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8 3회차 위상 세계. =========================================================================
“더이상 접근하면, 코끼리우로스에게 들킬 것 같으니 여기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떠신가요.”
프랑의 조언에 따라 더이상 접근하지 않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밤이 되고 시야가 좁아지면 공간 지각이 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이득이 되니까.
풀이 내 앉은키만큼 자란 곳에 숨어서 앉아있으려니 조금 지겹다.
“으음. 몸이 생기니 정찰을 못 나가는 부분은 조금 아쉽네요.”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같이 앉은 프랑은 곧 내 어깨에 머릴 기대며 중얼거리지만, 전혀 아쉽다는 목소리가 아닌걸?
끊임없이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더니 프랑은 살포시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쓸어넘겨 줬다.
“난 상관 없는데? 아무튼 이제 5시니까 좀만 더 기다리면 되겠다.”
슬쩍 손을 뻗어서 어째 더 매혹적이게 변한 거 같은 프랑의 엉덩이와 허리를 쓰다듬으니 프랑은 좀 더 만져 달라는 듯이 내 옆에 누워 몸을 바짝 붙여온다.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한참 프랑과 장난치며 옆구리를 찌르고 가슴을 만지작거리니 프랑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아아…. 나도 점점 참기 힘든데….
어깨가 다 드러나는 끈 모양 원피스를 젖혀 가슴을 드러내게 하고 핥고 빨고 하고 싶다는 욕망을 그냥 프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버텼다!
“서하…? 지, 지금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으으으으. 이제 프랑도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잔뜩 젖은 목소리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면서 말하는데 진짜, 진짜 참기 힘들다.
“안돼. 적들이 바로 앞에 있잖아. 나도 필사적으로 참는 중이니까 유혹하지 마.”
“히잉….”
내 단호함이 넘치는 말에 프랑은 살짝 울상을 짓더니 내 머리를 꼭 껴안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휙휙 잘도 지나가서 해가 완전히 지고 달이 떠오른 밤 9시가 되었다.
아까 프랑의 품에 안겨있던 도중에 1.3km 밖에서 세 마리의 코끼리우로스가 지나가는 걸 공간지각으로 감지했었다.
공간지각으로 본 코끼리우로스는 셋 다 위상력이 1,000이 넘는 중위 이형종이었다. 두 놈의 수컷과 한 놈의 암컷이었는데 셋 다 방어구같은 건 끼지 않았고 무기만 나무창과 돌도끼를 든 모습이었다.
크기가 프랑 말대로 거진 10m에 달하는 모습인데 배꼽 위 상체는 말 그대로 사람 모습에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수컷과 지름이 수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가슴을 드러낸 수컷보다 조금 덜한 근육질의 암컷이었다.
수컷 암컷 할 거 없이 전신에 상처투성이고 머리는 엉망으로 풀어헤친 산발한 머리카락이었다. 두 눈은 부리부리하고 홍채가 마치 붉은 얼음 결정 같아 굉장히 이질감이 심했다. 얼굴도 상처투성이고 야차처럼 흉악하게 일그러져있어 조금 무섭게 생겼다.
암컷은 아무 무기도 들지 않고 있었는데 두 손이 비어있는 걸 보면 속성 타입이겠지? 코끼리 하체의 등 위에는 사냥을 한건지 각종 이형종의 시체가 수북하게 올려져 있었다.
수컷 두 마리는 좌우를 살펴보고 경계하며 걸어가고 암컷은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모습이었다.
이형종 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는 위상력이 그냥 뭉쳐있어서 타입을 알 수 없어 좀 귀찮네.
정찰인지 사냥인지 모르겠지만, 사냥일 가능성이 크겠지.
“코끼리우로스 세 마리가 1.3km 떨어진 곳을 지나갔었어. 공간 지각으로 탐색해보니 셋 다 위상력이 1,000을 넘는 놈들이던데, 키가 10m 정도 됐었어. 사냥을 나온건지 이형종을 잔뜩 싣고 가더라.”
프랑은 진지한 내 모습을 잠시 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금방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고 흐트러진 옷차림도 고치고 내 옆에 섰다.
“10m라면 10 TP 마나 탄을 쓰셔야 완전히 삭제할 수 있겠네요. 일단 탐색을 먼저 해볼까요?”
“응. 산자락을 타고 돌면서 코끼리우로스 산에 몇 마리나 사는지 살펴보자.”
중위급이나 중상위급의 위상력 감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1.5km보단 넓지 않겠지. 마나 모드 - 가속을 발동해서 빠르게 산자락을 향해 달려갔다.
귓가에 바람을 스치는 소리가 조금 시끄럽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공간 지각 범위 안을 샅샅이 둘러본다.
10분을 달려서 15km를 빠르게 이동했더니 순식간에 산자락이 감지범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산이 엄청나게 크네, 가까이서 보니 산 중턱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곳에서 열 댓마리의 코끼리우로스들이 들락거리는 게 맨눈으로 보이는데, 감지범위 안에 들어오는 구릉지에는 코끼리우로스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밤이 되어서 저 구멍 속의 둥지로 들어가 버린 건가?
TP 소비가 50%를 넘겨서 가속을 중단하고 마나 모드만 켠 채 산자락 초입까지 다가가니 제일 작은 나무가 40m를 넘어가는 거대한 숲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숲이 울창해서 코끼리우로스의 육안에 들킬 일은 없겠다.
잠시 프랑을 살펴보니 프랑도 나름 공간 지각을 발휘하는지 눈을 감은 채 몸을 살짝 띄우고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렇게 큰 고봉이라는 거, 한국에서는 못 보는 산이라 되게 신기한 기분인데.”
울창하고 거대한 숲에 몸을 숨기고 산자락을 타고 빠르게 돌면서 입을 열었다.
“현실에 홀로 우뚝 솟은 유명한 산이라면…. 마터호른 정도일까요? 안나푸르나도 높지만 그건 산맥이니까요.”
“마터호른도 주변이 다 산이지 않아?”
“능선 끝자락에 홀로 높이 솟아오른 산이라고 들었어요.”
“나도 구우글 지도 사이트에서 본 게 전부인데, 마터호른이 뿔 같은 산이면 여긴 완만한 삼 각꼴 모양이네, 하긴 이러니까 코끼리우로스도 여기에 둥지를 틀었겠지?
“네에. 아무튼 이런 산이 현실에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오르겠는걸요.”
“이형종이 있으니까 오히려 안 오지 않을까?”
프랑은 내 말에 킥킥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산자락에 코끼리우로스 촌락이라거나, 이형종 무리가 있을까 긴장하면서 코끼리우로스 산자락을 따라 빙 둘러서 달리고 있는데 어째 코끼리우로스를 포함해서 이형종 들이나 동물이 아예 없다.
“아까 코끼리우로스가 이형종의 시체들을 짊어지고 이동하고 있다고 하셨죠? 그곳이 산에서 10km를 훨씬 넘게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거기까지 나왔다는 건, 주변에 식량으로 삼을 동물이나 이형종이 줄었다거나 아예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렇겠네.”
주변에서 가장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 코끼리우로스 소굴 입구를 보니 이제 4마리만 구멍 근처를 지키고 서 있었고 들락거리던 놈들은 모두 없어졌다.
다시 나무를 타고 내려와 TP를 80%를 유지하면서 한밤중의 코끼리우로스 산 전체를 돌아봤더니 30분이 흘러 있었다.
빙 둘러 돌아본 결과, 코끼리우로스 산은 중턱까지는 완만하게 솟아오르는 모양이지만, 코끼리우로스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산 중턱 지점부터는 산세가 급격하게 솟아오르는 모양인 걸 확인했다.
반경 1.5km의 공간 지각으로는 산의 반의반도 감지 못한다. 그러니 산 중턱의 땅속에 있을 놈들의 소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깝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조금 긴장하는 프랑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고 놈들의 소굴 입구가 나 있는 곳의 산 반대편으로 이동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큰 산이면 여러 이형종 들이 박터지게 싸우면서 이 땅 내 땅 할 거 같은데, 현실은 저놈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건가?”
“아마, 저 때문이었을 거 같아요.”
“어? 이형종이었을 때 말이지?”
“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세 이형종이 산을 삼등분해서 싸우고 있었지요. 실버 화이트 울프가 최대까지 진화하면 된다는 자이언트 실버 팽을 우두머리로 실버 화이트 울프 무리와 자이언트 킬러 맨티스 퀸의 노 헤드 맨티스 무리, 그리고 저 코끼리우로스였어요.”
“자이언트 킬러 맨티스 퀸? 자이언트 실버 팽은 아는데 그건 처음 듣는걸.”
“상위 이형종으로 일반적인 곤충 무리와 비슷하게 여족장matriarch 구조의 무리지요. 맨티스 퀸은 네 개의 앞발과 등에 칼날 같은 넉 장의 날개, 배 부분을 뒤엎고 있는 넉 장의 날개를 다 합해 여덟 장의 날개를 지닌 크기 7m의 검붉은 색의 괴물이었어요. 지금 서하가 들고 있는 발톱 검은 그 맨티스 퀸의 앞발에 비하면 신검과 장난감 나무 칼만큼의 차이가 있을거에요.”
꿀꺽. 어마무시한 비교라서 짐작이 안가네.
“세 무리 중 가장 세가 약했던 코끼리우로스는 제가 자이언트 실버 팽 무리를 박살 내고, 이어서 맨티스 퀸 무리를 박살 낼 동안 물러서서 제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코끼리우로스를 박살 내려고 하니 적당히 싸우다가 죄다 도망쳐버렸고, 네가 돌아간 뒤에 산으로 돌아와 이 산을 독차지했다는 거네.”
프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2km가량을 조심스레 이동해 숲을 지나서 산 중턱까지 올랐더니 산속에 땅굴을 파서 개미굴처럼 확장한 코끼리우로스의 소굴이 공간 지각으로 보였다.
주변을 보니 황갈색 땅이 노출되고 바위나 자갈들이 가득한 지역이라 어디 숨을만한 곳이 없을까 찾아봤는데 집채만 한 바위 사이에 틈이 보여서 그사이에 몸을 숨겼다.
“내 공간 지각이, 산의 맞은편까지 닿지는 않지만, 놈들이 땅굴을 파놓은 모습이 보여, 마치 개미굴인데…. 보이는 숫자가 176마리네. 생각보다 작은걸?”
물론 저 176마리가 전부라고는 생각이 안 들고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뻗어 나가 있는 개미굴을 보면 더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2배 이상 늘어날 거란 생각은 안 든다.
바위틈은 두 명 정도는 나란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옆에 자리를 내주니 프랑도 내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도망간 코끼리우로스 무리는 마흔이 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4배까지 늘어나다니, 그 사이에 이 지역의 지배자에 올랐나 봐요. 그것들의 위상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음….”
일단 감지에 걸리는 것들만 살펴보니 대부분이 중위 이형종이지만 1,000 이하의 위상력을 지닌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중상위는 30마리인데 그놈들 중 가장 높은 위상력을 지닌 놈은 산의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곳의 커다란 공동에 있는 녀석이었다.
그놈은 위상력이 24,922에 위상 석도 23,001이나 되는 놈이다.
“이상하네요. 일백이 넘는 중위와 중상위 이형종을 이끄는 존재가 중상위 이형종이라니, 그 녀석이 우두머리는 아닐 거에요.”
“음. 좀 더 아래쪽에 상위 이형종이 있을지도 모른단 이야기지?”
“제 예상으로는 그렇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거의 상급에 다다른 저 녀석을 수하로 두는 상위 이형종은 얼마나 강한 걸까.
…!
“저놈, 날 감지한 거 같다.”
“…!”
2인자겠지. 나와 거리가 직선거리로 8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2인자 코끼리우로스는 하던 짓을 멈추고 정확히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내 쪽을 빤히 바라본다.
저놈은 중위급 암컷 코끼리우로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암컷을 뭉개버릴 듯이 생식 행위 중이었는데 내가 이동을 멈추고 공간 지각을 시작하니까, 한 곳에 머물러있는 내 위상력을 느꼈는지 행위를 잠시 멈추더니 내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2인자가 멈추니 아래 깔렸던 암컷이 돌아보며 -으우어우어워우.- 거리는데 그 순간 주먹을 휘둘러 암컷의 머리통을 후려쳐버렸다.
저…런 개자식을 봤나.
얻어맞은 암컷은 피를 흩뿌리며 앞으로 벌렁 나자빠졌는데 암컷의 생식기에서 빠진 …덜렁거리는 거시기가 2m는 넘어가는 거 같다. 하체가 코끼리 몸통이더니 물건도 진짜 코끼리 그거랑 똑같이 생겼네.
“위상력 감지 범위가 800m 정도인가?”
“서하를 발견한 건가요?”
“응. 정확하게 내가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어.”
축 늘어져서는 미동도 없이 귓구멍과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암컷의 모습이 보인다. 설마 죽여버린 건 아니겠지?
곧 2인자는 돌아서더니 나무 기둥 같은 뒷발로 암컷의 코끼리 배를 걷어 차렸다. 그 충격에 꿈틀하면서 피를 토하더니 힘겹게 기어서 공동 밖으로 기어나가…려다가 다시 덮쳐든 2인자의 거대한 생식기를 받아내기 시작한다.
거대한 육체가 연신 꿈틀거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2인자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면서 연신 주먹을 휘둘러 암컷의 몸통이며 머리 허리를 때리고 있었다.
…씨발.
저 모습을 보니까 2인자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극도의 혐오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암컷에게 발정해서 날뛰는 꼴이라니! 내가 저랬단 말야?! 화연이랑 프랑한테?! 아니, 나만 해도 가학심에 연인들의 배를 산처럼 부르게 해놓은 전적이 있으니까….
그 혐오감은 방향을 바꿔서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과 괴로움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 2인자의 모습을 본 순간, 멀지 않은 미래에 나도 폭력을 휘두르며 프랑과 화연이와 영은이를 성적 노리개로 삼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통을 두드렸다.
“…서하?”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한 내 표정을 본 프랑은 걱정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내 머리를 살며시 끌어안아 준다.
…난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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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