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5 비오는 날. =========================================================================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누나가 계속 별명을 가지고 놀리길래 "그만해! 이 절벽 뚱땡아!" 라고 소리치고 마나 모드 가속을 발동해서 잽싸게 방으로 도망쳤다.
으르렁거리면서 쫓아온 누나는 잠긴 내 방문의 손잡이를 한번 돌려보더니 자기 방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길래 미닫이문을 손으로 꾸욱 누르면서 못 열게 막아버렸다.
문을 열려고 힘을 주던 누나는 이내 지쳤는지, 헥헥거리다가 짜증이 가득 난 표정으로 미닫이문을 두드리면서 외쳤다.
“너, 나중에 봐! 가만 안 둬!!”
라고 협박하면서 거실로 나가버렸다.
흥. 나도 가만 안 있을 거다!
책상 위에 팽개쳐뒀던 휴대폰을 다시 충전하고 있으려니 프랑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하 님이 수련장에 대해서 알아오신 것 같은데,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말해주겠지. 거기다 내 능력을 연습하려면 어지간히 큰 곳이 아닌 이상에는 연습하기 힘들 텐데, 그렇게 큰 곳은 시선이 금방 집중될 테니까 연습 장소로는 부적합해.”
-여사님의 집 지하실이라면 괜찮을 텐데….-
“아냐. 거기도 좁아. 적어도 지름 2km는 확보해야지. 게다가 무조건 전부 다 소멸시켜버리는 건 아닌 걸로 판명 났지만 타임리버 빌딩 내벽에 이형종 대책으로 특수설계 된 벽도 고작 0.1만 썼을 뿐인데 간단하게 뭉개버렸잖아? 그런 지하실에서 쓰다간 무너져서 생매장될 거 같아.”
-그렇네요.-
“화중강 아저씨가 쓴 연염옥도 흉내 내서 써보고 싶고, 나도 무기에 TP를 넣어서 던져보고 싶어. 뭣보다 부분 회복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또 마나 탄이 튀어나갈까 봐 연습도 못 하겠고.”
연습하다 실수로 날아가 버린 마나 탄이 지나가던 행인한테 맞았다가는 참사로는 안 끝난다.
-후후. 능력이 뛰어나니까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네요.-
“그러게 말야. 그나저나 프랑이 영혼석에 들어오고 나갈 때 금색에 물빛이 섞이는 이유를 찾아야 할 거 같은데, 원인은 알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좀 걱정인걸.”
-영혼석에 TP는 회복되지 않나요?-
“응 그대로야.”
후으음…. 순간 TP가 회복될 때마다 프랑의 몸에 TP를 주입해볼까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프랑이 잘게 몸을 떠는 게 보였다.
“왜 몸을 떠는 거야?”
-아,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가슴이 살짝 찔리는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을 나눌 때 흘러들어 가는 TP로 영혼석의 TP가 회복되면 좋을 텐데.”
-우우.-
어라? 몸에, TP가 흘러들어 가?
…정액에 TP가 섞이는 건 내가 마나 시브를 돌려서 그렇지? 난 마나 시브로 몸 밖에 TP를 뽑아낼 수도 있고, 그럼 영혼석에 하던 것 처럼 프랑의 몸 안에 TP를 바로 흡수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영혼석 처럼?
“아!!”
머릿속에 번개가 치고 지나간다!
“혹시 프랑의 영체에 TP를 많이 주입하면 다른 사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금빛에 미약한 물빛이 섞인 모습이지만 내 TP는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파란 빛이잖아! 그 TP가 프랑의 영체에 스며들어 가서 동화해버리는 거라면 어쩌면…!”
-아!!-
머릿속이 환해진 기분이라 프랑과 바로 시험해보…려 했지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내 행동을 막아섰다.
프랑도 밝아진 표정으로 날 보다가, 점점 표정이 묘해지는 걸 보니 나랑 비슷한 생각이 든 거 같다.
“눈에 보이게만 되는 거라면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을 거 같…지?”
-네에.-
…어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눈치 보고 저기 눈치 보고…. 손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지 않고 프랑의 손을 잡아봤는데 여전히 영체 속으로 슥슥 통과해버린다.
슬쩍 장난기가 발동해서 프랑의 가슴 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프랑은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몸을 뒤로 뺀다. 그 모습에 냅다 달려들어 프랑의 가슴 속에 얼굴을 묻었더니 프랑도 꺅꺅거리면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마나 시브를 집중한 내 팔에 허리가 잡혀서 간지럼 공격을 받은 프랑은 침몰해버렸다.
침대에 누워서 축 늘어진 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프랑을 올려다보며 방금 마나 시브의 집중 없이 만져봤던 감촉을 되새겼다.
으음…. 분석 능력이 있었다면 확실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6,000 정도의 TP를 부었지만, 중간에 다 빼버려서 얼마 흡수 못했을 거야. 그럼 그동안 흡수한 양은 대충 10,000 정도 되려나?
혹시나 저항감이 더 늘어난 건 아닐까 했지만 처음 만졌을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거 같다.
이 정도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프랑의 영체에 TP가 많이 쌓이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되고, 어쩌면 만질 수도 있지 않을까?
휴대폰이 충전이 다 됐다며 깜빡거리길래 충전기를 분리하고 휴대폰을 켰더니 꽤 많은 스팸 메일과 전화가 와있는 게 보인다.
대부분이 엄마랑 누나의 문자와 전화였는데, 시간을 확인해보니 전부 내가 1회차 위상 세계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많이 걱정하셨나 봐요.-
엄마랑 누나가 보낸 문자를 살펴보고 있으려니, 새삼 엄마랑 누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절절히 느껴져서 코끝이 조금 찡해졌다.
“응.”
아, 그러고 보니 월요일에 학교 가면 강소라하고 한고은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줘야겠네.
…아니, 그대로 붙잡혀서 일자산으로 갔으면 여사님이랑 사고도 안쳤을 테니까, 오히려 원망해야 하나?
다시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느끼며 조심성 없이 내게 다가온 프랑의 허리를 잽싸게 잡아채면서 살살 간지럽히니 프랑은 다시 꺅꺅거리면서 도망가려 한다.
-하우, 후우. 근데 휴대폰은 왜 꺼내신 건가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인증기 켜는 게 왠지 싫은 느낌이라 그래. 어른이 되면 상관없겠지만, 학교나 사람들이 많은 그런 데서는 휴대폰이 나을 거 같아서.”
인증기를 처음 받고 설정할 때 내 휴대폰 번호랑 연동시켜놔서 전화나 문자나 전부 인증기로도 오지만, 휴대폰으로도 통화가 가능하니까 들고 다녀야지.
휴대폰 완충을 확인하고 침대 머리맡에 올려둔 다음 몇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증기를 켰다.
“어디 보자…. 능력, 수련, 장소.”
[아 씨발 좆같은 능력자 연합 절라 짜증 나]
[깊은 숲 속에서 능력 수련 연습 중이었는데 갑자기 곰 새끼가 덤벼들어서 능력으로 죽였더니 벌금 30만 불 때렸어!! 뭐 이런 좆같은게 다있냐! 그리즐리가 덤벼드는데 나 같은 속성 능력자는 그럼 죽으란 거냐 이 mother fucker son of bitch ass!! 어쩌라고!]
-고소고소고소미
-벌금이 그대의 통장을 강간하리니!
ㄴyEAhhhhh!
ㄴ역시 능력자 연합! 가차 없지!
-강…뭐요?
“숲 속에서 연습하는 건 상관없는 건가? 하지만 누나는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휴….-
프랑은 내용보다 게시물의 댓글 수준에 눈이 찌푸려지나 보다.
다른 게시물을 살펴보니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수련하다가 실수로 동물을 죽였다느니, 능력 연습 도중에 불이 나버렸다느니 하면서 무시무시한 벌금에 학을 떼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연합이 어떻게 동물을 죽였다는 걸 알아냈는지 그 부분을 좀 더 살펴봤는데, 주민들의 신고가 대부분이라고 하는 거 같네.
사실 깊은 숲 속에 수련하는 거라면, 신체 강화 능력자는 그냥 적당히 제압해서 몸을 빼내면 되고 회복이나 감지 능력자들은 일부러 숲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대다수가 속성 능력자들인데, 자기 수련장을 지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숲 속에서 수련을 많이 하는 거 같다. 아니면 사막이나 황무지에서 하거나.
우리나라는 무슨 무슨 보호법 때문에 수련장을 지어서 거기에서만 수련해야 하는 건가? 땅이 좁고 인구수가 많으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능력자 범죄는 본부의 예지 예감 팀이 하고, 위상 세계 무신고 진입은 인증기의 신호 여부로 판단하는 건가 보다. 왠지 헐렁한 규제 같긴 한데…. 내가 모르는 다른 부분도 있는 거겠지.
귀환 포인트에 대해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됐는데, 역시 귀환 포인트에 능력을 사용해서 공격하거나 하면 귀환 포인트가 사라진다고 했다.
워. 그때 생각 없이 그 근처에서 싸웠으면 귀환 포인트 새로 찾아다녀야 했겠네.
화연이가 말해줬던 피스터머라는 것도 살펴보고 소울 리퍼에 대해서도 검색해봤는데 한국 소울 리퍼 두 키워드가 들어가니 내 별명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끄응….
침음성을 삼키면서 소울 리퍼에 대해 알아봤더니, 역시나 그 함函이 문제였던 거다. 그리고 소울 리퍼가 허약했던 이유도 사람의 정신을 많이 빨아먹지 못해서 좀 허약한 상태였다는걸 알 수 있었다.
소울. 그러니까 혼을 많이 채집하면 할수록 지능도 높아지고 더 강해진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다 도망가고 스물 댓 명만 확보해버렸으니까….
만약 내가 도망가면서 뒤에 애들이 따라오지 않았다면 프랑의 말대로 영국처럼 무시무시한 희생이 났었을지도 모르겠다.
피스터머는 덩치가 15m에 달하고 두 팔 하나하나가 자기 몸통만 한 그야말로 근육 덩어리 검붉은 색 마운틴 고릴라였다.
…화연이는 이런 놈이랑 홀로 맞짱떴다는거지?
그 외에는 별다른 궁금증도 없고 여전히 클래스가 낮아 접근 금지 걸린 정보가 많아서 그냥 인증기를 꺼버렸다.
“흠…. 내일 서울 벗어나서 숲 속에라도 몰래 들어갈까? 능력을 좀 더 가다듬고 싶은데.”
-그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요. 지금처럼 시선이 집중될 때 서하가 자리를 비우고 산속으로 들어가면 의심할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거라 생각해요.-
“으음. 그렇겠지?
자기보다 조금 큰 우리에 갇힌 동물의 기분을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품에 안은 프랑의 예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프랑도 날 마주 보다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내 품 안에 파고들었다.
밖이 어둡고 뭔가 추적추적 내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커튼을 걷고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아침의 아파트 단지를 보니 살짝 가슴이 울렁거리, 헛?!
순간 위상력이 제멋대로 꿈틀대다가 주변으로 퍼져나 가려 하길래 기겁하고 마나 시브를 컨트롤해서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내 주위가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출렁 출렁하는걸 보고 진짜 식겁했다!
잠시 뒤에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위상 세계로 들어가 버리면 진짜 얄짤없잖아! 진짜진짜, 무진장 조심해야겠다!
정말 놀라서 식은땀까지 흐르는데 나 때문에 프랑은 잠에서 깼는지 잠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서하…? 왜 그러시나요?-
“아, 3회차 들어갈 뻔했어.”
-네?!-
화들짝 놀라면서 발딱 일어나서는 내 뺨을 만지고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갔는데, 아까 일어나서 밖에 비 내리는 걸 보니까 가슴이 울렁거리더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내 주위 공간이 출렁거리면서, 몸 안에 위상력이 멋대로 빠져나가려고 하더라. 마나 시브로 필사적으로 되돌리니까 겨우 원래대로 돌아갔어.”
-아…! 화연의 가설이 맞았네요. 하아아….-
“응. 내 마나 시브 덕분에 위상력을 컨트롤하기 쉬워지니까 나도 모르게 그러나 봐.”
프랑도 10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식은땀이 흐른 내 이마를 보고 손을 뻗어 땀을 훔쳐주려 하는데 프랑의 손에 밀려 땀이 잠옷으로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앗….-
땀을 닦아줄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안타까워하는 프랑을 한번 꼬옥 안아주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프랑은 같이 화장실로 들어와 샤워를 하려는 날 도와주려고 했는데 두 손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프랑의 등을 밀어서 화장실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하, 하지만!-
“나 독립해서 나가면 그때 해줘! 지금은 역효과니까!!”
그제서야 프랑은 울끈불끈해있는 내 남근을 보고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화장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 거시기를 내려다보니 어제 여사님의 모습이 생각나 버려서 살짝 몸을 떨었다. 내 기분은 상관없다는 듯이 꺼덕거리는 롱 블레이드를 내려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누나는 분홍색 곰돌이 파자마를 입고 자기 방 앞에서 주저앉아있었는데 다행히 어제의 폭언을 잊은 듯이 샤워하고 나오던 날 보며 잠기운이 가득한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안녕…. 잘 잤어…?”
“응. 누나도 좋은 아침.”
“으응…. 흐아아암.”
누나는 입을 가리고 하품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큰방에 아빠랑 엄마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티비를 켰다.
아침 뉴스에서는 어제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도 내보내 주고 있었다.
“어쩐지 여사님이 손을 써서 저런다는 기분이 들어.”
-여사님이요? 으음, 이름을 널리 알려서 공인으로 만들 생각이신 걸까요?-
“그렇겠지? 여사님이 여러 나라에서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내 얼굴이랑 이름을 전국에 알리면 허튼수작 부리기 힘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면서 국가에서 날 커버할 생각인 걸까? 다시금 어제 여사님이 했던, 뒤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으으.
지잉 지잉
응? 인증기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자를 보니 처음 보는 전화번호다. 하지만 번호 아래쪽에 능력자 연합 마크가 찍혀있는 걸 보면 인증기로 건 전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전화를 한 거지? 의아한 마음에 통화를 연결했…는 데 홀로그램 창에 화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귀환 한….
[우리 서하 군, 잘 잤니?]
…!
…화연이가 아니라 여사님이었…구나.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올려 묶은 모습이 정말 화연이랑 똑같다.
[으응. 아줌마는 괜찮아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처음에 화연이 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여사님이었다는걸 알고 실망, 아니 당황해버렸는데 여사님은 그게 자신을 걱정한 거라고 받아들였나 보다.
오해 속에서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여사님의 모습을 보니 다른 의미로 가슴이 콕콕 찔린다.
슬쩍 시간을 보니 이제 7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는데, 매너 모드를 키고 내 방으로 들어와서 여사님의 얼굴을 다시 보니 마치 얼굴에 기름을 바른 듯이 반짝반짝 빛나고 생생한 게 화연이를 보는 거 같다.
아니, 화연이보다 표정이 밝고 풍부해서…. 화연이랑은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어색하고 부끄러워하는 화연이가 못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여사님은 약간 흐트러진 목욕 가운 차림이었는데 방금 씻고 나오신 건…가했지만 머리카락이 말라 있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다. 아마도, 일어나시자마자 얼굴과 머리카락을 정리하시고 바로 전화하신 거겠지.
“네….”
[아줌만 방금 일어나버렸는데, 14시간 가까이 자 버린 건 처음이라 깜짝 놀랬어!]
정말로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방글방글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시는데…. 끄응. 어제 여사님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신경도 안 쓰시는 모습이다. 활짝 웃으시면서 어깨를 살짝 모으니까 목욕 가운이 훌렁 내려가다가 가슴께에 걸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선정적이다.
[하지만 일어났을 때 옆에 우리 서하가 없어서 슬펐어요!]
“언제 일어나실지 몰라서 그냥 와버렸어요.”
죄송하다고 할랬다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는 건 이상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옆에 같이 잤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아줌말 챙겨준 것도 우리 서하 맞지?]
마치 소녀 같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시는데, 기분이 상했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아서 조금 당혹스럽다. 정말로 그냥 뒤에서 나랑 화연이를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 건가?
“네….”
[후훗. 그래, 아줌마의 그곳은 기분이 괜찮았니?]
정정하겠다! 정욕에 불타는 30대 아줌마 같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아침부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화면을 같이 보고 있던 프랑도 얼굴이 약간 굳어진 게 보인다.
“여사님, 저는.”
[어머~! 어제처럼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거니?]
헉…. 큰일 났다. 혹시 어제 일을 전부 기억하시는 건….
여사님이 저질스런 말을 스스로 꺼내면서 흥분하는 거 같길래 일부러 험한 말이랑 모욕하는 말까지 했는데 그것도 다 기억하시는 거 아냐? 으으으.
[아줌마의 아랫입이 조금 헐렁해서 우리 서하 마음에 안드는 거 같으니까, 오늘부터 열심히 단련해서 우리 서하 마음에 꼭 들게 만들 테니 나중에 다시 안아줘야 해?]
…전부 기억하고 계시나 보다. 다행인지 화는 안나신거 같은데 눈이 먹이를 앞둔 맹수의 그것처럼 번쩍번쩍해서 무섭다.
“…….”
화연이 생각도 나고 여사님과 해버린 행위에 지금 보여주시는 반응까지 더해서 가슴이 무거워졌다.
여사님은 내 표정을 보더니 쓰게 웃으면서 살짝 한숨을 쉬고 입을 여셨다.
[우리 서하는 아줌마가 마지막에 한 말, 기억하고 있으려나?]
…신음이나 비음 같은 건 아니겠지? 고, 고기 주머니…도 아닐 거야. 그럼 나만 보고 살겠다던 그 말인가?
“저만 보며 살겠다는 이야기요?”
정답인지 여사님은 상냥하게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전 화연이를 사,”
[화연이는 우리 서하한테 이미 따먹혔지?]
!!
[화요일 밤쯤이려나?]
아, 아차. 불시에 이야기를 들어서 반응을 해버렸다! 안돼!! 화연이가 경찰에 잡혀갈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아줌마는 우리 딸을 처벌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때 우리 서하가 도망 못 가게 막으려고 말을 꺼낸 것 뿐이에요?]
아…. 후우, 여사님은 진짜…. 내 머리 위에서 생각을 다 읽고 있는 거 같다.
[…서하는 정말 화연이를 좋아하나 보구나. 이 아줌마도 화연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외모는 같지만, 속까지 같을 수는 없어요.”
단호한 말에 여사님은 기쁘면서도 섭섭하고 또 아쉽다는 표정이셨다. 어쩐지, 처음 여사님을 봤을떄의 변화무쌍한 표정의 커튼이 조금 걷힌듯한 기분이다.
[후후. 우리 서하가 아줌마한테 홀랑 넘어와 버렸다면, 조금은 덜 좋아했을지도?]
“사실 여사님을 무진장 좋아하고 있어요.”
[…….]
칫, 안되나.
잠시 굳은 표정을 지은 여사님은 빠르게 얼굴을 붉히시더니 부끄럽다는 듯이 두 팔로 자기 허리를 감싸더니 몸을 비비 꼬면서 말했다.
[그, 그렇게 갑작스럽게 고백하면 아줌마는 마음의 준비가…!]
“안 통한 거 다 들통났거든요?!”
[킥킥킥. 역시 블루 지니어스! 견파안의 소유자다운 스테이터스구나!]
“크으으으!”
저 별명을 지은 인간은 2순위 척살 대상으로 지정하겠어!!
[…….]
“…….”
…한동안 여사님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여사님의 눈빛은 꽤 복잡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 거 같다.
나도 화연이도 포기 못 한다는 눈빛이다. 하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건지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다.
내 옆에서 나와 여사님의 대화를 무표정으로 듣고 있던 프랑의 손을 잡으니, 프랑이 날 돌아봤다. 시선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는데 프랑도 무표정을 풀고 약간 눈썹이 올렸다.
[후우~. 아줌마는…. 암만 생각해봐도 우리 서하랑 화연이를 포기 못 해요. 우리 서하도 아줌마처럼 화연이를 포기 못하는 거지?]
“네.”
[그래~. 이 아줌마가 마지막에 한 말은 꼭 기억해주렴?]
아아. 진짜 모르겠다. 어째서 여사님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면 밝고 활달한 화연이랑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드는거지?
아까 날 놀리던것도 생각나버려서 홧김에 말을 내뱉어버렸다.
“고기 주머니요?”
[…! 아, 아이참! 그게 아니…!]
“알아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니까 절대 못 잊을 거에요.”
[아…. 아유. 아줌마를 놀리면 못,]
“자기보다 1/4도 못 산 어린 남자애한테 푹푹 찔리면서 괴성을 지르던 현숙하다고 칭송받는 대통령님이라니, 그걸 어떻게 잊어요?”
[…!!]
말을 도중에 끊은 아까의 복수다.
여사님은 내 말에 얼굴을 붉히시면서 눈썹을 찡그리시는 모습은 화난 게 아니라 아랫배가 찌르르하다는 표정인 거 같았다. 그런데 홀로그램 뒤편에서 프랑이 입을 방긋거리면서 나에게 말하는 게 보인다.
-그녀가 화연에게 당분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주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의 말에 따르는 게 좋겠지.
“여사님?”
[으, 응?]
“저, 확실히 지켜줄 거죠?”
[…물론이야. 아줌마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우리 서하를 보호해줄게.]
여사님의 확고한 표정을 보니 어제 이야기는 역시 전부 진심이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믿을게요. 그리고,”
[으응.]
“제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 어제 있었던 일은 화연이 앞에서 드러내지 마세요. 만약 멋대로 드러내 버리면….”
[…꼴깍.]
지금 내 표정은, 아마 무표정을 넘어 얼음장 같을 거다. 여사님도 그걸 느끼면서 약간 긴장한 건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사님은, 지금까지 봤던 저랑 다른 모습의 절 보실 거에요.”
이렇게 말해주면, 나보다 훨씬 머리 좋고 똑똑한 여사님은 어디까지 눈치챌 수 있으려나?
역시 내 말에 뭔가 다른 뉘앙스를 느꼈는지 표정에 의아함이 번져가는 게 보였다.
“그럼 끊을게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아! 잠, 잠깐….]
여사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게 보였지만 일부러 인증기를 종료시켜버렸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더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숨을 쉬면서 침대 위에 풀썩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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