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19화 (119/517)

00119  국립 중앙 박물관이 살아있…나?  =========================================================================

…쿠쿵…

거의 1km 가까이 떨어진 이곳까지 폭음이 들린다. 공간 지각으로 보고 있는 위상 관은 무시무시한 폭연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네모난 상자는 완전히 박살 나서 조각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직후, 무시무시한 위상력이 소용돌이치며 한 점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나옵니다!-

곧이어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며 물을 뿌려대는 와중에 천천히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위상력 21,666의 사신처럼 생긴 유령 이형종이 사이드를 든 채 나타났다….

중상위라니….

-소, 소울 리퍼 출현!!!-

-강체자는 생존자 회수! 딜러는 산개!-

전일태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화중강 아저씨는 신속하게 지시를 내리고 빠르게 소울 리퍼를 중심에 두고 진형을 잡기 시작했다.

신체 강화자들은 껌에 의해 바닥에 달라붙은 16명의 사람에게 번개같이 달려가 다섯 명이 3, 4명씩 옷자락을 움켜쥐고 힘껏 뜯어낸 다음 바로 지상으로 가는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발사!!-

화중강의 외침과 동시에 속성 능력자들이 전력으로 몸 안의 나이테를 팅겨내며 소울 리퍼에게 속성 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뻐버벙…. 쿠구구구궁….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땅도 울리고 폭음도 울리고….”

“어디서 이형종 나타난 거 아냐?”

“아까 사이렌도 울리고 그러던데?”

“어?! 중앙 박물관에 이형종이 나타났대요!”

여기까지 들리는 폭음에 카페 내부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누군가 외친 말에 사람들은 놀라더니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랑은 내게 시선을 돌리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물어본다.

-서하? 어떻게 되고 있나요?-

“중상위 유령 이형종이 나타났어. 소울 리퍼래.”

-소, 소울 리퍼….-

이형종의 이름을 들은 프랑의 얼굴이 굳어진다. 소울 리퍼에 대해 아는 게 있나보다.

“프랑은 소울 리퍼에 대해서 알아?”

-물리력은 전혀 통하지 않는 준 레이드급의 이형종이라는 것만 기억이 나요.-

“…37명 중 2명이 회복 능력자. 2명은 감지 능력자. 11명이 신체 강화 능력자고 22명이 D~E 클래스의 속성 능력자야. 쉽게 잡겠지?”

-…….-

“모, 못 잡아?”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확신은 못하는 거네.”

프랑의 안색이 흐려지는 걸 보니 희생자가 나올 거라 생각하는거 같다.

화중강 아저씨 일행은 일제 사격을 날린 후 황급히 지하 1층 위상 관을 빠져나와 거울 못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2층과 3층으로 이동한 연합의 능력자 5명도 화장실과 도서실에 갇혀있던 남은 여섯 명을 제압해 박물관을 탈출했다.

-소울 리퍼다! 절대 사이드에 맞지 마라! 신체 강화와 회복, 감지 타입은 후열로! 전열은 D! 중열은 E! 진형은 어린진!-

화중강 아저씨가 합류한 총 37명의 연합의 능력자들은 아저씨의 외침에 일사불란하게 U 자 형태의 진형을 갖추고 신체 강화 능력자들은 어디선가 길이 2m의 창 다섯 개를 가져와 자신의 뒤쪽 땅에 꽂아넣고 한발은 손에 든 채 소울 리퍼가 올라오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남은 5명의 능력자와 회복 능력자들은 사고에 휘말려 다친 일반인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구급차에 실어다 나르고 있는 와중에 소울 리퍼는 멍하니 지하 1층의 위상 관에 가만히 떠 있기만 했다.

검은 천 자루를 뒤집어쓰고 얼굴 부분만 구멍이 뚤려있는 소울 리퍼는 구멍에 해골바가지나 뼈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시커먼 어둠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포대자루 아래쪽에는 뼈로 된 손이 나와 있었는데 오른손에는 4m는 넘어갈 거 같은 거대한 사이드sythe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고풍스러운 뼈로 만든 랜턴을 들고 있었는데 랜턴 속에는 불을 피울만한 어떤 재료도 없었지만 그래도 시퍼런 불같은 게 굉장히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공간 지각으로 랜턴을 살펴봤더니 저 시퍼런 불도 일종의 위상력이었다.

소울 리퍼는 방금 맞은 속성 탄에는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주변을 유영하듯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흙 땅은 통과하지 못하는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을 지나쳐 화중강 아저씨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곧 거울 못 너머 박물관 건물에서 소울 리퍼가 박물관 외장을 꾸미고 있는 유리창을 통과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 사이드랑 랜턴도 벽을 통과해버리네….

시야에 소울 리퍼가 나타난 것을 확인한 화중강 아저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유채린에게 눈짓을 보냈다.

-전투 준비!-

유채린의 외침에 능력자들이 일제히 소울 리퍼에게 능력을 조준한다.

-견제 사격!-

곧 소울 리퍼가 다른 곳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어그로를 잡기 위해 속성 탄 다발들이 날아갔지만,

=흐아아아아.=

읏. 소울 리퍼의 얼굴이 있을 것 같은 곳에 새하얀 입김이 퍼져 나오더니 이내 거대한 사이드를 대각선으로 휘둘렀는데, 날아오던 속성 탄들이 일제히 터져나간다!

소름이 돗는다. 저거, 진짜 중상위 이형종 맞아? 내가 본 좀비 펭귄은 중위급이긴 했지만, 1단계 차이가 너무 심한데?!

순간 상위 이형종을 잡기 위해 레이드에 들어간 화연이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어그로 확인!-

어린진 최후미에 있던 감지 능력자, 전일태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린다. 곧이어 유채린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전체! 일제 사격!-

소리 없이 속성 능력자들의 손을 떠나 화염 구와 바람의 칼날, 송곳 같은 날카로운 흙덩어리가 위상력을 한껏 품은 채 날아가고, 후열에 있던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창에…! TP을 담아 어깨 근육을 부풀리며 있는 힘껏 던졌다!

무기에 TP도 담을 수 있는 건가?!

순간적으로 봤지만, 창에 1,000에 가까운 TP가 응축되어 찬란한 물빛을 뿜으며 날아간다!

-후열은 대기! 1.5sec delay 100 TP 연속 발사!!-

동시에 소울 리퍼도 대낫을 휘두르지만 이번에는 속성 탄 몇 발만 자르는데 그치고 나머지 속성 탄들에 적중당하며 폭발이 일어난다.

“대단하다.”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폭음에 신경을 돌리고 눈을 감은 채 전투장면을 계속 주시한다.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날린 창은 전부 소울 리퍼를 적중시키다 못해 꿰뚫고 뒤편의 박물관 유리창을 박살 내며 벽에 꽂혀 들어갔다.

속성 탄의 폭발 충격보다 D 클래스 초급의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쏘아낸 TP를 담은 창이 더 큰 데미지를 준거 같다.

창이 관통한 부분에서 시커먼 연기…. 어? 저것도 위상력이네?

시커먼 연기가 빠져나오더니, 곧 공중에 퍼진 연기는 물빛으로 변하며 대기 중에 섞여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

으으으. 직접 듣는 것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느껴지는 거 같아.

충격을 받은 소울 리퍼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만 연속해서 빠르게 날아오는 속성 탄을 피하지 못하고 모두 얻어맞으며 터져 나오는 폭발에 움찔움찔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5초도 안 돼서 거리가 남은 거리가 50m까지 줄어들자 곧이어 유채린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후열 투척!!-

바로 준비하고 있던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일제히 창을 집어 던졌는데 소울 리퍼도 이대로는 위험하다 생각했는지 뒤로 물러서며 사이드를 휘두르지만 2대의 창만 자르는 데 그치고 6발의 창은 다시 소울 리퍼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소울 리퍼의 몸이 거칠게 뒤흔들리며 위상력을 흩뿌려대는 와중에도 속성 탄은 계속 날아가 소울 리퍼를 타격하고 있었는데 화중강 아저씨 혼자 속성 탄을 날리지 않길래 뭘 하나 싶었더니 손바닥에 TP를 한껏 응축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고정하며 소울 리퍼를 조준하던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크하하하하하! 자, 받아보아라! 연염옥燃炎玉!-

아저씨의 외침에 강철 건틀릿의 중앙에 박힌 동그란 물빛 구슬에서 새하얀 불 구슬이 튀어나오더니 주춤거리는 소울 리퍼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근데 저거 느려! 피하는 거 아냐?!

-속사! 후열 일제 투척!!-

바로 유채린의 지시가 변경되며 능력자들이 최대한 빠르게 속성 탄을 발사하기 시작하고 신체 강화자들도 TP를 한껏 채워 물빛으로 빛나는 창을 던졌다!

=흐아아아아아!=

정신없이 쏟아지는 속성 탄 다발에 적중하고 창에 꿰뚤리며 끊임없이 위상력을 흘리던 소울 리퍼는 TP가 1만까지 줄어들었다.

상처를 입으면 TP가 줄어드나? 그럼 0이 되면 소멸?

곧이어 도착한 아저씨의 연염옥이 소울리퍼에게 닿는 순간,

쿠우우우우우웅!!

카페에서도 확실히 들릴만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

작렬하는 화염 기둥 속에서 소울 리퍼는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거세게 불타오르더니 물빛 위상력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랜턴과 사이드를 떨어트리고 소멸해버렸다.

“…대단하네, 저 연염옥은 TP를 10만 가까이 쏟은 거 같은데.”

-10만…. 어떻게 됐나요?-

내 위상력의 총량에 몇배나 되는 수치를 단 한번의 공격으로 썼다는 이야기에 프랑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물어왔다.

“아저씨의 연염옥이 소울 리퍼한테 닿으니 작열하는 불기둥이 나타나면서 1만 정도 남은 소울리퍼를 녹여버렸어. 죽고 났더니 소울 리퍼가 들고 있던 랜턴이랑 사이드가 떨어졌네.”

그리고 두 손을 꼭 쥐고 내 얼굴을 바라보는 프랑에게 본 것을 처음부터 모두 설명해줬다.

능력자들은 소울 리퍼의 소멸을 확인하고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E 클래스 사람들이 소울 리퍼가 소멸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위상력을 흡수하려는 건가?

-하아…. 한국은 대단하네요. D 클래스 속성 능력자 3명과 신체 강화 D 클래스 능력자 8명으로 소울 리퍼를 잡다니….-

나는 피부에 돌리던 마나 시브를 회수하면서 프랑을 바라봤다.

“소울 리퍼가 영국에서도 나타난 적 있었어?”

내 앞자리에 앉은 프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도심지 한가운데에서 나타나 무시무시한 인명피해가 났었어요.-

“어? 능력자들이 그냥 잡으면 안 돼?”

-저도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울 리퍼의 사이드에 당한 사람은 죽어서 사령이 된다고 해요.-

“아…. 그래서 사이드에 절대 맞지 말랬구나. 그럼, 만약 저지 못했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네….”

-33명이 일사불란하게 명령에 따라 공격한 결과니까 손쉽게 잡은 건 당연한 거 같아요. 이런 부분이 한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이유인 거 같네요.-

“어? 그래?”

-개성이 강한 능력자들은 군대처럼 조직화 되는 걸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렇게 군대처럼 조직화되어있다니…. 저도 처음 알았어요.-

으음.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지만…. 뭐, 우리나라가 잘났다는데 이거저거 따져볼 일은 아니지?

그때 화중강과 유채린은 맹진호라 불린 샤프한 D 클래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블루 지니어스 덕분에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게?-

-블루 지니어스가 지하에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 그 중심에 정확히 소울 리퍼의 함函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울 스케빈저라 생각했는데, 후우…. 어쨌거나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섣부른 탐색으로 인명피해가 크게 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크크크크. 진짜 아쉽구만 그래. 연합의 특무대에 들어온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유화연 타임리버 보스가 절대 놔주지 않을 겁니다.-

맹진호는 쓰게 웃으면서 화중강의 말에 대답했다.

-음. 정말인가? 얼음 여왕이 녹아버렸다는 게?-

-신뢰할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쭉 알고 지낸 사이에 얼마 전에는 사무실에서 밀애를 하다 들통났다고까지 하더군요.-

-…같은 여자로서 조금 창피한 이야기군요.-

소, 소피아아아아아아…!!

-참으로 아쉽구만 그래. 그러고 보면 대통령님도 블루 지니어스를 노린다는 소문을 들었네만, 그것도 사실인가?-

아오. 진짜, 오글거려 죽겠네! 내 흑역사를 건드리는 작명이라니! 저 블루 지니어스를 누가 지은 거야? 만나면 가만 안 놔둘 테다!

-사실일 겁니다. 저희 지부장님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허, 그 인간마저? 450m의 감지 범위가 이번에 겪어보니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웃대가리들이 침을 흘릴 정도인가?-

-대장님은 현재만 보시고, 그분들은 미래를 보시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커흠!-

유채린의 한마디에 머쓱한 표정을 지은 화중강 아저씨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건틀릿을 카랑카랑 소리 내며 움직이더니 외쳤다.

-아무튼, 검사부의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소울 리퍼의 함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인지, 가서 따져봐야겠다! 자, 한 건 했으니 돌아가자 이놈들아!!-

화중강 아저씨의 외침에 능력자들은 질서 정연하게 트레일러에 올라타는데…. 능력자 연합의 트레일러 주변에 다채로운 복장과 다채로운 위상력 수치의 능력자들 40명가량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누구지? 가장 높은 위상력을 지닌 사람이 70만 정도의 C 클래스 신체 강화 능력자인데…. 꽃미남이랄 수 있는 남자는 지나치던 화중강 아저씨에게 거센 눈빛을 던졌고 화중강 아저씨도 사나운 웃음을 띠면서 이빨을 드러내며 지나쳤다.

꽃미남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모여있던 능력자들에게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복귀해버린 능력자들을 보고 나도 다 식은 스팀 밀크를 단번에 마시고 조각 케이크도 한입에 먹어치운 다음 카페를 나왔다.

철갑 코뿔소 이형종이 돌진해올 때 그 진행 방향에 있던 일반인 몇 명이 크게 다쳤었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2명의 회복 능력자 덕에 죽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그들이 피하지 못한 이유가 나한테 있는 거 같아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다.

어쨌든 다친 사람들은 능력자 연합 병원에서 다 데려가 버렸는데, 거기에 6명의 우리 학교 애들도 있어서 눈에 밟히는 기분이지만…. 그보다 난 전투가 끝난 직후부터 기묘한 불쾌감을 쭉 느끼고 있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도 당분간 폐쇄할 건지 접근금지 띠를 전체적으로 두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신경을 돌렸다.

“타임리버 빌딩으로 가주세요.”

“예이.”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아 올라타서는 눈을 감고 소울 리퍼, 그리고 소울 리퍼와 전투를 치르는 능력자들을 보고 느꼈던 기묘한 불쾌감의 원인을 생각해봤다.

뭐, 그랬더니 바로 결론이 난다.

내가 나서서 소울 리퍼와 싸우고, 내 능력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원인이겠지.

덩달아 나로써는 이해 못할 소울 리퍼의 멍청한 행동도 그렇고, 무엇보다 약해빠진 능력자들의 능력을 본 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처음 결심하고 프랑이 응원해줬던 것과는 다르게, 내 마음대로 못해서가 아닐까.

마지막에 급격히 빨라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에 프랑이 말해준 특수 능력을 생각해보면 소울 리퍼 그놈은 생각이라는 걸 하는가 싶을 만큼 멍청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아니, 직선이나 포물선을 그리면서 속성 탄이 떨어지면 좌우로 피하거나 해야지, 왜 뒤로 피하는 거지? 거기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데다 공중을 날 수 있다는 이점을 포기하고, 직선으로 천천히 다가 만 오면 마치 =맞춰주세요!= 하는 모습이잖아.

TP의 창이 몸을 꿰뚫고 지나가면서 데미지를 입었으면, 일단 피하든가 해도 되지 않나?

유령 계열이라서 멍청한 거야?

그리고 전체적으로 능력자들이 싸우는 모습에서 약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화중강 아저씨의 2가지 능력을 봤지만 역시나 소비한 TP에 비해 위력은 어째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TP를 주입한 투창은 굉장히 놀랬지만, 무기에 TP를 주입했다는 걸 보고 놀랜 거지, 소비 TP량에 비하면 위력은 좀….

그러니까 공간 지각 능력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같은 양의 TP라면 내 마나 탄과 마나 레이저 쪽이 더 강하다고.

그리고 화수강 아저씨가 보여줬던 연염옥. 그것도 흉내 낼 수 있을 거 같다. 그냥 손에 TP를 잔뜩 우겨넣고 최대한 회전시키면서 발사하는 거뿐이었으니까.

중간에 유채린이 내뱉은 영어 단어는 1.5초의 딜레이를 가지고 100 TP를 써서 발사하라는 거였겠지.

그 100 TP 위력의 속성 탄들은 내 마나 모드 마나 탄의 1 TP에도 못 미치는 위력이었다.

내 마나 탄이었다면, 내 마나 레이저였다면, 내 능력이라면!

저 33명의 사람보다 수월하게 소울 리퍼를 쉽게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 능력을 숨기고 병신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방 내 처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빨리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서 욕심 가득한 권력자들의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적어도 세계 랭킹 10위 안에는 들어야 남들 눈치를 안 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랭킹도 생각해보면 단순한 개인의 무력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인맥, 권력, 재력, 무력의 동원수단 같은걸 통털어서 재본 게 아닐까 싶다.

그 증거로 난 지금까지 서울을 몇 번 횡단하듯이 이동했는데, 그동안 화연이보다 위상력이 높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하지만 화연이는 한국 개인 랭킹 3위, 그에 비해 랭킹 1위는 얼마 전에 확인한 사항이지만 청궁의 보스였다.

청궁의 보스는 힐러다. 그러니까 랭킹은 단순한 개인의 무력만을 안 본 다는 게 확실한 거지.

화연이의 무력과 그녀의 어머니인 여사님의 권력과 인맥, 그리고 여사님과 화연이의 재력. 그러니 세계 랭킹 21위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

눈을 감고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으려니 옆에서 프랑이 드러나는 내 표정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래. 7개월만 기다리자. 그리고 정식으로 위상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손을 뻗어 안절부절못하는 프랑의 손을 안심하라는 뜻으로 살짝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는 여의도역에 도착했는데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날 위해 대신 핑계를 대 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 걸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오긴 했지만…. 20층부터 1층까지 쭉 훑어봐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혜령 부장뿐이다.

…아.

저번에 왔을 때는 없었던 유리장 식장이 1층 홀의 한 곳에 생겨나 있었다. …그 유리 장식장을 보고 있으려니 불쾌감이나 분노 같은 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난 1층의 한 부분을 빤히 바라보다가, 공간 지각으로 보이는 꽃집으로 향했다.

“프랑? 난 괜찮아. 소울 리퍼랑 연합 능력자들의 전투를 보면서 조금 심란해져서 그랬던 거야. 빠져나오지 못했던 사람도 조금 마음에 걸렸고.”

-그건 서하의 잘못이 아니에요. 서하도 눈치채고 얼마 안 돼 일어난 일인걸요.-

“사실은,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부터 조금 신경 쓰이는 감각이 있었지만 어떤 게 문제가 되는지 몰랐었거든. 지금 기억을 가지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못 들어가게 막아버리긴 했을 텐데…. 아무튼 그때의 신경을 건드는 느낌은 기억해둬야겠어.”

내 과민반응이 아니라 공간 지각이 알려주는 미약한 경고 신호라는 걸 알았으니까.

어지간한 대형 음식점 크기의 꽃집에 도착했더니 배달용 오토바이 한 대가 보이지만 오토바이 주차 공간을 보니 5대는 되는 거 같다. 4명이 배달 나간 건가?

배달 전문, 근조 화환 축하화환 승진축하 화환…. 장사가 잘되나보네.

아무튼 플라워 블로섬이란 간판을 보다가 천천히 들어가니 꽃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곱게 늙으신 60대 할머니가 걸어 나오셨다.

“어린 손님이시군요. 누구에게 선물하기 위한 꽃을 사러 오신 건가요?”

글로 보면 사람에게 선물 할 꽃을 사러 왔냐고 묻지만, 표정과 억양으로는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선물할 꽃을 사러 온 거냐고 묻고 계셨다.

와. 억양 하나에 의미가 이렇게 차이 날 줄이야. 고운 목소리에 외모를 보니 젊었을 적 굉장한 미녀셨을꺼 같다.

“와, 할머니는 젊었을 때 무진장 예쁘셨을 거 같네요.”

“어머. 후후후, 고마워요. 어린 손님. 하지만 그런 말은 젊은 아가씨들이 더 좋아할 거에요.”

할머니는 그야말로 곱게 웃으시면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셨는데, 만약 화연이가 늙으면 이런 모습을 갖춰주면 좋겠다.

안 늙으면 더 좋고.

“그래, 어떤 꽃을 원하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꽃이라면 역시 장미지요, 순결의 하얀 장미, 행복한 사랑과 맹세의 분홍 장미, 열정과 기쁨 아름다움의 빨간 장미도 있죠.”

“…먼 곳으로 떠난 사람을 위한 꽃은 없나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살짝 얼굴이 굳어지시더니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냉장진열대로 걸어가 수줍게 피어오르는 흰 국화를 한 송이 한 송이 뽑아서 다듬고 모으기 시작하셨다.

“제가 예법을 잘 몰라서요. 이미 떠나신 분인데 맨손으로 가기 그래서….”

“후후. 흰 국화꽃에는 많은 뜻이 있지만, 흰색은 동양의 오행 사상에서 서쪽을 의미한답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일 뿐만 아니라 "서방정토 극락세계"라 하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뜻도 있지요.”

조용히 웃으시면서 7송이의 흰 국화를 새하얀 종이에 싸서 나에게 건네주셨다.

“조문 가는 길에 흰 국화를 사러 오신 것만으로 충분한 예법을 알고 있으신 거예요.”

카드로 계산하고 꽃집을 나오니 꽃집 할머니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날 배웅하셨다.

“참 곱게 늙으신 할머니네.”

-네에. 제가 봐도 꽃 같은 할머니셨어요.-

그 모습을 공간 지각으로 바라보며 타임리버 빌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2연참!

오후에도 올라갑니다!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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