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27화 (127/517)

00127  비오는 날.  =========================================================================

3일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빨래가 안 마른다고 울상이었고 나도 살금살금 침입해 들어오려는 습기에 눈이 찡그려졌다.

아침에 부모님이랑 누나는 먼저 집을 나서고 나도 시간에 맞춰서 집을 나왔는데 점점 먹구름이 진해지는 걸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으아~. 어쩐지 몸이 찌뿌둥한걸? 기분도 조금 안 좋고….”

내 말을 들은 프랑은 내 등에 매달리며 내 뺨에 자기 뺨을 대며 살살 비벼준다..

슬쩍 고개를 돌려 프랑의 아기처럼 부드러운 볼에 살짝 뽀뽀해주니까 프랑도 눈웃음을 지으며 내 뺨에 뽀뽀를 해줬다.

근데 눈에 조금 걱정하는 빛이 담겨있다?

“걱정하지 마, 마나 시브로 위상력을 단단히 제어하고 있으니까, 허둥대다가 3회차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

-…네에.-

어? 이걸 걱정하는 게 아니었나? 아무튼, 학교가 점점 가까워지니 사람들도 주변에 늘어나기 시작,

“서, 서하 선배님!”

“어?”

하는데 갑자기 우산을 쓴 1학년 셋이 길을 막더니, 허리를 꾸벅 숙인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엥?

“우아아 말했어, 말했어!” “꺄악~!”

…그리고 쌩하니 뛰어가 버렸다.

“…아.”

학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느껴진다.

교문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눈빛을 잔뜩 받으면서, 내심 움츠리면서 중앙현관으로 걸어갔는데 목요일에 비하면 서너 배 더 강렬해진 시선에 뒤통수가 따갑다.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려다 갑자기 수 배로 늘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신발장에 가득 찬 러브레터에 한숨을 쉬었다.

하나하나 주워서 챙긴 다음 실내화로 갈아신고 계단을 올라가….

“서하 선배!” “서하 선배님!” “서하야~!”

려고 했는데 갑자기 학년을 가리지 않은 애들이 나한테 우르르 달려든다!

“어어어?!”

그 뒤로 애들이 점점 몰려들면서, 백 수십은 될 거 같은 애들이 날 둘러싸고 와글와글 소리치는데 무진장 당황스럽고 무섭다!

“고마워요!” “금요일에 무진장 멋있었어요!” “최고에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루 지니어스!!”

칵!! 마지막은 어떤 놈이야!!

“아냐, 우연히 그랬던 거야.”

“그래, 고마워. 좀 지나가게 비켜줄래?”

“그러지 마. 그렇게 인사받을 일은 아니었어.”

“괜찮아. 응. 고마워. 마음만 받을게.”

날 붙잡고 말을 거는 애들을 다독이며 겨우겨우 인파를 뚫고 나오려니 어째 반응이 더 뜨거워지는 거 같다…!

4층으로 올라오면서도 나한테 다가오는 애들한테 애써 웃으면서 손을 들어주고 교실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우르르 몰려 따라오는 애들을 보니까 진짜 겁난다! 쫄아서 도망쳤다간 폭도로 변해서 달려들 거 같아!

영웅을 보는듯한 열광적인 애들 반응에 내심 당혹스럽고 금요일에 아는 애들만 데리고 피하려 했던 내 행동이 떠올라 부끄러워져 얼굴이 붉어진다.

“꺄아~! 부끄러워 하는 거 좀 봐~!” “귀여웡~!” “오빠! 날가져요 엉엉!”

쿨럭….

겨우 교실에 도착했더니 반 애들도 우르르 나한테 몰려들어 날 둘러싸고 꺅꺅거리고 난리였다!

한고은 일당은 저 멀리서 흐뭇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보지만 말고 얘들 좀 어떻게 해봐!!

그 와중에 상당한 적개심이 공간 지각에 포착됐다.

저 샤기컷 대가리는 왜 저래? 목요일까지는 그냥 날 없는 셈 치려는지 적의도 안 보내고 무시하더니 갑자기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래, 원수를 바라보는 거처럼 날 노려본다.

노려본다고 사람이 죽는다면 나한테 죽은 사람은 수천 명이 넘어갈 거다 자식아.

“아, 한고은이랑 강소라. 금요일에는 고마웠어.”

“응~? 아냐~.”

“고, 고맙다면 이번 주말에 데이트 한번…!”

“아~ 그나저나 오늘은 교실까지 오는 게 무진장 힘들었어~.”

한고은의 위험 발언을 무시하는 척 강소라의 흉내를 내며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더니 강소라가 날 흘겨보는 게 보인다. 킥킥

곧 아침 조회 시간이 되면서 복도에 서 있던 애들도 우르르 자기네 반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모습이 엉망진창이다.

정장 차림이 흐트러지고 당고머리로 올렸을 머리카락도 반쯤 풀리고 안경도 삐뚤어져 있고…. 돌아가는 애들의 인파에 휩쓸린 건가?

“아, 아으으. 애들이 장난 아니게 모여있더구나. 이게 다 서하 때문이지?”

안경을 똑바로 고치고 옷차림을 정리하고 머리도 다시 풀어서 한데 묶은 다음 웃으면서 날 보시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레이어드 프릴 원피스를 입은 프랑도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우리 학교 애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거 같다.

난 지치거든…?

“우리 서하가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전교생의 절반이 소울 리퍼에 당했을 뻔했지?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강당에 모여서 교장 선생님이 이야기를 꺼내실 테니까,”

어어?!

“그전에 간단하게 다들 서하한테 박수해주자?”

서, 선생님의 말씀에 반 애들이 전부 날 돌아보면서 박수를 쳐주는데 오른쪽 제일 앞에 앉은 샤기컷 대가리는 박수도 안쳐주고 더욱 적개심이 강해진 얼굴로 날 노려봤다.

그런 샤기컷 대가리의 모습을 옆에 앉은 애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도 보였다.

거참…. 아니! 그보다 강당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 꺼낸다니?! 곧 교실에 달린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전교 학생 여러분께 알립니다. 잠시 후 강당에서 임시 전교 조례를 시행합니다. 학생 여러분은 오와 열을 맞춰 차례로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잠시 후….]

으으으. 날 죽일 셈인가…!

아이들과 함께 강당으로 이동했더니 900명에 가까운 애들이 학년과 반별로 나눠 서기 시작했고 선생님들도 단상 뒤에 나란히 서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 주임 선생님이 단상 위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주더니 곧이어 교장 선생님이 등장했다.

선생님들이 나한테 별다른 언질도 없었지? 교장 선생님도 그냥 적당히 금요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끝내실 건가 보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단상 위에 올라서신 올백의 노신사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교장 선생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서 학생들을 내려보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으셨다.

[저번 주 금요일, 야외 수업 때 A 조에서 큰 비극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하마터면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소울 리퍼의 정신지배에 걸릴 뻔한 것입니다.]

조금 웅성거릴 줄 알았는데 다들 조용하다. 내 뒤에 선 김창현이 씩 웃으면서 내 등을 콕콕 찌르며 작게 속삭였다.

“금요일 아차산에서 A 조 애들이 이야기를 퍼트려서 이미 전교에 소문이 다 퍼졌다고? 이야~. 학교 인기인은 좋겠…. 이크.”

땀내 체육 선생님이 김창현 쪽을 노려보는 걸 김창현도 발견했는지 찔끔하면서 몸을 바르게 고쳤다.

[하마터면, 우리는 450명의 학우를, 선배와 후배를 잃을 뻔했지만 한 학생의 빠른 결단으로 대부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올 3월 위상 세계에 끌려들어 갔지만 놀라운 정신력과 대단한 능력으로 4월 초에 생환에 성공한 학생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째 불안하다. 불안하게 추켜세워주는 발언에 무진장 불안함이 느껴진다! 부르진 않겠지? 900명 앞에 서면 난 부끄러움에 심쿵사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거 간접 살인이야!

[그 뛰어난 정신력과 훌륭한 판단력, 그리고 대단한 능력으로 이번 이형종 출몰마저 미연에 파악함으로써 A조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대피시킬 수 있었지요. 정서하 학생, 앞으로 나와 주세요.]

비…. 빌어먹을! 불안감은 빗나간 적이 없어!

속으로 우거지상을 지으면서 교장 선생님의 날 부르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걸어나갔다. 프랑은 강당의 2층 난간에 걸터앉아서 즐거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는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주목받는 게 그렇게나 좋아…?

정신적으로는 단두대에 올라가는 죄인의 심정으로 교장 선생님이 계시는 단상 위에 올라가지만, 표정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교장 선생님은 강연 대를 돌아 나오시며 흐뭇한 미소로 내 어깨를 토닥이셨다.

[정서하 군은 아직 미성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 본부에서 직접 블루 지니어스의 호칭을 내려줄 만큼 뛰어난 능력자로서, 이번 일에도 그 자질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공개 처형 맞지 이거?

무너지려는 표정을 억지로 유지하며 2m 높이 단상 위에 서서 우리 학교 학생들을 내려다보는데 프랑은 2층 난간에서 배를 잡고 웃다가 떨어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잊지 않겠다 프랑!

“자, 정서하 군. 블루 지니어스로써 한마디 해주게.”

교장 선생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마이크를 내미시는데 마이크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르는 기분이다.

떨리는 손으로 교장 선생님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울렁거리고 떨리는 폐와 심장을 마나 시브를 돌려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고 단상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3학년의 정서하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제 뛰어남 덕분이라 말씀하셨지만, 저번 금요일, 박물관에서 일어난 일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마이크에서 증폭되어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강당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가늘었나?

“그것은 박물관을 뛰어나가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 같이 뛰어나온 여러분들의 상황 판단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을 지켜준 것은 제가 아닌 여러분 스스로의 판단력이었습니다.”

말, 제대로 한 거 맞나?

내가 무슨 말을 꺼냈는지 긴장 때문에 잘 생각도 안 나고 무진장 떨려서 한숨을 쉬려다가 문득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교장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돌려줬다.

교장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건네받은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영웅은 이렇게나 겸손하군요. 이번 이형종 출현을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준 우리의 영웅에게 다들 박수를 보냅시다.]

으으으으으….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진 프랑을 포함한 근 천 명의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우니 진짜 창피하고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몇 초간 우레같은 박수 소리를 받다가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더이상은 못 있겠어! 언급도 없으니까 그냥 내려갈 거야!

내가 자리에 돌아가서 설 때까지 박수는 멈추지 않았고 내가 지나가려니 살짝 길을 비켜주며 박수를 계속 치는 애들이 진짜 부담스럽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자리에 되돌아가서 선 모습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려 박수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소울 리퍼에게 희생당한 6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들은 현재 능력자 연합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집중 정신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 치료를 위한 도움을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입니다.]

그 뒤 교장 선생님은 몇 분간 평범한 훈시를 더 하시다 임시 전교 조례를 끝내셨고 내가 포함된 우리 반 아이들은 수백 명의 시선을 받으며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교실에 돌아왔더니 애들도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내 주위에 몰려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비쟁이 샤기컷 대가리는 더욱 분노한 모습으로 날 끊임없이 노려보고 있었는데 얼굴까지 붉어져 있는 게 좀….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그걸 프랑도 봤는지 조금 우려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샤기컷 대가리가 책상을 부서져라 있는 힘껏 내려치며 벌떡 일어나 외쳤다.

“너희는 모두 속고 있는 거야! 저 자식은 그런 영웅이 아니라고!”

샤기컷 대가리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아이들의 환호를 받는 내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 강주찬, 너 머리 이상해진 거 아냐?”

샤기컷 대가리 이름이 강주찬인가? 뭔가 잔뜩 화가 난 시비쟁이를 반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바라보는데 한고은이 나서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한고은의 말에 강주찬은 눈을 희번뜩거리며 한고은을 노려봤는데 살기등등한 그 모습에 한고은도 흠칫 놀라면서 물러선다.

“저 자식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새끼라고! 금요일에 박물관에 그 일도 저 자식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다들 피할 수 있었던 거야!! 저 자식은 다른 사람들을 구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고!!”

강주찬은 거칠게 책상을 밀어내며 내 앞으로 다가오고, 그 모습에 아이들이 흠칫하면서 물러서며 자연스럽게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냐! 난 옆에서 서하가 달리라는 말을 들었는걸!”

“맞아. 나도 옆에 있다가 서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달리란 말을 들었어. 그래서 서하 뒤를 따라 도망 나올 수 있었다고. 주찬이 너 너무한 거 아니냐?”

나는 강주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오히려 옆에 있던 애들이 날 옹호하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하가 처음 돌아왔을 때도 주찬이는 서하를 보면서 깔보는 말을 꺼냈었어.”

“그 뒤에도 몇 번 짜증 나 라던가 재수 없다는 말도 꺼내던걸?”

애들의 반응에 강주찬은 당황하기는커녕 더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삿대질하면서 소리쳤다.

짜증 나게 사람을 삿대질하냐.

“너희들도 다 속고 있는 거야! 속지 마!! 저 자식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과 사귀는 걸 싫어하고 배척하면서 음흉하게 뒤에서 이상한 소리나 내뱉던 놈이라고! 저 새끼가 위상 세계에 들어가기 전을 생각해보란 말야!”

잔뜩 흥분한 채 계속 날 향해 삿대질하면서 얼굴을 더욱 붉히고 소리친다.

“저 자식은 착한 사람이 아냐! 영웅은 더더욱 아니야! 속 좁고 비열하고 음흉한…!”

“그래서?”

듣다 보니 나도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해서 시비쟁이가 말을 꺼내는 도중에 끼어들었다.

“뭐?!”

“네 말이 맞아. 또 네 말대로 난 이기적인 놈일지도 몰라. 그래서 주변에 있던 아이들을 먼저 챙기기 위해서 달리라고 했고, 그 뒤를 따라 나도 뛰었을 뿐이었어.”

내 과거를 끄집어내며 날 공격하는 강주찬을 보니 나도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저거 봐!”

내 말을 들은 강주찬은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한 주변 애들을 돌아보는데, 어째 애들은 별로 반응이 바뀌지 않는다. 난 공간 지각으로 그 모습들을 보면서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럼 그때 난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했는데? 사건이 벌어지기 10분 전에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럼 그사이에 어떻게 해야 했는데?”

“무, 뭐?”

“너도 알다시피 난 감지 능력자야. 이런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어야 했냐고 물어보는 거야.”

반 아이들은 내 말을 듣더니 서로 바라보며 "도망가는 수밖에 없지?" "서하는 그 와중에 우릴 챙겨준 거잖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강주찬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무표정한 내 얼굴을 보더니 더욱 얼굴이 일그러지고 분노한 표정으로 씹어먹듯이 말을 내뱉었다.

“너…! 너는 전에도 그랬었어…! 그런 식으로 날…! 그, 그런데 이번엔 너, 너 때문에 내 동생이…!!”

전에도? 동생?

무표정한 내 얼굴을 보던 강주찬은 부들부들 떨면서 시뻘겋게 붉어진 얼굴로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너 때문에 내 동생이 소울 리퍼한테 휩쓸리면서 정신이 무너졌다고! 너 때문에!!!”

못 빠져나온 6명의 우리 학교 학생 중에 강주찬의 동생이 있었나 보다. 주변에서는 그런 억지가 어딨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그날 박물관에서 공간 지각으로 봤던 애들 모습을 떠올렸더니 눈썹이 조금 찌푸려졌다.

“…! 너, 이, 이자시이이이익!!!”

내 눈썹이 찌푸려지는 걸 본 순간 강주찬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그걸 감지한 공간 지각이 동시에 마나 모드 - 가속을 멋대로 발동시킨다.

천천히 달려오면서, 동시에 내뻗기 시작하는 강주찬의 꽉 쥔 주먹이, 새하얗게 피가 빠진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위 아이들은 강주찬의 모습에 천천히 눈이 커지고, 놀란 표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뺨에 맞겠네.

잠시 피해야 할까 맞받아쳐야 할까 고민하다가 피해버리면 이상할 거 같아서 그냥 맞아주기로 했다. 마나 모드 상태라 맞아봤자 별로 아프지도 않을 테니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밀려나며, 아프진 않지만 불쾌한 감각이 뇌를 자극한다. 그냥 피할 걸 그랬…. 어?!

그런데 내가 맞는 순간 프랑이 격노하면서 전기를 일으키려는 모습에 깜짝 놀랬다!

“이, 개새끼야아!!”

다시 내 멱살을 잡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드는 강주찬보다 프랑의 격노에 놀라면서 비틀거리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애들도 깜짝 놀란다.

그 순간 김창현이 나와 강주찬 사이로 빠르게 끼어들며 강주찬이 내지르려는 손을 잡았다.

김창현이 굳어진 표정으로 강주찬의 손과 멱살을 잡고 움직임을 막는 사이에 수유리를 비롯한 여자애들이 날 부축하면서 뒤로 물러나고 남자애들은 날뛰고 발버둥 치는 강주찬을 위에서 덮치며 힘으로 잡고 누르기 시작한다.

굉장히 분노한 표정으로 전기를 쏘려던 프랑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 꼭 쥔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겨우겨우 멈추는데 나도 놀래서 식은땀이 흐르는 거 같다.

“놔! 놓으라고! 죽여버릴 거야!! 정서하!! 정서하. 이 개새끼야아아아!!!”

“무슨 소란이냐!!”

우리 반의 소란을 들었는지 지나가던 옆 반 담임이신 땀내 체육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땀내 선생님은 붉어진 내 뺨과 옷자락을 보시고, 남자애들한테 깔려서 발버둥 치며 욕설을 내뱉고 있는 강주찬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지셨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반장!”

“네, 네!”

나는 부축해주는 애들의 손길을 부드럽게 밀어내면서 일어섰는데 소란이 꽤 컸는지 창문 밖 복도 쪽에 애들이 한가득 모인 게 보인다.

프랑도 잔뜩 굳고 화난 얼굴로 내 옆에 서는 게 보였다. 다행히 전기는 생성하지 않았네.

“강주찬이 서하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금요일에 일어난 일에 감정이 격해져서 서하를 욕하고 때렸어요.”

…어, 개인적인 사생활은 싹 감춘 채 핵심만 콕 집어서 말하는 거 같은데 어쩐지 날 옹호하는 발언으로 들린다.

“사실이냐?”

땀내 선생님은 굳어진 얼굴로 주위에 애들을 보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강주찬을 깔아뭉개는 아이들에게 비키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들이 비켜서는 순간 강주찬은 다시 나한테 달려들지만 재빠르게 솥뚜껑 같은 손으로 강주찬의 뒷덜미를 움켜쥔 선생님이 한숨을 쉰다.

버둥거리면서 어떻게든 날 때리려는 강주찬을 선생님은 팔을 돌려 옆구리에 강주찬의 머리를 끼우더니 애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강주찬은 이대로 날 따라온다. 너희는 책상 정리하고 수업 준비해라. 이노무 자슥들!! 빨랑 니네 반으로 안 돌아가냐!!”

땀내 선생님의 고함에 복도에 가득 서 있던 애들도 화들짝 놀라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나도 싸움 당사잔데 나는 왜 안 데려가?

============================ 작품 후기 ============================

지금 주인공과 썸을 타는 여성들은 이미 첫 등장때부터 기본 스토리는 다 정해져있습니다.

뒷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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