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0 3회차 위상 세계. =========================================================================
20분 정도 뛰다 보니 토사에 묻힌 코끼리우로스 한 마리가 감지에 걸렸다.
“아, 코끼리우로스네요. 아직 살아있나 봐요.”
“응. 위상석도 있네.”
그녀석은 발 아래 20m 위치에 묻혀있는데, 공기가 없어서 숨도 못 쉴 텐데 아직 살아있는 걸 보니 진짜 놀랍다. 사람이라면 진작에 죽었겠지.
“잘됐다. 마나 레이저를 한번 시험해봐야겠어.”
저놈의 위상력은 24,275에 위상석이 8,713이었다. 2인자보단 못하지만, 꽤 높은데, 저놈에게 마나 레이저가 통하면 2인자놈에게도 통하겠지.
손에 TP를 집중해 토사 아래쪽으로 마나 레이저를 분사했더니 쑥! 하고 무색투명한 선이 코끼리우로스의 몸, 코끼리 부분의 척추를 꿰뚫고 나갔다.
코끼리우로스는 마나 레이저가 등뼈를 관통하고 지나가니 경련을 일으키는건지 몸의 근육이 울렁울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놈의…. 년의 몸체에 마나 레이저를 분사해봤는데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닿은 부분이 잘려나간다.
“…대단해요.”
옆에서 같이 공간 지각으로 지켜보던 프랑이 날 보며 눈을 반짝이면서 감탄사를 흘렸다. ...아오. 내가 왜…. 그 고생을 하면서 마나 탄을 쏴대고 있었지? 그냥 마나 레이저로 쓱 긁으면 다 죽어버렸을 텐데.
방금 확인한 거지만, D 클래스가 돼서 그런지 위상력이 늘어나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마나 레이저도 유효 범위가 100m에서 200m까지 두 배로 늘어났다.
“이래서 정보라는 건 중요한 거야. 진작 알았으면 소굴에 코끼리우로스가 모였을때 그냥 달려들어서 양손에서 마나 레이저를 뽑아내 다 잘라버렸을 텐데.”
물론 조금의 위험부담은 있었겠지만.
내 투덜거림을 들은 프랑은 빙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200m의 거리에 중상위 이형종의 몸을 갈라버릴 수 있을 정도니까, 상위 이형종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 같아요!”
“음. 그렇겠지? 프랑이 전기로 경직을 주면서, 난 이리저리 피하면서 마나 레이저를 쏘아내면 상위 이형종도 잡을 수 있겠다.”
좀 낙관적이려나?
으음. 중상위랑 상위급의 차이를 화연이한테 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근육을 움찔거리는 코끼리우로스를 보며 마지막으로 공간 조작을 시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거리를 썼다간 내가 기절해버릴 테니 근거리로 테스트해봐야지.
10 TP 마나 탄을 토사 속 10m 깊이에서 터트렸더니 15m의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는데 구멍의 바닥부분의 흙더미가 불쑥불쑥 움직이기 시작한다.
토사라서 그런지 맨땅처럼 단단하지가 않고, 구덩이가 생기면서 흙의 압력이 사라졌는지 바로 아래 묻혀있던 코끼리우로스가 두 손으로 흙을 치우며 힘겹게 기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하체는 코끼리지만, 상체는 사람이라서 저 몸을 자르는 건 조금 거부감이 드는데….
“서하, 저것은 이형종이에요. 자비 같은 건 필요 없는 괴물이라구요?”
내 머뭇거림을 눈치챈 프랑은 날 바라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저건 괴물이지.”
등뼈가 잘리고 여기저기 날카로운 칼에 베인듯한 상처의 코끼리우로스는 몸체에서 내장을 쏟아내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언덕만큼이나 거대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구덩이 밖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코끼리우로스도 내 쪽을 보며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두 동강 난 등뼈 때문에 하체에 힘을 쓸 수 없는지 내 쪽으로 기어오지도 못하고 코끼리 몸체의 앞발과 두 팔을 격하게 흔들다가 갑자기 바윗덩이 하나를 집어 들어 내 쪽으로 집어 던졌다!
잽싸게 날아오는 바위를 피했더니 코끼리우로스가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게 들린다.
“Paimkite Dievo prakeikimas!”
“저거, 언어 맞지? 뇌도 크고 주름도 많아서 지성도 있을 텐데 저놈…. 년이 하는 말은 이해가 안 가네.”
“으음. 위상 세계에서는 모든 대화가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온다고 하더니…. 이형종과는 뭔가가 달라서 대화가 통하지 않나 봐요.”
“Kugal neatleis jums!!”
프랑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코끼리우로스가 뭐라고 또 소리치면서 바위를 마구마구 집어 던지는데, 내가 계속 피하니 울화통 터진다는 듯이 일그러져 있는 얼굴을 또 무시무시하게 일그러트린다.
그러다 바위나 돌멩이가 없어지니 흙더미를 집어 던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손가락에서 마나 레이저를 뽑아 코끼리우로스의 양팔을 잘라버렸다.
“kyaaaaahhh!!”
…양팔의 단면으로 뻘건 피를 뿌리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코끼리우로스를 보는 건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거 같다.
다시 마나 레이저를 뽑아내 앞발마저도 잘라내 버렸다
“Teda nufudyti! Teda fudyti net mirti!”
날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제거하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리니 뒤에서 프랑이 벼락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날 공격하려 하거나 위험 할 거 같으면 바로 쏘아낼 생각인 거겠지.
“kuuuuh, huuuuh.”
증오가 줄줄 흘러내리는 눈빛과 거친 숨소리를 무시하고 놈의 등 쪽으로 이동하니 상체를 돌리며 이빨로 날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상체만으로는 거대한 코끼리 몸체를 움직일 수 없는지 그냥 몸을 비트는 수준에서 끝나고 이빨은 나에게 닿질 않는다.
문득, 마나 모드 - 가속의 힘은 중상위 이형종에게 어느 정도가 통할지 궁금해져서 마나 모드 - 가속을 발동시켜 몸을 돌리며 계속 날 물어뜯으려 하는 코끼리우로스의 등뼈에 주먹을 질러 넣었다.
뻑!
“kyaaaah!!”
고개가 홱 하고 꺾이고 고통에 부르르 떠는 게 4배에 정확하게 직격당하면 어느 정도 충격은 주는가 보다.
“서, 서하?”
“응? 아, 마나 모드 - 가속을 켰을 때 공격력이 어느 정도일까 싶어서 시험해봤어.”
“아, 그러네요. 그럼 신체 강화만으로 E 클래스나 D 클래스도 측정해보시는 게 어떤가요?”
갑자기 코끼리우로스의 등에 주먹을 질러 넣은 내 행동에 움찔했던 프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나 모드가 아닌 신체 강화도 테스트해보길 권했다.
프랑의 말대로 E 클래스 수준의 신체 능력으로 주먹을 찌르니 맞은 부분의 코끼리우로스의 뼈가 부러졌고 D 클래스는 주먹이 몸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KYAAAahhh!!”
“…어쩐지 우리가 악당이 된 기분이야.”
고통에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는 코끼리우로스를 보니 기분이 찜찜하다.
“…….”
프랑도 별말을 못한 채 척추가 부러지고 폐에 구멍이 나서 피를 토하는 코끼리우로스를 조금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코끼리우로스의 하체에 손을 대고 근거리 공간 조작을 일으켰더니, 손이 닿은 부분에서 시작된 일렁임이 갑자기 코끼리우로스의 하체 전체로 퍼져나가며 하반신의 뼈가 가루가 되고 내장까지 뭉개져 버렸다.
“아?! 어, 어떻게 된 건가요?”
“…나도 모르겠어. 그냥 손을 대고 공간 조작을 일으켰는데….”
수련장에서 영은이가 가져온 비둘기를 터치했을 때는 그냥 전신에 일렁거림이 퍼졌다가 고깃덩어리가 돼버렸지?
프랑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전부 뭉개진 코끼리우로스의 하반신을 보며 무척이나 놀랬다.
“TP는 여전히 10%만 썼는데…. 손에 닿은 부분에서 공간이 일렁거리면서 이형종의 육체를 따라 퍼져나갔나 봐. 아무래도 접촉한 부분에서 일정 범위까지 퍼져나가는 거 같아.”
“nu…fudyti….”
어느새 살기도 적의도 모두 사라진 모습으로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던 코끼리우로스는 날 돌아보며 흐릿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Ir jfs mirti kugal….”
쿠갈? 쿠갈은 아까도 나온 단어인데.
“쿠갈이라는게 이름을 말하는 걸까? 아까도 한번 쿠갈이라는 단어를 꺼냈는데.”
프랑은 다 죽어가는 코끼리우로스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그게 개체의 이름이라면 코끼리우로스 종족의 지도자라거나 리더의 이름이 되겠네요.”
“그렇다면 쿠갈이 널 용서 안 할 거다 뭐 이런 뜻이려나?”
고개를 끄덕이는 프랑을 보며 다 죽어가는 코끼리우로스의 등에 손을 대고 다시 한 번 공간 조작을 일을켰다.
발톱 검으로 죽은 코끼리우로스의 가슴을 가르니 물컹거리는 진흙 같은 핏물이 뿜어져 나와서 기겁해버렸다.
거죽을 제외한 전부가 뭉개지는 와중에도 공간 조작은 위상석에는 영향을 안 주는지 멀쩡한 모습이라 위상석을 회수할랬는데, 비위에 좋지 않은 광경이다….
이놈도 이형종이지만, 상체는 여자 사람과 똑같으니까….
…괜히 기분만 나빠졌다.
“왜 그러시나요?”
“응? 아, 아냐. 1회차 때 기억이 떠올라서.”
내 모습에 프랑은 "아." 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면서 더는 물어오지 않았다. 더 물어왔다면 나도 곤란했을 거야.
다시 한 번 칼집을 냈더니 물컹거리는 게 더 빠르게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데 운이 좋은지 위상석이 그 틈에 휩쓸려 밖으로 빠져나옸다.
발톱 검으로 휘저어서 위상석을 골라냈더니 걸쭉한 핏물이 달라붙은 내 주먹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물빛 위상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8,713 TP의 위상석이니 이걸로 87억인가? 돈 참 벌기 쉽네.”
위상석에 흙을 뿌려서 핏기를 조금 지우고 챙기니 코끼리우로스가 죽으면서 퍼져나온 위상력은 곧 내 주변을 맴돌다 그대로 프랑의 몸으로 흡수되는 게 보였다.
물빛 위상력이 하얀 프랑에 둘러싸이는 모습이 굉장히 신비로워서,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버렸다.
…사진?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촬영상태로 바꾸고 프랑을 화면에 담아보니,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프랑의 모습이 휴대폰의 액정에 그대로 담아진다!
정령인데 사진에 찍히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프랑의 모습은 보이는데 물빛의 위상력은 화면에 담기지 않고 있었다.
감동을 담아 셔터를 눌렀더니 휴대폰에서 띠띠띠, 찰칵하는 소리가 나며 프랑의 모습이 휴대폰에 담겼다. 셔터음에 프랑이 내 쪽을 돌아보더니, 휴대폰을 보고 눈이 동그래지며 나한테 다가왔다.
“사진인가요?”
“응.”
“…제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다니, 신기해요.”
“이제 반은 사람 반은 정령이라는 거겠지?”
웃으면서 프랑에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니 프랑도 활짝 웃으면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 뒤로 구덩이를 빠져나와서 코끼리우로스 산으로 이동하다 보니 토사 속 이곳저곳에 죽은 코끼리우로스 시체가 보였지만 위상석도 없고 볼일도 없어서 저 멀리 보이는 코끼리우로스 산으로 뛰어갔다.
TP가 전부 회복될 때를 맞춰서 놈들의 소굴 입구가 있던 산 중턱으로 돌아가니 토사로 파묻힌 입구 안쪽에서 횃불을 쌓아놓고 코끼리우로스 놈들이 무기로 땅을 파내고 있는 게 보였다.
하나뿐인 입구가 막혀서 공기가 안통할테지만 굴 자체도 넓어서 공기 저장량도 많을 거다. 게다가 아까 내 손에 죽은 놈도 그렇지만 위상석을 가진 것들은 괴상하게 강해서 토사 속에 파묻혀도 수십 분을 생존할 정도니까, 그전에 입구를 뚫겠지.
“…저 2인자 자식, 상위 이형종이 됐어.”
“…….”
2인자 자식은 흙을 파내고 있는 수십의 코끼리우로스 뒤에 서서 십수 미터 짜리 금속 창을 휘두르며 뭐라 뭐라 외치고 있었는데 그놈 뒤에 아홉 마리의 코끼리우로스가 죽어있었다.
…개자식, 동족을 죽여서 자기가 진화한 거야?
원래 위상력이 24,922에 심장에 있던 위상석이 23,001이었는데 지금은 위상석은 없고 위상력이 25,000이 되어있는 게 보인다.
대신 아까 봤을 때랑 다르게 몸집도 약간이지만 더 커지고 피부색도 거친 황갈색에서 검붉은 색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내 쪽을 힐끔거리면서 살펴보고 있는 게, 내 위치를 파악한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위상력 감지범위가 1km는 확실히 넘어간다는 거겠지.
남은 47마리의 중상위 이형종은 전부 위상석도 없는 15,000가량의 허약한 놈들이었다.
아까 전투 중에 본 놈 중에 위상석을 가진 것들은 7마리였는데…. 전부 저 자식이 잡아 죽였나 보다.
“…저질 최악의 하등생물보다 못한 쓰레기네요.”
내 이야기를 들은 프랑은 내가 맞았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격노하며 꼭 쥔 주먹을 떨고 있었다.
“…위상석도 없어. 챙길 것도 없으니 마나 포로 날려버리자.”
기백의 코끼리우로스를 잡으며 중위급 위상석이 몇 개 떨어졌었는데 내 마나 탄의 폭발에 휩쓸려 사라졌는지 저 2인자 자식이 회수해서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1.5km 범위 안에 위상석은 내가 가진 것 뿐이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우두머리를 대비하려면 저 쫄따구들도 다 날려버리는 게 속 편하겠지.
굳은 얼굴로 말하니 프랑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것들에게는 기사의 자비가 필요 없는 것들이에요.”
자리에서 벗어날때까지도 2인자놈은 거칠게 소리지르며 코끼리우로스들을 몰아세워 땅을 파내게 하고 있었다.
...대지 속성의 코끼리우로스는 다 죽은건가? 대지 속성이라면 좀 더 수월하게 파낼 수 있었을텐데 무식하게 꼬챙이같은 무기로 땅을 파내게 하고 있네.
뭐 나랑은 상관없지.
충격파를 대비해서 4km까지 떨어진 다음 코끼리우로스 소굴의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른손의 손바닥에 TP를 한껏 응축하며 회전시키기 시작하니 손이 살짝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가슴 산꼭대기에서 연습할 때 시험해봤지만, 응축시킬 수 있는 안정 수치가 5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상 충전하려고 했다간 회전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자폭하는 꼴이 될 거 같았다.
…쏘고 바로 달려가서 위상력을 흡수해야겠다.
5,000 TP가 손바닥에 응축되서 무색투명한 공 같은 게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프랑은 내 마나 탄을 볼 수는 없지만, 공간지각으로 느낄 수는 있는지 눈을 빛내며 뒤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간다. 마나 포!”
띠이잉!!
마치, 거문고 현이 끊어질 때 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주먹만 한 마나 탄이 물빛을 찬란하게 내뿜으며 소굴 입구 어림으로 날아간다.
마나 탄에 비해 별달리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날아간 마나 포는 곧….
꾸구구구구궁….
거친 굉음과 약간의 진동을 남기며 산 한쪽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버렸다.
흙먼지나 충격파 같은 잡스러운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듯이 깔끔하게 크레이터만 만든 모습을 보고 마나 시브를 신체 강화로 만들어 미친 듯이 달렸다!
늦으면 2인자 자식의 위상력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거야!
마나 시브로 신체 강화를 전력으로 돌려 번개같이 되돌아갔더니 물빛 위상력이 한데 뭉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게 공간지각으로 보인다!
1km짜리 거대한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거 같은 곳에 도착하니 군데군데 구멍이 보이는데, 코끼리우로스 소굴의 남은 흔적인 거 같다.
일단 빠르게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 바닥에 고여있는 위상력에 다가갔는데 한가득한 위상력은 조용히 고여있고 그중 일부분만 나에게 이끌려서 접근하더니, 내 피부를 통해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위상력이 …40,101? 아, 101은 위상 세계 들어와서 오른 거니까….
5,000?
“…뭐야. 왜 이거밖에 안 들어와.”
남은 20,000은 어디 갔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빛 위상력 덩어리들을 손으로 휙휙 저어보지만 위상력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밀려나거나 할 뿐 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25,000에 5천이면 잡았을 때 고작 20%만 먹는 거야? 그럼, 레이드에 가면 참가자 수 나누기 20% 해서 나누는 거…?
…진짜?
“헐….”
이런…. 씨!! 그 쌩고생을 해서 개같이 왔다 갔다 뛰었는데 고작 20%?! 장난해?!
드루와!
얼릉 드루와!
짜증이 한가득 나서 마나 시브를 거세게 돌리면서 위상력 덩어리에 두 팔을 파닥거리…니까 위상력이 점점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지!”
계속 마나 시브를 전신으로 돌리니 위상력들이 거세게 내 몸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내 몸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더니 또 멈춰버렸다.
잠시 몸 안의 위상력을 체크해보니 60,027이 되어있는 게 보인다!
으음. 2인자 녀석이 정확하게 25,000이었으니까 다 흡수했다면 60,101이 되야하지만, 74는 소실됐나 보다.
뭐, 25,000 전부 흡수 못 해서 조금 아깝지만 0.3% 정도 소실된 정도는 봐주지.
응? 근데 프랑은 왜 안 오고 저기 서 있어?
“프랑~? 거기서 뭐 해~?!”
크레이터의 시작 부분에서 둥둥 떠 있던 프랑은 내가 소리치면서 손을 흔들자 그제야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뭐 하고 있었어?”
“서하가 위상력을 흡수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위상력은 다 흡수하셨나요?”
“어? 응. 25,000 대부분 흡수했어. 아, 혹시 상위 이형종 위상력을 같이 흡수할까 봐 기다렸던 거야?”
“네. 서하가 흡수해야 할 위상력을 제가 옆에 있다가 같이 흡수해버리면 안 되니까요.”
아…. 이런,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에이 무슨 말 하는 거야. 프랑이 강해지면 나도 강해지는 건데. 앞으로는….”
“아뇨! 어디까지나 저는 서하의 백업, 세이브 더 킹의 포지션을 잡기 위한 거에요. 모든 건 서하가 우선이 되어야 해요!”
…헐.
“그, 그거 영국 국가에 나오는 구절 아냐? 갓 세이브 더 킹 혹은 퀸이라는거….”
“맞아요. 하지만 기사들에게는 주군을 지키기 위한 검이자 방패의 뜻도 있답니다. 따로 디펜더 혹은 로열 가드 같은 칭호가 있긴 하지만 저에게는 서하를 지키고픈 의지가 있어요!”
…뭔가 막 흥분한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굉장히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에서, 거부하려는 말 한마디 했다간 설교 타임이 시작할 거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위상력은 가까이 다가온 프랑에게 천천히 흡수되고 있었다.
“아…. 응. 알았어.”
“모든 건 서하가 우선이 되어야 해요. 이형종을 잡고 나온 위상력은 서하가 흡수 가능한 건 모두 흡수하시구, 그 이후에 남은 것을 제가 받는 형식이 되어야 하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할게요. 아셨죠?”
“알았어.”
1회차 때 절벽에서 본 이후로 처음 보는 프랑의 기사의 마음가짐이다. 이 상황에서 몰라. 라고 했다간 진지 먹…. 진지한 프랑이 설교를 시작하겠지?
흐음. 이제 눈치챈 거지만 위상력이 전부 프랑에게 흡수 안 되고 찔끔 흡수되다가 말아버렸다. 중하위급이나 중위급 한 마리를 잡아서 퍼져 나온 위상력은 대부분 프랑에게 흡수 되던 거 같았는데, 그건 흡수 된 게 아니라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냥 공중으로 퍼져나가 버린 건가?
위상력의 양이 많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 고여있는 위상력 중 프랑이 흡수한 건 20% 정도 밖에 안된다.
프랑은 내가 뭔가 생각 중인걸 눈치채고 얌전히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프랑?”
“네?”
“이형종을 잡았을 때 위상력 흡수량이 전체의 어느 정도인지, 혹시 알아?”
내 질문에 프랑은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으음. 아까 나도 그렇고 지금 프랑도 고여있는 위상력의 20% 정도 밖에 흡수 못한 거 같은데…. 그러고 보면 위상석에서도 한 시간에 0.0002%가 흘러나오고 흘러나온 위상력을 피부 접촉 중이지 않으면 20%만 흡수했지?”
“하지만, 서하는 지금 위상력이 6만이 조금 넘으시는걸요?”
“아, 나도 처음에는 5천만 흡수해서 40,101이었어. 마나 시브를 돌리니까 나머지 위상력도 몸 안으로 들어온 거야.”
“와아!”
2라는 숫자가 2번 겹치는 건 우연이려나...? 아무튼 B 클래스에 오른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토벌이나 레이드를 하면서 2%씩 쌓아 나가면서 클래스를 올렸던 건가?
물론 근거리에서 싸우는 신체 강화는 좀 더 많이 얻고 원거리에서 싸우는 힐러나, 감지 능력자는 적게 먹는다고 하지만 고작 2%라니, 굉장한 인내심이다.
내가 위상력을 전부 흡수했다는 말에 프랑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렇게 상위 이형종을 몇 마리만 더 잡으면 서하도 C 클래스에 올라서시겠네요!”
“그렇겠지?”
어쩐지 너무 날로 먹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빠르게 강해져야 하는데 그런 걸 따질쏘냐!
============================ 작품 후기 ============================
5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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