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육식동물 =========================================================================
바람을 가르며 머리부터 떨어져 내리던 여사님은, 공중에서 살짝 회전하시더니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쿠아앙!!!
…착지하셨다.
굉음과 함께 돌풍이 한순간 퍼져나가면서 낙하충격으로 보도블럭들이 깨어져 나가고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중앙의 움푹 패인 땅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시는 여사님이 보였다.
몸 안의 위상력이 활발하게 회오리치는 걸 보니까 운용 기술을 돌리고 있으신 거 같다.
“아이참. 서하 군하고 길이 어긋날 뻔했네?”
천진난만스런 표정으로 상큼하게 웃으시는 여사님은 검푸른 고급스런 여성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충격으로 올이 나가고 찢어진 검은 스타킹은 신경도 안 쓰시고 주변에 경악한 사람들의 표정도 신경 안 쓰시면서 두 손에 구두를 들고 맨발로 내 쪽으로 걸어오셨다.
왼쪽으로 늘어트린 사이드 테일 머리 모양의 여사님은, 아까 봤던 베이글녀와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계셨는데 미소를 머금고 날 바라보는 눈빛이 번쩍번쩍 빛나는 게, 좀…. 무섭다!
“으응? 서하 군? 아줌마에요~. 잊은 건 아니지?”
충격적인 등장에 굳어있는 내 모습을 보시더니, 여사님은 웃으시면서 내 뺨을 콕콕 찌르는데 볼에 느껴지는 여사님의 손가락에 굳은 몸이 풀리면서 말이 나온다.
“아, 아니에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근데 위에서 뛰어내리신 거에요? 몸…은 괜찮으세요?”
“후후. C 클래스 능력자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의 점프는 몸에 무리가 안 와요~. 아줌마를 걱정해준 거니? 기쁜걸!”
…C 클래스 신체 강화 능력자는 100m 높이에서 추락해도 멀쩡한거야?
여사님 뒤로 웅성거리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경호원들이 황급히 몸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막아서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계신 여사님을 보니 도망가는 건 글렀다고 생각했다.
경호원들의 가드에 막혀 아우성 중인 사람들에게 화사하게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주신 여사님은 곧 대통령 전용 차량에 오르셨고 여사님의 손에 팔이 잡힌 나도 덩달아 끌려 들어갔다.
프랑은 안절부절못하며 내 주변을 빙빙 날아다니는데, 나도 안절부절못할 기분이지만 최대한 억누르며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어휴, 올이 다 나가버렸네~.”
날 보며 약간 짓궂어 보인 웃음을 지으신 여사님은, 부드럽고 매끈해 보이는 한쪽 다리를 들어 발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르키더니 허벅지에 손을 올려 천천히 검은색 스타킹을 벗…으시는데, 다리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레이스 팬티나, 매끈한 곡선을 자랑하는 여사님의 다리를 보니 말문이 막힌다!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거시기를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 머릿속으로 애국가와 교가 믹스를 부르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필사적으로 잡으며 여사님의 눈만 바라본다!
그래도 공간 지각이 여사님의 다리 사이를 훑는 건,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프랑은 곧 울상이 되더니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나, 나도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동그랗게 말린 스타킹을 잠시 내려보시던 여사님은 옆으로 휙 던졌는데, 나도 모르게 그 스타킹을 눈으로 좇다가 황급히 원래대로 돌렸….
큭, 노, 노리셨던 건가…!
마치 악동 같은 웃음으로 방글방글 웃으시던 여사님은, 꿀꺽. 왜 저렇게 다리를 벌리시는 거야?! 치마랑 다리 사이로 그, 그게 다 보이잖아!
감자! 눈을 감…. 큭! 공간 지각도 차단해야 해!
귓가로 키득거리는 여사님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서, 서하!-
응? 억!!
갑자기 묵직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무릎 위에 올라오며, 따뜻하고 포근한 체향이 확 풍긴다!
“어휴, 의자를 교체해야 하나? 너무 딱딱한 거 같아서 아줌마는 엉덩이가 아파요. 잠깐 앉아있어도 되지?”
뭐가 딱딱해?! 이렇게 푹신한데!! 당황해서 눈을 부릅떴더니 여사님이 내 무릎 위에 앉은 게 보였다!
“여, 사님! 이, 이러면 안 돼요!”
당황해서 소리치는데 여사님은 못 들은 척하시며 갑자기 왼팔을 내 목에 두르더니 확 잡아당기셨다!
“켁?!”
어어어어얼굴이 여사님의 옆 가슴에…!
여, 여사님 몸에 손을 대, 면 안 되겠지?! 하,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세가…! 어어떻게 하지?!
-아아…! 서, 서하!! 어떡해~! 아우!!”
“끙차.”
여사님의 옆 가슴에 코를 묻으니, 이…. 이건 체리 향기가…!
야릇한 비음 섞인 목소리를 내신 여사님은, 무릎을 가슴으로 한껏 당기시며 남은 스타킹을 벗으시기 시작하는데, 그 자세가 더 힘드실거 같습니다만?!
“으힉?!”
여사님은 상체를 뒤로 살짝 숙이시더니 내 머리를 왼쪽 가슴 앞으로 당기고, 무릎으로 내 뒤통수를 누르면서 가슴으로 내 얼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유, 스타킹 벗기가 왜 이렇게 어렵다니~?”
“~~!!”
으, 숨이 막히는 건 둘째치고, 얼굴에서 느껴지는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아아…. 화, 화연이 필요한데…!-
울상을 짓는 프랑의 얼굴을 본 순간 내 밑에 깔려 애달픈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던 화연이가 눈앞에 떠오른다! 날 바라보며 자기한테는 나뿐이라던 화연이가!
이래서는 안 돼!
대체 왜 이렇게 과도한 스킨십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홀릴 거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웃으시는 여사님은 둘째치고!
화연을 배신할 수 없어!
“꺄아~?”
동시에 힘을 모으고 마나 모드를 돌려 발딱 일어서버렸더니 여사님은 바닥에 떨어지기는커녕 우아한 자세로 한쪽 발을 내딛으시더니 몸을 반 바퀴 돌려 맞은편 의자에 앉으셨다!
저, 저저! 재밌다는 표정 좀 보라지!
“그만하세요! 더이상 놀리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에요!”
“어머? 그 말은 아줌마랑…. 으흥~?”
확실히 장난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발칵 화를 냈더니 여사님은 되려 응근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검지로 입술을 살짝 누르신다!
화연이 얼굴로 그런 색기 넘치는 표정 짓지 말아요!
“알았어, 알았어! 아줌마가 장난이 심했지? 이제 안 할 테니까 앉으렴. 호호호.”
울그락불그락거리는 내 얼굴을 여사님은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으시면서 즐거워하셨다…!
나한테 놀림받던 화연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뒤로 여사님은 정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시고 다리를 꼬은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계셨는데 워낙 사기적인 가슴이라 팔짱을 낀 것만으로도 가슴이 강조되는 모양새라 참…. 눈을 둘 데를 못 찾겠다.
눈을 감고 뭔가 생각을 하시다 눈을 뜨고 응근한 미소를 지으시며 날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뭐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아까는 말도 안 되는 성희롱까지 하고….
놀림 받았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도 잠시였고 곧 불안한 마음에 여사님을 살펴보고 있는데 프랑도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여사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경복궁 쪽의 청와대로 갈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도 차는 계속 달려서 한강 옆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현충원을 지나서 우면산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여사님. 지금 어디 가는 거에요?”
“응? 아줌마 집에 가는 중이야.”
컥!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네? 여, 여사님 집은 왜요?”
“왜긴~? 서하하고 점심 먹고 싶어서 그러는데?”
으으…. 얼굴은 천진난만하고 말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뭔가 진짜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화연이랑 같이 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여사님이랑 가니까 어쩐지 가슴이 쿵덕거리고, 이형종이랑 마주 서 있는 기분이다…!
다, 다시 도망갈까? 차가 멈추는 순간 마나 시브를 가속, 아니 신체 강화로 바꿔서 튀어버리면…! 최대 7배까지 올릴 수 있으니까, 여사님도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랬다간 내가 능력을 더 숨기고 있었다는 걸 여사님이 눈치채고 진짜 가만 안 있을 거 같은데…. 거기다 여사님도 C 클래스라서 똑같은 7배잖아! 도망쳤다간 대번에 잡혀버릴 거야!
진퇴양난이다!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 매정한 차는 계속 달려 어느새 저택의 앞에 도달해있었다.
“흥. 서하 쨩은 정말 너무한걸?”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줌마는 우리 귀염둥이 서하를 위해 힘내서 연합의 능구렁이들과 싸웠는데, 아줌마한테는 고맙다는 전화 한번 안 하고.”
뭔가 충격적인 호칭이 들려서 되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엉뚱한…. 어? 날 위해서라고?
여사님의 말에 일요일에 화연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화연이가 일부러 여사님에 대해 나쁘게 말한 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화연이라면 차라리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돌려서 나쁘게 이야기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그때 나온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라는 거지.
…그래도 여사님 말대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인데 전화 한번은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죄송해요.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한 마음을 담은 내 말에 여사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뭔가 쓴웃음? 기쁜 웃음? …이상한 웃음을 지으시더니 한숨을 폭 내쉰다.
“한 가지만 대답해주겠니?”
차는 열린 대문을 통과해 천천히 주차시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번 주 화요일 이후로 아줌마를 생각한 적 있었어?”
“몇 번은….”
“그런가.”
주로 안 좋은 쪽으로였지만!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여사님은 다시 살짝 기쁜 웃음을 지으시며 차량이 주차시설 안에 멈추어서자 문을 열고 내리셨다.
뭔가 기분이 막막 변하는 거 같은데 이유가 뭐 때문인지 표정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프랑이나 화연이처럼 알기 쉬우면 좋을 텐데.
하지만 어쩐지 피곤? 피로함 같은 게 보이는 거 같다.
여사님의 뒤를 따라 내리면서 슬쩍 차량 문의 두께를 봤더니 내 몸통보다 더 두껍다. 그러고 보면 이 주차시설도 차를 10대까지 보관할 수 있는 건데, 굉장히 튼튼하게 만든 이유가 대통령 전용 차량 때문인 걸까?
…이런 두께를 확인했더니 차 안에서 탈출 같은 건 시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사님은 차에서 내리는 날 보며 활달한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조금 점심이 늦어버렸네~. 우리 귀염둥이 서하는 배 많이 고프니?”
“네? 아뇨, 도중에 간식 먹어서 괜찮아요.”
귀염둥이라니…. 내 겉모습이 아니라 능력 때문에 말하는 거겠지?
저런 모습으로 연합이랑 나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지분? 점유율? 같은 걸 얼마나 가져갈지에 대해 의논했다는 게 생각나니까, 나한테 이렇게나 상냥하게 대해주시지만 어쩐지 순수하게 좋아할 수가 없다.
겉으로만 보면 날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여사님은 상큼하게 웃으시며 다가오시더니 번개같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챘다!
깜짝 놀라면서 물러서려고 했는데 여사님은 억센 힘으로 날 잡아당기시더니 저택을 향해 걸어가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줌마는 일과가 끝나서 씻구 밥 먹어야겠는데, 서하도 땀을 흘렸으니까 아줌마랑 같이 씻을까?”
-?!-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팔을 꼭 안으면서 말씀하시는데, 화연이랑 똑같은 얼굴에 비슷한 몸매라서 이놈의 미친 심장이 화연이로 착각하고 자꾸 콩닥거린다!
화연이가 아니다, 이 악마야! 흥분하지 마! 얼굴로 피 보내지마!
“아, 아뇨! 괜찮아요! 혼자 씻을 수 있어요!”
겉으로는 농담하는 거 같아 보이지만, 농담으로라도 "진짜같이 할까요?" 했다간 바로 잡혀서 끌려갈 거 같다! 눈빛이 농담이 아니야!
“하지만 아줌마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는걸?”
“저, 저택 안에 메이드 누나들이 있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저택 안에 집사 할아버지랑 통통한 아줌마 한 명 빼고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아줌마는, 이 아니고! 여사님은 그걸 니가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다.
“하녀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저번 월요일에 화연이랑 같이 지하 수련장에 한 번 와봤었어요!”
“응? "화연이"?”
헉. 아, 음. 화연이가 아직 말 안 한 건가? 화연이의 이름을 막 불렀더니 여사님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진다. 이상해지는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서 무서워!
별말은 안 하고 여사님의 시선을 피해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뒤통수에 꽂히는 여사님의 눈초리가 매섭다!
쭈뼛거리면서 저택으로 향하는 정원수 사이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캐묻기는 포기하셨는지 말은 안 하고 시선도 안 주지만, 내 팔에 자꾸 기대오셔서 진짜 곤란하다.
내 옆에서는 프랑이 나만큼이나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여사님을 바라보며 정신 사납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프, 프랑.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여사님이 씻는 사이에 도망갈까?-
-으으으. 하, 하지만 그건 기사의 도리가, 아아아니, 도움받은 사람으로써의 도리가…!-
-하, 하지만 이대로 들어가 버리면 진짜 위험할 거 같은데?!-
때마침 눈이 마주친 프랑에게, 여사님한테 고갤 돌리고 입술을 달싹거리니 프랑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지 울상만 지었다! 으아! 진짜 어쩌지? 여사님 씻을 때 도망가버릴까?! 도망갔다간 다음에 만날 때 진짜 뭔가 일이 터질 거 같은데…!
“정원이 보기 좋지? 이렇게나 가꾸는 데 50년이 걸렸어. 아줌마가 제일 아끼는 곳이야.”
“어, 네.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저택이랑 잘 어울리는 모습이에요.”
내가 프랑과 독순술로 대화를 나누는 게, 여사님의 눈에는 정원 구경으로 보이셨나 보다.
“그렇지? 아줌마도 인제 그만 자리에서 내려와서, 마음 편히 살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구 돈도 모아서 만든 집거든?”
-…!!-
아, 그게 아줌…. 아니! 그게 아니고, 여사님의 노후 설계인가? 하지만 암만 봐도 이제 20대 중 후반 정도로밖에 안 보일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데? 공간 지각으로 몸을 살펴봐도 화연이나 울 누나만큼 건강한 몸이다.
보통의 신체 강화 능력자는 근 150년을 살다 간다고 하고 고위 클래스일수록 오래 산다고 하니까, 앞으로 최소 50년 넘게 지금 모습으로 지내실 수 있을 텐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외국 파파라치 찌끄래기들이 일부러 이상한 사진이나 조명을 약간 어둡게 해서 여사님이 10살은 더 들어 보이게 찍은 사진들이 있긴 한데, 실제로 만났을 때는 무진장 훨씬 젊어 보여서 굉장히 놀랬었다.
대통, 여사님인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하던 일을 손에 놓을 수 없어서 다음번엔! 이 다음번엔! 그 다음번엔! 이러다 보니 어느새 오늘이 됐지 뭐니? 호호호.”
어? 잠깐,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게 대통령을 그만둔다는 이야기야?
“네?! 대, 대통령 출마를 더는 안 하시려고요?!”
“응. 아줌마도 이제 70년씩이나 일했잖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편히 살고 싶어서 그래. 거기다 은근히 독재자라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기도 하구.”
“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통령인 건 상상이 안 가는데….”
내 말에 여사님은 그야말로 초승달 같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기뻐하셨다.
“그 말은 아줌마가 열심히 잘해왔단 뜻이지?”
“그야…. 저는 잘 모르지만, 병원에 가보면 나이 많은 어른들이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는걸요? 여사님이 대통령이 되신 뒤로 훨씬 살기 좋아졌다고요.”
“으응. 서하가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게 더 기쁜데? 조금 더 아줌마를 칭찬해주지 않을래?”
어쩐지 방금전부터 하고 계신 이야기는 전부 진심인 거 같다.
“14번이나 연임하시면서 이만큼 훌륭하게 나라를 이끌어 오신 분은, 전 세계를 봐도 여사님이 유일할거에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여사님만큼이나 훌륭한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을거에요.”
“후후. 그 이야기는 정말 기쁜걸?”
100% 솔직한 마음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배운 걸 생각하며 여사님을 칭찬했더니 정말로 기쁘신지 과장되거나 억지웃음이 아니라 어느새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시는 여사님이었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여사님이 같이 씻자고 손을 잡고 억지로 욕실로 들어가려고 하시길래 손가락이 부러져라 문에서 버티면서 거절했다.
1층의 욕실은 2명이 들어갈 크기의 동그란 욕조를 욕실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같이 목욕해?!
한동안 "같이 씻자", "안 된다", "하녀가 다 쉬는 날이다", "하루 안 씻어도 안 죽는다" 를 반복하다가 결국 여사님이 토라진 듯이 흥흥거리면서 욕실로 들어가 버리시는 걸로 끝났다.
그런 우리 모습을 집사 할아버지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시면서 보시다가 여사님이 욕실로 들어가시자 날 2층의 욕실로 안내해주셨는데 어쩐지 불안해서 그냥 샤워만 하고 잽싸게 나왔다.
근데 그사이에 집사 할아버지가 내 교복을 치워버렸다!!
“어어어어?! 집사 할아버지! 제 옷은요?! 조끼는 어떻게 하신 거에요?”
“교복은 땀에 젖어 냄새가 나기에 세탁했습니다. 몇 시간 후면 마를 테니 그때까지 준비해둔 옷을 입으시지요.”
그러면서 내 위상석 조끼를 건네주시고 나가셨는데 공간 지각으로 싹 살펴봤더니 바뀌거나 빠진 부분은 없었다.
욕실과 붙은 드레스 룸에서 조끼를 입고 집사 할아버지가 챙겨주신 흰색 바탕에 대각선으로 3줄의 강조선이 들어간 패턴의 셔츠와 군청색 면바지를 입었는데 셔츠도 그렇고 바지도 몸에 밀착되는 느낌이, 굉장히 부드럽고 좋다.
프랑은 옷을 입은 날 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좀 안색이 어두운데…. 여사님이 무섭긴 하지만 내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화랑에 넘어가거나 하진 않을 텐데 너무 걱정하는 게 아닐까?
-옷감의 재질이 무척이나 부드러워 보여요! 100% 천연소재인가요?-
“그런 거 같아. 입어본 적이 없는 소재야.”
-천연 소재는 위상 세계가 등장한 뒤로는 능력자들이나 36살이 넘은 사람들만 입는다고 하니까요.-
확실히 그렇지. 얇고 부드러운 옷은 방어적인 면에서는 벗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위상 세계에 빨려 들어갈 걱정이 없는 36살 이상의 사람들이나 아니면 능력자들만 입고 다니겠지.
아무튼, 아무리 여사님이 육탄돌격을 하신다고 해도, 죽어도 화랑에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옷을 다 입고 몸에 착착 감기는 옷의 묘한 느낌에 조금 얼굴을 붉혔다가 드레스 룸을 나왔다.
집사 할아버지는 여사님이 계신 욕탕의 바깥에 여사님이 입으실 옷과 속옷을 준비한 다음 식당에서 식사준비를 확인하시고 식당의 테이블을 세팅하시기 시작하셨다.
여사님은…. 마치 때를 밀 것처럼 같이 목욕하자고 꼬드기시더니, 정작 욕조 안에서 수십 분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가만히 있으셨다. 아니, 인증기를 보는 건지 한쪽 팔을 살짝살짝 드는 모습이 보인다.
…으으. 나도 모르게 여사님의 벗은 몸을 또 봐버렸어…. 여자 알몸도 이제 스캔 안 하려고 했었는데….
기왕 봐버린 거 이곳저곳을 살펴봤는데 정말 여러 가지로 화연이랑 같으면서도 다른 몸이다.
저번 주 화요일에 한 번 본 몸이지만, 그 사이 화연이를 품에 안았다가 다시 보니 또 다른 점이 보인다.
허벅지는 화연이보다 약간 더 가늘었는데 덕분에 다리 사이의 삼각지와 골짜기가 도드라져 보이고, 몸을 뉘인 상태에서 보이는 가슴은 축구공을 반으로 잘라 가슴에 붙인 거 마냥 크고 탱글탱글하다.
전신에는 싸우기에는 부족할 거 같은 근육이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거나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보면 화연이에게 버금갈 만큼 아름다운 몸이었다.
화연이는 분홍색 젖꼭지와 유륜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여사님의 젖꼭지는 똑같이 분홍색의 귀여운 모양이었지만 여사님의 유륜은 그냥 색만 분홍색이고 튀어나와 있진 않았다.
그런데 공간 지각으로는 홀로그램 창이 안 보이네?
여사님이 나오셨을 때는 오후 1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알몸에 목욕 가운만 걸친 상태였다.
얼굴이 슬쩍 붉어지는 거 같아서 여사님한테서 시선을 돌리려니 내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신 여사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사 할아버지한테 말씀하셨다.
“주한. 옷은 내가 직접 입을게.”
“그러시겠습니까.”
“서하는 집이라도 둘러보고 있으렴.”
“네에.”
20대로 보이는 여사님이 70대가 넘은 집사 할아버지한테 말을 놓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나이로 따지면 여사님이 한참 위니까 이상할 건 없지. 하지만 상식이 무시되는 모습이라 좀 이상하다.
여사님은 집을 둘러보고 있으라고 했지만, 저번에 왔을 때 공간 지각으로 다 살펴봐서 별로 볼 게 없다.
집은 전체적으로 ㄴ자 모양에 꺾어지는 부분에서 계단이 있어서 위로 올라가거나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각 층의 벽 끝에는 방이 1개 2개씩 총 6개가 있고, 방 앞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크고 작은 거실과 욕실,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두 곳의 큰 욕실 앞에는 드레스룸도 붙어있었다.
각 층마다 서재가 하나씩 있었는데 서재마다 책이 가득한 게, 아빠가 보면 좋아할 거 같다. 그리고 방과 방이 만나는 꼭지점에는 식당이나 티 테이블이 있는 응접실이 있었는데 1명이 살 곳 치고는 너무 넓다. 그리고 색감이 전체적으로 싸늘해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고.
“…이런 곳에서 여사님은 홀로 반백 년을 살아오신 건가?”
-집사 분과 메이드 아가씨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잖아. 뭐 집사 할아버지는 반 정도는 가족인 거 같지만, 화연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화연이도 14살 이후로는 집에서 나와 살았다고 하는 거 같은데, 어쩐지 여사님이 좀 불쌍하다.”
-쓸쓸하다고 하시는 부분은 약간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네요. 하지만 서하의 가족을 보면 이해가 돼요. 그런 부모님과 누나가 있다면 홀로 사는 건 쓸쓸하겠죠.-
프랑은 조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었다.
“여사님에게는 국가가 가족이고 국민이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라고 하셨지만, 정말 쓸쓸하고 외롭지 않았다면 정원길을 걸을 때 그런 말이나 표정을 지을 리가 없잖아. 그때 얼굴이나 목소리는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는걸?”
-…….-
피를 나눈 혈육의 진한 정 같은 건 돈으로도 못사는 거니까, 어쩌면 화연이를 낳으신 것도 쓸쓸하셔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화연이가 우리 가족을 보면서 가지고 싶은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한 게 생각났다.
그건, 여사님에게 투영된 감정이 아닐까.
============================ 작품 후기 ============================
4연참으로 오늘은 끝. 자정에 한편 더 올릴게요!
가시기전에 추천 살짝 눌러주시면... 굽신굽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