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54화 (154/517)

00154  능력 검증.  =========================================================================

대통령님이라고 적힌 명패의 천막에 돌아와서 재킷이랑 롱부츠를 벗고 에어 매트 위에 몸을 날렸다.

말은 천막이지만, 내부는 네모난 공기튜브와 똑같아서 굉장히 아늑하다.

“사람들이 왜 자꾸 나만 따 시키려고 하지?”

뒤따라 들어온 프랑을 올려다보면서 투덜거리니 프랑도 쿡쿡거리면서 드러누은 내 옆에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그 이유가 아마 TP 회복량에 있나 봐요.”

음? 그런…가?

“감정이나 신체 컨디션에 TP 회복량도 영향을 받으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1,000분이 넘어야 TP가 가득 차잖아요? 그러니 일부러 쉬라고 하는 걸 거에요.”

“하긴, TP가 바닥에서 가득 차려면 17시간은 지나야 하니까…. 그러고 보면 화연이가 4시에 일부러 돌아온 것도 그거 때문이려나?”

“그럴 거 같네요. 4시부터 쉬기 시작하면 오전 8시 40분에 TP가 가득 찰 테니까요.”

에어 매트리스 위에 누워 점점 어두워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천막 주변에 물길을 내고 빠른 속도로 부산물을 처리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나 혼자 한가한 거 같아서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런데 창고 천막에 부산물이 다 안 들어가서 천막을 하나 더 치는 게 보인다.

내일은 상위 이형종을 찾으러 다녀야겠다.

프랑의 보드라운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고 흘러내린 백금색 머리칼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으려니 부산물 정리도 거의 다 끝나가는 게 보인다.

주둔지 가운데 하늘만 가리는 대형 천막을 치고 그 아래에서 생활 보조 몇 명이 식사준비를 하는 것도 보였다.

나가서 다시 쌓인 찌꺼기를 지워야겠군.

신발을 다시 신고 밖으로 나가니 유민희 3팀장이 내 쪽으로 달려오다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달려와 나에게 입을 열었다.

“보스께서 찌꺼기 산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유민희 3팀장의 화난 표정이 많이 사라진 거 같다. 이제 내 능력이 화연이 옆에 서 있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후후. 이제 제가 화연이랑 좀 어울리나요?”

“…뭐 그 정도면 합격이네요!”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하더니 다시 어디론가 뛰어가 버리는 유민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이제 어둠이 내리고 있는 주둔지를 가로질러 찌꺼기 산으로 걸어갔다.

“흐흐. 유민희 3팀장이 인정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안 봐도 뻔하겠지?”

내 말에 프랑은 킥킥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찌꺼기 산 근처로 갔더니 생활 보조 능력자 한 명이 이형종의 잔해를 수레 차로 실어와 우르르 쏟아버린다.

“다 끝난 건가요?”

“아?! 네! 부산물 처리 끝났습니다!”

신체 강화 타입인 이 사람은 어쩐지 나와 영은이를 동일시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여주고는 잽싸게 딴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이번 검증이 끝나면 저런 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많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게 싫으신가요?”

“싫을 건 없지? 모르는 사람들 반응이야 내 알 바 아니니까.”

티티티팅 퍼퍼퍼퍽!

간단하게 마나 탄을 날려 찌꺼기들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되돌아서니 밤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

“서하?”

“어? 괜찮아.”

조금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괜찮…은데 프랑은 그렇게 안 보이나 보다.

프랑의 손에 이끌려 천막으로 돌아와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매트에 누워있으려니 비에 젖은 화연이와 영은이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하필이면 이때 비가 온다니.”

“기습적인 호우입니다. 조만간 그치겠죠.”

둘 다 빗속을 한참 돌아다녔는지 머리가 홀딱 젖어있었다. 타이즈 아머 속으로 물이 다 들어가지 않았을까?

근데 둘 다 포니 테일로 머리를 틀어올린 데다 비에 홀딱 젖어 있으니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위상력이 아니면 분간을 못 하겠어.

“인증기 영상기록 종료하렴. 빗물 좀 닦아야겠네.”

영은이는 화연이에게 손짓하더니 왼쪽 윗가슴을 두드린다. 화연이는 영은이의 말에 인증기를 종료하고 타이즈 아머의 외형을 갑옷에서 타이즈 형태로 되돌렸다. 그러자 외형이 되돌아가며 생기는 흔들림 때문에 커다란 가슴이 출렁 출렁하는 게 무척이나 보기 좋다.

가슴 고정 속옷을 입어도 저 가슴이면 별 소용없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니 화연이와 영은이는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고 타이즈 외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더니 서로의 등을 닦아주는 모습이 정말, 사이좋은 쌍둥이 자매로 보였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타이즈 아머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몸의 근육이 참…. 흐흐.

탱글탱글한 4개의 살덩어리를 보고 있으니 영은이는 물기를 다 닦은 다음 매트 위에 몸을 던져 드러누워 버렸고 화연이는 내 옆에 앉으면서 한숨을 쉬고 말했다.

“TP는 어느 정도로 회복됐지?”

어, 그러고 보니 화연이도 모르고 있겠네.

“아~! 우리 왕자님은 정말 사기였어~! 2시간 못되게 쉬면 TP가 가득 차오른다는데, 믿어지니?”

“…좀 놀랍긴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화연이는 그냥 작게 한숨만 쉬고는 계속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제거하는 모습이,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영은이는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흠…. 처음에는 탐색 능력에 한 번 놀라고, 곧이어 능력이 진화했다는데 두 번 세 번 놀랐군요. …서하를 만나고 경악한 건 7번 정도에 크게 놀란 건 10번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아유우. 그날 처음 만났을 때 그냥 다 털어놓고 서하한테 매달렸어야 했는데. 어휴. 아휴.”

한숨을 푹푹 내쉬던 영은이는 데굴데굴 구르더니 앉아있는 내 허벅지 위에 얼굴을 올리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날 올려다본다.

“그랬으면 나도 서하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즐거웠을 텐데…. 아까워~!”

정말 아까워하는 모습에서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손을 뻗어서 바닥으로 살짝 기운 영은 이의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아있으니까 그렇게 아쉬워하지는 마.”

“…으응. 그렇지?”

영은이는 순간적으로 안색이 흐려졌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지더니 내 허벅지에 뺨을 비빈다.

…그러고 보면, 영은이는 벌써 105살이지? 신체 강화 능력자가 오래 산다지만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아있을 거다. 안색이 흐려진 건 그거 때문일 테고.

“영은이는 자질의 한계에 부딪친 거야?”

“응? 응. 가끔 이형종이랑 싸우고 위상 세계에 들락거리긴 하는데 위상력이 더 안 늘어나는걸 보면 그렇겠지?”

나는 영은이의 가슴을 한번 세게 움켜쥐었다가 손을 뻗어서 영은이를 끌어안았다.

“어마?”

…이번 일이 끝나면, 누나한테는 미안하지만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해야겠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봐야겠어.

“넌 내가 꼭 B 클래스로 올려줄게. 그렇게 해서 우리끼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B 클래스에 오르면, 수명이 많이라고 할 만큼 늘어나고 젊음도 오래간다.

가능할 거야. 틀림없이 가능할 거야.

영은이는 내 말을 듣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다가 내 품을 꼭 끌어안는다. 프랑이랑 화연이도 뭔가를 깨달았는지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가 밝아진다.

“으응. 그 말만 들어도 무척이나 행복한걸?”

떨리는 목소리는 잔뜩 물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좀 더 힘을 줘서 영은이를 더욱 세게 껴안아주니 영은이도 내 품 안을 파고들며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금방 밝아진 모습으로 돌아간 영은이는 활달한 모습으로 내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피우더니 프랑과 화연이의 질투심을 마구마구 자극하기 시작했다!!

영은이는 뒤에서 잡아당기는 화연이를 힘으로 버티면서 내 품에서 안 나오려고 하고 프랑은 내 옆에 붙어서 뺨에 뽀뽀해주고 가슴을 막 부비는데….

쁘띠 수라장을 겨우 진정시켰더니 최수한이 천막 밖에서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왔다.

“어?! 그대로 나갈 거야? 안돼!!”

화연이랑 영은이는 에어 매트에서 일어나서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길래 황급히 천막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저대로 나가면 둘의 알몸을 보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사타구니의 골짜기 굴곡까지 다 드러나는데!!

…그런데 그게 날 놀리려는 거였는지 둘은 킥킥거리면서 웃더니 가방에서 검은색의 얇은 코트를 꺼내 타이즈 아머 위에 걸쳤다.

“흐흥~? 이건 갑옷인걸? 벗은 게 아닌데 울 변태 왕자님은 무슨 생각이셨을까~?”

…영은이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그래서 나도 정색하면서 영은이의 팔을 잡아당겨 거세게 끌어안은 다음 허리 뒤로 손을 뻗어 엉덩이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큰 가슴을 콱 쥐어틀었더니 움찔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 영은의 귀에 대고 프랑과 화연이도 들리게끔 나직하게 말했다.

“이 음란한 몸뚱이는 전부 내꺼야. 다른 놈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 건 절대 용서 못 해. 이 몸을 본 놈들이 있다면 그놈들을 반쯤 죽여버릴 거야.”

“아….”

“그건 너희 둘도 마찬가지야. 너희들의 몸은 전부 내꺼라구. 알겠어?”

내 말에 셋 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많이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답!!”

“네!” “아, 알았다.” “으응!”

어째 굉장히 기뻐하는 셋의 손에 이끌려 천막을 나서니 밤하늘에서 비가 꽤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둔지 중앙 공터를 다 가리는 커다란 비닐 천막에서는 연신 빗물이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빗물은 경사를 타고 흐르며 땅에 떨어져 내리고 사람들이 작업해둔 구덩이를 타고 주둔지 밖으로 흘러나갔다.

주둔지 중앙에는 대지 속성 능력자들이 흙으로 만든 화덕과 화로에서 생활 보조 아가씨들이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고기볶음과 고기 스튜에 고기 꼬치에 스테이크까지 모두가 고기 판이었다.

여기저기 세워둔 등불 근처에서 능력자들은 고기를 식판 가득 담고 커다란 머그잔에 스튜까지 받아서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하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블루 지니어스 덕분에 오늘 정력 충전 제대로 하는구만! 고맙네! 소년!! 우하하하핫!!”

화중강 아저씨는 자기 식판에 고기를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무시무시하게 흡입하고 있었는데 날 보자마자 내 얼굴 크기만 한 고깃덩어리를 포크에 찍어서 들어 올리더니 화탕하게 웃으면서 단숨에 먹어치워 버렸다!

커다란 천막 아래 여기저기 앉아있던 사람들도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는 걸 받아주고 있으려니 조금 쑥스럽다.

그러고 보니 뱀 고기에 거북이 고기에 문어랑 악어까지, 죄다 정력에 좋다는 것들이네. 여자들도 맛있는 고기에 즐거워하면서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도 식판을 들고 고기를 가지러 갔는데 화연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생활 보조 아가씨들이 화롯가에서 열심히 굽고 있는 고기 중에 가장 크고 맛있어 보이는 것들만 빠르게 집어내 식판 위에 올려주었다.

프랑은 다른 쪽에서 싱싱한 채소만 쏙쏙 골라 담아서 가져오고 영은이는 다 구워진 스테이크와 고기 꼬치, 고기볶음 등을 식판에 산더미처럼 담았고 화연이는 자기 식판 위에 고기 스튜가 가득 담긴 머그잔 4개를 가져왔다.

“많이 먹어라.”

왠지 캠핑 나온 기분이라 나도 즐거워진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서 넷이서 앉아 화기애애하게 뱀고기를 먹는데 화랑 보스랑 지부장이 식판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희도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너희는 눈치도 없니?”

“후후후. 큰 누님 앞에서 눈치 자랑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은이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는 지부장이랑 화랑 보스를 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내 쪽으로 조금 이동했고 화연이도 자리를 만들어주며 옆으로 붙었다.

“한국에서 손꼽는 미녀분들과 함께 식사라니, 비록 꼽사리 꼈지만 기분은 좋은데요? 하하하.”

“얘들은 다 임자 있으니까 왕자님한테 찍히고 싶지 않으면 시선 처리 잘하렴?”

영은이는 은근히 웃으면서 톡 쏘는데 그 말을 들은 화랑 보스는 흠칫하고 굳어버리고 지부장도 놀란 눈으로 내 옆에 앉은 화연이랑 프랑을 바라본다.

“아, 뭐…. 저도 조만간 세계 랭킹 10위권 이내로 치고 올라갈 능력자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식사를 시작했는데 지부장은 조금 식어버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여기저기서 들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조금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화랑 보스는 옆집 아저씨 같은 친화력으로 맞장구 쳐주면서 분위기를 띄웠고.

“그래서? 우리 서하한테 뭐가 궁금해서 다가온 거니?”

“…거참. 큰 누님도 너무하십니다. 겨우 분위기를 띄워놨더니 거기다 찬물을 끼얹으십니까.”

“뻔히 보이는 네 행동을 탓하렴.”

지부장은 영은이의 능글능글한 웃음에 그냥 한숨을 푹 쉬더니 내 눈치를 살핀다. 지부장이 궁금한 건 프랑에 대해서겠지.

나와 프랑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정확히는 프랑이 지부장의 시야에 들어갈 때마다 거의 노려보는 것처럼 프랑을 살펴봤거든.

“정서하…씨, 정서하 씨와 계약한 정령에 관한 이야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정령과 어디서 계약할 수 있었는지가 되겠군요.”

5일 전이랑은 다르게 이제 나한테 존대를 붙인다. 능력자 연합의 지부장급이 내게 존칭을 할 정도의 검증이라니, 이게 발표되면 나한테 뒷수작질 부릴 인간도 사라지지 않을까?

“서하? 앙~.”

“아~.”

나는 프랑이 먹기 좋게 썰어서 내미는 고기를 받아먹는데 화연이랑 프랑은 그냥 질문을 못 들은척하고 있었다. 지부장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날 바라보기 시작했고.

“정말 그놈의 방정떠는 버릇은….”

“프랑을 만난 건 1회차 때였어요. 한밤중에 잡은 큰 들쥐 고기를 씻으려고 강가에 갔었는데 반투명한 프랑을 만났거든요. 사실 그때는 정령이라고 부르기 힘든 상태였어요.”

“…….”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두 어른, 화랑 보스까지 보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가 이무기를 만나고, 이무기한테 벼락 세례를 받으면서 프랑이 번개의 정령화 된 거에요.”

“이뭌, 흐걱! 으으어!”

경악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면서 혀를 호쾌하게 씹은 지부장은 어버버하면서 혓바닥을 쥐지도 못하고 "햐, 햠히!" 하더니 누군가에게로 뛰어갔다.

“정말, 나라 망신 다 시킬 녀석이야. 서하야, 아~.””

지부장의 추태에 영은이는 혀를 차면서 스네이크 스테이크를 작게 썰어서 내 입에 넣어줬다.

“…!”

영은이한테 고기를 받아먹는 내 모습이 화랑 보스한테는 더 충격인가보다.

그리고 다시 달려온 지부장이 벌게진 얼굴로 나와 프랑의 사이에 끼어들…려다가 프랑이 노려보니 흠칫하고서는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더니 "험험."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무기를 만났단 말입니까? 최고위 이형종이라는 그 이무기를?”

“네.”

아, 저 모습. 화연이한테서 자주 보던 모습이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

“자, 그만해. 프랑이 번개의 정령이라는 건 나도 화연이도 확인한 사실이야. 그리고 발표 때도 바짝 익은 엘리펀트로스의 사진으로 증명했고. 그걸 네가 일부러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네.”

마지막 고기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준 영은이는 자신의 식기와 내가 쓴 식기를 챙기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네가 안절부절못하든 말든 상위 이형종을 잡을 때면 확인할 수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도록 해. 잔뱅이 지부장.”

“윽! 크, 큰 누님. 그 별명은!!”

“듣기 싫으면 그 버릇을 고쳐! 멍청하게 흥분하고 긴장할 때마다 잔 떨림을 못 감추니 잔뱅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냐!”

“으….”

영은이의 호통에 지부장은 쓸개 씹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프랑과 화연이와 영은이는 식기를 챙겨서 씻으러 가고 테이블에는 나랑 지부장과 화랑의 보스만 남아있었다.

살짝 물안개가 끼기 시작하는 주둔지 주변을 살펴보다가 지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그는 풀이 죽어서 애꿎은 고기만 포크로 찌르고 있었다.

화랑 보스는…. 아까부터 별말 못하고 영은이 눈치만 보고 있던데 예전에 들었던 화연이의 설명이 정확했던 거 같다. 능력은 나름 뛰어나지만 한 단체의 장이 되기에는 부족한 남자.

“하하…. 각하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시는 건 정말 보기 힘든데…. 정서하 씨가 정말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순하고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화랑 보스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뒷머릴 긁적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앞으로도 자주 교류를 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지부장을 곁눈질하더니 나한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 버렸다. 이어서 지부장도 포크를 내려놓고는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여사님은 그냥 보면 예쁜 누나 같으니까요. 이해해요.”

내 말에 쓴웃음을 지은 지부장은 "예쁜 누나이기만 하면 좋을 텐데요." 하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대지 속성 능력자이 만들어둔 개수대에서 식기를 다 씻은 연인들의 손에 이끌려 천막으로 돌아왔더니 날 말려 죽이려는지 내 다리 사이에 세 여인이 동시에 들어오려고 한다!!

“자, 잠깐. 낮에도… 했잖아!”

“서하는 TP로 정액을 생성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TP 회복에도 일가견이 있으니까, 나는 서 하를 믿는다.”

…!

“적 내장이라는 천고의 정력제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웜 드릴러의 적 내장은 수백억을 줘서라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는 금시대 정력의 영약이에요? 티 스푼으로 한입만 먹어도 한 달은 거시기가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숙성시키고 알약으로 만들지 않아서 조금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지금 먹을래?”

…!!

“저, 저는 서하의 짐승 속성을 믿어요!”

…!!!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순서를 정하는 세 여친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누라가 둘이면 허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던 엄마의 말이 생각나 버렸다…!

“제가 먼저네요! 흠흠, 서하? 저 둘은 안되지만, 제 목은 서하의 큰 물건도 받아들일 수 있답니다?”

어….

평소와는 다른 무진장 색기 넘치는 표정의 프랑에게 살짝 공포를 느끼고 있는데 프랑은 화연이와 영은이를 뒤로 밀어내더니 내 품에 들어와서 둘에게 들으라는 듯이 내 귀에 속삭였다.

“저 두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제 입, 보, 지, 를 잔뜩 즐겨주세요…♥”

“뭣…!” “으음…!”

크헉…. 나도 모르겠다!!

…뭔가 거슬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게 신경을 긁는 기분.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잠시 돌아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에어 매트 위에는 푹신한 침낭 세 개가 연결되어서 깔려있고 나는 그 위에 누워있었다.

오른쪽 품에는 프랑이 곤히 잠들어 있었고 내 몸 위에는 타이즈 아머만 입은 영은이가 엎드려서 콜콜 자고 있었다. 화연이는 영은이와 똑같은 복장으로 내 왼쪽 품을 차지하고 있다.

이상할 건 없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1시다.

공간 지각으로 밖을 다시 살펴보니 기세는 줄었지만,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우의를 쓴 능력자들이 3인 1조로 3개 조가 주둔지를 돌면서 빈틈없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다시 주위 1.5km 공간 전부를 싹 훑어봤지만,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박물관 때의 일을 잊지 않았다.

“다들 일어나.”

손을 뻗어서 프랑과 화연이를 흔들어 깨우고 내 몸 위에서 잠든 영은이를 살살 흔들어 깨운다.

“…무슨 일이지?”

“우웅…. 서하…?”

“후아아암?”

졸려서 눈을 비비는 연인들을 달래면서 프랑에게 말했다.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어. 프랑은 지금 즉시 하늘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봐 줘. 어두워서 잘 안 보이겠지만, 최대한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살펴봐야 해.”

“…! 네!”

프랑은 내 말에 순식간에 잠에서 깬 표정이 되더니 그 즉시 천막을 통과해 직선으로 하늘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시선을 돌려 어깨를 잡았다.

“둘은 빨리 장비를 입고 사람들을 깨우고 보초들한테도 주의를 전해줘.”

“알았다.”

“응. 그런데 무슨 일이야? 공간 지각에 뭔가 걸리기라도 했어?”

화연이와 영은이는 벗어둔 플레이트 아머를 입으며 날 돌아본다.

“아니, 하지만 이무기를 만나기 전이나 박물관에 소울리퍼가 나타날 때도 지금처럼 뭔가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

그 순간 천막 밖에서 프랑이 뛰어들더니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10m는 넘어가는 거대한 뱀이 5km 너머 숲 초입에 있어요!!”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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