 다 돼가는데 다음 위상 세계는 언제쯤 입장하는 건가요?”

“으음음. 평범한 상위 이형종을 잡기보다는 고위 이형종을 빨리 잡아서 우리 서하가 B 클래스에 올라가는 게 먼저잖아? 돈이야 우리 서하가 조금만 뛰면 금방금방 벌리는 거니까, 고위 이형종을 얼마나 안전하고 빠르게 잡느냐에 초점을 집중해야지.”

“타임리버와 화랑의 합작은 7월 초부터 시작, 한번 입장하면 5일간 머무르며 탐색 및 토벌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난 한 달간 복귀한 남은 팀들의 정산 절차가 마무리되는 단계이고, 두 레이드 팀의 사무업무는 이혜령 부장과 시하의 노력으로 이미 합병처리절차가 대부분 끝난 상태죠. 남은 것은 능력자들의 팀 개편과 손발을 맞춰보는 정도일까요.”

“아아. 그럼 타임리버와 화랑이 통합되는 건 완전히 결정 난 건가요?”

“후후. 우리 서하가 뛰어놀기에는, 타임리버는 조금 좁지 않니? 그래서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도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드는 레이드 팀을 만들어보자! 해서 통합하기로 했단다! 각 팀의 보스와 간부진들도 더욱 뛰어난 레이드 팀에 소속된다는데 찬성해서 열심히 통합을 추진 중이야.”

나는 연신 비빔밥을 입에 집어넣으며 연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내 모습을 미소 지으며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표는, 서하가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통합 준비를 끝내놓고 고위 이형종 레이드를 시작하는 거야. 처음은 익숙한 화랑의 주요 목표인 외 눈 거인이 되겠지?”

외 눈 거인이라면 화연이가 B 클래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잡았다던 그거 말이지? 힐끔 하고 프랑을 바라보니 마침 프랑도 날 보고 있어서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외눈 거인이라면 평균 위상력이 110만에서 150만사이니까, 이론상으로는 네…. 얼마 안 걸리겠군요.”

웅? 화연이는 말하다 말고 멈췄다가 말을 바꿨다. 혹시 도청 장치라도 있는 건가? 갓김치랑 고기 산적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돌아보지만, 딱히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데?

“후후. 한 달 뒤란 말이죠? 기대 돼서 가슴이 설레네요!”

프랑의 흥분된 눈빛을 끝으로 화연과 영은이도 식사에 집중했다. 나도 커다란 대접에 절반 정도 남은 비빔밥을 마구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영은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몸단장을 하고 출근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B 클래스에 오른 영향인지 예전보다 부쩍 힘이 넘치는 모습에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인다.

“오늘부터는 바빠서 우리 서하를 볼 시간이 줄어들 거 같아 슬퍼~.”

“바쁜 일이 끝나면 또 극락을 맛보여줄게. 힘내.”

“…으응.”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순백색의 치마 정장을 입고 출근할 준비를 마친 영은이는 날 품에 끌어안고 칭얼거렸다.

나는 살짝 음흉하게 웃으며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스타킹 위로 그녀의 가랑이를 콕콕 찌르니 얼굴을 붉힌 채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다가 황급히 저택을 나서버렸다.

“내 고맙다는 말에 표정이 무너진 뒤로 부쩍 부끄럼이 늘어난 거 같아.”

“호감도가 100 / 100이 된 거지요!”

호감도라니….

얼마 전에 강현우 지부장에게 뇌물이라고 최신형 인증기와 최신형 휴대폰인 블랙홀 엣지ss4를 선물로 받았었다.

최신형 인증기라고 해봤자 인터넷과 사진과 영상 촬영이랑 녹음 기능이 추가된 거 뿐이라…. 뭐 수십억짜리라서 주니까 고맙게 받았지만.

휴대폰은 딱히 필요가 없어서 프랑에게 선물로 줬더니 그 뒤로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계속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가끔 게임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점점 게임용어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청순한 공주님이 게임 업계 용어를 막 쓰는 게 좀 위화감이…. 부녀자가 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요리사 아줌마가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 중인데 저택 안으로 누나의 서버 밴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 누나가 왜 온 거지?”

“내가 불렀다.”

“어?”

임시 차고에 차를 세워놓은 누나는 종종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와서 집사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식당으로 들어왔다.

“서하야~!”

“누나? 학교는 어쩌고….”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화요일 첫 강의가 8시 30분이었던 걸로 아는데?

“너 데리러 왔지? 화연이랑 프랑 씨도 안녕?”

“아침은 먹었어?”

누나는 프랑이랑 화연이한테도 손을 흔들어 주고 내 옆에 앉았다. 그래서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누나한테 건네주니 방긋 웃으면서 나한테 샌드위치를 건네받는다.

“앗, 쌩큐. 아침은 대충 먹고 나왔어. 글구 화연이가 그러는데 너 매일 아침 택시를 타고 학교 간다며? 앞으루 누나가 아침마다 와서 데려다줄 테니까 택시는 그만 타구 다녀. 학교에 매일 택시로 등교하는 거 보기 안 좋아.”

…거 참. 누나는 내가 집어서 건네주는 샌드위치를 받아서 먹는데, 나 때문에 학교 가는 길을 2배나 늘렸다는 거야?

“글구 누난 방학해서 시간도 남으니까!”

어? 아아, 글구보니 벌써 방학했겠구나.

화연이도 커피잔을 내리면서 내 쪽을 보더니 살짝 웃는다.

“고마워.”

샌드위치 10개를 먹을 동안 누나는 화연이랑 프랑이랑 재잘재잘 거리면서 수다를 떨길래 시계를 보고 시간이 다 돼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연이에게 말했다.

“나 먼저 갈게. 오후에 봐.”

“그래. 공부 열심히 해라.”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확인하는 화연이한테 손을 흔들어주고 누나와 프랑과 함께 저택을 나오니 누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화연이가 표정이 풍부해진 거 같아. 예전의 얼음장 같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는걸?”

“그래?”

나는 조수석에 올라타고 누나도 프랑이 뒷좌석에 앉은 걸 확인한 다음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었다.

“사랑하는 여자는 하룻밤 지날 때마다 모습이 변한다더니, 얼떨떨할 정도야.”

“전부 서하 덕분이에요. 매일매일 서하를 보니 사늘함이 녹아 내린 거죠.”

프랑은 누나의 말에 살짝 웃으면서 대답하는데, 그건 프랑 너도 똑같잖아.

“프랑도 마찬가지잖아. 1회차 때는 때때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어른 같은 분위기를 풍겼었는데 요즘은 개구쟁이 같은 모습만 보이고.”

“그, 그으으…. 아우우.”

내 말에 허를 찔렸는지 프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다리를 파닥거린다. 그 모습이 무척 예쁘고 귀여웠는데 누나도 백미러로 프랑을 보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학교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누나는 날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도 성적도 안 오르는데 대충할 거야.”

“킥킥.”

5월에 테스트 결과가 나온 걸 받아봤는데 성적표가 나한테 CB거는건지 죄다 C에 가끔 B가 섞여 있었지.

“그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요…?”

프랑은 다른 녀석들 성적을 본 적이 없어서 저런 말을 하는 거다. 우리 반에서 아무리 공부를 안 하고, 체육계 진학 쪽으로 방향을 잡는 녀석들도 A는 10과목 중에 1개 2개는 받는데, 나는….

그냥 말하지 말자.

이제 7월 초인데 날씨는 한여름 날씨다. 아침 8시인데도 쨍쨍 내려 쬐는 햇빛이 증오스럽다…!

반팔 교복 위로 느껴지는 햇빛이 따갑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생각보다 선아라 스캔들이 꽤 파급력이 큰가 보다.

교실로 향하면서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죄다 선아라가, 선아라는, 에쉬반 보스가 그럴 줄은 몰랐어. 이러고 있다.

교실에 들어서면서 애들이 건네주는 인사에 손을 흔들어주며 자리에 앉으니 김창현이 뒤돌아본다.

“왔냐?”

“어. 선아라 스캔들이 꽤 크게 터졌나 본데? 애들이 죄다 그쪽 이야기야.”

우리 반 애들도 전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선아라 이야기뿐이다.

“서하 안녕? 프랑 씨 안녕하세요!”

수유리와 수유리 뒤쪽으로 한고은, 강주찬이 다가오는 모습에 다시 손을 흔들어주니 수유리는 까르르 웃으면서 흔드는 내 손을 잡고 마주 흔들어준다. 얘는 왜 이러냐.

한고은도 옆머리를 살랑 쓸어넘기더니 은근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하는 선아라 스캔들에 관해서 아는 게 있어?”

그게 목적이었냐? 한고은의 질문은 다른 애들도 궁금한 부분이었는지 내 쪽으로 우르르 다가온다.

“…같은 레이드 팀도 아닌데 그쪽 동네 보스의 사생활을 내가 알 거라 생각해? 그보다 스캔들이 어떻게 났길래 이렇게 난리들인 거야?”

“하긴 서하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어 보이긴 했어.”

“거기다 서하는 타임리버 보스랑 사귀잖아~? 에쉬반 보스가 이쁘긴 해도 타임리버 보스한테는 몇 수 딸리지~?”

몇 수? 수십 수다!

수유리의 말에 강소라는 여전히 나른한 모습으로 고양이처럼 책상에 옆으로 엎드린 채 날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자세는 몸에 안 좋은데 왜 자꾸 저러나 몰라?

“강소라 너, 그렇게 있으면 척추 다 휘어진다.”

“흥~. 이 정도로 척추가 휘어지면 난 벌써 꼽등이가 되었겠다~.”

허, 안 믿네. 입술을 삐죽이면서 흥흥거리는 강소라를 바라보며 목에 미약하게 마나 시브를 살짝 집중했다가 다시 말했다.

“휘고 있는 모습이 다 보이는데 어떻게 신경 끄냐.”

살짝 울렁거리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슬그머니 자세를 똑바로 하는 강소라.

한고은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은 강소라를 잠시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선아라가 그럴줄은 몰랐어. 20살 연하의 미성년자랑 불순 이성 교제라니!”

“야야. 그렇게 따지면 타임리버 보스도 미성년자랑 불순 이성 교제잖냐. 2살 차이지만 서하도 아직 성인이 아니라고?”

…나랑 화연이는 선아라보다 더 불순한 이성 교제일 거 같은데. 아무튼 김창현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한고은을 올려다보니 급당황해서는 손을 파닥파닥 흔들기 시작한다.

“아, 아니! 그건 아니지! 서하는…. 그런 거 아니지?”

“뭐, 양가 부모님 공인이니까 불순이라는 단어는 빼도 될걸?”

허둥거리던 한고은은 내 말에 안색이 밝아지더니 곧 으르릉거리면서 김창현을 팩! 하고 돌아본다.

“거봐! 아니라잖아!”

“어,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나한테…. 아야야! 꼬집지 마! 찌르지 마!”

한고은은 말대꾸하는 김창현이 못마땅한지 눈썹을 치켜세우며 김창현의 팔이며 옆구리, 등을 꼬집고 찌르고 비틀기 시작하고 김창현은 두 손으로 한고은의 공격을 막는다.

그런 둘의 모습에 강주찬은 실실 웃더니 "아 참." 하면서 우릴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 7월 1일에 영국 공주님이 우리 학교에 편입한다는 이야기, 들어봤어?”

“으응? 영국의 공주님이 왜 우리 학교에 와? 영국에도 명문고가 많이 있잖아.”

수유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강소라는 피식 웃더니 날 올려다보며 말한다.

“왜긴~. 우리 학교에 전 세계의 핫이슈인 유명인이 한 사람 있잖아~.”

“이야아. 그럼 영…! 국 왕실에서도 서하 저 녀석이랑 썸씽을 노린다는 말이야?”

한고은한테 쉴 새 없이 꼬집히던 김창현은 재빨리 한고은의 양 손목을 낚아채고 강소라를 향해 말하는데 두 손이 봉인 당한 한고은은 쌍심지를 켜더니 실내화로 김창현의 정강이를 쪼아대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학교 실내화는 하얀색 워커다. 저렇게 쪼이면 겁나 아프다.

“그렇겠지~? 인기인은 좋겠네~?”

“그럴 리가 있겠냐. 뭐 학교 간 교류라던가 그런 거 때문에 오는 거겠지.”

뭐, 만약이지만 진짜 나랑 썸을 타려고 그런 거라면, 영은이가 이미 나한테 말했을 거다.

강대국인 영국의 공주가 우리나라로 유학 오는 셈이 되는데 영은이한테 보고가 올라가지 않을 리가 없잖아? 뭐 정부에서 보고가 올라가진 않더라도 우리 학교 이사장이기도 한 영은이잖아. 학교 쪽에서 보고가 올라갔을 수도 있을 거야.

그랬다면 영은이도 살짝 질투심을 드러냈을 테지. 그러니까 그런 모습이 없었던 걸 보면 그런 건 아니라는 거겠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내 모습이 강소라는 재미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 그만 좀 차!”

“그럼 이 손부터 놓으란말야!”

“놓으면 또 꼬집을 꺼 아냐!”

“일단 놓고 말하시지!”

거참. 얘들은 하루에 한 번씩 부부싸움 안 하면 입안에 가시라도 돋나?

“그러니까 부부싸움은 집에 가서 하라니까?”

““부부싸움 아니야!””

내 딴지에 마치 호흡을 맞춘 듯 항의하는 둘의 모습에 다른 애들도 피식하거나 킥킥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너흰 이미 우리반 공인 부부라니까?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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