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52화 (152/517)

00152  능력 검증.  =========================================================================

잠시 후 최수한이 천막 안으로 들어오며 모든 인원이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나에게 좀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도 꽃잎이 점점 젖어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파블로프의 개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된 거 같다.

날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비돼서 마조 암컷이 되어버렸던 경험이 되살아나는 거지.

복장은 화연이나 영은이와는 조금 다르게 둔하고 사슬 갑옷 같은걸 입고 있었는데, 별로 멋이 없긴 하지만 비슷한 형태인 걸 보면 저게 신체 강화 능력자의 기본 복장인가?

“근데 그 갑옷이 신체 강화자들이 입는 갑옷이야?”

“아니? 이건 풀 딕트의 타이즈 플레이트 아머란다!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라면 누구나가 입고 싶어 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거든! 하지만 만들기도 어렵고 재료들도 비싸고 가공비는 더욱 비싼 데다 저 클래스는 제대로 입지도 못하는 물건이야.”

그러면서 영은이는 내 시선이 향한 최수한을 잠시 노려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건 클래스가 낮은 신체 강화 능력자도 입을 수 있게끔 만들어진 저가형低賈形 타이즈 아머야. 화연이가 어렸을 때 입던 건데 조금 고친 거거든? 받아낼 것도 많은데 멋대로 죽어나자빠지면 곤란하지 않겠니?”

그런가? 어쩐지 좀 투박하긴 하더라.

영은이 최수한에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저께 잠시 영은이와 통화하던 중에 최수한의 상태를 알려주며 내가 조금 손봐줬다고 했는데, 어떻게 손봐줬는지 물어보길래 설명해줬더니, 잠시 침묵을 하다가 최수한을 고급 창관에 팔아넘기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었다.

[서하에게 처벌도 아니고 그런 상을 받다니!!]

…영은이도 만만치 않은 마조 변태였다는걸 깜빡했었다.

나는 화연이가 가져온 포스피드 치타의 가죽으로 만든 상·하의를 입고 그 위에 이곳저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딱딱하고 단단한 무언가로 보강된 재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롱부츠를 신었더니 옷도 그렇고 장비도 전부 검은색이라 왠지 마음에 든다.

마치 내 안의 흑염룡이 날뛸듯한 느낌이….

어흠어흠!!

영은이에 의해서 최수한은 천막 밖으로 쫓겨나 버리고 프랑과 화연이, 영은이의 시중을 받으면서 옷을 입으니 왕이 안 부럽다.

그리고 영은이가 군용 대검같이 생긴 걸 하나 가져오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춤에 매어준다.

이건 영은이가 애지중지하던 익스트리마레이쇼 EX라고 했는데, 영은이의 설명으로는 유럽 특전사들이 쓴다는 Extrema Ratio knife의 위상 장비 버전이라고 했다.

ex도 extreme의 줄임말이라던가?

위상 세계가 나오고 나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전 세계에 10자루밖에 없다는 군용 대검에 EX를 붙였다는데 이것만 500억을 한다고 했다.

고위 이형종의 부산물과 위상력을 머금은 희귀광물을 합금으로 만들고 가공한 거라 억 소리 나게 비싸다.

“한번 뽑아보렴?”

영은이의 말을 듣고 가죽 칼집에서 뽑아보니 시릴듯한 30cm의 물빛의 칼날이 드러난다.

“와아. 무척이나 아름다운 단검이네요!”

칼날은 외날로 세모꼴의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끄트머리도 날카로운 게 찌르기와 베기도 다 가능할 거 같다.

프랑처럼 입을 헤 벌리고 물빛 칼날을 바라보다가, 문득 박물관에서 창에 TP를 주입하던 능력자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칼날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마나 시브를 돌려 단검에 TP를 밀어 넣었더니 모든 걸 잘라버리려는 듯한 무시무시한 푸른빛의 예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어머나….”

마치 소드마스터가 된 기분인데…? 시험 삼아 단검을 그대로 바닥으로 밀어 넣어보니 별 저항 없이 쑥 들어가 버린다.

“…!”

“굉장한걸?”

나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무튼, 준비를 끝내고 천막 밖을 나서니 3만 제곱미터가 넘어가는 공터에 열댓 개의 천막이 서 있고 432명이 어지럽게 모여있는 게 보였다.

우리가 공터의 중앙에 있는 3m 높이의 단상 위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신의 소속 천막 인근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막에서 정부 소속 능력자, 화랑의 보스 박지웅과 9명의 능력자가 다가오고 능력자 연합 천막 쪽에서는 강현우 지부장과 화중강 아저씨, 유채린, 그리고 7명의 능력자가 다가왔다.

우리 쪽에서는 소피아가 김가민 2팀장과 유민희 3팀장과 함께 다가온다.

입장 총인원은 28명. 실제 전투는 나와 프랑만 하고 나머지 28명은 내 뒤를 따르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 그리고 인증기로 전투 장면을 녹화해 검증한다는 방식이다.

그 뒤로 27명의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웬만한 사람 두 세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있었다.

나머지 374명은 만약을 대비한 의료진들, 방송국 기자와 각종 외신 기자들 그리고 안전요원들이었다.

안전요원들이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단상을 중심으로 50m를 빙 둘러 서 있고 그 안에 82명의 사람이 세 덩어리로 뭉쳐져 우리를 올려다본다.

능력자들이 한곳에 모이고 우리가 단상 위에 서 있으니 공터에 모인 백 수십 명의 외신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사람들이 전부 무선 마이크를 쥔 영은이에게 시선을 집중하니 영은이는 대통령다운 위엄있는 표정으로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블루 지니어스의 능력 검증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입장에 실패하는 분들이 없도록 앞사람의 어깨를 꼭 잡아주세요.”

그리고 마이크를 내려놓은 영은이는 화연이의 손을 잡았고 그 뒤를 박지웅 보스가 서서 영은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중심에 화연이 서고 나와 프랑과 영은이 화연이를 삼각형으로 감싸는 형태로 섰다.

그 뒤에 거미줄처럼 능력자들이 줄지어 늘어서며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장 외곽에는 좀 많이 큰 배낭을 짊어진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선 모양이다.

영은이는 마주 선 화연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 보고 크게 외쳤다.

“검증단, 입장합니다!”

그 순간 수많은 파문이 단상을 중심으로 반경 60m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가 화이트홀로 나온 기분을 느끼면서 눈을 뜨니 잿빛 하늘과 기괴한 모양의 나무들이 드물게 나 있는 싯누런 땅이 저 멀리, 그다지 높지 않은 산자락까지 펼쳐진 게 보인다.

11시 방향부터 6시 방향까지 펼쳐진 거의 황폐해진 황무지에서 시선을 돌려 9시 방향을 살펴보니 시야 한쪽이 나무들로 가려져 있었다.

공간 지각 범위에 들어와 있는 나무 너머를 살펴보니 군데군데 깊이가 10m는 넘어가는 늪지대들이 보인다. 저기가 화연이가 말한 늪지대인가 보다.

나무 너머는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울창한 밀림에 햇빛 대부분이 가려져 어두컴컴한 데다, 늪지대가 공간 지각에 들어오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늪지 바닥에서 솟아오른 나무들 때문에 땅처럼 보이는 늪이 이곳저곳에 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무진장 음울한 분위기의 위상 세계인걸.

“인원을 점검하겠습니다. 능력자분들은 모여주십시오.”

강현우 지부장이 나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인원 체크를 시작한다. 나는 화연이와 영은이의 사이에 서서 공간 지각으로 주변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를 감지하지만, 생명체는 지금 공터에 서 있는 날 포함한 58명뿐이었다.

“프랑. 주변에 생명체가 있는지 하늘에서 살펴봐 줘.”

“네.”

내 부탁에 간단한 프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있던 프랑은 몸을 높게 띄우더니 1.4km 상공까지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능력자들이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며 수군거린다. 그중에 김가민은 하늘로 올라간 프랑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흘리는데 특히 더 놀란 눈이었다.

“어머나…. 저분이 정령이신 플랑드르 님이시죠? 저렇게나 부드럽게 날아다니시다니, B 클래스 바람 속성 능력자 수준이네요….”

본인이 C 클래스 중급의 바람 속성 능력자라 비교가 바람 속성 능력자로 이루어지네.

그녀는 아무런 반동이나 소리 없이 하늘 높이 올라간 프랑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잠시 김가민 2팀장을 보다가 화연이와 영은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타임리버는 우리들 뿐이야?”

나랑 프랑, 화연이랑 소피아, 김가민, 유민희 6명에 생활 보조는 7명뿐인데.

“그래. 클래스 분류 외인 너와, B 클래스인 나, 그리고 C 클래스 최상급 1명에 중상급 2명이다. 전력 면에서는 연합이나 정부 쪽에 꿀리지 않아. 아니, 오히려 더 강하지.”

하긴, 그렇긴 하지. 이론상으로는 상위 이형종을 잡을 수 있다는 C클래스 최상급 5명분이니까.

나는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본 걸 화연이에게 말해줬다.

“반경 1.5km 이내에는 생명 반응이 없어.”

내 이야기를 들은 화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공략 중일 때는 저쪽 산자락에서 이곳 공터까지 와서, 여기에 임시 기지를 치고 주변을 탐색했었다. 그러다가 늪지 트롤과 우드 트렌트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퇴각했지.”

“그래?”

“저 늪지대에서 늪지 트롤과 우드 트렌트가 나타나는데, 늪지대에서의 전투는 인간들에게는 워낙 불리하니 적에게 유리한 지대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단순 공격력만으로는 고위 이형종 최하위 수준과 비슷하기 때문에 지형상의 불이익에 피해가 가중될 수 있어서 결국 공략을 포기하고 물러났었지.”

그렇긴 하겠다. 이런 습지대…랄까, 늪지대에서는 번개 속성 능력자가 유용할 테지만 희귀 속성이라 숫자도 적고, 있다고 해도 물이 많아 동료들까지 휘말릴 수 있잖아. 그 외에도 불의 효과도 반감되니까.

생명체를 상대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불을 못쓴다는 건 꽤 큰 손실이겠지. 신체 강화 능력자들의 몸놀림이 늪지대에 걸려서 감소되는것도 위협이 되고.

나와 화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강현우 지부장과 화랑 보스가 영은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합에서 낙오된 인원은 없습니다.”

“화랑에서도 10명과 생활 보조 10명 모두 입장 완료했습니다.

“우리도 15명 모두 입장했으니 그럼, 숲에서 좀 물러나서 주둔 지점을 잡도록 하지요.”

““예.””

강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에 서 있는 유채린을 보며 손짓을 한다. 손짓을 받은 유채린이 지부장을 대신해 연합의 능력자들을 향해 소리친다.

“능력자 연합 부대원들은 집합합니다!!”

“화랑도 이동 준비!!”

팀 리더는 영은이가 맡는 건가? 하긴 나이로나 지위로나 능력으로나 영은이가 맡는 게 맞겠네.

“타임리버는 진작에 준비 끝났어요~!”

날 보며 생긋 웃은 소피아의 말을 끝으로 숲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은 하늘에서 육안으로 관찰을 끝냈는지 내 앞으로 내려와서 뒤로 둥둥 떠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땅이 드러나 있는 곳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어요. 숲 속에는 몇몇 움직임이 보이긴 하는데 나무들에 가려져서 잘 안 보였어요. 알아보려면 좀 더 다가가 봐야 하겠는걸요?”

“그럼 기지 구축이 끝나는 대로 서하가 이형종을 찾아 움직이는 걸로 하자꾸나. 너희는 인원을 1/3로 나눠서 귀환 포인트를 찾도록 해. 연합과 화랑에서 4명씩 1개 조를 맡도록.”

프랑의 보고를 받은 영은이는 강현우 지부장과 박지웅 보스를 향해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날 중심으로 화연이와 영은이가 좌우로 서고 그 뒤에 강현우 지부장과 화랑 보스가 따르고 있었는데 프랑의 이야기를 들은 강현우 지부장과 화랑 보스는 감탄이 섞인 얼굴로 프랑을 올려다본다.

“공중 정찰이라니, 활용도도 높고 탐색 시의 위험도도 대폭 줄어들겠군요.”

“저 정령은 번개도 쓰고 사람처럼 행동도 한다지요? 블루 지니어스 당사자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정령도 저리 뛰어나다니…. 타임리버는 말 그대로 봉황을 품에 안았나 봅니다.”

“품에 안은 것은 큰 누님이시겠지요.”

“하하하. 지부장님은 꽤 아쉬우시겠습니다?”

“능력자 연합은 이득 추구보다는 능력자 보호가 중점적인 집단이니까요. 어찌 보면 블루 지니어스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이런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지도 모릅니다. ”

속성 B 클래스 능력자인 강현우 지부장과 분석 타입 C 클래스 능력자인 박지웅 보스는 서로를 잘 아는지 허허 웃으면서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연이 말대로 박지웅 보스는 털털한 옆집 아저씨같이 생겼네.

그나저나 소피아는 방정맞게 달려와서 나한테 매달릴 줄 알았는데 다소곳한 표정과 몸가짐으로 김가민과 유민희와 함께 천천히 뒤따르고 있었다. 유민희는 여전히 뭐 씹은 표정이구만.

30분가량을 이동하다 보니, 1.5km 앞 땅속에서 위상력 5,600의 중상위 이형종이 감지된다. 지면에서 10m 아래다.

생김새를 보니 길이는 3m에 몸통 두께가 50cm 정도의 초거대 지렁이인데 앞 대가리가 커다란 드릴 같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검증단이 이동하면서 만드는 땅의 진동을 감지한 거 같다.

그런데 순식간에 땅속을 헤집으며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한다!

이쪽의 선두를 향해 대각선으로 오는 게 아니라, 땅속에서 검증단의 중심부에서 솟아 나올 생각인가보다.

나는 조금 걸음을 빨리해 영은이를 지나쳐 선두로 나간 다음 손가락에서 저출력 마나 레이저를 쏟아내 직선으로 검증단을 향해 돌진해오는 놈의 드릴 부분을 세로로 갈라버리고 긴 몸뚱이를 토막 쳐버렸다.

D 클래스일 때도 중상위 코끼리우로스를 잘라버렸는데 C 클래스가 되고 위력이 더 늘어났더니 뭐 두부네 두부야.

내 앞의 땅이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하니 그 순간을 목격한 프랑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흠칫 놀라버린다.

내 마나 레이저는 무색투명하니까, 그냥 손가락질 몇 번 했더니 땅이 뒤집어진걸로 보이겠지.

그런데 레이저 범위가 더 늘어난거 같다. 거의 300m까지 뻗어나가는데?

연습할때는 짧은 범위에서 쏴내서 길이쪽은 확인을 못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100m가 더 늘어났다.

“서하? 무슨 일이니?”

영은이는 대열을 멈추게 하더니 내 곁으로 달려왔고 강현우를 비롯해 타임리버 아가씨들과 화랑 보스도 다가와서는 내 앞에 땅이 꺼진 모습에 입을 쩍 벌린다.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영은이한테는 존댓말을 써줘야지.

“땅속에 중상위 이형종이 있어서 죽였어요.”

“땅속이라고? 거기다 중상위? 어떻게 생긴 놈이지?”

강현우 지부장은 나와 내 앞에 뒤집어진 땅을 번갈아 보며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머리가 드릴 모양인 3m짜리 지렁이요.”

“웜 드릴러…! 윤미래!”

강현우 지부장은 뒤를 돌아보며 여자 이름을 부르는데 지부장을 따라 뒤쪽을 보니 사람들이 나랑 내 앞의 지면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네, 지부장님!”

“땅속에 웜 드릴러의 사체가 있다. 끄집어낼 수 있겠나?”

“네!

저 여자는, 박물관에서 소울 리퍼의 함을 흙으로 덮었던 여자잖아? 목을 뒤덮는 희미한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은 강현우 지부장의 말에 땅에 두 손을 짚더니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저번처럼 TP가 쭉 빠져나가더니, 수 토막 난 웜 드릴러의 사체가 흙에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와아. 웜 드릴러가 완전히 토막 나 있어요.”

”허어…! 저 단단한 본 드릴을….”

“…이런, 서하의 등에 가려서 제대로 안 찍혔는걸. 화연? 아까 장면 찍었니?”

“마침 서하를 바라보고 있어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어이쿠! 저런 저런! 웜 드릴러를 아주 토막 쳐놨네 그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 화중강 아저씨가 호들갑을 떨더니 잽싸게 드릴러의 사체로 다가가서 허리춤의 군도 軍刀, 밀리터리 소드를 빼내 웜 드릴러의 시뻘건 외피를 가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굉장히 흥이 난 표정인데?

지부장이나 화랑 보스는 서로를 한번 보고 웜 드릴러의 드릴로 다가가 절단면을 손으로 만져보더니 혀를 내두른다.

“이 단단한 본 드릴을 아주 두부 썰듯 썰어놨군요.”

“그보다, 지부장께서는 블루 지니어스가 땅속을 감지한 거 보셨습니까? 저는 눈치도 못 챘습니다.”

“그러니 큰 누님이 탐욕스럽게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 하는 거겠지요. 이봐! 보조장! 와서 드릴 챙기게!”

“햐…. 이거, 레이저 절단기로도 자르려면 수일이 걸리는 걸 아주 물을 가르는 거처럼 잘라내 놓았군요.”

…지부장은 지금 영은이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는 게 안 느껴지나 보다. 그와 동시에 화중강 아저씨가 크게 웃으면서 손에 빨갛고 구불구불한 내장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으하하! 이거 보십쇼! 기적같이 적 내장이 멀쩡합니다!”

적 내장은 뭐에 쓰는 거길래 저리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인데.

영은이는 화연이의 인증기 영상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한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서하?  가능한 여기서 일어난 일은 모두 영상에 담아야 하거든. 앞으로 이형종이 나타나면 신호 먼저 주지 않겠니?”

“응. 알았어요.”

“그나저나 방금 그게 마나 레이저였니?”

고개를 끄덕거려주는데, 그 사이 화연이는 우리 타임리버 소속 생활 보조한테서 둥그런 용기를 받아 기뻐하는 화중강 아저씨한테 가서 아저씨의 손에 들린 적 내장을 뺏었다.

“이건 우리 서하 홀로 잡은 거니 타임리버에서 회수하겠습니다.”

“…! 아, 아니. 이것 보시오 타임리버 보스! 조, 조금만 맛만이라도 보게 해주면…!”

…화중강 아저씨는 자기 나이 절반도 안 되는 화연이를 보더니 당황하고 아깝고 허탈한 표정으로 사정사정하는데 화연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하에게 먹여야 합니다.”

“““…….”””

화연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죄다 날 바라본다. 저게 대체 뭐기에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잠시 후에 웜 드릴러의 사체에서 위상력이 가득 퍼져나오기 시작한다. 중상위면 E 클래스 능력자 이하만 만 흡수가 가능할 텐데, 검증단에 E 클래스는 없다. 그리고 생활 보조 능력자들은 위상력 흡수에 관심도 없어 보이고.

프랑 혼자 해체되는 웜 드릴러의 사체 위에서 흘러나오는 위상력의 일정량을 흡수하고 있었다.

웜 드릴러의 사체를 분해해서 부산물과 고기를… 회수하고 남은 찌꺼기를 땅속에 파묻은 능력자들은 다시 10분가량을 이동해서 숲에서 4km까지 이동했다.

저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아니, 뭐 나도 이런저런 이형종을 잡아먹고 그랬지만…. 지렁이는 좀 그런데.

아무튼, 적당히 땅이 평평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 도착한 우리는 영은의 지시에 따라 생활 보조들을 도와 커다란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프랑은 영은이의 부탁에 하늘에 올라가서 경계를 시작하고 나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는 걸 도와주려고 하는데 한사코 손을 저으며 저리 가라고 하길래 살짝 삐져서 천막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녔다.

안 도와줘도 된다고 하면 되지 저리 가라니, 너무하잖아!!

생활 보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로 5m 세로 10m의 얇은 천막 6개와 8m x 15m 천막 1개를 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생활 보조 한 사람이 두께 15cm의 넓적한 판 같은 걸 여러 장 들더니 각각의 천막 안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판이 집어 던져진 천막 안쪽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 내부를 가득 채우는 직사각형의 텐트가 펼쳐진 게 공간 지각에 잡혔다.

오오, 신기한데?

그리고 다른 생활 보조 아가씨가 가방이랑 전등을 비롯한 몇 가지 물품을 가지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내려놓고 천막 입구에는 대통령님이라고 적힌 명패를 걸었다.

아무튼, 흑갈색의 얼룩무늬 천막으로 다가가서 천막 입구를 들추니 반쯤 투명한 재질의 거슬거슬한 천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게 그 판에서 펼쳐져 나온 건가? 천을 만져보고 있으려니 소피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서하 군은 위상 세계 캠프가 첨인 거죠?”

“야지 노숙은 자주 해봤지만, 캠프는 처음이네요.”

소피아는 여전히 강아지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상체를 기웃기웃하면서 내 뒤를 서성였다.

“방금은 진짜 놀랬어요! 땅속에 있는 이형종도 감지하다니! 거기다 투명한 속성 탄도 처음 봤어요! 역시 블루 지니어스네요!”

금기를 자꾸 범하는 이 금발처녀를 어찌해야 좋을꼬.

“뭐, 이 능력 덕분에 많이 죽다 살아났죠. 최수한, 놀지 말고 가서 사람들 도와.”

“읏…. 네.”

내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최수한에게 명령을 내리니 잠시 흠칫흠칫 거리다 생활 보조들을 도우러 갔다. 소피아는 그런 최수한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날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서하는~, 오늘 어디서 잘 건가요?! 역시 여자들의 화원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타임리버 천막에서 잘 거에요.”

그러자 소피아는 활짝 웃으면서 내 팔을 껴안고 말하는데, 소피아의 생명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럼 여자들 천막에서 같이 자요~? 서하라면 다들 환영일 거에요!”

“싫어요.”

“에엑?! 왜요? 여자들이 가득한 곳은 즐겁다구요?!”

즐겁긴 개 코다. 여자만 있는 곳에 남자 한 명 있으면 청일점이라고 노예가 된다는 걸 누가 모를까 봐?

“소피아라면 남자들이 득실한 곳에 혼자 있고 싶어요?”

“…그건 다르죠!”

“같아요!”

그 순간 뒤에서 무시무시한 표정의 영은이가 다가오더니 두 손으로 소피아의 머리를 콱 잡아버린다!

“히익?!”

“서하는 우리랑 잘 거거든…? 뭣하면 소피아도 이 아줌마랑 같이 잘까…?”

겁에 질린 강아지 같은 얼굴이 된 소피아는 바들바들 떨면서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그 모습을 잠깐 내려보던 영은이는 손을 놓으면서 소피아의 엉덩이를 힘껏 후려쳤다.

철썩!

“꺄앙?!”

서양인 특유의 풍만한 엉덩이 살이 가죽바지 너머로 출렁하고 물결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이는데 소피아는 후려치는 힘에 밀려 앞으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주저앉아 빼애액하고 우는 소피아를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려니 영은이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화연이는 뭐하나 싶었더니 지부장이랑 화랑 보스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7명은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거 같은 너른 공간이 드러난다.

다른 천막들은 통로가 가운데 있고 군대 막사처럼 좌우에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여기만 다른 천막이랑 다르게 한쪽 벽에 통로가 나 있고 반대편은 무릎 높이까지 부풀어있었다.

신기해서 손으로 눌러보니 공기가 가득 찬 에어 매트리처럼 푹신푹신하다. 거기다 천 재질이 이래서 그런지 마치 고급 침대 같은 감촉이다.

그 위에는 침낭과 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이 있었고 한쪽 벽에는 화연이와 영은이의 물건 가방이라고 생각되는 게 놓여있었다.

날 데려온 영은이는 자기 소지품 가방을 뒤지다가 동그란 화장품 병 같은걸 꺼내더니, 뚜껑을 따고 자기 입에 칙칙 뭔가를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매트리스에 앉으면서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없어서 편하게 말하니 한참을 입안에 뭔가 칙칙 뿌리던 영은이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날 돌아본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시기가 꿈틀거리며 용트림 치기 시작했다.

맞아, 저 얼굴, 그날 그때와 비슷한…!

“17일동안, 서하의 막대 사탕 맛을 못 봤어. 영은이는 이제 못 참아!”

어어?!

영은이는 뜨거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푸시식 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즈 플레이트 아머가 타이즈 형식으로 돌아오고, 뒤이어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서 앉더니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 밖에 사람들이!!”

황급히 바짓춤을 쥐니까 영은이는 아예 힘으로 벗기기 시작하면서 잔뜩 욕망이 깃든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괜찮아! 바나나랑 소시지로 연습한 테크닉을 보여줄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잔뜩 성나서 꿈틀거리는 내 남근을 보더니 황홀한 표정이 되면서, 한입에 쑤욱 삼켜버렸다!

“정서하 씨? 걸음이 이상하네요. 괜찮으세요?”

“아, 오늘 처음 입은 옷이라서 좀 어색해서요. 하하.”

“그런가요? 포스피드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니, 정말 비싼 옷이네요.”

…김가민 2팀장은 다행히 눈치 못 챈 듯 하다.

갑자기 잔뜩 빨려나 간 정기 때문에 조금 아랫배가 허하다. 이상하게 영은이 입안이 짜릿하고 뜨거워서 순식간에 절정에 오른 거 같아. …혹시 입안에 뿌린 그거 때문인가?

영은이는 저쪽에서 한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각각의 책임자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ℓ에 가까운 정을 삼켜서 위가 잔뜩 늘어난 게 보이는데 무척이나 만족했는지 얼굴에 홍조랑 윤기가 좔좔 흐르네 그냥.

…근데 그걸 화연이도 눈치챘는지 대화 중간중간 날 힐끔거리면서 보는데 좀 무섭다.

점심을 많이 먹어둬야겠다.

============================ 작품 후기 ============================

그냥 가지마시구 추, 추천 한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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