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30화 (130/517)

00130  화연의 복귀, 그리고....  =========================================================================

“고개를 끄덕이든가 젓든가 해요.”

슬쩍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화연이 표정을 흉내 내면서 사늘하게 내려보니 소피아는 움찔하면서 굳어버렸다.

역시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면 위압감 효과가 있는 거군.

“연합에 내 이야기를 흘렸다. 맞다, 아니다?”

끄덕끄덕!

꾸우욱

“끄히히잉!!”

조금 더 힘을 줬더니 소피아는 울상이 우거지상으로 변하면서 요상한 신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저랑 나눴던 이야기는 보스를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맞다, 아니다?”

끄덕끄덕!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피아를 보니 정말…. 할 말이 안 나온다.

“둘째는 어쨌든 첫 번째 일은 보스한테 말할 거니까 각오해둬요.”

그러면서 손을 놓으니 소피아는 두 뺨이 빨개진 얼굴로 다급히 내 손을 잡으면서 간절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 안 되는 거에요! 그랬다간 소피아 엉덩이가 터져나가요!!”

“잘됐네요. 제 몫까지 쎄게 두드려달라고 해줄게요.”

“ouch!”

소피아는 눈물을 뿌리며 신발 굽까지 해서 175cm는 넘을듯한 키에 D컵은 되어 보이는 김가민의 큰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잉잉거린다.

“보스 커플은 악당 커플인 거에요! 후에엥!”

“자아자아. 소피아는 착하죠? 잘못을 저질렀으면 혼나는 게 바르답니다?”

품에 안긴 소피아를 김가민 2팀장은 상냥하게 웃으며 토닥이는데 말과는 다르게 눈은 서늘한 기운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런 김가 민의 얼굴을 소피아는 동공에서 빛이 사라진 눈으로 멍하니 올려다본다.

“소피아는 너무 오지랖이 넓어! 게다가 보스 사생활을 연합에 흘리다니! 나중에 우리한테도 혼날 줄 알아!”

“히익?!”

잔뜩 화난 표정의 유민희 3팀장과 김가민 2팀장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소피아를 몰아넣더니 무슨 생각으로 연합에 이야기를 흘렸냐, 제정신이냐, 요즘 혼이 나지 않았더니 살만하지? 등등 무진장 혼나기 시작했다.

울상을 지으면서 혼나고 있는 제2부대장을 꼬시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으려니 김충식 4팀장이 조금 부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보스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셨다구요?”

“네. 제가 5살 때 어린이집에서 처음 만났었어요.”

“하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시하 님의 동생이신 데다 보스의 연인이시고, 강력한 감지 능력의 소유자시라니.”

“서하 군은 블루 지니어스인거에요! 연합 본부에서 칭호도 받은 거에요!”

김충식 4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피아는 잽싸게 내 쪽을 보면서 소리치는데, '나 잘했지요?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가민 2 팀장님. 소피아가 아직 덜 혼났나 봐요.”

“…네!”

경악한 표정의 소피아는 '어째서?! 왜?!' 같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됐지만 이내 물리적인 제재까지 들어오니 내 쪽에는 신경을 못 쓰게 돼버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푹 내쉬려니 엘리베이터의 공중에 떠서 날 내려다보던 프랑이 -그만 포기하세요. 포기하면 편해요.- 같은 소릴 하고 있었다.

“하하하. 연합의 작명 센스가 좀 오글거리긴 하죠. 게다가 현지화를 하지 않고 영문 표기를 고집하니까요.”

김충식 4팀장의 말이 끝나니 김태풍 6팀장이나 김가민 2팀장도 피식 웃어버리는데 김충식 4팀장은 그래도 조금 부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희처럼 C 클래스 중간자질들은 칭호의 칭도 못 받는데, 조금 부러운데요?”

자기 볼을 꼬집으려는 2팀장과 3팀장의 손을 팔로 막으면서 소피아가 말했다.

“그, 흐극. 야 서하 군의 자질은 최고인걸요? 거기다 능력도 최고니까 칭, 아으윽! 호가 내려오는 건 당연한 거, 흐엥?! 에요!!”

2팀장과 3팀장의 손을 하나씩 잡았지만, 남은 손들이 소피아의 뺨을 꼬집고 옆구리를 꼬집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할 말을 다하는 게 참 대단하다.

띵.

[18층입니다.]

“아,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성인이 돼서 같이 활동할 때가 기대되네요.”

“다음에 봬요.”

어? 19층까지 가는 게 아니었네.

김가민 2팀장이나 김충식 4팀장이 웃으면서 내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김태풍 6팀장은 내게 고개만 끄덕이고 걸어나가고 유민희 3팀장은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

“으으으. 아, 악당들이에요.”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로 애써 엘리베이터 구석에 몸을 기대고 버티는 소피아는 힘들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뭘요. 좀 있다가 화연이라는 하이라이트가 나올 텐데 회복이라도 해두는 게 좋지 않아요?”

“히잉!”

도망갈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소피아의 팔뚝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가며 19층에 내려서 집무실로 걸어가니 비서 누나들이 멍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것도 잊고 나랑 소피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연이는 날 보더니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어서 와라.”

화연이는 내 손에 잡혀 울상을 짓고 있는 소피아를 힐끔 보더니 내게 눈을 돌리며 살풋 웃어주었다.

“보고 싶었어.”

소피아의 팔뚝을 놓고 두 손을 뻗어 화연이를 끌어안았다. 화연이 역시 날 끌어안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도 서하가 보고 싶었다.”

화연이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한껏 숨을 들이쉬니 그리웠던 자두 향 체취가 한가득 맡아진다. 그 모습을 뒤에서 팔을 주무르던 소피아가 한껏 입술을 내밀고 중얼거렸다.

“…둘 다 좋아 죽으면서 앙탈은.”

슬금슬금 팔이 내려가는 게 보인다.

“소피아. 팔이 내려가고 있는데요?”

“우잉!”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화연이는 소피아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는 벌을 내렸고 나는 소피아의 손이 조금씩 내려갈 때마다 보지도 않고 지적하며 바른 벌 받기 자세를 강요하고 있었다.

“후후, 그래도 연합에 칭호까지 받을 줄이야. 역시 서하는 대단하다. 어머니도 서하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셨다고 했고 연합에서도 서하 네게 호의를 표시하고 있으니 외적인 침입에 대해서만 확실히 대비를 해두면 안전은 보장받겠군.”

외적인 침입?

…뭐 그건 여사님이나 화연이가 잘 해결해주겠지. 어쩐지 누나랑 이혜령 부장의 표정이 조금 굳은 거 같지만.

내 이야기도 끝나서 이번에는 화연이가 레이드때 뭘했는지 물었다.

“이번 이형종은 뭘 잡은 거야?”

“블루 링스였다. 그렇지않아도 빠르고 영악한 놈이라 상대하기 좋지 않은데 꽤나 성장한 녀석이라 놈이 2팀을 노리기 시작해 위상 세계 진척이 멈추다시피 해버렸었지.”

“링스? 스라소니 말하는 거야?”

“그래. 유라시안 링스. 그래서 차소영 부대장과 2팀 6팀이 함께 블루 링스를 레이드하고, 그동안 밀린 탐색과 토벌을 함께 해치운 거다.”

혹시나 화연이의 예쁜 몸에 상처라도 남은 건가 싶어 검은색 여성 바지 정장을 입은 화연이의 몸을 구석구석 스캔해봤는데 다행히 상처는 안 보인다.

레이드 겸 토벌전을 한거라서 지하에 부산물이랑 위상석이 산처럼 쌓여있었구나. 근데 차소영은 딴 데 있는 건가? 1km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나와 화연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도 누나랑 이혜령 부장은 계속 서류를 처리하더니 마지막 남은 서류마저 체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보스? 저흰 내려가 보겠습니다. 마저 이야길 나누세요.”

“소피아 언니? 서류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요?”

“yes, sir!”

누나 말에 반색한 소피아는 잽싸게 팔을 내리더니 누나한테서 서류 더미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날 보며 "에헤헤." 하고 웃는 게…. 참, 화를 낼 수 없는 사람이네.

그렇지 않아도 여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마치 그러라는 듯이 자리를 피해 주는 모습에 긴장감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누나랑 이혜령 부장이 소피아까지 끌고 내려가자 화연이는 좌탁을 정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게, 20층으로 올라가려는 걸로 보였다.

“난 화연이가 정말 좋아.”

“음? 나, 나도 서하가 좋다.”

내 말에 어설프게나마 표정을 움직여서 미소를 짓는다. 설마 웃는 걸 연습했던 건가?

으으…. 긴장감과 양심의 가책이….

그러고서 다시 나가려 하길래 화연이한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화연아 잠깐만.”

“응?”

손을 잡아당겨서 소파에 나란히 앉은 다음 손가락에 10 TP를 두 방울 뽑아냈다.

프랑은 내 모습을 보더니 약간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고 화연이는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날 보다가 내 손끝에서 푸르게 빛나는 TP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프랑이 보낸 메일을 봤지만 직접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도 좋겠지.”

“어?”

그러면서 화연이는 프랑이 틈틈이 화연이에게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메일로 보내줬다고 했다.

맞아, 저번에 화연이가 프랑한테 분명…. 나한테 접근하려는 불여우들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었지?

음란녀들의 곡소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신경 끄고 눈을 감은 화연의 눈꺼풀 위에 TP를 발라줬다. 그리고 물러섰더니 날 힐끔 보고는 어째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키스하고 싶지만, 키스는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그럼,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

“음? 어딜 가는 거지?”

옆에 있어 주지 않고 어딜 가냐는 표정을 지었는데,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프랑이 나서며 화연에게 입을 열었다.

-제 부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어요.-

“…?”

화연이는 잠시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와 프랑을 번갈아 보더니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서하에게 일부러 자리를 피해 달라는 말을 할 정도라면 프랑이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게 틀림없겠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서하와 함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연….-

“잊고 말을 하지 않은 경우는 있을지라도, 비밀을 만들고 그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오해는 미연에 차단하고 싶은 것이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어? 프랑은 화연이의 단호한 표정에 생긋 웃으면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은 여자로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어, 그러면서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데, 나 안 나가도 되는 거야? 전에 말했을 땐 엿들으면 안 된다…고 하진 않았구나. 그냥 비밀이라고 했었지.

조용히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았더니 화연이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날 흘끔 바라보는 게 보인다.

-화연? 우선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다고, 다 듣기 전까진 일어서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약속하겠습니다.”

화연이는 다시 날 힐끔 바라보고는 프랑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의 어머니가 서하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녀 역시 서하에게 몸도 마음도 모두 뺏겨버렸기 때문이에요.-

순간 터져 나올 분노를 짐작하고 잔뜩 긴장했지만 화연은 그냥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평소의 사늘한 표정이 아니라 무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본 프랑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그 사랑이 깊을수록 맹목적이 되지요. 화연의 어머니는 어떤 여성인가요?-

“제가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대인 관계적으로 감정 표현의 조절이 풍부해진다면 어머니 같은 여성이 되겠지요.”

-100년을 쌓아온 이성이 한 남자에게 무너졌을 때, 근 백 년을 사람들과 싸워오며 피로와 외로움에 지친 여사께서는 자제심을 잃어버리고 서하를 덮쳐버렸어요. 그게 저번 금요일이었답니다.-

프랑과 화연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조마조마해서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프랑의 말을 들은 화연이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어머니 역시 저와 다를 게 없는 여자로군요.”

으음. 화, 화요일에 해버린걸 말하는 건가. 그건 내가 억지로 달라붙어서 그런 거였는데….

-여사님께서는 서하와 화연이 깊은 관계라는걸 눈치채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제심을 찾지 못하고, 나중에서는 서하에게 몸을 바치듯이 던져왔어요. 저 역시 340만의 TP를 전부 쏟아낸다면 막을 수는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모습에서 자꾸 화연의 모습이 생각나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답니다.-

“하아아….”

-잘못이 있다면 막지 못한 저에게 있어요.-

“…!”

아니라고, 내 잘못이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프랑이 날 보며 검지를 들어 자기 입술에 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가 서하에게 목이 멘다면, 서하의 안위가 보다 확고해질 거란 계산까지 있었지요. 서하가 저와 화연만을 바라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보신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니까요.-

“…후우.”

-화연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화연이는 고개를 들어 약간 지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봤다.

“레이드 틈틈히 서하의 마나 시브에 대해 생각해봤었다. 그 생각의 결론은 네 눈에서 나오는 파란 빛은 매혹의 힘이 있다는 거였어.”

“어?”

“그 매혹은, 위상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성에게 더 강렬하게 매혹한다는 게 내 가설이야.”

“나는 그냥 위압을 준다고만 생각했….”

화연이의 말에 유민희와 처음 보면서도 유독 호감을 표시하던 수많은 사람과, 흥분이 가라앉은 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듯한 강주찬이 머릿속에 빠르게 떠오르고 사라졌다가, 프랑과 화연이만 남는다.

“그, 그럼 프랑이나 화연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 눈 때문에…. 그런 거라고? 그런….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저는 서하의 눈이 빛나기 전부터 좋아했다구요!-

“너는 내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안식처였다! 이 마음이 사랑이 되는 건 당연한 순리다!”

잔뜩 흔들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둘은, 잔뜩 흥분해서는 자신의 사랑이 부정당한 것처럼 화를 내며 내 좌우에서 날 그러안았다.

“그러니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는 건, 우리들이 있을 때만 하도록 해라.”

두 사람의 온기가 식어가려던 내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감싸준다….

-화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빌딩 내부의 수많은 사람과 여성들이 서하의 포로가 되었겠네요. 하지만 3팀 팀장은 서하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하던걸요?-

“아냐. 유민희 3팀장은 겉으로만 화난 모습을 보였지, 공간 지각으로 적의나 적개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어.”

…두 사람은 날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엥? 느, 능력을 정확히 알려면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해 야하잖아?

어쩐지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마음이 콕콕 찔려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그 매혹의 힘에 결국 어머니도 서하에게 넘어갔다는 거군요. 그건 2주 전부터였을 테니 어머니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잘도 참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잠깐만! 너무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냐? 여사님은 무척이나 똑똑하신 거 같은데 그렇게 매혹에 걸린 자신을 모를 리가 없잖아? 거기다!!”

화연의 덤덤한 반응이 당황스러워서 입을 열었지만 화연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라면 정말로 너의 매력에 빠졌을 수도 있고.”

“…!”

-그러고보니 여사께서는 금요일 점심 식사 때부터 그러셨지요. 최대한 서하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자신을 싫어하지 않게끔, 미움받지 않게끔 대화를 유도하며 공감대마저 형성해서 서하에게 천천히 다가가셨어요.-

뭣?! 그, 그걸 알고서도 말 안 해준 거야?!

-그 모습은 매혹에 걸린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을만큼 치밀했지요. 그러니….-

“음.”

두 사람은 좀 당황한 날 보다가 서로를 마주 바라보더니,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한다!

“잠깐, 잠깐!”

난 황급히 프랑의 말을 끊고 내 좌우에 앉은 프랑과 화연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나누는거야? 물론 내가 잘못했고 두 사람에게도 미안할 뿐이지만…. 난 화연이 반응이 이해가 안가.”

그리고 옆에 앉은 화연이를 돌아보니 화연이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 없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화연이가, 화를 내지않는건 좋지만…. 화연이의 반응은 평범하지가 않아! 아니, 물론 평범하지 않은 일이 날 중심으로 여사님이랑 화연이 사이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화연이와 헤어지고 여사님을 저주할 생각도 하고 있었단 말야….”

헤어진다는 말이 나오니 화연이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리고 조금 화난 표정으로 손을 뻗더니….

“으갸갹?!”

“헤어진다니,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라!”

“아아아라써어어!”

큭! 화연이는 내 뺨을 꼬집던 손에 힘을 풀었지만 누나가 꼬집던것보다 수십배는 아픈거 같아…!

울상으로 뺨을 문지르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화연이가 이야기를 돌리려 한다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아서 대화도 끊기고….

이, 일단 분위기를 바꿀까? 말을 돌리자.

“…내 TP 말이야. 프랑의 몸에 직접 주입하게 되면 뭔가 변화가 일어날 거 같아.”

“지, 직접…!”

-…!!-

말을 돌리려했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는거 같다!?

“어?! 아니 섹스 말고! 손에서 직접 TP를 뽑아내서 프랑의 몸에 주입한다는 말이야!”

“피, 피스팅이라니. 너무 격렬한 것 아닌가? 아, 그래도 프랑의 그곳은 신축력이 뛰어나니 서하의 주먹 정도는….”

-!!!-

“아니야아아아!!”

발딱 일어나서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는 화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얼굴이 벌게지는 프랑과 화연이를 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이 아가씨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정말…!

“그냥 몸에 접촉해서 주입한다는 이야기였어!! 화연이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혹시 그런 쪽이 화연이 취미인 거야?!”

“!? 아니다! 나도 공, 공부 중에 우연히 발견한 거라…!”

화연이는 내 이야기에 기겁하면서 내 손을 떼고 황급히 외친다!

-그, 그런 공부라니…! 화연도 변태였군요!-

““끄응….””

화제를 돌리는데 과도하게 성공한 나는 한동안 얼굴을 가리거나 냉수를 마시거나 딴청 피우거나 하면서 얼굴에 열을 식히기 위해 이야기를 잠시 멈춰버렸다.

프랑과 화연이도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 눈을 마주치질 못하는게 나랑 비슷하게 부끄럽고 당혹스러운거 같다.

“그러니까, TP가 프랑의 영체에 과도하게 퍼지면 TP의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도 보일지 모른다는 건가?”

“응. 지금도 마나 시브를 이용해서 TP를 뽑으면 파랗게 빛나는 게 보이잖아? 공간 지각으로 보면 TP는 프랑의 몸 전체에 퍼져나가서, 그대로 사라지거든.”

“흐음….”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프랑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있었다 만들고있었다. 화연은 그런 프랑의 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위상력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근래에 그로키스 연구소에서 측정기와 감별기의 구조에 관해 능력자 연합을 통한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야. …프랑의 경우는 말도 못 꺼내고 TP와 위상력의 구분조차 얼마 전에 정립된 상황이라 연구조차 못할테니….”

“우움. 위상 세계랑 관련된 과학의 발전 속도가 너무 느린 거 아냐?”

“여러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위상학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관련 점 조차 찾을 수 없는 생소한 분야니까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연구는 과학자들이 한다. 그런 과학자를 지배하는 건 권력자와 자본가들이지. 연구 끝에 나온 지식은 그들의 욕심과 아전 투구에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야. 그러니 여러 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지식이 공유되지 않으니 똑같은 주제를 똑같이 연구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그러다 보니 연구 진척이 더딘 거다.”

말하다보니 짜증난다는 표정이 되어버린 화연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연구 재료는 능력자가 제공하고, 연구비는 시민들이 제공하는거나 다름없는데 그것들을 가지고 권력자나 자본가들이 욕심 싸움을 벌이니 일반인들과 능력자들이 애꿎은 피를 흘리는 셈이다.”

으어. 살짝 화연이의 사상이 보인 거 같다. …그런데 저런 부분은 어째 여사님과 비슷한 거 같은데….

…비슷하다 그런 수준이 아닌 거 같다. 한번 여사님이 의한 대학교 대강당에서 강의 하던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저거랑 비슷한 이야기를 할때 드물게도 온화한 표정을 풀고 화난 표정을 지으셨었거든.

머릿속으로 화연이랑 여사님의 성격이나 행동을 비교하고 분석하다 보니 닮은 수준이 아닌거 같아.

화연이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서하 네 가설을 기준으로 삼는다 치면 프랑의 몸에 TP를 응축시키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은 행동 일 거 같다. 프랑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서하의 말대로 제 모습이 드러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해요. 간단하게 최초로 등장한 정령. 이게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후후. 난리라는 표현도 모자랄 일들이 벌어지겠죠. 지킬 힘이 없는 자가 보물을 지니면 빼앗길 뿐이니까요.”

끄응….

“알았어.”

아쉬운 마음에 프랑을 보니 프랑도 그 생각을 한 건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무튼, 화연이 없을 때 서하가 마나 시브의 또 하나의 응용법을 발견했어요.-

음? 아, TP 충전을 말해주려는 건가보다. 안 그래도 알려줄 때가 됐지. 프랑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니 프랑도 날 보며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응용법입니까?”

-이건 굉장히, 정말 서하의 안위와 직결될 문제에요.-

“…….”

프랑의 진지하고 심각한 어조에 화연이도 덩달아 얼굴을 굳힌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화연이는 인터폰을 들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테니 언질할때까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세요.”

그리고 집무용 원목 책상에서 누나가 가지고 있던 검은색 도청방지 달걀을 가져왔다.

-아, 이건 시하 님이 가지고 있던 거랑 같은 거군요.-

“제가 하나 구해줬습니다. AFE, 안티 필드 에그입니다.”

그러면서 AFE를 작동시켜놓고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는 마나 시브를 이용해 위상석에 위상력을 충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제한은 없지만, 몸에 TP를 뽑아 위상석에 집어넣을 수 있지요. 그렇게 충전된 TP는 기존의 TP와 똑같은 효능을 지녀요.-

화연이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무시무시한 이야기군요." 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았다.

으음. 저렇게 놀라는 건, 충전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면 이론상으로 무한 동력이 완성되는 셈이라는 걸 눈치채서 그렇겠지?

위상석을 충전하고, 충전한 위상석을 사용하는 걸로 위상석의 위상력이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흘러나온 위상력을 내가 흡수하면서 TP를 회복하고, 회복한 TP로 위상석을 충전하고…. 물론 그 와중에 소실되는 TP가 있을 테니 온전한 무한 동력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반 무한 동력이잖아.

“나중에 이 위상석 조끼의 위상석에도 TP를 적당히 10만부터 20만 사이로 충전해서 줄 테니까 다시 팔구, 폐기할 고위급 위상석도 구해줄 수 있으면 구해줘.”

“…! 아, 알았다.”

이제 얼굴이 붉어지고 흥분한 게 보인다.

붉어진 얼굴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화연이를 보고 있자니 여사님을 박살 내러 가려 하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흐지부지하게 이야기를 끝내버렸는데 앞으로 어떡하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쉬며 뒷 일을 고민하는데 화연이는 묘하게 열기가 뜬 얼굴로 날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럼….”

응? 화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도 풀어헤친 다음 셔츠 윗단추를 몇 개 풀었다.

뭐하려는 거지? 살짝 불안해지려는데 화연이는 자리를 옮겨 내 다리 사이에 쪼그려 앉으며 날 올려다본다.

-!!-

프랑은 뭔가 눈치챘는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화연이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기 시작했…. 설마!!

“후후. 일주일간 무척 목이 말랐었다. 하지만 아래층에는 시하도 있으니까, 오늘은 이걸로 참아줘.”

침을 꼴깍 삼키더니 달뜬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한 화연이는, 주머니에서 빨간색 끈을 꺼내더니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포니테일로 만들고 내 벨트 버클을 풀어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오른 남근을 입에 물어간다.

“헉…!”

============================ 작품 후기 ============================

몇화 전 코멘트에 다른 작가님의 작품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한번 봤는데.... 별로 쎄진 않더라구요?

아, 물론 상대적이라서 다른 분들은 기겁하면서 백스페이스 누를만한 장면이 몇군데 나오긴 했지만요. 그 분이랑 저랑은 동류라는걸 눈치챘습니다 ^^;;

흐흐흐. 그러니까, 쓰려고 하면 저도 어둠의 다크스럽고 전설의 레전드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는겁니다!

하지만 안쓸거에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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