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5 C 클래스. =========================================================================
공간 지각 덕분에 선잠을 들 수 있어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할 때 눈을 떴다.
프랑은 여전히 기절한 채였는데 산처럼 불러온 배를 보니 좀 난감하다. …이제 육체가 생겼는데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쭈글쭈글하면 어떡하지? 힐링 웨이브로 치료가 될까?
다시 한 번 남산만큼 부푼 배를 쓰다듬었더니 민감한 곳에 자극이 왔는지 프랑이 미약한 신음을 흘리다가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으응…. …아휴. 또….”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한숨을 폭 쉬는 프랑은 자기 배를 쓰다듬으며 힘겹게 일어서려 하길래 잽싸게 팔을 잡아서 일으켜 세워줬다.
“무게감이라는 거…. 생각보다 대단하네요.”
얼굴을 붉힌 프랑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아무래도 무거워진 몸 때문에 떠오르질 못하나 보다.
…어찌어찌 프랑의 배를 비우는데 1시간을 쓰고서야 귀환 포인트를 찾아 출발할 수 있었다.
“저기…. 프랑, 미안해.”
“네? 뭐가 미안하신가요?”
차마 말을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으려니 프랑도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면서 내 등에 올라타서 얼굴을 가리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 프랑도 알 텐데? 그렇게 숨어봤자 공간지각으로 얼굴이 다 보인다는 거….
“시, 신경 쓰지 마세요오오.”
모기만 한 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한 프랑은 한동안 내 등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정신을 차린 프랑은 산처럼 불러와 있는 배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살살 쓰다듬으며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모습이었다. 나는 프랑이 뭔가 생각이 있는가 싶어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프랑이 이상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
얌전히 앉아있던 프랑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점점 의아한 표정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혹시나 싶어서 한 가지를 지적해주니 안색이 새파래져 버렸다.
“프랑…. 이제 몸이 있잖아.”
“…!!!”
그저께까지만 해도 영체였었고 육체를 얻은 뒤로는 사랑을 처음 나눴으니까….
어쨌든 나는 괜찮았지만, 프랑이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1시간이 지나고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프랑은 이제 몸이 생겼는데도 몇 가지 영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 같아.”
붉어진 얼굴을 애써 달래고 있는 프랑에게 입을 여니 프랑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틈으로 날 바라본다.
“어젯밤에 우연히 확인했는데, 프랑의 애액은 바닥에 떨어졌다가 다시 기화하면서 몸으로 흘러들어 갔거든? 근데 프랑의 몸 안을 투시해보면, 신체 기관이 모두 있단 말야. 하지만 혈관을 타고 흐르는 건 피랑 비슷한 거 같지만, 피가 아닌 거 같아.”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프랑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리다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펴보다가 커다란 나무에 다가가서는 두 손으로 나무를 톡톡 건드리기 시작한다.
프랑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나무에 손을 얹은 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그 순간 쑥 하고 팔이 나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영혼석에서 TP가 조금씩 줄어드네? 이정도 양이면 초당 0.1 TP인데. 그와 동시에 눈에서 프랑이 사라졌다! 아니, 공간 지각으로 여전히 그 위치에 있는 건 맞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아!
황급히 마나 비전을 켰더니 그제서야 자기 몸을 살펴보는 프랑이 보인다!
영혼석에서는 꾸준히 적은 양이지만 TP가 소비되고 있었다. 사물을 통과하거나, 투명하게 변하는 데 TP를 쓰게 된 건가?
“으음…. 아무래도 온전히 육신이 생긴 건 아닌가 봐요. 영체일 때는 마음대로 사물을 통과하구 다녔는데, 이젠 통과하거나 몸을 숨기는 데는 조금씩 TP를 쓰게 됐네요.”
프랑은 모습을 원래대로 돌리더니 약간이지만 놀란 표정으로 날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농담삼아 말했던 대로 정말 반인반령이 돼버린 거 같은걸.”
“후후.”
프랑은 방긋 웃으면서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고 했다. 사물도 통과할 수 있고 투명화도 할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해봐도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거 같아.
언제나처럼 내 등에 매달려오는 프랑은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면 어쩌실건가요?”
“1, 습격자의 배후를 찾는다. 2, 조진다.”
“……”
간단한 대답을 들은 프랑은 멍한 표정으로 내 뒤통수를 내려다본다.
“영은이라면 그자들을 금방 찾아줄 거라고 생각해.”
“능력자가 보복을 위해 힘을 쓰는 건, 능력자 협회에서 제재를 받을 행위에요. 아무리 서하가 특별한 능력과 보통 능력자를 뛰어넘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지만….”
프랑이 말하는 부분을 생각 안 한 건 아닌데 내 눈앞에서 머리가 사라지면서 죽은 경호원 누나를 생각하면 속이 싸늘해지는걸. 적어도 그 누나와 다른 4명의 형과 누나들을 위해 적어도 주모자의 모가지는 따버릴 생각이다.
“서하의 능력은 특별한 만큼 그 특징이 두드러져서 현실에 능력을 쓴다면 금방 특정지을 수 있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별 말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프랑도 좀 더 걱정되기 시작하나 보다. 프랑이 계속 걱정하게 하고 싶진 않아서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후우우. 위아래 분간 못 하고 날뛰지는 않을 거야. 그랬다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랑 화연이랑 영은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복수할 수단은…. 영은이한테 가르쳐 달래야지. 아니면 아빠한테 물어보던가.”
즉, 기억해뒀다가 이자를 수백 배 곱해서 갚아주겠다는 거다. 내가 B 클래스를 넘어 A 클래스가 되는 순간, 나랑 원수진 인간들은 지옥을 볼 거다. 표현 그대로!
점점 복수할 놈들이 늘어난다. 양아치 이무기, 내 흑역사를 자극하는 별명을 지은 인간, 날 죽이기 위해 뒤에서 사주한 개자식.
적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까?
내 말 다음에 이어진 생각을 읽었는지 프랑은 쓴웃음을 짓더니 내 뺨을 어루만져준다.
“그 복수에는, 저도 데려가 주실 거죠?”
“어? 안 도와주려고 했었어?”
“후후. 떼놓고 가시려 했으면 몰래 숨어서라도 따라가려 했어요.”
내 웃음기 섞인 말에 프랑도 미소 지으면 더 화답해줬다. 아무튼, 나가면 내 조기 진입 허가증도 나왔겠지? 화연이를 잘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이형종에 관해서 공부하고 고위 이형종도 잡아서 얼른얼른 커야지.
자꾸 흘러내리려는 임시 마스크를 다시 조여 매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화산재가 점점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겨우 하룻밤 사이지만 나무나 풀에 시커먼 화산재가 잔뜩 쌓인 걸 보니 다음 우기 때가 살짝 걱정된다.
어디 보자. 3월 28일부터 비가 쏟아졌으니 다음 우기의 시작은 9월 말인가? 그전에 가능하면 미리 들어와서 고지대에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상 세계로 이동했다가 잿가루 잔뜩 섞인 물을 마시기는 싫으니까.
마나 모드로 가볍게 달리면서 공간 지각으로 주위를 훑으며 숲 속을 이동하다가 1시간마다 잠시 멈춰서 프랑의 몸에 TP를 충전시켜주길 반복하면서 이동했다.
점심 즈음에는 레오파드 캣 한 마리를 잡아서 구워 먹고 다시 3시간쯤 이동하니 제법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화산재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지 하늘이 밝아지고 대지에 내려앉은 화산재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주아주 옛날에 백두산이 한번 분화했던 적이 있었다던데, 그때 바람을 타고 날아간 화산재가 일본에까지 다다랐다던가. 못해도 수백 킬로미터, 잘하면 천 킬로미터가 넘었을 거리인데도 거기까지 날아간 걸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범위다.
코끼리우로스 산의 분화는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랑 비슷하면 비슷했지 못하진 않을 거 같은데…. 다음에 들어올 땐 식수랑 식량도 다 챙겨서 들어와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뛰다가 공간 지각에 가슴 산에서 봤던 귀환 포인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장소를 발견했다.
“프랑. 귀환 포인트를 찾은 거 같아. 이대로 1.4km를 가면 볼 수 있겠어.”
“네!”
프랑은 내 말에 얼굴이 환해진다.
희미한 빛무리가 하늘거리는 곳.
11일 만의 귀환이다.
프랑과 나는 숲 속의 꽤 넓은 공터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귀환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잔디가 공터 전체에 펼쳐져 있고 이름 모를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자, 그럼 돌아갈까?”
오늘을 기준으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뀔 거라는 예상을 해보니 조금 두근거린다.
“서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응?”
마악 귀환 포인트에 위상력을 쏟아부으려는데 프랑이 뒤에서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날 불렀다. 뒤를 돌아서 프랑을 바라보니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내 목에 걸린 펜던트를 살짝 어루만진다.
“귀환하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응.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난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다가….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이 상태로 귀환하면 다른 사람이 볼까 봐 그러는 거야?”
“네. 그러니까 이번에 나갈 때는 모습을 숨긴 채 다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계속 TP를 쓰잖아? 거기다 프랑도 이제 몸이 생겼는데 언제까지고 숨어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렇긴 하지만….”
잠시 입장과 퇴장에 관해 이리저리 생각해보던 프랑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라며 물어왔다.
“프랑 말도 일리가 있어, 거기다 TP를 쓴다지만 그 양이 얼마 되지도 않으니까 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휴대용 측정기나 감별기에서 TP를 쓰는 모습이 포착되면 오히려 더 난리가 날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거지. 프랑은 나랑 뗄레야 뗄 수 없는 반 정령이라고. 아니, 그냥 정령으로 만나서 계약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처음 등장한 정령이라 이목이 많이 쏠리긴 하겠지만,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높아지고 많이 강해진 날 어찌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해.”
내 말을 들은 프랑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된다. 덩달아 나도 귀환 했을 때 내 능력을 얼만큼 공개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했더니 조금 골치가 아프다.
“네. 그럼 그렇게 해요.”
“돌아갔을 때 어디까지 밝힐지도 좀 고민되네.”
“우선 마나 시브에 대한 건 무조건 숨겨야 해요. 으음…. 신체 강화는 숨기지는 못하겠지요?”
“저격용 총에 맞아도 멀쩡한 걸 보여줬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속성 능력도 숨기지 못하려나….”
“마나 탄에 대해서는 뭉뚱그려서 공간 조작과 관련된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어떠신가요?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는 서하의 속성 능력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음. 그래야겠다.”
“그럼 회복 능력이랑 마나 시브에 대한 것만 숨기는 걸로 해요. 공간 조작은, 딱히 숨길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일부러 대놓고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응. 정리하면 프랑을 나랑 계약한 정령이라고 알리고, 공간 지각에 공간 조작, 신체 강화 능력에 마나 탄, 마나 레이저, 마나 포를….”
그러다 보니 프랑의 아름다운 외모에 눈이 간다.
프랑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보지 않을까? 프랑의 미모는 워낙 대단하니까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걸?
일반인들이라면 프랑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죽었을테지만, 능력자. 특히 신체 강화 능력자라면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크고….
으음. 이걸 말할까 말까…. 프랑은 내가 말을 하다 말았더니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프랑을 한 번이라도 봤던 능력자라면 대중매체를 통해서 프랑을 보는 순간 알아채지 않을까?”
“그렇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어? 왜?”
평온한 모습으로 단호하게 부정하는 프랑을 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생각 못한 게 뭐가 있지?
“제 모습을 아는 레이드팀 알디온은 거의 괴멸당했지요. 저에게 구혼을 보내던 사람들은 전부 일반인들이었구요. 평기사가 된 후 몇 번 포위를 위한 대외 지원을 나가긴 했었지만, 그때마다 투구를 눌러쓰거나 얼굴을 가리는 복장으로 나가서 최대한 외모의 노출을 꺼렸답니다. 그러니 70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제 모습을 기억하는 일반인들은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레이드 팀 괴멸…. 그나저나 외모를 숨기고 다녔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리고 시노미야 님을 모시기 시작한 뒤로는 가문의 저택을 나간 적이 없었어요. 그 뒤로 70년이나 지났는걸요? 보더라도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저와 연관 점을 짓지는 못할 거에요. 아니라면….”
그러면서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날 힐끔 바라본다.
“서하는, 긴 머리를 좋아하시나요?”
“응. 완전 좋아해.”
즉답하는 내 모습에 프랑은 활짝 웃더니 어깨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던 길이의 머리카락을 엉덩이 아래까지 쭈욱 늘려버렸다.
“와…. 그렇게도 되는구나?”
“화연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지요. 그러니까, 그 부분이 걱정이시라면 조금 모습을 바꾸는 걸로 해결될 거라 생각해요.”
하긴, 손도 약간 모양을 바꿔 칼처럼 만들 수 있으니까. 아무튼, 어깨 위로 찰랑거리던 백금색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앞머리도 잔뜩 길러서 귀 뒤로 살짝 넘긴 모습이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에서 순식간에 청초하고 순백의 아가씨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더, 덮쳐서 찡그린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필사적으로 달래면서 프랑을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면서 살펴보니 진짜 분위기를 포함해서 전혀 다른 사람 같아졌다.
“…머리카락만 더 길어졌을 뿐인데, 청순 소녀가 청초한 공주님이 돼버렸네.”
“고, 공주님이라니…. 아휴.”
입을 헤 벌리고 감탄했더니 프랑은 얼굴을 붉히면서 두 손으로 뺨을 가리고 부끄러워한다. 프랑의 움직임에 찰랑찰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보니 덩달아 내 심장도 흔들린다!
그러다가 영혼석이 생각나서 펜던트 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절반 정도 남은 TP를 채우고 나가야겠지?”
“웃. 아,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채워야겠죠…?”
살짝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니 지금까지 쓴 TP를 보충한다면, 받아들여야 할 쾌락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 생각하나 보다.
저 청초한 공주님 같은 외모의 프랑이 쾌락에 헐떡이는 모습이 급 기대되기 시작한다!
내 TP는 1분에 1%가 차니까. 1시간에 180,000 TP 여유를 생각하면 16시간은 충전해야겠지?!
영혼석에 대해 떠올린 건 정말 나이스였어! 흐흐흐.
“그, 그럼 저는 영혼석 안에 있을…게요?”
“어?! 왜?! 어째서?! 뭐 때문에?!”
뭣이?! 왜 들어가 있으려고 하는 건데?! 내 격한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는지 프랑이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
“그, 부…. 부끄러운걸요!”
“안돼!”
“에엑?!”
칼같이 거절하니 프랑은 긴 백금발을 찰랑거리며 살짝 화난 얼굴로 항의하려 하길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충전할 땐 그냥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숨으려는 건데? 글구 프랑이 쓴 게 어림잡아 200만 TP야. 시간으로 따지면 11시간 동안 꾸준히 TP를 넣어야 한다구. 프랑은 그걸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어?”
“읏….”
11시간이라는 말에 안색이 파리해진다.
“그러니 프랑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두고 충전해야 하는 거야! 절대 프랑이 바뀐 모습으로 쾌락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라고!”
“네엣?! 제 그런 추태를 보고 싶으셨던 거군요?!”
어?! 어째서 들켰지?! 한동안 프랑과 옥신각신하면서 다투고 있으려니 결론이 안 난다!
“우우! 서하는 진짜 변태에요!”
“프랑도 그런 변태를 좋아하는 변태면서!”
“…….”
“…….”
씩씩거리면서 프랑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프랑도 잔뜩 뿔난 표정으로 입에 바람을 넣고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가위바위보? 그건 뭔가요?”
응? 프랑은 뿔난 표정을 풀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지? 가위는 시저스 바위는 락? 보는? 에이 만국 공통인 제스쳐로 알려줘야겠다.
“이렇게, 주먹이랑 바위랑 가위로 해서 동시에 셋 중 하나를 내면서 승부하는거야.”
“아, rock, paper, scissors 말이네요.”
보는 종이라고 하나보다. 아무튼, 프랑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빛내며 자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알겠지만 단판 승부야. 무르기 없기, 동시에 내기!”
“물론이에요!”
정신 가속의 위력을 보여주지!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이건 거짓말이에요….”
“자. 내가 이겼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아버린 프랑을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내 얼굴을 본 프랑은 울컥하는 표정을 짓더니 격하게 항의한다!
“서하는 치사해요! 능력을 쓰는 게 어디 있어요?!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은…!”
“말 안 했잖아.”
“…….”
입을 다물어버리는 프랑.
“능력 쓰기 없기라고 말했어야지! 사전에 룰을 명시하지 않아 놓고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다니. 프랑의 기사도 정신은 고작 그 정도였어?”
“으극…!”
분하다는 심정을 얼굴로 표현하며 뾰로통해진 프랑은 점점 울상이 되더니 날 올려다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마 프랑은 11시간 고문 풀코스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뭐, 나도 미리 말 안 한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프랑은 내 말에 하늘에서 구원의 빛이 내려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와아, 흰 꽃이 가득 핀 잔디 공터에 저렇게 앉아서 저런 표정을 지으니까 진짜 한 폭의 그림 같네. 휴대폰 배터리가 다되서 사진을 못 찍는 게 아쉬울 정도야.
…그러고 보면 프랑이 만드는 전기랑 위상석 발전소에서 만드는 전기랑 종류가 똑같으려나? 프랑의 전기로 휴대폰 충전은….
말자, 괜히 고장 나버리면 찍어둔 사진이 날아가 버릴 거야.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10만 TP는 남겨놓고 20만을 한 번만 충전해보자. 프랑의 정신에 얼만큼 부하가 걸리는지 확인해보고 해야지, 무조건 막 밀어 넣었다가 프랑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내 말에 얼굴을 환하게 물들이며 기뻐하는 프랑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버렸다.
“서하…! 못된 개구쟁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해요!”
…….
“40만 넣자.”
“에엑?!”
“60만 넣을까?”
“…….”
삐져서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아무튼, 살짝 얼굴을 돌리고 조금 투덜거리는 프랑을 내려다보며 펜던트 알을 열어 주머니에 곱게 싸여있는 프랑의 영혼석을 집어 들었다.
“!!”
집게손가락으로 살짝만 집었는데도 등을 곧추세우면서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는 프랑을 보니까 20만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그럼, 충전한다?”
“네엣.”
잔디 위에 펼쳐져 있는 프랑의 긴 백금색 긴 머리카락을 한번 봤다가 두 손으로 영혼석을 쥐고 직접 영혼석 안에 TP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흐극! 으그그그극! 아으읏…!”
TP가 영혼석 안으러 들어가기 시작하니 두 손으로 원피스 자락을 콱 움켜쥐더니 이빨을 앙다물고 표정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쾌락을 견디기 시작했다. 곧이어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드러난 새하얀 피부가 점점 분홍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읏…!”
고개를 푹 숙이다가, 상체를 숙이더니 잔디밭에 몸을 웅크린 자세가 되어버렸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긴 백금 발이 눈을 간지럽히고 분홍색으로 물든 목덜미에 한 방울 땀이 흐르는 모습은 무척이나 관능적인 거 같다.
“!!!”
잠시 후 폭발적으로 TP가 위상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으음…. 이거, TP가 영혼 석에 생각보다 빠르게 흡수된다. 하지만 프랑은 흡수하는 TP 양에 따라서 쾌감도 더 강하게 느끼는 건 아닌지 5분에 20만 TP가 되니 어느 정도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 20만 충전됐어.”
“하악! 하악! 하아악!!”
달뜬 신음을 격하게 흘리며 어질어질 거리는 프랑은 한번 바르르 떨었다가 잔뜩 땀을 흘리고 상기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버, 벌써…인가요?”
“응. 생각보다 TP가 빠르게 충전됐어. 이 정도면 1시간 쉬고 5분 충전하고 1시간 쉬고…. 반복하면 되겠다.”
“아읏….”
프랑은 축 늘어지더니 힘없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몸을 보니 지금 손댔다간 자지러질 거 같네.
“계속할 수 있겠어?”
“…네. 그 정도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봐도 정신줄을 잘 잡고 있는 거 같다.
그 뒤로 1시간마다 충전을 반복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총 400만가량의 TP를 확보했지만…. 마지막 충전 때는 프랑이 완전히 발정 나버려서 그녀의 정욕을 해소해준다고 다시 1시간을 써버렸다.
내 위상력을 받아들여 환하게 빛나는 빛 덩어리들을 보다가 프랑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그녀는 언제 발정 났냐는 듯이 청초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내 곁에서 빛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분위기가 머리스타일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구나.
“서하?”
앗, 너무 빤히 바라봤나 보다.
“아, 프랑이 너무 예뻐서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 어휴. 화연이나 영은 앞에서 너무 그러시면 안 돼요. 아셨죠?”
“응.”
프랑은 내 사랑이 치우칠까 봐 걱정인가 보지만, 이미 확실한 룰을 내 마음속에 만들어놨다.
그녀들이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내가 확실히 처신해야지. 그리고 내 마나 비전에 더이상 현혹되는 여자들도 생기지 않게 하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프랑도 내 몸에 팔을 두른 걸 확인하고 한 손으로 마지막 위상력을 흘려 넣으니 공간이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터져 나올 빛에 대비해 미리 눈을 감고 공간 지각을 활성화하며 빛의 출렁거림에 몸을 맡겼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곧 150화도 넘어가겠네요.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