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53화 (153/517)

00153  능력 검증.  =========================================================================

밖에서는 물 속성 능력자들이 모여서 사각형의 투명한 커다란 물통에 TP를 써서 물을 채워 넣기 시작하고 대지 속성 능력자가 만들어낸 화덕에 불 속성 능력자가 피워준 장작불 앞에서 생활 보조 여섯 명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능력을 저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잠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곧 식사준비가 다 됐다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점심은 프랑과 화연이 웜 드릴러의 살을 요리해서 가져왔다. 도저히 그, 거대 지렁이로 보이지 않는 잘 익은 모습이나 맛이나 육질은 최고급 한우 스테이크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부드러운 데다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 게 감칠맛까지 느껴졌다!

간이 테이블에 앉아서 굉장히 맛있는 드릴러 스테이크에 간단한 스튜를 곁들인 점심을 끝내고 화연이랑 프랑을 돌아보니 그녀들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더 안 먹어?”

“후후. 더 맛있는걸 먹을 거다.”

“…더 맛있는 거?”

“그건, 서하의 사.랑 이에요?”

…내 말이 방아쇠였는지 눈을 무섭게 번뜩이는 화연이랑 프랑에게 두 팔을 잡혀서 천막 안으로 끌려 들어가….

정기를 빨려버렸다. 흑.

밥 먹으면서 회복한 TP를 20만이 넘도록 쏟아냈는데 그걸 다 마신 두 여인은…. 살짝 부른 배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지 방글싱긋 웃고 있었다.

내 눈 밑이 조금 퀭해진 게 느껴졌지만 뭐, 내 여자친구들이 만족했다면야….

“그럼, 이 방식으로 검증을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로 쓰기 위해 세운 천막에서 나와 프랑 화연이 영은이, 지부장과 화랑 보스가 모여서 검증방식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검증단 인원 전부가 동원된 토벌전 형식의 검증. 그러나 지형의 특성상 대인 원의 이동은 오히려 방해만 되어서 기각.

두 번째는 C 클래스 이상의 인원들만 모여서 소규모로 이형종을 찾기로 했지만, 이 부분은 내가 낸 3번째 방법 때문에 무산됐다.

내가 낸 방식은 나와 프랑, 화연 셋이서 돌아다니며 상위 이형종을 찾는다. 그 사이 주둔지를 지키기 위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늪지대가 시작되는 숲 인근의 공터에서 대기한다는 거였다.

영상 녹화는 따라온 화연이에게 맡기고 이형종을 발견하면 프랑이 공중에서 벼락을 떨어트리면서 검증단이 모인 곳으로 풀링pulling 하는 거지.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화랑 보스와 한국 총괄 지부장은 인원을 선발, 통솔해 즉시 출발할 준비 하세요. 타임리버는 생활 보조를 제외한 전부 이동합니다.”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는 영은이의 모습은 화연이와는 다르게 명령을 따르게 하는 자연스러운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처음 보는 저 모습이 멋지다. …고 생각 했는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고 예쁘게 눈을 휘더니 배를 슥슥 만진다. 어휴.

회의실로 만들어둔 천막을 나와서 창고 텐트에 들어간 화연이는 네모난 사각 케이스를 들고나오더니 케이스를 열고 뭔가 네모나고 길쭉한 뭔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건 뭐야? 어…. 낭아봉?”

“그래. 낭아봉이다. 재생 능력이 뛰어난 늪지 트롤과 고목화化 되어가는 우드 트렌트를 상대하는 데는 둔기가 효율적이니까.”

달리기에 지장을 주는 건 놔두고 가자고 하려 했는데, 화연이는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까 괜히 가져가려 하는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다 조립한 낭아 봉은 양쪽에 방추형으로 된 머리가 달려있고 머리 부분에는 흉악한 쇠가시가 빼곡히 박혀있었다.

손잡이는 오목하게 튀어나온 홈이 무수하게 나 있었는데 화연이는 낭아봉 중앙을 쥐더니 낭아 봉이 원형 방패처럼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회전시키다가 단숨에 멈추며 내질렀는데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바닥의 먼지가 훅하고 방사형으로 밀려난다!

“굉장하다….”

프랑도 내 말에 동감하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와 프랑을 본 화연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자기 키보다 조금 더 큰 낭아 봉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가자.”

사정하느라 소비한 TP는 회의 동안 상당 부분 회복해서 2/3까지 차올랐다. 남은 건 가다 보면 회복하겠지.

화연이가 낭아 봉을 조립하는 동안 출발 준비를 마친 20명은 우리 뒤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주둔 장소를 정하자마자 귀환 포인트를 찾으러 떠났던 9명이 벌써 돌아왔네?

나와 프랑과 화연이 발걸음을 옮기니 20명도 우릴 따라오기 시작했다.

“근데 귀환 포인트를 금방 찾은 거야? 되게 빠르네?”

“귀환 포인트는 한번 쓰면 사라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근방에서 재생성된다. 위치만 기억해두면 계속 이용할 수 있지. 그래서 탐색이 중요한 거다. 귀환 포인트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위급 시에 긴급 귀환을 할 수 있으니까.”

“아아…. 그럼 4명씩 2팀이 출발했던 건 위치 확인하러 갔던 거구나?”

“그래.”

왼쪽에는 여성용 풀 플레이트 같은 타이즈 아머를 입은 화연이, 오른쪽은 프랑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조금 빠르게 걸어서 늪지대의 초입에 들어가니 사방 1.5km 이내에 중하위부터 중상위까지의 이형종 들이 스물이 넘게 잡힌다.

“잠시 기다려봐.”

공간 지각에 걸리는 이형종 들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대부분이 뱀 모양의 이형종이고 악어랑…. 저건 문어? 거북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들도 보인다.

그 외에도 이상한 벌레들이나 거머리 같은 것도 보이는 게…. 화연이 말대로 늪지대에서 싸우는 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네.

본 걸 화연이랑 프랑에게 설명해줬더니 프랑이랑 화연이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

“전 일단 돌아다니면서 위상석을 가진 이형종 들을 잡고 위상석을 회수할까요?”

“아니요. 프랑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서하, 위상석이 없는 이형 종들에게 마나 탄을 천천히 날릴 수 있나?”

“어. 근데 느리게 쏘면 다 도망가버리거나 할 거 같은데, 그냥 동시에 다 잡는 게 낫지 않아?”

“늪지대의 이형종 들은 공격성이 매우 높다.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면 앞뒤 생각 안 하고 돌진해오지. 무엇보다 이번 일은 너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거니 가능하다면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좋다.”

그럼 적당히 공격을 날려서 어그로를 끌고 검증단이 있는 곳으로 물러나는 게 좋다는 거네.

“알았어. 그럼 시작할게.”

내 말에 화연이는 낭아 봉을 앞으로 비스듬하게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대충 이형 종들 주변에 마나 탄을 1tp씩 집어넣고 천천히 날렸다.

늪지 나무들을 부러트리며 날아간 마나 탄은 공중에서 퍼버벙 하는 소리를 내며 충격파를 퍼트렸는데 충격파에 얻어맞은 뱀이며 악어들이 마나 탄이 날라온 곳으로 일제히 기어오는 게 보인다.

눈에 안 보이는 마나 탄이라서 잘 찾아올까 싶었는데 정확히 내 쪽을 향해 기어온다.

“온다. 물러나자.”

얼른 숲 밖으로 달려나가면서 딴 데로 향하지 않게끔 일부러 다시 마나 탄을 놈들의 머리 위로 날려 터트리면서 어그로를 끄니 내 쪽으로 살기가 뭉클뭉클하면서 뻗어오기 시작한다.

숲에서 200m 정도 떨어져서 멈추니 내 뒤로 300m 정도 떨어져 진형을 잡고 있던 능력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굵기가 1m에 길이가 5m가 넘는 중상위 이형종 얼룩무늬 뱀이 쏜살같이 s자를 그리며 숲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내게 날아오려는 순간 마나 레이저를 쏴서 절단해버렸다.

스프링처럼 몸을 모으는 순간 잘라버렸더니 그냥 수십 토막 나버리네. 저 모습에 뒤에서 모여있는 능력자들이 흡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딱히 마나 탄을 써서 지워버릴 필요는 없겠다. 저것들도 다 돈이라고 하니까 최대한 남겨야지.

곧이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3m에서 6m까지 다양한 뱀들을 두 손을 뻗어 마나 레이저로 모조리 잘라버리는데 그 뒤에 나무들도 레이저에 잘려서 쿵쿵 쓰러지고 쓰러지는 나무에 깔리는 악어들이 퀘에엑 하는 비명도 지르고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아수라장은 아수라장이고, 위상석을 마나 레이저가 쓸고 지나가지 않게끔 주의하면서 악어랑 문어랑 등껍질이 뿔처럼 솟아오르고 얼굴이나 네 발에도 뿔 같은 게 나 있는 거북이마저 반토막 내버리고 두 손을 털었다.

수 분간 마나 레이저를 날렸더니 14000 TP가 사용됐지만 쏘는 와중에도 계속 TP가 회복되서 마지막 뿔 거북이를 죽이고 손을 털 때쯤에는 TP가 가득 차버렸다.

초당 100 TP를 쓰지만 초당 50tp 씩 회복하니까. 75분 동안 레이저를 쏴야 TP가 바닥나겠네. 물론 고출력 레이저를 쏘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몇 번 이형종 들이랑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을 본 프랑은 익숙하다는 듯이 토막 나서 죽은 이형 종들에게 다가가 중위급 위상석 3개랑 중상위급 위상석 1개를 회수하고 터져 나오는 물빛 위상력을 쭈우욱 빨아들인다.

“…정말 수련을 열심히 해야겠군….”

내가 이형종 들을 토막 내버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화연이는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뒤에 신체 강화나 속성 능력자들이 느끼는 좌절감만큼은 아닌 거 같다.

특히 지부장이랑 화중강 아저씨는 혼이 빠져나간 모습이네.

“다시 가자.”

“아, 잠깐 기다려라.”

화연이는 뒤돌아보더니 손짓을 하는 게 이형종 시체들을 회수하라는 뜻인 거 같다.

그 뒤는 뭐…. 어려울 것도 없었다. 처음처럼 적당히 어그로를 끌어서 늪지대 밖으로 나가고, 이형종 들이 몰려오면 마나 레이저를 쏘아내 토막 쳐버리고 들어가서 신경을 건드려서 나와서 잡고.

다만 무진장 큰 뱀 대가리가 속성 타입인지 비사飛蛇 처럼 하늘을 곧게 날아 창처럼 쏘아져 날아오는 모습에는 살짝 쫄았었지만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잽싸게 화망…. 레이저니까 선망인가? 아무튼, 단숨에 잘게 토막 내버렸다.

거머리나 벌레들은 프랑이 전기를 몸으로 뿜으면서 돌아다니고 늪지대에 벼락을 한발씩 떨어트리니 독충이나 독거머리들은 죄다 타죽어 버려서 독에 걸릴 걱정도 없었다.

처음에는 긴장하면서 따라다녔지만, 곧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깨달았는지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화연이는….

“…하아아.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거 같다.”

대충 등급 안 따지고 잡은 이형종 숫자가 300을 넘어갈 때쯤 화연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근처에 있는 엄지 굵기에 집게손가락 길이만 한 거머리 무리를 죄다 지져 죽인 프랑은 화연이의 옆에 내려서며 물었다.

“무슨 계획 말인가요?”

“이 정도라면 팀을 꾸려서 위상 세계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서하 혼자 들어가서 마나 레이저로 쓱 갈라버리면 다 죽을 테니까요.”

화연이는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초토화된 늪지대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되면 나와 함께 위상 세계에 들어가서 상위 이형종 무리들 때문에 공략이 멈춘 곳을 중점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잡고, 두 부대장과 팀장들은 토벌전에 주력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특히 발견은 했지만, 너무 위험도가 높아 체크만 해둔 폐허와 동굴이 있있는데 그곳을 모두 정리하면 수십조 단위의 수익이 발생할 거 같군요.”

“아아! 그러네요. 공략 종료를 선언했다지만 완전히 공략한 것도 아니고, 상위 이형 종들 다수가 모인 곳은 피해 없이 공략이 거의 불가능할 테니까요! 수익이 굉장히 높아지겠네요!”

그 정도는 폐기하는 고위급 이형종이나 상위급 이형종 위상석만 있으면 벌 수 있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영상을 기록 중이니까 말을 꺼내면 안 되겠지?

아까 내 막대사탕을 맛있게 먹을 땐 영상 기록을 종료하는 거 같긴 했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니까.

나는 두 여자친구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돈은 문제가 안 돼. 중요한 건 장비를 만들 소재가 되는 이형종을 잡거나, 광석들을 채집하는 게 아닐까.”

“후후, 그렇군. 나도 멋진 남자친구 덕을 보게 되는 건가? 슬슬 물러나자. 오늘은 이 정도면 될듯하다.”

화연이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 꺼내더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계를 확인한 다음 내 손을 잡고 늪지 밖을 향했다.

“더 안 하고? 아직 4시도 안 됐는데.”

“조만간 비가 올 듯하다. 늪지대 안에서 비를 만나는 것만큼 최악은 없다. 무엇보다….”

그러면서 날 힐끔 바라본다. 프랑도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날 보며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PTSD 때문인가? 내 옆에 여자친구들이 다 있으니까 비가 오거나 수영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지금도 말이 늪지대지 군데군데 습지 같은 곳도 있는데 멀쩡하잖아.

“아무튼, 주변 4km 이내는 다 정리했다. 좀 더 들어갔다간 끌고 나오는데도 문제가 있고, 싸우는 도중에 날이 어두워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네 능력에 토를 달 인간은 없어. 다만 문서화할때는 중상위[만] 잡았느냐, 아니면 중상위[도] 잡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이 크게 차이 나니까 상위 이형종을 잡으려 하는 거뿐이다.”

숲 밖을 나온 화연이는 저 너머에 정말 산처럼 쌓인 이형종의 시체를 부지런히 주둔지로 나르고 있는 능력자들을 보며 얕은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고작 3시간도 안 돼서 저만한 숫자를 홀로 죽였다면, 이견을 꺼내는 자가 머저리지.”

화연이도 커다란 운반차에 한가득 부산물을 실어다 나르기 시작하길래 나도 운반을 도와주려 했더니 능력자들이나 생활 보조들이 괴물을 보는 표정으로 날 보면서 제발 저리 가서 놀라고 밀어내길래 또다시 삐져버렸다.

아니 그러니까 왜 자꾸 저리 가라고 하는 거냐고?!

투덜거리면서 영은이가 일하고 있는 회의용 천막에 들어갔더니 지부장이 날 보더니 흠칫 놀라는 게 보인다. 그래서 씩 웃어주니 어색하게 마주 웃어준다.

미남 수준에 속하는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게 좀 웃겨서 속으로 키득거리면서 웃다가 뭔가 써내려가는 영은이의 옆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오늘 3시간 동안 잡은 이형종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 옆의 종이에는 지금까지 획득한 위상석과 부산물의 숫자를 바를 정正 자로  헤아리고 있었다.

위상석 갯수는 다 합쳐서 40개 정돈데 위상력 총합은 7만 정도밖에 안된다. 700억이란 말이지.

“후후. 3시간 동안 설렁설렁 잡고 획득한 순이익이 2천억을 넘어가네? 우리 서하는 정말 복덩어리인걸?”

“2천억이나 돼…요? 위상력은 7만 정도인 거 같은데?”

“으응. 중간에 위상석보다 오히려 부산물이 더 비싼 이형종 몇 마리가 섞여 있었고, 만능 해독약의 재료를 주는 몇 마리도 있어서 그래.”

영은 이의 말을 들은 지부장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블루 지니어스가 아니라 블루 지저스라고 해야 할 판이군….”

신성모독이다!!

아니, 저 경우에는 파란 씨발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지부장을 한번 노려봤더니 흠칫하면서 눈을 피해버린다. 역시 그쪽이었어!

“B 클래스 속성 능력자시니까 지부장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요?”

“…난 괴물이 아니야. 애초에 고위 능력자가 중위 이형종을 잡기 위해 능력을 쓴다는 것 자체가 TP 낭비다.”

“응응. 속성 능력자들의 TP 소비량은 장난이 아니니까. 잘 회복도 안 되는데 마구마구 낭비할 수는 없지.”

어? 회복이 잘 안 돼? 프랑을 돌아봤더니 프랑도 놀란 눈이 되는데 그걸 영은이도 봤는지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아무튼, 우리 서하 오늘 수고 많이 했어. 이 누나한테 원하는 거 없니? 지금 기분이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빙글빙글 웃으며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을 꺼내니 지부장도 장난이라 생각하는 건지 피식 웃으면서 보고서를 내려다보며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거, 장난 아닌데.

“지금은 딱히 없어요.”

슬쩍 웃으면서 영은이를 봤더니 영은이는 갑자기 정욕이 넘치는 얼굴로 변해버려서 심장이 떨릴 만큼 놀랬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이는데….

-나는 배가 터지도록 우리 서하의 정액을 받고 싶어!-

…어휴.

애써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고 천막을 나오니 뒤로 영은이가 살짝 한숨을 쉬는 게 보였다….

아무튼 밖으로 나와서 다른 능력자들이 일하는 걸 앉아서 구경하고 있으려니 생활 보조 아가씨 한 명이 나한테 칵테일 음료? 같은걸 건네주고 내 옆에 작은 간이 테이블을 펴더니 "간식으로 드세요." 하면서 잘 볶은 고기 경단 같은 걸 놓고 갔다.

남들 다 일할 때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음료수랑 먹거리를 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더니 …어쩐지 높으신 분이 된 기분이다.

산처럼 쌓여있는 이형종 시체 옆에서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이형종의 부산물을 채취하고 있었고 활용 못 하는 남은 찌꺼기는 저~ 옆에 쌓아놓기 시작했는데 1시간쯤 지나니 사체의 산은 절반 정도로 줄고 대신 찌꺼기의 산이 높다랗게 싸이기 시작했다.

서류 작성이 다 끝났는지 영은이는 천막에서 걸어 나오며 기지개를 켜는데, 곧 찌꺼기 산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휴. 저 찌꺼기는 어떡한다니. 놔두면 벌레떼도 끓을거고 한군데 파묻었다간 썩어서 악령이나 좀비가 일어날지도 모르….”

티티팅~! 퍼퍼펑.

찌꺼기 산 근방에 사람들이 다 떠난 순간 세 손가락을 순차적으로 팅겨 무충격파無衝擊波 마나 탄 세 발을 날려서 지워버렸다.

“됐지?”

찌꺼기 산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통째로 사라져버리니 내 옆에 선 영은이도 움찔했다. 거기다 찌꺼기 산 주변에 능력자들도 놀라 자빠진 게 보였다.

다들 주저앉은 채 날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보니 조금 뻘쭘한 기분이다. 말하고 지울 걸 그랬나?

사람들이 놀란걸 추스르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영은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서하는 TP 회복량이 어떻게 되는 거니? 다른 능력자들은 TP가 바닥일 때 전부 회복하는데 17시간 정도 걸리는데…”

뭐? 17시간?

헐…. 놀라서 다른 능력자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나 대신 프랑이 영은이에게 대답해준다.

“영은. 그게, 현실이 아니라 위상 세계에서 회복되는 시간이야?”

“응. 우리 서하는 얼마나 걸려?”

“…서하는 1분에 1% 회복해. 1시간 40분이면 모두 회복되는걸.”

“……. 세상에. 우리 서하는 진짜 양파 왕자님 아니니? 다른 능력은 더 없어?”

프랑은 영은이의 말에 애써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겠어. 다른 능력이 더 있는데 서하가 못 깨달았을지도….”

“우리 서하가 세계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네. 후후. 그럼 우리는 여주인공들인가?”

“하렘의 여주인공은 싫은데….”

“아, 그건 나도 싫어.”

두 여인이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숙덕거리는데 어쩐지 끼어들기 난감한 주제 같아서 그냥 얌전히 작업을 구경하고만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5시를 조금 넘겼는데 벌써 하늘이 어두워지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생활 보조들이 뭔가 장대랑 동그란 구체를 들고 와서 시체 주변이랑 부산물 처리 작업대 근처에 두 개씩 세우고 주둔지 인근을 빙 둘러 세운다. 그러고 뭔가 스위치 같은걸 누르니 눈이 안부신 굉장히 밝은 빛이 구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보초를 서려는 건지 두 명씩 짝을 지어서 3개 조가 지부장 앞에서 신고하는 게 보였다.

“내 공간 지각이 있어서 보초는 안 서도 되는데.”

“응? 아냐. 아랫사람들은 편하게 해주면 해줄수록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 적당히 할 일을 주고 긴장을 유지하는 게 좋아. 그래야 복귀했을 때 두 발 뻗고 푹 쉬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돈을 팍팍 쓰지.”

“악덕 사장….”

“뭐얏?!”

영은이는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으면서 날 간지럽히길래 킥킥거리면서 웃고 있으려니 사체 더미 쪽에서 화연이가 최수한과 김가민, 유민희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와 입을 열었다.

“이형종 시체는 모두 이동 완료했습니다. 앞으로 1시간 정도면 나머지 사체도 분해가 끝나겠군요.”

“그러니? 수고했어. 가서 땀 닦고 식사 준비하렴.”

“네.”

“화연아 수고했어.”

“그래.”

문득 보스라고 불러야 했나 하는데…. 그냥 앞으로도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보스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쪽을 좋아하니까.

이제 내 위치도 위치니까 화연이한테 보스라고 안 해도 책잡힐 일도 없겠지.

그나저나 스페셜 타입이라니. 후후후. 중2병이 다시 돋을 거 같은 이 기분이 참 거시기하네. 아까도 나도 모르게 중2병스러운 생각까지 떠올렸는데…….

중2병이라도 능력이 있으니 사랑까지 할 수 있게 돼서 진짜 좋긴 좋다.

아냐! 난 중2병 졸업했으니까 중2병이 아니야!!

“…….”

1세기 전의 중2병 소녀 영은이를 슬쩍 올려보니 영은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얼굴을 조금 굳히더니 내 앞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돋워 외쳤다.

“부산물 해체가 가능한 자는 모두 부산물 해체 작업을 도우세요! 작업을 서두릅니다! 남은 이들은 주둔지 우천 대비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삽을 들고 온 영은이는 날 돌아보더니 천막으로 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아니…. 하나도 안 피곤한데 나만 이렇게 특별취급 해주려니까 어쩐지 따돌림당하는 기분 같아서 거시기해!

“나도 할 거야!”

“우리 서하는 삽질해봤니?”

“어…. 아니? 그냥 땅에 삽을 박아서 퍼내면 되는 거 아냐?”

“후후. 그냥 쉬고 있으렴.”

…삐질 테다. 삐져버릴 테다!!

============================ 작품 후기 ============================

사안마신 // 헉.... 그걸 눈치채시다니 ㅋㅋㅋ

ㅂㅈㄷㄱㅁㄴㅇㄹ // 세상은 넓고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삐이이-이 소개시켜준 정발되지않은 일본 라노벨 하나를 보고있는데, 이야기 전개방식이 저와 흡사해서 깜짝 놀랬습니다.

-삐이이-도 알려줄때 제가 쓰는 방식이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정말 놀랬어요. 거기다 더 재밌더군요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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